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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보라색 유채라니

보라색 유채라니, 진짜일까 그런 꽃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확인하러 영천생태지구공원으로 갔다. 산에 오르며 자연을 제대로 즐기는 지인으로부터 영천에 보라색 유채가 가득하다고 추천받았다. 한눈에 반할 거라고 장담하기에 인터넷에 검색하니 영천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비게이션에 ‘영천생태지구공원’이라고 입력하니 다리 밑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차를 세운 자리에서 고개를 돌리자 바로 보라색 꽃밭이 펼쳐졌다. 금호강을 따라 걸으니 강변에 보라색 천을 길게 늘어놓은 것 같다. 잔잔한 강물에 아파트 그림자가 들어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걷다 보니 장미정원과 터널도 있었다. 곧 5월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피어날 것이다. 빈 밭에 이름표만 있는 곳도 계절 따라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자 앞은 그야말로 보라색의 바다였다. 소풍 나온 사람들이 웃음소리를 날리며 사진찍기에 푹 빠졌다. 보라 유채는 소래풀이라는 본명이 있다. 제갈량이 군사용 식량으로 길렀다고 해서 제갈채라고 하고, 제비냉이라고도 부르니, 이름이 여러 개다. 가을에 씨를 뿌리면 월동하고 봄에 꽃이 핀다. 서리를 맞지 않게 돌봐야 봄에 이쁜 꽃을 많이 피운다니 영천시에서 잘 돌본 모양이다.영천은 신라시대에 절야화, 골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757년에 임고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영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3년에 영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영천이 남천과 북천 둘 물줄기가 합류하는 안쪽에 있는데 물줄기가 영(永)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영천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지역의 생김새와 관련해 이름이 붙여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여러 산과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금호강 상류를 형성하고, 그 물길이 곳곳에 비옥한 땅을 일구어놓았다. 이런 지리적인 환경 때문에 영천은 예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영천시 구암동에 청못이 있다. 청못은 신라시대 법흥왕 때 논농사를 위한 수리시설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실을 통해서도 예부터 영천 지역에서 농업이 성했음을 알 수 있다. 물줄기를 따라 꽃구경을 실컷 했으니 영천의 또 다른 자랑인 소머리국밥으로 배를 채우기로 했다. 공원에서 큰길만 건너면 영천공설시장이다. 국밥 골목이 길게 형성되어 북적인다. 일행들과 어울려 가장 유명하다는 곳에 들어가 소머리국밥을 시켰다. 국물이 진하고 잡내가 나지 않았다. 뚝배기 가득 담겨온 고기로 넉넉한 인심이 느껴졌다.배를 채웠으니 시장 구경을 했다. 없는 것이 없는 큰 시장이었다. 내륙인데도 영천은 돔베기가 유명하다. 경상도 제사상에 꼭 올라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명물이다. 주차장도 넓고 아케이드 덕분에 비가 와도 걱정 없는 시장이었다.예로부터 영천은 동해와 대구 사이에 위치하고, 아래쪽에 경주와 인접해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동해안에서 잡은 해산물을 경상북도 군위나 의성, 칠곡, 선산, 달성, 경산 등으로 공급하는 중간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산지도 많아 일제강점기 때까지 벌꿀을 비롯해 인삼, 송이, 대마, 산약 같은 임산물이 특산물로 생산되기도 했다. 영천시장은 수산물과 약재 등의 집산으로 인해 영남 3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했다.곧 영천 한약 축제가 열리고(5월 17∼19일), 작약 축제까지 더해 풍성한 볼거리를 더한다. 작약 축제 장소는 화남면, 화북면, 대전동, 보현산 약초식물원 등 여러 곳이다. 5월 19일까지 약초축제와 함께 열린다. 영천으로 놀러 오라는 신호이다. /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16

백두대간 수목원 가족나들이 어때요?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중심부,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지맥’에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있다. 전체 규모 5179㏊로 아시아 최대이며, 세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한탐식물원(6229ha)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백두대간과 아시아 및 고산지역 희귀식물과 산림생물자원을 수집·보전·활용해 생물 다양성을 관리하고, 교육과 체험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재난을 대비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종자를 저장, 보존하는 시드 볼트(Seed Vault)도 있다. 단풍정원, 만병초원, 무지개정원, 휴가든, 알파인하우스, 암석원, 백두대간자생식물원, 추억의정원 등 38개 전시원에서는 각종 꽃과 식물들을 볼 수 있다. 호랑이 숲은 100년 전에 사라진 백두대간의 상징 백두산 호랑이가 축구장 5배 크기의 자유로운 생태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백두산 호랑이는 ‘금수의 왕’다운 위엄과 용맹한 기운이 느껴지고, 우리 선조들 삶에 따뜻한 이미지로 전해 내려오기에 정겹게 보인다. 신록이 눈부시게 푸르른 날 햇빛을 가득 받으며 오지 산골 경북 봉화의 투명한 하늘과 청량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곳이다. 원래 있던 마을과 농지를 이용해 수목원 부대시설들이 들어서 자연 훼손은 거의 없다. 구룡산과 옥석산, 태백산 등 3개의 산을 경계로 하고 이 산들은 모두 해발 1200m가 넘는다.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은 고도 500~700m 사이에 위치해 있다. 수목원 방문자센터에 들어서면 운곡천과 두내천이 합쳐진 두물머리 다리를 건너게 되며 우측으로는 어린이정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성장시켜 줄 창의적인 공간이다.트랩을 타고 자생숲이나 호랑이숲, 고산습원, 단풍식물원 등으로 갈 수 있으며 트랩은 백두대간 수목원의 마스코트인 호랑이 모양이다. 호랑이 숲은 트랩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야 하며 트랩을 타지 않고 쉬엄쉬엄 걸어가면서 주변 꽃들과 식물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나는 바람 한 자락까지도 소홀함 없이 애쓴 풍경, 자연과 인간의 노력이 조화를 이뤄 오지 산골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백두대간 수목원이다./류중천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16

경주 현곡 ‘JJ갤러리’를 찾다

5월의 작약. 해마다 찾아오는 계절이고 꽃이지만 매번 새롭게 반가운 마음이 든다. 400여 평의 밭에선 저마다 피어나기 바쁜 작약들이 나들이객을 맞이하고 있다. 바람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붉은 빛 고운 파도가 일어났다 멈추곤 했다.경주시 현곡면에 위치한 JJ갤러리 옆에 위치한 작약밭은 몇 년 전부터 유명세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드는 명소가 되었다. 찾아간 날은 마침 JJ갤러리 관장이자 서양화가인 김정자 화백의 15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이번 전시의 주제는 ‘내 맘의 공간 여행’이다. 작가는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품들 속에서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과 ‘공간접기’라는 조형언어를 통해 다면적으로 조형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대상의 단순한 외형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열린 의식세계 속에서 내면의 자아를 찾아가는 작업을 한다는 김 화백.30~40년간 지역에서 꾸준히 작업을 해오던 그녀는 현재의 갤러리 공간을 마련해 더욱 더 열정적으로 나아가는 중이다.평면의 캔버스 속엔 종이접기를 하듯 공간들이 접혀있다. 김정자 화백은 면을 접어 공간확장을 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의 작업 스타일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사실적으로 사물과 풍경을 캔버스 위에 표현하던 그녀는 자연에 면을 주면 색을 달리 볼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후 현재 작업에 이르게 되었다. 최근에는 핑크뮬리라는 소재로 공간접기에서 공간여행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갤러리 안에는 개인 작업실도 함께 있다. 작업실 내부에는 작가의 짙은 열정들이 가득 쌓여있다. 갤러리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뭘까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작업실을 지으려다 조금 더 욕심을 내 수장고 겸 이웃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면 좋겠다 싶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갤러리가 외곽에 위치해 있다 보니 자연을 느끼기에 그만이다. 그리고 그런 점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벽면 가운데 놓인 창으로 산과 하늘, 지천으로 흐드러진 초목들이 스스럼없이 들어와 영감을 주는 듯했다. 그 중 드넓고 푸른 하늘은 작품들 속에 크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갤러리를 시작함으로써 얻게 된 것들은 자연 뿐만이 아니었다. 갤러리 이름으로 아트페어에 자유롭게 참여해 넓은 곳에서 작품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역 작가뿐 아니라 작품성이 좋은 작가들을 초대해 작품 전시를 열어 전시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인터뷰 중간에도 관람객들이 찾아들었다. 작업에 열중 하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갤러리로 나가 도슨트(docent) 역할을 자청해 작품 설명을 해준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주변 이웃, 그리고 방문객들의 그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느껴진다고 한다. 훗날 이곳이 자신이 남긴 작품의 수장고이자 문화공간으로 계속 남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끝으로 푸른 5월이 더 없이 아름다운 갤러리로의 소풍을 추천한다. /박선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9

“사랑 충만한 ‘가정의 달’ 오월 되세요”

달리는 차창으로 향그런 아까시 꽃향이 훅 들어서고, 눈이 쌓인 듯 하이얀 이팝나무가 봄날의 크리스마스를 장식할 때 은은하고 감미로운 찔레꽃 향기가 더하면 절로,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은 푸른 하늘 가슴을 펴고 소리쳐 보자 우리들은 새싹들이다’라는 동요가 흥얼거려진다. 이렇듯 온갖 꽃향기에 취하는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2005년 1월 1일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건강한 가정을 위해 사회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년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말하는 ‘가정(家庭)’의 정의는 ‘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생활하는 사회의 가장 작은 혈연공동체’이다. 정(情)으로 대변되던 한국사회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생활환경이 급변해 인정이 메마르고 대화가 줄어들어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성행한다. 핵가족 생활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예절마저 사라져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인 인륜과 멀어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3년 말 현재 자살률이 OECD 가입국의 38개국 평균에 비해 두 배나 높은 수치로 부동의 1위이다. 노인과 아동 학대 신고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남의 시선을 심하게 의식하는 문화 속에서 집성촌을 자랑하던 가족제도에 많은 변화를 가지며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알면서도 방관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바바라 부시 여사는 한 대학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미국의 장래가 백악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의 장래는 백악관이 아닌 바로 여러분의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프랑스 속담에도 가정이 국가의 심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장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듯이 사랑이 넘치는 건강한 가정이 많은 나라가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가정은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공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야 시장 경제가 살아나고 국가 경제도 튼튼해집니다. 이처럼 가정에서는 부모가 가족 구성원들의 건강한 사고방식과 건전한 삶의 태도, 세계관을 가진 자녀를 양육을 해서 사회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 집니다. 잊지 마세요. 한 가정의 의식수준이 그 나라의 의식수준을 결정합니다. 사랑합니다.” 동양고전에서는 나라를 잘 다스리고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도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며 집안을 잘 다스리는 수신제가(修身齊家)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은 종일 비가 내리며 심술을 부렸다. 놀이공원을 가지 못해 못내 아쉬웠겠지만 부모 사랑 듬뿍 받은 아이들이 행복했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스승의 날, 부부의 날에도 가족 간 사랑을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가까이 지인들과도 따뜻한 마음을 전하면서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사랑이 충만한 오월이 되길 바라본다. 가정마다 오월의 라일락 꽃향기가 전해지기를. /박귀상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9

