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기후 대응·탄소중립, 피할 수 없는 국가현안”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RE100’은 지난 2월 3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거론되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단어다.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질문했고, 지금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논란이 됐었다.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전부(100%)를 신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이다. 구체적으로는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다국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약속이다. 2월 현재 구글, 애플, GM, 이케아 등 349곳이 참여해있고, 국내에서는 SK그룹 계열사 8곳과 LG에너지솔루션, 한화큐셀, 고려아연 등 14곳이 참여를 선언했다.대선 토론회 당시 윤석열 후보가 RE100에 이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EU택소노미(EU Taxonomy)’는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다. 어떤 에너지원이 친환경·녹색 사업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기준으로, 유럽연합(EU)의 ‘녹색분류체계’라고 보면 된다.택소노미에 포함된 에너지업종에 대해서는 각종 금융 및 세제 지원을 제공해 투자를 유인한다. EU가 세계최초로 2020년 6월 EU판 그린 택소노미 가이드를 발표했다.확정안에 따르면 신규 원전 투자가 친환경 활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투자 대상이 될 신규 원전은 2045년 전에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은 2040년까지 승인이 필요하다. 신규 원전을 짓는 EU 회원국은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세부 계획을 세워야 한다.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인 K-택소노미를 준비해왔다. 2021년 5월 초안공개에 이어 2021년 12월 말에는 최종안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원전이 아예 제외되었다.신재생 에너지만으로 100% 전력을 생산하면 더없이 좋으나 2050년까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벅찬 게 현실이다.그래서 프랑스 등 탈원전을 추진했던 나라들로부터 다시 원전이 각광을 받는데,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한국의 원전을 5년간 사장시키고 폐기하다시피 했다.이명박 정부 때 UAE에 원전 4기 공사를 수주했으나, 이제는 이집트 원전건설 하청업체로 전락한 걸 자랑할 지경으로 원전 산업도 뒤처지고 말았다.지금까지의 정책적 흐름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기막힌 용어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쳤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모든 정책을 거꾸로 갔기 때문에 ‘기후정책이 멈춰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을 폐기하고 동시에 전국 산야를 태양광 투기판으로 변질시켜 기후정책과 탄소중립이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이제 탄소중립은 국가도 기업도 피할 수 없는 당면 과제가 됐다.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2018년 배출량 대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40%를 절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는 198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를 설립하여 차근차근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최근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11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지자 행보를 하여 세계적인 추세에 한참 뒤처지는 엉뚱한 정책을 시행하였다.내년부터 EU에서는 제품 수입 시 탄소세를 부과할 계획이고, 이제 탄소중립은 우리 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특히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등 탄소중립에 취약한 제조업이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고 가장 타격을 많이 입을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새 정부는 모든 선입견과 감상적 판단을 떠나 냉철히 세계적인 추세와 현실을 직시하여 ‘기후변화대응·탄소중립’이라는 도전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고 기업과 국가경쟁력 향상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문재인 정권이 지난 5년간 하지 말아야 할 정책을 추진하다 나라를 어떤 지경으로 만들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새 정부는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한다.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탄소중립은 정부만의 역할로는 안된다. 당장 피해는 기업으로 오고 부담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작든 크든 가릴 것 없이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들대로, 국민 모두가 각자 적극적으로 역할을 찾아서 감당해야 선진국 추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항상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들었던 한민족 DNA를 살려서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 기후변화 선도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RE100!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2022-03-13

슬도

화면 가득 노란색이 손짓한다. 저기가 어딜까 하고 클릭해보니 ‘슬도’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름의 섬에 우리 동네에는 아직 고개를 내밀지 못한 유채꽃이 환하게 피었다. 파도 소리 들으며 해풍에 몸을 맡기고 노랑노랑 흔들리고 있었다. 얼른 간식 바구니를 챙겨 집을 나섰다.달려가니 울산 대왕암 근처였다. 소문을 나만 들은 게 아닌지 주차장이 꽉 찼다. 마침 빠지는 차가 있어서 차를 내려놓고 섬을 향해 걸었다. 이제는 섬이라 불러도 되나 싶게 작은 슬도까지 방파제가 연결되어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오갔다.울산 동구 방어진항 끝에 있는 슬도는 바위에 구멍 투성이라고 곰보섬, 또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에 갯바람과 파도가 부딪칠 때마다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하여 슬도(瑟島)라 불려 이름이 여러 개이다. 슬도의 본래 이름은 시루섬이었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음이 비슷한 슬도가 됐다. 퇴적된 사암이 켜켜이 층리를 이룬 슬도의 모습은 여지없는 시루떡 모양새다. 떡 찌는 시루에 구멍이 숭숭 난 점을 보면 시루섬이란 이름이 안성맞춤이다.바위가 백 만개가 넘는 구멍으로 뒤덮였다. 모두 돌맛조개가 판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슬도 인근에서 돌맛조개가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한다. 구멍들은 표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면에 잠긴 부분에서도 수없이 발견된다. 수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둥근 형태가 뚜렷하다. 어떤 구멍에는 따개비나 덩굴 생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돌맛조개가 버린 ‘집’을 자신의 집으로 삼은 것이다.지금까지 슬도에 대한 공식적인 학술조사는 없었다. 최근 슬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방파제(150m가량)가 설치된 뒤부터 관심이 늘었다.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슬도 인근 주민들은 바위의 구멍이 파도에 의해 뚫렸을 것으로 짐작했단다. 섬 꼭대기에도 구멍이 있는 것을 보면 해저 암반이 융기해 섬이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물속에 잠겨 있을 때 조개가 구멍을 팠을 것이란 얘기다. 슬도의 퇴적암층에 꼬막 화석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바위에 난 큰 구멍이 하얗다. 파도가 들어와 말라 소금으로 변했다. 섬 위에 우뚝 선 하얀 등대에 푸른 고래가 휘감고 헤엄쳐 오른다. 그 앞에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한 마리를 등대 높이만큼 세웠다. 슬도의 거문고 소리에 맞춰 푸른 고래들이 유유히 바다로 향할 듯하다.대왕암까지 오솔길이 나 있다. ‘슬도 바다길’이라고 해파랑길의 한 구간이다. 등대에서 걸어 나와 소리박물관을 지나다 보면 말 한 마리 키우는 카페가 있다. 성끝마을이다. 동네 이름이 성끝마을인 이유는 조선 시대 이곳에 말을 키우려고 울타리를 쳤는데 마성이라 불렀고 그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마을 담장에 벽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노랑의 물결이 눈을 환하게 하고, 쐬아아 밀고 들어오는 파도가 귀를 시원하게 만든다. 왼쪽은 유채꽃 바다(키가 유난히 작다 했더니 알고 보니 청경채 꽃이라고 했다), 오른편은 동해다. 두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입에 머금는 순간처럼 몸이 화하다.슬도의 가장 매력은 또 있다. 동해에서 드물게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 말간 하늘보다 수평선 위로 바삐 귀가를 서두르는 듯 자리를 정리하는 해를 뭉싯거리는 구름이 가리기라도 하면 더 멋진 풍경화가 그려진다. 물이 빠져나갈 때면 등대가 물끄러미 바닷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 등대 뒤편으로 붉은 기운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노을의 부름에 대답하듯 산책로에 불빛이 들어오고 등대도 빛을 쏟아낸다.내항에 불빛이 길게 일렁인다. 밤의 방파제를 산책하노라면 고흐가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낮보다 깊어진 파랑의 하늘에 노란 별이 점점이 박히고, 물 위로 불빛이 흔들리는 그림이 방어진항의 밤 풍경 그대로였다.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모여든 등대 주위로 슬도가 연주하는 밤의 소나타가 그윽하다./김순희(수필가)

2022-03-13

파랑새를 찾아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벨기에 시인이자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1862∼1949)가 쓴 ‘파랑새’가 떠오르는 시점이다.1908년 출간된 ‘파랑새’를 러시아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모스크바 예술극장’ 무대에서 곧바로 상연한다. 외견상 ‘파랑새’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 같지만, 그 내면에는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로가 자리한다.크리스마스 전날 밤 가난한 남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선물을 받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다. 그때 옆집 할머니가 들어와서 앓고 있는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건네준 요술 모자를 쓰고 길을 떠난다. 아이들은 ‘추억의 나라’와 ‘밤의 궁전’을 지나 ‘행복의 궁전’과 ‘미래의 나라’를 떠돌다가 돌아온다.아이들이 돌아왔다기보다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는 말이 더 맞겠다. 아이들이 돌아다닌 세계는 꿈의 환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옆집 할머니가 들어오자 아이들은 파랑새 대신 비둘기라도 가져가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집에서는 비둘기를 기르고 있었다.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긴다. 아이들의 비둘기 날개가 파란색으로 변하여 그들이 찾아다녔던 파랑새가 집 안에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할머니는 파랑새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고, 딸은 기력을 회복한다. 아이들이 먹이를 주려고 새장 문을 열자 파랑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행복의 노예처럼 보인다. 누구나 삶의 가장 큰 원인을 행복에서 찾는다. 행복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행복 강박증에 중독된 사람들 같다.그런데 그들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이 별로 없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행복의 조건을 숙고하지 않은 채 행복을 추구함은 허전하고 이상하다. 왜 부자가 되려는지, 왜 결혼하려는지, 왜 대학에 들어가려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들이 행복을 찾고, 부자가 되려 하고, 결혼과 진학은 누구나 하는 거니까 거기 맞춰 살아가려는 게다. 오랜 세월 독재자들의 병영국가, 군사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서 그런지 우리는 전체주의와 획일주의에 익숙하며 그것에 순치(馴致)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고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는 온갖 것을 돌이켜보면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이토록 차고 넘치는 물질과 재화와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때로 격절(隔絶)된 작은 섬들을 본다. 난바다에 둥둥 떠서 서로를 목청껏 부르지만, 누구도 그 목소리에 호응하지 않는 차갑고 비정한 세상.3월 9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선이 끝났다. 홀가분하다. 북새통처럼 시끌벅적하던 사위(四圍)가 고요해지니 이제야 사람 살아가는 세상처럼 보인다. 사람 하나 바뀐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러니 다투고 시비하던 사람들이여,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 차분하게 일상과 대면하시라. 당신이 기다리던 진정한 파랑새는 거기 있을지 모르니까.

