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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봄을 소묘하는 소녀의 시간

이희정시인 촘촘한 체 같은 어스름이 번져 오고사랑니 뽑혀 나간 동그란 아픔 위에봄 저녁 물 끓는 소리 무심하게 고이는데만지면 부서질까 당신의 마음가닥가늘고 빳빳한 쓸쓸의 올올들이뜨겁게 곤두박질치며 물속에서 몸을 푼다참았던 시간들을 찬물로 헹궈 내면어쩜 몇 가닥쯤은 당신에게 가닿아반음쯤 낮은 자리에서 흰 음계로 울어줄까-서숙희, ‘국수를 삶는 저녁’ (‘가히’ 창간 특집- 2023년 봄호)우리에게 ‘국수’라는 식재료는 음식으로도 심상으로도 별미다. 주식인 밥과는 달리 소박하지만 특별한 친밀감을 자아내기에 이만한 서정도 없을 것이다. 작품 제목 ‘국수’를 뽑아내기 위한 오브제로 시어 ‘촘촘한 체’는 맞춤이다. 시적 화자는 색보다는 선과 면으로만 소녀의 무채색 봄을 소묘하고 있다.“시는 그림과 같이(ut pictura poesis)” 라는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구호는 여전히 주효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시의 미덕이라면 더욱 이 시는 서사보다는 묘사가 승하다. 흔히 묘사는 창작 기법에서 인물의 마음속 풍경을 배경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다. “촘촘한 체 같은 어스름이 번져 오고”의 첫 행에서부터 심상을 거느린 묘사가 이미지를 믿음직하게 견인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시를 그림 대하듯 읊노라면 어느새 고요를 거느린 섬세한 풍경에 눈이 순해지고 마음결마저 연해지고 마는 것이니.“현실풍경이건 심상풍경이건 글은 해석의 산물”이라고 했다. 서숙희 시인(64)이 그리는 ‘국수를 삶는 저녁’의 풍경은 채색되지 않은 연한 봄이다. 시인이 시어를 길어내는 시간은 가는 국수를 체에 걸러내듯 촘촘하고 예민한 순간이기에 “물 끓는 소리마저 무심하게 고”인다. 이어 봄 저녁의 현실풍경은 “만지면 부서질까 당신의 마음가닥”의 심상 풍경과 절묘하게 포개지며 자연스레 운율의 음계를 놓는 것에도 일조하고 있다. 화자가 그리는 풍경은 반음 낮은 자리에서 단아한 서정의 여린 직선으로 흐르고 있다.어떤 글이든 고명에 한눈을 팔면 노상에서 객사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시력 30여 년의 시인이 화려한 수사보다 시의 본령인 국수가락에 전심을 다하고 있음을 주목해 보자. 시적 화자는 “가늘고 빳빳한 쓸쓸의 올올들”로 마치 시를 처음 대하는 소녀처럼 공손하게 맞는 것이다. 타협이나 굴종을 모르는 타고난 국수가락의 성정은 돌연 시의 허리쯤에서 “뜨겁게 곤두박질치며 물속에서 몸을 푼다.” 이는 제목이 상징하는 ‘국수를 삶는 저녁’의 창작(조리)과정을 풀어내는 동시에 화자의 내적 열망을 교묘하게 비등하며 카타르시스를 준다. 마치 영화 마블시리즈 앤트맨의 슈퍼히어로를 연상시키듯 줌인과 줌아웃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온탕과 냉탕을 벼리는 것이다.이처럼 화자는 대상에 대한 격정 어린 내성을 “찬물로 헹궈 내” 봄 저녁의 풍경 한 올 한 올을 체에 내리듯 소담스레 ‘국수’라는 가락에 풀어내고 있다. 오래 기다리고 감추었던 빳빳한 국수의 외형은 어느새 물의 방식에 순응하며 쓸쓸하고도 부드러운 봄 저녁으로 치환된다. 선에도 감정이 있다. 기다림의 애틋함이 높은 감정의 선이라면 쓸쓸과 울음은 낮은 무채색 감정이다. 울음은 감정의 바닥까지 다 긁어내야 도달할 수 있다. 시를 기다리며 한생을 살아가는 시인의 담백한 저녁, 그 애정의 발화를 본다. “어쩜 몇 가닥쯤은 당신에게 가닿아 반음쯤 낮은 자리에서 흰 음계로 울어줄까”마침내, 소녀의 국수 가락은 희디흰 음계로 저 먼 곳까지 공명할 것이다.

2023-03-19

품질과 설비 그리고 역량 향상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음식점을 찾을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서비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째로 맛을 선택할 것이다. 가격이 싸도 맛이 없으면 다시 찾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가 하면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줄을 서고 기다리는 식당이 있다. 그래서 문구 중에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라는 말로 음식의 맛을 위트 있게 표현하면서 품질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식당에서의 품질인 맛과 같이 생산 현장에서의 품질은 만들어지는 제품이 사용 목적 혹은 사용자의 요구를 얼마나 만족시키고 있는가이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전세계 모든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수준을 높여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1910년대 프레드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를 시작으로 신뢰성과 품질보증을 거쳐 전사적 품질관리로 발전해 왔고 최근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작업을 로봇화 지능화 하여 품질 변동이 적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식당이든 생산 현장이든 제품의 품질은 설비, 사람 그리고 재료와 이를 가공하기 위한 물, 가스 등의 가공체계의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재료가 제품이 되는 과정인 가공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이해하고 가공을 정상적으로 하기 위한 기본 항목을 도출하여 잘 관리하면 생산하는 제품이 동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특히 설비 중심의 생산라인에서 가공은 재료가 설비와 만나 변형, 변질, 분리, 결합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말하며 재료와 설비가 만나는 점을 가공점이라고 한다.품질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가공점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설비에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유압 공압 윤활 전기제어로 구성된 6계통의 조건 설정과 정상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재료의 온도, 폭, 두께 등과 같은 가공 조건과 재료의 가공을 원할 하게 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물, 가스, 세정유 등과 같은 가공제계의 조건관리 항목의 도출과 관리 또한 잘되어야 한다.많은 회사들이 공장내 자재를 정리 정돈하고 설비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활동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발전하여 설비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가공 원리를 이해하고 가공되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설비와 재료의 관리항목을 도출하여 항시 정상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공장의 자동화 지능화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여 현장 직원의 설비와 품질관리 역량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설비의 가공 원리와 품질관리 항목을 도출하여 관리 기준을 만들고 이상 발생시 신속하게 조치하고 다시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량이 향상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실행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2023-03-19

춤을 춘다는 것

유영희 작가 어느 유투버가 4, 50대가 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 세 가지는 외로움, 돈, 건강이라고 한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김민식 전 MBC PD도 50 중반에 사표를 내고 나서 외로움 문제가 심각했나 보다. 그가 퇴사하고 2년 만에 올해 초 ‘외로움 수업’이라는 책을 냈으니 말이다. 자신이 쓴 칼럼 일부 내용이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자 스스로 벌주기 위해서 퇴사했다고 하니, 그렇게 혼자 있게 된 시간은 많이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니 외로움은 치매의 원인이 된다면서 자신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노력 몇 가지를 소개해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가장 먼저 춤을 꼽은 것을 보고 반가웠다. 사실은 나도 한 달 전부터 춤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식은 줌바를 춘다는데, 내가 배우는 것은 현대 무용이다.발목이 안 좋아서 60분 걷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춤이라니 정말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고, 일반인 대상 수업이라 더 편하게 진행할 텐데도 남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이 아직도 쑥스럽고 어색한 상태다. 그러나 90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다. 줌바나 에어로빅 같은 운동은 정해진 동작을 따라 하지만, 현대 무용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흐느적거리는 것은 아니다. 기본 동작을 알려주면 음악에 따라 자기가 동작을 만드는데, 코어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처럼, 속은 강건하지만 겉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면, 내가 주로 하는 동작의 패턴을 알게 된다. 게다가 줌바는 웬만한 체력이 아니고서는 시도하기 힘든 격렬한 운동이지만, 지금 배우는 현대 무용은 자기 몸 상태를 돌보면서 한다.더 중요한 순간은 가끔 음악을 틀지 않고 움직일 때이다. 음악이 있으면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가기 쉬운데, 음악이 꺼지면 그야말로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나만의 동작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나오는 내 몸의 움직임은 또 다른 나의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주가 지나자 선생님은 내 동작이 많이 커졌다며 보기 좋다고 하신다.무엇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목적이 있고 의식적으로 하지만 몸 언어의 특별한 점은 나의 의도가 많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로 가야지 방향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동작을 해야겠다고 의도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 동작이 나온다. 현대 무용의 이런 춤 방식은 노자가 말한 ‘일부러 하지 않는 함’인 것 같다. 그래서 90분을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50대 중반의 남자에게는 줌바가 적당할 수도 있지만 60이 넘은 여자에게는 이런 현대 무용이 알맞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몸의 언어를 들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줌바든 현대 무용이든 노년의 자신에게 춤을 허하자. 외로움도 극복하고 건강도 만들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일석이조 아닌가.