날뛰는 전세사기, 잘 대비하면 막을 수 있다

부동산 하락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상승장이 영원할 것처럼 투기판에 뛰어들었던 젊은이들이 부동산 하락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영혼까지 끌어서 산 부동산이니 당연한 일이다. 투자나 투기를 하려면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을 쫓아가는 불나방처럼 돈을 쫓아간 결과다.요즘 3억하던 전세가 2억이 되었다. 역전세가 1억이나 된다. 임대 만기가 된 임대인들은 역전세금을 내주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돌려줄 현금을 통장에 예금해 둘 임대인이라면 처음부터 전세를 3억에 내지 않는다. 보증금 2억에 월세를 받는 반전세가 더 낫기 때문이다.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의 사다리 역할을 하던 전세가 역전세 되어 그 차액을 이자계산해서 돌려주는 임대인들도 많다. 부동산 하락으로 인해 그런 임대인들까지 전세사기꾼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전세금이 매매가 보다 높을 때 일반적인 매도인은 그 차액을 매수인에게 주고 명의를 넘긴다. 매수인은 전세기간이 끝나면 그 돈을 합해서 전세입자에게 내 주도록 되어있다. 사기라는 것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남의 것을 취하기 위해 일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를 갭이라 하는데, 전세가가 치솟아 매매가와 별 차이가 없는 물건들이 그들의 표적이다.그들은 사기를 치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최고 높았을 때의 전세입자가 살고 있는 급매를 찾아다닌다. 취득세만 있으면 명의를 이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집을 산 주인은 최고가의 전세금으로 살고 있는 현 세입자를 내 보내기 위해서라며 새로운 세입자를 받는다. 새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에 1억이나 되는 차액을 합해서 현 세입자에게 내주어야 하지만, 그들은 현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을 먹고 튀어버린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나간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를 찾았을 때는 이미 통장은 비어 있다.도망간 집주인은 일명 바지사장이다. 바지사장을 앞세워 한 지역을 싹쓸이 사기 치고 빠지는 수법이 판을 친다. 작정하고 덤비는 사기꾼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대항력을 갖춘 현 세입자는 법적으로 하면 전세금의 일부나마 받을 수 있다. 대항력은 전세권등기를 하거나 보증보험을 가입하고, 주소이전과 함께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새로운 세입자다. 전 재산인 전세금이 한 순간에 날아간다. 전세금이 현 세입자에게 건너가야 키를 받을 수 있는데, 이삿짐을 실은 차는 갈 곳이 없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된다.임대인이 없으면 임차인도 없다. 전세를 내는 집이 있으니 전세금으로 거주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집을 사는 데 사다리 역할을 해 주던 전셋집이 없어지면 월세를 살 수밖에 없다. 사기꾼에 대한 법이 더 강해져 서민들이 눈물 흘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보아야만 하는 지금의 상황이 힘이 든다. /김영주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9

가정의 달 5월, 치솟는 외식비에 ‘지갑 열기 겁나요’

자연의 싱그러움과 사랑이 넘치는 5월이다. 하지만 가정의 달 5월은 마음 쓸 일도 많아 일년 중 지출이 가장 많은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결혼식 등 기념일이 줄을 서듯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에 선물과 외식비, 나들이까지 챙기면 100만 원이 훌쩍 넘어 가계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외식 물가가 많이 올라 서민들에겐 밖에서 밥 사 먹기가 고민이 되고 있다.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외식 물가의 상승률(3.4%)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1%)보다 0.3%로 높게 나타났다. 외식 세부 품목 39개 중 64.1%인 25개 물가가 평균보다 높았는데 외식 물가가 평균을 넘는 현상이 2021년 6월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경북에서도 3월 소비자 물가 지수가 3.2%로 나타나 서민 생활과 관련한 물가가 대부분 올랐음을 보여 주고 있다.김밥과 햄버거, 치킨 등 분식류는 서민들이 즐겨 찾는 외식 메뉴인데 얇아진 지갑 탓에 편하게 사 먹는 메뉴에서 쉽게 사 먹지 못하는 가격이 되고 있다. 초등학생이 있는 주부들도 아이들에게 “김밥은 쉽게 사주는 외식 메뉴였는데 한 줄에 4000원인 시대가 됐다. 최근에는 햄버거도 불고기버거 세트를 300원이나 더 주고 사 먹었다. 주말이면 피자와 치킨도 자주 시켜 먹었는데 이제는 그 횟수도 줄여야겠다. 외식비 인상에 5월이 반갑지 않다”고 한다.포항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 모(35) 씨는 “매년 어버이날 즈음해서 부모님과 가족 식사를 하고 용돈을 30만 원씩 드렸다. 올해는 외식비도 많이 올라서 가성비 좋은 곳으로 가려고 알아보고 있다. 부모님 용돈도 좀 줄일까 생각 중이다. 아이가 있으면 더 고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돈 쓸 일 많은 가정의 달 5월은 한 취업정보업체(잡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한 명이 5월에 추가로 지출하는 돈은 평균 54만 원으로 집계 되었다. 특히 기혼자는 양가 부모님과 자녀들까지 챙겨야 할 사람도 많아 미혼 직장인보다 지출이 20만 원 더 많았다. 그리고 직장인의 5월에 지출되는 평균 경비는 80만 원으로 나타났다.서민들이 5월이 힘들고 부담이 되고 지출이 줄줄이라며 하소연하고 있는 가운데 외식이 많은 5월에 가격 인상을 하는 음식점들은 대부분 재료비와 인건비, 배달료 상승으로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한다.가정의 달 5월은 늘 곁에 있어도 소중함을 몰랐던, 그리고 멀리 떨어져 소홀했던 가족의 사랑을 되새기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또 가족이라도 바쁜 생활 속에서 일 년 중 함께 즐기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최근의 경제 상황이 외식비 인상 등 주머니 사정을 힘들게 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정감 있는 가족의 시간만큼은 줄일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7

청량사 봄풍경

청량사는 몇 해 전부터 가고 싶어 벼르던 곳이었다. 다녀온 지인들이 가보라고 입을 모았다. 겨울이면 겨울, 가을은 더더욱 경치가 좋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은 세상이 연둣빛일 때 가보기로 했다. 아침 물안개가 산밑에 머무를 때 가보려고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다.포항에서 영덕까지 7번 국도를 달려 영덕IC에서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조금 달리나 싶다가 영양에서 다시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물이 많은 영양은 안개가 하얗게 덮인 채 잠에서 덜 깬 산골 소녀 같다. 점점 영양 더 깊은 곳으로 가자 고추 모종을 실은 트럭이 밭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밭고랑마다 고추가 심기고 우리는 청량산도립공원으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 오르막을 올라 고개를 넘으니 곧 내리막길이다가 금방 주차장이다. 등산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초파일 연등이 내걸린 청량사로 올랐다.시작부터 가파르다. 운동 부족이라 그런지 5분이 지나자 숨이 가쁘다. 그만 갈까 하는데 길옆에 손톱보다 작은 하늘빛 꽃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검색해보니 참꽃마리였다. 무리 지어 까르르 웃는 유치원생 같다. 잠시 들여다보며 숨을 고르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라 그런가, 곳곳에 아름드리나무가 길옆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하루 종일 시원한 그늘이라 나무에 이끼가 자라 마치 초록 옷을 입은 듯하다. 그 뒤로 아침 햇살이 조명처럼 내비쳐 봄빛이 곱다.조금 더 오르니 주세붕의 시가 바위에 걸렸다. 송학이 졸다가 깬다는 구절에 감탄하며 무릎을 다독거렸다. 또 한 구비 오르니 미나리냉이꽃이 하얗게 폈다. 쉴 겸 사진 한 장 찍는다. 가끔 내리막이다가 오르기도 해야 하는데 청량사 가는 길은 점점 더 가파르다. 10분이 지나자 온몸이 땀이다. 나무수국이 이제 막 몇 잎 폈고, 나비가 지쳐 돌아설까 봐 힘내라며 팔랑팔랑 앞서간다. 조금 더 오르니 벌깨덩굴꽃이 꽃잎에 나비를 매단 것처럼 피었다.청량사에 가까워질수록 물소리가 커졌다. 기와를 이어서 물길을 냈다. 그 옆에 종지나물이 작은 잎으로 물을 더 보탰다. 철쭉은 지는 중이고 작약은 이제 막 꽃대를 올렸다. 경치가 그저 그만이라는 찻집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대웅전 앞에 보살님들이 모여 제를 올릴 때 사용할 그릇을 닦고 있었다.절 마당 한가운데 소나무 아래 숨을 고르는 등산객들이 앉았다. 경기도 동탄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는 일행들이다. 자신의 몸피만 한 짐을 등에 얹은 등산객은 땀이 식자 하늘다리라는 표지판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른다. 오늘 밤은 정상에서 자려고 그렇게 커다란 배낭을 꾸린 것이라 했다. 빈손으로 오르기도 힘든 길이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무릎이 아프다며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자기 자신도 모를 노릇이라고 웃는다.청량산도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량사 법당은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청량산의 육육봉(12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절을 둘러싸고 있고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 자리이다. 이곳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있다.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물고기 모양 풍경이 산 아래 풍경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것 구경하다 해우소에서 근심까지 해결했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오를 때보다 더 조심조심 갈지자로 걸으니 산꽃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쉽게 차를 타고 올랐다면 몰랐을 향이다. 차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갔다면 청량사가 가슴에 남지 않을 것이다. 다녀온 지인들이 모두 이 길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오르며 나무와 꽃과 새소리의 응원을 받아서 청량사를 손에 꼽았을 것이다. /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7

광야를 노래하다 안동댐 ‘육사 시비’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중략)다시 千古(천고)의 뒤에/ 白馬(백마) 타고 오는 超人(초인)이 있어/ 이 曠野(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1904~1944)의 시 ‘광야’의 첫 구절이다. 일제에 항거한 강렬한 민족의식을 노래한 시인은 안동시 도산면 원천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육사(陸史)는 독립운동으로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죄수번호 ‘264’에서 따온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안동댐 안동민속박물관 야외에는 시인의 정신을 기리고자 건립된 ‘육사시비(陸史詩碑·사진)’가 있다. ‘이육사 선생 기념비 건립위원회’에 의해 1968년 낙동강 강변에 세워진 이육사 시비는 안동댐 건설과 함께 수몰의 위험으로 1970년대 이건돼 현재까지 안동댐 민속박물관 야외에 자리하고 있다.시비 앞면에는 육사의 시 ‘광야’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동탁 조지훈 시인의 추모 글이 새겨져 있다. 조지훈 시인은 비문의 마지막에 “광야를 달리던 뜨거운 意志(의지)여 돌아와 祖國(조국)의 江山(강산)에 안기라”며 육사를 향한 절절한 마음을 기렸다.‘광야’는 시인이 죽은 뒤 시인의 아우 원조가 수습해 1945년 ‘자유신문’에 처음 발표한 유고 시다. 조국 광복을 노래한 시인은 끝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숨을 거두었지만 일본의 패망을 예견했으리라.안동댐에 와서 민속촌의 예스러움과 월영교의 아름다운 풍광만 보고 갈 일이 아니다. 민속촌 입구의 ‘육사시비’의 글귀를 보며 아름답고 강인했던 영원한 청년 시인 육사의 생을 톺아보는 뜻깊은 시간도 가지길 바라본다.한편, 또 다른 육사시비는 육사의 생가터인 도산면 원천리에 있다. 육사의 생가 자리에 포도 모양의 일곱 개의 화강암 위에 동판으로 만든 육사 선생의 얼굴과 시 ‘청포도’를 새겨두었다. 1992년 건립되었으며 지난 4월 국가보훈부 경북북부보훈지청에 의해 이달의 현충시설로 선정됐다. /백소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7

