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은 한국에서 가장 마지막에 망할 겁니다. 그건 우리 대학의 벚꽃이 한국에서 가장 마지막에 피기 때문입니다”라는 농담을 하는 대학의 보직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재직하는 대학이 서울보다 더 북쪽인 한국의 최북단에 있기 때문에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한다”라면 가장 그 대학이 늦게 망할 것이라는 농담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필자는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서울과 지방으로 양분되는 한국적 현실이 이런 코미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벚꽃 순서’의 내면에는 서울과 지방을 양분하는 고질적 병이 숨겨져 있다.
‘지역대학의 세계화’를 강조하며 포스텍을 지키던 포스텍 교수들조차 퇴임 후에는 대부분 서울로 올라가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북이나 대구, 부산이 고향인 분들도 퇴임 후 고향을 찾지 않고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 선호도는 포스텍 교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대’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칼럼에서 ‘지방대’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사실상 지방대라는 말에 오늘의 대학의 문제가 모두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서울에 있지 않는 대학은 지방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기도에 있는 대학들도 지방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기도에 있는 유력한 대학들도 ‘인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생유치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니 정말 한심한 현실이 한국의 서울과 지방의 양분화 상황이다.
2023학년도 정시모집 결과 수험생이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은 곳은 전국적으로 26개 학과, 14개 대학인데 모두 지방대로 집계됐다고 한다.
얼마 전 대구의 모 대학 총장이 대학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입시 실패에 대한 총장 책임을 묻는 글 아래에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할 것이라는 사실만 약속드린다”는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사실상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대입에서 정원을 못 채운 지방대가 속출하면서 ‘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는다’는 말이 나돌고, 이제는 총장 사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런 현상이 더 가중될 것이다.
1960∼70년대 시절 신생아는 연 100만 명에 가까웠고 초등학교는 한 반에 100명 가까운 콩나물 교실이었다. 2부제, 3부제 수업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초등학교 교실은 한 반에 20∼30명 수준이고 폐교되는 학교도 종종 있다.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은 출생아가 역대 최저치인 30만 명 선이 무너졌고 대학정원은 약 50만 명이니까 조만간 대학의 거의 반은 문을 닫아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조정, 정부지원, 지방대 특화 등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기도 한다.
구조 조정은 모든 대학이 다 같이 정원을 줄이자는 것이고, 정부지원은 지방대에 좀 더 많은 지원을 하자는 주장이다. 시장논리에 따라 각자도생토록 하지 말고 구조조정과 재정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지방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특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항의 포스텍이 전국적인 명성의 프리미어 대학으로 문제가 없지만, 한동대의 100% 충원은 글로벌 역량강화와 선택과 집중으로 성공한 것이라는 예를 들며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첫눈 오는 순서’로 대학을 지망하고 그 지역에 사는 것을 선호한다면 어떤 구조조정도 정부지원도 효과를 크게 갖기 힘들다.
이러한 선호는 서울과 지방의 양분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일부 대학의 폐교는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서울과 지방에 대한 양분법의 인식과 지방과 지방대학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줄어든다면 현 대학정원 미달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 가능하다. 재수, 반수를 통해서 ‘인서울’ 대학으로 가려는 분위기가 없어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우수한 대학들이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주요 명문 주립대학들은 주의 수도가 아닌 작은 마을에 있다. 이것은 교육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같이 한국도 서울 지역 가리지 않고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질로 승부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야 한다.
서울·지방 이분법은 이 사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벚꽃 피는 순서’로 망할 것이라는 말은 ‘첫눈 오는 순서’로 지역을 선호하고 서울과 지방을 양분하는 고질적인 한국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떠한 처방도 약이 될 수가 없다.
이러한 고질적 병이 사라질 때 한국의 대학충원율 문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벚꽃 피는 순서’라든가 ‘첫눈 오는 순서’라든가 하는 지역적 차별을 일컫는 농담도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