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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치관이 반듯해야 한다

지난 달 두류공원에서 열린 ‘치맥 축제’ 현장을 찾았다. 많은 인파가 모였다. 볼거리 공연과 먹거리가 넘쳐나는 풍성한 잔치였다. 대구지역 명소 소개와 대구 10미(味)까지 맛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타 시도에서도 지역 홍보에 참여했다. 그런데 광고성 일부 현수막에 “인맥보다 치맥이다”이란 글귀가 보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사전 상 ‘인맥(人脈)’이란 “학문, 출신, 경향, 친소 등의 한 관계로 얽힌 인간관계”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 말은 사람 중심이란 말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먼저다. 어떻게 사람이 아닌 ‘개, 소, 말’이 먼저인가? 아무리 ‘황금만능’이라고 하지만 ‘사람’보다 ‘물질’이 먼저인 것은 아니다. ‘치맥’은 무엇인가? 다른 어떤 의미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chicken과 ‘맥주’의 앞말을 딴 합성어다. 이런 말을 만들어 ‘인맥’에 대비시킨 것을 대수롭지 않게 ‘언어 유희’라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자라는 꿈나무들에게나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이해하려는 많은 외국인에게 이 말은 결코 좋은 구절이 될 수 없다. 요즘에는 지구촌, 세계 곳곳에 한류 타고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 실용성’이 인정받고 ‘한국어’를 제1의 외국어로, 국제공용어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만약에 우리 국민 모두가 분별력 없이 이런 언어문화에 빠진다면 나라 모양이 어떻게 될까? 자칫 ‘개판인 세상’이 아니 되겠는가?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당대표 경선으로 표심을 다지기 위해 고심하고 입후보자들은 ‘치맥 축제’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가 되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세심하게 바라보는가? 가치관이 반듯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나라가 복지국가, 문화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인맥보다 치맥이다” 이 말의 거부감 때문에 나는 좋아하던 맥주도 치킨도 먹기가 싫어졌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인맥 없는 치맥’은 무엇을 위한 잔치인가, 의구심이 솟구쳤다. 우리는 언제 다시 “치맥을 나눈 탄탄한 인맥”을, “숙성된 맛 치맥, 성숙한 멋 인맥”을 볼 수는 없을까? 졸속한 행정이나 얄팍한 장사꾼으로 얼룩진 무늬 걷어내고 천년 고목의 결 고운 나이테처럼 반듯한 세상,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그리운 세상이다. 사람이 먹는 치킨과 맥주이다. 치맥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인맥을 넓혀주는 ‘치맥축제’가 되어야 한다. 지난해보다 많이 달라진 홍보 현수막 구절에서 희망이 보인다. 그래서 한국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하는 성숙한 시민의 ‘파워풀 대구’를 보고 싶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08-03

대구 서문시장 등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

해양수산부가 전통시장 활성화와 내수 승인을 위해 8월 1일부터 5일까지 전국 전통시장에서 ‘온누리 상품권 환급행사’를 진행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점포에서 ‘국산 수산물’ 구매 시, 참여 합산 금액에 따라 온누리 상품권으로 즉시 환급을 받을 수 있다. 3만4000원 이상 구매 시 1만 원, 6만7000원 이상 구매 시 2만 원의 온누리 상품권이 지급된다. 행사 기간 중 농림축산 식품부는 4일~ 8일까지 축산물도 같은 혜택이 적용된다. 행사 기간 중 한 사람당 수산물, 축산물 자체 최대 2만 원까지 환급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이번 행사는 대구에서 서문시장(2지구 건해산물 상가), 신평리시장, 관문상가시장, 신매시장, 와룡시장에서 진행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 환급 활동을 통해 이번 여름, 알뜰한 장보기가 가계에도 보탬이 되고 전통시장도 활성화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급 불가 항목 (환급 제외 대상으로 환급 시 부정 환급으로 간주 될 수 있음) △본인 확인 수단 미지참 시, 환급 불가 △제로페이 수산대전 모바일 상품권으로 구매한 품목 △정부 비축 수산물 방출 품목 △일반 음식점에서 구매한 품목 △법인 및 사업자(개인, 기업) 카드로 구매한 품목 △수입산 및 비 수산물 품목 △행사 기간 외 구매 영수증 등이다. (중복 환급 방지를 위해 본인 확인은 필수) △점포에서 손님 대신 대리 수령 불가. △한 분이 여러 장 가져와 가족 이름으로 대리 수령 불가. 환급 불가 항목 (환급 제외 대상으로 환급 시 부정 환급으로 간주 될 수 있음) △본인 확인 수단 미지참 시, 환급 불가 △제로페이 수산대전 모바일 상품권으로 구매한 품목 △정부 비축 수산물 방출 품목, △일반 음식점에서 구매한 품목, 법인 및 사업자(개인, 기업) 카드로 구매한 품목 △수입산 및 비 수산물 품목 △행사 기간 외 구매 영수증. 등이다. 궁금한 사항은 1877-2430으로 문의하면 된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8-03

고명환 작가 강연회를 다녀오다

지난 26일에는 고명환 작가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고명환 작가는 2024년 한강 작가와 함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전직 개그맨이 작가가 되어 이룬 성취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고 독서에 대한 노하우를 직접 듣고 싶었다. 요즘 독서법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설레며 참석했다. 주말 아침 시간인데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 층도 보였고 중년여성들도 제법 많았다. 작가는 TV에서 볼 때보다는 조금은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힘찬 외침과 열정적인 강의를 했다. 독서 전도사로 알려진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달라지는 자신을 관찰해보라고 했다. 두 달 책을 읽고 주변을 관찰하면 매일 보던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그것은 내 안에 담긴 언어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언어의 폭을 넓혀야 함을 강조했다. 가장 좋은 방법인 독서는 무조건하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틀 집중해서 책을 읽었으면 그 뒤에는 산책을 하라고 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신선했다. 그저 파묻혀서 책만 읽는 것이 아닌 자연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하늘, 나무, 바위, 흙 이런 자연을 몸으로 접하면서 생각하면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읽은 내용이 몸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다른 여러 유익한 강의 내용이 많았지만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이 자신의 한계를 짓고 그 속에서만 살려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할 때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월급 300만 원이면 그 안에서만 자신을 규정하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00만 원 받는 사람으로만 행동하고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에 많은 수긍을 했다. 작가는 하류지향적인 삶을 살지 말라고 말했다. 시민기자도 나이 오십이 넘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런 말이었다. 이 나이에 무얼 하겠나. 이제 누가 써주기나 할까. 이미 사회에서 물러나 더 이상 역할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단정 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말 못하게 되는 것을 볼 때이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작가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나이 삼십 넘어서 피겨스케이트를 배워서 열심히 연습하면 김연아 선수처럼 할 수 있느냐 물으면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작가가 된 것은 그것과 같다고 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작가가 된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뜻밖의 일이라 했다. 하지만 자신은 작가가 되었고 여러분들도 하려고 하는 의지만 있고 도전만 하면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작가의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닳아서 사라지겠다’고 외치는 확신에 찬 목소리에 많은 힘을 받았다. 아침이면 누가 듣든 말든 큰소리로 긍정 확언을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자신도 성장한 작가가 작은 거인처럼 보였다. 무더위로 들끓는 여름이지만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잠시 이 더위를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31

우리 곁의 작은 이웃, 길고양이

집에서 나서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다 나는 집 앞 작은 공원에서 고양이를 찾게 된다. 공원 한쪽에는 고양이 사료와 물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다. 저녁 무렵이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 손님들을 위한 배려다. 매일 이 자리를 지키며 고양이들을 챙기는 이는 일명 ‘캣맘’, 고양이 엄마다. 그녀가 돌보는 고양이는 대여섯 마리쯤 되어 보인다. 고양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살며시 다가가 보지만, 번번이 도망가기 일쑤다. 편의점에서 고양이 간식을 사서 가져다 줘도 녀석들은 눈치를 살피며 다가오지 않는다. 간식을 바닥에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다가와 먹기 시작한다. 신뢰를 얻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걸 매번 느낀다. 어느 날,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던 캣맘을 우연히 마주쳤다. 그녀는 고양이들의 이름과 특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친해지기 어려웠던 고양이, 아픈 고양이, 식욕이 많은 고양이 이야기를 애정있게 전해주었다. 고양이들 대부분은 중성화 수술을 받은 듯, 한쪽 귀 끝이 작게 잘려 있었다. 고양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은데 나만 보면 도망간다고 하소연하자, 그녀는 고양이 한 마리를 쓰다듬으며 자신도 신뢰를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밤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골목 구석구석에 작고 부드러운 생명이 숨 쉬고 있다. 담벼락 위를 조용히 오르내리는 발자국 소리, 쓰레기봉투를 뒤적이다가 깜짝 놀라 튀어나오는 그림자, 해가 지면 아무렇지 않게 배를 드러내며 누워 있는 털복숭이들. 이들은 어느새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눈에 익은 존재이지만, 마음으로 다가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집에서 기르는 반려묘와는 달리, 길고양이는 오롯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도시의 소음,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더욱 경계심 많고, 민첩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도망간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고양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캣맘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먹이를 챙겨주는 것을 넘어서, 고양이들의 터전을 만들어주고 중성화 수술과 치료를 통해 건강한 생존을 돕는다. 과거에는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밤새도록 울어대던 고양이 소리가 익숙했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눈에 띄게 줄었다. 번식력이 강한 고양이의 특성상 개체 수 조절은 필수이며, 중성화는 그 첫걸음이다. 캣맘의 활동은 단순한 ‘고양이 돌봄’을 넘어 지역 생태계의 조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유기 동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일조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생명에 대해 책임감 있는 태도를 기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활동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들이 한 곳에 몰리며 소란스럽다고 느끼는 주민들도 있다. 사료 그릇 주변이 지저분해진다거나, 배설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선 배려와 규칙이 필요하다. 캣맘 역시 스스로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만 먹이를 주고, 먹이가 남지 않도록 치운다. 사료는 깨끗한 그릇에 담아 위생을 지키고, 배설물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모래를 깔아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의 소통이다. 오해를 줄이고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단순한 ‘먹이 주기’가 아니라, 생명과 공존에 대한 실천이다. 이 작은 이웃이 우리 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동네를 더 따뜻하고 건강한 공간으로 만드는 시작일 수 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31