2023-03-19

새마을 깃발

강길수 수필가 언제부턴가 이 집 앞을 지날 땐, 반갑고도 찜찜하다. 출퇴근 때 오가는 이면도로의 한 집 앞이다. 가정주택을 조금 개조하여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본채 외관은 그대로이고, 대문 부분과 길 쪽 담장을 헐고 출입을 편케 한 구조다. 특이한 점은, 대문 헌 좁은 공간에 세운 깃대 셋에 언제나 깃발을 걸어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본채 벽에는 ‘모범경로당’이란 팻말이 붙었다. 깃발은 중앙 깃대에 태극기, 앞에서 볼 때 오른편에 새마을기, 왼편에 단체기가 걸려있다.출퇴근길에 초등학교 앞 두 곳, 중학교 앞 한곳을 지난다. 세 학교 모두 현관 입구 위에 세 개씩의 깃봉이 있다. 오늘 퇴근길에 세 학교가 내 건 깃발을 살폈다. 세 학교 모두 중앙 깃대에 태극기, 마주 볼 때 오른쪽 깃대는 비어있고, 왼쪽 깃대엔 학교기로 보이는 기가 걸려있다. 우리 초, 중등 교육의 현주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초, 중등 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경로당 앞에서 더 마음 가는 깃발은 ‘새마을기’다. 펄럭이면 펄럭이는 대로, 늘어져 있으면 늘어진 대로 반갑고도 찜찜하다. 새마을기는 오천 년 민족의 숙원인 가난을 물리친 우리 시대의 찬란한 발전상징이 아닌가. 한데, 우리 지역 초, 중등 교육의 현장에는 새마을기가 안 보인다. 몇 해 전, 이웃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일하러 갔다가 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새마을기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 늘 깨어있는 학교라는 마음이 들었었다.‘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공자의 말씀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죽은 걸까. 지난 수년간 온 사회가 정치 모리배들에 의해 날조되고 유린당해도,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자정(自淨)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했다. 국가사회의 공익보다 제 편의 사욕만 채우며 가르기만 일삼던 내로남불 비양심 정치꾼들…. 양의 탈을 쓴 가짜 우파, 가짜 좌파들이 판을 치고 나랏돈을 쌈짓돈 삼아 쓰며, 사회를 병들게 해 왔다.과거가 없는 현재란 없다. 또, 현재가 없는 미래도 없다. 과거를 단절하는 것은 곧, 현재가 부정당한다는 진실을 우리 사회는 잊고 산다 싶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일 진데, 그 원인을 배척하는 사회가 온전할 수 있을까. 경로당의 새마을기 앞을 지날 때 느끼는 반갑고도 찜찜한 마음은 바로, 우리 사회가 온고이지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지난해 기적처럼 국민의힘이 집권했다. 이는 직전과는 달리, 과거를 품어 나가라는 하늘의 도움과 계시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가 꼭 이어가야 할 자산은 무엇일까. 보릿고개 때부터 지금까지 온몸으로 살아낸 증인 세대로써, 단연코 ‘새마을 운동’이라 본다. 70년대 이래 나라 근대화의 근간이었던 새마을 운동을, 현실을 반영(modify)해가며 ‘제2의 새마을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 길만이, 병든 우리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길로 보이니까 말이다.우리가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새로 일어선다면, 기후변화와 코로나 후유증과 지구촌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난관도 능히 헤쳐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다시 새마을 깃발이 온 나라에 펄럭이도록….

2023-03-16

굿바이 코로나 마스크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지 2년 5개월 만에 자율화를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3월 20일부터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이 방역수칙을 성실하게 준수해온 덕분에 지난 1월 말 착용 의무 조정 후 일평균 확진자 38%, 신규 위중증 환자 55% 감소 등 방역상황이 안정적이라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과 대형시설 내의 개방형 약국은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것이다. 학교의 통학 차량도 포함된다. 그러나 의료기관과 약국, 요양병원 등의 감염 취약 시설에서는 계속 유지한다고 한다. 다만 혼잡시간대의 대중교통 이용자, 고위험군, 유증상자에게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현재까지의 누적확진자는 전 국민의 60%인 약 3천만 명이며 항체 양성률도 70%이고 일일 확진자가 약 9천 명으로 10주 연속 하락세를 유지하는 안정권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까워졌으니 일상회복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마음으로 ‘마스크 착용해제’ 선언을 가슴 열고 기쁘게 받아들이자.2019년 연말에 갑자기 들려온 ‘우한 폐렴’ 소식이 다음 해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의 첫 확진자가 확인되면서 놀랐는데 세계보건기구 WHO는 팬데믹을 선언하였고 10월에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실시로 위반 시에 과태료 10만 원까지 부과했다.2021년 남아공화국 변이의 국내발견 후 4월 12일 실내·외마스크 착용 전면 의무화를 실시했으며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 발생으로 2022년 3월 17일 역대 최다 확진자 62만1천124명 기록을 세웠고 4월과 5월에 거리두기 종료,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해제를 했다가 9월에 전면해제를 발표했었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 ‘착용 의무’를 ‘권고’로 1단계 해제를 하여 신학기를 앞둔 학교와 학원, 어린이집 등에도 밝은 기운이 비치었고 드디어 3월 20일 전면해제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시적 증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일률적인 방역은 사실상 끝이 난 것이다. 일본도 ‘노 마스크(No-mask)’를 선언했고 세계적으로 마스크 착용해제 국가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마스크 착용은 사회성 발달을 저해한다고 하지만 여론 조사에서 해제 후에도 ‘계속 쓰겠다’는 사람이 70%인 것을 보면 그동안 습관화되어버린 일면이 없지도 않다. 그 환경적 요인으로, 벗었다 썼다 하는 번거로움, 미세먼지, 차가운 날씨, 알레르기 등이 있고 심리적 요인으로는 ‘익명성’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개인의 선택에 달렸으니 스스로 준비하고 챙겨서 가벼운 봄나들이를 할 수도 있겠다.이제 의료기관 착용해제와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만 남겨두고 코로나 팬데믹은 힘을 잃고 있다. 3년 전 마스크 사려고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섰던 기억들…. 품귀현상, 사재기, 가격 폭등, 마스크 5부제까지 경험했던 마스크 KF94는 888일간의 쉼 없는 사투를 끝내고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턱스크, 마스크 미인 등 숱한 신조어를 만든 마스크가 새로운 생활용품으로 탈바꿈하는 꿈도 꾸어 본다.

2023-03-16

신규 국가산단, 지금부터 기업유치가 과제

정부가 그저께(15일) 발표한 신규국가산업단지 조성계획에 대구·경북에서 신청한 4곳(달성, 경주, 안동, 울진) 모두 선정돼 경사를 맞았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포항의 경우 국가산단으로 선정되지 않았지만, 제철산업을 울산의 조선산업과 연계해 환동해 경제권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포항은 지난달 말 국가첨단전략산업인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을 정부에 신청해 둔 상태다. 국가산단 후보지로 선정된 곳은 사업시행자 선정 후 개발계획 수립, 예비타당성 조사, 관계 기관 협의 절차를 거쳐 정식 지정된다. 대구국가산단은 달성군 화원·옥포 일대에 들어서며, 미래자동차와 로봇이 융합된 미래모빌리티 관련 기업이 주축이 된다. 대구에는 이미 국내 전기차 모터 80%를 생산할 정도로 탄탄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경북은 경주와 안동, 울진 세 후보지 모두 신규 국가산단으로 선정됨에 따라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기대감이 크다.지금부터 과제는 입주할 기업유치다. 산단 조성 후 이렇다 할 기업을 유치하지 못하면 지역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울진과 안동은 이미 대기업 입주 수요를 확인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울진 원자력수소 산단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을 비롯한 다수 대기업이 투자의사를 전했으며, 안동 바이오생명 산단에도 한국콜마, 유한건강생활 등 중견기업이 입주약속을 했다. 대구는 수요조사를 한 결과 103개 지역기업이 입주를 희망했다고 하지만, 산단을 대표할 앵커기업 유치가 절실하다. 경주시 SMR 국가산단도 현재 발표할 만한 입주희망 대기업이 없는 상태다. SMR 설비의 생산, 수출에 무게를 둔 만큼, 원자로 핵심기술을 보유한 대기업 유치가 필수적이다.이번에 선정된 이 지역 국가산단에 들어설 모빌리티·원자력·수소·백신 산업 클러스터는 국가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다. 정부도 추진지원단을 가동해 발목 잡는 모든 규제요소를 해제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각 지자체는 국가산단이 대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 인구유입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23-03-16

대중교통 마스크 해제… 공공의료 강화 시발점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마스크착용 의무화가 오는 20일부터 해제된다. 이제 마스크를 써야 할 곳은 의료기관, 요양원 등 감염 취약시설만 남는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실내마스크 착용의무를 조정한 후 일평균 확진자 38%, 신규 위중증환자는 55%가 감소했고 신규변이도 발생하지 않는 등 방역상황이 안정적”이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했다.이로써 2020년 10월 시작한 마스크 착용의무화는 2년 5개월만에 끝나게 된다. 방역 당국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남은 방역조치인 확진자 격리의무도 조만간 해제할 거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사실상 종결을 앞두고 있어 국민이 그토록 갈망했던 일상회복이 이제 본격화된다.그러나 대중교통 마스크의무가 해제됐다고 감염 우려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보건 당국도 “혼잡시간대의 대중교통 이용자, 고위험군, 유증상자들은 마스크 착용을 적극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중교통 마스크 해제를 찬성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를 두고 “성급한 결정”이라 비판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하루 1만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건강관리에 힘써 왔던 선의의 피해자 발생이 우려된다”는 것이다.2019년 처음 발생한 코로나19는 전세계적으로 6억7천여 만명이 감염되고, 680여 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국내서도 3천여 만명 넘게 감염됐고 사망자가 3만4천여 명에 달했다.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막심했다. 사회적 비용은 물론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겪은 국민적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막바지에 왔지만 신종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또다시 반복될 거란 전망이 유력하다. 20세기 들어 세계는 각종 신종 감염병으로 많은 인류의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국내적으로 코로나19가 안정세에 들어선 것은 다행이나 코로나의 경험을 토대로 지금부터 보다 강력한 의료체계 구축에 힘 모아야 한다. 특히 대구와 경북은 수도권에 비해 공공의료 기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지역사회의 노령화는 팬데믹 위기에 치명적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지역의 공공의료 강화에 집중 투자가 있어야 한다.

