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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퍼즐

우리는 저마다의 조각을 손에 쥐고 살아간다. 어떤 조각은 금세 자리를 찾아가지만 어떤 조각은 어디에 끼워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때때로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하다가 뒤엉켜 버리는 순간도 있다. 결국 모든 조각은 저마다의 자리가 있음을 자각한다. 어린 시절 색색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가 하나둘 맞춰지며 선명한 그림이 되어가는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퍼즐 한 조각을 들고 침침해져 가는 눈으로 끼워넣고 있을 때가 많다. 어린 시절 단순한 놀이처럼 여겼던 퍼즐이 이제는 삶의 은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조각이 흩어진 채 시작되지만 차근차근 맞춰 가다 보면 선명한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삶의 조각들은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순조로웠고 계획했던 일들이 잘 진행되어 조각이 맞아떨어지는 쾌감을 느낀 순간들도 있었지만 애써 끼워 넣은 조각이 어긋나고 방향을 잘못 잡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었다. 내 삶의 조각은 언제나 하나가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맡아야 할 가장의 자리에 엄마가 있었고 집 안의 엄마 자리는 늘 부재중이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 생각’이라는 시에 나오는 시구처럼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난 늘 엄마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하루를 보냈다. 하교하는 길에 소낙비가 내려도 내게 우산을 가져다주는 보호자는 없었다. 내 삶의 퍼즐은 완성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빈 공간이 못 견디게 신경 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조각 하나가 없는 모습 그대로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었고, 때로는 빠진 조각 하나의 이야기로 의미가 짙어지기도 했다. 빠진 조각을 찾기 위해 나의 여정은 더 단단해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라진 채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조각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나는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 앞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단순히 조각 하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을 찾기 위해 걸어온 모든 과정 속에서 자신이 성장해 갔던 것은 아닐까. 김경아 작가 누군가에 기대어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미완의 조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그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가기 위해 뾰족한 부분은 깎아내고, 네모진 부분은 둥글게 다듬으며 점점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했다. 어쩌면 퍼즐은 처음부터 미완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든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져야만 그림이 완성된다고 믿지만 사실 인생이라는 퍼즐에는 처음부터 빈 공간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빈틈이 있다고 해서 그 그림이 불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여백이 우리를 더 성장하게 만들고 새로운 조각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조각이 다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의미 있는 한 조각을 발견하는가일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퍼즐판을 바라본다. 몇몇 조각은 이미 제자리를 찾아가 또렷한 그림을 이루었지만 아직 맞춰지지 않은 빈 공간들을 끝까지 다 맞출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빈자리조차 하나의 계단임을 안다. 언젠가 알맞은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설령 몇 개의 조각이 끝내 남더라도 그것이 곧 나만의 그림으로 남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조용히 다음 조각을 맞출 순간을 기다린다. /김경아 작가

2025-02-10

발칸반도 민족주의 ③민족주의 파괴력

연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은 또 한 번 발칸반도를 아귀지옥으로 변하게 했다. 인류전쟁사에 정점(?)을 찍는 폭력이 일어나면서 발칸은 또 피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히틀러는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어서 살육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지구 화약고’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른다. “보스니아 분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조직적이자, 힘과 힘이 충돌한 필연적 사건이었다.” 1993년 영국 수상 존 메이저가 한 말이다. 하긴 발칸반도와 인류전체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를 두고 비교해보았을 때 발칸반도 학살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타인종,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과 우리민족이라는 우월성이 빚어낸 학살,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한 고도화된 폭력이었다. 한 나라에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에서는 내 뜻에 반하는 세력이 있는 이상 필연적으로 폭력이 동반된다. 국제질서는 말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두들겨 패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발칸반도에서 상대적으로 인구 비율이 높은 민족은 전 지역에 걸쳐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뿌리인 본국(예를 들어 세르비아 같은)의 지원을 얻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예를 들어 보스니아)에서 독립을 외치며 분쟁을 일삼는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한 민족이 각기 다른 나라에 갈려 살면서 그곳에서 독립을 요구해보라. 기막힌 노릇이 아닐까. 우리나라 인천, 혹은 제주도에 일본인들, 혹은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 살면서 스스로 독립국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것도 본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말이다. 발칸반도에는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 발칸반도 맹주를 자처하면서 타 인종에 대한 살육과 폭력이 정의로 포장되는 악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들만의 민족은 광기에 휩싸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자가발전해 자긍심을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상승기류에 대항하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로 일순간에 내몰리고 자연적으로 배타적,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판이 짜인다. 더구나 같은 민족이면서 본적도 만져본 일도 없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도 없는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할 말을 잊게 한다. 21세기에도 다르지 않다.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대루마니아주의와 슬라브족 첫 제국을 건설했다는 대불가리아주의는 오랜 갈등으로 늘 반대편에서 총칼을 들이댄 맞수이자 관객의 입장에선 폭력의 세트다. 발칸반도 동남부를 대표하는 대세르비아주의야 말할 것도 없다. 코소보 인종청소 주역들이니 말이다.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해결된 듯하지만, 세르비아에 의해 저질러진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불안한 산맥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는 스스로 발칸반도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부유한 나라이자, 그만큼 뛰어난 민족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나라 이름에서 보듯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말이 한 국가이지 한 지붕 세 가족이 험악한 인상으로 으르렁거리는 형국이다. 이 외에도 동방정교와 로마가톨릭, 이슬람 등의 종교 갈등은 또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글쎄…. 민족과 종교와 영토분쟁에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이들의 조각보 같은 반도의 미래를 신인들 알까? 안다면 1천 년 전에 해결했겠지만 말이다. 민족이란 유기체는 어떤 사건과 역사를 체험하고 공유하느냐에 따라 개념이 포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상은 물론 생각의 공유에 따라 민족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처럼 민족주의가 마치 고대국가 혹은 중세 때부터 시작되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무지막지한 착각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시발점이다. 울릉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벗어난 적 없는 할아버지와 흑산도 할머니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사투리로 무장되었다면 소통에 애를 먹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박필우 작가 하긴 북한과 일본이 전쟁이 나면 어딜 도울 것이냐의 물음에 일본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필자의 주위에 태반이 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민족이 빨갱이보다 하수가 분명하다. 비약하면 아래로부터 단 한 번도 민중항쟁이 일어나지 않은, 말 잘 듣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족 일본이란 나라도 있다. 단언컨대 착한 백성, 그것이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다. 죽음에 떠밀려도 감동의 눈물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순종의 미학 말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어 끝으로 맺는다. “어떤 이는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지만,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낸다” - 오스카 와일드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2-10

이재명 대표의 적은 이재명이다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이 기세다. 6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39%, 더불어민주당이 37%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내란 혐의로 탄핵 소추당한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지지율도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까지 내리 참패했다. 그런데 ‘친윤’(친 윤석열)은 기세다. 심지어 이달 초 윤 대통령 지지율이 51%인 여론조사까지 나와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대개 20%대를 저공비행하다 비상계엄 직후 10%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상승하는 이상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의원들이 면회하려고 줄을 서 있다. 지난 3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에 이어 7일 윤상현·김민전 의원이 면회했다. 10일에는 김기현 전 대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이철규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5명이 찾아간다. 같은 NBS 조사에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55%)이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40%)보다 많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50%)도 재창출해야 한다는 의견(41%)보다 많다. 비상계엄에 대해 여전히 비판 여론이 더 높다. 비상계엄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뒤집어진 건 아니다. 비상계엄은 온 국민이 눈으로 지켜봤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뒤 ‘차기 정권은 민주당 것’이라고 당연시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여론이 묘하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뜨지 않는다. 대체로 ‘정권교체’ 의견이 50% 근처라면, 민주당 지지율은 40% 정도, 이 대표 지지율은 30% 근처다. 정권이 바뀌긴 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 대표는 더 싫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은 비호감 경쟁이었다. 윤석열 후보 지지가 많은 게 아니라, 이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이제 윤 대통령은 물러날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차기 대통령 후보다. 여론조사에 이상 조짐이 보이는 건 이 대표 책임이다. ‘이재명 포비아(공포)’라고 한다. 보수세력에 이 대표 집권은 공포다. 지난 총선 공천 때 적대 세력을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이재명 포비아’는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려는 이 대표의 꼼수도 ‘신 스틸러’다. 이 대표 재판과 윤 대통령 탄핵이 시간 경쟁을 벌인다. 이 대표는 확정판결로 피선거권을 잃기 전에 탄핵하고,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선거가 시작되면 처벌이 어려울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되자 검찰이 기소를 철회했다. 그러니 보수층 유권자는 탄핵보다 이 대표 재판을 먼저 끝나야 한다고 매달린다. 탄핵하더라도 당장은 지연시켜야 이 대표 출마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탄핵 반대 여론을 자극하는 게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공직을 맡을 수 없다. 당연히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하지 못한다. 6-3-3원칙(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에 따라 2023년 9월 끝났을 재판이다. 이 대표의 지연 전략 탓에 아직도 2심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4일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를 위헌이라고 제소했다. 2021년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한 조항이다. 누가 봐도 지연 꼼수다. 그는 항소심 통지서 수령도 계속 회피했다. 변호인 선임을 두 달 이상 끌었다. 추가 증인도 13명이나 신청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아예 이 법률 조항을 없애는 개정을 추진한다. 이 재판만이 아니다. 대장동 재판에서도 대부분의 증거에 부동의하고, 증인 148명을 법정에서 모두 다시 심문하도록 했다. 재판이 빨리 진행되면 이 대표가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 칩거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나. 정치인이 민심을 얻지 못하면 모두 잃는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09