사유의 방과 의궤 앞에서 우리의 아름다움을 다시 마주하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는 지금 두 개의 상설 전시가 많은 이의 발길을 이끈다. 하나는 삼국시대 국보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두 점이 안치된 ‘사유의 방’, 또 하나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로 반출됐다가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전시다. 두 전시는 MZ세대에게도 인기 있는 핫 플레이스로 조용하고 정적인 박물관 이미지를 탈바꿈시키며 우리 문화유산이 가진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어 감동을 주고 있다. ‘사유의 방’ 입구 벽면에 쓰인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글에서 이미 숙연해진 마음으로 고요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난다, 그 끝에 은은한 황토 빛 속, 아늑한 곡선의 공간이 숨이 멎을 듯 펼쳐지고, 그 한복판에 반가부좌로 앉아 오른쪽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국보 중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그 은근한 미소를 마주한 순간, 문득 떠오르는 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진정,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온조왕 15년 기록에 따르면, 새로 지은 궁궐을 본 온조왕이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평을 남긴다. 이는 조선 건국 초 정도전이 ‘조전경국전’에 인용하면서 통치 철학으로 계승되었고, 현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적답사기’에서도 소개되며 널리 알려진다. 우리 문화의 품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사유의 방은 절제된 조형미와 사유의 깊이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 자체로 명상이며 예술이다. 같은 2층 ‘외규장각 의궤’ 공간에는 145년 만에 돌아 온 왕실 기록유산의 정수가 전시 중이다. 의궤란 조선왕실의 중요한 의례, 행사,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한 책으로 왕조의 기억을 담고 있는 보고(寶庫)다. 이러한 귀중한 책들이 잦은 외침(外侵)으로 소실될 것을 우려한 정조가 안전한 강화도로 옮겨 보관한 곳이 외규장각이다. 하지만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로 상륙한 프랑스 군에 의해 외규장각의 많은 책이 소실(燒失)되고 약탈당한다. 그렇게 그 의궤들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힌다. 그러다 고 박병선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폐지창고)에서 297권의 의궤를 발견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진다. 한국의 끈질긴 반환요구 끝에 2011년, ‘5년마다 갱신하는 조건의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아온다. 이는 전 세계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탈 문화재를 쉽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불문율 속에서 매우 이례적인 성과다. 하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다. 참고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에 있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중국서적코너’에서 한국의 고서를 발견한다. 한자로 쓰였다는 것이 중국 서적으로 분류된 이유다.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80년 먼저 인쇄되어 우리 활자 인쇄술의 정점이자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지만, 현재 프랑스는 반환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는 선사시대에서 근세까지의 유물들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시되어 있고 2, 3층에는 다양한 기증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전시된 많은 유물들이 약탈한 것 없이 오롯이 우리의 것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것, 어렵게 되찾은 것, 아직도 찾아야할 것들. 두 상설 전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그 자체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고 주권이며, 미래를 향한 사유의 공간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31

포은중앙도서관에서 느긋한 하루 즐기기

아침부터 훅하고 열기가 밀려든다. 오늘도 휴대폰에선 어김없이 폭염이 지속되니 건강에 유의하라는 안전안내 문자가 도착한다. 더운 공기를 피해 도망치듯 발길이 닿은 곳은 포은중앙도서관이다. 이제는 이른 아침부터 카페가 아니라 도서관을 찾는 일이 일상의 루틴이 되었다. 오전 9시 전이라 늘 붐비던 지하 주차장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하다. 빈자리가 많으니 기분 좋게 주차하고 1층으로 올라섰다. 지하 주차장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1층 로비로 향한다. 도서관의 분위기를 먼저 훑는 느낌이랄까. 로비에선 여러 행사 알림 안내판과 어딘가 집의 거실에 있어야 할 소파에 편히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 요즘 트렌드에 맞춰 사진 촬영 하는 곳과 도서관을 부지런히 오가는 취업 준비생들, 방학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들을 맞이한다. 로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민기자가 즐겨 찾는 5층으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히 아이에게 부탁받은 반납할 책도 있다. 반납 후, 다시 빌릴 책을 살피지는 않는다. 집에는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남아 있으니 읽지 못할 책을 꼭 빌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서가의 책 제목을 눈으로 훑는다. 공부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책 사이를 거니는 그 고요한 기분이 괜히 좋다. 사람들이 말을 아끼는 공간이라서인지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책을 펼친다. 책날개를 펼쳐 저자 소개를 읽으며 이 책의 내용도 어렴풋이 짐작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자리를 잡은 창가 책상 앞에 앉았다. 챙겨온 신문과 책으로 무선 노트에 필사할 요량이었다. 마침 챙겨 온 시집은 서효인의 ‘여수’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문장을 따라 쓰다 여수를 떠올렸다. 그러다 새 둥지 모양의 둥근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즐기며 양산을 쓰고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준다. 점심시간을 맞아 3층 휴게실로 향했다. 3층의 배움터에선 인문학 강좌를 마치고 수강생들이 막 나오고 있었다. 그 틈에 지난 일 년간 아카데미 수업을 함께 했던 지인을 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휴게실에선 여름의 열기처럼 이미 여러 사람들이 앉았다. 점심 후엔 2층 야외공간으로 향한다. 공원 같은 느낌이 들어서 포은중앙도서관에 오면 종종 들르는 곳이다. 긴 벤치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와 아이가 쉬기에도 좋아 보인다. 그 옆을 근처의 직장인이 거닐고 있다. 저녁에는 로비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이 시민기자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에 시작해 두 번째 진행되는 ‘렉처 콘서트, 클래식 비화(秘話)’다. 해설로 진행된 음악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잊혀 지지 않는, 100년 전 음악이지만 좋아서 지금도 연주되는 것이 클래식(고전)’이라 해설자가 정의하며 헨델과 쇼팽 그리고 베르디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강연 사이 사이에는 피아노 연주와 함께 소프라노와 테너의 노래도 감상했다. 도서관의 짧은 공연에서도 성악가들이 이렇게 옷을 잘 갖춰 입고 노래를 하니 더 감동이었다. 도서관은 이렇듯 굳이 목적이 없어도 남녀노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곳이고 예약하지 않아도 발길이 닿는 곳이다. 최근에는 여름 인기 휴가지에 도서관이 포함될 정도다.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라던 보르헤스의 말을 떠올리며 폭염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도서관에서 느긋한 하루를 즐기는 건 어떨까.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9

포항의 여름을 즐기는 방법

배롱나무가 한껏 붉은 빛을 뽐내는 계절이다. 하필 무더운 여름에 피는지, 그래서 더 고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중에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현내리 두봉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도원정사에 꽃을 구경하러 나섰다. 기계면 소재지로 들어서니 동네 뒤로 내비게이션이 안내한다. 조용한 마당에 차를 대니 솟을대문이 맞이한다. 문이 잠겼나 싶어 가까이 가 손으로 미니 끼익 소리를 내며 밀렸다. 문을 열자마자 연못이 우릴 반긴다. 연잎이 가득해 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조선 3대 정원인 영양의 서석지도 마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연꽃을 가득 담은 연못이 있어 건물보다 못이 주인공 같았는데 도원정사가 딱 그렇다. 대문에서 건너편 건물까지 못 중앙에 나무다리가 놓였다. 대문 옆에 배롱나무가 섰고, 건너편 다리 끝에 한 그루가 붉게 웃으며 연못에 제모습을 드리운다. 다리와 계단에 꽃잎을 떨구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곳에 잘 오셨노라고. 정사(精舍)란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 수양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도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말동의 호로 그를 기리기 위해 창건하였다 한다. 1480(성종 1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연산군이 즉위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며 많은 시문('도원문집')을 남겼다. 댓돌에 올라 솟을대문으로 고개를 돌리니 오늘따라 하늘의 구름이 장관이다. 대청에 앉아 학문을 논하던 선비들이 저절로 시를 읊게 만들었을 풍경이다. 한참 꽃놀이를 즐기고 나니 배가 고팠다. 기계 들이 보이는 곳에 중국집이 있어 들어갔다. 조용한 동네라 손님이 없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만석이었다. 짜장면을 비비며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주방에 어르신이 부모님이고 50년이나 짜장면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멀리서도 옛날 짜장맛이 그리워 찾아온다고 했다. 달콤한 짜장면으로 추억까지 맛보았다. 면 소재지에서 서숲을 지나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니, 소나무 숲이 또 나타났다. 지가1리 마을숲이라는 이름표를 보고 우리 조상님들이 곳곳에 마을숲을 만들었구나 감탄하며 지나는 순간, 가로수가 요즘 보기 드문 미루나무였다. 잠시 차를 세우고 찰칵, 이제 기북으로 향했다. 덕동숲을 걷기엔 더운 날씨라 멀리서 보고 다시 경북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덕동마을에서 수목원까지 구불구불 산을 오르고 내렸다 다시 올라야 했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서인지 칡과 아카시가 스물스물 길 안으로 넘어왔다. 경북수목원에 도착하니 기온이 시내보다 4도 정도 내려갔다. 차에서 내려면 숨이 턱 막히는 아랫동네와 달리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가 우릴 맞았다. 나무 그늘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가니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눕거나 앉아 여름을 즐기는 어르신들로 숲이 꽉 찼다. 늦은 점심을 싸 와서 먹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리처럼 산책하며 숲에서 더위를 식혔다. 수목원의 계절은 조금 늦어 수국이 이제 피기 시작했다. 무궁화 동산에 색색의 꽃이 폈고, 연못 중앙 독도 주변에 분수가 물줄기를 뿜었다. 한참 물멍을 때리며 가져간 냉커피를 나눠 마셨다. 노랑어리연 사이로 잉어와 붕어가 오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맨발 걷기를 하고 수돗가에 발을 씻으니, 온도가 1도 더 내려간 듯하다. 수목원에서 내려가는 길, 멀리 영일만이 눈에 들어왔다. 산을 다 내려오니 아직 뜨거운데도 길가에 노지 수박을 팔고 있었다. 빨갛게 복숭아가 익어가고 있었다. 여름이 뜨겁게 애쓰는 이유였다. 포항을 크게 한 바퀴 돌아 집으로 향하니 눈도 마음도 온통 푸르렀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9

100년 전 안동 모습이 궁금하세요?

