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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먼지

등록일 2025-07-13 18:20 게재일 2025-07-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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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Second alt text“외할아버지, 먼지도 비싼 먼지가 있어요?”

손주의 엉뚱한 물음에 커피 잔을 들던 손이 멈칫했다. 아니, 이석은 또 무슨 발칙한 상상을 한 걸까. 요즘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지. 그래도 먼지까지 금값 되었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비싼 먼지라니, 그게 뭔 소리고?”

“학교 가는 길에 공사장 앞에 ‘비산먼지 저감 운동’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비산먼지니까, 비싼 먼지 아닌가요?”

이 말을 듣고는 참던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해석이 다 있나. ‘비산먼지’가 ‘비싼 먼지’라니. 얘 눈엔 한자도, 상식도 다 요술방망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얘야, 그건 날 비(飛), 흩어질 산(散), 날아다니는 먼지란 뜻이란다. 값을 매기는 게 아니라, 괜히 돌아다니는 게 문제라서 줄이자는 말이지.”

손주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끝을 흐렸다.

“근데, 그냥 ‘날리는 먼지 줄이기’라고 쓰면 되잖아요. 왜 굳이 비산먼지, 저감운동 같은 어려운 말을 쓰는 거예요?”

그렇다 손주에게서 배울 점도 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요즘은 간판도, 현수막도 다들 있어 보이려고 어려운 말을 골라 쓴다. 그게 더 그럴듯해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보는 사람은 더 헷갈린다. 특히 우리 손주 같은 순수한 눈에는 그게 ‘비싼 먼지’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난 김에 한자 이야기를 해주었다. 야구 얘기를 예로 들며, 투수는 ‘던질 투(投)’에 손 수(手), 포수는 ‘잡을 포(捕)’에 손 수, 타자는 ‘칠 타(打)’에 놈 자(者). 다이아몬드 첫 번째 자리를 진지 루(壘)를 써서 1루 2루 3루라 하고 심판은 심판할 심(審), 판단할 판(判). 이쯤 되면 한자 모르면 야구도 어렵다.

“와, 야구에도 다 한자가 있네요?”

손주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 눈을 보니 어릴 적 고향 생각이 났다. 마을 이름 하나도 다 사연이 있었다. ‘곰재’는 곰이 자주 나왔다는 고갯길이었고, ‘죽전’은 대나무 들판, ‘대암리’는 큰 바위가 많았다. 그런데 그걸 한자로 웅치(熊峙), 죽전(竹田), 대암리(大巖里)라고 써놓으면, 어디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글자만 보면 풍경이 그려지고 전설이 붙는다.

우리 육촌 자형 별명도 생각났다. 동네 사람들은 자형을 ‘개머리 자형’이라 불렀다. 처음엔 개처럼 생겼나 했는데, 알고 보니 ‘포두리(浦頭里)’라는 동네, 즉 ‘갯가머리’에 살아서 그렇게 부른 거였다. 물가 포, 머리 두, 줄이면 개머리. 이야, 동네 어른들도 줄이기의 달인이었다.

한자라는 게 참 묘하다. 어려운 듯하면서도 알면 재밌고, 모르면 오해하기 딱 좋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한자 모른다고 야단칠 건 아니지만, 한 자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우리 어른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손주가 던진 ‘비싼 먼지’라는 말, 그냥 틀렸다고 하기엔 너무 귀하다. 그 말 한마디로 온 가족이 웃었고, 덕분에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먼지가 이렇게 고급 콘텐츠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론은 이렇다. 먼지는 원래 공짜다. 다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그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먼지일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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