대구시 공공공사 발주, 경기부양 효과 나오길

지난 3일 동북지방통계청이 발표한 12월 대구경북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대구지역 건설 수주액은 2408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건설공사 총 수주액의 겨우 1.0%다. 대구지역 건설업계의 건설공사 수주 규모가 전국 1% 수준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물론 12월 실적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지만 대구 경제의 전국 비중에 비해서도 턱없이 못 미치는 결과다. 전년동기 수주액(8808억원)과 비교해도 72%가 급감한 수치다. 통계청은 재건축 주택, 신규주택, 학교, 병원 등 민간부문 공사가 저조했던 것이 원인으로 분석했다. 대구 지역 부동산 경기는 수년째 동면 상태다. 건설경기를 뒷받침하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으니 건설경기가 좋을 리 없다. 게다가 고물가, 고금리,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건설업계의 유동성이 압박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 미분양 주택은 8000가구가 넘으며 집값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건설 관련 산업 전반이 무너질지 모른다. 대구시가 연초부터 대형 공공건설공사 조기 발주를 서두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대구시는 지난주 대형 공공공사 발주 계획 설명회를 열었다. 100억원 이상의 대규모 공사에 대해서는 계획단계에서부터 지역건설업계에게 추진계획, 발주시기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그들이 공사를 수주하는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특히 공공건설공사에서 지역제한 입찰이나 지역의무 공동도급 우선시행 등 지역업체 보호방안을 이행하도록 발주처를 독려했다. 이 조치와 관련 홍준표 대구시장은 “수주 가뭄을 겪는 건설업계의 시름이 조금이나마 해소됐으면 한다”며 대구시 공사 발주가 건설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희망했다. 어려움을 겪던 건설업계에게는 단비같은 소식이다. 특히 건설업계의 의견을 청취해 지역 업체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행정이 앞장서겠다고 하니 기대감도 크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다. 지방정부와 지역경제가 힘을 모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야 한다.

2025-02-09

시추 한번으로 “석유없다”… 성급하지 않나

포항 영일만 앞바다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첫 탐사시추에서 기대했던 수준의 석유·가스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는 첫 시추공 주변의 다른 6개 유망구조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추가 시추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프로젝트 자체가 사기극이라며 책임을 묻겠다는 태세다. 정부는 지난 6일 “시추결과 가스의 징후는 발견했으나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은 아니었다”며 사실상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된 것처럼 발표했다가, 하루 뒤인 7일에는 “가스의 징후가 좀 있다. 후속 탐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며 말을 바꿨다. 정부의 이런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두고, 국민의힘에선 관련 공무원들이 야당 눈치를 보면서 성급하게 프로젝트 무산 발표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보면, 세계 어느 나라든 첫 시추에서 유전이 발견되는 케이스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선 세계 최대 규모인 남미 가이아나 유전은 14번째, 노르웨이의 에코피스크 유전은 33번 만에 시추에 성공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대부분 해외 유전 개발 사업들은 시추를 거듭하면서 확보한 시료를 분석해 성공률을 계속 높여간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한 번 시추해 봤는데 바로 석유가 나오면 산유국이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고 한 말에 공감이 간다. 첫 시추공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 성공률이 20%에 달한다는 것은 탐사 시추를 포기할 수 없는 확률이다. 정부와 석유공사가 지난해 6월 첫 시추를 시작할 때도 최소 5번의 시추공을 뚫겠다는 전제가 있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변변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 쉽게 접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국운이 걸린 자원개발이 정쟁에 발목이 잡혀 무산되는 것은 후손에게 죄를 짓는 행위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긴 안목으로 시추작업을 진행해야 하고, 정치권은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2025-02-09

그래도 봄은 오리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며칠째 입춘 한파가 사납게 몰아치고 있다. 마당에서 장작을 패다가 세차게 몰아닥치는 바람 등쌀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 많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까, 생각한다. 크고 작은 낙엽과 비닐 쪼가리, 몸통 잃은 감꼭지까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동쪽과 서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가 힘에 겨운 듯 구슬픈 울음소리를 터트리곤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가장 추운 시기를 설 이후라 여겼다. ‘논어’에서는 이것을 ‘세한(歲寒)’이라 기록한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겠노라.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1840년 안동 김씨의 득세로 졸지에 제주 대정으로 유배 가야 했던 추사 김정희는 이 구절에 착안하여 1844년 ‘세한도’를 그려 이상적(李尙迪)에게 선물한다. 풍양조씨가 조정을 주물렀을 때 추사는 이조판서로 재직하여 문전성시를 경험한다. 하되 세상인심은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법. 대정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귀양살이로 고초를 겪자 그를 찾아오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그러던 차 중인(中人) 출신 역관이자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이 책을 바리바리 챙겨 천릿길을 달려오자 그에 감읍한 추사가 완성한 명화가 ‘세한도’다. 입춘 한파를 겪으면서 날짜를 헤아리니 1월 29일 설 지난 지 어언 열이틀 지났다. 그래서 세한 추위라 말한다 해도 그다지 그르지 않을 성싶다. 이번 추위가 닥치기 전에 썩어 내려앉은 마루를 수리하고, 너덜너덜해진 담장을 고치고, 지저분한 뒷마당을 산뜻하게 단장했다. 설맞이 행사로 생각하여 지출과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말끔한 2월과 만난 것이다. 어느 틈엔가 히아신스 초록초록한 새싹이 고개 내밀고 있기로 적잖게 놀랐다. 아니, 이런 무지막지한 날씨에 봄맞이를 이렇게 서두르다니, 한탄이 절로 나온다. 히아신스를 사진에 담고, 작년에 잘라낸 잔디로 녀석을 덮어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앞에 자리한 홍매(紅梅)에는 어느새 몇몇 꽃망울이 하늘을 향해 몸을 열었다고 한다. 지난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청통 와촌에 사는 선배 교수가 집안일을 도와달라 청했기로 유쾌한 노동과 흐뭇한 점심 밥상 앞에서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가슴 깊은 곳에 무엇인가 묵직하고 답답하게 터를 잡고 앉아서 24시간 내내 찍어 누르는 기분이다. 그런 연유로 누구와 만나더라도 흔쾌하거나 상큼하지 않고 뭔가 엉키는 것이다. 인간 내면에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 비루함과 난잡함, 끈적거림과 추잡함 같은 것이 우리 국민을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 저 인간을 저토록 추악한 타락과 방종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들은 그 날밤의 날벼락 같은 ‘비상계엄’과 ‘포고령’을 낱낱이 기억한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과 눈더미를 견디며 탄핵과 구속을 외쳤는가?! 그자는 재판정에서 치사하고 비루한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구명도생을 꿈꾸지만, 우리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은 끝내 오고야 말리라!

2025-02-09

짠테크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짜다’와 ‘재테크’가 합쳐진 ‘짠테크’ 바람이 분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불경기가 장기화되고 MZ세대와 직장인의 지출이 줄면서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과거 기성세대가 무조건 안 쓰고 안 먹던 방법으로 절약했던 것과는 다르다. 요즘 신세대는 쓸 것은 쓰되 알뜰하게 쓰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그것이 짠테크다. 이 흐름이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자리를 잡을 지 아니면 일시적 흐름에 그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불황으로 소비패턴에 변화가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즘 젊은이가 많이 찾는 온라인의 짠카페 방에는 자신만의 절약 필살기가 자주 등장한다. 금리가 좋은 짠테크 통장을 소개하기도 하고 자동차 기름 절약하는 방법, 싼 제품 제대로 구입하기 등 자신이 경험한 짠테크 방법을 공유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 온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10여 년 전부터 유행했던 가성비(價性比)를 소비선택의 주요 포인트로 삼는다. 호주머니 사정이 악화되면서 가격 대비 성능 좋은 상품을 골라 찾는 알뜰소비로 바뀌는 것이다. 전 제품 5000원 이하의 가격을 고수하는 다이소 매장을 찾는 이가 늘어난 것은 이런 변화의 반증이다. 특히 다이소 매장에 등장한 저가 화장품이 소비비자의 인기를 모으면서 편의점에서도 3000원짜리 저가 화장품이 등장하는 이색적 현상도 빚어졌다. 짠테크의 본뜻은 안 쓰겠다는 것보다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해 재화를 모으는 것이다. 명품 매장에 줄서지 않고 경기변화에 잘 적응하는 신세대의 새로운 소비 패턴이 바로 짠테크다. 불황이 낳은 바람직한 소비문화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09

반쪼가리 자작과 아령 사회

유영희 작가 SNS에서 ‘아령 사회’라는 말을 접했다. 우리 사회가 극단만 두툼해지고 중간은 얇은 사회로 되어간다는 뜻이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2024년 조선일보에 홍성국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인터뷰한 내용에도 아령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점점 아령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상대방이 사라져야만 내가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니, 이탈로 칼비노의 환상 소설 ‘반쪼가리 자작’의 교훈이 떠오른다. 환상 소설이라는 컨셉에 맞게 등장인물을 기상천외하게 설정했지만, 양극화된 현실을 풍자한 깊이가 남달라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에 나갔다가 몸이 세로로 반쪼가리가 된다. 하지만 환상 소설답게 그는 죽지 않고 반쪼가리 상태로 각각 따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먼저 돌아온 반쪼가리는 농노들의 가축을 반쪽 내는 등 악의 화신처럼 잔인하게 군다. 농노들이 그를 싫어하고 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선한 반쪼가리는 분명히 착한 의도이기는 한데, 농노들에게 요구하는 도덕 기준이 너무 높고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한센병 환자에게 영혼도 치료해야 한다면서 도덕적인 행동을 강요하며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던 음악 연주와 놀이를 금지했다. 결국 농노들은 악한 반쪼가리 이상으로 선한 반쪼가리도 증오한다. 다행히 두 반쪼가리가 모두 한 여자를 좋아하자, 그 여자는 두 반쪼가리와 한날한시에 결혼을 약속하여 그들을 결혼식장에서 만나게 한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두 반쪼가리의 몸을 붙여 꽁꽁 묶어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자 반쪼가리들의 극단적 행동은 멈춘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면 뻔한 교훈이 되었겠지만, 반전의 여운이 깊다. 현대 사회가 너무나 복잡해졌기 때문에 아무리 온전한 몸을 가진 자작이라도 혼자 정치를 잘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세상이 비로소 잘 돌아가게 되었다고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말은 홍상국 전 의원의 제안과 상통한다. 그가 아령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우리 삶의 70~80%는 경제와 관련되어 있으니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에 식견 있는 사람이 국회에 많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결정에 불복하여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사람들이 거의 체포되었다. 그중 이형석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의 집에 한 방송사가 가 보니 지하 작은 방이었다고 한다. 아령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선동가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런 사람을 이용한다는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주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경제성 없어서 폐기되었다는 뉴스가 대서특필되었다. 대왕고래프로젝트는 전문가가 경제성을 증명할 수 있는 사업이다.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정치 논리로 사업을 추진하지 말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진짜 전문가들을 기용해서 아령 사회를 끝낼 수 있어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 기대해본다.