2022-03-13

대구·경북 대선공약, 지역발전 전기 삼아야

20대 대통령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대구와 경북은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지역이 소외당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각종 지역현안을 논의할 소통 채널이 많아지고 현안 해결의 길도 그만큼 넓어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대구(75.1%)와 경북(72.7%)은 전국에서 가장 압도적 지지로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공헌했다.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보수지지층 기반이 두터운 지역의 여론이 반영된 결과기도 하지만 국민의힘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는 누가 뭐래도 지역이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대구시와 경북도는 당선자의 공약이 새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세부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고 한다. 대구시는 오는 22일 대선공약 이행계획보고회를 갖는 등 지역 현안의 국정과제 채택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대구시와 경북도의 대선공약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조속 추진, 달빛고속철도 조기 착공, 낙동강취수원 다변화, 신한울3·4호기 건설 재개, 경북광역교통망 확충, 영일만횡단대교 건설 등 굵직한 사업만 손꼽아도 적지 않다. 대구와 경북의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 대응전략에 따라 공약이행 속도나 규모 등이 달라질 수도 있다. 치밀하고 계획적이어야 한다. 이는 자치단체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역 정치권이 힘을 모아 지역의 대선공약이 정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국민의힘이 야당이라서 어렵다는 소리는 더는 할 수 없다. 지역현안을 잘 챙겨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 시간이다. 특히 대구와 경북의 최대 현안인 신공항 건설은 지금부터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중남부권 거점공항이자 경제물류공항으로 명실상부한 명품공항으로 조성해야 한다. 공항을 중심으로 공단이 활성화되고 신도시가 생겨나 지역경제가 활기를 찾는 날을 앞당겨야 한다. 2028년 통합신공항이 제때 개항하는 데는 지역 정치권의 노력이 얼마나 투입됐느냐에 달렸다.

2022-03-13

전면개편 앞둔 K방역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K방역이 머지않아 전면개편될 전망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진행된 지난 9일 0시 기준 국내 신규 확진자는 34만2천446명으로 국내 유행 이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다. 이후 연일 20만∼30만명대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 누적 확진자 수는 620만6천291명에 이르렀다.이에 따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의 코로나19 방역정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집권 100일 이내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집중된 피해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보고, 과학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방역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과학 기반 사회적 거리두기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했다.또 대통령 직속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 설치와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피해 업종 지원 방안 등도 약속했다. 장기적으로는 중증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료 자원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하고,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평소보다 가산된 수가를 적용해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력의 이탈을 막겠다고 약속했다.이에 더해 윤 당선인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의심되는 사망·중증 사례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인과관계 증명에 나서고, 충분한 치료와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피해 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방역 컨트롤타워도 대거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전 세계에 자랑한 K방역이 실상 자영업자 희생시키는 주먹구구식 방역, 거리두기라고 비판했다.어떻든 결과적으로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K방역의 폐해가 하루빨리 시정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13

인수위의 지역균형발전 TF, 민심 잘 듣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에 지역균형발전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기로 했다.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윤 당선인이 우리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진지한 접근과 해법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받고 결단했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전국 광역자치단체로부터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한 의견을 수렴해서 국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비수도권 시장·도지사들은 이번 기회에 지방소멸문제가 국가현안으로 다뤄져 획기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도록 총력을 쏟아야 한다.윤 당선인은 대선운동 기간 중 누차 “지역균형발전은 국가생존의 문제다. 이 문제는 양극화를 해결하는 문제와 똑같이 생각한다”고 말해왔다. 당선인 말처럼, 우리나라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수도권 집중도를 보이고 있다. 수도권 공화국에 따라오는 부작용은 당연히 비수도권 소멸이다.비수도권 소멸을 막는 유일한 해법은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수한 기업을 유치하고 인재들이 찾는 대학을 비수도권에 육성하면 청년들이 가족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떠날 이유가 없다. 최근에는 외국에 차렸던 공장을 국내로 다시 들여오는 리쇼어링 기업이 꾸준히 늘고 있다. 대구·경북에도 지난해 6개의 리쇼어링 기업을 유치했다.인수위원장으로 선임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리쇼어링이 가장 효과가 좋은 일자리 정책”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등 현지에서도 공급망 불안이 커지고 인건비가 많이 올라 국내 복귀를 고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비수도권 지자체가 인센티브를 확대해 적극적인 유치전을 펴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다.인재육성을 위해서는 지난달 경북대를 비롯한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가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 내용을 받아들이면 된다. 회견 내용의 요점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굳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정부가 시행해 달라는 것이다. 인수위 지역균형발전 TF가 얼마나 민심을 잘 경청해서 좋은 정책을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2022-03-13

‘살얼음 당선’ 잊지 않으면 좋은 대통령 된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새벽 피말리는 개표전에서 승리한 후 “당선인 신분에서 새 정부를 준비하고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헌법 정신과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선기간 내내 동력으로 삼았던 ‘헌법정신’을 강조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를 당선인의 최대 현안으로 밝힌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윤 당선인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사상 유례없는 근소한 표차(24만7천여 표)로 이겼다. 이러한 초박빙 득표차는 통합과 협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라는 민심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윤 당선인은 정권 인수단계에서부터 180석 안팎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집요한 태클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민주당의 도움 없이는 첫 내각 구성부터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윤 당선인이 ‘민주당의 훌륭한 분들’이라고 언급하면서 협치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선거 이후의 국민 통합과 화해는 거의 전적으로 대통령 당선인에게 달렸다. 지금 당선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와 함께, 낙선 후보자들에게 던진 유권자들의 마음도 정확히 읽고 그들을 진정으로 끌어안는 것이다.윤 당선인이 또 한가지 풀어야 할 현안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비수도권지역의 소멸위기를 막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윤 당선인에게 몰표를 던지다시피 한 것은 지방의 소멸위기를 국가생존차원에서 대처해 달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대구·경북은 문재인 정부 5년동안 국책사업과 예산배정에서 엄청난 박탈감을 느껴왔다.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 대유행 사태를 겪으며 많은 조롱까지 받았다. 이 지역민들은 역대 정부에 특별대접해 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타지역과 같이 공정하게 대해달라는 것이다.윤 당선인은 이번 선거운동과정에서 대구경북지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다시한번 꼼꼼히 살펴보고 반드시 실천해주길 바란다. 지역정치권도 당선인 눈치나 보며 사익을 추구하지말고 이 지역 공약이 이행되도록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2-03-10

고삐 풀린 방역… 선거 후폭풍 비상한 대비를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틀 연속 30만명을 넘어서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폭증세다. 10일 하루 신규 확진자는 32만7천549명으로 전날에 이어 또다시 30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확진자도 550만명을 넘어섰다. 정부가 오미크론을 감기처럼 관리하겠다며 방역패스를 중단하고 확진자를 재택방치한 것이 화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조치가 느슨해지면서 코로나 검사를 기피하는 샤이 오미크론 환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자가검사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도 코로나 유전자증폭(PCR)검사를 받지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7일간 의무격리가 불편하거나 생업이 바쁘다는 이유에서다. 그 수를 감안하면 하루 확진자는 지금의 두배 이상 될 것이란 예측이다.문제는 아직 오미크론 변이가 정점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올지 심히 걱정스럽다. 깜깜이 환자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규 확진자가 늘면 사망자와 위중증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10일 위중증 환자는 1천113명이며 하루 사망자도 206명을 기록했다. 누적 사망자가 1만명에 육박한다. 위중증 환자 증가에 대비한 의료체제 정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대구와 경북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 1만1천601명, 경북에서 1만1천960명 등 하루 확진자 수가 나날이 증가세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는 확진자 발생으로 등교를 하지 않은 학생이 수천명에 이르고 학교수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동선이 겹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선거후 닥칠 후폭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은 선거 후 지금보다 방역조치를 더 완화하겠다고 이미 밝힌바 있다. 좀 더 신중하고 준비된 방역체계 구축이 먼저 있어야 한다.오미크론 정점 이후 방역을 완화한 외국의 사례를 잘 살펴 방역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확진자가 각자도생토록 놔두는 것은 정부의 무책임이다. 선거가 끝났으니 느슨해진 방역 경각심을 다시 일깨우고 새로운 각오로 방역시스템도 다잡아 가야할 것이다.