세상 사랑 중 가장 크고 높은 어버이의 사랑

어떤 오해로 인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날이 있었다.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세상은 너무나 매몰찼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표현이 이때 필요하구나 싶었다. 밥도 안 먹히고 물도 안 먹히고 그저 멍하니 앉아서 초점 없는 눈으로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내 편은 없는 것 같은 상실감으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키가 훤칠한 소나무 숲 아래쪽에 있는 단풍나무 두어 그루 아래에 섰다. 전날 내린 비로 단풍잎은 더욱 생생한 초록빛이었고 아이 손가락 같은 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단풍나무 가지를 흔들다 가고는 했다.그 풍경 아래에 아득히 서 있다가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십여 년 전에 하늘로 가신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실 때 의사는 가족을 몰라볼 거라 했지만 몸이 굳고 혀가 굳어 말을 잃었어도 아버지는 눈빛으로 분명 나를 알아보셨었다.사람의 눈빛이 얼마나 간절한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때 알았다. 죽음 가까이에서도 그렇게 애절하게 딸을 바라보던 아버지를 잊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에 나 혼자인 것처럼 괴로워한 내가 갑자기 바보 같이 생각이 됐다. 그러자 말할 수 없는 위로가 찾아왔다. ‘아! 내게도 언제나 지켜봐 주며 걱정해 주는 아버지가 있었지’ 비록 보이지 않는 시공간으로 경계지어 있지만 이어진 인연의 끈을 통해 아파하는 딸을 어루만져 주는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졌다.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았다.“아버지가 가마솥에 불을 지피셨다/ 잘 마른 나뭇가지에 불이 붙으면/ 아궁이는 뒤뜰 감나무 홍시 빛깔보다 더 환해졌다/ 지난 계절 내내 가지에 묻은 바람들이 깨어나/ 너울너울 불꽃이 되어 흔들렸다// 나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의 생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았다/ 비릿한 듯 은근한 듯/ 얻어먹은 술밥에 취한 것처럼 혼곤한 그 냄새가/ 삭정이 같이 구멍 숭숭한 처마를 지나고/ 뒤란 꽁무니에 매달린 굴뚝까지 돌아나가야/ 가마솥의 여물은 질긴 가난처럼 익었다// 여덟 아이들 중 서넛은/ 기슭에 떨어진 도토리처럼 집을 떠났고/ 남은 아이들이 복닥거리는 작은 방에/ 서서히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저녁이면 어김없이 냄새가 피어올랐다/ 여위어 가던 아버지가 한 줌의 재가 되기 전까지는/ 아직도 아버지는 이승의 아궁이로 불을 지피시고/ 익숙한 나무 타는 냄새와 구들장을 번져가는 온기로/ 나는 오늘도 저물어가는 이 저녁을 살아낸다” (엄다경 시 ‘아버지의 아궁이’)다시 오월이다. 새봄이 오고 새잎은 찬란하지만 한번 떠난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사랑의 끈이 끊어졌다고 여기며 아파하지는 말자. 살아가는 데는 보이지 않는 깊은 사랑이 우리를 받쳐주고 있다. 그 힘이 있어 살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사랑 중 가장 크고 높은 사랑은 어버이의 사랑이리라. 그 사랑 덕에 우리는 오늘을 잘 살아낼 수가 있다. 카네이션 곱게 들고 사랑의 온기를 가슴으로 느끼는 오월이 되자. /엄다경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2

문화해설사와 함께한 성주 문학기행

황사가 도시를 뒤덮던 날이 계속되던 지난달 21일, 반갑게 봄비가 내렸다. 여행을 앞둔 날, 비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눈앞을 가로막는 최악의 미세먼지에 비가 오히려 고마웠다.온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주던 보슬비가 간간이 뿌리던 일요일, 한국수필문학관 관장님을 포함한 수필 아카데미 회원 27명이 성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첫 번째 목적지는 한개마을이었다. 큰 하천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한개마을, 뒤로는 영취산, 앞으로는 백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성산 이씨의 집성촌이다. 마을의 전통 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담이 잘 어우러져 있는 마을 초입의 골목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었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마을의 기운이 좋아 37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선비들이 이 길을 통과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진사댁, 조선 시대 마지막 과거시험에서 진사가 된 이국희의 집이다. 초가를 이었으나 서까래와 기둥은 든든한 사랑채에는 주인장의 ‘검이불루 화이불치’ 철학이 담겨있다고 해설사는 말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고사로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이야기다. 대문 밖에 대성학당이 있는, 집안 곳곳에 이야기가 풍성한 교리댁은 마을 고택 중에서 백미였다. 마당 한쪽에 버티고 선 ‘남귤북지’ 고사가 스민 탱자나무가 있고, 사랑채 뒤쪽에는 사당이 있다. 거대한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에서 자연을 그대로 살린 건축물인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이 없었다면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마구간 앞 하마비에 새겨진 ‘운서영원대’라는 문구에서 벗이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사도세자의 호위 무관이었던 이성문이 낙향해 은거하며 지냈던 북비고택에도 들었다. 충신의 툇마루에 쭉 앉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응와종택으로도 불리는데 인심 좋은 주인장이 모처럼 안채까지 활짝 열어주었다. 덕분에 잘 정돈된 정원과 당시 상류층 양반 한옥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호사는 문화관광해설사와 동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산책로를 따라 최상단 전망대에 올라 마을 전체를 보았다. 드라마 ‘연인’의 촬영지였던 한주정사가 있는 한주종택에도 들렀다. 마을의 혈 자리에 있는 고택의 사랑채에는 대대로 성리학을 받드는 집이라는 뜻의 ‘주리세가’란 편액이 걸려 있었다. 또한 이 댁의 주인인 이석문과 두 아들, 삼부자의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국가보훈처에서 세운 안내판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월항면 인촌리 태봉에 있는 세종대왕자 태실과 성산동 고분군도 담당 문화해설사가 동행하며 안내를 해주었다. 문화관광해설사와 동행한 여행을 통해서 성주의 역사적 위치와 문화적 가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세 곳에 각각 배치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지역의 문화와 그 장소에 담긴 생활상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역사 속의 성주에 대해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손정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2

최태성의 역사서 ‘역사의 쓸모’를 읽고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겐 삶이 되고, 후대에게는 지나간 과거사가 된다. 시민기자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1960년대를 지내온 어머니에게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존경스러운 인물로 인식되어있다.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한 사람과 책에서 지나간 역사로 배운 사람의 차이는 크다. ‘역사의 쓸모’의 저자 최태성은 우리가 배운 역사 속 인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 인물이 동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개별화된 대상이 아닌, 그 시대를 함께 겪어온 대표자로 인식되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라 여긴다고 이야기한다.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의 사건 중 하나는 1994년 김일성의 죽음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대성통곡이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폐한 대지에서 시작하여 지도자 김일성과 함께 다시 일구어나간 나라와 그 나라 국민이라는 공통된 경험이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서로에게 나타남으로 인해 세대간 갈등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이처럼 역사를 배우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또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이다. 저자는 결정할 상황에 놓이거나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때 자신은 역사를 되돌아보고 답을 찾는다고 전한다. 역사 속 인물로부터 배워야할 점과 그들의 실수를 통해 고쳐야할 점을 사전에 학습하여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저자는 유신 헌법으로 영구 집권까지 노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큰 획을 그은 훌륭한 업적만을 우리가 기억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잘 내려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고려시대 거란 장군 소손녕이 80만 병사를 이끌고 고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했으나, 서희는 그들의 숨겨진 진짜 의도를 알아차리고 오히려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얻어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속에서 인물 간의 관계와 사건에 대한 인물의 선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거울과 경계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역사의 쓸모라는 것을 알려준다. /김소라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5-02

아이를 낳으면 정말 행복할까

초저출생을 겪고 있는 지금, 다둥이 가족의 출생 소식이나 이따금 시골 동네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포항 호미곶면에서도 18개월 만에 아이가 태어나 마을이 들썩였다. 그리고 이들 부모는 아이를 낳은 게 정말 기쁘다고 말한다.그렇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정말 행복할까. 물론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대부분 행복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아이를 낳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그 첫 번째가 경제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직장인 대부분도 경제 문제를 이유로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한 인구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비용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평균 3억6500만 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득 계층별 출산율 분석과 정책적 함의’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태어나는 아이들 열 명 중 아홉 명은 중산층 이상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모두가 아이를 낳지 않기 시작한 시대이지만 가난한 집일수록 아이를 낳는 걸 더 포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지난달 17일부터 26일까지 출산지원금 1억 원을 지원해 준다면 아이를 낳는데 동기부여가 되겠는냐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질문에 대해 분명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가정에서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반응을 보였다.두 번째는 육아휴직과 경력 단절이다.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당연히 함께 고민을 해봐야 하는 문제다. 어쩌면 여성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의 경력 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있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 가능성은 14%나 높고 이를 우려해 출산을 포기하게 되는데 전체 출산율 감소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여성들에게 출산과 양육의 일이 비대칭적으로 과대하게 쏠려있고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없는 노동환경, 남성들의 낮은 가사 참여도 등이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게 되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육아휴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중소기업에서는 주변 눈치를 보느라 지원 정책이 있어도 현실에서는 당당히 쓸 수가 없다. 경북에서는 지난 3월 올 상반기 ‘나의 직장동료 크레딧’ 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을 보면 14곳 만이 지원했다. 이 사업은 직장동료가 휴직자의 일을 더하고 추가 수당을 받는 것인데 여전히 중소기업에서는 금전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쓰려는 수요가 적으며 이런 정책들이 현실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현재 둘째를 임신 중인 프리랜서 장 모(34) 씨는 “주위 친구들도 결혼과 함께 아이를 낳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아이가 있으면 분명 아이가 우선순위가 되고 나의 삶은 거의 포기를 해야 될 때가 많다. 자신의 경력 문제와 도우미를 구하는 것 등 현실에 부딪치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의 존재는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으로서 삶을 창조하고 스스로도 성장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30