2023-03-16

MZ세대의 파워

우정구 논설위원 MZ세대란 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초∼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학술적 배경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대학생 상대의 한 잡지사가 처음 사용한 것이 유래다. 지금도 젊은 세대를 통칭할 때 이 표현을 잘 쓴다.그러나 엄밀히 말해 M세대와 Z세대는 다르다. 특히 시간이 흘러 초기 밀레니얼 세대의 나이가 40대로 접어들면서 신세대 젊은이의 상징처럼 MZ세대를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한 리서치의 인식조사에서 대중들은 MZ세대를 16∼31세로 본다고 한 것은 MZ세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잘 반영한 대목이다. “요즘 젊은이”로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하다.Z세대는 스마트폰을 기준점으로 가른다. 국가의 스마트폰 보급률에 따라 Z세대를 구분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2000년대 이후 세대가 기준이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한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당장의 행복을 쫓는 세대다. 소비성향에서도 그들의 특징이 있다.서로 다른 M세대와 Z세대를 묶어 MZ세대로 부른 데는 언론의 무분별한 오남발이 큰 원인이다. MZ세대의 실제 정의는 10대에서 40대까지 폭넓으나 마치 20대를 대상으로 MZ세대를 표현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학계서는 잘못된 세대 구분을 강조하면 사회문제의 본질이 가릴 수 있다는 지적도 한다.주 52시간 근무 유연화를 시도하려는 정부 정책을 두고 MZ세대가 반발하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했다. 젊은 세대의 생각을 충분히 반영하란 뜻이다. MZ세대가 우리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의미기도 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6

'무노동 무임금' 예외는 없다고?

홍석봉 대구지사장 ‘무노동 무임금’은 파업 기간 동안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노동 원칙이다.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기준이자 관행이다. 우리 사회에 폭넓게 적용된다. 정치인들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적용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권리 침해로 여기고 외면해온 터이다. 구속된 지방의원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논란의 중심에 선 국회의원의 ‘무노동 무임금’ 적용 법률 개정 요구와 함께 지방의원에게도 이를 적용하자는 것이다.대구의 한 시민단체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있으면서도 꼬박꼬박 월정수당을 받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며 “세금이 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시의원의 사퇴와 월정 수당 340만 원의 지급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구속 4개월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다. 여론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대구시의회는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고 조례 개정 의견을 듣는 등 제도개선 분위기가 일었지만 의장단은 함구하고 있다. 논의 필요성만 인정한 채 관련 조례 개정 움직임에는 소극적이다. 대구시의회가 관련 조례를 개정하면 다른 기초의회도 뒤따를 가능성이 높은 데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오히려 국회부터 먼저하는 것이 순리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다.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말 지방의원이 구속되면 월정수당을 주지 않거나 감액하도록 조례를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대구시의회 등 지방의회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전국 243개 지방의회 중 월정수당을 제한하는 곳은 10곳 뿐이다. 지역에서는 수성구의회가 유일하다.국회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는 법안이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도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의원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법안은 마냥 계류 중이다. 내년 4월이면 총선이다. 이렇게 또 넘어갈 모양이다.지금 국회는 가관이다. 기껏 방패 국회나 열고 상정된 법안은 잠재운 채 해외나들이엔 열심인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의원 1인당 세비는 연 1억5천426만 원이다. 이와 별도로 업무추진비, 차량유지비, 사무실 소모품비 등 각종 명목으로 1인당 평균 1억150만 원이 지원된다. 의원마다 8명씩 둘 수 있는 보좌진 인건비로 5억 원 안팎이 나간다. 의원 1명 당 세금 7억5천여만 원이 지급된다. 해외시찰 명목의 해외여행 경비도 세금으로 지원한다. 각종 혜택이 어마무시하다. 총선 때마다 내놓던 ‘보수 삭감 공약’엔 아예 눈 감았다. 그런데도 2018년부터 5년 연속 세비를 올렸다. 매번 셀프 인상이다. 국민 눈총과 비판 여론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권익위도 국회의원에 대해선 권고 조차 않았다. 2019년 한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 세비 반납 법안 제정에 찬성 80.8%, 반대 10.9%의 답변이 나왔었다. 국민 대부분이 국회의원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옥중 월정 수당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국민이 분노한다.

2023-03-16

산불예방, 우리의 실천으로부터

유문선 포항북부소방서장 해마다 봄철이면 안타까운 산불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된다. 지난해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로 기록된 울진 산불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해 역시 경북에서만 4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특히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로 강과 하천이 가물고 강하게 부는 바람에 한 번 산불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대형화재로 번지는 일도 잦아졌다.산불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산불 발생의 많은 비율은 자연적이지 않다. 소방청이 2022년 발간한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산불 발생원인은 입산자 부주의에 의한 실화가 대부분을 차지했고(79.7%) 그다음으로 원인 미상(11.6%)이 뒤를 이었다. 많은 재산피해를 발생시키고 자연을 파괴시키는 산불의 원인은 담뱃불과 논·밭두렁 태우기 등 부주의로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작은 주의만 기울이면 산불을 예방할 수 있다.그렇다면 산불 예방을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산불예방을 위한 첫걸음은 성냥이나 라이터 등 화기물 소지 금지에서 시작된다. 산림이나 산림인접지역에서 불을 피우는 취사와 흡연, 흡연 후 담배꽁초를 버리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적발 시에는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일부 지역은 산림보호를 위해 화기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입산 제한 대상이 되므로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집에서 나오기 전 소지 여부를 재차 확인해야 한다.또한 산림 인접지역에서는 논·밭두렁 소각행위를 금해야 한다. 예전부터 많은 농가에서는 병해충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봄철 논과 밭을 소각하는 행위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는 해충방제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세먼지 발생 및 봄철 산불의 원인이 될 뿐이다. 영농 부산물 소각행위 역시 산림보호법에 따라 엄격히 금지된 행위이며 위반 시에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마지막으로 산불을 발견했을 때에는 즉각 119에 신고해야 한다. 초기의 작은 불은 나뭇가지나 외투 등을 사용해 두드리거나 흙을 덮어 진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지만, 화세가 커지고 있다면 신속히 벗어나 119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 시에는 등산로에 설치된 산악 위치표지판의 고유번호를 알려주는 것이 신속한 출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등산 중 위치표지판을 지나친다면 잘 기억해 두도록 하자.산불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산불이 대형화재로 번지면 화재진압이 장기화 되고,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장비와 인력이 소모된다. 한번 타버린 산은 회복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축구장 1만7천300개 면적을 태우고 1천400억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남긴 울진 산불이 발생한 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산불예방에 동참해 모두가 행복한 봄의 산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2023-03-15

커피향기처럼

배문경 수필가 커피를 마신다. 봄볕아래서 후배와 점심 후의 나른함을 섞고 수다를 한 스푼 첨가해서 홀짝거린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더러 뜨거운 커피에 녹아내렸고 긴 장마에 우산을 털며 들어서는 커피숍의 커피향기는 눅눅함마저도 잊게 했다. 지금은 그저 편안한 휴식의 단맛을 느끼고 있다.오빠는 “인생도 쓴데 커피까지 쓰게 마시겠냐”라면서 두 스푼의 설탕을 넣어 휘휘 저어마셨다.그러고 보니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단맛까지 달달하거나 모든 맛이 커피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223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다. 커피 두 스푼에 프리마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으로 탄 커피는 인기 짱이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사로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얼마 전 문인협회에서 큰 행사를 진행했다. 식사는 늘 제공했지만 커피를 제공한 경우는 없었다. 추가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을 제공했다. 그 자리에서 백일장 작품을 심사하는 일까지 하게 되니 일석이조였다. 음식의 텁텁한 맛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커피에 모두 기분 좋아하셨다.커피를 한때는 검은 악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깊게 빠져들 매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이 검은 악마가 인간에 의해 음료수가 되기까지는 한 목동의 조금은 충동적인 얘기가 밑받침된다. 염소를 치던 에디오피아의 칼디라는 소년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소년은 어느 날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날뛰는 것을 보고 자신도 먹었다. 그러자 기분이 상쾌해지고 활력이 솟구치는 기분을 느낀다. 이후 인근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알리게 되고 그들은 악마의 것이라며 두려움에 불속에 던졌지만 커피열매가 불에 타면서 향긋한 냄새를 내고 잠을 쫓는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커피음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한다.어쨌든 우리는 깊게 들여다봐도 검기만 한 음료를 이제는 다양하게 만들어 즐거운 식감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까페라떼, 바닐라라떼, 달고나라떼, 까페모카, 아인수페너라떼, 아이스아메리카노 등 다양한 메뉴를 앞에 두고 고르는 재미와 뭘 먹지하며 들여다보는 메뉴판엔 다양한 음료가 손짓한다.기분이 언짢다면 조금 달달한 메뉴인 아인슈페너라떼를 선택해 보면 어떨까. 아메리카노 위에 얹은 묵직한 크림은 탱탱하고 쫀쫀해서 크림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같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놀란다. 덥고 답답하다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다. 작은 즐거움으로 기분을 업(UP) 시킬 수 있다.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파란색 지붕이 신선했던 지중해를 배경으로 선전하던 음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곳에서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번져나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유럽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노천카페의 풍경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배 순희와 여행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상태다.커피는 인생의 맛 중에서도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명약이다. 왜냐하면 슬프거나 화나거나 힘들 때 혹은 내 곁에 아무도 없어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위로를 받는다. 많은 사람들과 수다를 떨 때도 커피향기가 배어 나오는 카페가 있다. 그들과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수다를 떨다 일어날 때도 먼지 같은 일상사가 살만한 세상으로 바꿔져 있기 일쑤다. ‘무엇으로부터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다소 위안이 된다.지금 나는 푸른 바다의 파도가 넘실대는 구룡포 바닷가에 앉아 커피 마실 생각을 한다. 까만 커피위에 부드러운 우유가 얹혀 진 채 커피 하트를 보며 여유를 부릴 생각만으로 즐겁다. 인생 뭐 별 것 있냐며. 그러고 보니 예전 싸이월드의 아이디가 ‘커피향기처럼’이었던가.그 사이 봄바람 나겠다며 마음은 길을 나서고 있다.