2022-03-10

5년간 망가진 나라 바로 세워 주길

정상호경북취재부장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윤 후보에게로 모였기 때문이다. 윤 후보의 당선은 문재인 정권 5년간 지치고 실망한 국민이 투표로 준엄한 심판을 한 것이다.지난 5년 간 문재인 정권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정치보다 자신의 지지 세력만 바라보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로남불로 대변되는 위선과 불공정에 국민들 가슴은 부글부글 끓었다. 국민과 야당이 그토록 반대해도 임기 내내 자기 사람을 정부 곳곳에 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외향적 경제지표와 달리 국민들 입에선 지난 정권보다 살기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지 오래다. 내놓는 정책에도 불구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면서 이제 서울은 물론 지방마저 월급 모아 집 사는 꿈은 멀어졌다. 규제를 풀고 공급을 늘려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대신 재건축에 온갖 조건을 갖다 붙이고 대출을 옥죄면서 집값은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됐다. 전문가들은 반시장적 정책을 참사의 원인으로 꼽는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었더라면 나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부동산정책만은 자신 있다고 큰 소리 치더니 결국은 국민에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생소한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선무당 사람 잡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은 되레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의 주름살만 가중시켰다. 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근로시간 단축에 투자의욕이 꺾이고, 그 바람에 젊은이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는 쪼그라들었다.영화 한편에 감동해 시작된 탈원전은 50년간 쌓아온 원전강국의 위상을 흔들고 수많은 원전 강소기업들이 고사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이제와선 탈원전 정책을 편적이 없다고 강변하니 뻔뻔함에 말문이 막힌다.국민들이 윤석열 후보에 표를 던진 요인 중 안보 불안이 큰 작용을 했다.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무수한 도발행위에도 문재인 정권은 북한 김정은 남매의 심기가 더 중요한지 말 한마디라도 단호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애초 북한이 주적인지 물어도 대통령은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우리 안보의 절대적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는 국민이 보기에 문재인 정부 내내 불안불안해 보였다.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은 우리 생존에 필수적 사항이 아닌가. 그런데 사드 배치를 비롯한 각종 사안마다 문재인 정권은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야당의 반미, 친북, 친중, 친러 정권이라는 성토가 국민의 가슴에 더 와닿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재인 정권이 5년간 망가뜨린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훼손된 정의와 공정을 바로 잡아 비정상적인 나라를 정상화 시키고 튼튼한 국방력을 회복시켜 국민의 안보불안을 잠재우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 다음은 각종 규제를 타파해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워 침제된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무엇보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방 유세 때 약속했던 사안들을 실천해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이뤄주길 바란다. 지방소외란 말이 윤석열 정권에선 나오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2022-03-10

메르켈처럼

우정구 논설위원 작년 9월 독일 총리직에서 물러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독일 사상 첫 여성총리이자 최연소 총리, 유럽 최장수 여성총리 등과 더불어 포브스가 선정한 9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그보다 그녀의 사상과 철학을 반영한 메르켈리즘은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권력을 과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하면서 힘을 가진 정책을 관철시키는 그의 리더십이다. 엄마 리더십이라고도 부른다. 엄마처럼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부드럽게 소통해 결과를 이끌어 내는 힘이다.그의 소통력은 EU 단합을 이끌었고, 그의 포용력은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을 수용하게 하는 쉽지않은 일의 원동력이 됐다. 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반대당이 주장하는 탈원전 정책도 과감히 채택하는 유연성도 보여주었다.독일의 한 작가는 “메르켈은 꿈과 비전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는 실현 가능한 것을 생각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생각은 온갖 실용적 가치에 몰두해 있다는 것을 꼬집은 말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많은 기대와 주문이 몰려있다. 새 대통령이니까 많은 기대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나 투표를 통해 확인된 갈라진 민심을 보니 국정 수습이 쉽지 않아 보여 걱정이다. 가시덤불보다 더 험한 길을 헤쳐가야 할지 모른다.메르켈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주의다.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있다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국익을 선택하는 것이다. 양보와 협력, 협치, 통합, 포용 등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정치적 수단을 동원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메르켈리즘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3-10

새 당선인의 반면교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반면교사(反面敎師)란 말이 있다.‘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나쁜 본보기’를 일컫는 말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때 마오쩌뚱이 처음 사용한 ‘반면교재(反面敎材)’란 말이 변한 거라 한다. 당시 마오쩌뚱은 제국주의자, 반동파, 수정주의자들을 반면교재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추진한 문화혁명이 바로 후세의 반면교사가 되었다. 이번 선거의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지금의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잘한 것이 있으면 본받고 이어가야 하겠지만 행적의 대부분이 버리고 바꾸어야 할 것들이 때문이다.우선은 종북주사파들이 주축이 되어 철지난 이념과 왜곡된 역사관으로 나라의 근간이자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과 인접해 있고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자유민주주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으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나라의 안정과 발전의 기반이 된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란다.다음으로는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법, 탈법을 당연시 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정권의 폐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이 엄정하게 지켜지기를 바란다.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장악한 정권이 하는 일이 독단과 전횡 밖에 더 있는가.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안들을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다거나, 정권의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는 척 늑장을 부리거나 수사팀 자체를 해체해버리는가 하면 편파판정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아온 터다.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가 용인술, 즉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능력이라는 건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지도자가 자만심을 가지고 만기친람하려 들어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지만, 그릇된 이념이나 당파에 매몰되어 편파적인 인사를 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원인이 된다. 문제인 정권은 능력이나 적절성 등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편이냐 아니냐가 인사의 기준이었다. 각 부처 장차관은 물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까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놓고 공정과 정의를 말하는 후안무치는 당연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문재인 정권의 임기 말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라고 한다. 잘한 것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데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편 가르기’의 효과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일단 편을 갈라 상대를 적폐로 몰고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기면, 소위 ‘대깨문’ 같은 맹목적 추종자들이 생겨나서 머리가 두 쪽 나도 일편단심 지지철회를 않는 것이다. 이것을 반면교사 삼지 않고는 아무리 통합과 공존을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그 밖에도 임기 5년을 고작 몇 차례 기자회견으로 끝낸 불통정치, 이념에 치우친 반미친중 외교와 굴종적 대북정책, 문정권 트레이드마크인 ‘내로남불’과 적반하장도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2022-03-10

대선, 새로운 정권을 택하다

윤영대수필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 속에서 치르진 선거 열풍은 사전투표와 본 투표에서 총 유권자의 77.2% 투표라는 기록을 세웠고 광주에서는 81.5%가 참여할 만큼 이번 투표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선거였다. 4강 대결 구도였으나 마지막에 윤석열-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각자 ‘위기에 강한 대통령, 국민이 키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주4일제 복지국가와 일하는 시민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온갖 비리와 가정사를 뒤적이며 욕설과 폭로로 뒤범벅되어 싸워왔던 선거였다.사전투표에서 드러난 몇 건의 부정투표 흔적을 기억하며 투표장으로 가서 받아든 기다란 투표용지에 조심스럽게 도장 찍고 접어서 투표함에 넣으면서 깨끗한 선거가 되기를 빌었다. 확진자 투표가 종료되고 곧 시작된 개표방송에서 공개된 사전 출구조사는 차이가 1%를 밑도는 박빙의 대결이었고 6일간의 여론 조사에서도 오르락내리락하며 예측 불가의 선거판이 됐었다. 만18세가 처음으로 참여했고 40대는 2~30대, 5~60대와 지지 후보가 다른 세대 차이도 보였고 20대는 이대남, 이대녀로 갈라져 표심도 달랐으며 영남과 호남의 지역 격차가 컸다는 것도 우리 국민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개표방송에 들어갔고 처음에는 2%도 안 되는 작은 차이로 여당 후보가 앞섰으나 자정이 넘어서면서 야당 후보가 그만큼 앞서갔다. 48.6%와 47.8%의 수치는 출구조사 결과와 거의 같아서 놀랍고 변화 없이 차이를 유지하다가 새벽 3시가 지나자 당선 확실이라는 화면이 떴다. 이번 선거결과에 마음이 끌려 밤새워 시청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많은 아파트의 창문에 불이 켜져 있어 모두가 이번 선거의 결과에 걱정이 많구나 생각했다. 한밤중에 휴대폰이 카톡 대며 지인들이 밤새워 선거결과에 대한 문자를 보내왔다.국내에는 아직도 울진, 강릉 산불이 숲을 태우고 있고 해외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는 우려 속에 우리는 이 나라 5년을 이끌어 나갈 대통령을 뽑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 ‘투표는 총보다 강하다’라는 링컨의 말처럼 국민 모두가 한표 한표 던져서 응원을 보냈고 후보들도 그 힘을 얻어 뛰었을 것이다. 각 후보들은 경제 분야에서는 기본소득, 청년 기회, 손실보상과 좋은 일자리 등을 설파했고 기후위기 과제에서는 에너지 고속도로, 탄소 중립, 탈원전 폐기 등을 내걸었으며 출산과 육아의 복지문제 등에도 각자의 정책을 내세웠다. 이제 당선자는 이들 선거공약을 재검토하고 상대방 의견도 받아들여서 그동안 비뚤어지고 엇길로 새어나간 정책 등을 바로잡고 정치와 정권 교체를 잘 이행하여 새로운 국가 사회를 이루어 주면 좋겠다.당선 확정 새벽에 한 인사말처럼 새 정부를 준비하고 헌법정신과 의회를 존중하며 야당과 협치하여 국민을 잘 모시겠다는 약속대로,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지 않는 대통령이 되어 ‘미래를 바꾸겠다’는 출마 의지를 지켜주기 바란다. 휘두르는 새 권력이 아니라 혼란을 극복하고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여는 새 살림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03-10

