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자 봄바람이 제법 차다. 이런 날에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월정교의 야경을 보다가 경주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따뜻한 음식을 추천해달라 했다. 오래된 맛집이라며 콩국을 먹어보라고 했다. 콩국수? 라고 되물으니 콩국이라고 고쳐 말했다. 일단 맛을 봐야 안다며 위치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른 저녁 시간이라 그런가, 주차장이 한산해 맛집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메뉴를 보니 직접 만든 순두부찌개도 있어서 낯선 콩국은 놔두고 익숙한 찌개를 시켰다. 옆 테이블에 외국 손님과 뒤에 앉은 손님은 콩국과 꽈배기가 함께 나오는 세트 메뉴를 시켰다. 그 맛이 궁금했지만 남편이 여름에 와서 먹자고 해 말았다.
콩국은 따뜻한 콩물에 찹쌀과 밀가루 튀김을 잘라 넣고 콩가루와 달걀노른자를 풀어 먹는 대구광역시의 향토 음식 중 하나이다. 대구 콩국은 1960년대 대구에 정착한 화교들이 만들어 팔던 중국 음식에서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중국의 토우장(豆醬)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지만 대구식 콩국이 훨씬 진하고 고소할 뿐만 아니라 찹쌀 튀김과 밀가루 튀김 두 종류를 같이 사용하여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을 튀겨 낸 중국의 요우티아오와는 차별화된다.
대구 콩국은 포장마차와 24시간 영업을 하는 콩국 가게가 많았던 198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택시 기사와 경찰 등의 야간 근무자와 술꾼들에게 인기 야식이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아이는 물론 학생 등 남녀노소 누구든 좋아하는 음식이다. 설탕이나 소금을 식성에 맞게 첨가하여 먹는다. 콩국을 판매하는 대부분 식당에서 양배추와 달걀을 구운 토스트를 같이 판매하고 있어 한 끼 식사나 해장국으로도 손색이 없다. 아이들 식성을 고려해 돈가스를 곁들인 곳도 있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콩을 깨끗이 씻은 후 하루 정도 불려 삶은 다음 걸쭉하게 갈아 콩국을 만든다. 콩물에 콩가루, 달걀노른자, 땅콩, 들깨, 참깨를 넣는다. 찹쌀과 밀가루는 반죽하여 숙성시킨 후 길게 튀긴다. 튀김을 잘라 콩물에 넣어 준다. 콩물만 있을 때보다 꽈배기가 동동 뜬 모양이 훨씬 식욕을 자극한다.
1980년대 문을 연 제일콩국을 비롯하여 대구 지역 곳곳에 콩국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특히 대구도시철도 3호선 명덕역 주변에 콩국 전문점 여럿이 성업 중이다. 다른 지역의 콩국이 차게 먹는 냉국이라면 대구 콩국은 겨울철에 생각나는 따뜻한 음식이다.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대구 사람들의 식성을 잘 반영한 현대에 생긴 향토 음식이다. 부산 등 영남지방에서 주로 알려져 있다가 TV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포항 오천시장에서는 우뭇가사리 묵을 넣어서 우뭇가사리 냉콩국으로 판다. 더운 날 시장에 가서 몇 병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꺼내 마시면 속이 든든하다. 물에 불린 콩을 삶아서 맷돌 또는 믹서기로 간 다음, 소금으로 간은 맞춘다. 레시피에 따라 국수를 넣어 콩국수로 먹기도 하고, 우무를 말아 우뭇국으로 먹기도 한다.
대구에 사는 지인이 주말에 콩국을 먹었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 우연히 맛을 본 후 빠져버렸다고 했다. 소울푸드라며 다른 지역에 가서도 맛집을 찾아내 친구와 방문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에게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벽에 붙은 집이다. 포항에도 콩국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고 해 검색하니 같은 분점이 용흥동에 성업 중이었다. 꽈배기가 헤엄치는 콩물을 보니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서리태 두유라도 꺼내 따라 해 봐야겠다. 남편에게 꽈배기도 사 오라 주문을 넣는다. 오늘 저녁은 뜨끈하고 달달한 콩국이다.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