2023-03-15

<5>부동산 투자 ABC 비방을 듣다

당나무는 김 사장과 어린 시절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고향의 어린 시절에는 여름철이면 더욱 아쉽기도 한 아련한 추억들이 샘솟는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여름이면 어김없이 아이스께끼 장사가 자전거 뒤 나무통에 그 잊지 못할 아이스께끼를 싣고 소리를 냅다 지르며 나타난다. 아이들은 미리 천초를 바다에서 채취해서 모아 놓았다가 아이스께끼로 바꾸어 먹기도 했다. 그 차고 달콤한 맛은 평생의 입맛의 기준을 정해 버렸다. 강냉이 엿장수의 가위소리도 그렇고 심지어 벌꿀을 가져 와서 미역과 교환하기도 했다. 돌미역은 만물을 향한 요술쟁이였다.그 달콤한 콩가루를 덮어쓴 쑥떡을 머리에 이고 온 할머니도 있었다. 마을 앞 바위틈에는 군침 도는 먹거리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철철이 새로운 해산물들이 기나긴 세월을 이어오면서 마을을 속인 일이 없었다. 주민들은 자연이 주는, 그것을 믿고 신뢰하고 힘들어도 기다렸다. 바다가 곧 집 앞 놀이터이고, 생명의 먹거리로 이어진다. 마을 앞바다의 수 만평에 이르는 넓은 돌바닥에는 돌김, 파래, 참고동, 갯고동, 따개비, 안장구, 참게, 말치, 토씨, 군소, 멍데이, 다시마, 말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해산물이 서로 앞다투어 생존 경쟁을 하고 있었다.돌김은 옛날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 고소한 맛은 천하의 일품이다. 김에 밥을 싸서 입에 넣으면 입안의 침이 참기름보다 더 고소함으로 가득 찬다. 지금도 자연산 돌김은 미식가들에게는 바다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김 채취는 겨울철에 하는데 다소 따뜻한 날을 선택해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한꺼번에 동일한 시간대에 출발하여 돌김이 자란 바위로 향한다.가히 동네 주민들이 모두 모여 들어가는 모습은 한판의 전쟁터를 향한 군사들을 방불케 한다. 먼저 들어가서 돌김이 많이 자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웃사촌 같은 염치는 치장에 불과하다. 채취한 돌김은 볏짚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발에 물과 함께 김을 풀어 놓고 얇게 널어 건져서 발위에서 햇빛에 말리면 된다.돌김보다 좀 다른 파래는 다소 물이 더 깊은데서 자라는데, 건조 방법은 김과 같으나 불에 구우면 쓴 맛으로 변한다. 마을 앞 얕은 물에서 자라는 고동은 두 종류가 있는데 참고동과 갯고동이 있다. 참고동은 가장 흔하게 자라고, 삶아서도 먹고, 생것으로도 먹을 수 있다. 갯고동은 생것으로는 먹을 수 없고, 주로 놀래기 등 고기 낚시 미끼로 쓰인다. 안장구라는 말똥성게는 알이 붉은 색인데 깊은 물에서 자라는 보라성게에 비해서 맛이 달아서 밥에 넣어 비벼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당나무와 김 사장은 또래 친구들이 불렀던 노래도 불러 본다.“바리(파도) 궂는다 배 올려라, 바리 잔다 배 내려라. 니(너) 배 네 배 돛 달아 놓고 시월 벌판에 돈 벌려가세, 빨간 보따리 돈 보따리, 처갓집 담 위에 올려놓고, 나는 좋아 나는 좋아 장모님 고무신도 나는 좋아!”부동산 비방을 이어간다. 전혀 그런 온천공의 권리가 독립된 물권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전 소유자는 이미 부도를 예상하고, 전국에 온천을 이용 할 수 있는 이용권을 수만 장 팔아버려 김 사장과 다툼이 생겼고, 부도로 전 소유자를 만날 수조차도 없었다. 온천공 없는 온천은 앙코 없는 찐빵보다 못 했다. 온천 목욕탕을 운영 할 수 없었다. 결국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보상 받은 돈을 모두 날려 버렸다. 김 사장은 부동산에 대한 자격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 전문지식이 있다고 생각 했는데 현실적으로는 어쩌면 부동산 ABC도 몰랐다고 할 수 있었다.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다.그래서 신목이 된 당나무에게 부동산 ABC에 대한 비방을 듣는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요지의 토지를 찾는 것이 최상이다. 토지는 언제든지 건축이 가능한 토지와 그렇지 못한 땅이 있다. 서진국 작가 소위 도시계획법상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의 토지는 소유자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고 자연녹지, 공원 등의 토지는 특정한 조건이 맞을 때에 한하여 건축 허가가 난다.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는 기준도 건축허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부동산의 권리는 소유권이 가장 큰 권리이고, 전세권, 임차권, 유치권, 담보권 그리고 관습법상 지상권, 분묘기지권 등 여러 권리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토지도 사람의 일생과 같이 돌고 돈다는 것이다. 키친이라는 학자가 부동산의 변화를 연구한 논문, 소위 키친 사이클에서 부동산도 사람과 같이 일생이 있다는 것이다. 유아기가 있고, 성장기, 장년기, 노년기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자세히 긴 기간을 통하여 부동산의 변화를 보면 초기에는 새로운 토지가 조성된다.그 토지에 사람들이 모여 활발한 사회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다가 또 다른 지역이 새로이 발전하여 개발되면서 먼저 발전된 지역은 쇠퇴된다는 것이다. 과거 서울 강북권에는 최고의 주택지역과 상업지가 조성되었다가 일정기간이 지난 후 최고의 주택지가 강남으로 옮겨가면서 상당한 상권도 강남에 형성되었다. 부동산이나 인생도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환생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2023-03-15

외국인 근로자 무단이탈 방지에 역점을

영농철을 앞두고 있다. 영농 준비에 농민의 마음도 바빠질 시즌이다. 올해 농어촌 일손 지원을 위한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경북도내 배정이 확정됐다. 상주시 954명, 영양군 830명, 봉화군 718명 등 도내 시군에 배정된 인원은 모두 5천614명이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입국이 제한됐던 작년보다 두배 가량 늘었다. 이들은 순차적으로 도내 시군에 배치돼 바쁜 농가의 일손을 돕게 된다. 계획대로라면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든 농어촌의 일손을 돕는데 큰 보탬이 된다.전국적으로도 올해는 많은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배정됐다. 문제는 해마다 발생하는 무단이탈 등의 인력 관리가 제대로 될지가 의문이다. 작년 경북도내 배정된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10% 정도가 무단이탈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도 무단이탈자가 생기지 말란 법은 없다.불법 상태에서 무단이탈한 이들은 이동 동선조차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비자발급을 받고도 임금을 더 많이 주는 공장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농번기에 갑자기 일손이 빠져나가면 농가로선 영농 차질 등 황당하기 짝이 없다.이런 점을 고려, 정부나 지자체가 외국인 근로자 인력관리에 나서고 있으나 지금껏 실효적 성과를 내지 못해 농가들이 골탕을 먹는 사례가 빈번했다.외국인 근로자의 무단이탈을 막기 위해 귀국 보증금 예치제를 시행했으나 까다로운 입국절차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이 줄어들어 이 제도도 올해는 폐지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규제를 오히려 완화하면서 외국인 근로자 관리가 더한층 힘들어진 것이 현실이다.일부 지자체에 따라서는 성실하게 기간을 마친 근로자에 대해 항공료를 지원하는 곳도 있고, 일부 지자체는 전담부서 설치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성과는 두고 볼 일이다.경북도도 성실 계절근로자의 재입국 추진이나 시군별 농촌인력지원 전담팀 구성 등의 아이디어를 내고 있으나 성과는 장담할 수 없다. 농번기를 맞는 농어촌 인력지원에 지자체의 깊은 고민과 배전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2023-03-15

대구 핵심성장동력 될 ‘빅데이터 인재양성’

대구시가 지역대학, 연구기관과의 공조(共助)를 통해 빅데이터 인재 양성에 나서 성과가 주목된다. 대구시는 지난해 영남이공대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그저께(14일)는 수성대,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DIP)과 빅데이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산업 맞춤형 실무 중심의 전문가 양성이 목표다. 수성대는 빅데이터 혁신거점으로 육성 중인 수성알파시티 인근에 있어 관련 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대구시의 구상은 우선 대학과 DIP 주관으로 공공데이터 활용 창업경진대회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DIP는 창업경진대회와 연계해 캡스톤 디자인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과제발굴을 돕고, 학생들이 대회에 참가해 실적을 내면 학점을 인정해 주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창업과 취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DIP는 학생들의 수업에 직접 참여해 데이터 활용 및 분석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킬 멘토링 역할도 해 준다. DIP는 산학공동으로 세미나·토론회 등의 다양한 행사를 열어 지역사회에 빅데이터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간다는 구상이다.미래산업은 급증하는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성장요소가 된다. 공공행정이나 의료, 소매업, 제조업, 개인정보 부문 등에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할 경우 상상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은 현재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빅데이터 시장 개척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확보라는 측면에서 대구시의 노력은 평가받을만하다. 빅데이터 시장에서 앞서가려면 필수적으로 관련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특히 대학생들처럼 창의적이고 통합적인 생각을 하는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 대구시가 앞으로 산학협력을 통해 체계적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또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대구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23-03-15

결국 미디어가 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은 무섭다. 폭력은 범죄라는 상식이 있지만, 폭력이 학교에서 벌어지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누구에게나 어렵다. 피해당사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학교, 교육청과 정부 등 모두 이를 대처하는 방식에 혼돈스럽고 당혹해한다. 사건이 붉어지면 언론이 뜨겁게 보도하고 정치가 담론으로 삼기도 하지만, 오래 가지않아 불씨는 시들고 기억에서 다시 멀어진다. 그런가하면, 종교를 허울삼아 못된 짓들이 발생해도 우리는 마찬가지였다. 교회나 사찰 등지에서 성폭력이 간간이 발생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처방식은 늘 같은 모습이었다. 정치와 언론이 근본적인 대안들을 만들어주었으면 하지만, 기대가 있었을 뿐 우리 사회는 같은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품고만 있는 셈이다.미디어의 역할이 신선하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실체를 극적으로 부각하여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을 행사하는 극적진행을 통해 학교폭력이 처음부터 없어야 했다는 당위명제를 던진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실제피해자들을 가감없이 등장시켜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깊이와 범죄상황의 적나라한 모습을 있었던 그대로 전달한다. 언론에 기대했던 사실의 전달과 정치에 기대했던 해결의 실마리를 미디어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보다 강도 높은 전달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언론과 정치는 각성해야 한다. 사실전달이 언론의 본령인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함께 전달하고 제시하는 시도도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번져가는 솔루션저널리즘(Solutions Journalism)은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탐색한다. 정치는 중첩한 사회문제를 논하며 정치적 수사와 탁상공론으로 허비할 게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담론을 설정하고 토론을 진행하여 실천적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언론이 겉모습만 겨우 보도하고 정치가 허망한 수사만 반복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기대와 희망을 더 이상 당신들에게 걸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치와 언론에서 실질적인 담론과 실천적인 대안을 구하기보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은 다음 시민들이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언론과 정치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디지털세상이 그래서 무섭다. 특히, 정치와 언론에 가혹한 현실을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사회문화적 현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대중에게 정치와 언론이 가교역할을 해 주었다면, 디지털은 그 거리를 현저하게 좁혀놓았다. 모든 뉴스와 사건의 현장이 시민들에게 그리 멀지 않게 되었다. 언론의 보도기능과 정치의 담론진행조차 누구나 온라인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언론과 정치가 보통사람들의 일상에 가 닿는 저널리즘과 정치행위를 실천해야 한다. 언론과 정치가 본질을 회복해야 사회가 살고 나라가 선다.