2025-02-09

딥시크에서 대한민국으로

김규인 수필가 중국 량원펑이 저사양의 엔비디아 H800 칩을 2천 개만 사용해 딥시크를 개발했다. 미국의 주요 AI 기업뿐만 아니라 챗GPT는 고사양의 H100 칩으로 1만6천 개를 사용한 것과 성능은 비슷하다. 딥시크는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안 받는 저사양의 H800 칩을 사용해서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더 크다. 미국은 중국의 최첨단 제품 개발을 막기 위해 트럼프 1기 때부터 중국의 화웨이가 미국산 반도체를 사지 못하게 규제했다. 이런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 때도 그대로 시행하였다.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기술 독립을 이루었고 저사양의 부품으로 딥시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고민도 깊어진다. 미국 인공지능 업체가 반격을 시작한다. 딥시크가 AI 모델 훈련을 위해 오픈AI 데이터 무단 수집 여부를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조사한다. 딥시크가 오픈AI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챗GPT에 버금가는 성능의 인공지능을 개발한 것은 오픈AI의 데이터를 도용하여 이용한 덕에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 00 딥시크의 효율성 높은 인공지능에 알리바바가 다시 새 모델을 출시한다. 중국의 틱톡 운영사인 중국 바이트댄스도 플래그십 인공지능 모델을 업데이트하며 새 모델의 성능이 미국 오픈AI 모델을 뛰어넘는다고 주장한다. 다른 미국의 대형 IT 업계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인공지능 사업을 확산하려고 계획 중이다. 이제까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AI 업계는 빅데이터 센터의 설립으로 수준 높은 계산, 많은 에너지 소비, 최첨단 반도체 칩을 사용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딥시크의 개발로 저렴한 인공지능 모델 개발이 확산하면 굳이 엔비디아의 비싼 칩을 사용하지 않고 개발하는 추세가 확산할 수 있다. 위기의 순간에 기회도 함께한다. 인공지능 개발의 효율을 다시 생각하는 순간이다. 인공지능에 있어 선진 업체를 추격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IT와 반도체 업체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성능이 떨어지는 부품으로도 유사한 성능을 나타내는 중국의 딥시크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가.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독점 납품하는 SK하이닉스나 납품을 위해 품질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단기적으로는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AI 반도체 시장의 저변이 커질 수 있어 긍정적인 면도 크다. 그동안 높은 장벽으로 고전하는 삼성전자나 IT업계도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 같다. 절박한 정도가 때론 사업 승패를 좌우한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독립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였을까. 우리에게도 그러한 고민이 지금 필요하다.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 이 둘이 효율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세계를 제패하는 인공지능을 한국에서 개발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엔비디아 일변도의 인공지능용 칩에서 이제는 우리도 독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딥시크의 성공이 대한민국 인공지능과 반도체, 제조업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인공지능과 첨단 산업의 선두 주자로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2025-02-09

졸업식

졸업식 풍경. 그날, 2월의 햇살은 화사해서 슬펐다. 눈가를 찡그리며 터덜터덜 걷는 뒤로 졸업을 서로 축하하는 가족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졸업장 하나만 들고 나서는 걸음이 무거웠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데 멀리에서 여동생이 작은 꽃다발 하나를 들고 뛰다시피하며 내게 오고 있었다. 하던 일이 잘못 되어 그 뒤처리를 하느라 부모님은 결국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뒤늦게 꽃다발을 사서 여동생에게 준 것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나의 졸업식이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졸업은 내겐 의미가 깊은 것이었다. 누구의 졸업식을 가던 축하하는 마음을 듬뿍 가지고 갔다. 결혼을 하면서 내 아이들의 졸업식만큼은 크게 축하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큰 아이도 작은 아들도 자신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며 대학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그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졸업장 받아오는 것으로 끝이었다. 1961년에 개정된 교육법에 의해 2월 졸업은 꽤 오래 지속되어왔다. 그 당시의 졸업식은 졸업생이나 가족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후배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이란 노래를 불러주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졸업식 풍경은 점차 엄숙함과 경건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한때는 뒤풀이로 밀가루 뿌리기나 계란 던지기 등의 문화가 생겨났었다. 그것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건전한 졸업 문화를 조성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코로나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졸업식의 광경은 또한번 달라졌다. 운동장에서 하던 졸업식은 실내로 그 자리를 옮겨 비대면으로 시행되었고, 무겁고 엄숙하던 졸업식은 축하의 의미가 강한 축제의 느낌이 가미되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졸업식에 간다고 해서 놀랐다. 대부분의 졸업식이 2월이라고 생각했었는데, 1월에 하는 졸업식이라니. 학사 일정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신학기 준비기간 조성 등으로 요즘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12월말이나 1월 졸업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집앞 강변 산책을 하며 대나무숲을 걸었다. 대나무는 일정한 크기가 되면 마디를 만든다. 그것이 대나무가 속이 비어 있음에도 곧고 바르게 높이 자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속이 텅 비었는데도 거센 폭풍에 휘어질 뿐 쉽게 부러지지 않는 것이 마디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것은 성장의 발판이자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생장점인 것이다. 졸업도 하나의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을 시작하기 위한 매듭이며 마디이다. 한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만큼 얻지 못했어도 그것을 하나의 마디로 매듭짓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 과정에서 성취한 것이 있다면 축하하며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인간의 지혜가 졸업식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우리는 여러 번의 졸업식을 거치면서 살아간다. 공식적인 배움의 장을 지나가면서 맞는 졸업식도 있다. 사설기관에서 일정 기간을 채워 무엇인가를 배우고 끝내는 일도 있다. 집 근처의 평생대학이나 주민센터를 통해 다양한 취미나 운동에 몰두하며 분기별로 수료를 하고도 있다. 그런 작고 큰 졸업식을 거치면서 우리는 삶의 크고 작은 마디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 어떤 마디는 다소 빈약하고 어떤 마디는 좀더 단단하게 맺으면서. 무엇보다도 인생의 가장 커다란 졸업식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맞게 될 것이다. 졸업하는 주인공은 나이지만 그 축하를 직접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때 얼마나 진정으로 나를 아꼈던 사람들이 찾아오는지에 내 졸업식 점수가 매겨질 것 같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평가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와도 괜찮을 것 같다. 참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같이 축하해주면 참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마지막 졸업식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작은 매듭을 지어가는 평범한 삶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산책을 마쳤다. 강물에 반사되는 햇살이 눈부시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2-09

시민과 함께하는 APEC, 경주의 새로운 변화 이끈다

주낙영 경주시장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여덟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0월 말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위상을 드높이고, 미래를 향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경주시는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상회의장 개보수, 숙박시설 정비, 미디어센터, 만찬장, 전시장 건립 등 기본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주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대적인 도로 정비와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경주가 찬란한 역사를 품은 문화도시이자 현대적 관광 인프라를 갖춘 도시라는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릴 생각이다. 주회의장인 보문관광단지와 더불어 불국사, 경주IC 등 주요 진입로를 포함한 5개 노선에 총 사업비 247억 원을 투입해 도로 포장, 조명 설치, 보행로 및 자전거도로 정비 등 대대적인 정비를 진행한다. 특히 보문관광단지는 1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음악분수광장, 산책로 정비, 경관조명, 미디어파사드 등 야간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시는 주요 진입로를 중심으로 노후 주택과 담장 정비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울산 방면, 포항 방면, 경주IC 방면 등 주요 도로변의 노후된 건축물과 담장을 경주만의 특색있는 디자인을 입혀 도시의 품격을 한층 높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노선별 사전 조사를 완료했으며, 주택가 담장 25곳을 포함해 가로변에 역사성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적용할 예정이다. 경주시의 이 같은 노력에 대해 너무 외형에만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당연히 행사 내용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을 만났을 때 첫 인상이 중요하듯 도시가 주는 이미지도 중요하다. 이번 APEC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세계 많은 정상들과 고위급 각료들, 글로벌CEO들과 전세계 언론인들이 경주를 처음 찾게 될 텐데, 그들은 경주라는 창을 통해 대한민국을 보게 될 것이다. 그만큼 경주가 주는 첫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사실 행사 자체는 역대 어느 정상회의 보다 더 잘 치를 자신이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치른 대한민국이다. 비록 경주가 작은 지방도시이지만, 세계NGO총회를 비롯해 150여 차례의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은 단순한 행사 개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주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행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따뜻한 미소와 친절, 질서와 청결로 글로벌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아름다운 도시환경 조성을 위해 경주시는 매월 네 번째 수요일을 ‘APEC 클린데이’로 지정하고, 민관이 함께하는 손님맞이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APEC 클린데이를 통해 지역 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노후 시설물과 다수 민원 취약지 등을 중점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또한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내 집·내 점포 앞 치우기, 우리 동네 꽃밭 가꾸기, 집 앞에 꽃 화분 내놓기 등 ‘시민과 함께하는 APEC 경주 10대 실천과제’를 발굴해 실천해 나갈 예정이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서 동아시아 문화와 교류했던 역사적 전통을 지닌 도시이다. 이제 우리는 그 유산을 계승해 21세기 국제도시로 도약하는 길목에 서 있다.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며, 이를 통해 경주는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남은 기간 철저한 준비로 성공적인 APEC 개최를 이루고, 이를 발판 삼아 경주의 위상을 한층 더 높여야 한다. 시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

