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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인 ‘금강유람가’

일제시대 금강산을 여행하고 ‘금강유람가’를 쓴 장일상 선생의 손자 장세민씨(칠곡군 거주)를 만나 ‘금강유람가’의 전승 내력과 내용을 들어 보았다. ‘금강유람가’는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한문의 진본이 보관 중이다. ‘금강유람가’는 담재 장일상 선생(1897-1963)이 1930년 30대 나이로 금강산을 둘러보고 적은 기행문이다. 본래는 한문으로 글을 썼으나 부모님이 볼 수 있게 한글로도 작성했다고 한다. 그는 “진서 한불 꾸려놓고 언문으로 가사지어 부모님께 드린다”고 별도 주석을 붙였다. 효심을 느끼게 한 대목이라 하겠다. 장 선생은 1919년 파리장서운동 때 독립청원서 초안을 작성하는 등 독립운동을 한 장석영 선생의 손자다. 손자 장세민씨에 의하면 집안에 언문으로 필사한 ‘금강유람가’가 전해져 오는데, 조부의 형수인 풍양 조씨와 학성 이씨, 맏며느리 여강 이씨 등이 필사했고, 현재 본인은 맏며느리 여강 이씨가 필사한 것을 보관 중이라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장일상 선생은 1930년 음력 6월 15일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친구들과 칠곡 약목을 출발하여 석달 간의 금강산을 유람했다. 이후 경원선을 타고 철원을 거쳐 서울로 돌아와 총독부 건물과 동물원으로 변한 창덕궁을 둘러보고 “주권 잃은 백성의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내용 중에 금강산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석벽에 이름을 남기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당시만 해도 금강산 구경이 쉽지 않은 여행길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또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말 방언이 많이 수록돼 있다는 것이다. 당시 칠곡을 중심으로 영남지역 방언을 연구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돌뿔딱’(돌뿌리) 우케덕석(벼를 말리는 멍석), 산만당이(산꼭대기), 까끔끼다(팔짱끼다), 틔들다(끼어들다), 홑바락이(홑옷바람) 십전구도(엎어지고 자빠지며), 수괴지심(부끄러움), 모력(힘을 다해), 괘영하다(영정을 걸다), 소두방(솥뚜껑) 등의 표현이다. 장세연씨는 내방가사 작가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내방가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지역 목록을 넘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3-30

문화재 가치로서 최치원 둔세시

현재 가야산 홍류동 계곡 농산정 건너편 바위에는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의 둔세시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때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선비들이 그의 글을 보러 찾아왔다고 소문난 시다.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란 제목의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돌 사이 흐르는 세찬 물에 온 산에 울리니/ 곁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 분간하기 어려워라/ 옳으니 그르니 시비소리 귀에 들릴까 늘 두려웠으나/흐르는 물로 온 산을 에워쌌다네” 최치원이 조정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가야산으로 은퇴한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평화로운 심경을 노래한 시다. 조선시대 한강 정구(1543-1620)가 쓴‘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는 “최 고운(崔孤雲)의 시 한 수가 폭포 곁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장마철이면 물이 불어나 소용돌이치며 바위를 깎아 내는 바람에 지금은 더 이상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1725년 정식이 쓴 ‘가야산록(伽耶山錄)’에는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승려가 “돌에 최치원의 친필이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글자가 마모되었다. 그래서 그가 이곳에 옮겨와 다시 새긴 것”이라 했다. 선비들의 유람록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최치원의 시는 처음 홍류동 계곡 바위에 새겨져 있던 것이 오랜 장마와 폭우로 글씨 대부분이 마모된 것을 우암 송시열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농산정 맞은편 바위에다 자신의 글씨로 다시 새겨 넣은 것이다. 최치원은 신라시대에 살았던 학자이자 문장가이며 사상가다. 말년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와 해인사와 관련한 많은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해인사와 최치원의 인연은 해인사에 친형인 현준스님이 있었던 것과 불교 관련 책들을 그가 많이 썼던 것 때문이다. 가야산에 은거하며 쓴 최고의 작품으로 ‘법장화상전’이 있으며, 해인사 창건과 중창에 힘쓴 스님들의 기록인 ‘순응화상찬’, ‘이정화상찬’ 등 수도 없이 많은 최치원의 기록이 남아 있다. 최치원과 가야산의 인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계곡 바위에는 시대를 떠나 많은 조정의 인물들이 찾아와 크고 작은 바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새긴 석문을 살펴보면 당시 조정 인물의 반은 홍류동 계곡에 다녀갔다고 해도 거짓이 아닐 듯하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에는 그의 은둔 생활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면서 친형인 현준 스님과 도우를 맺고 한가히 은거하다 노년을 마쳤다.” 가야산과 해인사는 최치원과 뗄 수 없는 인연의 장소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석벽은 홍류동 계곡의 노상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다. 바위에 새긴 글씨는 풍랑으로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최치원 둔세시의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를 잘 살펴 지금이라도 이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절차를 밟았으면 좋겠다. 문화재의 훼손도 막고 후손으로서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두 시민기자

2025-03-30

구구삼삼 행복대학

“구구삼삼을 아세요? 인생은 60부터입니다.” 구구삼삼(9933)은 30살의 인지로 3번을 산다는 개념으로 100세 시대에 노년기를 보다 활기차게 살아가자는 뜻으로 붙여진 조어다. 대구 서구 비원노인복지관(관장 권덕환)에서는 지난 3월 14일 비원노인복지관 강당에서 9933 행복대학 4기 입학식 및 제3기 졸업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장에는 류한국 서구청장, 정영수 서구의회의장,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지역기관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늦깍이 공부를 하는 노인들의 학습 의욕을 격려했다. 9933 행복대학은 노년기를 맞은 어르신을 대상으로 각종 강연과 취미활동, 여행, 문화 체험 등을 통한 수업을 하고 있다. 특히 노년기에 빠지기 쉬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노년기 학생들 간 상호교류로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 배움을 통해 두뇌를 자극해 치매 예방 등 건강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이 과정은 2022년 구구삼삼 행복대학이 처음 문을 연후 올해로 3년째를 맞고 있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9933 행복대학을 통해 젊고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이 너무 좋고 늘 건강하길 기원하고 졸업과 입학을 축하한다”고 축사를 했다. 행복대학 졸업생 박구정 씨는 “2년 동안 행복대학을 다니면서 정말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다른 졸업생 한성주 씨는 “봉사활동과 지역행사 참여 등을 통해 노년기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발표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3-30

꽃피는 봄날의 모꼬지 행사

톡 톡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춘삼월. 옆집 담장 넘어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온 동네를 그윽한 향으로 채우는가 싶더니 벌써 4월의 벚꽃축제 소식이 여기저기서 난무하다. 여자들의 바깥출입이 쉽지 않던 시절에도 봄이 오면 진달래 꽃잎 따다 찹쌀전에 곱게 얹어 화전의 풍미를 음미하며 봄을 즐겼다. 화사한 봄꽃 소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모꼬지 행사를 부추긴다. ‘모꼬지’는 순 우리말이다.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뜻한다. 모내기의 다른 표현인 ‘모 꽂이’가 ‘모꼬지’로 변모했다는 것이 민간어원설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일인 농사를 시작하는 봄철이면 품앗이가 생활이던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볍씨로 싹을 틔워 둔 모를 쪄서 두레질한 논에 옮겨 심었던 모내기가 모 꽂이라는 설이다. 모꼬지는‘MT(Membership Training)’를 대신해 쓰기도 한다. 하지만 모꼬지는 사사로운 모임을 뜻하고 MT는 공식적인 수련모임을 뜻한다 해서 다소 의미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꼬지로 대신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봄날의 많은 모꼬지 행사 중 화수회(花樹會)라는 것이 있다.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이다. 종친회와 유사한 친족 모임이지만 본관이 달라도 성이 같으면 함께 한다. 산업화에 따라 고향을 떠난 이들이 타향에서 만난 같은 성을 가진 친족들을 집안사람들이라는 유대로 덕담을 나누고 조상에 대한 은덕을 기리며 뿌리를 알아가는 소중한 모꼬지인 것이다. 화수회 개념의 집안 모꼬지 행사도 있다. 1년에 한 번, 꽃피는 3월에 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집안의 삼촌, 사촌, 오촌, 육촌이 고향에 모여 먼저가신 선조를 기리고 촌수의 개념도 알리며 친족끼리 친목을 다진다. 그러나 화수회나 집안 모꼬지 행사는 기성세대들에 한하는 경향이 있고, 젊은 친구들의 참석 유도가 쉽지 않다. 집안모임이나 제사에 대한 개념이 예전과 사뭇 다른데다 이미 우리나라 법은 조건이 합당하면 친모 성(姓)으로 성본 변경이 가능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에는 가문대대로 잘 정리되어 내려오는 족보(族譜)가 있어 자신의 혈통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족보는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 집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서양학자는 이를 두고 국가·사회·가정의 질서를 잡아주고 자손을 도덕적으로 바른길로 인도하는 족보의 기능을 높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족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견해 차이가 있어 일부는 기득권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봄꽃들의 향연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한다. 진달래 꽃잎 따다 화전을 부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상춘객이 되어 이 봄을 즐긴다. 달라진 세월 속에서 가까운 사촌끼리도 서먹서먹한 지금, 춘삼월 꽃 필 때의 친족 모꼬지행사가 계속 대(代)를 이을지는 모를 일이다.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던 퇴계 이황은 ‘시류를 따르라’ 했다. 지금은 AI 시대. 봄날 집안 모꼬지 행사를 다녀와 500여 년 전 다른 시대를 살다간 퇴계 선생의 이 말을 깊이 되새겨 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3-27

마음이 아플 때는 詩라는 약을 복용하라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날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 막막한 그런 날 말이다. 이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내팽개쳐진 것 같은 절망이 밀려온다. 얼마 전 그런 일을 겪었다. 우주의 미아가 된 듯 누구 하나 손잡아 줄 이가 없어 보였다. 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친정 식구들은 모두 멀리서 제각각 살기 바쁘다. 허물없이 찾아갈 친구도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 쓸쓸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또각또각 내 구두 소리만이 밤거리에 울렸다. 이렇게 답답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걸으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꾸 부정적으로 빠져드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데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함을 깨달았다. 문병란 시인의 시 ‘희망가’를 한 줄씩 암송했다. “얼음장 밑에서도 / 고기는 헤엄을 치고 / 눈보라 속에서도 /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 절망 속에서도 /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 보리는 뿌리를 뻗고 / 마늘은 빙점에서도 /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 고통은 행복의 스승 /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 인생항로 / 파도는 높고 /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 한 고비 지나면 /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문병란 시 ‘희망가’ 전문 시인이 IMF 시절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쓴 시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어떤 어려움 앞에서 다시는 희망이 없을 것처럼 절망하고는 한다. 그래서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 어두운 감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감정에 깊이 몰입되어 자꾸 절망 쪽으로 빠졌었다.‘희망가’를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읊조리다 보니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씩 희석되었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시낭송이 주는 치유 효과를 새삼 느꼈다. 시가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짐도 절실히 느꼈다. 사람은 우울하면 말을 하기 싫어진다. 그럴 때 일부러라도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시를 낭송해 보기 바란다. 사람의 말소리는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어서 긍정적이고 좋은 문장을 말하면 그 소리에 스스로 용기를 얻게 된다. 자꾸 반복해서 소리를 내면 어느 사이엔가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온갖 생각으로 복잡하고 괴로울 때면 다 덮어두고 시를 암송해 보길 권한다. 입 속으로 말고 꼭 소리를 내서 시를 읽어보기 바란다. 마음이 아플 때 시만큼 큰 치유의 약도 없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3-27

