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봄기운을 내보이더니 주말내내 비가 예보되어있다. 가볍게 나설만한 곳을 찾다 동리목월문학관을 선택했다. 갑작스런 찬바람 탓인지 관광객 하나 없이 적막감마저 감돈다. 입구에 들어서 왼쪽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 오른쪽은 박목월 시인이 자리 잡고 있다. 동리 전시관 입구에 사단법인 동리목월기념사업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다. 먼저 길을 내어준 선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 그리고 의미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고생스런 그 과정 덕분에 오늘 이렇게 두 작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마음이다.
전시장은 김동리 선생의 흉상과 연보를 전시한 이미지 홀, 선생의 생전 습작 노트 및 원고, 발간서적, 사진, 상패, 소장품 등의 유품이 전시된 생애와 문학 코너, 서재를 재현한 창작실과 생전 작품들을 미디어매체로 감상가능한 작품세계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지런히 놓인 소품들 사이 시계와 노트들이 눈에 띈다. 스스로를 관리하기 위해 착용했다는 다섯 개의 시계에서 작가의 강단이 느껴졌다. 친일 단체인 문인보국회와 국민문화연맹으로부터 가입통지서가 날아왔으나 불살라버렸다는 점, 소설들이 일제의 검열에 걸려 전면 삭제되자 해방 때까지 절필하고 침묵했다는 부분은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아픈 시대에 받고 난 천부적 재능과 신념은 고통이다.
다이어리엔 정초에 찾아오는 세배객들의 선물 목록을 잊지 않으려 기록해두었다고 한다. 사과, 잣, 호두, 깡통상자에 이어 인삼, 양주, 갈비도 적혀있다. 그 시절엔 뭘 주고 받았나 유독 재미나게 살펴봤던 부분이다.
로비를 지나 목월 전시관으로 건너갔다. 입구엔 최근에 발견된 미발표 작품들이 적힌 노트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AI 풍의 그림들을 배경으로 시가 적혀있고 아래엔 작품에 대한 부연설명이 적혀있어 이해를 도왔다. 곱슬머리가 부룩송아지 같이 귀엽던 ‘슈산보오이’(6·25 전쟁에서 고아가 된 구두닦이를 묘사한 박목월의 시)는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해졌다.
동리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이미지홀엔 선생의 흉상이 놓여있으며 그 외 연보, 시·이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애와 문학, 달과 나무에선 습작 노트 및 원고, 발간 서적, 사진, 편지, 소장품 등 총 970점의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의 마지막에 위치한 창작실에선 동리 선생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서재를 살펴보고 이런 저런 설명들을 읽어나갔다.
인상적이었던 ‘나와 청록집 시절’에서 당시 심정을 회상한 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늘 혼자였다. 사무가 끝나면 거리로 나왔다. 거리랬자 5분만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의 산천과 하늘뿐이었다.”
십구문반의 신발을 신고 경주를 거닐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풍경은 달라졌지만 시인을 떠올리며 그 길들을 따라 걷고 싶어졌다. 따뜻한 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전시장 밖 로비엔 느린 우체통이 준비되어 있다. 1년 뒤 도착할 편지를 적어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다음을 기약했다.
동리목월문학관은 무료관람이며,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단 동절기인 11월과 12월은 한시간 이른 오후 5시까지다. 매주 월요일, 설날과 추석 당일은 휴무이며 월요일이 공휴일 또는 연휴일 경우 다음날에 휴관한다. /박선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