당선인이 가져야 할 시대정신은 국민통합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9일 저녁 완료됐지만, 투표집계 결과 여야 후보의 팽팽한 대접전으로 이어지면서 당선자는 이날 자정까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지상파 3사 공동 출구조사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48.4%, 민주당 이재명 후보 47.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빙의 승부전이 전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출구조사에서 사전투표 및 코로나 확진·격리자 투표가 제외된 만큼 정확도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본지는 신문인쇄 마감시간 관계로, 누가 승리하든 당선인이 해결해야 할 주요 국정과제를 주제로 사설을 싣는다. 먼저 긴 대선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둔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선전(善戰)했지만 낙선한 후보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이제 피 말리는 승부는 끝났다.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가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하나가 돼 미래를 함께 열어 가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사상 유례없는 사전투표율이 나타난 것은, 그만큼 팍팍한 삶에 짓눌려온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절박하게 나타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국민통합은 시대정신코로나19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촉발된 경제·안보 위기 상황 속에서 새 대통령 당선인이 맞닥뜨린 도전과제는 만만찮다. 당선인의 어깨는 그 어느 대통령보다 무겁다. 지금 당선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와 함께, 낙선 후보자들에게 던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그들을 진정으로 끌어안는 것이다.선거 이후의 국민통합과 화해는 거의 전적으로 승자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당선인은 앞으로 새 정부를 운영하면서 그동안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강조해온 대로 상대정당의 정책을 폭넓게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거 선거에 비해 희석되었다고는 하지만, 대구·경북 지역과 호남 지역에서 거듭 확인된 뚜렷한 지역성향도 시급한 통합과제로 삼아야 한다. 당선인의 진영 통합 의지는 취임 이후의 인재등용에서 드러난다. 대선에서의 논공행상을 최대한 배격하고, 정파를 뛰어넘어 폭넓게 인재를 중용해야 한다.위태로운 안보와 경제국가안보는 당선인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북한은 핵 개발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계속적인 도발을 해 오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유일한 국제적인 안보시스템인 한미동맹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정에서도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대러시아제재 동참에 우물쭈물하다 미국측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4국(호주·인도·일본·미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에도 한국은 쏙 빠져 있다. 새 대통령의 정상외교 능력에 따라 주변국과의 관계가 긴밀해질 수도, 멀어질 수도 있다.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당선인은 미국과의 동맹을 확고히 유지하고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경제도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기업 정책이 줄줄이 시행돼 대기업의 연구개발과 투자 의욕이 차갑게 식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새 정부는 기업활동이 활성화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이 지속하면 청년들은 일자리를 못 구하고 영세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 당선인은 한계에 부닥친 한국 경제를 새로 디자인하고 뼈를 깎는 구조 개혁으로 경제 회생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비수도권 소멸도 긴급현안국토균형발전과 비수도권 소멸문제는 당선인이 국정과제 0순위로 삼아야 할 현안이다. 모든 권력과 사회적 자원이 지금처럼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한 국민은 좋은 직장과 교육 환경을 찾아 서울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지역균형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정책과 사업은 정부 부처에서도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많은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해서 대통령 당선인이 주눅들 이유는 없다. 당선인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믿고,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과 국익을 위한 길인지를 숙고해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이번 대선 후보자들은 대부분 선거운동 과정에서 국민이 주인이고 자신은 머슴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 그 초심이 끝까지 변하지 않도록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잡아야 할 것이다.

2022-03-10

금강송

우정구 논설위원 소나무는 우리나라 대표 나무다. 전국 산야 어디서나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상록 침엽수다. 푸르다하여 솔나무라 부른다. 한자말 송(松)은 목(木)과 공(公)자가 합쳐진 것으로 나무 중 최고 작위를 가졌다는 뜻이다. 소나무에는 금강송, 반송, 황금송, 여복송, 처진소나무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와 소나무숲은 천연기념물로 당국의 특별한 보호도 받는다.충북 보은군에 있는 정이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는 수령이 약 600년이다. 조선 세조가 이곳을 지날 때 밑가지를 열어 가마가 지나갈 수 있게 해 정이품 벼슬이 내려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경북에도 청도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와 예천의 석송령, 영양 만지송, 포항 북송리의 북천수 등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특히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자생하고 있는 금강송은 소나무의 제왕으로 명성이 자자한 나무다. 곧고 단단한 재질 때문에 궁궐과 천년고찰의 대들보로 주로 사용됐다. 조선 숙종 때는 보호할 가치가 높아 임금의 명으로 산의 출입이 제한되고 벌채도 함부로 못했다. 2008년 화재로 유실된 숭례문을 복원할 때도 금강송이 사용됐다. 금강송은 단단하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속이 노랗다고 하여 황장목(黃腸木)이란 이름도 있다. 또 표피가 붉은색을 띠어 적송이라고도 하며 매끈하게 잘 뻗었다고 하여 미인송이라는 별명도 있다.울진군 소광리 일대 금강송 군락지에는 1천만 그루가 넘는 소중한 소나무가 자생한다. 지난 울진 산불로 이곳이 하마터면 크게 훼손될 위기에 빠졌지만 다행이 큰불로 번지지 않았다. 군락지 보호를 위한 특단 대책이 있어야 한다. 수백년 세월을 이겨온 금강송은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 화마로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3-10

갓 퍼 올린 물동이처럼

장규열 한동대 교수 미생물학자이며 의사인 소크(Jonas Salk) 박사의 생각을 다시 새긴다. ‘50년 후 벌레들이 없어진다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지만,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지구와 환경을 혼탁하게 만들어 지구가 망가지는 건 둘째 치고라도, 인간들은 서로를 헐뜯는 자중지란 끝에 공동체성이 무너진다는 경고가 아닌가. 그러니, 아름다운 지구를 회복하려면 인간보다 벌레들이 융성하는 게 낫겠다는 충언이 아닌가.대선이 막을 내렸다. 열심히 다투었다. 서로 흠집과 상처를 드러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가. 등지고 돌아서는 일이 그간의 일상이었다. 이제는 돌아보고 보듬는 열심을 내어야 한다.‘치열하게 싸웠지만 우리는 모두 한 팀이 아니었느냐’며 국민들을 다독였던 미국의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을 기억한다. 민주주의의 작동방식 가운데 선거가 꽃인 까닭은, 선거가 있어 힘을 가진 이들을 주기적으로 비판하고 평가하며 공동체의 나갈 방향을 다시 헤아려보는 데 있지 않을까.돌아보면 부작용도 있고 가짜뉴스와 마타도어도 없지 않았지만 길게 보아 선거가 있어 우리는 늘 새로움을 경험하는 셈이다. 우물에서 갓 퍼올린 물동이처럼 새 정부를 우리는 한마음으로 반겨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한 팀이었으니까.프랑스의 정치철학자 루소(J.J.Rouseau)는 사람들이 겪는 선거의 경험에 관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대단한 착각이다. 그건 선거기간 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모두 다시 노예가 되어버린다’고 경고하였다.5년을 맡겼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던졌던 약속들이 기대만큼 지켜지는지, 그들이 우리에게 다짐하였던 회복과 화합이 실천되는지, 나라의 청년들과 지역에도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그늘지고 어두운 구석이 이제는 사라지고 새 힘이 온 나라에 솟아나는지 살펴야 한다.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나라의 기운이 꺾일라 치면, 언제라도 매서운 채찍을 가할 수 있도록 국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보장하는 ‘견제와 균형’을 끌어 올려야 한다.언어학자 촘스키(Noam Chomsky)는 ‘지성인들은 권력의 이해에만 복무하는 사람들’이라고 비꼬았다.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며 사회적 부조리에 침묵하는 이기적 행태를 꼬집은 게 아닌가. 변화와 혁신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목소리를 내고 지속적으로 제언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들린다.학벌과 지연, 차별과 격차, 혐오와 차단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사회적 지평은 집단적 자폐현상을 부르고 있다. 대통령과 새 정부는 나라와 국민의 선 자리를 분명히 보고 화합과 회복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세월이 가면 나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렁에 처박히는 느낌이 아닌가. 치열했던 동서냉전의 막바지에 미국 대통령 부시(George Bush)는 ‘보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나라’가 되자고 당부하였다. 상처투성이로 남는 게 없기보다, 아픔을 딛고라도 국민의 위대함을 증명할 때다.