2025-02-09

고전으로 세상읽기 ④ 치지-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근본적으로 깨달아야

“‘격물(格物)’은 ‘단지 하나의 사물에 다가가 그 한 사물의 이치를 극진히 궁구하는 것’이고, ‘치지(致知)’는 곧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해 얻음으로써 나의 지식이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격물이 ‘사물 하나 하나’(예, 철수네 집 대나무, 영희네 집 대나무)에 다가가 그 사물들의 이치를 직접 살피는 것’이라면, 치지는 ‘자신의 생각을 통해 그 각각의 사물을 관통하는 하나(‘대나무’라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지식 축적과 함께 이성의 힘을 키우는 구체적 방법인 ‘생각하기’의 ‘치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알아보는 순서는 첫째, ‘생각- 생각하는 존재, 인간’, 둘째, ‘추리- 생각은 추리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이성의 날’입니다. ◇사고실험을 통해 발견된 생각 상대성 이론은 실험실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특허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버는 돈은 저녁때나 일요일에 선술집에 들러 썼으며 한가로운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많은 시간을 생각하는 데 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가끔씩 쉬는 시간이 생길 때면 사무실 책상 서랍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내서는 뭔가 갈겨쓰곤 했습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그 서랍을 자신의 ‘이론 물리학과’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풀릴 듯하면서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있어서 답답했다. 그날 밤도 여전히 그걸 알아내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그는 매우 흥분되어 있었다. ”고 했습니다. 이후 그는 대여섯 주 만에 38장의 논문 초안을 완성했습니다. 그 논문이 바로 상대성 이론의 시작이었습니다.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은 실험실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머릿속 ‘생각’에서 탄생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짬이 날 때마다 그리고 자신의 집 침대에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결론이 날 때까지 끝까지 파고든 끝에 마침내 찾아낸 것이 ‘E=mc²’입니다. 머릿속 ‘생각’으로 하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한 자연과학의 위대한 발견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많은 원리와 이론들이 순수한 ‘생각’인 사고실험에서 시작되거나 사고실험을 통해 발견되었습니다. 인문학, 사회과학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이 실험실이 아닌 ‘사고실험’, 즉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유의 출발인 공자와 플라톤의 주장들이 ‘생각’으로부터 나왔고, 중세 주희의 신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이 ‘생각’에서 나왔고, 근대를 선도한 홉스, 로크, 루소의 자유주의 사상들이 당연히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주희는 ‘대학’의 ‘경문1장’ 해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내 마음의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는’ 상태는 어떤 의문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답이 나올 때까지 그 이상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거기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물론 그 ‘생각’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핵심은 ‘생각’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료를 찾아봐야 할지, 무엇을 먼저 알아봐야 할지 등에 대한 답도 모두 스스로의 ‘생각’으로부터 나옵니다. ◇생각은 인간의 본질적인 행위 작가인 한 지인은 오래전 자신이 쓴 글을 읽고 한 번씩 놀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흥미로운 관점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멋진 표현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아무리 봐도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특별한 관점, 그런 멋진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글을 쓸 때 그는 그 이상의 새로운 관점, 그 이상의 멋진 표현을 또 생각해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일단 글쓰기에 들어가면 작가는 해당 주제에 자신의 에너지와 모든 생각을 집중합니다. 운동하면서도 그 주제를 떠올리고, 식사하면서도 그 주제를 새기고, TV를 시청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여전히 그 주제로 꽉 차 있습니다. 들리는 것,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주위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그 주제로 연결됩니다. 당연히 평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고, 또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과정에서 놀라운 아이디어 확장이 일어납니다. 글 쓰는 것만이 아닌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심코 지나칠 때와 집중적으로 ‘생각’할 때의 결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 ‘다방’ 편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고, 어리석은 이라 할지라도 생각을 하게 되면 성인(聖人)이 된다.” 오늘날의 일상적 표현으로 바꾸어보면, ‘일류대를 졸업하고 초일류 회사에 들어간 이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시키는 일만 하면서 깊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간판밖에 내세울 것 없는 일류 바보가 되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고민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쌓여 지혜를 갖춘 현명한 이가 된다’ 정도 내용이 되겠습니다. 어떤 다른 것도 아닌, ‘생각’하는 습관 여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을 지혜로운 이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어리석은 이로 퇴보시키기도 합니다. 그대가 이 꽃을 보았을 때 꽃은 비로소 그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었으니 사실 ‘생각’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위대한 발견이나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행위입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인간적’입니다. 시인 김춘수는 시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이하 생략)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는 그냥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했습니다.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관심, 사람의 생각이 무의미를 의미로 바꿉니다. 주희의 성리학과 대립해 ‘마음(心·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왕양명도 일찍이 ‘꽃’으로 생각의 의미를 나타냈습니다. ‘전습록’ ‘황성증의 기록’ 편에서 한 사람이 왕양명에게 묻습니다. “선생께서는 천하에 마음 밖의 사물이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 깊은 산 속에서 저 홀로 피고 지는 꽃은 제 마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왕양명이 답합니다. “그대가 이 꽃을 보지 않았을 때 이 꽃은 그대 마음과 같이 그냥 적막 그 자체였다. 그대가 이 꽃을 보았을 때 꽃은 비로소 그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었으니, 곧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산속에 그냥 저 혼자 피고 지는 꽃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인식되었을 때 비로소 꽃은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으로 존재합니다. 앞의, 시인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비로소 ‘꽃’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향할 때 그것은 존재하고, 인간이 생각을 거두면 그 존재 역시 거두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하는 인간’ 또는 ‘인간의 생각’이 없다면 이 세상에 존재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지혜가 있는 사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은 무의미를 의미로 바꾼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새롭게 내놓은 자신의 인식론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으로 표현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천문학 관점을 바꾼 것처럼, 자신은 사물에 대한 사람의 인식 관점을 기존의 ‘사물 중심(객관)’에서 ‘인간 중심(주관)’으로 전환시키는 ‘사고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사물은 사람의 오감(五感)에 닿아 저절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지성(또는 오성, Verstand)’의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인간의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사물 자체가 실제 존재하더라도 인식될 수 없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동기 작가(경영학 박사) 신동기인문경영연구소 대표 칸트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감성’은 인간에게 선험적(Transcendental)으로 주어진 ‘공간’과 ‘시간’이라는 ‘두 개의 주관적 직관 형식’으로 대상 사물의 ‘현상(現象·사물 자체가 아닌 사물의 바깥 모양·Erscheinung)’을 수용합니다. 이어 ‘지성’은 이 수용된 ‘현상’에 선험적으로 주어진 12가지의 범주를 적용해, 그 현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감각 경험적 인식의 ‘개념화’ 과정에서 ‘지성’은 ‘판단’을 합니다. ‘사물 현상의 개념화를 위한 사고 형식’인 12가지 ‘범주’는 ①양과 관련된 3가지, ②질과 관련된 3가지, ③관계와 관련된 3가지 그리고 ④양태와 관련된 3가지, 총 12가지입니다. “내용 없는 사상들은 공허하고, 개념들 없는 직관들은 맹목적이다”라는 칸트 본인의 주장대로, 칸트에게 있어 사람의 ‘인식’은 언제나 ‘감성’을 통해 수용된 ‘현상’과 ‘지성’을 통해 판단된 ‘개념’, 이 둘의 종합을 거쳐 완성됩니다. 사람의 ‘생각’은 무의미를 의미로 바꿉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없다면 만물은 그냥 적막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을 가진 인간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하기를 게을리한다면 이때 역시 만물은 그 존재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 치열하게 궁구해, 끝 모를 심연 저 깊은 곳까지 그 생각이 이를 때 비로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자신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2025-02-09

지속 가능한 청송의 미래를 위한 길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지방소멸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청송군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희망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성과로 2024년 지방자치단체 재정분석 평가에서 경북 도내에서 유일하게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이는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효율적인 예산편성과 안정적인 재정 운용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인정받은 결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한다. 청송군은 올해 농업 경쟁력 강화와 정주 여건 개선을 핵심 과제로 삼고, 지역의 미래를 위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청송군의 대표 농산물인 사과 산업은 기후 변화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두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은 스마트 농업 도입을 확대하고, 생산비 절감과 노동력 부족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는 ‘꼭지 무절단 사과 유통’과 ‘무적엽 사과 생산’으로 불필요한 재배 과정을 없애 영농 인력을 절감하고, 반사필름 없이 고품질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평면과원 조성사업’을 통해 농업 비용과 영농 폐기물 감소의 이중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최근 청송사과 전문연구시설인 청송황금사과 연구단지를 준공하였으며, 이곳에서 사과 스마트 재배 표준 매뉴얼 개발과 평면형 수형 재배 기술 연구 등을 진행하여 청송사과의 과거 100년을 기반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올해 여름부터 산지공판장에 온라인 경매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중도매인들이 사과 경매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공판장 처리 물량을 증가시키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유통 구조를 구축할 것이다. 농업 발전과 함께 지역 내 정주 여건 개선도 중요한 과제이다. 청송군은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청송공공임대주택 청년빌리지와 진보면 공공임대주택 건립 사업이 있다. 이러한 주택은 청송군 내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청년 유입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도심 환경을 정비하고, 회전교차로 설치와 도시계획도로 정비를 통해 교통 환경을 개선할 것이며, 노후 상수관로 정비 및 급수구역 확장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청송군의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정책 추진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변화이다. 농업 혁신과 정주 여건 개선이 함께 이루어질 때, 청송은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며, 지역 주민과 행정이 함께 협력하여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간다면, 청송군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5-02-09

