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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의 귀룽나무, 대구의 봄을 먼저 알린다

권영시 시민기자
등록일 2025-03-23 18:11 게재일 2025-03-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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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와 만설에도 아랑곳 없이<br/>매화보다 일찍 새순 봉우리 터트려
대구 앞산 안일사 계곡. 매화보다 먼저 봄을 알린다는 귀룽나무가 새싹을 틔우고 있다.
대구 앞산 안일사 계곡. 매화보다 먼저 봄을 알린다는 귀룽나무가 새싹을 틔우고 있다.

117년만에 폭설을 기록한 뒤 입춘을 지내고도 정월 대보름에 또 많은 눈이 내렸다. 우수를 지나고 포근하다가 또 추운 날씨가 오르락내리락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정월 대보름 폭설에 이어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한라산과 설악산 등 강원도에는 3월 16일에도 눈이 내렸고, 3월 18일에는 전국적으로 눈이 내렸다.

대구의 앞산은 도시와 연접된 거대한 산으로 이루어져 북쪽으로 방향을 두고 있으니 음지쪽이 될 수밖에 없다. 음지쪽 암석 절벽 바위틈을 비집고 찔끔찔끔 흘러내리던 물방울은 고드름으로 매달려 정취를 더한다. 박쥐가 동굴 천장에 매달리는듯한 모습이 신기하다.

음지쪽은 햇살이 우글거리지 않으니 풀과 나무들은 당연히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그럼에도 매화 잔가지 껍질은 어디든 혹한에도 잔뜩 푸르다. 이즘 땅속에서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듯 꽃샘추위와 만설에도 아랑곳없이 탱글탱글한 꽃망울을 팡팡 터트린다. 매화가 봄을 가장 빨리 알린다고는 하나 귀룽나무를 앞지르진 못한다.

특히 앞산 안지랑골 귀룽나무는 계절 따라 절기를 꿰뚫고 유난히도 봄을 일찍 알린다. 안일사 뒤편 해발 약 350m에 자생하고, 남부도서관 뒤 산자락에도 여러 그루 있다. 안지랑골은 안일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200m쯤 올라가다 보면 오로지 한자리에서만 늙어가는 예닐곱 그루가 모여 자라는 귀룽나무를 만나게 된다.

휑하니 지나가는 골바람을 타고 꽃샘추위에 휘청거리는데, 이미 죽은 두 그루는 썩어지는 몸이니 아마도 부모일 테다. 수명을 다해 자연사로 나자빠진 몸통의 밑둥치는 이미 부패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미 죽은 몸통을 한 번 더 죽이듯 구멍 뻥뻥 뚫어놓은 것은 지나치던 오색딱따구리의 행적이다. 끼니 고픈 참에 행여 꼬물거리는 식감이라도 내장되어 있을까 싶어서 행한 잔혹한 흔적이다.

봄이 오기 전부터 몸이 근질근질한 귀룽나무는 몸통에 붙은 아주 작은 가지 끄트머리에서 봉긋봉긋 감싸고 있던 새순 봉우리를 곧 터트릴 준비에 바쁘다. 천안삼거리 수양버들처럼 휘영청 늘어진 가지에선 이미 참새부리만큼 커버린 동아(冬芽)가 곧 벌어질 채비를 한다. 그러자 며칠 뒤 그 부위를 갈색으로 감쌌던 껍질이 벌어지고 샛노란 이파리가 나온다.

이렇게 며칠을 두고 봄은 그렇게도 바쁜데 갑작스레 또 생각지도 않은 하얀 눈이 내린다. 어찌나 당황했을까. 샛노랗게 돋아나는 윗자리에 내린 하얀 눈은 그대로 얹어놓은 채 모른척한다. 근데 끄떡 않던 땅거죽이 자꾸자꾸 꾸물거린다. 넌지시 푸른 이파리를 그대로 밀어 올리니 얼었던 동토에 그렇게 봄을 앞당기고 있다. 이를 볼 테면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가 펴진다.

앞산순환도로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옹벽 위에 50여 그루의 귀룽나무가 도로를 따라 열 지어 나란하게 자란다. 대구시에서 과거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식재한 나무다. 산악지역인데도 가장 먼저 움 틔우는 나무이기 때문에 대구에 봄이 오는 것을 시민들에게 가장 먼저 알릴 수 있도록 귀룽나무를 줄지어 심어 놓은 것이다. 지금 모두 아름 들이로 성장해 당초의 취지에 맞게 시민들에게 배려하듯 봄을 알리고 있다.

귀룽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아시아와 유럽이 원산지이다. 꽃은 5월에 하얗게 핀다. 꽃대 길이가 10~15cm이고 꽃 하나의 지름은 1~1.5cm이다. 6월에 익는 열매는 검은색이며 동그랗다.

/권영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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