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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여름을 즐기는 방법

등록일 2025-07-29 19:57 게재일 2025-07-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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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정사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연못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배롱나무가 한껏 붉은 빛을 뽐내는 계절이다. 하필 무더운 여름에 피는지, 그래서 더 고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중에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현내리 두봉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도원정사에 꽃을 구경하러 나섰다. 기계면 소재지로 들어서니 동네 뒤로 내비게이션이 안내한다. 조용한 마당에 차를 대니 솟을대문이 맞이한다.

문이 잠겼나 싶어 가까이 가 손으로 미니 끼익 소리를 내며 밀렸다. 문을 열자마자 연못이 우릴 반긴다. 연잎이 가득해 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조선 3대 정원인 영양의 서석지도 마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연꽃을 가득 담은 연못이 있어 건물보다 못이 주인공 같았는데 도원정사가 딱 그렇다.

대문에서 건너편 건물까지 못 중앙에 나무다리가 놓였다. 대문 옆에 배롱나무가 섰고, 건너편 다리 끝에 한 그루가 붉게 웃으며 연못에 제모습을 드리운다. 다리와 계단에 꽃잎을 떨구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곳에 잘 오셨노라고.

정사(精舍)란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 수양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도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말동의 호로 그를 기리기 위해 창건하였다 한다. 1480(성종 1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연산군이 즉위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며 많은 시문('도원문집')을 남겼다. 댓돌에 올라 솟을대문으로 고개를 돌리니 오늘따라 하늘의 구름이 장관이다. 대청에 앉아 학문을 논하던 선비들이 저절로 시를 읊게 만들었을 풍경이다.

한참 꽃놀이를 즐기고 나니 배가 고팠다. 기계 들이 보이는 곳에 중국집이 있어 들어갔다. 조용한 동네라 손님이 없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만석이었다. 짜장면을 비비며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주방에 어르신이 부모님이고 50년이나 짜장면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멀리서도 옛날 짜장맛이 그리워 찾아온다고 했다. 달콤한 짜장면으로 추억까지 맛보았다.

면 소재지에서 서숲을 지나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니, 소나무 숲이 또 나타났다. 지가1리 마을숲이라는 이름표를 보고 우리 조상님들이 곳곳에 마을숲을 만들었구나 감탄하며 지나는 순간, 가로수가 요즘 보기 드문 미루나무였다. 잠시 차를 세우고 찰칵, 이제 기북으로 향했다. 덕동숲을 걷기엔 더운 날씨라 멀리서 보고 다시 경북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덕동마을에서 수목원까지 구불구불 산을 오르고 내렸다 다시 올라야 했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서인지 칡과 아카시가 스물스물 길 안으로 넘어왔다.

경북수목원에 도착하니 기온이 시내보다 4도 정도 내려갔다. 차에서 내려면 숨이 턱 막히는 아랫동네와 달리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가 우릴 맞았다. 나무 그늘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가니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눕거나 앉아 여름을 즐기는 어르신들로 숲이 꽉 찼다. 늦은 점심을 싸 와서 먹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리처럼 산책하며 숲에서 더위를 식혔다.

수목원의 계절은 조금 늦어 수국이 이제 피기 시작했다. 무궁화 동산에 색색의 꽃이 폈고, 연못 중앙 독도 주변에 분수가 물줄기를 뿜었다. 한참 물멍을 때리며 가져간 냉커피를 나눠 마셨다. 노랑어리연 사이로 잉어와 붕어가 오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맨발 걷기를 하고 수돗가에 발을 씻으니, 온도가 1도 더 내려간 듯하다.

수목원에서 내려가는 길, 멀리 영일만이 눈에 들어왔다. 산을 다 내려오니 아직 뜨거운데도 길가에 노지 수박을 팔고 있었다. 빨갛게 복숭아가 익어가고 있었다. 여름이 뜨겁게 애쓰는 이유였다. 포항을 크게 한 바퀴 돌아 집으로 향하니 눈도 마음도 온통 푸르렀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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