2023-03-15

‘명품’ 안동소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와 프랑스 꼬냑 지방의 꼬냑 및 까뮤트레이션, 중국의 마오타이주가 세계 3대 명주로 꼽힌다.스카치위스키는 지난해 사상 처음 매출 10조 원을 기록했다. 고급 위스키의 가장 큰 소비처가 한국이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는 증류장과 지역 명소와 연계하는 체험 상품을 개발해 한 해 2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인다.중국 마오타이도 고급 브랜드로 국제화에 힘써 주가 총액이 삼성전자 보다 높은 420조 원에 달한다. 연간 매출액 20조 원의 세계적인 주류 기업이 됐다.일본도 세계 5대 위스키 생산국가에 든다.우리나라에도 안동소주 등 위스키 못지않은 좋은 술이 많지만 외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안동소주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며 세계 명품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스코틀랜드 현지를 둘러보고 시장성을 살펴본 후 내놓은 진단이다. 경북도는 안동시와 전통주 업체, 대학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 대표 상품을 만들기로 했다. 안동 주요 관광지에 홍보관을 건립, 안동소주를 알리고 술 품평회와 양조장 체험 등 지원 사업도 편다. 술 원료, 도수, 숙성도 등을 규격화해 품질기준을 만들고 유명 아이돌 그룹 등을 내세워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안동 맹개마을의 ‘밀과노닐다’는 미국과 영국의 펍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양조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인기를 끌고 있다. 잘만 육성하면 세계적 명품이 될 수 있다.전통주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진 지금 한류를 활용, 안동소주 명인들과 현대 기술을 버무려 세계 명품주로 만들어야 한다. 타이밍이 딱 맞다. 명품 안동소주의 탄생을 기대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15

포스트 코로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4년 만에 마스크 없이 맞이한 3월 초의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마스크 없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기분 좋게 느껴졌고, 3월 첫 수업을 앞두고는 설레기까지 했다. 마스크 없이 진행하는 수업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은 마스크와 동거했던 지난 시간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잔뜩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이제야 기지개를 켜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이런 마음은 연구실로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개강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무너지고 말았다. 2023학번 신입생이 퉁명한 목소리로 자퇴하고 싶다며 전화를 한 것이었다. 대학에 온 지 한 주,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바쁠 신입생과 자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어떻게 조합될지를 상상하며 면담 날짜를 잡았다.학생은 한눈에 봐도 마음이 아픈 학생이었다. 서울에서 진주로 왔지만, 여전히 일상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중학교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입원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진주에 있는 것과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어느 곳에 있으나 마찬가지라면, 자퇴는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대학에 조금 더 머무르길 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상담 내내 불안한 눈동자로 울고 있던 학생을 진주에 남겨뒀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에 학생의 자퇴 원서에 서명했다.나는 아직도 그 학생이 어떤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자퇴를 선택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학생은 대학에 온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내린 자퇴라는 선택과 학교와 집 어느 곳도 편하지 않다는 자신의 발언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학생의 발언이 여전히 선명한 이유는, 선생으로서 나의 시각은 그 학생의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료히 알려주기 때문이다.나는 상담을 하는 동안 그 학생에게 함께 이겨내자는 말을 몇 차례 했다.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 학생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어떤 목적을 전제로 나름 합리적 선택이라고 제안한 나의 말은 이미 ‘이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학생의 상황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가지고 있는 학생에게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하는 대학 선생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여전히 무기력하다.마음이 아픈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학도 이를 인지해서 상담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이 상담프로그램을 직접 찾기는 어려우며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학생도 존재한다. 상담프로그램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지방 소멸론이 일상이 된 시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근 몇 년 정신이 병든 대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당연히 그 병은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고통이 성인이 되어 터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는 사회적 고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공감할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2023-03-15

꽃 피는 봄이 오면 찾아오는 불청객?

김영준 포항 약전부부한의원장 새싹이 돋고 봄꽃들이 만개하며 자연이 녹색으로 물들어 푸르름과 활력이 넘치는 계절 봄이 오고 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봄은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지나가는 것 같다. 너무 짧게 느껴지는 봄이지만 이 동안 너무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알레르기성 비염이다.알레르기 비염의 증상은 맑은 콧물이 많이 나는 것, 재채기, 비색(코막힘) 등이며 이로 인해 후비루(콧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 등으로 인한 인후부 염증이 동반되기도 하고 눈과 코 주위가 가렵고 피부염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다.알레르기 비염은 알레르기 물질(항원)에 반응하여 코와 호흡기 등의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대부분 야외에서 발생하는 꽃가루, 미세먼지나 실내의 집먼지진드기, 동물의 털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발된 알레르기 물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알레르기 검사상에 뚜렷한 유발 원인이 확인된다면 이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양이 털이 뚜렷한 유발 원인으로 확인된다면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면 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꽃가루 등에 의한 자극이 심하다면 외출 시에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코 세척을 자주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하지만 뚜렷한 항원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나 오랜 기간 생활 환경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발생한 경우에는 인체 내부 환경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한의학에서는 비염을 인체 상황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하여 치료하고 있다. 예전보다 추위를 크게 느끼고 찬바람을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날씨가 추워질 때 비염 증상이 더 심해진다면 한성 비염의 상태로 보고 몸을 데워주는 약을 쓰기도 하고 맑은 양상의 콧물, 가래 등이 특별히 심하면서 어지럼증 등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담음증의 양상으로 보고 체내 수액 대사를 개선시켜 불필요한 담음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나 심한 노동 등으로 인해 히스타민 과민성이 증가하여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몸을 보해주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오래 지속된 경우 부비동염이 생기거나 콧물이 심하게 넘어가서 인후염,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서 치료해야 한다.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은 코막힘, 재채기 등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수면 장애가 생겨 피로감도 심해지고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성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험생의 경우 집중력이 크게 저하되어 학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오랜 기간 비염 증상이 지속되면 우울감도 생긴다.따뜻한 봄날에는 피어나는 꽃들과 새싹들을 바라보며 산책만 해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 든다. 알레르기 비염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잘 치료가 되어서 콧물 걱정 없는 따뜻한 봄날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03-15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아직까지도 글은 솔직함이고, 폭죽처럼 진실이 절정을 향해 터뜨려질 때에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시는 더욱 그렇고 에세이나 칼럼 같은 산문도 마찬가지다.하지만 난 이 모든 걸 가질 수 없고, 가질 수 있다는 의지조차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모든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시 쓰기가 그랬고, 모든 사물과 대상과 사람에 대한 본질을 꿰뚫을 수 없다면, 나아가 이야기 속 진실을 모른 채 쓰는 글쓰기라면, 그것은 어리석고도 우스운 객기라 생각하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그래서 나는 기록을 멈췄다. 읽기를 멈추고 사유를 멈추고 시 쓰기를 멈췄다. 단 몇 줄짜리 시에 이토록 거짓과 위선이 가득하다니 환멸이 났다. 진실이 빠진 글은 누군가의 생각과 글을 그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글쓰기는 당장의 나의 월세가, 밥이, 옷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대학 졸업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유지했다. 화장품을 팔거나 음식을 나르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했다. 필요하다면 2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를 쪼개어 바삐 움직였다. 글 쓰는 것 외에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했고 지금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후회되는 점은 그 일을 하기에는 너의 재능이 아깝다는 무례한 말을 받아치지 못하고 오히려 거듭 무기력해졌다는 점이다. 동시에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타인에 대한 눈맞춤도, 정작 나의 마음도 모르면서 써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채 더듬더듬 햇빛이 드는 자리에 앉으려 애쓴, 당시의 혼란과 오기에 너무 집착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일을 하다 간혹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때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 년에 세 네 번, 문예지에서 청탁 전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나를 시인이라 칭하며 작품을 청탁할 때의 민망함, 잊히지 않았다는 안도감, 어떤 작품을 써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 마감일이 다 되어서야 급히 써내려가는 초조함, 그렇게 마주했을 때 내 것 같지 않은 문장들,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확신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있는지 되짚을 여유와 용기가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며, 불현듯 이 모든 게 쓸모없다고 여겨졌다.좋아하는 책을 모아둔 책장도,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자리 잡은 책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볼 때에도, 안면만 튼 작가들의 신작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쏟아지는 광경에 느끼는 소외감도.하지만 이런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건 아직까지도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나는 어떻게든 쓰고 있으며, 글을 쓰고 다루는 모든 이들이 묵묵히 빛나고 있다고 있는 점에서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나는 현재 그 빛남에 출발조차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고 돌아 내가 책장 앞에서 책을 만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제 미련한 유난스러움을 멈추고 묵묵한 글쓰기를 하겠다는 머쓱한 결론에 도착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속 같은 짧은 시간 안에 즐거움을 주는 인스턴트식 만족감이 나를 기쁘게 하는 건 맞지만, 영상이 끝나고 검은 화면에 내가 잠깐 비출 때의 스스로를 못나다고 생각하는 것, 방구석에 앉아 혼자 너무 편하게 생각 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은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분명히 할 말이 있는 사람이고, 그 말을 정확히 세상에 던지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요즘은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생활 유지를 위해 써야만 하는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기업의 홍보성 글이나 광고 카피 등의 업무적인 글쓰기는 광고에 따른 타겟층이 정해져 있기에 사용자에게 기대하는 의도나 목적, 그로 인해 얻어지는 예측성과를 정확하게 설정한다. 문구 또한 소비자가 카피를 읽는 즉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작성한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즉각적인 참여나 구매 등의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다행히 일은 꽤나 적성에 맞다. 치밀하고 정확한 글쓰기와 내가 쓰고 싶은 글쓰기 사이에서 공통점과 적절한 균형을 찾아 애쓰고 있고, 모든 글쓰기가 꽤나 내게 도움이 되고 있단 점에서 요즘의 나는 글과 함께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3-03-14

