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날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듯 막막한 그런 날 말이다. 이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내팽개쳐진 것 같은 절망이 밀려온다. 얼마 전 그런 일을 겪었다. 우주의 미아가 된 듯 누구 하나 손잡아 줄 이가 없어 보였다. 부모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친정 식구들은 모두 멀리서 제각각 살기 바쁘다. 허물없이 찾아갈 친구도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 쓸쓸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또각또각 내 구두 소리만이 밤거리에 울렸다. 이렇게 답답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걸으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꾸 부정적으로 빠져드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데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함을 깨달았다. 문병란 시인의 시 ‘희망가’를 한 줄씩 암송했다.
“얼음장 밑에서도 / 고기는 헤엄을 치고 / 눈보라 속에서도 /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 절망 속에서도 /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 보리는 뿌리를 뻗고 / 마늘은 빙점에서도 /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 고통은 행복의 스승 /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 인생항로 / 파도는 높고 /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 한 고비 지나면 /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문병란 시 ‘희망가’ 전문
시인이 IMF 시절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쓴 시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어떤 어려움 앞에서 다시는 희망이 없을 것처럼 절망하고는 한다. 그래서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 어두운 감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 감정에 깊이 몰입되어 자꾸 절망 쪽으로 빠졌었다.‘희망가’를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읊조리다 보니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씩 희석되었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시낭송이 주는 치유 효과를 새삼 느꼈다. 시가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짐도 절실히 느꼈다.
사람은 우울하면 말을 하기 싫어진다. 그럴 때 일부러라도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시를 낭송해 보기 바란다. 사람의 말소리는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어서 긍정적이고 좋은 문장을 말하면 그 소리에 스스로 용기를 얻게 된다. 자꾸 반복해서 소리를 내면 어느 사이엔가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온갖 생각으로 복잡하고 괴로울 때면 다 덮어두고 시를 암송해 보길 권한다. 입 속으로 말고 꼭 소리를 내서 시를 읽어보기 바란다. 마음이 아플 때 시만큼 큰 치유의 약도 없다.
/엄다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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