2022-03-10

골목에 갇힌 고래들

양태순수필가 마을은 공동체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여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삶을 공유 또는 정서적 유대를 이루어 나가는 곳이다.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인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손을 번성시킨다. 그리고 골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정으로 맺어준다. 각각의 역할이 어우러지면 마을은 살아서 움직인다.날이 좋아 나선 길이 신화마을에 닿았다. 마을은 고요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할머니 세 분을 보았다. 여기저기 고개를 디밀었다. 분홍담 너머로 들여다본 집은 벽이 무너지고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그런 집이 여럿이었다. 낮은 처마여서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여 멀리서 서성이다 돌아선 집들은 곰팡이꽃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도 뒤죽박죽 쌓아둔 물건과 다 닳은 신발, 소쿠리가 보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고래 그림 앞에서 멈췄다. 수영하는 아이가 헤엄치는 고래의 턱을 만지자 고래는 할아버지 같은 웃음으로 반긴다. 금을 넘어 파란 물이 밀려왔다. 내 주위에는 마을에서 본 갖가지 고래들이 꼬리를 휘저으며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마음이 포실해지려는 찰나였다. 게시판에 펄럭이던 월세 이십 만 원, 방 하나 부엌 하나 벽보가 잉잉 울었다. 문득 이 마을에는 벽화 속에 갇힌 고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연약한 고래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신화마을에는 한때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다. 공단에는 일손이 필요했고 돈벌이가 필요한 사람이 몰려들었다. 한 지붕 세 가족으로도 집이 모자랐다. 공단에 출근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으므로 월급날은 온 마을이 흥으로 들썩였고 밤낮없이 발소리, 싸움소리, 웃음소리가 골목골목을 누볐다. 수돗가에서 엉덩이 부딪치며 투덕거려도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는 사람냄새가 있는 마을이었다.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도시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번듯한 주택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가기를 꿈꾸었고 그 꿈을 차근차근 이루어갔다.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던 사람들이 자동차에 흠뻑 빠졌다. 그동안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기 싫어 뭉그적대던 사람들도 자식 교육을 앞세워 슬금슬금 보따리를 샀다. 그렇게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생활 전선에서 물러난 퇴역일꾼들 뿐이다.신화마을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자란 고향마을도 그랬다. 새마을운동의 잘 살아 보자는 구호를 믿고 집집이 아들과 딸을 도시로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생활비에 보태라고 꼬박꼬박 보내주던 돈은 객지에 가정을 이루자 끊어졌다. 때마다 찾아오던 고향 나들이 횟수가 줄어들더니 번거롭다며 이사를 재촉했다. 싫다고 보채던 가족들은 편의를 따라 도시를 택했다. 골목이 조용해지고 빈집이 늘었다. 지금은 허리 굽은 어른들만 오종종 모여 옛이야기에 열을 올린다.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프리즘에 갇힌 동네가 되었다. 삶의 공간은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망각한 탓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개발의 바람과 최신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랬더라면 들어온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다양한 각도로 투영되어 새빛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우리의 각성이 한 박자 늦어서 안타깝다.마을이든 사람이든 변화하는 물결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나온 시간에 얽매여 편한 상태에 천착하면 발전은커녕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게 된다. 하나 둘 떠나간 마을의 쓸쓸한 마을지기가 될 것이고, 새로운 물결에 탑승한 떠들썩한 이들 옆에서 곁가지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그물에 걸린 고래가 바다를 그리워하듯 프리즘에 갇힌 채 바깥을 기웃거린다.신화마을에는 고래가 많다. 벽화에 담긴 고래, 하늘을 나는 고래, 오래된 골목을 휘휘 돌아다니는 고래들이다. 그 고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을 향한 지느러미는 안간힘이다. 더 넓은 세상과 더 푸른 세상을 향한 몸짓은 물꼬를 틔워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듯하다.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구름은 바람의 장난질에 가벼운 춤사위다. 고래벽화를 보고 있는 동안 마을 골목에 갇혀 있는 고래들을 풀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망치로 벽을 부수면 고래는 지느러미 펄럭이며 바다로 가겠지. 바다로 가는 여정은 설렘이 반짝이는 시간이다. 내 가슴이 쿵쾅댄다.

2022-03-09

정묘(丁卯)

정묘(丁卯)는 60갑자 중 네 번째다. 천간은 정화(丁火)요, 지지는 묘목(卯木)이다. ‘병(丙)’은 태양을, ‘정(丁)’은 촛불로 표현하며, ‘묘(卯)’는 ‘토끼’ 또는 ‘달’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정묘(丁卯)는 달 아래에서 촛불을 켜놓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비는, 기도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기도는 자기에게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거나 원하는 것이 있을 경우에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행위다. 그 내용은 가족의 건강, 남편의 출세, 자식의 대학합격, 취직 등 다양하다.‘한비자(韓非子)’〔내저설(內儲說) 하편〕에 보면 위(衛)나라의 어떤 부부가 촛불을 켜놓고 향을 사르며 신에게 복을 빌고 있었다. 부인이 빌기를 “그저 우리에게 돈 백 꾸러미만 내려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했다. 남편이 “어째서 그렇게 적은 것을 원하오?”라고 물었다. 부인이 “그보다 더 많으면, 당신이 그것으로 첩(妾)을 사려고 할지도 모르니 그 정도가 알맞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비는 복도 지나치면 화(禍)로 변한다. 적당한 선에서 그치는 것도 현명하다.정묘일주(丁卯日柱)를 가진 사람들은 효자, 효녀가 많다고 한다. 특히 미남, 미녀가 많은데 여성에게 많다고 한다. 여성이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 중 가장 근원적인 본성이다.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고, 보기 싫은 부분을 성형수술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할 수 있다면 그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동양에서 미인이라면 중국 사대 미녀로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를 꼽는다. 네 명 중에서도 서시가 가장 아름답고 그와 관련된 성어(成語)가 많다. 그 가운데 서시빈목(西施9870目)과 빈축(嚬: 찡그릴 빈, 蹙: 닥칠 축)이 있다.서시빈목(西施9870目)은 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비유하여 월(越)나라 출신으로 오나라 왕 부차의 애첩이 된 절세의 미인 서시가 어느 날 불쾌한 일이 있어 얼굴을 찌푸렸는데(위장병이 있다는 설도 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 보였다고 한다. 이를 우연히 보게 된 한 추녀가 자신도 그렇게 하면 아름다워 보일 줄로 착각하고 얼굴을 마구 찡그렸더니 동네 사람들이 보기 싫어 모두 도망갔다고 한다. 또한 얼굴을 찡그릴 때 눈썹이 떠는 모양도 아름답다고 칭송하는데,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인 모양이다.‘빈축’은 눈살을 찌푸리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다. 여기서 유래된 ‘빈축을 사다’는 자기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행동할 때 남들로부터 받는 비난이나 미움을 받는 경우이다.한시(漢詩)에서도 여인의 자태를 표현한 것이 있다. 여인이 고개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고,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나타낸다.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찌푸림은 근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림이 있을 때에는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라는 바가 있을 때는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서 있는 모습이 제계(齊戒·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삼가는 것)한 것 같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빚어 놓은 것 같이 않다고 나무란다면, 이것은 양귀비가 이가 아파 ‘찌푸림’을 나무라는 격이다. 이는 양귀비가 이가 아파 손을 뺨에 대고 얼굴을 찌푸리니 그 자태가 더욱 고혹적이었음을 두고 한 말이다. 치통을 앓아 뺨에 한 손을 가볍게 대고서 살짝 찌푸린 양귀비의 표정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사는 사람을 고집이 세다고 한다. 특히 정묘생(丁卯生)들이 고집이 센 편이다. 마치 ‘춘 삼월 논두렁 불’처럼 소리 없이 타지만 잘못 다스리면 환란을 당하기도 한다.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것은 정(丁)이 대단한 기운의 고무래 ‘정(丁)’, 갈구리 ‘정(丁)’이기 때문이다. 정묘(丁卯)의 묘(卯)가 땅의 주인공인 아내라고 보시면 된다.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키우듯이 잘 키워야 성공할 수가 있다.땅의 담당자는 묘(卯), 토끼다. 토끼는 ‘달 속에서 방아를 찧는 기운’ 즉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묘(卯)는 토끼로 형상화하고 달로도 표현한다. 옛날 사람들은 달 속에 토끼가 있다고 믿고 살아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환상이 깨져버렸다. 그래도 토끼가 있다고 머릿 속에서 상상을 하며 꿈을 키워 나간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중국 신화에는 나오는 항아(姮娥·嫦娥)는 달에 산다는 선녀다. 원래는 하(夏)나라의 명궁(名弓)인 예(7FBF)의 아내로, 예(7FBF)가 서왕모(西王母)에게 청해 얻은 불사약을 항아가 훔쳐 먹고는 달로 도망갔다. 이를 ‘항아분월(姮娥奔月)’이라 한다. ‘회남자(淮南子) 남명훈(南冥訓)’ 이 설화는 서왕모를 신선화(神仙化)하면서 발전하여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고 하는 등의 이야기로 확대되었다.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상상의 질서’와 ‘상상의 공동체’라는 허구를 만들어 협동하며 발전해 왔다고 말한다. 즉 언어를 통해 전설, 종교 설화, 민담 등 ‘가공된 스토리’를 만들어(우리 민족은 환웅과 웅녀가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 우리는 곰의 자손이다) 일체감과 협동심을 고양해 왔다.하늘의 이치도 알고, 땅의 이치를 알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2022-03-09