불국사 목련

찬바람 불던 계절에도 관음전에 오르면 습관처럼 목련나무를 쳐다봤다. 언제쯤 피려나. 이번엔 때를 놓치지 않겠다 벼르고 있었다. 봄 강아지 꼬리 같은 보송한 모습을 한 꽃봉오리는 겨우 내내, 그리고 완연한 봄이 임박했을 때도 꿈적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를 등교 시킨 후 불국사로 향했다. 평일 오전이라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다. 오늘은 대규모 단체 관광팀도 보이지 않는다. 달라진 날씨 탓인지 겹벚꽃이 벌써 꽃을 틔울 태세다. 철을 기다리느라 애써 붙잡고 있는 봉오리 사이로 진분홍 꽃잎이 제법 삐져나와 있다. 늘 조금 긴장하며 들어서는 사천왕문을 지나자 성급한 매화는 벌써 꽃잎을 떨구고 있다. 대웅전으로 올라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목적지로 향했다. 가파른 낙가교가 언제나 부담스러운 관음전이다. 관음전은 불국사 내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조선 초기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수고스러움은 뒤에 만날 관음전 뒷마당의 매력과 비교할 수 없는 까닭에 열심히 오른다. 계단을 다 오르자 새하얀 목련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께 먼저 예를 표하는 것이 맞다 싶어 처마 아래에 섰다. 합장하며 올려다본 관음보살상 얼굴에 미소가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그날그날 찾아간 마음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인사를 마친 후 뒷마당으로 넘어갔다. 햇볕에 바싹 말라 하얘져 버린 모래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위로 드려진 기와 그림자가 선명하게 내려 앉아있다. 목련 나무가 있는 곳엔 이미 관광객 몇과 커다란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뒷 마당을 구경하며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경내에서도 조용한 편인데다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는 까닭에 조용함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멀리서 들려오는 염불 소리와 새 소리,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보통 10시쯤이면 염불이 시작된다. 사바세계, 극락세계에서 중생들의 고뇌를 해소해 주는 대자대비 보살로 알려진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공간이어서일까.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시 후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 목련 나무 앞에 섰다. 짙은 무채색 기와 담장 옆에 자리 잡은 하얀 꽃들이 파란 하늘을 만나 더 환해 보인다. 세월과 자연이 만나 만든 색들은 조금의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합장하듯 모아진 덜 여문 꽃봉오리는 좀 더 노란 빛을 완전히 펼쳐진 꽃잎들은 더 하얗게 조금씩 다른 얼굴들이다. 이쪽저쪽 아쉬울 것 없이 한참을 들여다 보고 나서야 마당을 떠났다. 가장 아래로 내려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입구에 있는 매점에 들러 습관처럼 콘아이스크림을 샀다. 따뜻한 날만큼 부드럽고 달콤하다. 봄은 봄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3-27

봉화사람 이상섭의 ‘더불어 사는 삶’

3월이지만 봉화 산골은 잔설이 남아있고 아직 바람이 차갑다. 자식들은 도시로 떠나보내고 어른들만 덩그러니 남은 농촌 마을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봉화군엔 마을을 돌아다니며 칼갈이 봉사와 수도, 보일러 수리 등 손길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이상섭(65)씨가 있다. 몇 년째 봉화 지역 마을들을 방문해 어르신들을 돕는 봉사활동 하고 있으며, 올겨울에도 30여 마을을 다니며 재능나눔 봉사를 했다. 그리고 봉화군 춘양면 20개의 마을에 보일러, 수도, 변기 등의 무상수리 쿠폰을 배부해 소외계층이나 손길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상섭 씨는 봉화군 소천면 임기 산골에서 태어나 춘양면 도심리에서 살고 있다. 어려운 산골생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어르신들의 고충을 알고 있기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신의 기술을 활용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 중이다. 추운 겨울에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나면 20~30리 떨어진 읍내에서 수리기사가 바로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고장 같은 경우는 아예 방문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르신들은 이런 경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고, 오래된 주택에는 단열이 부실하고 외풍이 세서 추위에 떨어야 한다. 이런 산골생활을 잘 알고 있는 이상섭 씨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달려가 봉사를 하고 있다. 어려운 노인이나 취약계층에게 어려운 사정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 이 씨는 춘양면사무소를 찾아가 20개 마을 이장들에게 ‘무상수리 쿠폰’ 배부를 부탁한다. 수리 또는 교환을 해야 할 때는 이 씨의 사비를 들여 연탄보일러 등을 새 보일러로 교체해주기도 한다. 어느 마을에선 보일러 순환모터를 교체 수리하는 등 춘양면 마을 곳곳을 찾아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1인 가구 증가로 지역사회의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소통 부재로 농촌 노인세대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전통적으로 농촌 마을은 힘든 작업을 같이 하고, 지역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돕고 소통하며 미풍양속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농촌마을 공동체가 예전과 같지 않다. 독거노인들은 무기력과 외로움을 겪는다. 이상섭 씨는 몇 년 전 큰 사고로 수술을 했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나 새롭게 태어난 삶이라 생각하고 손길이 필요한 곳에 언제든 달려갈 것이라고 한다. 이씨 같은 사람이 있어 외롭게 살아가는 농촌 어르신들이 위로와 힘을 얻고 있다. 지역사회에 퍼지는 이런 선한 영향력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이상섭 씨의 사연이 산골 마을에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5-03-25

콩국의 계절이다

해가 지자 봄바람이 제법 차다. 이런 날에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월정교의 야경을 보다가 경주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따뜻한 음식을 추천해달라 했다. 오래된 맛집이라며 콩국을 먹어보라고 했다. 콩국수? 라고 되물으니 콩국이라고 고쳐 말했다. 일단 맛을 봐야 안다며 위치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른 저녁 시간이라 그런가, 주차장이 한산해 맛집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메뉴를 보니 직접 만든 순두부찌개도 있어서 낯선 콩국은 놔두고 익숙한 찌개를 시켰다. 옆 테이블에 외국 손님과 뒤에 앉은 손님은 콩국과 꽈배기가 함께 나오는 세트 메뉴를 시켰다. 그 맛이 궁금했지만 남편이 여름에 와서 먹자고 해 말았다. 콩국은 따뜻한 콩물에 찹쌀과 밀가루 튀김을 잘라 넣고 콩가루와 달걀노른자를 풀어 먹는 대구광역시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이다. 대구 콩국은 1960년대 대구에 정착한 화교들이 만들어 팔던 중국 음식에서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중국의 토우장(豆醬)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지만 대구식 콩국이 훨씬 진하고 고소할 뿐만 아니라 찹쌀 튀김과 밀가루 튀김 두 종류를 같이 사용하여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을 튀겨 낸 중국의 요우티아오와는 차별화된다. 대구 콩국은 포장마차와 24시간 영업을 하는 콩국 가게가 많았던 198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택시 기사와 경찰 등의 야간 근무자와 술꾼들에게 인기 야식이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아이는 물론 학생 등 남녀노소 누구든 좋아하는 음식이다. 설탕이나 소금을 식성에 맞게 첨가하여 먹는다. 콩국을 판매하는 대부분 식당에서 양배추와 달걀을 구운 토스트를 같이 판매하고 있어 한 끼 식사나 해장국으로도 손색이 없다. 아이들 식성을 고려해 돈가스를 곁들인 곳도 있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콩을 깨끗이 씻은 후 하루 정도 불려 삶은 다음 걸쭉하게 갈아 콩국을 만든다. 콩물에 콩가루, 달걀노른자, 땅콩, 들깨, 참깨를 넣는다. 찹쌀과 밀가루는 반죽하여 숙성시킨 후 길게 튀긴다. 튀김을 잘라 콩물에 넣어 준다. 콩물만 있을 때보다 꽈배기가 동동 뜬 모양이 훨씬 식욕을 자극한다. 1980년대 문을 연 제일콩국을 비롯하여 대구 지역 곳곳에 콩국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특히 대구도시철도 3호선 명덕역 주변에 콩국 전문점 여럿이 성업 중이다. 다른 지역의 콩국이 차게 먹는 냉국이라면 대구 콩국은 겨울철에 생각나는 따뜻한 음식이다.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대구 사람들의 식성을 잘 반영한 현대에 생긴 향토 음식이다. 부산 등 영남지방에서 주로 알려져 있다가 TV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포항 오천시장에서는 우뭇가사리 묵을 넣어서 우뭇가사리 냉콩국으로 판다. 더운 날 시장에 가서 몇 병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꺼내 마시면 속이 든든하다. 물에 불린 콩을 삶아서 맷돌 또는 믹서기로 간 다음, 소금으로 간은 맞춘다. 레시피에 따라 국수를 넣어 콩국수로 먹기도 하고, 우무를 말아 우뭇국으로 먹기도 한다. 대구에 사는 지인이 주말에 콩국을 먹었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 우연히 맛을 본 후 빠져버렸다고 했다. 소울푸드라며 다른 지역에 가서도 맛집을 찾아내 친구와 방문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에게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벽에 붙은 집이다. 포항에도 콩국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고 해 검색하니 같은 분점이 용흥동에 성업 중이었다. 꽈배기가 헤엄치는 콩물을 보니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서리태 두유라도 꺼내 따라 해 봐야겠다. 남편에게 꽈배기도 사 오라 주문을 넣는다. 오늘 저녁은 뜨끈하고 달달한 콩국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3-25