역사는 기록한 자에 의해 진일보해 왔다. 모든 기록은 역사와 현재에 대한 증명이자 증거이다. 그중 사진은 그 어떤 기록보다 더 직관적이고 강렬한 파급력을 지녔다. 사진 한 장으로 울고 웃는 사람들은 사진 속 풍경 하나에, 건물 하나에 그리고 당시의 추억까지 더해 그 서사를 완성 시킨다. 그렇기에 지난 7월 19~28일 안동시립박물관 별관전시실에서 열린 ‘안동 근대역사 사진전’은 그 의미를 더한다. 재단법인 경안노회유지재단이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후원한 이번 사진전은 1900년 미북장로교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파송돼 이후 신설된 안동 선교부에 부임한 한국명 오월번(Arthur Garner Welbon) 선교사와 1924년 안동 선교부에 배속받은 안변암(Benjamin N. Adams) 선교사가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모아 공개한 것이다. 오월번 선교사는 경북북부지역 초기 선교의 주역으로 활동하였으며 1909년 설립된 안동교회가 지역의 중심교회로 역할을 하는데 크게 공헌을 하였다. 그러다 1928년 장티푸스로 사망하고 후에 손녀인 프리실라 여사가 조부의 선교 편지와 자료, 사진 등을 정리하여 책으로 편찬하였다고 한다. 전시된 사진에는 낙동강변에서 빨래를 하거나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길어 나르는 여인부터 연자방아를 돌리고 디딜방아로 곡식을 찧고 다듬이질을 하고 솜을 틀어 옷을 만들고 삼베를 짜는 여인까지, 190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안동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흑백사진 속에 기록되어 있다. 짚으로 엮은 달걀 줄을 들고 있거나 땔깜이 가득한 지게를 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가 1910년대 법룡사와 영호루, 봉정사, 제비원석불 모습에는 감탄이 나온다. 특히 천막교회로 시작해 16칸 ㄱ예배당, 목조 예배당을 거쳐 지금의 석조예배당까지 안동교회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가 있다. 또, 3.1운동으로 복역한 안동교회 장로 김병우 김익현의 수감기록 카드 등 안동 근현대사의 역사적 발자취를 직조한 기록물을 선보였다. 오월번 선교사는 안동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달력을 제작해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1911년 당시의 임청각과 서악사, 법흥사지 칠층전탑 등 안동 시내 전경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지난 28일 1차 전시를 끝내고, 9월 17~28일 안동교회 100주년기념관 역사전시실 및 로비에서 2차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9

대구 수성못 법이산 봉수대를 아세요

대구 수성못 남쪽에 있는 법이산에는 조선시대 사용했던 봉수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수성못 남쪽에서 20분 정도 올라가면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으나 평소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는다. 봉수대란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을 이용해 적들의 동향을 파악해 상부에 알렸던 군사 목적의 통신수단이다. 조선시대 봉수대는 왜구의 주요 침탈지인 동래현에서 시작하여 한양까지 연결하는 주요 봉수인 ‘직봉’ 5개소가 있었고, 그 아래 직봉마다 하위 봉수인 ‘간봉’을 두어 운영했다. 법이산 봉수는 제2거 직봉의 하위 8간봉 중 하나다. 부산 천성보 봉수에서부터 이어져 당시 성주의 각산봉수, 대구의 성산 성황당에서 신호를 받아 경산의 시산 봉수로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이산 봉수대와 관련된 기록은 경상도지리지(1425년), 해동지도(1705년,) 대동여지도(1861년) 등의 고지도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동국여지승람(1530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법이산 봉수 유적지에는 기우단(가물 때 비오기를 제사 지내는 단)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봉수대는 비가 오면 오히려 불편했을텐데 봉수대 인근에 기우단이 만들어진 것은 매우 특이한 점이다. 2019년 가온문화재연구원에서 이곳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다. 발굴 조사에 의하면 봉수대 방호벽 둘레가 106.5m에 달했고, 배 모양의 봉수로, 남북에 인접하여 동서로 길게 만들어진 돌무지 시설, 계단형과 개방형의 출입 시설 2곳이 확인되었다. 또 유적지 내에서 백자류와 옹기 파편, 기와류 등도 출토됐다. 배 모양의 방호벽은 외적이나 산짐승으로부터 봉수군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봉수대에서 출토된 적이 없는 백자류 파편이 출토된 것은 기우단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법이산 봉수대는 대구지역 첫 봉수 문화재로 대구시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수성구청은 봉수대를 포함한 일대의 종합 정비 계획을 수립 중이다. 또 앞으로 법이산 봉수대의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해 추가적인 준비도 하고 있다고 한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5-07-27

소가야, 바다에서 피어난 가야왕국

남해안과 낙동강 유역 일대는 예로부터 사람과 물산이 오가는 교통과 교역의 요충지다.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소가야는 가락국 수로왕의 동생 말로왕이 세운 나라다. 오늘날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중심으로 진주와 산청까지 세력을 넓혔다. 소가야는 중국과 백제, 왜를 잇는 해상 교역의 중개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군사력이나 정치면에서는 아라가야나 가락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소했지만, 바다를 품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활발한 외교와 문화 교류를 펼칠 수 있었다. 209년, 소가야는 포상 8국의 연합군에 속해 가락국을 공격했으나 패하고 말았다. 같은 뿌리를 지닌 나라들끼리 피를 흘려야 했던 이 사건은 소가야의 독자적 자립 의지와 복잡한 정치적 현실을 보여준다. 이후 광개토태왕의 남정으로 가야 전체가 크게 위축되자, 소가야는 아라가야와 함께 재기를 모색했으나 6세기 중반, 끝내 신라에 항복하고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된다. 소가야의 흔적은 오늘날 경남 고성군 일대의 고분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회화면 봉동리에는 소가야 왕실의 마지막 흔적이라 할 수 있는 고분군이 있다. 시조 말로왕에서부터 9대 이형왕에 이르는 아홉 무덤이 줄지어 있다. 고성김씨 종친회에 따르면, 이 고분군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일 향사를 올린다고 한다. 인근 과수원 주민이 이곳에서 토기 조각과 철기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음을 전했다. 그러나 왕릉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들은 일제강점기 도굴과 훼손으로 인해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다. 고성읍 송학리에 있는 송학동 고분군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무덤들로, 사적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가야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은 고성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둥근 토기 형태로 설계되어 소가야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1층에는 전통 놀이 체험 공간과 북카페가 있고, 2층 전시실에는 송학동 고분군과 내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기마무사 모형이 인상 깊다. 투구와 갑옷을 갖춘 무사가 무장한 말을 타고 있는 모습에서 위풍당당한 기상이 전해진다. 실제로 발굴된 투구에서는 금동 장식이 확인되어 소가야의 정교한 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손잡이 달린 잔, 구멍 난 단지, ‘고(古)’자가 새겨진 굽다리 접시 등은 당시의 미감과 생활상을 생생히 전해준다. 박물관을 나서며 남쪽 바닷가의 남포항을 찾았다. 2008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된 이곳은 조용한 어촌이지만, 오래전 바다를 통해 소가야가 외부 세계와 활발히 교류했을 것을 떠올리면 감회가 남다르다. 비록 지금은 역사서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지만, 바다의 힘을 품고 문화를 꽃피운 소가야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07-27

풍류

풍류란 뭘까? 산 좋고 물 좋은 데서 바람 맞으며 “캬~” 한숨 내쉬는 것, 그것만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저 풍경 구경하며 감탄사 날린다고 풍류객 대접받을 수는 없는 거다. 풍류에는 뭐가 있어야 하느냐, ‘격’이 있어야 한다. 자연과 어우러질 줄 아는 멋, 품격, 거기다 약간의 삐딱함과 짬에서 나오는 자유로움까지 곁들여야 제맛이다. 풍류 좀 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옷을 곱게 입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 조선시대 진짜 풍류객들은요, 살짝 삐딱했지만 품위는 있었고, 거리낌은 없었지만 궤도는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인물 중에 김삿갓 김병연이 있다면, 그에 못지않게 정신 줄 놓은 풍류객이 있었으니, 바로 백호 임제 선생이시다. 이 양반, 풍류를 즐겼는지라 서른 나이에 겨우 급제했다. 벼슬길에 올랐지만, 글보다 술, 공맹보다 낭자에게 더 끌렸던 분이다. 그가 평안도 부사로 제수 받고 도임하러 가는 길에 개성에 들렀는데, 그곳엔 전설의 기생 황진이가 살고 있었다. 막 도착했는데 들리는 소식이, “어이구, 황진이 그 분, 석 달 전에 돌아가셨슈~ ”날벼락 맞은 임제, 고기 한 근에 술 한 병 싸들고 황진이 묘소에 곡차 올리고 시를 읊는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었는가/홍안은 어디 가고, 백골만 남았는가/잔 들고 권할 이 없으니, 그대를 슬퍼하노라.” 절절하다 못해 촉촉한 시 한 수.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뭐야, 사대부가 기생 무덤에 제를 지내고, 거기서 시를 읊었다고?” 유교 경전 끼고 다니며 트집 잡던 양반들이 이걸 빌미로 고변했고, 결국 임제는 파직 당했다. 하지만 임제, 이런 걸로 꺾일 인물 아니다. 벼슬길에서 쫓겨나면 또 어떠랴, 세상이라는 무대를 다시 유람 삼아 떠나면 그만. 관복 벗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풍류의 길로 다시 나선다. 수원 어느 주막에 들른 임제, 술도 좋고 안주도 좋은데 주모 얼굴이 아주 절세미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술 몇 잔 돌자 주모 마음도 돌고, 시 한 수 던지자 눈빛이 반짝인다. 결국 그날 밤, 주막 방 안은 달빛보다 더 아련했으리라. 그런데 다음 날 문제가 생긴다. 한양 가서 장사 나갔던 주모 남편이 무슨 초고속으로 돌아왔다. 닷새는 걸릴 길을 하루 만에 온 걸 보니, 오다가 감이 떨어졌든지 찜찜한 예감이 들었든지. 어쨌든 그 사내, 백호가 주모와 운우지정을 밝히고 있을 때 문 열고 들이닥치며 도끼부터 번쩍 들었다. 임제는 놀라지도 않고 담담히 말했다. “좋소, 내가 죄인입니다. 다만 죽기 전에 시 한 수만 읊게 해주시오.” 죽는 원은 들어주는 게 상례라, 남편이 지필묵을 내주었다. 그러자 임제는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시를 썼다. “어젯밤 장안에서 술 취해 왔더니/복사꽃 한 가지가 농염하게 피었더라/그대는 어찌 이 꽃을 번화한 땅에 심었는가/심은 이가 그른가, 꺾은 이가 그른가” 이걸 보고 남편은 도끼를 내려놓았다. ‘그럴 만했구먼’ 싶었던 거다. 꽃이 예쁘면 벌 나비 오는 건 자연의 이치 아니던가. 주모의 미모를 그런 주막에 내놓은 자신도 잘못이 있다며, 오히려 술상 내어 대접했다 하니, 이쯤 되면 시가 목숨도 구하는 법이다. 임제는 절세 미남이자 시인이었다. 세상의 틀을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살았던 진짜 풍류객이었다. 그의 삶은 도포자락처럼 너울거렸고, 그의 시는 술잔처럼 가볍되, 울림은 깊었다. 풍류란, 틀에 갇히지 않고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의 기술이다. 백호 임제가 그랬듯, 오늘 하루쯤은 바람 부는 대로, 마음 흐르는 대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방종현 시민기자