우크라이나의 늪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평화의 제전’으로 불리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지 20일 만이다. 올림픽 정신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푸틴이 전쟁을 서두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설득력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라스푸티차(rasputitsa)’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늪 현상이다. 우크라이나의 흑토는 봄이 되면 진흙 천지로 변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진흙의 계절’을 뜻하는 라스푸티차에 발목을 붙잡혔었다. 러시아를 지켜주던 ‘머드 장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때에는 거꾸로 러시아의 기갑부대를 멈춰세울 수 있다.라스푸티차를 의식한 푸틴의 전략은 속전속결이었을 것이다. 19만여 명에 달하는 군대를 동원한 막대한 전쟁 비용도 고려했을 터다. 전문가들도 개전 후 며칠 이내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가 함락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푸틴이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라스푸티차가 존재했다. 바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결사 항전 의지였다.시민 저항이라는 라스푸티차는 푸틴이 고려하지 못한 변수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해외 망명을 거부하고 대러시아 항쟁의 중심에 섰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젤렌스키를 향해 “채플린이 처칠로 변했다”고 평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확산되는 반전 여론은 푸틴에게 또 다른 늪이 되고 있다.킹스칼리지 런던의 명예교수인 로렌스 프리드먼은 푸틴의 선택을 ‘무모한 도박’으로 표현했다. 그는 온라인에 게재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군사적 승리가 무엇이든 간에 푸틴에게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다.” 프리드먼 명예교수가 자신의 저서 ‘전쟁의 미래’에서 썼듯이, 전쟁은 어떠한 명분을 제시하더라도 희생의 정당성을 결코 보장할 수 없다.이번 전쟁은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에 대한 우려를 국제 사회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영·러가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포기 대가로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보장했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국가 안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갈망하지만,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그동안 서구 문명이 내세우던 자유와 정의, 인간 존엄 등의 가치도 시험대에 올라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오렌지혁명, 유로마이단 등을 거치면서 서방 세계에 편입되기 위한 행보를 계속해 왔다. 젤린스키는 최근 유럽 의회에서의 화상 연설에서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럽의 최빈국 우크라이나가 이번에는 유럽연합(EU)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전쟁의 문을 연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교수의 말처럼 푸틴은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이미 졌는지 모른다. 이제 국제 사회가 나서서 전쟁의 문을 닫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늪에 빠진 전쟁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더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22-03-09

비누

김규인수필가 어릴 적, 비눗방울은 동심을 하늘에 닿게 하는 마법 같은 놀이였다. 큰 비눗방울이 바람을 타고 가면 마음은 달나라의 토끼를 만난 듯 들떴다. 공원에서 한참을 달리고도 집에 돌아와 온종일 비눗방울 놀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빨랫비누에 말을 조각했다. 조각도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미끄러지듯 비누 조각이 떨어졌다. 돌돌 말리며 떨어질 즈음에 말은 형상을 갖추어 가고 조심스럽게 조각도를 움직였다. 두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말은 비누 냄새를 풍기며 초원을 달렸다. 집 창가에 놓아둔 말은 밤이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꿈길을 달렸다.어머니는 양잿물을 사서 통닭 기름과 섞어 비누를 만들었다. 두 다랑이 가득 만든 비누는 4형제가 나누어 오랫동안 더러워진 옷을 깨끗하게 빨았다. 집에서도 비누를 만드는 것이 신기해서 나도 거들었다. 집에서 만든 수제 빨랫비누를 쓰면 아무리 더러운 빨래도 감쪽같이 때가 사라졌다.딸아이는 예쁜 모양의 수제비누를 만든다. 비누는 사랑의 하트가 되고 귀여운 강아지가 된다. 함께 만든 향초는 집안의 냄새를 잡고 천연비누는 머리가 빠질까 염려하는 나의 애용품이 된다. 대를 이어 만든 비누 향을 따라 집안에 손으로 직접 만든 사랑이 넘친다.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산양 기름에 나무 재를 넣고 끓여서 처음 비누를 만들었다. 이후 비누는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비누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후에 50년 만에 사람의 수명은 20년이 늘어난다. 인류 역사에 비누만큼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 물건은 드물다.물과 기름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상극과도 같은 둘을 하나로 만드는 것도 비누다.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것은 비누가 가진 놀라운 친화력 덕분이다. 비누는 수용성 물질이나 지용성 물질과도 반응한다. 물 위에서 걷는 묘기를 보이는 소금쟁이의 발에 잔뜩 묻은 기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도 비누다. 비누가 들어가면 물 위의 신사 소금쟁이의 체면이 우습게 된다. 소금쟁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된다.비누를 만드는 잿물은 우리 역사에서 사람을 죽이는 사약으로 쓰였다. 잿물을 마신 죄인은 얼마를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는다. 같은 원료를 가지고도 비누는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사람은 동족을 죽이는 독으로 사용한다. 어떻게 사는가 하는 방법이 중요한 요즘이다. 인간을 위하느라 비누는 자신을 녹인다.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는 데도 비누로 손을 씻는 게 더 효과적이다. 비누의 암피닐이라는 지방질 성분이 바이러스 제거를 돕는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카렌 플레밍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지방질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비누와 물이 이 지방을 녹이면서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말한다. 코로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안전을 위해 비누는 요긴하다.샤워하고 난 몸에서 향기로운 비누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 코가 벌렁거린다. 코를 타고 온 냄새로 마음도 덩달아 맑아진다.“친구야. 잘 있지. 덕분에 나도 잘 있어”

2022-03-09

거룩한 테러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과거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에 쓰나미가 지나갔을 때에 한국을 대표하는 모 목사가 이들이 우상숭배를 하기 때문에 내린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설교했다.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도 일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라 했다.그렇다면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의 지진과 거의 100%가 기독교인인 아이티의 지진은 왜 일어났을까에 대해 합리적인 답변을 내어놓지 못했다.자연재해가 정말 하나님의 징벌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신학자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했다.그 결과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자연재앙과 하나님의 징벌은 아무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만든 자율적 운동법칙에 위탁하였기에 그 자연법칙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 발표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함으로 발생되었다고 했다. 개신교에서도 교수연합회를 통해 모든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징벌은 아니라고 발표하였다.성경에 징벌이 없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징벌로 보는 것을 칼 융은 합리적이고 과학적 설명을 할 수 없었던 시대의 진술 방법인 신화적 교리를 실재화 하는 근본주의 신앙이라 했다.기독교 인문학자 르네 지라르는 예수님이 원수를 징벌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오른뺨을 때리면 때린 자를 징벌하지 말고 왼뺨도 내어주라고 했다면서 하나님은 징벌하는 분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이라 했다.처음 하나님을 알기 시작할 때에는 징벌적 하나님으로 인식되었지만 점차 징벌의 하나님이라기 보다 대자대비한 사랑의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존 티한은 [신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 분별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협박하는 언어폭력이라고 지적했다.IS가 테러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신 알라의 명령이라고 한다. 브루스 링컨은 신의 이름을 빙자한 이런 테러를 ‘거룩한 테러’라고 했고 신의 이름으로 징벌 운운하는 것 역시 ‘거룩한 테러’라고 하면서 이는 잘못된 신앙이라 지적했다.예수 당시 실로암에 있는 망대가 무너지는 사고로 열여덟 사람이 죽는 재난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예수에게 저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징벌을 받느냐고 물었다.이에 대해 예수는 저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 징벌받아 죽은 것이 아니라며 신의 이름을 빙자한 언어의 테러를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신앙을 가진 종교인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말 중에 하나가 “벌 받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생각 없이 하는 것은 신의 이름을 빙자한 언어폭력으로 삼가 조심해야 할 말이다.