나른한 봄날 포항초로 깨우세요

사방에서 봄이 쏟아진다. 휴대폰 속 지인들의 사진도 앞다투어 봄소식을 전하느라 손길이 바쁘다. 바야흐로 꽃샘추위가 물러나 날씨가 따뜻해지고 자연이 새롭게 살아나는 때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불청객처럼 찾아온 환절기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알레르기, 감기로 인해 건강에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제철 음식이 최고다. 봄철 나른한 입맛을 깨우고 에너지를 찾아주는 제철 음식 중 슈퍼 에너지라 불리는 ‘시금치’가 있다. 시금치는 비타민을 포함해 엽산, 철분, 루테인, 미네랄 등이 들어있어 모두가 반기는 음식이다. 포항에도 특별한 시금치가 있는데 포항의 바닷바람을 머금고 자란 이 시금치를 ‘포항초’라 부른다. 2015년 1월에는 정부에서 보증하는 지리적표시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포항초’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디에서 재배되는 시금치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포항의 호미곶, 곡강을 비롯해 청림동, 연일읍, 동해읍 등에서 출하된다. 일 년 내내 재배할 수 있는 일반 시금치와 달리 겨울에만 재배한다. 또 포항의 바닷가에서 재배되어 풍부한 햇빛과 적당한 염분을 머금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바람의 영향으로 길게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퍼져 자란 일반 시금치보다는 길이가 짧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뿌리부터 줄기와 잎까지 영양분이 고르게 스며있어 일반 시금치보다 당도가 높다. 피로 회복과 감기 예방, 콜레스테롤 감소의 효능이 있어 봄철 입맛을 돋우고 활력을 되찾는데 제격이다. 수확 후에도 잎이 쉽게 시들지 않아 저장성이 뛰어나고 신선도를 유지하기도 쉬워 보관과 유통하기에도 어렵지 않다. 외식업에서도 포항초 시금치는 인기다. 최근에 포항초가 들어간 닭강정이 인기를 끌기도 하고 함박스테이크와 파스타에 포항초를 넣어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한다. 영양사들도 꼭 챙겨 먹는다는 건강과 맛을 동시에 잡는 슈퍼푸드 시금치, 가정에서도 ‘포항초’ 시금치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다양하다.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데 살짝 데쳐 나물로 먹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국이나 찌개에 넣어 먹기도 하고 부침개나 쌈밥으로 즐기면 더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포항초로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 두 가지다. △포항초 무침 재료: 포항초 100g, 참기름 1/2큰술, 소금 1/2작은술, 설탕 1/2작은술, 간장 1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고춧가루와 통깨 약간 1. 포항초를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30초~1분가량 데쳐 찬물에 헹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짧은 시간에 데쳐야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 2. 볼에 잘라 놓은 포항초를 담고 참기름, 다진 마늘, 간장, 고춧가루, 설탕을 넣고 버무린다. 3. 통깨와 참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된장으로 무쳐도 맛있다. △포항초 계란볶음 재료: 시금치 1/2단, 계란 5개, 소금 1/3T, 설탕 1/4T, 식용유 2큰술, 대파 1. 시금치를 손질해 깨끗이 씻어 적당한 길이로 쓴다. 2. 볼에 달걀 5개를 넣고 소금을 넣어 간을 하고 설탕으로 계란 비린내를 잡는다. 3. 달군 팬에 식용유를 붓고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다. 익으면 접시에 담는다. 4. 식용유에 잘게 썰어놓은 대파와 소금으로 파기름을 내고 시금치를 넣는다. 5. 살짝 숨이 죽으면 계란을 넣고 잘 섞어 빠르게 시금치를 볶는다. 6.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넣는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3-25

왜 우리는 ‘전선시첩’을 읽어야 하는가

올해는 6·25전쟁 발발 75년 되는 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현재 81억 인구가 함께 사는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분단국의 슬픈 역사를 자각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문학이 당대 인간 삶의 투영이라 한다면 전쟁 중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35년간의 치욕적인 일제강점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은 또한번 우리민족에게 깊은 상처를 안긴 전쟁이었다. 개인도 나라도 힘이 없으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힘을 길러야 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동족상잔의 전쟁의 아픔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한국전쟁 중 전선이 무너지면서 문인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문단의 주요 작가들이 대구로 몰려오면서부터다. 그들은 ‘문총구국대’를 결성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 6·25전쟁 참전 문인들은 전선에서 체험한 것을 시로 남겨 전쟁중인 군인은 물론 국민의 사기 진작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기록을 남긴 것이 바로 전쟁 체험시 모음인 ‘전선시첩’이다. ‘전쟁문학’을 우리 문학사에서 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 체험시를 담은 ‘전선시첩’도 마땅히 우리가 챙겨야 할 소중한 시적 자료다. 전쟁 중에 쓴 시적 기록을 폐허가 된 당시는 물론이고 이 후 75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온전히 보존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기록물 자체가 매우 한정적이어서 자료의 수집과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전선시첩’은 제3집까지 발간이 되었고, 참여 시인은 37명이며 작품은 78편에 이른다. 모윤숙의 개별 작품을 포함하면 38명의 79편이 된다. 필자는 전체를 일독하고 제1집과 제2집의 ‘서문’ 등을 살펴서 해설을 쓰면서 지금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서른여덟 분 모두를 애국시인으로 명명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애국지사’‘의사’나 ‘민족시인’이란 칭호를 붙인 기록은 봤지만 ‘애국시인’이란 공식적 기록물은 접하지 못해 봤다.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하거나 전쟁 중의 체험을 시로 써서 국가수호와 국군의 사기 진작에 기여한 것은 늦었지만 그 공로를 인정받는 것은 마땅 한 것이다.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애국적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들의 피끓는 애국적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또 문학사적 의의를 짚어보는 심포지엄이라도 열어 그들의 애국심을 느껴보자. 우리 기성세대는 1950년대 한국전쟁을 치를 때 그야말로 굶주림에 허덕이며, 연명해 온 세대들이다. 당시의 교육 수준은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시인들은 상대적 지식층으로, 소수 정예의 작가들이었고 그들의 시대적 작가정신은 분투적이었다. 전쟁발발 75년을 맞은 오늘, 그들의 작품을 일독하기를 감히 권한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03-23

노년기 취미생활로 난 가꾸기어떠세요

난초 재배를 취미생활로 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난초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한데다, 취미생활로서는 품격도 있고 자기 수양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시간 선용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으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취미생활이라고 할 만하다. 40여 년 동안 난초를 애지중지하며 가꾸어 온 애호가 이영수 씨(80)의 집 아파트 베란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난초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줄잡아 수백 종은 될 것 같았다. -옛 선비들은 키우던 난이 꽃을 피우면 친구들을 불러서 난향을 같이 맡으며 시를 짓고 놀았다고 하던데요. 난초 키우기에 입문한 동기는 무엇인가. △난과의 만남은 40여 년 전 초여름 어느 화원을 지나다 맑고 깨끗한 동양란 꽃을 보고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인격이 청렴결백한 귀인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자주 대하다보면 잎이 보여주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유연함에 매혹을 느끼게 되었다. 지인으로부터 춘란(春蘭) 화분 하나를 선물로 받고 난(蘭)과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어떤 종류 난을 얼마쯤 소유하고 있는지. △소심·적화·왕화·주금화 등 300여 점의 한국 춘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소장하려면 돈도 많이 들어가겠다. △처음 입문할 때 주말에는 전라도 어느 산속 계곡에서 난을 찾아 헤매며 난이 한두 촉 늘어나는 재미에 빠져 힘든 줄 모르게 난을 찾아다녔다. 여름에는 잎이 그려내는 조형미와 가을에는 물 줄 때마다 포토를 뚫고 올라오는 꽃망울을 보면서 환희의 기쁨을 느꼈다. 촉이 늘어나고 더러는 구입도 하면서 지금은 300 화분을 소장하게 되었다, -가격대도 만만찮을 것 같다. △한 촉에 몇백 또는 몇십만 원 단위의 난도 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아파트에서 키워도 잘 자라는지? △아파트 베란다 환경은 난초를 기르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빛과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다. 난초는 대부분 밝은 빛을 필요로 하지만, 직사광선은 피해 줘야 좋다. 오전에 부드러운 햇빛이 드는 위치가 이상적이다. 온도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20도에서 28도의 따뜻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물 주기는 어떻게 하나. △물 주기는 난초 관리에서 매우 중요하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뿌리가 썩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난석의 상층부가 마르면 물을 주는 것이 좋다. 특히 물을 줄 때는 저수온의 물을 사용하여야 하며, 미지근한 물이 이상적이다. 이영수 씨는 한국 동양란 연합회 심사위원. 대구 난 연합회 자문위원, 팔공난우회 회장을 역임했다. 전국 난 전시회 심사 위원도 맡았으며 2024년 봄, 가을 전시회에서 특별 대상 대구시장상을 수상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3-23

