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여한 모임의 자기소개 시간에 별칭을 짓게 되었다. 가장 자신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낱말이나, 되고 싶은 사람도 좋고 이유 없이 끌리는 낱말도 좋다고 했다. 이름 석 자로만 불리다가 갑자기 별칭을 짓는 것을 다들 어색해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전부 난색을 표했다. 그동안은 이런 별칭을 지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다. 시민기자는 ‘모란’으로 정했다. ‘모란’은 문학 모임에 들어가서 처음 문학기행을 간 곳이 도산서원이었고 그때 모란이 만발해서 연신 감탄을 했더니 함께 갔던 회원들이 지어준 별칭이어서 의미가 깊은 이름이다.
각자 왜 그런 별칭을 지었는지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무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던 분들이 발표 시간이 되자 다들 나름의 이유를 들어 설명을 잘하셨다. 언제나 좋은 일이 있길 바란다는 뜻의 크로바로 정한 분, 부자가 되는 게 꿈이라서 부자로 정한 분, 무지개처럼 황홀하게 살고 싶어서 무지개로 정한 분, 어떤 분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고양이 이름으로 짓기도 했다. 수줍음 가득한 한 참가자는 자신은 별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할 자신은 있다며 성실이라고 정했다.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정한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로 정한 사람 다양했다. 언젠가 읽은 시가 생각났다.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 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 황금노을 초록별하늘 새벽미소 한빛누리 하늘호수 /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렸지요? /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하지요? //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 앉아서마늘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 완전 부엌냄새 집구석냄새에 김빠지지 않을까 미안스러웠어요 / 하긴 속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죠 / 암만 하늘할애비라도 / 마늘 짓쪄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 이진명 시 "‘앉아서마늘까'면 눈물이 나요" 부분
주어진 이름 외에 자신을 대변하는 별칭을 짓는다는 것이 간단해 보였는데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물에서 이름을 빌려온다면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물 찾기를 궁리해야 하고 그 사물이 나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그 연관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위의 시인은 자신이 처해있는 가장 밀접한 상황에서 이름을 불러왔다. 부엌에서 맴돌며 슬픔의 시기를 보내고 있어 ’앉아서마늘까‘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우리 모임의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자신과 연관이 있는 낱말을 불러와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에서 닉네임을 정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오프라인 만남에서 이렇게 별칭을 정해서 상대방을 부르는 것은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소소한 일 같지만 이렇게 한 번씩 자신의 틀을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우리는 별칭 하나로 붉게 피는 모란도 되었다가 가녀린 코스모스도 되고 큰 부자가 되어 마음 넉넉해지기도 하고 무지개가 되어 황홀히 빛나기도 한다. 가뭄을 적시는 물방울도 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가 되기도 한다. 나라는 범위를 벗어나 우주의 다른 한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은 아주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모임 사람들은 잊는다 해도 그들의 별칭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엄다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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