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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옐로도 화이트도 블루도 아닌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애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지인이 그동안 자신의 성격 유형이 7번인 줄 알았다가 전문가 상담 결과 2번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지난 몇 년간 자신을 잘못 알았다는 자괴감이 크게 밀려왔다고 전해왔다. 애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 유형을 아홉 가지로 분류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이 활용되는 성격 검사 방법이다.애니어그램 강사들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성격 유형 번호로 사람을 규정짓지 말라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나는 몇 번, 너는 몇 번 하면서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판단하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가끔 어떤 유형이 열등하거나 우월한 유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론에서 가장 성숙한 인격은 이 아홉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많은 명상 지도자들이 ‘자아’를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자아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굳이 불교의 ‘무아’를 들먹이지 않아도, 질문 몇 개만으로도 자아라는 나의 본질은 없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 우리가 ‘자아’의 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차라리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다면적이고, 그 다면성 하나하나도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논픽션 작가 브래디 미카코의 두 권짜리 책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일본인인 저자가 영국 사람과 결혼하여 영국에서 살면서 아들을 낳아 키우는 이야기이다. 제목은 혼혈인 중학생 아들이 백인이 주류 사회인 영국에서 자기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인종 차별 사건을 통해 겪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동양인으로 규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백인이 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동양인이기도 하고 백인이기도 한 자신의 상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약간 블루’라고 했다가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린’으로 바꾸는 모습 또한 정체성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가 아들의 변신을 응원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아들의 유연한 사고가 작가의 지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나희덕의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처음에는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가, 조금 후에는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 나는 그 나무를 보고 알았습니다. /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라고 한다. 처음에 시인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복숭아꽃들이 부담스러워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눈부실 만큼 다양한 복숭아나무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다.많은 사람이 ‘자아’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하나의 색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고, 다양한 인종, 취향, 삶의 방식 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다시 보면, 내 안에도 무수한 색이 있고, 세상 역시 그렇다. 그 다양성은 삶을 눈부시게 만든다.

2022-12-25

포항의 미래 걸린 ‘배터리 특화단지’ 지정

포항시와 지역 정치권이 정부가 새해에 공모하는 ‘이차전지(배터리) 특화단지’ 지정을 받기 위해 여론전에 나섰다. 포항출신 김병욱(남구·울릉군), 김정재(북구) 의원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한무경 의원은 지난 22일 경북도, 포항시와 공동으로 국회에서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경쟁력 강화 포럼’을 열었다.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 여론조성과 배터리 산업 동향 파악, 국내 전문가들의 정책 자문을 받기 위한 자리였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이차전지·전기차 제조 과정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것이 우려된다”고 전제하면서도 “포항 지역은 이에 대응할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지난달 24일에는 특화단지 포항 유치를 위해 ‘이차전지 산학연관 혁신 거버넌스’를 출범시켰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 김병훈 에코프로 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기업(포스코케미칼, GS건설 에네르마, SM벡셀, LG BCM 등 9개사), 학교(포항공대, 경북대, 영남대, 금오공대 등 7개), 연구소(경북테크노파크, 경북하이브리드부품연구원,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 8개)가 주요 멤버다. 이차전지 특화단지는 기업·연구·교육시설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 생태계가 조성돼 투자·기술개발이 정부주도로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공모를 통해 내년 상반기에 최종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포항시는 현재 이차전지가 핵심부품인 테슬라 전기차 공장 유치를 위해 시청내에 별도로 유치부서를 신설했다. 지난 2019년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포항에는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같은 세계적 기업이 들어서면서 그동안 이차전지 원료, 소재, 리사이클링 분야에 4조원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새해에 포항시가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자원순환 클러스터 조성사업비’로 국비 166억원을 확보한 것은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과 테슬라 기가팩토리 유치의 희망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여진다.

2022-12-25

대학입시와 지적 호기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했고,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알고 싶은 욕망, 지적 호기심(好奇心)이다. 한국동란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는 네팔의 산악인 텐징 노르가이의 도움을 받아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다. 그들보다 30년 앞서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가 정상 수백 m 앞에서 실종된 조지 멀로리(1886-1924)는 기막힌 명언을 남긴 사람이다.“산이 거기 있으니까.”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나는 이 말을 다른 형태로 변용한다. “코끼리나 도마뱀, 공룡이나 악어, 침팬지나 개구리가 산소통 짊어지고 에베레스트에 오른 적이 있던가?!” 왜 인간은 극한의 고통을 참으며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의 정상에 오르려 하는가?! 그것은 하나의 이유로만 설명할 수 있다. 궁금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이고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 등반가의 마음은 또 어떤지. 호기심은 진화 사다리의 정점에 인간을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직립보행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과 높아진 시야, 언어능력 이외에도 인간은 지평선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동아프리카 지구대를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시기를 유발 하라리는 7만년 전, 다니엘 밀로는 5만8천년 전, 홍윤철은 5만년 전으로 상정(想定)한다. 그들이 활용하는 고고학 자료와 문건이 상이하기 때문이다.호모사피엔스의 최초 이동이 오늘날 지구촌의 초기 역사를 결정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바나에 남거나, 유럽으로 넘어가거나, 아시아와 호주 쪽으로 이동하거나,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거나! 이런 분기점의 차이는 사바나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새로운 땅과 물에 대한 사피엔스의 거역할 수 없는 지적 호기심에서 발원한다.호기심을 자극하는 원천은 인간의 뇌(腦)다. 뇌는 인간 몸무게의 2%를 차지하지만, 기초대사율 비중은 20%에 이른다. 여느 신체 기관보다 월등한 에너지 소비량을 자랑하는 것이 뇌다. 뇌가 활발하게 작동되어야 인간이 자격이 생겨난다는 얘기다. 인류의 생존비법이자 진화 사다리 정점에 도달한 근본적인 동력이 뇌에서 나왔다는 증거다. 그런데 요즘 청춘들은 뇌를 본래의 기능에 맞춰서 쓰지 못하는 듯하다.생각하는 능력으로 여타 생명체를 압도한 인간이 21세기 시점에 스스로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나의 조국에서 강력하게 현현하고 있으며, 책임소재의 상당 부분은 대학입시에 있다. 독서와 사색, 글쓰기와 토론에 기초한 교육 대신에 암기와 찍기 능력 향상을 목표하는 수능은 폐지되어야 한다. 중고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말살하고 성적순으로 서열화를 강요하는 악랄한 대입제도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자라나는 청춘들에게 자유롭고 활달한 상상력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대입제도의 도입이 시급한 시점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분발을 새삼 촉구한다.