2층 아저씨의 참기름

시각, 청각 장애인인 할머니에게 제공된 국민임대주택에서 엄마가 산다. 할머니 부양하는 동거인이라 입주 자격이 된다. 옥상에 빨랫줄 당기고, 스티로폼박스 화분을 놓아 상추, 고추 심을 수 있는 그 집에서 14년째 사는 중이다.영어유치원 급식 일하러 갔더니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언니 돈 모으라고 안 돌아가고 버티시는 거”라 했단다. 하긴 최소한의 월세와 공과금만 내면 되니 주거비용을 많이 아끼긴 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 들어간 후 엄마는 반려견 순돌이랑 둘이서만 지냈는데, 순돌이는 3년 전 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시어머니 병구완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밖에 나가 일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아직 변변히 자리 잡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3층짜리 낡은 연립주택 1층에는 1년에 몇 천 건씩 민원을 넣어 ‘민원왕’으로 티브이에도 나온 악성 민원인 아주머니가 살고, 2층에는 80대 중반 어르신이 산다. 3층에 사는 엄마는 ‘2층 아저씨’와 살갑게 지냈다. 그분은 젊어 재혼 후 자식들에게 버림 받았다. 아내 되신 분이 금방 돌아가셔서 쓸쓸히 혼자 늙었다. 옥상 오르내리며 이불빨래 널 만큼 정정하셨는데 암 수술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몸피가 반으로 홀쭉해졌다.엄마는 영어유치원 급식 반찬 남은 게 있으면 비닐에 싸서 아저씨 갖다 드리고, 할머니 면회 갔다가 병원 1층 죽 가게에서 소고기죽 사서 갖다 드리고, 행정복지센터에서 김 두 상자 받으면 한 상자 드리고, 내가 낚시로 잡은 생선 갖다 주면 그것도 나눠 드리고, 명절 음식 해다 드리고, 내 생일날 일부러 잡채 더 해서 갖다 드리고 했다. 좋았다 나빴다 하다가 또 요양병원에 입원했는데 퇴원을 안 하신다. 며칠 전 집 앞으로 이삿짐 차가 오고, 수십 년 연락 끊고 지낸 딸이 와선 엄마에게 고맙다고… 병원에서 혼자 돌아가셨단다.얼마 전,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살던 80대 여성이 분신을 시도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미처 하지 못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오랜 기간 생활고에 시달렸다. 관리비가 7개월이나 연체된 상황에서 방을 비워줘야 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다.지난 1월엔 생활고를 겪던 70대 어머니와 40대 딸이 함께 극단 선택을 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장사를 할수록 빛만 늘어나고, 월세는 밀려가고,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임에도 전기요금 등을 성실하게 납부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오히려 찾아내지 못했다. 유서에는 “장사하면서 빚이 늘었다”, “보증금 500만원으로 밀린 월세를 대신해달라”고 적혀 있었는데, 더 가슴 아픈 건 “폐를 끼쳐 미안하고 미안합니다”라는 문장이다.“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그 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김민기, ‘아름다운 사람’)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윤동주는 ‘팔복’의 마지막 문장을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고 썼다. 멀찌감치 관망하는 자의 손쉬운 위로가 아니라 슬퍼하는 자들 속으로 들어가 그 슬픔에 영원히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이웃의 고통을 보며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는 사람, 더운 가슴에 바람이 이는 사람, 고운 마음에 아픈 노래 울리는 사람, 그 아름다운 사람을 나는 엄마에게서 본다.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 늙은 사람이 더 늙은 사람을 보살피고,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 곁에 있다.2층 아저씨 냉장고를 열어 보니 파 썰어놓은 것, 참기름, 된장 따위가 있어서, 아까워 챙겨오셨단다.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버렸을 텐데 가족처럼 지낸 분이니까 챙겨왔다”고. 엄마는 오랜 이웃을 잃었고, 이웃이 남긴 참기름, 된장, 대파로 저녁을 지을 것이다. 누군가 살려고 가꾼 것들이 다른 이의 삶을 마저 가꾼다. 삶이 없어도 삶이 이어진다.“봄에 옥상에다 뭐 안 심어?”라는 내 물음에 엄마는 “2층 아저씨가 화분이랑 다 해놨으니까 엄마가 상추 고추 심고 호박도 심어야지” 했다.

2023-03-14

소나무 재선충병

우정구 논설위원 소나무는 우리나라 수목 가운데 가장 많은 분포면적을 가지고 있고 개체수도 가장 많다. 대표적인 침엽수다.소나무는 건조하거나 지력이 낮은 곳에서도 견디는 힘이 강하고, 화강암지대의 고산에서도 잘 자란다. 건축재나 가구, 선박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우리 민족에겐 가장 친근한 수목이다. 거대하게 자란 노목(老木)은 장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사철 푸른 빛은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한다.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자라는 금강송도 결국 소나무다. 겉 껍질이 붉어 적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줄기가 밋밋하고 곧게 자라서 소나무 중에서 최상급 목재로 사용된다. 예로부터 궁궐을 짓는 목재로 쓰였으며 화재로 소실된 국보인 숭례문 복원에도 금강송이 동원됐다.경북 북부지역에 있는 금강송 군락지에는 수령 200년 이상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어 국가에서 보호림으로 관리한다. 속리산 정이품소나무나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경북 예천의 석송령 등 많은 희귀한 소나무들은 나무 자체의 스토리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소나무만큼 우리민족 문화에 영향을 끼친 나무는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 재선충병이 대유행 조짐이라 한다. 작년 대구경북에서는 12만여 그루가 재선충병에 감염됐다고 한다. 산림청은 올해는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소나무가 감염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1988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한 소나무 재선충병은 지금은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번져 재선충 방제가 사실상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한 달 안에 완전 고사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뾰쪽한 대책도 없다. 재선충병 방제에 대한 범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14

‘우수인력’ 탓하며 수도권집중 계속할텐가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설에 전주시민들이 떠들썩한 것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8.22%라는 사상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자,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시에 있는 것이 주요원인으로 꼽히면서 서울이전설이 나왔다. 지방에는 ‘초일류인력’이 없어 연금재정운용을 형편없이 했다는 논리다.지난해의 경우, ‘주식투자 고수’들이 몰려 있는 서울의 유력 투자기관들도 최악의 손실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이 논리는 맞지 않다. 언론 보도를 보면, 날고 긴다는 주식전문가들이 몰려있는 한국투자공사(서울 중구)는 지난해 -14.3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민연금보다는 성적이 다소 양호하지만 사학연금(-7.7%) 실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올 상반기 중에 결정될 국가첨단전략산업(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특화단지 지정을 두고도 ‘지방=초일류인력 부재’라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고용창출을 포함해 수조원대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할 것 없이 20여곳의 지자체가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포항(이차전지)과 구미(반도체)가 지난달 말 마감한 정부공모에 지원서를 제출했다.이차전지 분야에는 충북 오창과 울산, 전북 군산도 지원했다. 4년전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포항은 이미 이차전지 원료, 소재, 리사이클링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고,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대기업들도 집적돼 있어 초격차기술 확보에는 어느 곳보다 경쟁력이 높다. 그러나 경쟁 지자체 중에 수도권이나 다름없는 오창이 포함돼 있어 꺼림칙하다. 오창에는 이차전지 완제품 생산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과 에코프로비엠이 있다.반도체 특화단지 공모를 신청한 구미시도 이미 반도체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생태계가 완성돼 있지만, 수도권에서만 8곳(인천·용인·화성·이천·평택·안성·고양·남양주)이 유치전에 뛰어들어 불안한 상태다. 지난해 2월 제정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은 당초 비수도권 균형발전을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었으나, 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개정안을 내 놓으면서 지금은 누더기로 변했다. 법제정 당시에는 16조 3항에 “수도권 외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내용이 분명히 명시됐지만, 지금은 ‘수도권 비수도권 구분없이 관련 기업이 집단적으로 입주해 있거나 입주하려는 지역도 우선순위에 포함한다’는 새 조항이 들어가 있다. 수도권이라도 관련 생산시설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유리하도록 변경된 것이다. ‘국가균형발전 정신’이 법 개정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희미해져 버렸다.아직 게임의 룰인 채점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심사위원(국무총리 주재 첨단전략산업위원회)들이 국가균형발전이냐, 아니면 우수인력 확보와 연계된 첨단산업 집적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게 됐다. 비수도권 지자체는 첨단전략기업이 집중된 수도권과 경쟁해야 하는 한편, 지방끼리도 싸워야 하는 이중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2023-03-14