앞산의 귀룽나무, 대구의 봄을 먼저 알린다

117년만에 폭설을 기록한 뒤 입춘을 지내고도 정월 대보름에 또 많은 눈이 내렸다. 우수를 지나고 포근하다가 또 추운 날씨가 오르락내리락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정월 대보름 폭설에 이어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한라산과 설악산 등 강원도에는 3월 16일에도 눈이 내렸고, 3월 18일에는 전국적으로 눈이 내렸다. 대구의 앞산은 도시와 연접된 거대한 산으로 이루어져 북쪽으로 방향을 두고 있으니 음지쪽이 될 수밖에 없다. 음지쪽 암석 절벽 바위틈을 비집고 찔끔찔끔 흘러내리던 물방울은 고드름으로 매달려 정취를 더한다. 박쥐가 동굴 천장에 매달리는듯한 모습이 신기하다. 음지쪽은 햇살이 우글거리지 않으니 풀과 나무들은 당연히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그럼에도 매화 잔가지 껍질은 어디든 혹한에도 잔뜩 푸르다. 이즘 땅속에서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듯 꽃샘추위와 만설에도 아랑곳없이 탱글탱글한 꽃망울을 팡팡 터트린다. 매화가 봄을 가장 빨리 알린다고는 하나 귀룽나무를 앞지르진 못한다. 특히 앞산 안지랑골 귀룽나무는 계절 따라 절기를 꿰뚫고 유난히도 봄을 일찍 알린다. 안일사 뒤편 해발 약 350m에 자생하고, 남부도서관 뒤 산자락에도 여러 그루 있다. 안지랑골은 안일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200m쯤 올라가다 보면 오로지 한자리에서만 늙어가는 예닐곱 그루가 모여 자라는 귀룽나무를 만나게 된다. 휑하니 지나가는 골바람을 타고 꽃샘추위에 휘청거리는데, 이미 죽은 두 그루는 썩어지는 몸이니 아마도 부모일 테다. 수명을 다해 자연사로 나자빠진 몸통의 밑둥치는 이미 부패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미 죽은 몸통을 한 번 더 죽이듯 구멍 뻥뻥 뚫어놓은 것은 지나치던 오색딱따구리의 행적이다. 끼니 고픈 참에 행여 꼬물거리는 식감이라도 내장되어 있을까 싶어서 행한 잔혹한 흔적이다. 봄이 오기 전부터 몸이 근질근질한 귀룽나무는 몸통에 붙은 아주 작은 가지 끄트머리에서 봉긋봉긋 감싸고 있던 새순 봉우리를 곧 터트릴 준비에 바쁘다. 천안삼거리 수양버들처럼 휘영청 늘어진 가지에선 이미 참새부리만큼 커버린 동아(冬芽)가 곧 벌어질 채비를 한다. 그러자 며칠 뒤 그 부위를 갈색으로 감쌌던 껍질이 벌어지고 샛노란 이파리가 나온다. 이렇게 며칠을 두고 봄은 그렇게도 바쁜데 갑작스레 또 생각지도 않은 하얀 눈이 내린다. 어찌나 당황했을까. 샛노랗게 돋아나는 윗자리에 내린 하얀 눈은 그대로 얹어놓은 채 모른척한다. 근데 끄떡 않던 땅거죽이 자꾸자꾸 꾸물거린다. 넌지시 푸른 이파리를 그대로 밀어 올리니 얼었던 동토에 그렇게 봄을 앞당기고 있다. 이를 볼 테면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가 펴진다. 앞산순환도로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옹벽 위에 50여 그루의 귀룽나무가 도로를 따라 열 지어 나란하게 자란다. 대구시에서 과거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식재한 나무다. 산악지역인데도 가장 먼저 움 틔우는 나무이기 때문에 대구에 봄이 오는 것을 시민들에게 가장 먼저 알릴 수 있도록 귀룽나무를 줄지어 심어 놓은 것이다. 지금 모두 아름 들이로 성장해 당초의 취지에 맞게 시민들에게 배려하듯 봄을 알리고 있다. 귀룽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아시아와 유럽이 원산지이다. 꽃은 5월에 하얗게 핀다. 꽃대 길이가 10~15cm이고 꽃 하나의 지름은 1~1.5cm이다. 6월에 익는 열매는 검은색이며 동그랗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5-03-23

우리네 민요 속 삶과 애환 담긴 ‘트로트 전성시대’

“바람만 스쳐가도 아팠던 세월/ 추웠던 겨울은 가고/ 따스한 봄 향기로/ 소리 없이 내 곁에 다가왔네/ 밤하늘의 달빛마저 숨죽이고/ 숨어 울던 지난 세월 속에/ 눈물로 얼룩졌던/ 그 세월에 슬픔을 감사하리.” 이 글은 나훈아의 ‘감사’ 노랫말이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미스터트롯’ 시즌3에서 자신의 인생곡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훔쳤던 김용빈이 왕좌에 오른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그늘에서 자란 김용빈은 건강마저 좋지 않아 할머니의 지극정성 보살핌으로 아픈 세월 견디며 올곧게 자란다. 손자가 ‘미스터트롯’ 무대에 서는 게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끝내 손자의 무대를 보지 못한다. 임종 당시 ‘죽어서도 손자가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게 돕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노래를 좋아해 트로트 수백 곡을 외웠지만 나훈아의 ‘감사’를 듣는 순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그는 노랫말이 자신의 인생을 꼭 닮았단다. 마지막 무대는 떨지 않았다. 할머니가 지켜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먹먹한 할머니. 감사한 마음 담아 섬세한 감성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손자를 아끼는 할머니의 애틋한 정까지 그대로 관객과 시청자들 가슴에 스며든다. 그의 인생곡을 듣는 시청자들의 애잔한 마음이 문자투표에 사뿐히 실려 27.01%라는 높은 득표율로 이어진다. 시청자들은 이미 그의 노래 실력만큼이나 노랫말에 녹아든 그의 아팠던 삶을 공감한 것이다. 외에도 ‘톱7’의 인생곡으로 저마다의 애환이 얽힌 굴곡진 인생을 대변해 주는 노래를 부른다. 그 중에서도 RB 가수였던 천록담(이정)은 암 투병을 이겨낸 후 삶의 희망과 용기를 노래하고자 트로트 가수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감동적인 스토리에 진정성을 담아 불렀던 그의 인생곡은 나훈아의 ‘공’이었다.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트로트에는 우리네 민요에 담긴 삶의 애환과 한(恨)이 서려있다. 1960∼70년대를 살다 가신 어른들은 트로트계의 여왕이었던 이미자에 열광했다. 당시는 트로트라 불리지 않고 대중가요, 가요, 유행가라고만 불리다가 1970년대부터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1980년대 ‘포크송’ ‘발라드’의 흥행으로 장르가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던 유행가가 뽕짝이라며 저급한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의 트로트는 젊은 감성으로 세련미를 더하며 다시 뜨겁게 사랑받고 있다. 트로트 사랑은 편안함에 있다. 우리네 조상들이 삶의 애환과 한(恨)을 해학으로 풀어 나갔듯 애잔한 노랫말에 비해 노래 분위기가 외려 흥겨운 트로트에는 힘든 삶을 해학으로 이겨낸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 있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신나게 부르는 ‘막걸리 한잔’의 가삿말을 새기던 이효리가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리다며 울컥했던 것처럼.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즌 3까지 방송되면서 트로트가 다시 많은 이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며 이미지 또한 격상된 듯하다. 한국의 전통 민요와 소통하며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장르인 트로트는 이제 한국을 넘어 K-트롯이 되었다. 가수의 인생곡이 시청자의 인생곡이 되기도 하는 것은 그만큼 공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암울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잘 버티게 해 준 것도 트로트였다. 봄비가 꽃샘추위 탓인지 새초롬히 내리고 날씨 탓인지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 듣고 싶어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3-20

새봄과 함께 문학여행… ‘동리목월문학관’을 가다

한껏 봄기운을 내보이더니 주말내내 비가 예보되어있다. 가볍게 나설만한 곳을 찾다 동리목월문학관을 선택했다. 갑작스런 찬바람 탓인지 관광객 하나 없이 적막감마저 감돈다. 입구에 들어서 왼쪽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 오른쪽은 박목월 시인이 자리 잡고 있다. 동리 전시관 입구에 사단법인 동리목월기념사업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다. 먼저 길을 내어준 선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 그리고 의미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고생스런 그 과정 덕분에 오늘 이렇게 두 작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이다. 전시장은 김동리 선생의 흉상과 연보를 전시한 이미지 홀, 선생의 생전 습작 노트 및 원고, 발간서적, 사진, 상패, 소장품 등의 유품이 전시된 생애와 문학 코너, 서재를 재현한 창작실과 생전 작품들을 미디어매체로 감상가능한 작품세계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지런히 놓인 소품들 사이 시계와 노트들이 눈에 띈다. 스스로를 관리하기 위해 착용했다는 다섯 개의 시계에서 작가의 강단이 느껴졌다. 친일 단체인 문인보국회와 국민문화연맹으로부터 가입통지서가 날아왔으나 불살라버렸다는 점, 소설들이 일제의 검열에 걸려 전면 삭제되자 해방 때까지 절필하고 침묵했다는 부분은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아픈 시대에 받고 난 천부적 재능과 신념은 고통이다. 다이어리엔 정초에 찾아오는 세배객들의 선물 목록을 잊지 않으려 기록해두었다고 한다. 사과, 잣, 호두, 깡통상자에 이어 인삼, 양주, 갈비도 적혀있다. 그 시절엔 뭘 주고 받았나 유독 재미나게 살펴봤던 부분이다. 로비를 지나 목월 전시관으로 건너갔다. 입구엔 최근에 발견된 미발표 작품들이 적힌 노트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AI 풍의 그림들을 배경으로 시가 적혀있고 아래엔 작품에 대한 부연설명이 적혀있어 이해를 도왔다. 곱슬머리가 부룩송아지 같이 귀엽던 ‘슈산보오이’(6·25 전쟁에서 고아가 된 구두닦이를 묘사한 박목월의 시)는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해졌다. 동리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이미지홀엔 선생의 흉상이 놓여있으며 그 외 연보, 시·이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애와 문학, 달과 나무에선 습작 노트 및 원고, 발간 서적, 사진, 편지, 소장품 등 총 970점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의 마지막에 위치한 창작실에선 동리 선생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서재를 살펴보고 이런 저런 설명들을 읽어나갔다. 인상적이었던 ‘나와 청록집 시절’에서 당시 심정을 회상한 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늘 혼자였다. 사무가 끝나면 거리로 나왔다. 거리랬자 5분만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의 산천과 하늘뿐이었다.” 십구문반의 신발을 신고 경주를 거닐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풍경은 달라졌지만 시인을 떠올리며 그 길들을 따라 걷고 싶어졌다. 따뜻한 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전시장 밖 로비엔 느린 우체통이 준비되어 있다. 1년 뒤 도착할 편지를 적어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다음을 기약했다. 동리목월문학관은 무료관람이며,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단 동절기인 11월과 12월은 한시간 이른 오후 5시까지다. 매주 월요일, 설날과 추석 당일은 휴무이며 월요일이 공휴일 또는 연휴일 경우 다음날에 휴관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3-20

대한어머니회 문경시지회 새 출발

‘대한의 어머니들아 슬기 모으자. 어머니의 슬기가 빛날 적에는 새 나라 새 역사가 찬란하리라.’ 대한어머니회 회가 시작 부분 가사이다. 대한어머니회는 깨인 어머니들의 슬기가 이 나라의 바른 미래를 이끌어 간다는 신념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교육을 통해 의식이 깨인 어머니가 자녀의 미래를 바르게 이끌고 화목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 감을 슬로건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어머니회 문경시지회는 2025년 3월 17일 정기총회를 열었다. 총회는 신입회원을 포함한 45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2024년도에 실시한 조손가정돕기 행사와 김장나누기 봉사, 대한어머니회를 창립하고 평생을 여성 권리와 교육을 위해 헌신한 고황경 박사의 생애가 담긴 ‘바롬기념관’ 견학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돌아보고 2025년에는 더욱 다양한 활동으로 발전하는 어머니회를 만들어 가고자 의지를 다졌다. 오점숙 회장은 인사말에서 회원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며, 어머니는 가정의 중심이 되어 가족을 보살피고 살림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살림’이라는 말은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기에 사람을 살리는 중요하고 고귀한 일을 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어머니라고 했다. 어머니임에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대한어머니회 회원임을 자랑스러워 하자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의 강하고 귀한 마음을 바탕으로 대한어머니회 문경시지회를 훌륭한 단체로 이끌어가자며 각오를 다졌다. 2025년 핵심 사업으로는 제4회 문경 사과꽃축제를 4월 19일에서 20일까지 양일에 걸쳐 개최한다. 또 경로당을 방문하여 노래와 춤으로 소통하기, 신망애육원 봉사도 계획하고 있다. 매년 기탁하는 문경시장학회에 장학금 기탁도 추진하고, 8월 문경시에서 개최하는 전국 ‘문경새재맨발걷기’에 참석하여 환경캠페인과 환경 정화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중앙회에서 매년 개최하는 ‘전국여성독후감대회’에 적극적인 참여도 독려한다. 포용하고 양육하고 화합하는 어머니답게 대한어머니 문경시지회 정기총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대한어머니회의 추진 사업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돌발 퀴즈와 회원 축하 시낭송과 축가로 마음을 나누었다. 또 회원 모두가 참여하는 즉석 ‘다섯 자 소감 말하기’ 이벤트도 시행했다. 어머니로서 또 사회 각층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대한어머니회 회원들. 앞으로 대한어머니회 문경시지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한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3-20