2025-07-27

한국족보,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

17세기 이전 간행된 20여 한국 족보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회의실에서는 한국 족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상임대표 이주영·이하 추진위)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20여 문중의 한국 족보를 소개하는 실물 전시회도 함께 개최됐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한국 족보는 우리나라 최초 족보 ‘안동권씨 족보 성화보(成化譜)’를 비롯해 17세기 이전에 간행된 ‘청송심씨 족보-을사보’, ‘대종보-영일정씨 감무공파 족보’, ‘고령신씨 세보’, ‘함양박씨 족보’, ‘진양하씨 세보’, ‘신편광주이씨 동성지보’, ‘파평윤씨 성보’, ‘천안전씨 세보’, ‘창녕성씨 족보’, ‘청주한씨 세보’, ‘야로송씨 족보’, ‘동래정씨 족보’, ‘순흥안씨 족보’ ‘청주이씨 족보’, 전주이씨의 ‘장의공자손보’, ‘청밀양박씨 ’, ‘신창맹씨 족보’, ‘평양박씨족보’, ‘계림김씨세보’ 등 20여 성씨 족보다. 우리나라 최초 안동권씨 족보인 성화보는 경북 안동시 도촌리에 있는 도계서원 만대헌(晩對軒)에 소장돼 있었던 조선 성종 7년(1476)판 초간본으로 1980년경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되었다. ‘성화보(成化譜)’는 서거정이 쓴 서문에 ‘족보의 초안은 권제(권근의 장남)가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약 30년 동안 권근의 아들, 손자, 외손자 등 외손이 증보한 뒤 관찰사가 간행한 것이다. 시조 권행부터 8세 권리흥까지는 단선으로, 이후는 외손 포함하여 총 9000명 가까운 방대한 인물을 수록한 만성보(萬姓譜) 형식이다. 권근은 공민왕 1년(1352)에 안동부에서 태어나 18세 때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다. 추진위는 성화보 등 20여 종의 한국 족보는 수백년이 넘는 진본으로 조선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산이며 인류유산 보존에 손실이 없도록 유네스코 세계기유산에에 등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주영 추진위 상임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족보’의 역사적 가치는 일개 중흥을 넘어, 더 나아가 한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류 모두의 자산이므로 적절히 보호되고 보존되어 미래세대에 전수되어야 하고 또한 모든 사람이 방해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5-07-27

대구 봉산문화회관, ‘세계 현대미술의 오늘’해외작가 초대전 개최

대구시 중구에 위치한 봉산문화회관(관장 노태철)은 오는 7월24일부터 8월31일까지 41일간, 해외작가 초대전–‘세계 현대미술의 오늘’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독일·러시아·미국·멕시코·오스트리아·파라과이·스페인·한국 등 8개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 57명이 참여해 1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국제 교류 전시는 예술감독으로서 오랜 경험을 가진 노태철 관장이 기획한 것으로 ‘세계 현대미술의 오늘’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계 각국의 현대미술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특히 2025년은 한국인의 파라과이 이주 6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해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작가 3명이 특별 초청되었다. 전시회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 예술과 스페인 문화가 융합된 남미 미술, 게르만 문화 전통을 계승한 독일·오스트리아 미술, 다양한 이민 감성이 담긴 미국 현대미술, 130여 개 민족이 어우러진 러시아 미술 등 각국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이 반영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노 관장은 인사말을 통해 “세계는 문화로 연결되어 있으며 예술은 그 문화를 가장 생생하게 증명하는 언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예술이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는지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대구 도심 한복판에서 세계 각국의 현대미술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로 예술과 문화, 세계와의 소통을 경험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 하루 전인 23일에는 봉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작가와의 만남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포럼 김인호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전시 개막식은 24일 류규화 중구청장, 윤찬식 전 파라과이 주재 한국대사, 티므르 골라프 러시아 총영사, 이창환 대구예총 회장 등이 참석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7-27

떠나는 동물과 남겨진 추억, 달성공원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먹지요~” 아빠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한 손엔 아빠 손을 잡고 다른 손엔 풍선을 들고 코끼리 아저씨 보러 갔던 달성공원은 시민기자에게 웃음을 주는 추억의 공간이다. 2025년의 달성공원도 90년대 초 어린 시절 기억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입장료가 없어지고, 토끼와 앵무새가 새로 들어오고 몇몇 동물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 외에는 변함없는 모습이기에 추억을 회상하기 좋은 장소다. 가끔 펼쳐보는 사진 앨범에는 코끼리 앞에서 ‘김치’하고 찍은 사진, 솜사탕 먹으며 웃는 사진, 나비밀대 장난감 밀며 뛰어가는 사진 등 추억이 담겨있다. 달성공원에 갈 때마다 나비밀대 장난감을 사달라는 시민기자 덕분에 우리집에는 여러 마리 나비가 날아다녔다고 한다. 90년대 달성공원에서 ‘키다리 아저씨’는 빼놓을 수 없는 마스코트이다. 키다리 아저씨 ‘류기성’씨는 225cm의 큰 키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최고 신장자였던 그는 방송에도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다. 1971년부터 1998년까지 27년이란 긴 시간 동안 달성공원에서 근무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보러 달성공원에 방문하고 함께 사진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있어, 대구에 산다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의 이야기는 달성공원 뒷길에 벽화와 향토역사관에 사진으로 추억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달성공원은 어린 꿈나무들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체험학습을 오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손잡고 나들이 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회상하게 된다. 웃음 소리가 가득한 아이들 틈에는 데이트 중인 연인과 운동하러 온 시민들의 모습도 어우러진다. 시민기자도 어린 시절 아빠 손잡고 동물을 보던 꼬마의 모습에서 아빠랑 같이 운동하는 키 큰 어른이 되었지만, 달성공원과 아빠 앞에서는 아직까지 시민기자는 아직 꼬마가 된다. 달성공원은 코끼리, 사자, 호랑이, 원숭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물 외에도 꽃말, 타조, 공작새, 독수리, 물개와 같이 흥미로운 동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과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공원 입구부터 펼쳐진 꽃밭에는 계절별로 형형색색 아름답게 꽃을 심어두어 그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때문에 달성공원 어디서 찍어도 프로필 사진을 바꿀만한 인생 사진 한 컷은 쉽게 건질 수 있다. 특히 봄에는 흐드러진 벚꽃 덕분에 더욱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입구를 들어섰을 때 좌측에 위치한 향토역사관은 대구의 역사를 한 눈에 담아내고 있다. 1층에 위치한 제1전시실에는 선사시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대구의 역사적 사건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영상 자료도 함께 상영하여 방문객들에게 자료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2층의 제2전시실에는 대구 시민들의 일상 문화에 대해 전시하고 있다. 농업, 상업, 교육, 약령시장, 민속예술, 전통가옥 등에 대한 정보가 전시되어 있어, 오늘날 대구의 모습과 비교하는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최근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진다. 달성공원의 동물들이 2027년 완공 예정인 ‘대구대공원’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시설 노후화와 동물 복지 문제가 그 이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동물들을 위해 이제는 달성공원에 동물을 보러 가는 모습은 추억으로 남겨둬야겠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4

나를 나타내는 별칭을 지어보자

최근 참여한 모임의 자기소개 시간에 별칭을 짓게 되었다. 가장 자신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낱말이나, 되고 싶은 사람도 좋고 이유 없이 끌리는 낱말도 좋다고 했다. 이름 석 자로만 불리다가 갑자기 별칭을 짓는 것을 다들 어색해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전부 난색을 표했다. 그동안은 이런 별칭을 지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다. 시민기자는 ‘모란’으로 정했다. ‘모란’은 문학 모임에 들어가서 처음 문학기행을 간 곳이 도산서원이었고 그때 모란이 만발해서 연신 감탄을 했더니 함께 갔던 회원들이 지어준 별칭이어서 의미가 깊은 이름이다. 각자 왜 그런 별칭을 지었는지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무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던 분들이 발표 시간이 되자 다들 나름의 이유를 들어 설명을 잘하셨다. 언제나 좋은 일이 있길 바란다는 뜻의 크로바로 정한 분, 부자가 되는 게 꿈이라서 부자로 정한 분, 무지개처럼 황홀하게 살고 싶어서 무지개로 정한 분, 어떤 분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고양이 이름으로 짓기도 했다. 수줍음 가득한 한 참가자는 자신은 별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할 자신은 있다며 성실이라고 정했다.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정한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로 정한 사람 다양했다. 언젠가 읽은 시가 생각났다.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 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 황금노을 초록별하늘 새벽미소 한빛누리 하늘호수 /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렸지요? /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하지요? //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 앉아서마늘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 완전 부엌냄새 집구석냄새에 김빠지지 않을까 미안스러웠어요 / 하긴 속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죠 / 암만 하늘할애비라도 / 마늘 짓쪄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 이진명 시 "‘앉아서마늘까'면 눈물이 나요" 부분 주어진 이름 외에 자신을 대변하는 별칭을 짓는다는 것이 간단해 보였는데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물에서 이름을 빌려온다면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물 찾기를 궁리해야 하고 그 사물이 나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그 연관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위의 시인은 자신이 처해있는 가장 밀접한 상황에서 이름을 불러왔다. 부엌에서 맴돌며 슬픔의 시기를 보내고 있어 ’앉아서마늘까‘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우리 모임의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자신과 연관이 있는 낱말을 불러와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에서 닉네임을 정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오프라인 만남에서 이렇게 별칭을 정해서 상대방을 부르는 것은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소소한 일 같지만 이렇게 한 번씩 자신의 틀을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우리는 별칭 하나로 붉게 피는 모란도 되었다가 가녀린 코스모스도 되고 큰 부자가 되어 마음 넉넉해지기도 하고 무지개가 되어 황홀히 빛나기도 한다. 가뭄을 적시는 물방울도 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되기도 한다. 나라는 범위를 벗어나 우주의 다른 한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은 아주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모임 사람들은 잊는다 해도 그들의 별칭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4

