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맺음에 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에 더욱 안정감을 느낀다.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 책 읽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로 꽉 찬 공간에 홀로 놓이는 것을 좋아한다. 나를 둘러싼 배경이 화려하고 요란할수록 고독은 빨리 찾아온다. 쓸쓸한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면 이상하리만치 기묘한 평온함이 느껴지고 그런 상태야말로 가장 나다운 지점이라고 여기고 있다.
동시에 나는 사람과 사랑을 믿는다. 누군가를 만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킬킬대는 순간 역시 소중한 일상 중 하나다. 부끄러움 없이 마음을 내놓으면 되돌아오는 진심에 위로받는다. 내가 힘들 때 중요한 부분을 붙들어주는 것도 타인이다.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마음속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건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맺을 때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기대되는 면도 있다.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관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도 함께 문학을 공부했던 학생들이야말로 위태로웠던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준 특별한 관계다.
처음 학교에 발을 디뎠던 날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를 바라보는 무수한 눈동자, 그 천진한 호기심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나 자신도 모르는 내 안의 모자람을 모조리 들켜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학생들이 무심히 뱉는 사사로운 말이 비수처럼 꽂혀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고 사소한 순간에도 쉽게 주눅 들었다. 나는 더욱 기민하게 나를 의식하게 됐다. 그 난처함을 눈치챘던 것일까. 학생들은 나의 시시한 오답도 정답으로 믿었고 최선을 다하여 무한한 사랑을 건넸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물었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언제였냐고. 골똘히 고민하다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다 어쩌면 지금이 후회로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예하게 삶을 바라봤다면 좀 더 필사적으로 움직였다면 뭔가가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선생이 해줄 수 있는 유의미한 조언이 될 것이었다. 비단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 앞에서 현명하지 못했던 일들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좋은 선생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무해한 역할도 꿈꿨다. 그러나 선생은 좋은 말만 건넬 수 없고 맹목적인 낙관만을 외칠 수도 없었다. 현실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그것을 외면하지 말고 끝끝내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던가.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못 되었으니까. 계속해서 의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저 거들먹거리고 있는 건 아니냐고. 그로 인해 어떤 우월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리하여 어느덧 2월. 바로 엊그제가 졸업식이었다. 학교에 와서 처음 만났던 친구들이 삼 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었다. 열일곱 고등학생이 스무 살이 되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모두의 얼굴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당연하게 지속될 줄만 알았던 우리의 시간에 안녕을 고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졸업생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자신만의 보폭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살면서 여러 관계를 맺고 다양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가끔은 아프거나 무너지는 일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건 가르쳐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겪었으니까.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해졌으니까.
내가 아닌 타인의 미래를 간절히 그려본 적이 있던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글을 통해 타인의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봤고 이름 붙여지기 힘든 모종의 감정을 나누었다. 그건 처음 만나는 형태의 우정이었다. 마음을 다했으므로 어떤 후회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더 크고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게 더 많았다. 미련처럼 맺혀있는 마음을 졸업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갈무리했다.
떠남으로 완성되는 관계가 있다. 헤어지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시간은 종결되었다. 어떤 이별은 만남보다 더 큰 설렘을 남긴다. 함께 나눴던 일들을 가슴에 품고 다가올 내일을 상상하는 일. 그것을 떠올리면 그제야 우리가 한 뼘 자란 것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