“얘들아! 커서 어른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 A씨(45)는 3월, 학기 초 기초생활 조사서를 받아 들고 장래 희망을 적기 위해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일도 관심 있는 일도 없다”고 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모르겠고 적성은 또 어떻게 찾아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B씨(46)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이 꿈이 많지 않아 보인다. 부모가 생각하는 직업을 강요할 수도 없고 어릴 때의 꿈이 다가 아닌 것 같다. 진로 적성은 어떻게 보면 답이 없어 보인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꿈이 없다고 쉽게 말하는 아이들, 한 조사 자료에서 나타난 장래 희망은 이랬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전국 1,200개 초·중·고 학생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4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희망 직업 1위는 초등학생은 운동선수,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교사가 가장 되고 싶은 직업이었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인 운동선수는 2018년부터 7년 동안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학령 인구 감소와 교권 침해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중·고등학생들에 장래 희망 1위의 교사가 18년째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대로 부모들은 아이의 장래로 의료인, 법조인, 공무원 등을 원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부모들은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이 없다고 말하면 고민이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는 의사나 변호사, CEO 등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말할 가능성이 높은데 어쩌면 이 질문부터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이유라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의사가 꿈이라고 대답한다면 꿈을 이루기 위해 의대를 진학해야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꿈은 아이가 원하는 장래 희망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받은 꿈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진짜 아이의 꿈이 의사라면 아이 스스로 의사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이고, 의사 중에서도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이럴 때 부모는 아이가 앞으로의 인생을 잘 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의사가 된 후에도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물어야만 진짜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아이의 진로는 단순히 어떤 직업을 가진다는 것으로 끝이 될 수 없다. 직업이라는 건 어찌 보면 그저 꿈을 이루는 수단이다. 의사가 되는 게 장래 희망이면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의사라는 직업으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꿈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꿈인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장래 희망은 이처럼 목표를 정하고 방향성을 맞추는 일이다. 성적과 아이의 성격, 성향, 특기, 적성 등과 함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부모들의 아이의 장래 희망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에 한 여행 전문가는 아이와 어릴 때부터 여행을 추천한다. 공교육에서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으로 행해지는 단체 여행과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은 ‘내 아이’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 여행을 통해 아이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확장해 나가면 아이의 진로도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3-18

자판기 커피에 얽힌 달콤쌉싸름한 추억들

요즘은 어딜 가든 커피 전문점 하나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20~30년 사이 생겨난 변화다. 경주에 지금의 커피 전문점 형식을 가진 가게가 등장한 것도 그즈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이에게 커피는 금기의 음료였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 했을 무렵 엄마를 따라 동네 교회 목사 사모님을 뵈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살짝 맛보았던 커피는 천상의 음식과 견줄만 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엄마가 왜 그곳을 방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쟁반 위로 머그컵이 아닌 작고 동그란 잔에 갈색의 음료가 크래커 몇 조각과 함께 담겨 나왔다. 커피는 크래커에 살짝 찍어먹는 정도로 허용되었는데 그날 이후 커피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내내 기억됐다. 그리고 그 커피는 생애 가장 맛있는 커피로 남아있다. 스물한두 살쯤 처음 마셨던 에스프레소는 예상치 못한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방어력 0의 상태에서 맞닥드린 충격은 꽤 컸다. 그리고 함께 안겨준 불면의 시간 덕에 그날 밤 꽤 오랜 시간 뜬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당시만 해도 교정에는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가 층마다 자리잡고 있었다. 강의 사이 사이 친구들과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곤 했다. 동전을 넣고 빨간 불이 들어오면 메뉴를 골랐다. 간혹 동전만 삼키는 날도 있었다. 종이컵이 톡하고 떨어지고 커피가 가득찰 때까지 기다리는게 뭐 그리 힘들었는지 컵을 빼는 시간이 늘 조금 빨랐다.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지 맛에 대한 그리움인지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종이컵으로 마시던 달달한 커피가 때때로 그리울 때가 있다. 큰 컵에 담긴 아메리카노가 대세가 된 지금 학교 교정은 물론 길거리에서 커피 자판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자판기 커피가 아직 성행 중인 곳이 있다. 흥무공원을 지나 잠시 길을 오르면 김유신 장군묘 매표소가 나온다. 낮엔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데 매번 찾을 때마다 몇몇이 자판기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정확한 사유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자판기 커피가 흔했던 시절에도 이곳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이 났었다. 자판기 한편에 인쇄된 풍경 그림을 보고 있자면 그 시절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오래전 노트에 꽤 많이 등장했던 스타일의 그림이다. 경주시민 무료입장 찬스를 활용해 잘 정비된 장군묘를 운동겸 한 바퀴 돌고 나와 마시는 커피는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예나 지금이나 자판기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밀크커피냐 율무차냐 하는 선택의 고민 때문이다. 그 당시 커피는 회전율이 높아 신선하지만 다른 음료는 회전율이 떨어져 그렇지 못하다는 편견 아닌 편견도 있었더랬다. 편견에 휘둘리기엔 율무차의 고소함과 달콤함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뽑아든 음료를 들고 벤치에 앉아 아래를 지나는 기차를 구경하는 것도 꽤 흥미로웠는데 경주역이 사라짐으로 이젠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하나 둘 사라진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고 씁쓸한 일이다. 그래도 벚나무 터널은 남았다. 벚꽃나무 터널의 명성을 지킬 벚나무들은 매년 더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상한 날씨가 조금 염려스럽긴 하지만 올해도 분명 분홍빛 봄은 찾아들 것이다. 찬바람이 멈추고 핑크빛 벚꽃이 만개하는 날 400원의 추억을 만끽해보자. /박선유 시민기자

2025-03-18

포항 보경사에는 복 짓는 철학자가 산다

봄비가 내린다. 아롱대던 봄 아지랑이도 얼어붙는다. 이런 촉촉한 봄비는 농부에게는 반갑지만, 걱정인 녀석들이 있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주차하면 차 밑으로 와 비를 피하며 동네를 살금거리는 길냥이들이 털이 젖은 채 밤을 지낼 일이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렁그렁한 눈동자에 봄비가 고인다. 지나는 사람들은 마음뿐이지만, 동네 떠돌이 강아지 고양이들을 그냥 내보내지 않고 품고 사는 사람이 보경사 처마 밑에 산다. 내연산을 오르는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식당이 어깨동무하고 앉은 동네다. 그 가운데 식당, 문수봉에 들어가려고 문 앞에 차를 댔다. 내리자마자 콩콩 짖는 강아지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목줄이 있는 것도 같은데 가까이 오지는 않고 짖는 소리만 높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키우는 녀석이냐 물으니, 밥도 주고 잠자리도 내주지만 곁을 주지 않는 강아지란다. 보경사에 오래 돌아다닌 개 도순이, 길에 살아서 길 도(道) 자를 붙여 도순이라 부른단다. 구조단체와 119 소방대원이 열 번 넘게 잡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새끼 시절 묶인 목줄이 파고들어서 목에 고름 범벅이라 파리가 달라붙고 냄새는 진동하니 다들 싫어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문수봉을 운영하는 사장님(김은주·60)이 아드님과 함께 방법을 동원해 붙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바로 동물병원에 가서 수술하고 중성화 수술까지 해서 데려왔다. 하지만 오래 떠돌아다닌 도순이가 다 낫기 전에 달아나버렸다. 잡히지는 않지만 늘 가까이 산다. 살려준 사장님이 외출하면 마을 앞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밤이면 가게 문 앞에서 잔다. 다른 강아지 산책시키면 그때마다 따라다닌다고 했다. 문수봉 뒷마당에는 이렇게 사장님 품 안으로 들어온 유기견이 더 있다. 덩치 큰 녀석들이 싸울까 싶어 옥상에 집을 마련해 준 녀석들도 있다. 그리고 슬그머니 안방을 차지한 까만 고양이도 거두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저녁이면 들어와 잠을 청하는 고양이가 세 마리 더 있어 빨간 밍크담요가 깔린 집이 낮이라 빈 상태로 놓였다. 데크 밑에는 참새들의 먹이 그릇도 가득 찼다. 함께 이야기 나누다 밖에서 파 장수 트럭이 지나니 얼른 달려가 세운다. 식자재가 매일 배달되어 오지만, 저렇게 싣고 다니는 분들의 저녁이 허전할까 싶어 몇 단 들여놓는다고 했다. 고무장갑 파는 분이 자주 와서 그때마다 산 장갑이 쟁여져 있다고 한다. 집 앞을 그냥 지나가게 두지 않으셨다. 따라 나갔다가 제비집 본 적 있냐며 처마에 붙은 집을 보여주셨다. 다섯 채의 제비집에 봄이면 다시 제비 가족이 날아든단다. 언제부터 이렇게 보살피는 일을 시작했냐고 물으니 32살부터였다니 지금까지 30년이 넘었다. 9년 전부터 보경사 앞에 와 자리를 잡고 그때 데리고 온 말라뮤트도 이 집에서 17살까지 한식구로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유기견과 유기묘를 거두다 보니 동네에 손님이 버리고 간 강아지가 있으면 이 집으로 데리고 온다고 했다. 자신이 보살피지 않으면 길에서 죽거나 버려질까 싶어 거둔 녀석들이 가득하다. 오래 생명을 살피니 철학자가 따로 없다. 농사도 지어야 수확이 있듯이 복을 지어야 복을 받는다며 검은 고양이가 들어온 뒤 좋은 일만 생겼다고 자랑했다. 한 달 열심히 일해 일곱 곳에 돈을 보낸다. 북극곰 살리기, 다문화가정, 중증장애인 같은 도움이 필요한 곳을 정해 기부금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오래 장사해야 한다고 웃으셨다. 가게 안에 베트남 청년이 6년째 일한다. 일만 하고 쉬는 날에도 외출하지 않는 청년을 사장님이 외출할 때 꼭 함께 데리고 다닌다. 며칠 전에 가게로 비싼 강아지 하네스가 택배로 와서 누가 보냈나 했더니 가게서 일하는 청년이 감사해서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젠 식당 안의 일을 다 알아서 해주니 고마운 일이라고 다독였다. 송라에서 학교 다닌 이 지방 토박이시다. 농가 사서 거둔 강아지 고양이 키우며 사는 게 소망이라고 웃으시는 얼굴에 부처님 미소가 스친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3-18