봉화군, 베트남 리 왕조 건국기념축제 참가

봉화군 우호대표단은 지난달 21일부터 6일간 국제우호교류 도시 베트남 뜨선시를 방문했다. 상호 교류협력 및 유대강화를 도모하고,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등 민간교류사업 확대를 위해서다.이번 방문은 베트남 리(李)왕조 건국기념축제(음력 3월 14~16일)에 맞춰 뜨선시의 공식 초청으로 성사됐다. 박현국 봉화군수, 김상희 봉화군의회 의장과 관계 공무원, 화산 이씨 봉화군 종친회와 봉화 보부상 마당놀이단 등이 참여했다.뜨선시를 방문해 레 쑤언 러이 당서기장, 황바휘 뜨선시장, 뜨선시 관계자들과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으며, 베트남 문화관광체육부를 방문해 협조를 부탁했다.그리고 박린성 인민위원회 당서기가 봉화군 우호대표단을 찾아와 환대했다. 베트남 뜨선시에서 열린 리(李)왕조 건국기념 축제에는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모였다. 덴도축제 개막식에 초청된 봉화 보부상 마당놀이가 5천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펼쳐졌고, 이는 봉화군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또한, 봉화 우호대표단은 2천여 명이 참여한 수상행렬단과 천도재에 동참해 우호를 다졌다. 수상행렬이 지나는 거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특히, 곳곳에 많은 유치원생이 나와 수상행렬을 지켜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봉화군 우호대표단을 맞아주었고 물과 과일을 나눠주며 환대했다.베트남 뜨선시 딘방방에 있는 덴도사원은 베트남 최초 독립국인 리 왕조 태조의 고향이자 8대 왕의 위패가 모셔진 사원이다. 뜨선시에서는 리 태조의 즉위일인 음력 3월 14일에서 16일까지 매년 덴도축제를 열고 있다.베트남 최초 독립국가인 리 왕조는 9대 216년 동안 통치했고, 리 왕조 개국 이태조는 이공온이며, 우리나라 화산이씨 시조 이용상은 6대왕 이천조의 일곱 번째 아들이다. 1226년 정란으로 왕족들이 살해당하자 이용상이 옹진군 화산면에 피난, 정착해 오늘날 화산 이씨로 불리게 됐다.화산 이씨 13세손인 이장발은 19세의 나이로 임진왜란 의병으로 참전해 문경에서 싸우다 전사했고, 장인이 시신을 거둬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묻었다, 이런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50년 충효당이 건립됐다. 충효당은 베트남 리 왕조와 관련한 국내 유일의 유적지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6호다. 이 일대에는 충효당 외에도 이장발을 기리는 유허비와 산소,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보존돼 있다.봉화군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추앙의 대상인 리 왕조와의 역사적 인연을 연결고리 삼아 ‘K-베트남밸리 조성사업’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번 봉화군 우호대표단 베트남 뜨선시 초청 방문은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의 양 도시간 협력을 강화시켰고, 문화, 예술, 교육,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발한 교류 발판이 됐다. /류중천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30

환성사 겹벚꽃

깊은 산속에 아직 겹벚꽃이 남아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떨어진 꽃잎이 마르기 전에 가려고 이른 아침 경산시 하양읍 하기리 팔공산 기슭에 자리한 환성사로 차를 몰았다. 찾아가다 보니 익숙한 무학로 교회가 왼편에, 오른쪽에 무학고등학교를 끼고 산으로 산으로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안내했다.굽이굽이 몇 굽이 돌아 깊은 골짜기에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나더니, 그 인적마저 끊긴 길 끝에 초파일 연등이 내걸렸다. 아침 햇살이 조심스럽게 산사에 스미고 있었다. 너무 조용한 공간이라 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내려앉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차장 바로 앞에 부도탑 주위로 겹벚꽃이 가득했다. 새소리에 한 잎, 나비의 날갯짓에 또 한 잎 떨어졌다.환성사는 835년(신라 흥덕왕 10)에 왕사 심지(心地)가 창건하였다. 산이 성처럼 절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서 환성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대웅전과 명부전·심검당·수월관·산신각·천태각 등이 남아 있고 부속 암자로 성전암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고려 말 조선 초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며, 보물 제562호로 지정되었다. 수월관은 이 절의 문루인데, 예전 대웅전 앞에 있던 연못에 잠긴 달을 수월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히 일품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1856년(철종 7)에 편찬된 하양현의 읍지 ‘화성지(花城誌)’에 따르면 환성사는 임고서원에 속하였다가, 숙종 때는 하양향교에 속하게 되었다. 입구의 일주문은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기다란 네 개의 돌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맞배지붕을 얹었다. 양산 통도사·부산 범어사·강릉의 낙가사에도 돌기둥 일주문이 있으나, 통도사나 범어사의 일주문보다 그 규모가 크다.산사의 고요를 깨우는 건 뜨문뜨문 들리는 개구리 웃음소리였다. 어디에서 소리를 내나 살피니 연못이 양옆으로 두 개였다. 환성사 연못은 재밌는 이야기를 품었다. 고려 말 환성사에 큰불이 나서 거의 폐사에 이르렀는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절 입구에는 자라처럼 생긴 자라 바위(또는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창건주인 심지는 “이 바위가 있는 한 절이 번창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자라 바위 덕분인지 하루가 다르게 신도가 늘어나면서 번창하였다. 고려 때에는 대선사(大禪師)가 난 것을 기념하여 일주문을 세우고, 대웅전 앞에 커다란 연못을 팠다. 선사는 “연못을 메우면 절이 쇠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승려들은 선사의 유지를 받들어 연못을 잘 돌보았다.그러던 어느 해, 신도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는 것이 귀찮아진 주지가 자라바위의 목을 잘라버리도록 하였다. 그러자 연못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신도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 이를 또 성가시게 여긴 주지의 명령으로 연못을 메우기 시작하자 연못 속에서 금송아지가 한 마리가 날아올라 구슬피 울며 사라졌고, 연못을 다 메우자 절 전체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렸다. 이후 선사들의 예언대로 신도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절 아래쪽에는 비석 3기와 부도 6기로 이루어진 부도밭이 있다. 비석의 내용이나 부도들의 주인은 알 수 없지만 석종형·원구형 등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되는 이 부도밭은 옛날 전성기 환성사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환상적인 분홍빛 꽃잎으로 뒤덮였다. 겹벚꽃이 나무의 가지를 부도탑 위로 늘어뜨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화려하던 불국사 겹벚꽃이 다 지고, 소나무가 송화 가루를 날려 온 동네를 노랗게 물들일 때까지 봄을 서성거리는 환성사의 겹벚꽃을 보려면 아침 일찍 이슬이 마르기 전에 가길 권한다./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30

아름다운 불굴사

경산시 와촌 무악산에 위치한 불굴사는 690년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원효대사는 불굴사를 세우기 전부터 최초의 수도지로 이곳 석굴 홍주암을 찾았다. 이 홍주암을 불굴암 또는 원효암이라도고 부른다. 이 홍주암은 김유신 장군이 통일을 염원하고 기도한 곳이기도 하다. 김유신 장군에게 난승 스님이 삼국통일의 신표인 보검을 주었고, 그 후 김유신은 김춘추(태종 무열왕)와 함께 삼국통일을 이루어냈다고 전해진다.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불굴사는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신선한 공기가 더해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찰이다. 차를 타고 사찰 바로 앞까지 들어갈 수 있으며, 입장료와 주차료가 없어서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사찰 한가운데 위치한 적멸보궁은 본래는 대웅전이 있던 자리였으나, 1988년 인동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봉인하기 위해 건물을 지어올렸다. 내부에는 불상 없이 큰 유리창이 있어 창밖 풍경을 볼 수 있는데, 그 곳에는 진신사리가 모셔진 사리탑이 바로 보인다. 불상 대신 사리탑을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다.적멸보궁 앞쪽에는 불굴사 삼층석탑이 있다. 이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것으로 각부의 비례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오랜 세월에도 상륜부 일부만 훼손되고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195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적멸보궁 옆에 있는 약사보전 내부에는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불굴사석조입불상이 있다. 이는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상이, 불글사 약사불은 족두리를 쓴 여성상이 보여 음양설로 조성되었다고 전해진다.불굴사의 아름다움은 관음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큰 호수와 홍주암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홍주암이 나오는데, 좁은 통로 속 석굴 안에는 양옆에 수문장을 둔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앞으로는 소원을 적은 초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어 마음이 정갈해진다.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는 원효대사와 김유신 장군이 기도하며 마신 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이를 ‘장군수’라고 부른다. 소화불량과 신장염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석굴 위에는 기도를 올릴 수 있는 독성각이 있다. 뒷쪽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음을 탁트이게 한다.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이번 주말 불굴사를 찾아가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기도드렸던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려보는 것은 어떨까?/김소라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25

일흔 넘어 홀로 떠난 중남미 여행

사진작가 임세권은 2013년 안동대 사학과를 퇴직한 후 ‘사진 갤러리 유안사랑’을 개설했다. 10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사진 전시와 교육에 힘썼다. 지난달에는 기존 동부동에 있던 갤러리를 옥정동(태사길53-7)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이전 기념으로 ‘마야와 잉카의 땅’ 사진전을 열었다. 또 전시와 함께 선보인 중남미 여행기 ‘세상의 반대편으로 가다’를 총 2권의 책으로 묶어 1권은 마야 편, 2권은 잉카 편으로 출간했다.5월 25일까지 열리는 ‘마야와 잉카의 땅’ 사진전은 임세권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흔을 넘기면서 홀로 중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결과물을 선보이는 것이지만 중남미를 다녀오고 그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5년 전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까지, 마야 문명과 잉카 문명 답사를 위한 세상의 반대편으로 향했다가 칠레 남쪽 끝 마을 푼타 아레나스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은 것이다. 급히 가족이 칠레로 향했고 산티아고 한국영사관, 현지 교민 등의 도움으로 무사히 안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그간 수술 후유증과 코로나19로 정리가 늦어진 여행기를, 미완성인 채로 완성해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1권 마야 편에는 ‘이름 없는 도시-멕시코시티’를 시작으로 ‘마야 여행의 에필로그-툴룸’까지 320쪽을 채웠고 2권 잉카 편에는 ‘잉카의 관문, 사회적 포용의 도시- 리마’부터 ‘끝나지 않은 여행의 끝-다시 모아이를 꿈꾸며’까지 448쪽으로 방대한 분량을 꽉 채웠다.책의 볼륨은 크지만 ‘목숨 걸고 다녀온 결과물’에는 아름다운 색감의 사진과 꼼꼼한 서사가 가득하다. 특히 ‘끝나지 않은 여행의 끝’에는 생사를 오갔던 긴박한 순간과 후일담에 대한 기록이 시선을 끈다.임세권 작가는 지금도 매일 아침 낙동강을 따라 갤러리가 있는 원도심까지 출퇴근을 한다. 낙동강의 새와 풍경, 사람의 모습을 담고 기록한다. 세상의 반대편으로 갔던 결과물 이후 그는 또 어떤 계획과 도전을 구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안동 시내 중심에 자리를 잡고 앞으로도 사진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백소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25

