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결혼식을 앞두고 서울에서 손님들이 찾아오셨다. 경주역으로 마중 가는 길 우리 가족은 기차 도착 시간 보다 몇 시간 서둘러 나섰다. 날이 유난히 좋아 바깥바람을 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것 같아서였다. 40여 분 차를 달리자 팔공산국립공원 표지판이 보였다.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가 있는 곳이다. 만삭의 몸으로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은빛 바다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마침 이슬비가 조금씩 뿌리던 날이어서 신비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아이가 걸음마를 겨우 뗐을 때 다시 방문한 후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지금은 은해사로 불리지만 신라 헌덕왕 원년에 정쟁으로 숨진 원혼들을 달래며 나라의 안녕을 위해 세워진 해안사가 시작이다. 천년고찰 은해사는 현존하는 암자 수만 여덟 개에 말사가 50여 개에 이른다.
현재 은해사는 영천 9경 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천 9경에는 1경 은해사, 2경 임고서원, 3경 보현사 천문대, 4경 치산관광지, 5경 보현산댐 짚와이어, 6경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7경 영천댐 벚꽃 백리길, 8경 영천한의마을, 9경 별별미술관이 있는데 모두 둘러볼 만하다.
주차장과 사찰 건물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데 그사이 위치한 산책로는 이곳의 큰 매력 중 하나다. 솔바람과 샘천이 흐르는 송천길이라 이름 붙여져 있다. 덜 여문 초록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냄새, 그리고 양쪽 길을 줄지어 늘어선 연등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나지막이 자리 잡고 고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들꽃들도 더없이 보기 좋았다. 몸과 마음에 더없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산책로만 걸어도 이미 반절은 얻은 기분이다.
얼마 가지 않아 경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절은 곧 있을 석가탄신일을 맞아 색색의 연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날을 맞은 연등만큼이나 사람들도 꽤 많았다. 경주는 이미 거의 다 져버린 겹벚꽃이 이곳에선 한창이다. 잠시 이곳 저곳 둘러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극락보전으로 향했다.
이곳은 다른 절과 다르게 대웅전이란 명칭이 없다. 2011년에 명칭을 되찾은 극락보전이 한동안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다. 먼저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 나란히 앉아 삼배를 올렸다.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절을 올리는 내내 신이 났다. 사심 가득 담은 절을 올린 후 다시 밖으로 나오니 강아지를 닮은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진짜 강아지라도 되는 듯 제법 쓰다듬었다.
나오는 길 들어갈 때 눈여겨보았던 연등 접수처를 다시 찾았다. 기념될만한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다. 소원 적기에 익숙지 않은 혹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예시가 몇 적혀있다. 잠시 고민하자 스님은 맨 아래쪽 번호도 적어보라 하셨다. 스님이 가리킨 자리엔 로또 1등이 적혀있었다. 소원 성취면 그것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되물으며 한바탕 웃었다.
고심 끝에 소원을 적은 후 직접 등 달기에 나섰다. 그러나 키가 조금 부족했다. 이런 일은 남편 쪽이 수월하다. 사다리에 올라선 아빠가 행여 다칠까 봐 아들은 사다리 다리 하나를 꼭 잡고 섰다. 드디어 노란 등에 우리 가족 이름이 매달렸다. 이름들은 잔바람에도 쉴 새 없이 팔랑거려 사진으로 남기기 쉽지 않았다. 어느새 손님이 도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의 마음에 잔잔한 은빛 바다가 내려앉기를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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