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의 처절한 패배 이후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는 변화 조짐이 약간 보인다. 대통령은 강서구 패배 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정치에서 이념보다는 민생을 위해 정친인들이 현장으로 달려가길 촉구했다.
정치 혁신을 위해 파란 눈의 인요한씨를 혁신 위원회의 책임자로 맡겼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6개월 동안 이념을 앞세운 정치가 국정의 기조가 되고 혼란을 자초한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대통령의 보수권 확대 코스프레 정도로 알았지만 그 강도는 점차 세었다. 정당 간 두 번의 정권 교체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이 나라 정치에서 이념 전쟁은 시대에 뒤진 정치행태이다. 자유주의 명분의 강경우익적인 갈라치기 정치는 극한 대결의 정치, 정치 실종시대를 자초하였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대를 탈피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번 강서구 보선의 참패는 이를 잘 입증한다. 대통령의 탈이념 정치야말로 국정 기조 변화의 첫 단추이다.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이를 따르는 기회주의적 세력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이 같은 발언은 윤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국회뿐 아니라 장외에서도 정치 현안에 대한 정쟁이 날로 증폭되었다. 대통령은 야당 이재명 대표의 대화 제의를 피의자 신분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언론과의 원만한 소통마저 거부하고 있다. 후보 시절 공약했던 출근길 도어 스테핑도 공식적인 기자회견도 사라져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의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정부나 집권당의 인사들은 대통령의 심기만을 살피는 수직적 관계만 형성되었다는 비판이 따랐다. 독립운동 영웅 홍범도 장군의 이미지는 여지없이 실추되었다. 정부의 협치는 사라지고 진영 정치, 패거리 정치로 살벌한 전투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야당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민생 정치는 사라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고 있다.
대통령은 내치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이념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프리드만의 자유주의를 수차례 강조할 때도 보편적 ‘자유’ 확산으로 이해하였다. 자유주의 진영의 철통같은 단결을 통해 공산전체주의를 막자는 것은 냉전시대에 자주 들었던 귀에 익은 소리이다. 자유진영에 바탕한 한미 안보 동맹은 역사적인 전통이며 우리의 불가피한 현실이다. 한·미·일의 외교적 결속은 북·중·러의 역 삼각 동맹 결속으로 다시 냉전 체제를 초래하는데 문제가 있다. 한·미·일 가치 동맹은 안보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경제적 실용외교에도 상충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간 졸속, 굴욕 외교라는 비난 속에서도 한일관계를 급박하게 정상화하였다. 정부의 강제 징용 보상, 후쿠시마 오염 수의 해결 방식은 일본 정부를 옹호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그러함에도 일본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각료의 신사참배는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이념외교는 현대의 실용외교 다원외교에도 역행한다.
정부의 이념 정치에는 뉴라이트 식 사고와 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제의 조선반도 식민화계획은 요시다 쇼인의 명치유신의 결과이다. 그러나 한국의 뉴라이트 인사들은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까지 옹호하고 있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당치 않는 주장까지 동조한다. 이들은 일제의 조선 침범은 당시 왕권의 무능, 조선인들의 미개성에 기인한다는 주장에까지 동조한다. 정부의 어느 각료는 매국노 이완용의 친일적 입장까지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이 연장선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진 쿠데타의 불가피성까지 옹호한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발전 집념과 그 성과는 인정할지라도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함은 역사 인식의 엄청난 오류이다. 대통령이 일부 뉴라이트 계열의 시대착오적 역사 인식을 국정 기조로 삼는다면 불행은 계속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정 기조를 바꾸려면 대통령부터 이념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문제는 집권당과 대통령실이 이러한 시대에 뒤진 이념정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데 있다. 집권세력의 독선과 오만은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을 가로막는 기제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국정의 중간평가인 내년 4월 총선 결과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현 정부의 국정동력은 추동력을 잃고 대통령의 네임덕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강경 보수 우익의 국정기조를 민생정치로 탈바꿈해야 한다. 새로이 출범한 당 혁신기구는 이러한 제안을 과감히 할 수 있을까. 혁신기구 구성원들의 성향으로 볼 때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 양당 대표 회담이든 대통령과의 3자회담이든 대통령은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 대통령의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이 사법 리스크 해소용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 정치권은 이념보다는 민생 정치를 위한 대화를 복원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