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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 석재다리 경주 문천 효불효교

등록일 2025-07-13 18:20 게재일 2025-07-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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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장마로 일그러진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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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천에 남아있는 신라시대 석교인 일정교 유지가 모래더미와 숲속에 가려져 있다.

경주 남천(문천)에 국립경주박물관을 끼고 흐르는 서편에는 효불효교(孝不孝橋)로 불리는 일정교가 있었다.

복원된 월정교에서 문천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도중에 물줄기는 다시 남쪽으로 휘돌아 꺾인다. 월정교에서 상류 약 1.2km 되는 동편에 국립경주박물관을 두고 동서로 연결되던 일정교 자리가 문천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일정교 규모는 안내판에서 길이 55m, 높이 5m, 상판의 너비 12m 정도였을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문천 바닥에는 일정교 교각을 구성했던 받침대석과 날개벽 등 하천 바닥에 남아 있는 하부 석재가 배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 경탄스럽다.

근년에는 일정교 자리를 내려가서 볼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하고 일대에는 잔디광장과 산책로도 마련했다. 게다가 수습된 석재를 한데 모아 네모지게 진열도 해놓았다.

그런데 일정교지는 지난해 하절기에는 물줄기에 뒤덮이면서 일부는 석재가 일그러져 제자리를 벗어나고 풀숲에 가려지기도 해 아쉽다. 신라 천년의 석재 다리 유지를 수시로 정비하면 관광객들이 효불효교의 의미를 두고 옛 자리라는 것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일정교를 두고 효불효교라는 부르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라시대에 아들 일곱을 둔 과부가 살고 있었다. 이 과부는 사통하는 남자가 있었으므로 아들들이 잠들기를 엿보아서 나가곤 했다. 아들들이 서로 말하기를 “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다니니 자식된 자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가”하고 돌다리를 놓으니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겨 행실을 고쳤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하여 다리를 놓았다고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된다면서 효도의 다리와 효도가 아닌 불효의 다리를 놓은 것을 두고 효불효교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칠 형제가 힘을 합하여 다리를 놓은 데서 북두칠성과 칠 형제에서 이름을 따와 칠성교라고도 불렸다. 

/권영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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