어싱(접지)도 좋지만 맨발걷기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다치지도 않았는데 무던히 발등이 통통 부어 병원 다녀오는 길이라는 동네 어르신을 만난다. 의사가 내린 처방은 약이나 주사가 아닌 물리치료와 맨발걷기를 자제하라는 것이다. 몸무게도 있는데 너무 딱딱한 땅을 맨발로 무리하게 걷다보니 발바닥 연골도 많이 닳았다며 특히 퇴행성 관절 질환이 의심되는 나이에는 단단한 길 맨발걷기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단다. 자연길이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동네 공원은 맨발걷기에 최적화된 석비레(마사토) 길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비온 뒤 진흙 길이 맨발로 걷기에 쫀득쫀득 촉감이 좋으면서 쿠션감도 있어 좋지만 시간이 지나며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으면 외려 발바닥과 발목에 무리를 준다. 건강을 염려해 좀은 귀찮아도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는데 외려 건강을 위해 자제해야 될 거 같다며 가던 길을 가신다. 또 다른 이웃은 맨발로 걷다 돌부리에 채여 엄지발가락 골절로 한동안 고생을 했고, 지인은 맨발걷기 후 생긴 습진으로 고생 중이다. 맨발걷기의 건강 원리는 어싱(Earthing) 효과로 흙길, 잔디, 모래사장 같은 자연적인 지면 위에 발이 직접 닿으면 지면의 음전하가 몸의 양전하를 자연스럽게 중화시켜 질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므로 염증 억제, 면역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심장 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는 맨발걷기에 대한 연구에서 혈액이 묽어지고,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한의학에서도 천기(天氣)와 지기(地氣)의 교류가 건강의 근본이라고 한다. 혈액의 점도 개선, 수족 냉증, 고혈압, 고 콜레스테롤 증상 완화, 피부 상처 회복 및 만성염증 개선, 허리통증 완화, 수면의 질 개선 등 이 모든 것들이 접지 효과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장점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효과에도 불구하고 맨발걷기가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어싱을 처음 시작할 때는 반드시 부드러운 땅에서 5~10분 정도만 걸으며 점차 시간을 늘려나가는, 발바닥의 단련 기간을 거쳐야 하며 발과 발목을 충분히 스트레칭 한다. 당뇨병 환자나 말초순환장애가 있는 사람은 돌과 자갈이 많은 길은 반드시 피하고 모랫길에서는 어싱 슈즈 착용이 권장된다. 봄·가을 잔디밭은 쯔쯔가무시 병 위험이 있어 피하는 것이 좋고, 산이나 숲길에서는 금속 쓰레기, 유리 파편 등에 다칠 위험이 있어 파상풍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족저근막염 환자는 부드러운 흙길이나 잔디밭의 맨발걷기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요철이나 딱딱한 지면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반드시 전문 상담을 받은 뒤 실천한다. 언제부턴가 맨발걷기는 만병통치약처럼 회자된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은 물론 관절염까지 특히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담이 넘쳐난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그렇듯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나무에 등을 치는 것이 혈액순환에 좋다는 말에 매일 나무에 등치기를 한 사람이 장 파열로 병원에 실려 간 것처럼. 맨발걷기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포항은 해안 도시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랫길과 걷기 좋은 길 ‘맨발로 40선’이 있어 어싱으로 자연치유하기에 최적의 도시다. 그러나 무작정하기보다 올바른 실천 법을 숙지한 후 조심히, 그리고 꾸준히 걸을 때 비로소 건강이 제대로 지켜질 것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4

청소년들의 한 달 용돈은 얼마가 적당할까

청소년들의 한 달 용돈은 얼마가 적당할까. 부모들에겐 아이들의 용돈 문제가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주제다. 너무 적어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주면 그만큼 돈의 소중함을 모르게 될 것 같아서다. 최근 한 모임에서 포항 양덕에 거주하는 정윤미(47)씨는 “중학생이 된 조카의 생일날 용돈으로 얼마를 주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내 요즘 아이들의 한 달 용돈 이야기로 옮겨갔다. 아이들의 용돈에 관한 이야기는 아이들의 나이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랐다. 청소년들의 용돈이 적게는 5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50만 원이 훌쩍 넘은 경우도 있었다. 현재 중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이미현(45) 씨는 “아이의 용돈으로 한 달에 6만 원을 주고 급할 경우를 대비해서 20만 원이 든 엄마 카드를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게 한다”고 한다. 또 다른 부모(45)는 “교통비를 제외한 순수 용돈으로 일주일에 5만 원씩 준다. 물가도 올라서 아이들 용돈도 거기에 맞춰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했다. 특히 주말에 친구를 만날 때는 5~6만 원이 쉽게 쓰이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편의점에 가면 기본으로 5천 원 정도는 쉽게 쓰고 있다. 아이들이 5만 원 넘게 쓰면 많이 쓰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요즘 아이들 문화가 어른들과 비슷하다. 밥 먹고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도 마시고 노래방, 보드카페 등을 가게 되니 요즘 아이들 용돈 쓰는 게 무섭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돈을 올려달라는 문제로 아이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는데 주변을 보면 아이들은 모자란 용돈을 채우기 위해 주말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지난해 교육부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청소년 용돈은 중학생은 월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 고등학생은 월 10만 원에서 20만 원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한 달에 15만 원 정도 쓰였는데 여기서 금액 차이는 도시와 농어촌 지역 등의 사는 지역과 아이들의 소비 패턴에 따라 차이가 났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용돈을 어디다 쓰는 걸까. 가장 소비가 많이 되는 것은 식비였다. 그리고 영화, 공연, 학용품 구매순으로 많이 쓰였다. 또 디지털 기기로 인한 온라인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남학생들을 주로 게임 하는데 용돈을 많이 쓰고 여학생들은 편의점이었다. 여기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지출이 높았다. 한편, 올 1월 우리은행에서 발표한 청소년들의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이 용돈을 쓰면서 대부분은 저축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실제로 잘 이어지고 있지는 않고 있다. 저축을 하면 3만 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1만 원 정도가 가장 많았다. 청소년들의 용돈은 얼마가 적당한가에 대해서는 간식과 식비, 학용품, 여가 생활비 등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지, 주 단위로 받을지 월 단위로 받을지에 따라 습관 형성에도 차이가 난다. 여기에 내가 사는 곳과 가정환경, 용돈의 용도에 따라 조정을 해야 한다. 청소년 용돈을 얼마를 주면 적당한가를 위해서는 단순히 금액보다는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금액을 정하고 규칙을 세우고 용돈 사용에 대한 앱을 깔아 구체적인 피드백을 하면서 실행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2

오대산 사고(史庫) 가는 길

실록을 만나러 갔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다. 왕의 모든 일을 기록한 실록과 궁궐이나 종묘, 왕실 사당을 새로 짓거나 심지어 수리할 때도 세세한 내용을 모두 기록했다. 이렇게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난 후 그 전체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것을 ‘의궤(儀軌)’라 한다. 오대산에 국립조선왕조 실록박물관이 새 단장을 하고 기념 특별전에 실록과 의궤 등을 전시한다고 해서 휴가 기간에 방문했다. “굽어보니 온 길 가까워 보이지만 / 모르는 사이 아득한 곳 들어왔네 / 봉우리 반은 온통 흰색에 잠기고 / 숲 끝은 아스라이 청색으로 꾸몄으며 / 법 구름은 밖에서 보호해 주고 / 신성 불은 설교 듣는 걸 지켜주네 / 바위 골짜기에 남은 땅 넉넉하니 / 무슨 인연으로 작은 정자 지을까.” 추사 김정희의 ‘완당선생전집’에 수록된 ‘포사등오대산’이다. 오대산사고는 왕실 기록을 보관하려고 1606년 세운 외사고(外史庫)다. 산어귀에서 30리나 들어가야 할 만큼 깊은 산중에 있다. 월정사에서 걸어서 한 시간 반은 가야 닿는 곳에 자리 잡았다. 춘추관 사고, 충주 사고, 전주 사고, 성주 사고에 보관했던 실록이 임진왜란으로 전주를 제외한 모든 사고의 실록이 소실되자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에 조성해 실록을 봉안했다. 춘추관과 더불어 묘향산, 태백산, 강화도, 오대산 이렇게 다섯 곳을 지정했다. 조선 후기에 묘향산은 적성산으로, 강화도는 정족산으로 옮겼다. 김정희, 채제공은 오대산에서 실록들을 꺼내어 바람에 말리는 ‘포쇄’ 작업을 하기 위해 파견된 관리였다. 이곳까지 온 김에 포쇄를 마치고 추사는 오죽헌을 채제공은 금강산을 들러서 갔다는 내용을 시로 적어 남겼다. 우리가 더운 여름마다 평창으로 피서와서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걷고 입구의 박물관을 들러서 가듯이. 오대산사고는 산속에 있어 주기적인 포쇄가 필요했다. 월정사를 방문할 때마다 늘 비가 왔다. 촉촉하게 물든 산을 하얀 구름이 기어오른다. 절경이다. 이렇게 항상 과다한 습기에 노출돼 있지만 장서 시설이라서 불을 때는 온돌을 설치할 수 없었다. 조선왕조는 사고 소장 서적들의 습기를 제거하고 안전한 보존을 위해 정기적으로 사관을 파견해 포쇄를 진행했다. 주기는 원래 2년에 1회가 원칙이었으나 자연재해와 사관 부족으로 지켜지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이들의 갖은 노력은 일제의 침략으로 무색해졌다. 일본에 남은 실록과 의궤는 정부와 국회, 민간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6년과 2011년 국내로 돌아왔다. 글을 쓰다 보면 초고를 쓴 이후에도 수십 번 퇴고를 거쳐야 글 한 편 완성할 수 있다. 그러고 인쇄를 넘겨도 다시 보면 고칠 곳이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실록도 인쇄한 것이지만 수정한 곳이 많았다. 삭제, 수정, 첨가, 띄우기, 붙이기, 순서 바꾸기, 인쇄 오류 등 붉게 표시해서 공유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또 전쟁을 피해 실록을 짊어지고 산을 넘고 먼 거리를 이동한 기록도 이번 전시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마지막 방에는 오대산 사고의 사계절을 영상으로 담아 보여준다. 또 역사를 기록해 책으로 엮는 과정을 재현한 영상을 보고 1층으로 내려와 의궤와 실록의 한 부분으로 책갈피도 만들었다. 다시 만들어진 실록은 병자호란이나 6·25전쟁 같은 위기를 넘기고 무사히 지금까지 전해졌다. 실록은 1968년부터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양이 방대하다 보니 1993년에야 작업이 끝났다. 지금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인터넷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실록을 읽을 수 있다. 기록의 나라답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2