문학 가치를 함께 고민하고 생각한 소중한 여행길

대구문인협회는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4박 5일 간 일정으로 해외문학기행 행사를 가졌다. 방문지는 중국 서안으로, 이 문학기행에는 안윤하 대구문인협회장과 문무학 시조시인, 김학조 사무국장, 김선완·김복건·노병철 수필가, 문성희·정지홍 시인 등 30여 명이 함께했다. 여정은 실크로드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유적을 탐방하고 백거이 문학 세계를 탐색하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행사 동안 회원들은 옛 이름은 장안(長安)이며 지금은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西安)에서 중국 역사와 문학이 형성된 흐름을 심도있게 살펴봤다. 특히 시안이 어떻게 중국의 도시 중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도시가 됐는지, 또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장안이 동양의 수도라는 대명사를 갖게 됐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토론도 벌였다. 또한 ‘장안에서 화제다’란 말이 이곳에서 유래한 부분을 공유하며 의미를 새겼다. 5∼6세 때 벌써 시를 짓기 시작한 천재이자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를 쓴 주인공 백거이의 묘소 등 유적관도 찾아 위대한 문학인을 추모하고 업적을 기렸다. 일행들은 진시황제의 병마용갱도 둘러봤다. 1974년 어느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천마용갱 앞에선 2200년 전 빚은 병마들이 살아 있는 듯해 정교한 그 시대의 기술 그리고 그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국 최초로 통일을 이룩한 진시황제의 그 위용을 눈으로 실감한 회원들은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돼 이곳에서 한해 수십여 조원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선 ‘진시황은 죽어서도 중국을 호령하는 듯하다’며 입을 모았다. 안윤하 회장은 “이번 시안 중국 역사 문학기행은 동서양 문물교류 역사와 문화예술의 흐름에 동참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낙양성에서 당나라 대문호 백거이의 묘소를 방문해 그의 문학 세계를 감상한 것 등은 대구문인협회 회원들의 창작 활동에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이번 문학기행의 내용을 담아 ‘대구문학’에 게재하고 ‘대구예술’지에도 ‘세계속으로 침투하는 대구문인협회’란 주제로 글을 싣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학기행에 참여한 이근자 소설가는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시대에 수천 년 전 번성했던 도시를 방문한 이유를 자문해 보고 그곳에서 느끼는 감회가 인상적이었다”고 이번 여정을 평가했다. 그는 “사막의 모래바람에 외아들을 잃은 늙은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실크로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정말 과거에서 멀어진 것일까 하는 생각에 젖어들곤 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여행이란 공간적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 또한 뛰어넘게 만든다”고 말하며, “로봇의 관절에 흘러드는 모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강조했다. 김학조 사무국장은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 속에서도 느끼고 고민한 문학적 가치를 동료 문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전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3-16

‘봄의 전령’ 복수초는 어떤 꽃일까

복수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복(福)‘과 ‘수(壽)’를 뜻하는 한자를 사용하여 ‘행복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풀’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 봄, 설날 즈음에 꽃이 피어 희망과 새 출발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아주 먼 옛날 한 청년이 눈 속에서 작은 노란 꽃을 발견하고 마을에 가져왔는데 이후 그 집안이 번창하고 행복해졌다는 이야기에서 ‘행복을 부르는 꽃’이라는 의미가 생겼다고 한다. 왜 복수화(花)가 아니고 복수초(草)인지는 알 수 없다. 티베트 산악지방에는 ‘노드바’라 하는 희귀 약초가 있다. 이 약초는 히말라야 산속 만년설 밑의 바위틈에서 돋아나 꽃을 피우는데 꽃이 필 무렵이면 식물 자체에서 뜨거운 열이 뿜어져 나와 주변의 눈을 몽땅 녹여버린다고 한다. ‘난로 식물’이라고나 할 이 풀은 각종 질환에 좋아 티베트 라마승들이 매우 귀하게 여긴다는 얘기가 있다. ‘노드바’와 닮은 식물이 우리나라의 ‘복수초’다. 복수초는 노드바처럼 이른 봄철 눈이 녹기 전에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주변의 눈을 식물 자체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여버린다. 정말 멋진 생명의 신비다. 항온동물도 눈 속에서라면 체온을 빼앗길 판인데 말이다. 복수초는 우리나라 각처의 숲속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 생육환경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의 습기가 약간 있는 곳이다. 산행을 하다 복수초를 만나면 그 환경이 나뭇잎 많은 습기 가득한 양지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열매는 6~7월경에 별사탕처럼 울퉁불퉁하게 달린다. 우리나라에는 최근 3종류 ‘복수초’, ‘개복수초’ 그리고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가 있다. 연약한 꽃잎으로 피어나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복수초는 우리 산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우리 고장은 가산산성에 가면 큰 군락지가 있다. 꽃 보기를 좋아한다면 봄을 맞아 가산산성으로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장혜숙 시민기자

2025-03-16

세계 여성의 날을 생각하며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 직면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날이다. 여성 안전, 경제적 평등, 일·가정 양립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여성 권익신장을 위해 전 세계가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의 날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정치적 참정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일으킨다. 당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가 펄펄 나는 최악의 환경에서 작업을 강요당했다. 1만명이 넘는 여성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난 시위로 1909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날이 선포된다. 1910년 독일의 여성 노동운동가인 클라라 체트킨이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세계여성의 날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여성의 날을 제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엔이 공식적으로 여성의 날을 선포한 것은 이보다 훨씬 뒤인 1975년의 일이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부터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가졌으나 일본의 탄압으로 제대로 된 행사를 하지 못했다. 해방 후 1985년 양성평등법이 개정되면서 정부는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정하고 정부공식 기념일로 삼았다. 한국에서 여성의 날이 제정된 것은 이제 약 40년이다. 미국과 유럽의 100년 이상의 역사와 비교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다. 여성의 날 제정 역사적 배경에서 보았듯이 여성의 권익은 투쟁과 희생에서 얻어진 결과다. 우리나라는 짧은 역사만큼 아직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높은 교육 수준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많은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와 유리천장 지수에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성차별과 가정 및 돌봄 노동에서의 불균형은 주요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성인지 예산과 같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성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권리를 증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평등과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이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 행동과 참여, 연대와 지지, 정책적 지원과 같은 요소들이 결합 되어야만 세계 여성의 날이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대구시민 헌법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오상태 교수는 최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야제로 ‘꽃의 실존적 의미’라는 주제와 김춘수 시인의 꽃과 연계하여 강의를 해주었다. 김춘추 시인의 ‘꽃’은 철학적이고 중심적이며 실존주의 작품이다. 언어는 존재의 본질이며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비로소 실존이 된다고 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참가자들에게 꽃을 나눠주며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긴 강의를 해준 오 교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3-16

몸과 마음의 건강지킴이 ‘대구도시농업포럼’

도시농업이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무렵이다. 지금은 꽤 많은 도시민들이 도시농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원래 도시농업은 도시의 옥상이나 골목길, 텃밭 등 자투리 땅을 활용해 여가 또는 체험적 농사로 시작하는 농업을 말한다. 생계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농업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도시민들이 작은 공간에 조금씩 식물 등을 재배하면서 도시의 생태계 선순환 구조 회복에 도움을 주면서 지자체마다 도시농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지자체가 조례 제정을 통해 도시농업네트워크 결성을 돕고 농업지도사를 육성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도시농업을 이야기하면 쿠바의 하바나 농업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쿠바 봉쇄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던 하바나 시민들이 도시 빈 공간마다 작물을 재배하면서 지금은 도시농업의 성지로 불릴만큼 하바나 도시농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도시농업은 아직은 초보수준이다. 도시농업이 활성화되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도 가능하다. 우리지역에서도 도시농업 활동을 벌이는 단체가 있다. 사단법인 대구도시농업포럼(회장 서신교)은 지난달 대구 라운제나호텔에서 총회를 열고 도시농업 사업의 활성화에 더욱 매진키로 결의했다. 도시농업 지도사 모임인 이 단체는 지난해는 대구 달서구 도원동의 텃밭을 위탁 운영해 의뢰자로부터 칭찬을 받은 바 있다. 올해는 수성구와 업무협약을 맺어 텃밭운영을 활성화하기로 사업을 확정했다. 특히 지난해 많은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화분 분갈이 서비스를 올해도 꾸준히 벌여가기로 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03-16

씁쓸한 중고 서적 판매의 경험

이사를 위하여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외벌이로 애 셋을 키우며 다른 것은 아끼고 아껴도 읽고 싶은 책만은 사고자 노력했었다. 어릴 때부터 책이 빼곡하게 벽을 채우고 있는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여유롭지 않은 살림에 책값도 만만치는 않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몇 번을 벼르고 벼르다 책을 사곤 했었다. 그렇게 모은 책들은 내겐 보석보다 큰 자산이었다. 그런 책들을 정리하려니 피붙이를 보내는 것 같은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줄 수 있다면 누군가 내 책을 아끼며 읽어줄 사람에게 주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인터넷 서점의 중고 서적 팔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시골에 사니 중고 서점 매장을 직접 방문하여 판매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서다. 책 제목으로 판매가 가능한 책인지 검색했다. 최근 발행된 책이 아니면 매입가가 너무 낮았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들은 매입 불가 책들도 많았다. 판매가 십분의 일 정도의 금액밖에 안 되는 매입가를 보며 살 때는 두근두근 마음 설레며 산 내 소중한 책들을 이렇게 보내야 하나 속상했지만 이사 가는 곳에 다 들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팔기 접수를 했다. 박스에 차곡차곡 책을 담으며 누군가 이 책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주기를 기원했다. 며칠 후 인터넷 서점 정산 내역을 보니 밑줄이 5쪽 이상 처져 있거나 접은 자국이 있는 책들은 매입 불가이고 표지가 살짝만 바래도 매입 불가로 되어 있었다. 여러 권의 책이 폐기 처분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너무너무 속상했다. 다시 되돌려 받으려면 택배비를 부담해야 된다고 하기에 매입 불가 책은 폐기 신청을 선택했었다. 그동안 중고 서적을 많이 구입해 보았기 때문에 이 정도 상태로 폐기 처분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었다. 책을 아끼며 보았고 보관 상태도 아주 좋았었는데 말이다. 그동안 중고로 매입했던 책들은 내 책보다 훨씬 더 관리 상태가 안 좋아도 최상의 등급 가격으로 구입을 했었는데 어쩐지 속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 책은 나의 손을 떠났고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냥 가지고 있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처음 중고로 책을 판매해 봐서 몰라서 그랬구나 하고 허탈한 마음을 달랬다. 나 어릴 때만 해도 책은 귀한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이라도 소중히 다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만큼 많은 책이 쏟아지니 사람들은 책 귀한 줄을 모른다. 중고 서적 판매를 하며 내가 아끼던 책이 누군가에게로 가서 그의 삶을 윤택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책이라도 좋은 주인을 만나 그의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기를 바라본다. 씁쓸한 중고 책 팔기의 경험이었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03-13