충무공 이순신 탄신 4월은 축복 받은 달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는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많은 이에게 4월을 잔인한 달로 인식시켰다.가장 잔인한 달 4월의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탄신일이다.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라면 정유재란은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이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서 왜군을 괴멸시키며 7년 전쟁을 끝낸,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후손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함께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구국(救國)영웅으로, 영웅이라는 호칭으로도 부족해 성웅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유일한 위인이다. 세종대왕과 함께 한국사 최고의 위인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 대형 동상이 세워져 있다.포항 출신 사학자 서상문 박사가 국방부 연구원 시절 국방일보에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활쏘기’,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술’을 주제로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충무공이순신 제독은 활을 잘 쏜 명궁이었다. 서서 활을 쏘는 보사(步射)와 말을 타고 쏘는 기사(騎射)에 모두 능해 명중률이 대략 84% 정도였던 그는 무과 전시(殿試)에 급제했다. 공이 활에 능했던 것은 타고난 생득적 감각에다 활쏘기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후천적 획득형질이 가미된 것이다. ‘열녀전(烈女傳)’에서는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화살을 날려선 안 된다고 했는데, 공의 높은 명중률은 고도의 정신통일 및 집중력이 발휘된 결과로 그만큼 마음이 안정돼 있었다는 증거다. 공의 활쏘기는 전투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빛을 발했다. 임진전쟁에서도 여러 해전에서 몸소 함선갑판 위에서 병사들과 같이 활을 쏘았으며 사천해전에선 사부(射夫)들과 함께 활을 쏘다가 일본군 조총에 왼쪽 어깨를 맞기도 했다. 먼 섬에서 포를 쏘는 왜군을 활로 쏘아 목을 맞힐 정도로 적중률이 높아 왜군들이 공의 활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충무공에게 활쏘기는 단순히 무기를 다루거나 체력을 단련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신집중과 마음수양이라는 정신영역에까지 확장돼 있었다.또한, 충무공 이순신은 길흉 양면의 기능을 지닌 술을 군 지휘통솔과 병사의 사기 진작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활용했다. 공은 술 자체를 즐기지 않아, 병든 팔순 노모 걱정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시를 지을 때도 술에 의지하지 않았다. 술을 마실 경우는 상관이나 명나라 장수들을 대접할 때뿐이었다. 병사들에게는 전투 중에는 일절 음주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포상과 사기진작을 위한 단체 회식 때에는 음주를 허여했다. 공에게 술은 평소 엄한 신상필벌로 조성된 부하들의 긴장을 녹여주는 윤활유였다.”(이상 서상문 박사의 칼럼 요약)임진왜란 발발 430여 년이 지났다. 여전히 우리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같은 위인이 필요한 사회를 살고 있다. 깊이 잠든 뿌리를 깨우는 봄비가 잔인하다 했던가. 봄비는 만물의 보약이다. 조선의 봄비 같았던 충무공 이순신이 탄생하신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축복받은 달이다./박귀상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25

아름다운 풍광의 화산마을과 산성

봄비가 자주 내린다. 촉촉이 새순을 적시는 풍경을 보러 길을 나섰다.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달리니 누군가 먼 산에 연두색 붓을 들고 점묘법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하다. 산을 깎아 길을 낸 곳엔 등나무가 한창 꽃을 피워 보라색 폭포가 쏟아지는 형상이다.우리는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영천시의 경계에 자리한 화산으로 향했다. 해발 828m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로면의 산 중에 크기가 가장 큰 산이다. 신녕IC에서 내려서니 화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좁은 길이라 차의 속도를 늦췄다. 오르는 내내 급하게 구불거려 조심조심 운전해야만 한다. 길 바로 옆은 낭떠러지라 아찔하다.하지만 구불거리는 길 덕분에 풍광은 그저 그만이다. 밤새 내린 비가 금방 꺼낸 떡시루에서 김이 나는 것처럼 하얗게 산 위로 기어오르며 능선을 넘어간다. 그 아래 멀리 옹기종기 산밑에 엎드린 동네가 장난감 같다. 정상 가까이 갈수록 산밑 마을엔 벌써 져버린 벚꽃, 개나리가 아직 반쯤 꽃잎을 남겨뒀다.정상에 다다르자 마을이 나타났다. 이렇게 높은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고랭지 채소가 주 농작물인데 비탈의 과수원에는 하얗게 사과꽃이 피었다. 화산마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다. 정부가 주도한 산지 개간 정책으로 180가구가 이주하여 재건한 개간촌이다. 대부분 자기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산 아래에서부터 7.6㎞ 마을까지 길을 만들고, 농토와 집 사이 길을 열었다. 세월이 흐르며 인구가 감소하여 20여 가구로 줄었다가 화산마을의 풍광과 아름다움에 반한 이들이 하나둘씩 이주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60여 가구가 살고 있다.정착민과 귀촌인이 힘을 합쳐 마을 경관 단지와 풍차 전망대를 조성하면서 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풍차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면 빨간 풍차를 배경으로 2010년 준공된 군위댐과 군위호가 한 장면에 나오는 사진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자리한 하늘 전망대에서는 풍차 전망대를 멀리서 볼 수 있다. 화산 정상부 능선에 풍력발전기도 돌아간다. ‘누가 화산에 밭을 구하려 하는가/신선의 근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는데/여보게 구름다리를 나에게 빌려주구려/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못 피리로다’. 서애 유성룡이 지은 시 ‘옥정영원’을 전망대 옆 바위에 새겨놓았다.이제 화산산성을 볼 차례다. 마을에서 옆으로 난 외길을 조금만 가면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울창한 숲과 작은 호수가 보인다. 차를 세우고 100미터를 걸으면 아름다운 반월형의 홍례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숲에 돌로 만든 성문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신비하다. 지방기념물인 화산산성이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1709년(숙종 35) 윤숙이 천연의 요새인 화산에 병영을 건설하고자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하여 홍예문을 짓고 혜휘, 두청 스님에게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기 위한 사찰을 짓게 하였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윤숙의 재산과 승려들의 시주에 의해 시작된 공사는 성을 축조하던 중 심한 흉년과 질병으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윤숙마저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전출되고 20년간 후임자가 없어 공사가 헛되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홍례문과 수구문이 남아 있으며 산성 안에는 옥정영원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지름 5m의 바위구멍에서 솟는 석간수이다.북문 터는 안팎의 아치문을 무사석과 부형 무사석으로 만든 수법과 내·외 겹축의 성벽을 내탁의 방법을 이용하려던 모습이, 수구문 터는 조선 중기 이후 유행한 2층 수구로 축조하려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축성 기법과 공사 순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23

일상의 활력소, 도시 농업의 매력

최근 도시 농업이 인기다. 도시에 풀 내음 향기가 시민들의 지친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도시 농업을 하고자 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봄이면 지인들이 베란다에서 직접 키우는 꽃과 반려 식물들, 마당의 작은 텃밭에서 자라는 푸릇푸릇한 식물들 사진을 보내오기 바쁘다.도시 농업은 도시의 제한적 공간에서 소규모로 농작물을 재배해 생산하는 농업활동이다. 여기에 기후조절, 공동체 문화,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 자원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홈 가드닝(home garderning)과 홈 파밍(home farming)도 도시 농업에 속한다.농림축산식품부의 도시 농업 육성계획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도시 텃밭은 1052㏊, 참여자는 195만 6000명이며 실내 농작물 재배도 꾸준히 증가추세에 있다. 이에 따른 지원센터와 전문인력양성기관 등 교육기관 설치와 2017년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제도 시행 후 전문인력도 9373명을 육성했다. 또한 지속 가능한 도시 환경 조성에 꼭 필요한 도시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4월 11일을 ‘도시 농업의 날’로 지정했다.도시 농업의 매력은 무엇보다 작은 공간에서의 수확과 요리하는 즐거움, 텃밭 관리로 일상의 스트레스 해소를 들 수 있다. 먼저 작은 공간에 어울리는 채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근, 상추, 브로콜리, 고추 같은 채소들은 작은 텃밭에서도 훌륭하게 자랄 수 있는 채소이다. 텃밭 관리는 정기적인 물 주기, 토양 관리, 유기물 사용 등을 포함하고 이러는 사이 자연과 소통을 경험하고 일상에서 벗어난 휴식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텃밭에서 자란 채소를 수확하는 것은 또 다른 큰 성취감과 즐거움을 준다. 직접 키운 채소를 수확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 건강은 물론 자연과의 연결을 깊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도시 농업 커뮤니티 참여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공동체를 활용하는 것으로 도시 농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다른 도시 농업 애호가들과 소통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또 도심에서 탄소중립 실천과 생태환경 보전을 위해 생활권, 건축물 내 공간을 활용해 수요자 맞춤형 텃밭 조성이 가능하고 텃밭 부산물, 커피 찌꺼기 퇴비화 등 자원순환 재배 기술의 실용화, 초미세먼지 저감 식물 발굴 등으로 일상생활 속 도시 농업이 확산될 수 있다.도심 속에서 농작물을 기르는 도시 농업은 포항에서도 시민들의 힐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포항시 농업기술센터는 북구 흥해읍 성곡리의 활력퐝퐝 케어팜 72구획, 남구 대송면 장동리 철강상생 텃밭 64구획 2개소에 136구획, 총 8000㎡의 도시형 케어팜을 운영하고 있다.도시 농업을 하는 직장인 김 모(46) 씨는 “주말에 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내가 직접 기른 채소로 먹을 걸 생각하니 더 건강해진 기분이라 더 좋다”고 말했다.포항에서는 장애인과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도시 텃밭을 이용할 수 있다.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식물을 만지는 걸 보면 어릴 때부터 자연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23