집값 폭락한 대구·경북, 악성 미분양도 늘었다

대구와 경북의 부동산 경기는 언제쯤 기지개를 켤 수 있을까. 수년째 이어져 오는 대구·경북지역의 부동산 경기침체는 내수경기 활성화에도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산업이 내수시장에 미치는 후방효과를 생각하면 대구경북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본사 취재팀이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정보 통계시스템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대구와 경북의 집값(주택종합매매가격지수 기준)은 최근 3년간 대구는 18%, 경북은 2%가 각각 떨어졌다.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구의 경우 세종시(22%) 다음으로 전국에서 낙폭이 가장 컸다. 경북도내 중에는 경산(10.5%), 구미(8.5%), 포항(4.7%)이 비교적 낙폭이 컸던 지역으로 조사됐다. 5일 국토부가 발표한 12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대구와 경북은 미분양 주택이 다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7월 이후 줄어들던 미분양 주택이 10월부터 다시 증가해 대구는 8807가구, 경북은 6987가구로 집계됐다. 특히 악성 미분양인 준공후 미분양은 대구가 2674가구, 경북이 2237가구로 전달보다 862가구, 866가구가 각각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대구가 악성 미분양이 가장 많고, 전남에 이어 경북이 세 번째로 많다. 부동산 산업은 앞서 언급했지만 주택이나 비주거용 건물 등에서 파생하는 재화생산과 소비에 관련된 것으로 경제적 파급력이 매우 강하다.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내수산업 활성화와 직결되는 분야다. 대구와 경북의 부동산 경기는 정상적 거래가 어려울 정도로 수년째 침체 늪에 빠져있다. 최소한의 이사 수요라도 감당할 정상적 거래를 위해선 경기 진작책이 나와야 한다. 대구시가 이런 점을 고려, 수도권과는 다른 비수도권만의 주택정책 필요성을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정부의 시원한 대답은 없다. 최근 정치권이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의 완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얘기가 들리나 그것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자체에 관련 권한을 대폭 이양하거나 비수도권에 맞는 획기적 맞춤형 정책이 나와야 한다.

2025-02-06

배터리·바이오 34조 투입… 포항경제에 ‘단비’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34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배터리·바이오 중심)기금’ 조성은 대구·경북 경제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차전지와 바이오 특화단지로 지정된 포항으로선 더 반가운 소식이다. 특화단지에는 정부공적자금이 우선 투입된다. 관련 법률안 개정을 통해 기금이 조성되면 저리 대출과 투자가 쉽게 이뤄질 수 있어, 철강산업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포항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기금은 산업은행이 일정 규모의 자금을 펀드에 먼저 출자해 마중물 역할을 하면 시중은행이 뒤따라 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적립된다. 펀드에 시중은행이 참여하면 산은이 독자적으로 투자할 때보다 더 많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현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고 밝힌 이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까지 겹쳐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조 단위에 달했던 배터리 3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수천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당연히 배터리 3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포항지역 소재사들도 실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에는 코스닥 시가총액 1위를 기록했던 배터리 소재 기업 에코프로비엠이 ‘2차전지 캠퍼스’를 구축하고 있다. 이 캠퍼스에는 양극재를 양산하는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이엠, 전구체 원료·제품을 생산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수산화리튬을 제조하는 에코프로이노베이션, 산업용 산소와 질소를 양산하는 에코프로에이피,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하는 에코프로씨엔지가 입주해 있다. 그리고 포항은 지난해 6월 바이오특화단지로 지정된 이후, 기존 바이오 연구개발 인프라(세포막 단백질 연구소,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 포스코 연구진)와 연계해 인허가 특례지원을 통해 국제적 바이오·백신허브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국회와 잘 협의해서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게 되면, 포항지역 관련기업이 저리 대출 또는 지분 투자 형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위축된 지역경제에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다.

2025-02-06

정월 대보름 소원 빌기

우정구 논설위원 오는 12일은 음력으로 1월 15일이며 정월 대보름날이다.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은 이 날을 설 명절만큼 중요한 명절로 여겼다고 한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나 보름날 자정을 전후해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도 올렸다. 설날이 의례가 많이 있었다면 정월 대보름날은 공동의 행사가 많았다. 대표적 행사의 하나가 달집태우기다. 달집태우기는 정월 보름달이 떠오를 때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질러 주위를 밝히는 행사다. 액을 쫓고 복을 부른다고 한다. 달집을 태우면서 절을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고 여름철 무더위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달집이 훨훨 잘 타오르면 그해 풍년이 들고 잘 타지 않거나 꺼져버리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새해 처음으로 맞는 보름날을 맞아 과거의 세시풍속들이 지금도 조금씩 전해져 온다.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풍속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대중적이다.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것을 남보다 먼저 보면 좋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달이 뜰 무렵이면 서둘러 동네 동산에 올랐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풍년이 들기를, 자녀를 가진 부모는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빌었다. 처녀 총각들은 좋은 배필을 만나 시집 장가들기를 소원했다. 부럼깨기나 오곡밥·약밥 먹기, 귀밝이 술 등의 풍속도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또 가족의 건강까지 한해의 모든 안녕을 정월 대보름달을 통해 소원했다. 정치적 대혼란 속에 맞는 올해 대보름날에 우리 국민은 무엇을 소원할까. 가정의 평안 그리고 나라의 안정을 소망하는 사람이 가장 많지 않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06

대중음악축제 ‘환희! 포항’을 제안하며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과학기술 기반의 산업이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면, 감수성과 상상력의 문화예술은 도시민을 행복하게 한다. 포항은 1970년대 포스코가 입지하면서 철강 산업 중심으로 한국 산업화를 이끌었다. 현재는 이차전지·소재 산업 육성으로 4차 산업혁명을 착근시키고 있다. 포항은 포항제철이 들어서기 전에는 전통적으로 수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울릉도에서 잡힌 오징어가 포항에서 타 지역으로 거래되었다. 이름 모를 주막집에서 소주에 취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나에게 영일만 횟집에서 재첩국에 취하던 달빛 아래에서의 밤이 잊혀지지 않는다. 포항은 경북 동부의 최대 도시이자 산업·국제 해양·문화 교류 중심도시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이제는 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문화에서도 시민은 물론 국내외 분들과 소통하며 바람을 일으키는 환 황해 등대로 우뚝 서야 한다. 포항에 어울리는 영어 단어를 하나 고르자면, 바로 ‘Delight’(즐거움, 환희)다. 즐거운 도시야말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런던은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유명해졌고, 뉴욕은 브로드웨이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 예술 자원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는 분야는 단연 음악이다. 사람은 귀로 깊은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요일 낮 12시에 방영되는 ‘전국노래자랑’부터 저녁에 방영되는 ‘트롯 대왕’까지, 노래가 끝나야 비로소 일주일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외국인들에게도 음악은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오감의 향연이었고, 이탈리아 피렌체의 5월 음악제는 도시와 함께 꽃피우는 음악의 르네상스였다. 음악의 여러 장르 중 클래식과 팝은 모두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나는 킬리만자로의 이상과 죽도시장 바닥의 현실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래서 남녀노소 대중 모두가 미칠 수 있는 ‘대중음악회’를 한여름 바닷가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5월 말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국제불빛축제를 열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환희! 포항’ 축제는 호주의 시드니에서 매년 열리는‘비비드 시드니!’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음악과 빛, 음식이 어우러진 3중주를 즐길 수 있다.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이 축제에는 한국 관광객만 5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환희! 포항’ 축제는 포항시·경북매일신문사·포항MBC가 공동 주최·주관을 하고 경북과 포항의 문화예술인들이 주도를 한다. 8월 1일부터 일주일 이상 개최하되, 모든 유관기관들이 조금씩 손해를 보며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포스코는 철로 제작한 야외 공연장을 마련해 주며,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의 안전성과 유익성을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행사 후원사가 된다. 출전 가수 라인업을 화려하게 꾸며야 한다. 날짜별로 트로트·힙합·재즈·팝 등으로 색깔을 달리한다. 조용필 가왕은 ‘창밖의 여자’를, 최백호 선배는 ‘영일만 친구’를 부를 것이다. 아바(ABBA) 같은 외국 그룹 뮤지션도 초청해 이 음악 축제에 불을 질러버리는 것도 좋다. 동해안에서 잡힌 생선들은 불티나게 팔리며, 숙박시설·식당가는 ‘시장 짱!’을 외칠 것이다.

2025-02-06

독한 사람들

노병철 수필가 새해가 밝아오면 늘 하는 소리가 있었다. ‘금연’.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우습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띈다. 정부는 더 강력한 경고문을 담뱃갑에 박아 넣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로 담배를 끊게 만들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이지만, 정부에서는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담배 판매금지를 못 하게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해롭다’는 문구만 남발한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담배회사와 담배 농가의 붕괴를 포함한 담배 산업의 소멸, 그로 말미암은 엄청난 세입 감소와 사회적 비용을 아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국민건강을 담보로 세수를 챙길 것인가. 그래도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한 건 사실이다. 담배를 시내버스에서도 피웠고 고속버스 안에서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의자 뒤에 재떨이가 있었다. 특히 영화 보면서도 담배를 피웠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간에 필름을 한번 갈아 끼울 때는 너도나도 피워대는 통에 극장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온갖 발암성 물질이 있다고 해도 담배는 숙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남성’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깐. 챨스 브른슨이 담배를 피우면서 악당을 죽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담배 입에 물고 포커 돌릴 때 우린 화장실 뒤에서 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가며 폼을 잡곤 했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담배를 끊은 지 20년 정도 된 것 같다. 쉽지는 않았다. ‘금연 주식회사’라는 책을 읽어보면 금연을 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벌칙을 주는데 집사람을 잡아다가 전기고문하고 그래도 피우면 마침내 죽여 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자의 고통은 지옥의 고통으로 묘사되고 사실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매 순간 담배의 유혹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유혹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힘든 일을 마친 후에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의 추억을 더듬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과감하게 결단내야 한다. 사실 보건복지부 공무원도 아니고 금연 프로그램 종사자도 아니다. 금연을 홍보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그렇게 착한 인성을 가진 인간도 아니다. 술 마시고 마늘로 싼 돼지고기 쌈을 안주로 먹고 담배까지 한 대 피운 사람이 친하다고 내 귀에 대고 속삭일 땐 정말 못 견디겠다. 솔직히 흡연으로 인한 일반적 건강론은 내 알 바 아니다, 단지 그 역겨운 냄새에서 해방되고 싶을 뿐이다. 담배 냄새는 너무 지독하다. 이젠 진짜 담배를 끊어야 할 때이다. 옛날엔 담배 끊은 사람보고 ‘독한 인간’이란 말을 했다. 그만큼 담배 끊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 어려운 금연을 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찬사와 시기가 함축된 말이 ‘독한’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독한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언제까지 역한 냄새 풍기는 독한 인간으로 살 것인가. 을사년 새해는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제대로 한번 금연을 결심해 보자.