봄의 산야에서 느끼는 생동감은 삶의 보약

봄이다. 흔히들 봄을 두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 말한다. 그렇다. 겨우내 포근한 대지의 품속에서 숨고르기를 하며 한껏 챙긴 기운들이 따뜻한 봄이 오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지 위로 오르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나간다. 지금은 칼로리 따져가며 섭취하는 것이 봄나물이지만 보릿고개가 있던 아픈 시절에는 산야마저 헐벗어 자연이 주는 이마저도 배불리 먹기 힘들었다. 나라가 힘들었던 그 시절, 대지의 기운을 담은 여린 풀들로 그나마 굶주림을 달래며 질긴 생명 줄을 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봄나물은 보약이다. 그러나 봄기운 충만한 여린 새싹 중에는 독초도 많다. 야생초들이 꽃이 피우기 전 여린 잎과 뿌리만으로는 산나물과 독초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봄철 여린 산나물을 채취할 때는 충분한 사전 지식이 꼭 필요하다. 자칫 잘못 채취해 먹으면 구토, 복통, 장염을 일으켜 심하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봄철 보약 곰취, 원추리, 산마늘(명이나물), 천궁잎, 쑥 등의 여린 산나물들과 닮은 독초들이 있다. 곰취와 생김이 비슷한 동의나물은 독초이다. 여로는 원추리를, 박새는 산마늘을, 미치광이풀은 천궁잎을, 산괴불주머니는 쑥을 닮은 독초들이다. 봄철 보약으로 즐겨먹는 두릅이나 원추리, 고사리 등도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식물 고유의 독성을 미량 함유하고 있어 반드시 끓는 물에 데치는 과정을 거치며 이들 독을 다스린 후 먹는다. 두릅은 사포닌, 비타민A, 비타민C, 칼슘, 섬유질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 하지만 식중독을 유발하는 독성이 있어 반드시 끓는 물에 데친 후 먹는다. 원추리는 단백질, 칼륨,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풍부한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가 항산화 작용을 하여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고 노화를 방지한다. 피로회복 소화불량에도 효과적이며 부종을 막아주고 피를 맑게 해주어 특히 여성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가슴 두근거림 완화, 숙면, 변비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독성이 있으며 이는 자랄수록 강해진다. 어린 순만 섭취하되 반드시 충분히 익혀서 먹는다. 사시사철 즐기는 고사리는 4, 5월에 채취한다. 칼륨 성분이 많아 나트륨 배출에 도움을 주며 상처회복, 염증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면서 칼로리가 낮아 영양 과잉시대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말리는 과정에서 비타민·엽산 등의 영양분을 더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궐(蕨, 고사리)을 음력 3월 임금에게 진상하는 특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구황식물(救荒植物)로 가치가 높다. 그러나 풀을 뜯던 소가 고사리가 입에 들어가면 놀라 뱉어버린다. 티아미나아제와 타킬로사이드라는 독성 때문이다. 잎이 피면 독성이 더욱 강해진다. 이들 독성은 수용성으로 물에 잘 녹고 불에 약한데다 알칼리에 약한 화합물이라 다행히 끓는 소금물에 삶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 독성이 제거된다. 봄나물을 대변하는 냉이와 달래는 냉이 샐러드와 달래비빔밥 등 데치지 않고 생으로 즐기기도 한다. 원나라 학자 왕여무가 증보·편집한 ‘산거사요(山居四要)’에서 ‘몸이 한가한 것은 마음이 한가한 것만 못하고, 약으로 보(補)하는 것은 음식으로 보(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한다. 봄철 산야에서 대지를 뚫고 용트림하는 온갖 여린 싹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친 삶이 충전되는 느낌이다. 제철 음식이라는 개념이 많이 희박해진 요즘이지만 그래도 제철 음식이 보약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03-13

라벤더책방

경주에서도 시골에 살았던 유년시절엔 버스로 20여분 나와야 시내에 갈 수 있었다. 버스가 2시간에 한 대 배차 되는 데다 별도 용돈이란게 없을 때여서 특별한 날이어야 외출이 가능했다. 3학년이 되고 피아노 학원을 혼자 다니게 되면서 버스 타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그 이후 명절이나 친척들의 방문으로 제법 큰 돈이 생기면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 서점으로 갔다. 지금의 중앙시장 모퉁이에 있던 서점에선 책을 사면 사은품으로 껌종이만한 작은 만화책을 주곤 했는데 가끔 한 개씩 더 받는 날은 기분이 훨씬 좋았다. 어른이 되면 인심 좋은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익숙했던 서점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시간이 제법 흘렀을 때 이색적인 서점들이 경주에 생겨났다. 그중 비교적 최근에 생긴 라벤더 책방은 읍성 인근에 위치해 있는 작은 서점이다. 바로 곁에 경주시 평생학습가족관이 있어 찾아가기 쉽다. 라벤더가 좋아 책방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현재 이수정, 정주영 두 부부가 운영중이다. 단아한 한옥으로 이뤄진 서점은 이름처럼 보랏빛을 가득 뿜고 있다. 내부엔 그림책을 비롯 다양한 책들이 공간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그림책 전문서점이지만 가족단위 고객들을 배려해 다양한 장르의 책도 함께 보유중이다. 노란 조명과 부드러운 질감의 초록색 의자는 책방 분위기를 한층 아늑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이수정 대표는 그림책이 좋아 서점을 열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스스로도 많은걸 배웠다며 그림책의 유용성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학교에서 재직하던 시절 그림책 교사동아리를 만들어 선후배간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가졌었다. 책 뿐만 아니라 그를 활용한 학습놀이 등을 서로 공유했던 시간이 참 좋았다고 소회했다. 그런 공간에 대한 소망도 서점을 여는데 한 몫 했다. 서점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책에 만족한 고객이 다시 방문해 추천을 요청 받으면 더 없이 행복하다는 그녀. 그림책 속엔 많은 인생들이 그려져 있다며 사람들과 그림책 속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그녀의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언젠가 좋은 사람들과 서점에서 북토크를 하는 것도 계획 중 하나다. 반짝이는 눈빛과 얼굴에서 가득 보이는 생기를 통해 그녀가 그림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림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사랑이 넘치는 그녀의 그림책이 기대된다. 그런 부인의 곁에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 정주영씨. 한국수력원자력을 퇴직하고 현재는 갈등 조정 전문가로 활동하며 대학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부인의 돌쇠를 자처하며 대표인 이수정씨가 자리를 비울때면 서점을 든든히 지켜준다. 한결같이 따뜻한 미소와 이곳에선 익숙치 않은 부드러운 서울 말씨로 손님을 맞는다. 그리고 서점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인공 넷. 이곳엔 한없이 귀여운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춘배, 코코, 모네, 모찌로 단골들에겐 특별히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데 이는 이 서점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앞으로 20년 소소한 행복 속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서점으로 남고 싶다는 두 부부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03-13

그윽한 매화향에 취하다

기나긴 겨울도 그 끝이 보이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세상에 변화는 누구도 막지 못한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다. 느닷없는 3월의 눈이 내리고 봄은 더디게 오나 싶은데 활짝 핀 매화가 봄소식을 전했다.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에 자리한 한국선비매화공원 매화분재원에는 300여 점의 다양한 매화 분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우스로 된 분재원 입구에는 세 그루의 백송이 자리했고 분재원에 들어서면 가득한 매화향이 방문객을 반긴다. 그 향기가 선비의 지조처럼 높고도 곱다. 분재원 입구에 ‘선비매화’ 분매의 특징과 감상법을 소개한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분매를 감상하기 전 선비매화의 네 가지 특징과 귀한 모습을 미리 알고 감상하라는 배려다. 첫째가 가지가 드문 것이 귀하고 번잡한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절제’이며, 나무는 늙은 것이 귀하고 어린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경륜’이 둘째, 나무는 마른 것이 귀하고 살찐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검소’가 셋째, 꽃은 다소곳이 오므린 것이 귀하고 활짝 벌어진 것은 귀하지 않다는 ‘선비정신의 겸손’이 그 마지막 특징이다. 각각의 매화나무에는 명패를 달아 고유번호와 함께 도홍주사, 노매, 정당매, 낙조매, 녹아도비매, 비원매, 월사매, 영인매, 금둔백, 원앙매, 분피궁분, 쌍벽수지, 와룡백, 춘풍후 등의 이름을 기입해 두었다.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고목 위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봄 내음을 그리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예로부터 선비정신을 상징하고 절개와 지조, 기개를 뜻하는 꽃이기도 하다. 영주시는 한국선비매화공원에 매화나무 200여 종 2000여 주를 식재해 노지 가득 매화를 선보인다고 한다. 봄꽃의 자태와 함께 희망을 설계할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봐도 좋을 듯하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03-11