한여름 폭염 고통이 사라질 만큼 냉기 맴도는 봉화 관창폭포

이른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푹푹 찌더니 또다시 극한의 폭우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럼에도 비는 그치고 또다시 달달 볶아대는 날씨가 이어질 것이다. 즉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바다는 작열하는 태양과 거친 파도로, 열기와 박력 넘치는 젊음의 장이 되고, 계곡은 가족들의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피서지가 되어 방문객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여름날엔 발 디딜 틈도 없는 피서지보다 호젓하게 더위도 식히고, 시원한 물줄기에 발 담그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한적한 폭포가 있는 계곡은 어떨까? 청량산과 낙동강을 끼고 달리는 최고의 드라이브길인 35번 안동 방향 국도를 따라서 달리다 보면, 봉화군 명호면 소재지 이나리 출렁다리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 신선이 노니는 다리라는 뜻을 품은 선유교마저 거치면 관창2교 다리가 나온다. 거기서 한번 더 우회전 한 뒤 강길을 따라 200여m를 가다 보면 마침내 목적지 관창폭포가 보인다. 낙동강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 관창폭포를 찾아가는 여정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서정을 느낄 수 있다. 35번 국도는 미슐랭 그린가이드 관광지도에서 유일하게 별점 및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청량산의 아름다운 경치 그리고 시원한 물줄기를 따라가는 드라이브는 더위에 늘어진 몸과 마음에 활력을 안겨준다. 청량산은 열두 봉우리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청송 주왕산, 영암 월출산과 함께 국내 3대 기악으로 꼽히는 청량산의 경치를 벗 삼아 관창폭포로 가게 되는데, 관창2교를 건너지 않고 우측 강변로에서 만리산길, 바로 좌회전하면 주차장이 나온다. 오솔길로 이어진 폭포 길은 잘 다듬어진 거의 평지와 같은 산림이 우거진 비포장도로다.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숲길을 따라 200m여 미터쯤에 가면 광폭정이라는 정자와 작은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퇴계 이황 선생께서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 거닐면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정취에 탄복, 시를 남겨놓은 시비와 관창폭포 석비가 있다. 관폭정 정자에는 광폭정 신건기와 관창폭포 ‘시’문(퇴계 이황)이 걸려 있다. 이곳에 화장실과 정자 등이 있어 숨을 고르고 여유를 한 껏 누릴 수 있는 쉼터다. 퇴계 선생이 관청폭포를 찾아 네 수의 시를 남겨 더욱 유명해졌다. 쉼터에서 폭포로 가는 길은 계곡 위로 설치된 데크 길로 짧은 거리에 위치해 있다. 데크 위에서도 폭포를 감상할 수 있고 폭포 앞으로 걸어 내려갈 수도 있다. 계곡에 뿌리내린 기암괴석의 절경과 세찬 계곡물에 잘 다듬어진 반석 위로 명경같은 맑은 물이 소를 이룬다. 흐르는 계곡 청량한 물소리를 듣다 보면 퇴계 선생이 읊었던 세계, 절경 속으로 빠져든다. 만리산(792m)에서 흘러 내려온 관창 폭포수의 물줄기는 은하수처럼 쏟아진다. 어느새 푹푹 찌는 여름날 등허리에 흐르는 땀은 사라진다. 한여름 관통해온 폭염의 고통이 사라질 만큼 온몸에 냉기가 맴돈다. 신선들도 아껴두었을 풍경, 글자 그대로 비경이라 표현해도 아깝지 않다. 구불구불 이어진 계곡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빼곡히 앉아 정겹다. 물러앉아 양보하고 틈새 내줘 배려하니 흐르는 계곡물도 비껴가고 돌아간다. 구슬 같은 물보라를 찬란하게 튕기면서 청아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진다. 폭포를 감싸고 있는 사방절벽에 사로잡히고, 시원한 폭포 소리에 또 한번 사로잡힌다. 오염되지 않은 원시적인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산림 무성한 오솔길을 새소리 벗 삼아 걷다 보면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관창폭포는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원시적 자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과 청량산을 끼고 있어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 드라이브, 숙박 등 여행 여건이 잘 갖춰진 여행지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2

2025 대구교육청 영양캠프, 대구보건대 식품영양학과 주관으로 성료

대구보건대학교 식품영양학과는 지난 19일과 20일 경북대학교 사범대 부설초등학교 강당에서 “2025년 대구교육청 영양캠프”를 진행했다. 관내 초등학생과 학부모 220명이 참여했다. 이 행사는 대구시교육청 교육복지과가 주관하고 대구보건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주최한다. 식품영양학과 김미옥 교수가 책임연구원으로 2023년부터 매년 운영하고 있다. 관내 초등학생의 건강한 식습관 확립을 목적으로 온 가족이 함께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양캠프”는 19일에는 편식(식품알레르기 포함)를 주제로, 20일에는 성장(과체중, 저체중 포함)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오전 행사는 개회식과 함께 전문가 강의 오후는 위생 비누 만들기, 건강 치아 만들기, 키링 만들기, 영양 만두와 한방 캐러멜 만들기가 이어졌다. 특히 오후에는 영양교사와 함께하는 영양상담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관내 영양교사와 학부모 및 어린이가 1대1 맞춤형 영양상담을 실시했다. 또 온라인으로 펼쳐진 영양게임, AI 건강송 만들기, 영양플래너를 작성하여 어린이 스스로 실천하는 건강한 식습관 체험 활동도 진행됐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식습관은 아이들의 평생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학교와 가정이 협력해 학생들이 바른 식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본 행사에는 대구시 강은희 교육감, 대구보건대학교 김지인 대외부총장, 대구시 교육청 교육복지과 이원근 과장, 박현주 사무관, 신은경 장학사, 대구영양교사회 이해영 회장, 대한영양사협회 권미경 대구경북지부장, 경북대 부설초등학교 윤정희 교장 등이 참석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7-22

77주년 제헌절, 헌법의 제정 과정을 다시 본다

국경일이면서 휴일이 아닌 제헌절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법치국가의 모법을 제정한 날은 헌법수호의 필요성에 비춰볼 때 상징적 의미가 커 국경일로서 위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헌절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반을 마련한 걸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헌법의 제정과정을 알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민주국가 국민의 도리로서 마땅하다. 제헌헌법은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날(1392년 7월 17일)에 맞춰 공포됐다. 이는 법치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왕조의 역사적 계속성 유지를 위한 것이며 제헌절도 이날로 정했다.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최초로 국민 직접투표를 통해 198명의 국회의원(임기 2년)을 선출해 제헌국회를 구성했다. 1948년 5월 31일 개원해 제1차 본회의에서 초대 국회의장으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6월 1일 제2차 본회의에서는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전형위원을 각 도별로 10명 선정했다. 6월 2일 제3차 본회의에서는 전형위원들이 선임한 헌법 기초위원 30명을 선정 보고했다. 이로써 헌법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헌법 기초위원회가 완성됐다. 제17차 본회의에 상정된 헌법 초안은 조헌영 헌법기초위원이 낭독하고, 서상일 위원장이 헌법의 유래와 논쟁 사항, 유진오 전문위원이 헌법의 기본정신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름을 고려로 할지, 조선으로 할지, 대한민국으로 할지를 두고 여러 주장이 있었다. 1948년 7월 12일 본회의에서 10장 103조의 대한민국 헌법이 탄생했다. 같은 해 7월 17일 이승만 국회의장은 헌법안에 서명하고 대한민국 헌법 공포식을 거행했다. 재헌국회 회의록을 보면 헌정사의 첫 장을 연 선대들이 치열한 노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국민은 제헌절을 맞아 헌법에 담겨 있는 가치와 정신을 되새기고, 법치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이를 지키려는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5-07-20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유진오 박사 추모비

제헌절을 맞으니 제헌 헌법을 초안하신 현민 유진오 박사(1906~1987)가 생각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격동기였던 1948년 대한민국 제헌 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핵심 인물의 한 사람이다. 초대 법제처장, 한일회담 한국 대표를 맡았고, 문인과 정치가, 교육자였다. 유진오 박사는 우리 헌정사의 뿌리를 세운 대표적인 인물이다. 1906년 서울에서 출생한 유 박사는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고, 1929년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예과 강사를 거처 보성 전문학교 법학 교수가 됐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 ‘조선지광’ ‘현대 평론’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도 등단했다. 동반작가로 ‘갑수의 연애’ ‘빌딩 여명’ 등의 작품을 썼고, 1938년 장편 ‘화상보’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법학자로서 명성 못지않게 그는 교육자로서도 존경을 받았다. 유 박사는 1950년부터 1965년까지 고려대학교 제 4~6대 총장으로 재직하며, 법학, 정치학, 경제학 등의 사회과학 분야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학문의 자율성과 대학의 민주화라는 교육철학을 펼쳤다. 정치 무대에서도 그는 ‘지성 양심’이었다. 7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야당인 신민당 총재를 지내며 당시 여권의 권위주의에 맞섰다. 외교적 사안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1950년대, 한일회담 한국 측 대표로 참여해 한국의 자존과 민족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유 박사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획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법의 울타리를 세우는 데 바쳤으며 특히 제헌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적 조항의 철학적 배경을 제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유진오 박사는 대한민국의 첫 헌법을 설계하며 이 나라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 선각자로 기억된다. 유진오 박사가 남긴 업적과 철학은 77주년 맞는 제헌절의 의미를 더 깊게 한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5-07-20