2025-02-06

입춘, 봄이 온다는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봄이 저만치 오는데 매서운 한파가 몰려오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이 영하권에 들어서면서 곳곳에 한파 특보가 계속되고 있다. 한파주의보는 영하 12도 이하 날씨가 이틀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되는데 포항 경주 구미 등 전국 17개 지역에 내려졌고 경북 북부는 한파경보까지 내려졌었다. 여기에 전남, 전북과 울릉도, 독도는 대설경보까지 내려져 교통안전에도 비상이 걸렸고 항공기 여객선도 결항하고 있다. ‘입춘 추위는 꿔다해도 한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한 2월 초순의 날씨다. 체감기온이 영하 20도가 된다는 이번 추위와 강풍은 주말까지 이어진다는 예보이니만큼 기저 질환자나 65세 이상 노인들은 야외활동을 삼가고, 이곳 동해안 지역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화재 예방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입춘이 지나면 봄이 오겠지만 마음을 모아 빌어보기로 하고 입춘이 드는 3일 밤 11시 10분을 기다려 입춘첩을 현관문에 붙였다. 늘 써오던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신에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사태가 염려스러워 나라의 안녕을 염려하며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의 입춘축(立春祝)에서 하나를 뽑아 반반 섞어서 ‘입춘대길 국태민안’으로 써 붙였다. 현관을 깨끗이 닦고 들어와서 설날 자식들이 선물로 준 견과류를 깨물며 ‘부럼깨기’도 했다. 그리고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의 입춘방(立春榜)처럼 다음 날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 바닥도 쓸었다. 어디서 금덩어리가 나오는 복이 오려나…. 시골집 기둥에도 입춘첩을 붙였는데 이 나라의 입춘첩은 어떤 것을 붙일까? 대통령은 구치소에 있으며 탄핵과 특검에 묶여 국회와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있으니, 비바람이 순조로워 시절이 평화롭고 풍년이 들도록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8C50)을 마음에나마 붙여볼까. 바다 건너 미국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보호무역의 현실화를 들먹이며 관세 전쟁으로 가려는 위험이 크다. 국경 접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협상이 극적인 타결을 이루어 30일간 유예됐다지만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10% 추가 관세 등에 서로의 문을 닫아 난맥상이다. 이에 우리의 반도체, 철강산업, 2차 전지의 수출 대외 리스크는 최악의 침체와 더불어 환율도 높게 치솟고 있으니 특히, 수출의존도가 중국에 32% 미국에 16.2%로 높은 경북은 무역 한파에 비상이 걸릴 듯하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세계적 무역 한파에 그동안 잘 담가 놓았던 한국의 대외수출품 장독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정계는 장독 돌볼 생각도 하지 않고 여전히 추운 천막 속에서 홍매가 피나 백매가 피나…. 서로의 뿌리만 갉아 대고 있으니 밝은 봄날을 기다리는 국민은 입춘대길만 읽을 뿐 가슴이 아프다. 장성동 천마지 둘레길을 걸어봤다. 숲길 옆 진달래는 아직도 콩알만 한 꽃봉오리가 맺혀있고 출렁다리 지나며 내려다본 얼어있는 못가엔 청둥오리 몇 마리가 조용하다. 그러나 이제 곧 봄이 오려니, ‘입춘에 비 오면 풍년이 든다’ 했으니 어저께 뿌린 눈발이 땅을 적셔 풍년이 올 것을 믿는다.

2025-02-06

국민 92%가 “정치적 갈등 심각하다”고 인식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갈등 요인은 ‘빈부격차’가 아니라 ‘진보·보수 간의 진영싸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전국적으로 번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일촉즉발의 충돌위기에 놓인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지난 2014년 이후 매년 사회갈등과 사회통합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어제(5일) 발표한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 92.3%가 여러 사회적 갈등 사안 중 정치영역에서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했다. 보사연이 이날 발표한 자료는 지난 2023년 6∼8월 19∼75세 남녀 3950명을 상대로 면접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의 정치적 갈등성향을 구체적으로 보면, 71.41%는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르면 함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할 의향이 없다’고 했고, 58.2%는 ‘진영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심지어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나 지인과 술자리에 같이할 의향이 없다’는 사람도 33.02%에 달했다. 기타 사회갈등 요인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82.2%), 노사갈등(79.1%), 빈부갈등(78.0%),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갈등(71.8%), 지역갈등(71.5%) 순으로 조사됐다. 보사연의 조사시점이 1년 6개월 정도 지난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정치적 갈등 수준은 훨씬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 사회실태조사에서는 주로 사회갈등 요인 1순위는 ‘경제적 양극화’가 꼽혀왔지만, 정치적 성향이 압도적인 갈등요인이 된 것은 윤 대통령 취임이후 계속된 여야간의 정쟁(政爭)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갈등의 변수로 ‘정치권력’을 꼽은 사회학자는 막스 베버다. 경제적 요인(자본가와 노동자)을 사회변동의 원인으로 본 칼 마르크스와는 달리 베버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수(주로 정치권력)가 사회 내 갈등을 촉발한다고 봤다. 베버의 갈등이론이 우리사회를 분석하는 유효한 도구가 되는 셈이다. 정치적 갈등은 물론 여야 정치인들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유튜브 채널이나 방송의 시사·대담 프로그램 탓도 크다. 팩트체크 없이 증오 섞인 말을 마구 내뱉는 패널들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에 빠지게 한다. 일부 공영방송의 경우 패널의 편향성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흔적은 보이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논평하기보다 자신의 진영논리에 따라 상대를 비난하는 거친 토론으로 일관한다. 시청자 중에는 특정 패널의 토론이 시작되면 아예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무차별적으로 방영되는 정치 프로그램 속에서 국민이 건강한 이데올로기를 가지려면 스스로 정보의 진위를 선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는 수밖에 없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2-05

혹한에도 오토바이는 달린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눈보라가 하늘을 뒤덮는 겨울, 혹은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 피자나 통닭 따위의 야식이 먹고 싶다면 늦은 밤 오토바이로 배달되는 그걸 주문할 것인가?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미끄러운 도로 위를 달릴 배달원의 안전을 위한다면 주문을 하지 않아야겠지만, 생계 수단으로 오토바이 배달을 선택한 이들의 수입을 생각하면 날씨를 봐가며 주문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코로나19 사태’ 때 신종 직업으로 부상한 ‘배달 라이더’. 밥이건 술이건 모여서 함께 먹는 게 아니라 비대면으로 혼밥과 혼술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배달 라이더들은 바쁘다. 오토바이는 자칫하면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운송 수단. 눈이 내려 노면이 얼어붙으면 사고의 위험성이 더 커진다. 입춘(立春)을 지나 우수(雨水)를 향해 가고 있지만, 요 며칠 추위는 절기와는 무관하게 극악스러울 정도다. 서울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 하고, 경북도 영하 10도 안팎의 기온이 연일 이어지는 형국. 이런 상황이니 매서운 바람 속을 달리다가 받아든 따뜻한 차 한 잔은 배달 라이더들에게 더없이 귀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을 터. 최근 한 통신사는 배달 라이더들의 훈훈한 둥지 역할을 하는 ‘휴 서울 이동노동자 북창쉼터’를 소개했다. 이동노동자는 배달 라이더와 퀵서비스 기사다. 거길 가면 잠시나마 난로 앞에서 김 오르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핫팩도 준다니 그들에겐 고마운 공간이 분명하다. 서울시는 북창동 외에도 서초동과 합정동에 쉼터를 만들었다. 이런 건 경북의 지자체가 얼마든지 벤치마킹해도 좋지 않을까? 혹한의 오늘 밤도 배달 오토바이는 달린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05

‘국정협의체 현안’이 곧 TK지역의 숙제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이후 ‘휴업’ 상태였던 여야정 국정협의체가 다음주 재가동된다. 여야는 지난 4일 국회에서 국정협의체 실무회의를 열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참여하는 4자회담을 이르면 10일 열기로 했다. 국정협의체에서는 반도체특별법과 고준위방폐장법을 비롯한 경제·민생 법안처리가 주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2월 임시국회에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담긴 반도체특별법과 ‘에너지 3법’부터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너지 3법은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법, 해상풍력 특별법이다. 제1차 추경편성도 주요의제가 될 전망이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국정현안은 모두 TK(대구경북)지역의 핵심과제와 직결돼 있다. 먼저 포항 앞바다 유전개발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 시추작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려면 올해 본예산에서 민주당이 전액삭감(497억원)한 관련예산을 추경에서 복원해야 한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적정성을 의심하며 시추예산을 책정하는데 적극 반대하고 있다. 원전 11개가 있는 경북으로서는 에너지 3법에 포함된 고준위방폐물 처분장법 역시 긴급 현안이다. 현재 국내 대부분 원전은 고준위 방폐장이 없어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방폐물을 원전 내에 임시로 쌓아두는 실정이다. 구미에 집중돼 있는 반도체 소재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미래먹거리법’으로 불리는 반도체 특별법도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정 공백이 길어진 가운데, 여야정이 국정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긴급현안을 추진하려면 거대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조기대선을 의식해서 우클릭하고 있다는 비판은 나오고 있지만, 최근 이재명 대표가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면서 국정협의체 가동에 대한 접점이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2025-02-05