경주에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도자기축제

뿌연 하늘을 닦아내듯 봄비가 내리던 날 간절한 기다림, 설레임, 희망을 가득 담아 ‘바램’을 주제로 ‘22회 경주도자기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는 경주시 주최, 주관 경주도예가협회, 경상북도,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 후원으로 황성공원 실내체육관 광장에서 펼쳐졌다.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다수의 관람객에게 선보일 수 있고 구매자들은 한자리에서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고 비교하며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행사로 매해 개최되고 있다.궂은 날씨에도 많은 내빈들과 회원들이 참석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경주도예가협회는 회원과의 교류, 그리고 협동조합처럼 전시 판매를 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고자 1995년에 결성된 단체다. 경주에는 현재 120여 명의 도자기 작가가 활동 중이다. 그중 협회 회원은 60여 명으로 출발, 현재 50여 공방이 참여하고 있다.이번 축제에는 27개의 도예공방과 9개의 기타공예공방이 참여했다. 공방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보이는 작품들로 공간을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도자기 작품에서 현대적 미와 실용성을 보여주는 작품까지 다양하다.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컵이나 그릇 이외에도 작가의 고유성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어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흙, 불, 물이란 자연과 작가의 마음이 만나 탄생된 작품들은 손님들을 맞느라 저마다 광을 잔뜩 낸 모습이다. 이번 축제에선 기계로 다량 생산하는 기성품이 아닌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은 도자기축제의 큰 장점이다. 다양한 개성은 기본, 재료에 변화를 주어 반전매력을 보이는 공방도 보인다.두툼하게 올린 흙으로 얼핏 무겁게 보이는 다기들이 가볍게 들려진다. 부스를 지키고 있던 작가로부터 재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맥반석이 도자기에도 활용된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자주 사용하는 식기는 손목에 무리 가지 않는 가벼움도 구매요건 중 하나다. 또한 이번 축제에선 ‘만원의 행복’이란 행사도 진행해 참여하는 공방 앞에선 주머니와 마음 모두 가볍게 구매도 가능하다.19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지는 축제의 주요 행사로는 개막식 공연을 비롯해 부대행사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포함돼 있다. 그 중 개막식에 열린 이색적인 패션쇼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그 외에도 청화백자전시관, 흙 밟기, 토우 만들기 체험, 유명작가 발물레 시연, 물레체험 등 가족들과 함께 하기에 좋은 행사가 준비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특히 흙을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은 요즘 아이들에게 흙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 없이 좋을 기회다. 행사장 운영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며 가족, 어린이 도자기 만들기 대회 신청은 당일 오후 1시부터 선착순으로 30팀 접수 가능하다. /박선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23

1박 2일의 합천여행

경남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다양한 공간과 시대적 배경을 지니고 있어 ‘태극기 휘날리며’, ‘암살’, ‘강철비’ ‘덕혜옹주’ 등과 같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세트장으로 유명하다. 본래는 세트장의 목적으로 지어지고 기능했으나 합천군에서 영상테마파크 관광지로 개발하여 합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영화 세트장인만큼 일제강점기부터 힌국전쟁까지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있다. 조선총독부와 서울역, 국민학교 등의 건물들과 작은 상점과 집터가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생생하게 재현되어있다.모노레일을 타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감상하며 올라가면 청와대와 넓은 정원을 볼 수 있다. 청와대는 실제와 최대한 유사하게 지어진 건물이라 안팎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대형 코끼리 미끄럼틀은 국내 최대 규모로 길이가 47m로 길게 이어져있다. 분배온실에는 기암괴석을 축소한 암석을 가운데 두고 다양한 나무들이 있으니 눈이 즐거워진다. 청와대 세트장 옆에는 카페와 함께 숙박시설이 있는데, 여행 온 가족들이 주로 숙박한다. 하룻동안 많은 체험을 즐기고 한옥으로 꾸며놓은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청와대 정원은 전날과 다른 상쾌함을 준다. 아침을 먹고 새로운 볼거리를 위해 차로 약 15분 거리의 장소를 이동했다.합천 8경 중 하나인 황계폭포를 보았다. 주차장에서 500m정도만 걸으면 폭포를 볼 수 있으니, 잠깐의 시간 투자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다. 한참을 폭포를 바라보다 꽃놀이를 위해 이동했다. 약 1시간 가량을 이동하여 생초국제조각공원으로 갔다.생초국제조각공원에는 ‘제5회 산청 생초국제조각공원 꽃잔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다양한 색으로 수놓아진 꽃잔디가 물고기, 하트, 축구공 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꾸며져 있어 마음을 빼앗는다. 산청 생초가 국가대표 축구감독 박항서 감독의 고향이라서 축구공 모양의 꽃잔디와 실제 박항서 감독이 온 듯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그와 함께 사진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마지막으로 동의보감촌으로 갔다. 동의보감촌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을 주제로 한 한방테마공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슴과 반달가슴곰도 볼 수 있고, 다양한 약초와 체험장 한의학박물관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체험은 한방미로공원 체험이었다.‘인생은 미로와 같다’고 적힌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기나 긴 미로가 이어졌다. 이 미로는 동의보감의 내경편에 나오는 신형장부도를 형상화하여 만들어졌다. 신형장부도는 사람의 체내에서 정기신의 흐름과 오장육부의 운행을 그린 개념도이다. 휴일에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즐기며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보는 건 어떨까?/김소라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8

가슴 졸이는 봄날

지난 3월 중순 어느 날, SNS에 서설이 내렸다며 좋은 징조이기를 바란다는 남편의 글이 농장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초봄 날씨에 민감한 농부가 걱정스러운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아직 주말부부로 살고 있기에 청송의 날씨를 모르는 나는, 글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곧바로 전화했다. 아침에 서설은 내렸으나 다행히 오전 중에 다 녹아서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자신도 불안한 마음일 텐데 아내를 안심시키는 농부가 안쓰러웠다.농부의 아내로 날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뭐가 바쁜지, 며칠 챙기지 못했다. 해마다 3, 4월이면 날씨에 민감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날이 조심스럽다. 꽃 필 시기의 기상 상태가 한 해 농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지난해 집중호우와 냉해, 긴 장마로 농사를 망쳐 모든 농가가 피해를 보았다. 우리 낙원농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마다 수확기에 태풍이나 잦은 비로 다 된 열매를 제대로 수확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개화 시기의 이상 기온이나 긴 장마, 자두 수확기인 9월에는 어김없이 태풍과 지루한 비가 찾아온다. 귀농 후 매년 같은 일을 겪으면서 100% 성공적인 수확한 해가 없었다. 그래도 작년과 같이 허무한 피해는 없었다. 예년의 30%도 안 되는 수확에 하늘이 하는 일이라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재해보험에 가입하였기에 안심이 되었다.지난해 집중호우와 냉해로 직격탄을 맞은 사과 농가에 ‘농작물 재해보험’에서 지급된 돈이 전년 대비 두 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농작물 재해보험은 자연재해 등으로 손해를 입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이다.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하는 비용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한다. 가입자가 늘면서 매년 예산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에서는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예산을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잦은 재해가 발생했음에도 농작물재해보험 보험금 지급과 직불금 확대 등으로 농가 소득은 늘어났다는 모 신문의 농업 현장의 현실을 모르는 기사에 은근히 화가 났다.지난가을 냉해 피해와 잦은 비로 인한 착과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 잘 익은 자두를 보면서 위로받으며 수확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 자두를 딸 시기에 태풍이 올라왔다. 연일 거센 바람과 비는 탐스럽게 익은 자두를 거세게 흔들어 무참히 떨어트렸다. 나무에서 썩고, 멀쩡하다 싶으면 꼭지 쪽이 터져있었다. 상품이 되는 열매가 손꼽을 정도였다. 우리는 조심스러워 서로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착과기와 수확기 두 차례 손해사정인이 피해 조사를 나왔다. 예년의 30%도 안 되는 수확에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보상액은 너무나 동떨어진 금액이었다. 손해사정인의 현장 조사는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사에 대해 ‘착과 조사의 표본 축출이 적절했는가?, 일일이 낙과 수를 조사한 것을 제대로 적용했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들이 농민의 피해에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면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싶었다.해마다 재해보험을 꼭 가입했다. 혹시 모를 피해에 피해액의 보전을 기대하면서 매년 넣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있어도 자부담 10% 남짓한 보험료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적은 피해에 보상을 받게 되면 정작 큰 피해에 영향을 미칠까 웬만한 피해는 보험 청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같은 엄청난 재해에 보상액은 턱없이 적었다. 화가 난 남편은 농협 직원의 거듭된 권유에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올해는 재해보험도 넣지 않아 더 걱정이다.조심스러운 4월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매일 날씨를 살핀다. 올가을엔 우리 농장과 전국의 모든 농가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대풍을 이루도록, 하늘이 도와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봄날 마음 놓고 꽃놀이를 즐기고 아기 솜털 같은 신록에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손정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8

왕벚꽃은 우리나라 순수 특산종

봄은 벚꽃의 계절이다. 4월이 시작되면 왕벚꽃은 살랑대는 봄바람에도 하얀 꽃잎을 눈처럼 흩날린다. 꽃비 내리는 그 황홀한 풍경이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하면 봄은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탄성을 자아내는 황홀함의 기간은 잔혹하리만치 짧다. 꽃잎 진자리 붉은 꽃받침 뒤로 연두 잎이 돋아날 때 흩날린 봄을 다시 부여잡은 겹벚꽃이 기다렸다는 듯 바통을 이어받아 화려하게 피기 시작하면 벚꽃축제는 4월 말까지 이어진다. 이렇듯 벚꽃으로 봄을 향유하며 축제를 즐긴 역사는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다. 조선시대까지도 봄날 꽃구경으로는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최고였다. 고전작품에도 봄꽃으로는 쉽게 지는 벚꽃보다 매화 또는 복숭아꽃, 살구꽃 등을 더 선호했으며 진달래꽃은 조선의 풍속인 화전놀이에, 오얏꽃(자두꽃)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데 쓰였다. 벚나무는 나무껍질이 매우 단단하고 결이 아름다워 꽃보다 목재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 목판의 절반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주력 무기인 각궁을 만들 때 벚나무 껍질로 겉면을 감아 마무리를 했다. 벚꽃이 봄꽃 축제의 상징이 된 건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여온 왕벚나무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하면서였다.1901년 동경대 식물학 교수 마쓰무라 진조가 왕벚꽃을 세계 학계에 등재한 학명이 ‘푸르노스 에도엔시스 마쓰무라’로 이름에서 드러나듯 일본의 꽃으로 알려진다. 매년 100만 명이 찾는다는 워싱턴D.C. 포토맥 강변의 국립 벚꽃 축제도 일본이 1912년 제주도 왕벚나무를 자국 꽃이라고 선물하면서 시작되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벚나무가 제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이승만, 서재필 박사가 벚꽃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려 건재했다. 벚꽃 하면 일본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여 국화(國花)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식 일본 국화(國花)는 없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도 국화(菊花)이다.식물학자였던 프랑스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발견한 것은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8년이었다. 그가 당시 세계적인 식물학자였던 독일 베를린 대학 괴테 교수에게 이를 알려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로 학계에 보고된다. 반세기가 지난 1962년 식물학자인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이 우리나라 연구자로서는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확인했지만 2018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 사이에 유전적 뒤섞임이 없다는 것을 밝혀내고서야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임이 증명된다. 야생식물의 유전체 해독과 정보 분석 능력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로써 왕벚꽃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것을 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에서도 일본산 왕벚나무의 야생 원종을 찾아 일본 전역을 뒤졌지만 끝내 자생지를 찾지 못했다.우리가 흔히 보는 왕벚꽃은 우리나라 순수 특산종이며 4월 중순경 불국사를 장식할 겹벚꽃은 일본이 산벚나무를 육종(育種)해 만든 품종이다. 80년대만 해도 벚꽃을 즐기기 위해 진해 장복산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 어디서든 벚꽃을 즐길 수 있다. 왕벚꽃의 짧은 절정기간이 그저 아쉬울 뿐.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라는 무명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벚꽃 잎이 흩날린 건 바람 탓이 아니라 세월 탓이런가. /박귀상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8

