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꽂이는 ‘여러사람이 모임’ 우리말<br/>화수회, 같은 성 가진 이들 친목도모<br/>덕담 나누고 은덕기리는 문화 유산
톡 톡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춘삼월. 옆집 담장 넘어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온 동네를 그윽한 향으로 채우는가 싶더니 벌써 4월의 벚꽃축제 소식이 여기저기서 난무하다. 여자들의 바깥출입이 쉽지 않던 시절에도 봄이 오면 진달래 꽃잎 따다 찹쌀전에 곱게 얹어 화전의 풍미를 음미하며 봄을 즐겼다. 화사한 봄꽃 소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모꼬지 행사를 부추긴다.
‘모꼬지’는 순 우리말이다.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뜻한다. 모내기의 다른 표현인 ‘모 꽂이’가 ‘모꼬지’로 변모했다는 것이 민간어원설이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일인 농사를 시작하는 봄철이면 품앗이가 생활이던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볍씨로 싹을 틔워 둔 모를 쪄서 두레질한 논에 옮겨 심었던 모내기가 모 꽂이라는 설이다. 모꼬지는‘MT(Membership Training)’를 대신해 쓰기도 한다. 하지만 모꼬지는 사사로운 모임을 뜻하고 MT는 공식적인 수련모임을 뜻한다 해서 다소 의미가 다르다는 이유로 모꼬지로 대신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봄날의 많은 모꼬지 행사 중 화수회(花樹會)라는 것이 있다.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이다. 종친회와 유사한 친족 모임이지만 본관이 달라도 성이 같으면 함께 한다. 산업화에 따라 고향을 떠난 이들이 타향에서 만난 같은 성을 가진 친족들을 집안사람들이라는 유대로 덕담을 나누고 조상에 대한 은덕을 기리며 뿌리를 알아가는 소중한 모꼬지인 것이다.
화수회 개념의 집안 모꼬지 행사도 있다. 1년에 한 번, 꽃피는 3월에 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집안의 삼촌, 사촌, 오촌, 육촌이 고향에 모여 먼저가신 선조를 기리고 촌수의 개념도 알리며 친족끼리 친목을 다진다. 그러나 화수회나 집안 모꼬지 행사는 기성세대들에 한하는 경향이 있고, 젊은 친구들의 참석 유도가 쉽지 않다. 집안모임이나 제사에 대한 개념이 예전과 사뭇 다른데다 이미 우리나라 법은 조건이 합당하면 친모 성(姓)으로 성본 변경이 가능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에는 가문대대로 잘 정리되어 내려오는 족보(族譜)가 있어 자신의 혈통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족보는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 집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서양학자는 이를 두고 국가·사회·가정의 질서를 잡아주고 자손을 도덕적으로 바른길로 인도하는 족보의 기능을 높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족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견해 차이가 있어 일부는 기득권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봄꽃들의 향연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한다. 진달래 꽃잎 따다 화전을 부치는 사람은 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상춘객이 되어 이 봄을 즐긴다. 달라진 세월 속에서 가까운 사촌끼리도 서먹서먹한 지금, 춘삼월 꽃 필 때의 친족 모꼬지행사가 계속 대(代)를 이을지는 모를 일이다.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던 퇴계 이황은 ‘시류를 따르라’ 했다. 지금은 AI 시대. 봄날 집안 모꼬지 행사를 다녀와 500여 년 전 다른 시대를 살다간 퇴계 선생의 이 말을 깊이 되새겨 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