2022-03-09

진보꼰대와 젤렌스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샤갈을 배출한 위대한 예술의 나라 러시아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로 인해 전범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해 푸틴이 몰락하기를 바란다.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민간인들, 어린이들, 양국의 청년들이 독재자의 야욕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푸틀러’는 그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위성국가나 다름없는 벨라루스만 빼고 전 세계가 러시아를 규탄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 시위가 벌어지는 중이다. 합리적 이성과 양심, 인간에 대한 연민을 지닌 세계의 보편 인류가 우크라이나 편에 서 있다. 그 응원에 힘입어 우크라이나는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러시아 군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조국과 가족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된 러시아 군인들의 차이다.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 조선의 주권을 침탈한 일본에 맞서 싸운 독립군들의 이야기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렇게 싸우는 중이다. 세계 2위 군사대국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는 골리앗 앞의 다윗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피를 토하며 외치는 중이다. “빼앗길지언정 내어주지는 말자”고. 그는 수도 크이우에 남아 국민들과 함께 결사항전 중이다. 미국의 피신 지원을 거절하며 한 말이 세계를 울렸다. “내게 필요한 건 피신을 위한 승용차가 아니라 탄약이다”현재 젤렌스키의 지지도는 91퍼센트에 달한다. 두 해 전 대선에서 70퍼센트 넘는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런 젤렌스키 대통령을, 또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그런 천박한 짓을 하느냐고? 중국이나 북한? 아니면 벨라루스 사람? 아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채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질곡의 역사를 겪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다. 그것도 입만 열면 평화를 늘어놓는,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이들이다.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 전쟁의 위기에 내몰렸다”고 말했다가 국제적인 비난을 사고서야 해명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지도력이 부족한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감당하지 못할 위기를 자초했다”, “외교 경험이 없는 코미디언 출신 아마추어 대통령이 미숙한 리더십으로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무식하고 무능한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지가 안타깝다”고 했고,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국민 선언을 “바보 선언”이라고 조롱한 데 이어 “멍청한 젤렌스키”라는 원색적 모욕을 했다. 그러고는 “인기를 얻기 위해 자극적인 발언이나 하는 자에게 국가를 맡기면 우크라이나 꼴을 당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국내 정치로 끌고 와 도구화했다. 황씨는 민주당 경선 당시 “오로지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자극적인 발언이나 하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들만이 정의롭고 선하며 똑똑하다는 선민의식, 우월의식이 바로 ‘진보꼰대’들의 문제다. 많은 2030세대가 왜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됐는지 모르는 걸까? 진보의 이름으로, 정의라는 미명으로 자신들만이 옳다는 환각에 취해 피해자와 약자와 소수자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가르치려드는 데 환멸을 느낀 것이다. 설사 그들 논리대로 우크라이나가 친서방 노선으로 러시아를 자극했다한들 전쟁과 인명 살상의 책임을 침략국이 아닌 피해국에게 돌리는 게 말이 되는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가 옷을 야하게 입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소년공은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코미디언은 안 되나? 코미디언은 직업일 뿐이지 우스운 사람이 아니다. 왜 자신들의 정치적 선전을 위해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는가? 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타국의 대통령을 조롱하는가? 무슨 권리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이성과 용기를 모욕하는가? 내 눈엔 ‘피해호소인’이니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니 ‘김건희로부터 성상납’이니 하는 망발을 일삼는 이들이나 노욕 덩어리 푸틴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용민 같은 자의 음담패설은 쓰레기가 아닌가. 푸틴에 대해서는 정신이상설마저 돌고 있는 반면 젤렌스키는 처칠에 비견되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코미디언이든 구두닦이든 배달 라이더든 성소수자든 그게 누구든 젤렌스키 같은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충실한 국민이 되겠다. 내년쯤에는 용감한 대통령과 국민들이 지켜낸, 금빛 밀밭과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우크라이나로 여행가고 싶다.

2022-03-08

오뚝이처럼 헤엄치기

올해 1월에 야심차게 짜 놓은 여러 계획이 엎어졌다. 뭐 아직 3월밖에 안 되었으니 목표를 재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면 되지만, 어쩐지 새롭게 수정된 목표 앞에서 또 주저하게 된다. 누구나 시작에 앞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지만 나는 유독 더 지레 겁을 먹고 만다.사실 난 의문의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엄친아 캐릭터처럼 모든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착착 해내는 근사한 모습이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게으르고 어설픈 완벽주의 성향이라 아주 사소한 선택이어도 결정하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스스로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단 생각이 들면 그 일의 시작조차 시도하지 않는다.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줄 알았지만 성인이 되고 회사를 입사하면서까지 이러한 습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심해져선 초조함과 불안감을 폭발할 때까지 쌓아서 일을 처리하곤 했으니까. 과다한 업무량도 있었지만 너무 사소한 것까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들인 나의 잘못이 컸다.뿐만 아니라 공부도 그랬다. 그냥 책을 펼쳐서 단어를 외우면 되는 일인데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는 것조차 너무 많은 걱정으로 에너지를 소비했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만약 책을 폈는데 단 한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오늘 목표량은 단어 30개 외우기지만 10개도 못 외운다면 어쩌지? 그렇게 계획한 것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포기해버리기 일쑤였다. 아직 결정 나지도 않은 실패를 홀로 예견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동안 무력감이 겹겹이 쌓였다. 그런 감정은 생활의 리듬을 깨버리기도 했다.중요한 일정이 있을 땐 오히려 그 일정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타이밍에 능력치 발휘를 못했고 결국 언제나 부끄러운 결과물을 손에 쥐었다.작가에게 약속과도 같은 원고 마감일은 또 어떤가. 스스로 정해둔 데드라인은 늘 넘어서기 일쑤고 하루 온종일 초조함과 불안감에 스스로를 원망하면서도 평소 잘 하지 않는 집안 청소나 밀린 빨래를 처리하곤 했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일의 적합한 타이밍이 오기까지 무작정 기다렸다,하루하루 데드라인 앞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살아가니 나의 능력과 자기 확신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최근엔 은행 앱을 통해 계좌 가입하는 일 조차 너무 버거운 일 같아 대책 없이 미룬다거나, 또는 단순히 오해가 쌓였단 이유만으로 사람과의 관계마저 쉽게 포기해버리는 상황을 마주하고선 심각함을 인지했다.이젠 조금씩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벗어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모든 일을 성공할 수 없다는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초부터 한 번에 도달 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목표는 설정하지 않고, 그저 시도만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소한 목표부터 세워 꾸준히 실천하기로 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두 번짼 성공은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여 거머쥘 수 있는 걸 꼭 기억해두기로 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는 운의 흐름에 기댄다거나, 또는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겠단 오만에서 부디 벗어나기로 다짐했다.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최근 소소한 취미로 캡슐 뽑기에 빠졌는데 우연히 오뚝이를 뽑았다. 어렸을 때나 보던 오뚝이를 마주하니 전생에서나 보던 물건처럼 묘했지만 그에 비해 큰 감흥이 없었다.막상 책상에 올려두고 보다보니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 아무리 외부 자극이 있어도 살랑살랑 흔들리고선 제자리를 찾아 우뚝 서는 게 신기하고 대견했다.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오뚝이의 자세일 것이다. 무엇이든 정해진 답은 없고 완벽도 없으니 불명확한 것에 사사건건 신경 쓰지 말고 유연히 흔들리기. 그리고 아무리 형편없는 결과가 예상되어도 그 일을 끝내기 위해 애쓰기. 수영을 하기 위해선 우선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숨을 다시금 골라 본다.

2022-03-08

칭찬과 인정

조현태수필가 ‘시비스킷’은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타고난 승부근성이면서도 매우 특별한 경주마 이름이다. 이 경주마의 특징은 자신이 뛰고 싶을 때에만 열심히 달리는데 지독하게 게으르고 고집이 센 말이다.그 독특한 시비스킷의 경주마적 진가를 알아본 인물이 있다. 마주 찰스 하워드와 조련사 톰 스미스, 그리고 기수 레드 폴라드다. 세 사람의 연관을 보면 찰스가 시비스킷을 산 후 톰을 조련사로 고용하고, 톰은 레드가 시비스킷처럼 사고뭉치라는 공통점을 보고 기수로 훈련시키는 관계다.시비스킷의 주인 찰스 하워드는 자전거 수리공으로 출발해서 일약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자신이 만든 트럭을 타고 나가 죽은 뒤 이혼까지 당하는 불행한 재벌이었다.조련사 톰 스미스는 한뎃잠을 자며 떠도는 외로운 사나이였다. 사실상 벙어리처럼 여겨졌던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그는 개척지에서 흘러 들어온 떠돌이 출신이지만 잃어버린 지혜와 말에 대한 비밀을 간파했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데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레드 폴라드는 시골 경마장 한 구석에 버려진 고아 같은 신세였다. 무거운 안장을 짊어진 채 유랑생활을 했다. 낮에는 마구간에서 일하고 밤에는 복서로 뛰지만 기수로는 너무 몸이 크고 복서라기에는 너무 몸이 작았다. 소도시의 권투장에서 워낙 얻어맞아 한쪽 눈까지 실명했다. 툭하면 피투성이인 채로 마구간 층계에서 잠들곤 했다.이들 역시 별 볼일 없는데 어떻게 시비스킷을 세계적인 명마로 바꿀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칭찬과 인정”이었다. 억지로 달리기 훈련을 시키는 대신,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유도했다. 말을 듣지 않고 저항해도 채찍질하지 않고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기수 레드 폴라드는 “난 너를 혼내지 않아”라면서 말에게 다가갔고, 채찍을 쓰는 대신 늘 목을 토닥거리고 간식을 주었다. 수면 시간에는 마음껏 자게 내버려 두었다. 게으름과 고집을 인정해 주고 승부근성을 칭찬했다. 나쁜 습관은 단 번에 뿌리를 뽑으려하지 않고 조금씩 버리게 했다.일이든 사업이든 탁월한 지식과 정확한 판단력을 기반으로 하되 보이지 않는 것까지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이 갖춰진다면 그보다 더한 성공은 없으리라. 동물도 그렇지만 사람 역시 자신을 알아주는 만큼 발휘한다고 한다.칭찬과 인정이 최고의 리더십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누구인가. 대통령인가? 마주와 조련사와 기수에서 연상되는 우리(국민)가 아니겠는가. 세계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주자에게 숨어 있는 최고의 가치성을 발견한 이들이 곧 우리여야 한다. 우리가 뭉치고 주자의 가치를 최대한 살린다면 업적은 엄청날 것이다.‘시비스킷’이라는 영화가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역할 때문은 아니지 싶다. 그게 말이든 사람이든 대상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알고 그대로 인정하는 것. 자신의 믿음을 초지일관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의 용기와 자신감.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위해 온힘을 다하는 시비스킷의 정열. 이것이 관객을 열광시켰다.