울림의 시 한편 품어가는 ‘목월백일장’

황성공원은 지금 연두의 세계다. 굴참나무가 몸통에 물을 올려 가지 끝까지 푸르름을 전하고, 버드나무는 꽃가루를 날려서 숲이 뿌옇다. 목월 시비 앞에는 백일장이 열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이 공기를 채웠다. 오전 10시 백일장을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자 다람쥐도 백일장에 참여하려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왔다. 경주문협 회장님과 어린이 대표가 꽃바구니를 맞잡고 목월 시비 앞에 놓아드렸다. 최상문 회원은 목월 백일장 1회부터 참여했다가 지금은 심사위원이 되었다. 행사에 축사를 담당한 도의원도 어릴 적 선생님과 함께 목월백일장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았었다고 기억을 나누었다. 그때의 추억이 이 자리까지 오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참가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시제는 초등 저학년은 강아지 또는 우산, 고학년은 엄마손과 봄비 중에 선택한다. 중학생은 달력과 사춘기, 고등학생은 보름달과 돌다리, 대학 일반부는 계단과 회오리였다. 원고지를 받아 든 참가자들이 숲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텐트와 글을 쓰려고 앉은뱅이 탁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소풍 나온 것처럼 돗자리를 깔고 두런두런 시제에 대해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낮 12시까지 본부석에 제출해야 하니 모두 마음이 바빠 보였다.사람들을 이렇게 시를 쓰게 만드는 사람은 박목월 시인이다. 얼마 전 그가 생전 써놓았던 미발표 육필 원고 166편을 아들 박동규 교수가 공개했다. 1936년부터 1970년대까지 집필된 시인의 작품이 세상에 처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미발표작이 출간되기까지는 굴곡이 적지 않았다. 박목월 시인의 아내 유익순 여사는 남편이 습작하다 휴지통에 버린 메모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6·25 전쟁 때는 천장 위에 숨겨놨고 이후 장농 밑에, 모기장 밑에 보자기로 싸서 쟁여놨던 작품들”이라고 박동규 교수는 회고했다.누렇게 바랜 페이지마다 박목월 시인 특유의 꼼꼼함이 묻어 나온다. 시어와 행·연을 바꿀 때마다 그는 육필로 다시 썼는데, 토씨 하나만 바꿔도 개작(改作) 과정을 모두 노트에 적어놨다.박 교수는 “어떤 시는 발표하기 싫으셔서 안 내신 게 아닌가 싶어 이번 공개를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미발표작에 더 실험적인 작품도 많다. 한 시인의 생애를 살피는 데 아니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이번 미발표작 공개는 우정권 단국대 교수가 작년 4월 박동규 교수에게 노트 열람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이후 유성호 한양대 교수와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등이 ‘박목월 노트’를 디지털화한 뒤 전수 분석했다.새롭게 발굴된 박목월의 작품들은 전집과 평전 형태로 올해 6월 전에 독자를 다시 찾을 예정이다. 경주시는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의 협조를 얻어 미발표 작품들을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낮 12시에 마감한 작품들을 경주문협 회원들이 나눠 심사했다. 챗GTP에 입력만 하면 글을 써 주는 시절이라 백일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걱정하지만, 팀별로 100명이 넘는 참가자의 작품을 찬찬히 읽고 평가했다. 부분별로 장원을 뽑고 검색했다. 장원, 우수, 장려, 가작을 가려 뽑고 시상식을 했다.지금은 시를 읽지 않아 시가 사라진 시대라 한다. 중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 시 한 편 읽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백일장에 참가한 이들의 머리 위에 시 한 편 얹고 황성공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직 시는 우리 곁에서 작은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6

봉화 오지산골 까치구멍에도 따스한 봄볕이…

봄기운이 절정에 이른 4월. 겨울이 긴 봉화 오지 산골에도 화사한 야생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산 높고 골 깊은 산골에 100여 년 전에 지어진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따스해진 봄날 찾아간 초가집. 옛 주인은 간 곳 없고, 빈집 용마루 까치구멍으로 한줄기 봄 기운 가득한 햇살이 비쳐든다. 봉화는 정자의 고장이요, 20여 군데의 전통마을에는 솟을대문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많은 선비의 고장이다.면적은 서울의 두 배 크기지만 산지 면적이 83%로 쌀을 생산할 수 있는 평지는 그리 많지 않은 산간마을들이 많은 곳이다. 옛날 봉화 땅은 농토가 많은 곳은 양반들의 한옥이 자리를 잡았으나 농사를 짓기 힘든 산골 오지로 갈수록 서민들의 주택은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황목 수안골 서민들의 전통 가옥인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을 찾아가는 길은 봄꽃들이 가득했다. 면 소재지에서 산골길을 6km는 더 들어간다.산세 따라 골을 만든 강물은 굽어 돌아가고 철길은 산이 있으면 굴속으로, 물이 있으면 우회하면서 이어진다.다리 두 개를 지나고 높은 산 아래 언저리마다 군데군데 터를 잡은 산골마을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오지였지만, 지금은 잘 다듬어진 포장도로가 굽이굽이 잘 되어 있어 불편함은 크지 않다.봄과 함께 시원스럽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수줍게 미소 짓는 진달래, 까치구멍집을 찾아가는 목적을 잊을 만큼 봄기운 가득한 산골 오지의 대자연 속에 빠져 들어간다. 황목 수안골 입구에는 이끼 낀 돌담을 둘러친 서낭당과 곧게 자란 전나무, 으름덩굴 등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으며, 100여 미터 오르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07호 도토마리 집이 있다.도토마리는 베를 짜는 베틀의 부속이며 H형으로 생길 널판자로 실을 감는 데 사용하는데 집안 내부가 도토마리처럼 생긴 구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도토마리집의 특징은 집안 내부에 있으며, 부엌을 중심으로 좌측에 안방과 우측으로 건너방앞으로 외양간을 붙였고, 부엌을 가운데에 둔 평면형태가 베틀의 도토마리와 유사하다고 하여 도토마리집이라 부른다.조금 더 오르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08호 까치구멍집이 산기슭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19세기 말에 건축한 기역자형 초가집으로 어간의 두 짝 문을 들어서면 봉당을 사이에 두고, 뒤쪽 중앙에 마루를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있으며, 출입문 맞은편에 작은 방이 있고, 부엌과 도출된 부분에 외양간을 두었다.까치구멍집은 집안에 연기를 빼며 부엌에 빛을 받아들이고, 습도 조절을 할 수 있는 용마루의 양쪽 끝에 구멍을 만들었다.이 구멍이 까치둥지처럼 생겼다고 까치구멍집이라 부른다.분천리 수안골 까치구멍집은 출입문을 잠그면 집안과 바깥이 단절되는 구조로 한 지붕 아래 외양간이 부엌과 터져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위생상 기겁을 할 일이지만 그 당시로 보아 슬기롭게 설계된 집이라 한다.이 집의 초입 좌측에는 돌담으로 두른 뒷간의 모습이 이채롭다. 입구를 제외하고는 동그랗게 돌로 쌓은 모양으로,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들리듯 정답게 다가온다. /류중천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6

으랏차차 ‘신중년 전성시대’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100세라는 장수 시대를 맞고 있다.주민등록상 지난달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는 981만 명으로 내년에는 1천만 명 시대를 앞에 두고 있다. 경북은 100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높은데 그중 포항은 100세 이상 인구수가 가장 많다. (2021년 5월 말 기준) 이들 중에는 고령화로 인한 그늘로 힘들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며 인생 후반기를 즐기려는 고령층도 늘어나고 있다. 여행을 즐기고 자원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나이는 들었지만 젊게 사는, 늙지 않은 노년의 모습을 보여준다.노년의 즐거운 삶을 위해 포항에서는 교복을 입은 어르신들의 조금은 특별한 학교인 신중년 사관학교가 있다. 이곳을 다니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삶의 활력소를 느끼고 만족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사관학교 생도인 박 모 할머니(76)는 “평생 농사일만 하다가 학교를 가니까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거리가 한 시간 넘게 걸려도 힘든지도 모르고 다닌다. 친구와 함께 하는 등굣길은 늘 기다려진다”며 배움의 기쁨을 말했다.경북 칠곡에서는 시 쓰는 할머니는 물론 ‘수니와 칠공주’라는 평균 나이 85세의 할머니 래퍼들이 인기다. 최근에는 폴란드 출신 감독의 다큐까지 제작하게 되었는데 그 시작은 성인문해교실에서의 한글 공부였다.이렇듯 배움은 즐거운 노년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를 위해서 준비도 필요하다.먼저 건강은 활기찬 노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식단관리와 꾸준한 운동, 정기검진 등을 챙겨야 한다. 은퇴 후에는 금융 준비는 물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지역사회, 자원봉사 등 사회적 연결성을 이어나가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새로운 목표나 취미를 갖도록 하는데 여행, 미술. 음악, 글쓰기 등이 도움이 된다. 가족과의 소통으로 추억을 쌓도록 한다.UN에서는 65세 이상을 활동력 있는 청년으로 보고 66~79세 중년, 80세 이후를 노인이라 한다. 100세 이후는 장수 노인으로 달라진 연령 구분을 하고 있다.최근 갈수록 늘어나는 100세 인구를 위한 외부 활동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에서는 이들의 활력있는 삶을 위해 질 좋은 프로그램 개발이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한다.삶이 계속되는 한 누구나 맞게 되는 노년, 은퇴 이후에도 끊임없는 배움으로 인해 삶의 질이 달라지고 이어지는 사회적 활동으로 인해 처음에 상상할 수 없었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활력있는 인생 후반전을 위해 배움이 어디서든 함께하기를 바란다./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6