통도사 홍매화를 보려면…

독도에 가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배가 뜨지 않거나 가까이 가서도 접안이 안 돼 발을 땅에 내리지 못하고 돌아온다. 꽃이 절정일 때 보는 것도 그렇다. 가까이 있으면 오늘 가서 못 보면 내일 보면 되지만, 먼 거리라 벼르고 별러 갔는데 아직 덜 폈거나 이미 지는 중일 때도 있다. 통도사 홍매화를 그렇게 몇 년을 벼르다 보러 갔다. 새벽 시간에 가서 우리만 조용히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눈 비비며 나선다고 나섰는데도 도착하니 해가 떠 있다. 역시나 매화나무에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아, 향이 참 좋다. 통도사는 주차장에서부터 걷는 길이 낭만적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산문부터 일주문까지 이어지며 드리워져 맨발 걷기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숲길 이름이 ‘무풍한송길’인데 비가 온 다음 날 이른 시간에 가면 안개에 싸인 길이 방문객을 포근히 감싼다. 201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대상)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훌륭한 풍경과 정취를 자랑한다. 길이는 약 1.6㎞여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솔바람에 취해 걷다 보면 홍매화 앞이다. 홍매화는 통도사 영각 앞에 섰다. ‘자장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370여 년 전 이곳을 이끌었던 승려들이 자장율사의 창건을 기념하는 의미로 심은 것이란다. 유난히 붉은 꽃잎을 건물 문살을 배경으로 당겨 찍었다. 장승업의 매화도를 흉내 냈다. 꽃잎이 팝콘처럼 퐁퐁 소리를 낼 것 같다. 좀 더 멀리서 매화나무 전체를 렌즈에 담았다. 곧게 뻗다가 가지는 자연스럽게 휘고, 옛 화가들의 병풍 속에 있던 그 자태 그대로다. 사람들이 매화 주변에 모여 떠날 줄을 모른다.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양산 통도사는 643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안치해 창건한 사찰이다. 이 절의 창건 유래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고 예부터 승려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수계를 받는 곳으로 유명했다. 통도사는 경남 합천 해인사, 전남 순천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불린다. 통도사는 부처를 모시고 있다고 해서 ‘불보사찰’, 해인사는 불법이 새겨진 팔만대장경을 갖고 있다고 해서 ‘법보사찰’, 송광사는 승려들이 모여 수련하는 곳이라고 해서 ‘승보사찰’이라고 부른다. 금강계단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어서인지 대웅전 내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를 직접 모신다는 것이다. 창건의 정신적 근거이며 중심인 금강계단은 자장과 선덕여왕이 축조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한 이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이 사찰은 대웅전이 금강계단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 보물로 지정된 양산 통도사 청동은입사향완, 보물 양산 통도사 봉발탑이 있고, 보물전시관에는 병풍·경책(經冊)·불구(佛具) 및 고려대장경(해인사 영인본) 등의 사보(寺寶)가 소장되어 있다. 소속 암자로는 선원(禪院)인 극락암을 비롯하여 백운암·비로암 등 13개의 암자가 있다. 올해는 2월이 유난히 추웠다. 그래서인지 꽃소식이 많이 늦었다. 2년 전 사진첩을 뒤지니 2월 28일에 홍매화가 지는 중이었는데, 지금(2025년 3월 8일) 만개하지 않았다. 예년 생각에 2월 중순부터 멀리서 사진 찍으러 왔다가 아직 꽃문을 열지 않아 사진 없이 돌아갔다고 한다. 3월 중순이면 홍매 뒤에 따라오는 백매가 피었을 시기인데 말이다. 홍매화 향에 취해 경내를 거닐 수 있으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하는 건가 보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5-03-11

독서와 음악 함께 즐기는 사랑방으로 가요

도서관이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음악과 함께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최근 포은흥해도서관(포항시 흥해읍 흥해로 81번길 46)이 음악특화도서관을 내세우며 시민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7일은 2025년 첫 음악프로그램인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이 열리고 있었다. 수강 신청은 도서관에서의 음악 수업이라는 특별함 때문이었는지 순식간에 목표 인원인 12명이 마감되었다. 수업을 시작하는 강사의 첫마디도 “이런 멋진 공간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서 정말 좋다”였다. 수강인원에 맞추어진 오디오룸은 적은 인원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음악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진 듯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 탱고를 시작으로 한 음악 수업은 세계사와 곁들이니 화려한 춤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가르델과 피아졸라를 떠올리며 수강생들의 음악에 대한 궁금증과 그에 대한 강사와 오고 가는 이야기는 정해진 수업 시간을 넘길 정도였다. 탱고가 춤에서 노래로 밴드로, 클래식에 영향도 받고 재즈에 영향을 주고 로큰롤이나 힙합으로 침체기를 맞은 변화의 역사를 한 눈으로 확인했다. 2시간의 수업을 마친 한 수강생은 “오늘 첫날이라 1시간 전부터 와서 음악 수업을 기다렸다. 오는 발걸음이 괜히 설렌다. 도서관이 정말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시민기자도 수업을 마치고 음악특화도서관인 포은흥해도서관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먼저 도서관은 북구보건소와 시립어린이집, 장난감도서관을 사이에 두고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1층에서부터 안내데스크 옆 어린이·유아자료실과 음악 강당이라는 화살표가 먼저 이용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서면 은은한 분위기가 음악과 어울리는 듯했다. 조용히 앉은 자리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이용자들 사이로 멀티음악자료실과 음악자료실답게 온전히 음악 관련한 자료들과 CD, 서가에 꽂힌 추억의 LP, DVD, 음악 악보집, 세 개의 프로그램실과 작곡실, 연주실, 오디오룸 등으로 채워졌다. 중학생 이상 이용이 가능한 멀티음악자료실 한켠에는 사서추천음반코너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조성진의 음반도 보였다. 옆의 스피커에서는 최근 경상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흥해 농요도 낮게 흘러 나오고 있어서 특별함을 더했다. 반대쪽은 정기간행물 코너도 마련되어 잡지랑 신문도 볼 수 있게 했다. 마주하는 곳에는 카페 같은 예쁜 곳이 있어 시민들이 오며 가며 편하게 차 마시며 휴식을 즐기겠구나 싶었다. 3층은 일반자료실, 문학자료실, 작가실 등을 갖췄다. 봄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는 흥해 일대가 내려다보였다. 책을 펴고 자리에 앉으니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주차장은 넓고 쾌적했다. 빨간불과 초록불로 빈자리를 알려주는 시스템으로 이용자들을 배려했는데 대부분 만족해했다. 층별로 살펴본 도서관은 책을 통해 음악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며 자주 찾고 싶은, 또 하나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느껴졌다. 음악특화도서관인 포은흥해도서관은 아직 시범운영 중이다. 평일과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운영된다.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은 휴관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03-11

가야국의 역사와 문화 탐구하는 ‘가야연구원’

우리 지역에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 된다. 역사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접근과 지식을 늘리는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것을 우리의 실생활에 지혜롭게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과 교훈을 역사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특히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역사 공부가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2022년 대구시로부터 사단법인 설립을 허가받은 가야연구원은 역사연구단체 중에서도 특별한 면모가 있다. 신라도 고려도 조선도 아닌 가야사를 연구하는 단체란 점에서 주목을 끌 만하다는 뜻이다. 김성문 원장은 “우리는 삼국 시대라 하면 신라, 고구려, 백제로 알고 있는데, 같은 시대 고대국가로 520년간 존속한 가야국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가야연구원은 우리 시대에 자칫 등한시해 잊혀질 가야를 찾아 연구, 답사, 발굴하는 단체”라고 말했다. 고대 시대 존재했던 가야국의 출발은 서기 42년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에서부터다. 처음 건국했을 때 가야국은 모두 여섯 나라다. 당시 강역도 신라보다 넓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를 증명할 역사적 사료와 고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라, 고구려, 백제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가야연구원은 이런 가야사에 대한 고증자료 발굴이나 연구에 집중한다. 향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역사학 교수,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가야사가 우리 지역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가야국 지역을 방문 답사도 한다. 함창의 고녕가야, 성주 성산가야, 고령 대가야, 함안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는 이미 둘러보았다. 올해는 김해지역 가락국인 금관가야의 유적지를 답사할 계획이다. 또 연구원에서는 매년 학술대회도 개최한다. 이 방면에 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문교수를 두고 세미나를 개최하며 관심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회원가입도 가능하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가야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각급학교 학생과 일반인 대상의 문예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종석씨는 가야연구원 입회 동기가 ‘가야’라는 국가를 알고 싶었는데 실제로 모임에 참여해 보니 가야의 역사를 깊이 있게 알게 된 것이 보람됐다고 말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03-09

현대판 하마비(下馬碑)

“절도사 이하 개 하마(節度使以下皆下馬)”. 대구 감영공원에 서있는 하마비의 글이다. 병마절도사는 종2품인 관찰사가 겸무한다.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쯤 되는 직책이다. 수령은 군수와 현감쯤 되니 흔히들 고을 원님이라 부르는데 지금의 군수 또는 구청장쯤 되는 직책이다. 따라서 자기가 주재하는 관청에서는 자기보다 낮은 직급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벼슬을 빌미로 권위를 누리려는 알량한 심보다. 하마평(下馬評)이란 말도 하마비(下馬碑)에서 기인한 말이다. 주인이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가마를 메고 왔던 하인이나 말고삐를 잡고 왔던 말구종이나 마부들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온갖 잡담을 나누며 별의별 얘기를 다 한다. 그들 주인이 모두 고급 관리라 자연스레 승진이나 좌천 따위의 인사이동에 관계된 잡담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에 연유하여 관직 이동이나 관직 임명 후보자의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하마평(下馬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작금에도 개각설이 나올 때마다 신문지상에 자천타천 오르내리는 인사이동 예측을 하마평이라 부른다. 조각(組閣)놀이라는 것도 있다. 역대 인물 가운데서 적임자를 뽑아 내각(內閣)과 나라의 요직을 구성하는 놀이를 말한다. 식자층들이 심심파적으로 하는 놀이로 스스로 임명권자가 되어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재밌는 놀이다. 조선시대 고불 맹사성 정승이나 청백리 정승 황희를 국무총리로 올리기도 하고 고구려의 재상인 을파소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율곡을 교육부 장관에, 신사임당을 여성부 장관으로 하는 등 지금 말로 하자면 시대를 초월해서 드림팀을 구성한다는 말이다. 위로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처리하는 과단성 있는 장관감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세월이 흘러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북한의 호전적인 행동 앞에 추호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김관진 장관이면 어떨까 생각된다. 지난 정부 때는 소위 햇볕 정책으로 쌀도 주고 비료도 주고 건설장비도 주면서 북한을 달랬다. 타성에 젖다 보니 시비를 걸어와도 응석으로 받아 주었다. 북이 도발해오면 지휘계통에 따라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대대장은 연대장에게 다시 사단장에게 그렇게 해서 최종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그러자면 연평도 피격같이 이미 치명적인 피해를 본 뒤 명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김관진 장관이 전방을 시찰하면서 병사들에게 “북의 공격을 받으면 쏠까요, 말까요? 묻지도 말고 바로 응사해라”라고 지시했다. 보고는 나중에 해도 좋다고. 얼마나 자신에 찬 모습인가. 무한한 신뢰감이 간다. 북에도 따끔한 경종을 울린 셈이다. 힘 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국민은 이런 장관의 말 한마디에 신뢰를 보낸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나라 사랑도 없어진다. 시대가 변했다. 관청마다 ‘어서 오십시오’ ‘무얼 도와 드릴까요?’를 써 붙여 놓고 국민의 공복임을 자임한다. 세상은 변화한다 ‘누구나 들어오십시오’ 현대판 하마비 아닌가. /방종현 시민기자

202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