대구 문단, 여름 맞아 동인지 발간·문화행사로 문학 활력 충전

대구 지역의 문학인들이 여름의 열기 속에서 창작의 꽃을 피우며, 동인지 발간과 다채로운 문화 행사로 지역 문학의 새로운 활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대구문인협회 ‘대구문학’ ‘200호 기념식 대구문인협회(회장 안윤하)는 지난 18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문예지 ‘대구문학’ 통권 200호 출판을 기념하는 기념식과 ‘대구 복합문학관’조성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김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민정 편집주간 겸 부이사장, 장호병 부이사장을 비롯해 이창환 대구예총 회장, 장두영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장, 오철환 현진건기념사업회 이사장, 원준연 대전문인협회 회장, 신홍식 대구글로벌메세나협회 회장 등 전국의 문인 및 예술계 인사와 대구문협회원 300여 명이 참석했다. 1부 기념식은 여혁동 편집주간 시인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대구문학’ 발간에 헌신해 온 개인 및 단체에 감사패가 수여됐다. 이어 오영희 낭송위원장이 서종택 시인의 ‘사막’을 낭송하며 문학적 감동을 더했고, 신현욱 테너가 축하곡 ‘희망의 나라로’를 열창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안윤하 회장은 인사말에서 “'대구문학'은 지역 문인의 혼과 문학정신이 집약된 귀중한 성과물이며 앞으로도 그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부에서는 ‘대구 복합문학관 조성’을 주제로 공청회가 열렸다. 김성문 수필가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공청회에서는 폐교 리모델링을 통한 문학관 공간 조성, 이상화·현진건·김성도 등 대구 출신 문인의 문학관 클러스터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신노우 수필가, 최규목 시인, 오철환 소설가, 김종헌 평론가 등이 패널로 참여해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으며 청중석의 엄창석 소설가, 이재순·김동원 시인, 박기옥 수필가 등의 질문과 의견이 이어져 토론의 깊이를 더했다. 행사 마지막 순서로는 서예가 김부기 수필가가 휘호한 ‘용비어천가’를 안윤하 회장에게 헌정하며 문학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연출돼 큰 박수를 받았다. 대구문인협회는 ‘대구문학’의 안정적 발간을 이어가는 한편 복합문학관 조성 사업을 통해 지역 문학의 창조적 기반을 다져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제7회 혜암아동문학회 문학상 시상 혜암아동문학회(회장 윤미경)는 제7회 혜암아동문학상 시상식과 ‘혜암아동문학’ 제22호 출판기념회, 혜암아동문학교실 제22기(강사 정순오, 권영욱) 수료식을 지난 19일 오후 매일신문사 11층에서 개최했다. 유병길 운영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혜암 최춘해 선생님은 혜암아동문학회 발전기금을 기증하시고 22년동안 헌신하셨다”고 밝히고 “혜암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혜암아동문학회를 더욱 발전시켜가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장호병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과 안윤하 대구문인협회 회장, 하청호 대구 문학관 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동시 부문에는 황대겸씨(대구시 동구)가 ‘물음표’로, 동화 부문에는 김수정씨(서울 송파구)가 ‘당신의 기억을 저장하시겠습니까’란 제목으로 각각 수상 했다. 수상자는 상패와 부상으로 상금 150만원, 명예 회원증을 전달 받았다. 이번 공모에는 전국에서 342편의 작품이 응모했으며 동시 부문은 이안 시인. 동화 부문은 소중애 동화 작가가 심사를 맡았다. 최병창 유족대표는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혜암아동문학회 발전에 뒷받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윤미경 회장은 “혜암아동문학회를 통해 그동안 많은 제자가 배출돼 아동문학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며 자랑했다. 한편 이날 혜암아동문학회는 ‘혜암아동문학’ 22호 출판기념식과 아동문학교실 수료식도 함께 거행했다. △문장인문학회 제5회 문장인문학 심포지엄 열어 문장인문학회(발행인 장호병·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는 지난 12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국학진흥원 인문학정신 연수원에서 “문학의 역할과 세계 성에 관한 담론”을 주제로 재5회 문장인문학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1부, 2부, 3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특히 1부에서는 2025 계간문장 신인 작가상 시상식과 문장 인문학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문학의 역할과 세계 성에 대한 담론을 주제로 김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발제한 뒤 이경은 수필가, 신혜지 시인, 이원석 수필가가 질의응답과 토론을 이어갔다. 2부에는 라온미니연극단의 수필극(뜨개질하는 오후), 3부는 계간 신인작가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김창권·최삼태·김인숙·김태현·김국현·손은경·이화영 시인과 손승화·안병숙 수필가, 유병홍 소설가가 신인상을 수상했다. 장호병 부이사장은 “지역문학발전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 문단에도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장작가회(회장 이병욱)는 다음날인 13일 학봉종택과 봉정사 등 안동일대를 탐방했다. /방종현·유병길·이병욱 시민기자

2025-07-20

인사청문회를 보고

국가의 주요 공직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그 인물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 제도는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권력의 핵심 인물들이 과연 자격을 갖추었는지, 국회가 대신 묻고 평가하는 이 제도는 선진국에서도 다양하게 운영된다.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가 도입 25년이 지난 지금, 그 본래 취지를 점점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1999년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고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전문성·정책 능력을 국민 앞에서 검증하겠다는 명분에서 출발했다. 제도가 정착되기도 전에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 제도는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질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야는 정권에 대한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집중하면서 제도의 근본 목적은 퇴색됐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 일부 직위는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반면 장관 등 다수 직위는 ‘보고 청문회’ 형식으로 동의 없이 임명이 가능하다. 여대야소의 정국에서는 야당이 청문회에서 아무리 부적격 사유를 지적해도,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이 강행되는 일이 반복되어왔다. 이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한 인사검증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도덕성 검증이 흠집 내기로 변질 되면서 사생활 침해와 여론몰이로 심화 되었다. 재산 형성 과정, 병역, 위장전입 등 사회적 기준이 엄격해짐에 따라 검증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거의 사소한 실수까지 낱낱이 도마 위에 올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마녀사냥식 청문회’는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청문회 대상자가 스스로 사양하면서 인재 등용에 걸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료 제출의 기준과 한계도 심각한 문제다. 제출 요구와 미제출의 한계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청문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이제는 인사청문회가 본래 취지에 맞게 정착돼야 한다. 먼저, 정치 공세가 아닌 정책 검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후보자의 전문성, 국정절학의 이해, 향후 비전 등은 분명해야 한다. 다음은 청문회 기준의 명확화와 일관성이 필요하다. 도덕성 기준은 지나치게 과거를 추궁하기보다는 현재의 판단력과 공직 수행의 적합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면죄부’나 ‘마녀사냥’ 어느 쪽도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료 제출에 대한 실효적 강제 수단을 도입하여 청문회가 형식적 절차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회가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인사 절차를 중단하거나 청문회 기한을 연장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인사청문회는 단순히 공직 후보자 한 명의 자질을 넘어서, 정부의 도덕성과 국정철학을 가늠하는 거울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청문회가 정착되길 바란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07-20

여름꽃처럼 뜨겁게 피어보자

이른 폭염이 찾아왔다. 6월 말부터 시작된 더위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날이었다. 이 더위 속으로 꽃 핀다. 여름꽃들이 핀다. 화려한 주황색 능소화와 붉은 목백일홍이 핀다. 고운 이름의 부용화도 어느 길목에 피었으리라. 제 안의 색을 모조리 꺼내어 피는 여름꽃들. 폭염 속에서도 저리 만발이다. 저렇게 뜨겁게 피는 것들에게는 눈부신 아름다움만큼 위험한 광기가 숨어있는 법이다. 나 미쳤다고 대놓고 피는 꽃들. 그 광기에 한번은 물들고 싶어진다. 그 요란스러운 깔깔거림에 나도 미친 척 끼어들어 보고 싶다. “사는 일이 강퍅하여 / 우리도 가끔씩 살짝 돌아버릴 때가 있지만 / 그래서 머릿골 속에 조금 맺힌 꽃봉오리가 / 새벽달도 뜨기 전에 아주 시들어버리기도 하지만 // 부용화나 능소화나 목백일홍 같은 것들은 / 속내 같은 거 우회로 같은 거 은유 같은 거 빌리지 않고 / 정면으로 핀다 / 그래 나 미쳤다고 솔직하게 핀다 // 한바탕 눈이 뒤집어진 게지 / 심장이 발광하여 피가 역류한 거지 // 거참, 풍성하다 싶어 만질라치면 / 꽂은 것들을 몽땅 뽑아버리고 내뺄 것 같은 / 예측 불허의 / 파문 같은 / 폭염 같은 / 깔깔거림이 // 작년의 광증이 재발하였다고 / 파랗게 머리에 용접 불꽃이 인다고 / 불쑥불쑥 병동을 뛰쳐나온 목젖 속에 / 소복하게 나방의 분가루가 쌓이는 7월이다”- 문성해 시 ‘여름 꽃들’ 이 땅의 여자들은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처럼 늘 가녀린 모습으로 얌전하게 살기를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나 또한 조상부터 내려온 그 끈질긴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얌전한 여자의 표본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오십 중반 더 이상 여자가 아닌 한 명의 사람이 속에서 자꾸 불거져 나온다. 삶은 남자 여자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니 누구든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리라. 누군가 만들어준 프레임에 갇혀 내가 가진 색깔을 내놓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저 불타듯 피는 여름꽃처럼 ‘속내 같은 거 우회로 같은 거 은유 같은 거’ 없이 직방으로 한번은 피어나고 싶어진다. 생활인으로서 내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시인으로서는 그런 미친 정열을 닮고 싶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폭우 한 번에 제 몸뚱이 다 내던져 바닥을 뒹구는 능소화 그 주홍빛 꽃송이들처럼 그리 뜨겁게 살다 뜨겁게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역류한 심장의 피로 붉게 물든 목백일홍과도 오래 눈 맞추고 싶다.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 지글지글 끓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여름을 나는 일이 갈수록 녹록하지 않다. 후끈한 열기의 세상에서 이 여름을 피하지 않고 여름꽃들 같이 한번 화들짝 피어 보자. 뜨거운 것이 여름이고 뜨거움이 있어야 풀과 나무와 곡식이 자란다. 능소화의 주홍으로 목백일홍의 붉음으로 우리도 화끈하게 여름을 건너가 보자.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7