TK신공항 3월 국회통과 과연 성사될까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의 국회 국토위 교통소위 심사 일정이 오는 21일로 한 주 미뤄졌다. 그저께(13일) 최인호 교통소위위원장(민주당·부산 사하구갑)과 강대식 의원(국민의힘 최고위원·대구 동구을), 대구시 및 정부부처 관계자가 신공항 특별법 소위 상정 일정과 쟁점 조항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면서, 소위개최 일정을 당초 14일에서 한 주 미루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대구시는 빠른 처리를 위해 조기 안건 상정을 강력히 희망했지만, 이날 교통소위가 심사할 쟁점 법안이 워낙 많은데다 소위위원 간 이견이 또 증폭될 경우 피로감만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모양이다.TK 신공항 특별법을 심사할 국토위 교통소위는 21일에 이어 28일에도 개최된다. 신공항 특별법은 지난달 열린 교통소위의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정부부처와 야당의원들이 제동을 걸어 심사가 미뤄졌다. 대구시측은 그동안 신공항 특별법 통과를 위해 야당이 문제 삼았던 중추공항 명칭을 삭제하고, ‘신공항의 반경 20㎞를 주변 개발 예정지역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반경 10㎞로 범위를 축소하기로 한 바 있다. 최인호 위원장은 “그간 논란이 됐던 TK 신공항 위계·활주로 길이 관련, 기부대양여 부족분 국비 지원 관련 조항은 물론 특별법 전반에 대한 조율 작업이 이뤄졌고, 상당 부분 의견 일치를 봤다”고 설명했다. 그저께 회의에서는 특별법 조항 하나하나를 짚으며 조율작업을 했기 때문에 21일 교통소위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이 교통소위 문턱만 넘으면, 오는 23일로 예정된 국토위 전체회의에서는 여야합의 처리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TK신공항 특별법이 상임위를 통과하면 마지막 관문인 국회 본회의 의결절차가 남게 된다. 본회의 통과 시점은 ‘쌍둥이 법’으로 불리는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의 국방위원회 심사 속도와 보조를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본회의는 오는 30일로 예정돼 있어 ‘신공항 특별법 3월 국회통과’라는 어려운 숙제가 전격적으로 풀릴 수도 있다.

2023-03-14

코로나 때보다 안 쓴다… 소비 진작책 필요

고물가와 고금리 등이 가계경제를 강타하면서 “안 입고 안 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소비 위축심리가 크게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이 밝힌 1월중 소매 판매액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8월(109.4)보다 1월중(103,9) 지수가 5.03%나 떨어졌다. 소매 판매액지수는 개인 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2천700여개 기업의 판매액을 조사한 것이어서 경제 주체들의 실질적인 소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이번 조사에서 비교적 소비 감속 폭이 큰 품목은 의복, 신발, 가방 등 1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저가상품이 많았다. 감소폭도 전체 평균보다 높은 6.5%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음식료품 소매 판매액지수도 9.6%가 급락해 입는 것과 함께 먹는 것에 대한 소비도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특히 소비 판매액 기준지수가 2020년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가을 이후부터 소비가 코로나19 사태 때보다 더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올 들어 우리경제는 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적자규모도 228억 달러에 달해 지난해 연간 적자액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수출시장으로 꼽히는 중국에서의 수출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도 1%대로 전망되는 상황이어서 시중의 소비 위축이 내수경기 침체를 더 가속화 시킬지 걱정이다.수출부진 속에 내수마저 급랭할 경우 국민이 받을 경기침체의 고통이 더 커질 수 있어 정부의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 경기 진작책 마련에 나설 예정이나 물가 상승과 맞물려 대응방법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실물경제가 뒷받침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경기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게끔 정부의 원만한 내수경기 진작책 마련이 절실하다.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고물가·고금리로 서민경제가 어려우니 범경제부처가 내수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방역망 해제 시기에 맞춰 외국인 관광 유치와 쿠폰 발행 등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수경기를 진작할 묘안을 찾아야 할 때다.

2023-03-14

데이터로 바라본 사회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우리 사회의 대다수 데이터들은 주로 중앙집중형 또는 탈집중형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앙집중형 데이터 관리 구조의 요지는 권한을 부여받은 핵심 소수 또는 허브(hub)가 대다수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를 전담하는 것이다. 관리의 대상이 적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고 관리 자체도 용이해 생산 최적화된 방식의 구조라고 볼 수 있다.따져 보면 우리 사회도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에서 중앙집중형 구조를 띠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대다수의 조직 활동만 보더라도 여러 명이 동등한 의사결정을 갖는 것보다 한 명이 최종 의사결정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덜 소모적이다.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이라고 하는 그 흔한 점심 메뉴 고르는 것조차 개개인이 의사결정을 갖는 것보다 담당자 한 명이 결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생산성이 최우선시되는 산업시대에서 중앙집중형 방식은 효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앙집중형 구조로 구성되어 왔던 것이다.그러나 중앙집중형 구조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종속성이라는 아주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허브는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큰 권한을 부여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오직 허브를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는 곧 허브와 허브에 연결된 이용자 간에 큰 불평등을 야기한다. 또한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구성원들은 지나치게 허브를 의지하게 된다. 허브로의 종속은 허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주권과 정체성의 상실을 뜻한다. 생각해보면 이는 애석하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데이터는 분산형 구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분산형 구조는 별도의 허브를 두지 않고 모든 객체가 다 연결되어 데이터에 서로 접근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분산형 구조에서는 다 연결되어 있어서 이를 적용하려면 모두를 관리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널리 알려진 블록체인 기술이 분산형 구조 내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주게 되면서, 분산형 구조는 실제로 활용 가능한 것이 되었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자 정부를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들은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 구조로의 변환은 단순히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거버넌스 문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분산형 구조의 핵심은 단순한 연결성의 확장이 아니라 정보의 개방성과 평등이다. 분산형 구조 하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될 때, 소위 말하는 동등한 권리와 공정한 기회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생각해본다. 데이터가 그러하였듯이, 우리 사회도 지금보다 더 연결되어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한다면 개인에게 동등한 권리와 공정한 기회가 지금보다는 더 보장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2023-03-14

의미 있는 삶의 방향, 종오소호(從吾所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지마다 망울이 맺히고 조금씩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화창해진 날씨에 차츰 개화의 몸짓을 보이며 봄날이 성큼 다가온 듯하지만, 느닷없이 휘몰아친 비바람과 추위에 서둘러 핀 꽃들이 화들짝 놀라지는 않았을까 싶다. 궁핍의 대지를 보듬으며 돋아나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들을 시샘하는 추위가 일진광풍처럼 부산을 떨어도, 이미 봄빛의 움직임은 비단 안개를 두른 듯 아장아장 생동의 걸음마가 한창이다. 그렇게 다시 또 봄날이 시작되고 산과 들은 부풀어가고 있다.해마다 봄이면 그 자리에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메마른 땅 속에서 자양분을 찾으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꽃들은 서로 비슷하게 핀다(年年歲歲花相似)지만, 기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꽃과 잎새를 드리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꽃자리나 잎차례를 벌이는 것은 화초나 수목에게 있어선 생장의 본질이고 절정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매년 같은 꽃이 피는 것에 비해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다(歲歲年年人不同)는 대구(對句)로 인생의 무상함을 읊었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인연 따라 시류 따라 사람은 변화하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듯이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의 특장을 꽃피우게 하고 삶의 기반을 더욱 튼실히 일궈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렇듯이 화초가 꽃을 피우는 현상이나 사람이 변화, 혁신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과 궁극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보다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거개가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바대로 움직이고 일을 해야 편하고 보람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결코 그만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을 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바를 쫓아간다(從吾所好)’고 공자는 2천500여 년 전에 설파했던 것일까?그러고 보니 15년 전 필자의 첫 개인전 도록의 첫 장에 수록된 작품이 예서로 쓴 종오소호였다. 아마도 당시의 야무진(?) 마음에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바를 꾸준히 느끼고 즐기면서 몰입과 천착하리라는 다짐에서 쓰고 배치했던 것 같은데, 과연 어느 정도로 좋아하는 바를 쫓고 누리며 의미를 다져왔는지는 미지수이다. 다기(多岐)한 삶을 살면서 어찌 좋아하는 것만 쫓고 추구할 수 있으랴만, 생각과 마음이 이르고 몸이 흔쾌히 따르는 일과 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긴요하고 가치로운 시도이다.

2023-03-14

‘더 글로리’와 학교폭력의 계급화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3월 10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2부가 공개되었다. 주로 로맨스물의 주연을 맡아 왔던 송혜교의 파격적 이미지 변신과 개성 넘치는 악역·조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한번 시청을 시작하면 끝을 보기 전에는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성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복수를 테마로 삼는 이야기를 복수극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복수극은 멜빌의 소설 ‘백경(모비 딕)’일 것이다. 작중에서 에이허브 선장은 과거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간다. 결말에서 그의 배는 모비 딕에 의해 박살나고 복수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복수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그런데 요즘의 복수극은 마치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개운한 복수의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장르가 되었다.‘더 글로리’ 1부가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조력자들을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2부에서는 본격적인 복수극이 펼쳐지며 악역들이 하나씩 몰락해 간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문동은의 복수가 성공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복수가 얼마나 통쾌하게 이뤄질 것인지를 기대하며 스토리를 따라간다. 즉, ‘더 글로리’의 시청자들에게 복수의 실패는 곧 ‘고구마’같은 답답함인 것이다. 왜 그럴까?이 문제는 복수의 대상이 누구(무엇)인지와 관련이 깊다. ‘백경’의 복수 대상인 흰 고래는 자연에 속한 존재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이 통하는 대상이 아니므로 선장의 복수심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반면 ‘더 글로리’에서 복수의 이유가 되는 학교폭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발생한다. 작중에서 박연진(임지연 분)은 문동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즉, 박연진이나 전재준(박성훈 분), 이사라(김히어라 분)처럼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모두 갖춘 상류층들에게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는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은 문동은이나 윤소희(이소이 분)처럼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괴롭혀도 괜찮다고 믿는다. 설령 들키더라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무마할 수 있다고.현실에서도 학교폭력은 힘센 아이가 아니라 계급적 우위에 있는 아이가 저지르는 일이 되었다.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학폭 썰(사연)’들을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옷차림이나 꾸밈새가 남루한 아이들이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아이들은 교실에서부터 자신의 계급을 자각하고, 상위 계급에 굴종하는 법을 학습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 사회의 근본 구조를 좀 더 날것의 방식으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집착하는 가치가 ‘능력주의’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학교폭력을 단지 개개인의 일탈로 볼 것이 아니라, 부의 편중과 교육의 계급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2023-03-13