민주주의는 문화다

장규열 고문 민주주의를 국가의 정치체제나 법적 시스템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좁은 시각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규정되며, 삼권분립을 통해 작동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부의 운영방식이기만 하다면, 이는 외형적 발견에 불과하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제도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로 터를 잡아야한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체제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 안에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 선언하고,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표현만으로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추상적인 개념에 멈출 위험이 있다. 민주주의가 국민의 삶과 실질적 일상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헌법이 공허한 선언을 한 꼴이 되어버린다. ‘민주주의가 문화로 자리잡는다’는 건 국민들이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 권력자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관찰하는 자세, 공적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하는 습관 등이 민주적 문화의 부분이 아닐까. 단순히 선거에 투표하는 일을 넘어,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와 모든 일상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민주적 태도를 익히고 실천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문화로 정착된다. 민주주의를 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선택가능한 여러 체제 중 하나로 이해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가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여길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권위주의적 체제를 선호하는 태도로 나아갈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적 제도를 도입했다가 권위주의로 회귀한 사례가 수다하다. 단순히 정치인들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문화로서 민주주의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2016년 촛불혁명의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단번에 종결적으로 확립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제도뿐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부적절한 비상계엄같은 반민주적인 사태가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문화로 자리잡게 하려면,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공동체 안에서 자율적으로 집단적으로 의사결정과정을 경험하면서 민주적 가치관과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또한, 가정에서도 구성원 간 관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권위적인 가정에서 민주적 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론과 미디어도 민주주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다양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는 보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공동체의 문화로 뿌리내려야 한다.

2025-02-05

지역기업, 수출구조 재편으로 活路 뚫어야

대구상공회의소는 4일 미국 트럼프발 관세정책에 먼저 타격을 받게 될 지역기업을 두가지 측면에서 분류했다. 하나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생산시설을 두고 우회적으로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구상의 관계자는 “특정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수출선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역본부도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구경북 수출구조의 변화 분석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구와 경북의 제1 수출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지난 25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지난해 기준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대구 23.6%, 경북 32%였다. 이는 전국 평균 19.5%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라고 했다. 2위 수출국인 미국도 못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미 수출 의존도는 대구 23.4%, 경북은 16.2%다. 전국 평균 18.7%와 비교하면 높은 편에 속한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수출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다만 오랜 무역관행과 신개척지 발굴 과정이 쉽지 않아 개선이 잘 안 되고 있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면서 수출구조 개편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도 같은 문제로 고민한다. 5년 전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서는 우리나라는 수출품목과 수출 대상국의 집중도가 주요 수출국 가운데 1위라고 했다. 대구경북지역 기업도 다를 바 없지만 대구상의와 무역협회 조사에 의하면 전국 수준을 웃돌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기업의 수출 활로의 다변화 모색은 선결과제다. 특히 집중도가 높다는 것은 대외 변화에 민감하는 의미여서 수출선 다변화를 위한 노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곧 닥칠 트럼프발 관세 위기에 대응할 종합적이고 장기적 대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지자체 모두가 힘을 합쳐 각자의 영역에서 활로를 찾아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25-02-05

한의학으로 부종 해결하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몸의 붓기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증상 중 하나다. 특히 장시간 앉아 있거나 짠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했을 때 혹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쉽게 발생한다. 붓기는 단순히 외형적인 문제를 넘어 몸의 불균형을 나타내는 신호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붓기를 수음(水飮) 또는 습담(濕痰)의 증상으로 보는데 이는 몸속의 수분 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비위 기능이 약화되거나 기의 순환이 막혀 생기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습한 환경과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습관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붓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체질에 맞는 식이 요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개인의 체질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붓기를 줄이는 식품을 먹는 것이 좋다. 습한 체질의 경우 팥이나 보리 연근 무 등을 섭취해 습기를 제거할 수 있고 몸이 약한 체질은 대추나 생강 계피 등으로 기운을 보충하고 혈액 순환을 돕는 것이 도움이 된다. 찬 성질의 체질은 따뜻한 성질의 음식인 생강차나 율무차를 섭취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다. 혈자리 자극을 통해 몸의 기혈 순환을 촉진하고 붓기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특히 삼음교나 족삼리와 같은 다리의 혈자리를 자극하면 수분 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붓기가 심한 경우에는 한의사와 상담해 증상과 체질에 맞는 한약을 처방받을 수도 있다. 오령산이나 방기황기탕과 같은 처방을 기본으로 증상과 체질에 맞게 처방하면 몸의 건강과 더불어 수분 배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상에서 붓기를 줄이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우선 짠 음식을 줄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트륨은 체내 수분을 붙들어 붓기를 유발하기 때문에 가공 식품과 인스턴트 음식을 피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특히 국과 찌개류는 완전히 금하는 것이 좋다. 간단히 먹는다고 국에 밥을 말아 먹거나 찌개에 밥만 먹는 것은 내 몸에 독을 타 넣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하고 음식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걷기는 혈액 순환을 촉진해 붓기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혈액순환이 안 되면 붓고, 잘 되면 붓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주 걸어주자. 마사지와 족욕도 붓기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리와 발을 부드럽게 마사지하거나 따뜻한 물에 소금을 넣고 족욕을 하면 혈액 순환이 개선되고 붓기가 가라앉는다. 스트레스를 조절 하는 것도 붓기를 줄이는 데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지고 기의 순환을 막아 붓기가 더 심해지기 때문에 명상이나 호흡 조절 또는 충분한 휴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좋다. 붓기는 단순히 물을 많이 마셔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니다. 몸의 균형이 깨졌을 때 나타나는 신호로 한의학적 접근과 음식조절과 운동으로 효과적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만약 붓기가 지속되거나 너무 심한 경우 또는 통증이 동반된다면 전문가와 상담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생활습관과 한의학적 지혜를 통해 붓기 없는 편안한 몸을 만들어보자.

2025-02-05

호(號), 또 하나의 이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경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같이 활동하시던 소당(素堂) 조철제 선생님께서 누군가에게 호를 지어주고 다같이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에게도 호를 지어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쭈었다.그때도, 한참 후까지도 답이 없어 ‘네가 무슨 호가 가당키나 한가’ 생각하시는가 보다며 내심 서운했다. 내 위인됨이 변변찮다고 생각하시는가도 여겨 나도 입을 다물었다. 몇 년 후였다. 아마도 향토문화연구소의 정기모임이었을 것이다.조 선생님께서 마치 오다가 주웠다는 듯이 무심하게 종이 하나를 건네주셨다. 펼쳐보니 ‘의당(宜堂)’ 두 글자가 반듯하게 한자로 적혀있었다. ‘의(宜)’는 마땅하다, 화목하다. 온화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시경의 시 ‘도지요요(桃之夭夭)’에서 따왔다고 하셨다. 몇 년 동안 지켜봤는데, 언제 어디서나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 또 그곳을 화목하고 기쁘게 해주는 사람으로 보였다고도 하셨다.앞으로도 항상 이 교수가 있는 곳이 어디든, 마땅히 그 자리를 복되고 빛내도록 하라는 뜻으로 정한 호라며 분에 넘치는 말씀도 함께 주셨다. 호는 많이 알려서 자꾸 불려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공표하고 축하연도 조촐하게 열어주셨다. 그 후부터 경주문화원엘 가면 나는 의당 선생이라 불렸으나 항상 좌불안석이었다. 50살도 안된 내가 감당하기 어렵고 버거운 이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드러내놓기엔 쑥스러워 SNS의 닉네임으로 숨겨 쓰곤 했다. 몇 년 후 2005년으로 기억한다. 지역신문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연구실에서 기자와 장시간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그만 호를 말해버렸다. 며칠 후 신문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 : 경주에선 문화전문가, 포항에선 여성단체장, 안동에선 내방가사 전문가….” 참 기자님은 어찌 그렇게도 호를 적절하게 사용했나 놀라면서도 부끄러웠다. 대신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내 직분을 다하리라. 어디서든 필요하다 부르면 달려갔고, 소용 닿는다고 역할을 주면 마다않았다. ‘마땅한’ 소명이라 여기며 정말 치열하게도 살아냈다. 한글서예공부를 한 지 햇수로 1년이 훨씬 넘었다. 핑계가 많아 썩 열심히 하지 못했고 여러 모로 모자라 수연(秀硏) 최민경 선생님을 애태웠다. 같이 공부하는 다른 분들이 글씨를 완성해 호와 이름을 쓰고 낙관을 찍는 것이 못내 부러웠다. 최근에야 모자란 글씨인데도 격려해 주시려는지 한 장씩 연습한 글씨 아래 호와 이름자를 쓰기를 허락하셨다.이미 호가 있지만 새로운 호를 직접 지어주시면 고맙겠다고 간청 드렸더니 한참 후에야 답을 주셨다. 글을 연구하고 글씨를 연마한다는 뜻의 ‘서연(書硏)’. 더구나 선생님의 아호에서 한 자를 나눠주시니 황감하기 이를 데 없다. 좋은 글을 연구하고 글씨도 열심히 쓰니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과분한 말씀에 은근한 독려도 곁들이셨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얼마나 여러 날 심사숙려해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인가. 내 나이 칠십, 남은 생 다하도록, 이름값하면서 사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2025-02-05