2022-03-08

검은 산, 쓰러진 나무 속에도 생명의 봄이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쓰러진 나무를 보면 / 나도 쓰러진다 // 그 이파리와 더불어 우리는 / 숨쉬고 / 그 뿌리와 함께 우리는/ 땅에 뿌리박고 사니- // 산불이 난 걸 보면 / 내 몸도 탄다 // 초목이 살아야 / 우리가 살고 / 온갖 생물이 거기 있어야 / 우리도 살아갈 수 있으니”정현종 시인의 시집 ‘한 꽃송이’(1992, 문학과 지성사)에 실린 시 ‘나무여’의 일부이다. 이 시집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나무와 꽃과 흙과 산 등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사랑과 경외의 눈길을 마주치고 깊은 사색과 관조의 세계에 젖어든다. 그리고 어느 샌가 모르게 그 눈길을 따라 그대로 걸어가다가 시인의 사색 숲길 속으로 접어들고 있는 나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떠들쳐 보지 않더라도 자연의 일부로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무와 숲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를 벗어나 나무와 풀들, 온갖 생명으로 어우러진 숲으로 들어서면 숨쉬기가 어쩌면 그렇게 달라지는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반대로 산촌과 농어촌에 살던 사람이 도시에 발을 디뎠을 때의 그 갑갑함 역시 자연의 한 존재인 사람으로서 당연한 느낌일 터.그런데, 인간의 무지와 폭력으로 인해 자연은 몹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환경보호라는 거대 담론을 꺼내 놓지 않아도, 현재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은 우리의 자연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재앙이 되고 있다.매해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나지만, 지난 3월 4일 경상북도 울진의 한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의 피해 상황은 여느 해의 산불과 그 양상이 매우 다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3월 7일 오전 11시 현재 1만9천553ha의 산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숫자만 보면 감이 잘 안 잡히는데, 서울 면적의 1/4 이상, 여의도 면적의 60배, 축구장으로 치면 2만3천여개 넓이에 해당한다고 하니 그 피해 규모를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이틀 전의 통계이고, 8일 오전까지도 완전히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9일 오늘까지 집계한다면 그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기에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산불이 빨리 진화되기를 기도한다. 불이 꺼져도 산마다 화마의 자취는 검게 남을 것이고, 산속의 생명들은 다시 삶을 이어나가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번 산불로 집이 타서 무너져 내리고, 한평생 삶의 흔적과 추억과 기록들까지 사라져 버린 많은 이들 역시 다시 일어서기에 몸과 마음 모두 힘든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쓰러진 나무를 보면 자신도 쓰러진다고 한 시인은 같은 시집에 실린 ‘봄에’라는 제목의 또 다른 시에서 “진달래꽃 불길에 / 나도 / 탄다…. / 숨막히게 피는 꽃들아 새싹들아”라고 하였다. 검은 흙 속에서도 푸른 새싹이 돋고, 진달래 개나리가 검은 산과 그 품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듬고 위무하는 따뜻한 봄을 소망한다.

2022-03-08

정권연장이냐 정권교체냐, 오늘 결정된다

오늘은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다. 그동안의 선거판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중 어느 후보가 앞선다고 말하기 어려운 팽팽한 ‘초박빙 접전’ 상태라고 말했고, 국민의힘은 깜깜이 기간에도 꾸준히 윤 후보가 이재명 후보와 격차를 벌여 ‘오차범위밖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체로 선거전문가들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후보사퇴로 양자대결 구도가 된 이번 선거는 진영결집으로 인해 초박빙 접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여야 두 당도 오늘 투표결과에 따라 당락이 좌우될 것으로 보고 어제까지 투표독려 총력전을 펼쳤다. 유권자 대부분은 누구에게 기표를 할지 이미 결심했을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5년을 이끌어나갈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유권자의 자유다. 현 정권이 그대로 유지되길 원하는 유권자가 많으냐, 아니면 새로운 정권으로 교체되길 원하는 유권자가 많으냐에 따라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된다. 유권자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안보적인 상황과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어느 후보가 이를 보다 잘 실천할지 냉철하게 판단해서 투표를 해야 한다.이번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여야 유력후보 모두 공약을 남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재원을 마치 자기 호주머니 속에 든 용돈처럼 마구 써도 될 듯이 약속했지만, 여기에 현혹돼선 안 된다.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가기 전 후보들이 내건 공약이 과연 실천 가능성이 있는지 다시 한번 냉철하게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선심성 공약에 귀가 솔깃해져 장차 내 자녀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망치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무엇보다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아무 공약도 소용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을 잘 지킬 수 있는 대통령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 대선이 ‘비호감선거’라는 이유로 투표장에 가길 꺼리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선거다. 유권자 모두가 빠짐없이 투표를 해야 민의에 맞는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다.

2022-03-08

‘후보의 안보관’만은 꼭 체크해 보길

심충택 논설위원 재향군인회가 최근 “제20대 대통령은 안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며 차기 대통령의 5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한국 정통성을 부정하지 않을 것, 북한과 대화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환상이 없을 것, 한미동맹 위축이나 손상을 초래하지 않을 것,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할 의지가 있을 것,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폄훼하지 않을 것 등이다.벌써 2주일째로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를 보면서 재향군인회가 제시한 차기 대통령의 조건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당초 우리 국민은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러시아가 단기간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소총과 화염병을 들고 침략군에 맞서고 있다. 그 중심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있다. 그는 러시아의 암살위협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내게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며 ‘대통령 값’을 하고 있다. 외신에서는 그를 두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질 전 영국총리와 닮았다며 호평을 하고 있다.젤렌스키 대통령과 가장 대비되는 우리나라 최고지도자는 조선시대 선조임금이다. 1592년 임진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한지 20일도 채 안된 4월 말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피란을 떠난다. 징비록에서는 ‘경복궁 앞을 지나갈 무렵 양쪽 길에는 백성들의 통곡소리가 요란했다. 임진강에 이를 무렵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 왕을 보며 “나라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우린 누굴 믿고 살아간단 말입니까”라며 통곡했다. ‘5월 1일 날이 저물어서야 개성을 향해 떠나려고 했는데 경기도의 아전과 병사들이 모두 도망쳐 호위할 사람마저 없었다’고 선조의 피란과정을 기록했다. 징비록은 이어서 ‘왕이 성을 비우자 성안에 남아있는 백성을 보니 살아 있는 사람도 모두 굶주리고, 야위고, 병들고, 피곤하여 얼굴색이 귀신과 같았다’고 했다.선조와 같은 무능한 지도자 때문에 우리 민족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주변 국가의 침략을 당해왔다. 그때마다 백성들은 살상을 당하고 금수강산은 초토화됐다.그럼 지금 우리는 안전한가. 친북·친중 외교로 일관해온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한국의 유일한 안보시스템인 한미동맹은 뿌리째 흔들려 왔으며 지금도 악화일로에 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정에서도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대러제재 동참에 우물쭈물하다 미국측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4국(호주·인도·일본·미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에도 한국은 쏙 빠져 있다. 위험한 독재정권인 북한·중국·러시아가 바로 옆에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강한 동맹국 없이 혼자 힘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 국민은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본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오늘은 20대 대선 선거일이다. 지금 우리 국민 상당수는 진영논리에 갇혀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 나와 가족의 생명과 직결된 후보의 ‘국가 안보관’만이라도 체크해 보고 투표장에 가야 한다.

202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