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우리네 민요 속 삶과 애환 담긴 ‘트로트 전성시대’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5-03-20 18:52 게재일 2025-03-21 12면
스크랩버튼
대중가요·가요·유행가 등으로 불려오며<br/>70년대부터 ‘트로트’로 불리기 시작하다<br/>80년대 ‘뽕짝’이라며 저급한 취급 받기도<br/>현재 젊은 감성으로 다시 핫한 장르 부상
지난 2024년 10월 서울 잠실체조경기장 ‘영탁 콘서트’에서 세월을 잊고 열광하는 관객들. /장현희씨 제공

“바람만 스쳐가도 아팠던 세월/ 추웠던 겨울은 가고/ 따스한 봄 향기로/ 소리 없이 내 곁에 다가왔네/ 밤하늘의 달빛마저 숨죽이고/ 숨어 울던 지난 세월 속에/ 눈물로 얼룩졌던/ 그 세월에 슬픔을 감사하리.”

이 글은 나훈아의 ‘감사’ 노랫말이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미스터트롯’ 시즌3에서 자신의 인생곡으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훔쳤던 김용빈이 왕좌에 오른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그늘에서 자란 김용빈은 건강마저 좋지 않아 할머니의 지극정성 보살핌으로 아픈 세월 견디며 올곧게 자란다. 손자가 ‘미스터트롯’ 무대에 서는 게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끝내 손자의 무대를 보지 못한다. 임종 당시 ‘죽어서도 손자가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게 돕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노래를 좋아해 트로트 수백 곡을 외웠지만 나훈아의 ‘감사’를 듣는 순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그는 노랫말이 자신의 인생을 꼭 닮았단다. 마지막 무대는 떨지 않았다. 할머니가 지켜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먹먹한 할머니. 감사한 마음 담아 섬세한 감성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손자를 아끼는 할머니의 애틋한 정까지 그대로 관객과 시청자들 가슴에 스며든다. 그의 인생곡을 듣는 시청자들의 애잔한 마음이 문자투표에 사뿐히 실려 27.01%라는 높은 득표율로 이어진다. 시청자들은 이미 그의 노래 실력만큼이나 노랫말에 녹아든 그의 아팠던 삶을 공감한 것이다. 외에도 ‘톱7’의 인생곡으로 저마다의 애환이 얽힌 굴곡진 인생을 대변해 주는 노래를 부른다. 그 중에서도 R&B 가수였던 천록담(이정)은 암 투병을 이겨낸 후 삶의 희망과 용기를 노래하고자 트로트 가수가 되어 무대에 오른다. 감동적인 스토리에 진정성을 담아 불렀던 그의 인생곡은 나훈아의 ‘공’이었다.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트로트에는 우리네 민요에 담긴 삶의 애환과 한(恨)이 서려있다. 1960∼70년대를 살다 가신 어른들은 트로트계의 여왕이었던 이미자에 열광했다. 당시는 트로트라 불리지 않고 대중가요, 가요, 유행가라고만 불리다가 1970년대부터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1980년대 ‘포크송’ ‘발라드’의 흥행으로 장르가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던 유행가가 뽕짝이라며 저급한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의 트로트는 젊은 감성으로 세련미를 더하며 다시 뜨겁게 사랑받고 있다.

트로트 사랑은 편안함에 있다. 우리네 조상들이 삶의 애환과 한(恨)을 해학으로 풀어 나갔듯 애잔한 노랫말에 비해 노래 분위기가 외려 흥겨운 트로트에는 힘든 삶을 해학으로 이겨낸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 있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신나게 부르는 ‘막걸리 한잔’의 가삿말을 새기던 이효리가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리다며 울컥했던 것처럼.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즌 3까지 방송되면서 트로트가 다시 많은 이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며 이미지 또한 격상된 듯하다. 한국의 전통 민요와 소통하며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장르인 트로트는 이제 한국을 넘어 K-트롯이 되었다. 가수의 인생곡이 시청자의 인생곡이 되기도 하는 것은 그만큼 공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암울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잘 버티게 해 준 것도 트로트였다. 봄비가 꽃샘추위 탓인지 새초롬히 내리고 날씨 탓인지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 듣고 싶어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