겨울에도 꽃은 핀다

배문경 수필가 올겨울 젤 추운 날 겹겹의 마음이 모였다. 차에서 내리자 저편에서 S가 손을 흔든다. 추운데 얼른 차를 옮겨타라고 손짓한다. 배낭을 차에서 꺼내 친구 차로 옮기자 데워둔 차 안이 따뜻하다.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듯 반갑다. 그새 좀 수척해진 걸까. 희고 눈부신 피부는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밝게 빛나는 화이트 리시안 같다. 가까이 살아도 이렇게 모임을 따로 갖지 않고는 얼굴 보기가 힘드니 핸드폰으로 일상을 묻고 답을 하며 미루어둔 만남이 오늘이다. 이번 만남을 주체적으로 만들고 스케줄을 엮은 친구이기도 하다. 오랜 교직생활을 명예퇴직했다. 그의 집 뜨락에 푸르게 빛나던 화초처럼 나날이 빛난다. 날마다 포항 북부 해수욕장 근처에서 운동할 그녀가 반갑다며 손을 내민다. 곧이어 K가 차 문을 열고 앉자마자 대구까지는 본인이 운전을 하겠다며 나선다. 나는 속으로 안심이 되었다. 대구에서 운전하다 신호등이 헷갈려 사고 날 뻔한 경험이 있어 흔쾌히 고맙다고 했다. 제제벨 스프레이 장미처럼 화려한 그녀다. 선글래스가 언제나 잘 어울리고 어디서든 걸림이 없는 당당함과 거침없는 입담은 매력 만점이다. 스무 살에 그녀 손에 있던 카메라는 삶이 되었다. 웨딩 촬영 사진과 우리가 그녀의 손에서 재탄생되곤 했다. 한 편의 인생 드라마가 온전히 사진 속에서 시작되고 사진으로 연결된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걸려있던 무수한 사진들이 그녀의 삶이다. 근래는 십여 년을 추구해온 요가로 자신의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제 셋이 출발해서 동대구역으로 올 친구를 만나러 간다. 도착시간에 맞춰 그녀를 픽업해서 목적지로 향해가리라. 함께 하기로 했던 두 명의 친구 중에 한 명은 참석이 어렵다는 전화를 먼저 했던 모양이다. 다섯 명이 모여 가기로 한 여행이기에 미리 알았다면 나는 참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프지 말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무던하고 고요한 L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이를 돋보이게 한다. 누구보다 배려심이 많은 그녀를 보기 위해 만나러 간 적이 있다. 이 겨울 더 추워졌을 평창에서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다. 아프지 마라. 다섯이 아니라 넷이지만 옆자리 하나는 그녀의 몫으로 비워두었다. 그리움은 두 배가 되어 다음 만남에서 온전히 손을 잡고 기쁨을 노래하리라. 이전에 꼭 참석하겠다던 말이 떠 올라 마음이 짠하다. 작은 나비 같은 A가 환한 얼굴로 다가온다. 역으로 간 우리의 마중으로 함께 모닝커피와 도넛을 한입 베어 문다. 달콤쌉사름한 쵸코도넛과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우리의 아침을 맛나게 만든다. KTX를 타고 오느라 애썼을 그녀의 얼굴이 볼그레하다. 오늘 일정과 내일 일정을 공유하며 우린 떠났다. 겨울 구례 쌍계사의 옛 추억을 더듬었고 화계장터를 구경하며 생강청을 사고 옛 장터같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아점을 먹었다. 바로 앞 강에서 잡았다는 재첩이 든 부추전과 재첩국과 빙어 튀김으로 모두 만삭이 되었다. 그곳에서 먼 경남 산청으로 어둠을 뚫고 달려 동의 한방촌에서 구들목 같은 따뜻한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물며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새벽의 신선한 기운은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고 가벼운 세상의 나로 태어나길 기대했다. S가 삶의 고마움으로 일인 오만 원이 넘는 한정식을 예약 주문했다. 약선으로 만들어진 소갈비찜과 하나하나 공들인 음식을 우리에게 건강으로 선물했다. 덮개를 한 나무 터널을 지나며 사는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엄청나게 큰 기가 센 바위 앞에서 각자의 안녕과 삶을 위해 기도했다.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우리를 소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리란 마음 한 자락을 바위 구석구석에 새겼다, 빠듯한 일정으로 지치자 K가 족욕과 십전대보탕으로 짧고도 좋았던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또 한 번 두 손을 모았다. 어둠 같은 세상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다발처럼 함께 아름답게 뭉쳐 피어나자꾸나. 환갑이란 나이가 우리를 노을처럼 무르익게 만들지만, 아프지 마라, 그리고 다시 뭉칠 그날을 기약하며.

2025-02-05

오일장 나이키 -오천 장날 2

장세(場稅)를 못 낼 형편이라외곽 담벼락 아래, 여기는햇살이 참 따끈해요그냥 모여 질끈 징검다리 놓아요종일 기다려 몇 단 판 봄나물파장 무렵, 눈길 끄는 저 신발 손주 생각기술력이 좀 떨어진다고나쁜 신발은 아니라네요식구들 거 다 챙겨요서울 것들, 눈여겨 보지도 않을 테지만임대료 유통마진 브랜드 파워세금까지 후려치고도 거뜬하다네요서민경제 기여한다고도 하고,그래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더라도가야 할 길, 조여매고 가고 싶어요꼭 가요이류(二流)라도 일류 흉내 내면서결국에 가장 하류가 되면마음 편할 거라 생각해요나는 가당찮은 희망을 꿈꾸지 않아요옆 난전에서팬티도 몇 장 사서집으로거침없이달려볼까나.나이키도 닳는다. 오일장 나이키도 마찬가지다. 벤츠도 차가 막히면 속수무책이다. 모든 술은 다 취한다. 사람은 결국엔 죽는다. 나는 실용을 추구한다. 가난한 변명에 불구하지만 외형에 현혹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 별로 쓸모없지만 말이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05

‘유치원서 TOSEL 숙제’ 이게 사교육 현실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TV채널을 돌리다가 ENA(연예 전문채널)가 방영하는 ‘내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기 연예인 부부의 아이들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내용이었다. 부모 품을 떠난 아이들이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여행하는 모습이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감탄하는 내 모습을 본 와이프는 ‘영어 유치원’ 얘기를 꺼냈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에서도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일찌감치 영어유치원에 보내 영어로 일상생활을 하는 언어습관을 들인다는 것이다. 영어 사교육 실상은 최근 EBS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상당수 MZ세대 맞벌이 부부들은 기저귀도 못 뗀 영유아기부터 영어 사교육을 시작하고 있으며, 월 사교육비가 평균 182만9000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사교육비 금액은 지난해 한 국책연구기관이 만 2세와 3세, 5세 자녀를 둔 엄마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6세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는 한 엄마는 EBS와의 인터뷰에서 “유치원에서 영어단어 테스트를 보고, 일주일에 한번씩 토셀(TOSEL) 숙제도 계속 나온다”고 했다. 유치원에서부터 토익과 토플 같은 유형의 영어능력 시험을 치른다는 얘기다. 자녀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빚내서라도 따라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요즘 젊은 부부들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자료는 아니지만, 지난 2023년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 국내 초중고 학생의 79%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 총액도 27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생 수가 주는 데도 사교육비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5만3000원으로 집계됐지만, 서울 강남구 교육 특구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평균 185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초중고 12년간 약 2억7000만원을 사교육에 쓴다는 계산이다. 초중고 자녀 2명(4인 가구 기준)의 사교육비가 가계 월평균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4%까지 늘어났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사교육 열풍은 중·고등학교 단계에서 심각한 양극화 현상으로 표출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서열구조가 자녀의 고교 서열구조(국제고-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BBC(영국방송공사)는 “한국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을 능가하는 인구 감소 상황에서도 사교육비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의 사교육문화가 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 기록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 부부들의 출산기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사교육비 문제는 학벌주의와 과도한 입시경쟁이 주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 공교육의 질적 수준과도 연결되는 구조적인 병리현상인 만큼 정부, 학교, 학부모, 학생 모두가 함께 해결책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2025-02-04

울릉에도 유전 가능성, 野 ‘산유국 꿈’ 외면말라

울릉분지에 최대 51억7000만 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용역 보고서가 한국석유공사에 제출됐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지질탐사전문 컨설팅 업체인 액트지오사가 작성했다. 액트지오사는 지난해 6월 정부가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수 있다고 발표한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탐사 분석을 진행한 회사다. 석유공사는 “현재 용역 결과만 제출받은 단계여서 전문가들과 추가 검증을 정밀하게 진행해야 더 구체적인 매장량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증작업은 국내 전문가 위주로 진행 중이며, 3월중 완료된다. 탐사 성공률은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비슷한 20% 수준으로 분석됐다. 최소 7000만t에서 최대 4억7000만t의 가스, 최소 1억4000만 배럴에서 최대 13억3000만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14개 구조 중 탐사자원량이 가장 많은 곳의 이름은 ‘마귀상어’다. 문제는 액트지오사에 대한 야당의 불신과 탐사재원이다. 포항 앞바다 석유·가스 부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사업적정성을 의심해왔던 민주당이 울릉분지 유전 탐사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주당은 2025년 예산심사에서 대왕고래 1차 시추 예산 500여억 원을 전액 삭감해버렸다. 현재 석유공사가 회사채를 발행해 1차 시추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추가 시추가 정상적으로 추진될 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2차 시추부터는 해외 투자유치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대통령 탄핵정국 속에서 해외 투자유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철우 경북지사가 그저께 밝혔듯이, 동해 유전개발 사업은 에너지 안보차원에서 정파를 떠나 차질없이 진행돼야 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이어 울릉분지 유전 탐사가 성공하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4%에 달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립국이 된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산유국에 대한 국민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이번 1차추경에 관련예산을 반드시 책정하길 바란다.

202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