서남시장 FLEX, 맛도 정도 다 있는 그곳

“언니야, 뭐 하는데? 나는 서남시장 왔다.” 엄마와 함께 주말 점심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걸려온 이모 전화 한 통에 우리는 곧장 서남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대구 달서구 감삼동에 위치한 서남시장은 1984년 개장해 지금까지 오랜 시간 지역주민들의 삶과 함께 호흡해 온 생활형 시장이다. 지하철 2호선 감삼역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로 접근성도 뛰어나다. 공영주차장도 두 곳이나 마련되어 있어 자가용으로 이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시장 골목에는 반찬, 떡, 과일 등이 반갑게 얼굴 내밀며 인사하는 모습이 전통시장의 정겨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서남신시장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음식은 ‘족발’이다. 덕분에 ‘맛의 거리’로 불릴 만큼 족발은 이 시장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다. 족발로 유명한 골목에는 30년 넘는 오래된 점포부터 SNS를 통해 입소문 난 맛집까지 다양한 족발집이 즐비하다. ‘김주연왕족발’, ‘한상일왕족발’, ‘만원족발’ 등은 주말이면 대기 줄이 생길 정도로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떠올리면 군침이 도는 맛있는 족발 덕분에 시장을 많이 찾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소비자들의 발길도 꾸준히 늘고 있다. 족발 외에도 삼계탕, 떡갈비, 전통떡, 만두, 분식류 등 가성비 좋은 먹거리들이 시장 곳곳에서 우리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들에 마음이 부자가 된 듯했다. 먹거리만 풍성한 게 아니었다. 시장 중간중간에는 잡화점, 옷 가게, 문구점도 자리 잡고 있어 장 보러 왔다가 추억을 마주치는 느낌이었다. 낡은 간판 밑 오래된 의류점에는 옛날 스타일 원피스들이 가득했고, 오래전 엄마가 입던 옷 같아 괜스레 정겨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시장의 활기였다. 상인들은 손님 한 명 한 명을 반갑게 맞았고, 서로 안부를 나누는 이웃들의 인사도 따뜻했다. 장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는 요즘 보기 힘든 정서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또, 인근에는 두류공원, 이월드, 중리동 곱창 골목, 퀸스로드 패션 거리 등 다양한 명소들이 있어 시장 탐방과 지역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시장 탐방과 함께 하루 코스로 즐기기에 제격이다. 서남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물건을 사면서 자연스럽게 덤을 얹어주시는 상인의 손길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골라주려는 마음 씀씀이에서 진짜 ‘시장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대형마트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정이 서남시장에는 살아 있었다. 골목 끝 작은 국밥집에서는 소박한 점심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택배 상자를 한 손에 든 상인 아저씨,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가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부모님과 아이들까지. 각자의 사연이 모여 시장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시장 입구 쪽에는 새롭게 단장한 간판들과 LED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옛 전통시장 특유의 정취는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깔끔하게 정비된 통로와 편리한 시설 덕분에 젊은 세대도 부담 없이 시장을 찾을 수 있다. 구석구석 마련된 고객 쉼터 덕분에 잠시 앉아 숨을 돌리기도 좋았다. 우리는 이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사고 달콤한 간식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이모가 함께 웃으며 나란히 걷는 모습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어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아빠와 동생까지 데리고 다시 한 번 서남시장 나들이를 하고 싶다. 한 번 방문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맛과 정이, 이곳엔 분명 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7

살아있는 장터 포항 오천 오일장

오일장(五日場)은 닷새마다 서는 지역 전통시장이다. 간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다슬기를 사기 위해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천 오일장을 찾았다. 대형마트나 로컬푸드 직매장에도 있지만 굳이 더운 여름 뙤약볕 아래 오일장을 찾은 것은 살아있는 다슬기를 사기 위함이다. 손질된 냉동 다슬기는 비싸기도 하지만 중국산도 많다. 도로 갓 길을 점령한 노점상들. 얼핏 중구난방인 듯하지만 5일마다 서는 장날은 엄격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다슬기를 찾으며 시장 구경을 한다. 과일, 뻥튀기, 도넛, 족발, 생선, 젓갈, 채소, 언제나 긴 줄을 서는 가마솥 통닭에 각종 꽃 화분까지 없는 게 없다. 닷새마다 피는 삶의 풍경에 정겨움이 묻어난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불렀다던 유행가 한 구절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노래 속 장터도 오일장이다.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은 포항 근방으로 1·6일 기계시장, 2·7일 흥해시장, 3·8일 구룡포시장 4·9일 안강시장, 5·10일 오천시장이 있다. 기계시장을 제외한 대부분은 상설시장을 겸한다. 세월이 좋아지며 잘 갖춰진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 로컬푸드 직거래까지 가능해졌지만, 오일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서민들의 삶 가까이에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장터는 역사와 문화가 깃든 삶의 공간이다. 근대의 상설시장이 형성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오일장은 자생적 상거래의 현장이다. 조선 전기에는 장이 서는 간격이 일정치 않았으나 조선 후기 들어서면서 오일장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30리에서 60리 간격으로 장터가 형성되었고 날을 달리해 돌아가며 장이 열리니 보부상들은 이를 따라 순회하며 장사를 했다. 이들을 ‘장돌뱅이’라 불렀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봉평장도 오일장이다. 오일장은 단순히 경제적 상거래 장소를 넘어 시대마다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조선시대엔 민심이 모이는 날로서 탐관오리의 착취에 항거하는 날이 되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독립운동의 디데이로 활용되기도 했다, 혼담이 오가고 마을의 여론이 형성되던 곳. 생활정치와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대형마트와 상설시장의 출현으로 유통시스템이 변화하면서 전통시장이 많이 줄었다. 야외시장이라 냉난방이 어려운데다 화장실과 주차 같은 편의시설이 미흡하고 위생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식재료의 원산지나 영양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시장’을 찾는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활기가 넘치고 대형마트에서는 할 수 없는 흥정의 재미를 즐기기도 한다. 볼거리가 많다보니 시장 구경 자체가 힐링이다. 청결 문제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단순 시장이 아닌 우리 민족의 정취와 지혜가 담긴 상징적 유산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어 문화산업으로서의 전승 가치도 지닌다. 장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듯 변함없이 사람이 북적인다. 불편함 마저 즐기는 그곳에는 따뜻함도 배어있다. 닷새마다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오일장은 일상에서 즐기는 작은 축제다. 장터에서 구입한 생 다슬기를 잘 손질해 소분해서 냉동 보관한다. 그냥 뿌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7

로컬푸드로 실천하는 탄소중립

며칠 전 도서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장을 지나가며 오이를 샀다. 버스 정류장 옆의 한 거리에서 자리를 잡은 할머니 몇 분이 집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을 팔고 계셨다. 이날은 유독 제철에 나온 채소들이 풍성하기도 하고 가지랑 오이는 윤이 나 보였다. 할머니들은 정성껏 봉지에 싸 온 채소와 과일을 플라스틱 용기로 매대 삼아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바로바로 담아 주신다. 필요한 오이 3개를 사고 이천 원의 값을 치렀다. 이때 비상금처럼 지갑에 넣어둔 현금이 빛을 발했다. 보통은 계산하면서 카드나 계좌이체를 물어보지만 여기서는 할머니들에게 직접 현금으로 소통하는 게 최고다. 오랜만에 직접 현금을 건네는 시민기자에게도 대형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 따뜻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할머니들이 팔고 있는 먹거리들은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되는 것들로 로컬푸드라 불리는 것들이다. 제철 채소인 쌈 채소, 가지, 오이, 파, 감자, 과일 등으로 집에서 식사 준비할 때 기본이 되는 먹거리다. 이것들은 유통과정에서 이동 거리가 비교적 짧아 탄소 배출량도 상대적으로 적다. 로컬푸드는 중간 유통단계나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는 보통 반경 50km 이내에서 생산한 지역 농산물이다. 농업인이 직접 생산부터 판매까지 담당해 탄소발자국이 적은 친환경적인 먹거리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먹거리들의 대부분은 생산지로부터 소비지까지 이동 거리가 멀다. 외국산의 경우는 비행기 등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 에너지가 배출되고 있다. 우리가 마트에서 흔히 보는 필리핀산 바나나, 칠레산 블루베리, 아보카도 등이 그렇다. 특히 바나나는 계절과 상관없는 먹거리로 이동 거리가 아주 멀어 탄소 배출량이 많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국산 콩을 운반할 때 온실가스가 13g인 것에 비해 미국산 콩을 운반할 때는 37배나 많은 463g이라고 한다. 먹거리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우리가 먹는 매일 먹는 음식은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에서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동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는 최근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기후 위기가 전 지구적인 문제인데 먹거리에서도 그만큼 탄소중립이 중요해졌다. 어쩌면 거리에서 손수 기른 먹거리들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이 탄소중립의 실천자들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탄소중립 중 하나는 바로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거다. 식탁에서의 로컬푸드가 중요한 이유는 먹거리의 이동 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가까운 곳에서 소비자와 연결되고 있어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요즘 마트 내에서도 로컬 직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인기라는 증거다. 물론 생산자들에게도 월급처럼 소득이 발생하니 좋은 건 서로 마찬가지다. 로컬푸드 진열 매대에는 방금 수확한 듯한 제철 먹거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트의 로컬푸드 코너를 자주 이용하는 주부 이현아(52) 씨는 “ 내가 사는 지역의 농산물이라서 좋고 생산자의 주소와 이름, 연락처까지 적혀 있어 더 믿음이 간다. 건강에도 좋고 가격도 아주 저렴해서 기분 좋게 구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