이름을 불러주면 거기 다른 세상이 있다

시클라멘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저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름을 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이다. 이름을 앎과 모름의 간극은 참으로 크다. 이미지로만 알다가 이름을 알고 나면 그때부터 그 사물과 나는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백과사전을 통한 앎이 아닌 시를 통한 앎이라면 더욱 그러하다.“화분에 붉은 꽃대 두 주가/ 나란히 올라와 서 있다/ 혼례를 올리는/ 신랑 신부 같다/ 신랑은 신부를, 신부는 신랑을/ 아내와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영원히 사랑하겠느뇨?/ 주례목사가 되어 나는 묻고/ 눈먼 신부가 울음을 터뜨렸는지/ 꽃 이파리의/ 뒷등이 흔들렸다/ 키 작은 신랑의 어깨도 흔들렸다// 오늘은 눈이 부시게 좋은 날!/ 부케를 던지고/ 가까운 온천에 신혼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 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 저 캄캄한 꽃들에게도/ 평생 지켜야 할 약속이/ 생겼다” (고영민 ‘시클라멘’ 전문)시를 읽는 순간 내게 ‘시클라멘’은 특별한 꽃이 되었다. 꽃집에서 흔하게 보는 꽃임에도 이름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를 통해 이름을 아는 순간 ‘시클라멘’은 전에 알던 그 시클라멘이 아니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보아오던 평범한 사물이 시인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붉은 꽃 두 송이는 막 혼례를 올리는 신랑 신부가 된 것이다. 평생 함께하겠다는 붉은 약속을 하며 봄바람에 가늘게 몸을 흔드는 꽃송이. 이것이 바로 시의 힘이지 않을까? 무심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결코 보아낼 수 없는 것을 시인이 발견해 준 것이다. 시를 통한 이런 새로운 만남은 수도 없이 많다. 그저 무심코 습관적으로 보아오던 사물과 사건에서 시인은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인을 보이지 않는 것도 보는 존재라고 말한다. 습작생 시절 함께 공부하는 팀원들이랑 수업 마치고 돌아오며 ‘우리가 무당인가 안 보이는 걸 어떻게 보라고 그러지’ 투덜투덜 행복한 투정도 하곤 했었다.이제 꽃집 앞을 지날 때면 시클라멘 꽃송이가 오늘도 약속을 잘 지키고 있나 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나와 시클라멘은 암묵적인 비밀을 간직한 사이가 된 것이다. 작은 꽃을 보아도 독자에게 시큰둥한 일상이 아닌 은밀한 기대를 하게 하는 시의 힘. 소백산 주목에 관한 시를 읽으면 높은 소백산 꼭대기로 달려가고, 백령도 사곶해변 시를 읽으면 출렁이는 파도에 삶의 고통 따위 다 던져버리고 오게 하는 힘. 시공간의 제약 없이 마음을 온 세상으로 확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 시이리라. 시클라멘은 어딘가 또 피어있을 것이고 꽃피는 일처럼 굳은 약속도 꽃잎처럼 붉으리라. /엄다경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1

봄날, 경주를 거닐다

경주는 벚꽃과 함께 봄몸살을 앓는 중이다. 벚꽃으로 좀 알려졌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차와 사람이 엉켜 북새통이다. 그럼에도 꽃바람은 맞고 싶어 차를 몰았다. 왼쪽으로 나서면 벚꽃이 하늘을 뒤덮는 터널이고 오른쪽은 전자만큼은 아니나 잔잔히 오래 눈에 담을 수 있어 즐겨 찾는 코스다. 오른쪽을 택했다.참고로 대구방면에서 경주로 들어올 때 아화리 쪽을 통하면 꽤 오래 벚꽃길을 볼 수 있다. 오늘의 코스는 금척리 고분군에서 박목월 생가, 무열왕릉 벚꽃 가로수 길이다. 봄을 한껏 느낄 찰나의 시간. 바람이 불 때마다 연분홍 꽃잎들은 비처럼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척리 고분군에 도착했다.소문에 빠른 사람들 몇몇이 벌써 나무 아래 자리 잡고 사진 찍기에 한창이다. 잠시 차를 세우고 고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고분 수가 많다 보니 길도 제법 길어졌다. 큰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고목들이 나타났다. 강렬한 인상의 잿빛 고목들은 아직 잎이 나지 않아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인근의 무열왕릉이나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푸른 잔디를 눈에 가득 담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3월 12일, 박목월 시인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의 자택에서 소장 중인 노트 62권과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보관 중인 18권의 노트에서 박 시인의 미발표 육필 시가 다량 발견됐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 중 미발표 시는 총 290편이다. 태어나 20대까지 박 시인이 지냈다는 모량리 생가를 방문했다.금척에서 경주 시내 쪽으로 얼마가지 않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박목월 생가터. 큰 도로에서 제법 들어가니 작은 마을과 함께 생가터 주차장이 보였다. 가는 길엔 복사꽃이 한창이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디딜방앗간, 나그네정, 우물, 목월동상, 시 낭송장, 관리사무실동, 화장실로 이루어져 있다. 동상과 관리사무실 동 앞엔 시인의 시들이 이곳 분위기에 맞게 꾸민 기와에 올려져 있다. 뜰엔 밀싹과 키 낮은 꽃들이 채워져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엔 시인의 자필 원고들과 소품들이 장식되어 있다. 작은 방들은 옛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햇볕 잘 드는 낮에 한쪽 팔을 괴고 누워 문지방 넘어 바깥 풍경을 보는 모습이 상상되었다.사랑채 앞엔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송아지 시가 적혀있다. 읽다보니 절로 음이 따라왔다. 마을을 둘러싼 산엔 푸른 싹을 갓 틔운 나무들 사이로 연분홍 벚꽃나무들이 어우러져 고향의 봄이 연상된다. 주변의 풍경은 절로 시상을 떠올리게 할만치 아름다웠다. 윤사월 속 주인공은 저 산 어느 즈음에 살았을까 올려다보았다. 시 ‘나그네’에서 이름을 땄다는 나그네정은 반질반질하니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그 너머 개울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돌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수선화와 제비꽃이 자리잡고 있다.봄은 벚꽃만의 계절은 아니니. 방문객이 많지 않다 보니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그만이다. 안채 뒤 작약 꽃봉오리가 피어날 쯤 다시 오기로 하고 그곳을 나왔다. 10여 분도 되지 않아 무열왕릉이 나타났다. 해마다 자라는 나무의 키만큼 핑크빛 팝콘들도 꽤 풍성해졌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예년보다 차가 막히지 않는다. 봄바람 나들이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박선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1

아름다운 튤립 이야기

지난 7일 ‘튤립 트래블’이 개최된 대구 이월드 튤립가든에 다녀왔다. 이월드 튤립가든은 2천 평 규모의 넓은 공간에 1천만 송이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튤립들을 모아놓았다. 덕분에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인생사진을 남기기도 했다.많은 사람들이 튤립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곤 한다. 풍차가 돌아가는 언덕 위에 피어난 알록달록 튤립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또한 매년 튤립축제가 열리는 곳과 국화가 튤립인 곳이 네덜란드이기 때문에 원산지가 네덜란드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튤립의 원산지는 네덜란드가 아닌 터키이다.터키는 국민의 99%가 이슬람 신자이다. 이슬람 신자들이 머리에 두르는 터번이 있는데, 이 터번을 ‘튤리반드’라 부른다. 튤리반드의 모양이 튤립과 유사하여 그 이름을 ‘튤립’이라 부르게 되었다.튤립은 씨앗이 없다. 땅 밑 뿌리 부분에 영양분을 보관하는 양파 모양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씨앗을 대신하는 튤립의 구근이다. 구근은 10월에서 12월의 쌀쌀해지는 가을부터 겨울에 껍질을 제거하고 배수가 잘 되는 곳에 심어주어야한다. 배수가 잘 되지 않으면 구근이 썩거나 싹이 나더라도 병들거나 약하게 자라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물을 주는 것도 지나치게 많이 주거나 주지 않아서 습하거나 건조하지 않도록 관리해주어야 한다. 재배하는 곳의 흙 표면이 말랐을 때 물을 흠뻑 주는 것이 가장 좋다.이렇게 자라난 튤립은 한 철 꽃을 피우고 진다. 재배시에 충분한 물과 비료로 관리를 잘 한다면 다음 해에도 예쁜 튤립을 다시 볼 수 있다. 튤립의 뿌리에 새로운 구근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튤립 개화 후 약 40일 동안 구근이 가장 비대해지는 시기라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다. 툴립 잎이 누런 빛을 띄기 시작하면 구근을 수확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된 것이다. 구근에 흠이 나지 않게 잘 파내어 수확해야 한다. 수확한 구근은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 한 달 정도 건조시킨 후, 신문지 등에 싸서 냉장고와 같은 서늘한 곳에 보관하였다가 10월에서 12월 경에 다시 심으면 이듬해에 새 튤립을 볼 수 있다.튤립이 가진 다양한 색깔마다 그 꽃말이 각각 다르다. 빨간 튤립은 사랑의 고백, 노란 튤립은 헛된 사랑 또는 혼자하는 사랑, 하얀 튤립은 추억, 과거의 우정, 실연, 새로운 사랑, 분홍 튤립은 애정과 배려, 주황 튤립은 매혹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에게 튤립을 선물한다면 꽃말을 고려해서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놀랍게도 튤립은 잘린 상태에서도 자라난다. 줄기가 잘린 튤립을 물이 담긴 꽃병에 꽂아 두는 것만으로도 줄기가 물을 먹고 자라난다. 때문에 튤립을 선물 받으면 꽃병에 잘 꽂아 관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아름다운 튤립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대구 이월드로 방문해보는 걸 추천한다. 4월 말까지 튤립 트래블이 열릴 계획이니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소라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11

또 다른 이웃사촌, 외국인 주민

이제 외국인은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 곳곳에서 만나고 있다. 그 모습 또한 낯설지가 않다. 유명 관광지는 물론이고 TV프로그램에서도 한국의 음식과 문화에 대해 유창한 한국말로 소개하는 외국인의 모습이 익숙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이웃사촌이 되고 있다.점점 유입되고 있는 국내 외국인 주민은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2022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 발표에 따르면 역대 최대인 225만8천248명으로 나타났다. 결혼이민자로 늘어나던 외국인은 지금은 유학생들이 그 수를 넘어서고 있으며 그중 경북은 경주와 경산, 포항에서는 1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산업현장이나 거리 곳곳에서도 쉽게 마주치고 있어 그 수치를 실감하고 있다. 여기서 외국인 주민이란 국내에 거주한 지 90일을 초과한 외국인·귀화자와 그 자녀를 말한다.이처럼 국내 거주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고 외국인을 고용하고자 하는 산업현장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농촌에서는 농번기를 앞두고 일손 확보가 어려워 애를 먹는데 외국인 인력을 확대 요구하고 있으며 알바 사이트에서도 외국인 환영이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지인의 음식점에서는 중국인 부부를 수년 전부터 고용하고 있고 또 다른 사장님은 젊은 베트남 출신 외국인을 요리사로 고용해 자식처럼 여기며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 나간 빈자리를 이들이 채우고 있다. 자주 이직하지 않아서 좋다”고 반기며 말한다. 또 경주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다문화 학생을 비롯해 외국인 학생 비율이 50%가 넘는다”고 말했다.앞으로도 외국인 주민은 계속 늘어날 예정인데 이들을 이웃사촌으로 품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도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먼저, 외국인 주민들의 정착을 위한 언어와 문화는 물론 그들을 위한 개방된 인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엔 긍정적인 것만 있지 않아서다. 그들로 인해 혹시라도 우리 삶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런 시선으로 인해 외국인들이 체감하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차별과 인권 침해를 겪는 등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아무래도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에서 오는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가난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돈 벌러 왔다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 여기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외국인과 거주하는 내국인과의 마찰도 자연스레 발생하면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민원도 제기되고 있다. 경북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어와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교육을 실시하고 외국인이 많은 사업장에서는 차별방지교육 등. 이주민 2세를 위해 자녀 맞춤형 돌봄을 통해 이들이 한국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려고 한다.일손 부족이나 지방소멸 등의 이유로 꾸준히 외국인 유입은 자연스러워지는데 그들 중 일부는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젠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소중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