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도
포항에서도
어정쩡한 곳에 잔뿌리 내린 세월 이마 위의 잔설
소모되어 낡았어도
그래도 정갈한 시간이 진열되어 있네
별 아니면 올려다 볼 일 없는
냇물 아니면 내려다 손 내밀 일 없는
라면 끓이듯 간편한 삶
못마땅함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와 같은 일상 솜을 씹듯 두부 한 점 우물거리면
그래도 달래양념장 향긋함이
콧등을 짚는다
코팅 된 과자봉지처럼 빛나던 시절은 언제였는가
달콤함에 저당 잡혔든,
그렇게 부풀어만 있었던,
기실 편방(偏旁)이거나 부수적(附隨的)이었던,
하산의 의미를 총총 재촉하며 바라보는
저 널려있는 시간과 사건들이여 문득, 처연하게 찬란한
아직 남아 있는 길의 보푸라기
반짝 빛나다가 사라지는 것들의 야무진 허술함 처마에 걸린 명태코다리가
바람, 바다, 산의 울음에 건조되면서
시간을 관통한다,
상처는 스스로 여며야 한다.
진전리는 오천에서 경주 기림사로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인데, 거기에 조그만 구판장이 있다. 두부와 도토리묵과 국수를 판다. 듬성듬성 등산객들이 들리는 곳이다. 뼈에 좋은 동동주를 주는데 마음에 더 특효약이다. 자궁과 같다. 느릅나무 아래 앉으면, 저승이 보인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