정확한 방향 설정과 과감한 실행만이

김규인 수필가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들어서는 정권마다 정책을 펴고 돈을 퍼부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매년 수십조 원을 퍼부어도 출생률은 점점 더 줄어들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한다. 지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출생률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이러한 추세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낮은 출생률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각국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었다. 프랑스는 GDP 5%에 이르는 가족수당과 대학까지 학비가 무료이고 볼리비아는 12개월, 에스토니아는 85주의 100% 유급 휴가를 준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0세의 아이를 둔 가정에는 매달 70만 원의 현금을, 1세가 되면 35만 원을 준다. 프랑스는 획기적인 정책의 성공으로 감소하던 출산율을 되돌린 성공적인 사례이다.저출산 문제는 지금까지 단편적인 문제 해결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정책의 과다로 더욱 치솟은 아파트 가격, 여성의 경력 단절과 보육 시설의 부족, 사교육비의 지속적인 증가와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회로 진출하지 못한 청년은 움츠러들고 취업 후에도 높은 집값에 절망한다.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청년이 결혼하여 살아갈 주거문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출산과 육아를 위한 환경의 미비, 아이를 돌보는 여성의 경력 단절, 낳은 아이를 가르치는 사교육비, 비정규직이 득실거리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월급을 모아서는 집을 살 수 없는 아파트값, 상대적인 빈곤만을 느끼게 하는 사교육비, 마음 편하게 낼 수 없는 육아 휴직, 이에 따라 가까스로 얻은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의 경력 단절, 언제나 비정규직을 헤매는 청춘들은 혼자 살기도 힘들어한다. 그들에게 누구나 원하는 평범한 일상은 꿈으로만 머문다.아파트 분양 원가를 낮추어 거품으로 가득한 아파트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 임대 주택을 늘리고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여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장기적으로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무상교육 도입으로 풀어야 한다. 산업체가 일하기 좋은 여건 조성을 위해 정부는 유인책을 마련하고 산업체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여야 한다. 정부의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정책을 쏟아내어서는 안 된다. 저출산 관련 문제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흩어진 저출산 관련 정책을 모아 모든 부서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극복한 프랑스는 우리의 좋은 모델이 된다. 지금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국가적으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주저앉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방향의 설정과 과감한 실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프랑스가 해결한 문제를 우리가 못 할 것은 없지 않은가. 가정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2023-03-13

경산 갓바위, 그 후덕하고 영험함

팔공산 관봉에는 머리에 보개(寶蓋)를 쓴 불상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산새를 내려다보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들 사이로 크고 웅장한 몸체가 앉아있는데, 얼굴은 무뚝뚝하지만 손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그린다. 머리 위에 넓적한 바위로 만든 보개를 이고 있어 마치 갓을 쓴 것만 같다. 과거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부서져 내린 보개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 석가여래좌상은 흔히 ‘팔공산 갓바위’라 불린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투박한 생김새에 비해 여느 불상보다 마음만은 후덕하다. 절실하게 빌면 한 가지의 소원은 반드시 이뤄준다고 전해져 옛날부터 사람들이 곧 잘 찾아오곤 했다.농사가 중심이었던 농경사회에서는 비가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 왔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1960년대 이후에는 수능시험을 잘 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지금도 부처님 오시는 날이나 입시철이 되면 산 아래까지 사람들로 북적여 장사진을 이룬다. 그만큼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너무 쉽게 소원을 이뤄주시면 신도들이 버릇 없어진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니 얼마나 영험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겠다.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사여래불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9세기쯤 몸체가 만들어지고 고려쯤에 팔각형의 보개를 따로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실 미륵불인지 약사여래불인지 아미타불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9세기는 약사여래불이 유행하고 많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팔공산 갓바위 불상은 약합을 지니지 않았으니 약사여래불로 보기는 힘들다.또 1821년 ‘선본사사적기(禪本寺事蹟記)’에서는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조성했다고 하며, 1960년까지만 해도 ‘갓바위 미륵님’·‘영험한 미륵님’으로 불렸다고 한다.하지만 항마촉지인과 불리던 이름만으로는 미륵불이라고 확정하기도 힘들다. 학자들은 통일신라 때 아미타불로 만들어졌다가 고려 때 미륵불로 불리다가 현재는 약사여래불로 개칭된 것이라 설명한다. 어떤 불상이 되었든 과거에도 현재에도 후덕한 불상이란 이미지는 확실한 것 같다.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팔공산 갓바위는 불에 구워져도 소원을 들어주는 불상으로도 알려져 있다.지금은 뽀얀 화강암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인근 주민들에게 새까맣게 타버린 불상의 기억이 남아있다. 이것은 경산의 진취적·역사적 성격이 가미된 독특한 기우제에서 비롯된다.팔공산 갓바위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고 일주일이 지나도 효험이 없으면 불단에다 생돼지 피를 바르고, 인근의 솔가지·장작 등을 불상 주변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5m나 되는 석가여래좌상을 검게 태우는 큰불은 머리 위의 보개, 팔각의 판석을 부스러트렸다. 사람들은 용신이 부처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비를 내린다고 굳게 믿어왔었다. 비를 내리게 하려고 불상에 불을 놓는 이러한 호전적인 성격은 경산의 역사와 설화에서도 그 면면을 찾아볼 수 있다.경산에는 특히 용 설화가 많이 남아있다.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이 계모의 구박을 받아 집을 떠나게 되고 금강산이 아닌 경산의 용성면 배남산에 터를 잡는다. 이곳에서 10명의 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9명을 승천시키고 1명은 죽는다. 딸은 동해 용궁으로 돌아가고, 아홉용은 봄에 승천하고 가을에 하강하여 지역의 물을 다스린다.’ 김종국 박사는 당시 경산지역의 역사와 설화를 비교 연구하면서,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은 경산에 파견나온 김유신 군수로, 계모의 구박은 백성의 요구로, 경산의 용성면은 신라의 최전방으로, 10명 중 9명은 살고 1명은 죽은 것은 전쟁 중에 전부 살 수는 없던 현실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본래 불교의 발원지인 인도에서도 용은 부처를 수호하는 존재였으며, 중국에 전파되면서는 중국 전통 용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수용되었다.물이 많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믿어왔던 전통적인 용 신앙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더욱 영험함을 획득하게 되고 농사와 관련된 비를 다스리는 신으로서 추앙받게 된다. 팔공산 갓바위 기우제는 하늘과 부처와 용신 모두에게 기원하는 경산의 독특한 제라 볼 수 있다.현재 큰불을 놓던 지역만의 기우제는 사라져 팔공산 갓바위 불상이 검게 물들 일은 없다. 그러나 전국에서 찾아온 이들로 북적이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금도 여념이 없는 불상은 산 정상에서 무뚝뚝함을 가장한 채 앉아있다.이만하면 여느 불상 중에서도 으뜸가는 영험함과 후덕함을 지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팔공산 갓바위는 지금도 사람들의 소원으로 넘쳐난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3-13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작가의 눈

원고지에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형상화한 해당 단행본의 표지. 우리에게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얼굴 앞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눈은 인간이 향하는 앞의 길만을 보도록 제약한다. 우리 인간은 어딘가 거리를 걷고 있으면서 동시에 걷고 있는 우리를 볼 수 없는 숙명적 제약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가 속해 있는 시대나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애초에 역사나 통계처럼, 내가 속해 흘러가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가늠하거나,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불투명한 군집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발달해왔던 것은 ‘자기’를 벗어난 외부 세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물론,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내 속처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가늠하고 짐작할 방법들은 존재한다. 인간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거나, 누군가 쓴 글을 읽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이 담긴 각자의 말과 글을 듣고 읽다 보면 우리는 ‘자기’를 벗어나 어떤 타인들의 집합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각각을 둘러싸고 있는 외로움도 조금은 해소된다. 과거의 작가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통해 받았던 인상들을 글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비록 SNS시대에 작가의 그런 역할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자기를 둘러싼 사회를 독특하게 해석하는 ‘작가’의 자리는 다소 변형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를 벗어난 타인의 집합으로서의 사회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작가 박태원이 탄생시킨 ‘구보씨’는 고작해야 대학노트를 끼고 식민지 시대 경성을 활보하는 작가의 페르소나였지만, 그것이 이후 최인훈, 주인석 등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되면서 ‘작가’라는 존재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은, 구보씨가 전하는 별것 아닌 세상이 모두 외로운 섬처럼 놓인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응당 그렇게 외따로 떨어진 그 섬들로 편지를 발신해야 한다. 그것이 별것 아닌 메시지라고 하더라도.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조금 더 주목해볼 작가는 바로 빙허 현진건이다. 대구 계산동에서 태어난 빙허는 그 당시 많은 지식인이 그러했듯 일본에 유학했다가 돌아와 문학 창작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비록 ‘운수 좋은 날’의 작가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식민지 초기 한국에서 가장 예민한 눈을 가지고 사회의 변화를 관찰했던 작가였다. 그가 처음 썼던 ‘희생화’라는 짧은 단편은 비록 당시 문단의 중진이었던 황석우에게 혹평을 받긴 했지만, 근대적인 연애에 눈뜬 누님을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적 습속을 예리하게 잡아낸 작품이었다. 이어 계속 발표했던 ‘술 권하는 사회’나 ‘타락자’ 등과 같은 작품도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는 당시의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단편이라는 완결된 형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눈을 보여주는 한국 최초의 사례였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현진건이 보여주는 사회의 ‘단편’들은 우리에게는 100년이 지난 옛 사회의 모습이지만, 또 그것이 그렇게 지금의 사회에서 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만히 읽고 있다 보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삶의 고단함과 모순,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눈뜸과 허위의식 등이 새겨지듯 들어온다. 가끔 스마트폰 속 ‘사회’로부터 ‘자기’가 조금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땐 사회에 대한 작가의 눈이 담긴 소설을 권한다. 조금은 위로가 된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3-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