2022-12-25

대구경제, 지역내총생산 또다시 전국 최하위

통계청이 지난주 발표한 ‘2021년 지역소득’ 통계에 의하면 대구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또다시 전국 꼴찌를 차지했다. 경제가 단번에 좋아질 리는 없지만 약골의 대구경제가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전국 지역내총생산은 2천76조원으로 전년보다 6.8%인 132조원이 증가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이 1천97조원으로 전체 절반이 넘는 52.8%를 차지했고, 대구는 61조원(2.9%), 경북은 113조원(5.4%)으로 조사됐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전국 평균이 4천12만원으로 집계됐으나 대구는 2천549만원으로 전국 최하위다. 울산(6천913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서울(4천965원)보다 2천여만원이 낮았다.1인당 개인소득은 대구 2천105만원, 경북 2천68만원으로 전국 평균 2천222만원에 두 지역 모두 미치지 못했다. 대구는 전국 17개시도 중 10위, 경북은 15위다.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수도권으로 경제가 집중되고 있다. 인구감소와 소멸위기를 걱정하는 지방경제에 대한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문제는 내년도 경제다. 경제단체는 내년도 우리경제 성장 전망치를 1%대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고물가, 무역수지 악화 등으로 올해보다 더 나쁠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와 경북 등 지역단위에서 어떻게 위기에 대응할 것인지 걱정이다.대구는 집값 폭락 등 부동산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고금리 등의 여파로 시장경기도 싸늘하다. 자영업을 경영하는 사업자의 걱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취임하면서 전국 꼴찌의 대구경제 부흥을 공약했다. 홍 시장은 첨단산업과 대기업 유치 등으로 지역경제 살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경제는 단체장의 노력으로 단번에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도 없다. 지속적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새해 경제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국가는 물론 단체장과 지역경제계 모두가 더 분발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2022-12-25

도시숲

우정구 논설위원 한 도시가 도심 내 얼마나 많은 녹지공간을 확보하느냐는 것은 그 도시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중요 잣대다. 또 선진도시로 평가받는 기준이 된다.고도화되고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 속에 자연친화적 환경으로 돌아가려는 인간 본능적 욕구도 강해지고 있지만 도심의 녹지공간만큼 현대인의 건강과 정서 함양을 도울만한 수단도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선진국일수록 도심숲에 대한 관심이 크고 도시의 녹지공간도 더 많이, 더 잘 관리되고 있다. 도심의 허파로 불리는 뉴욕의 ‘센트럴파크’ 공원은 세계적으로 대표되는 도심숲이다.바쁜 일상에 시달리는 뉴요커들이 즐겨찾는 휴식공간이자 안식처며 관광명소다. 빠른 도시화 움직임에 대응해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에 만들어진 센트럴파크는 여의도 면적의 15배다. “도심에서 자연으로 최단시간 탈출”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품고 만들어진 공원이다.“만약 맨해튼의 중심부에 큰 공원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5년 후엔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라는 설립 배경의 경고처럼 이 공원은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도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충분한 역할을 한다. 센트럴파크가 뉴욕의 허파로서 뉴욕의 명성과 주민 삶의 질을 높였다는 사실 하나로써 도시숲의 중요성은 입증됐다.연구조사에 의하면 도시숲은 여름철 온도를 3∼7℃ 낮춘다. 버즘나무 가로수 한그루가 15평 에어컨 5대를 5시간 가동하는 효과를 가진다고 했다.포항시 철길숲이 산림청 주관의 대한민국 대표 모범도시숲으로 선정됐다. 영국 KBT 시행 녹색깃발상과 UN해비타트 주관 아시아도시경관상에 이은 연속 쾌거다. 포항시의 도시품격을 높인 성과로 자랑해도 좋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2-25

예수 탄생의 의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성탄절은 우리 고유의 명절도 아니고 국경일도 아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관공서의 공휴일로 정했던 것을 정부수립 후인 1949년에 정식공휴일로 지정했다. 당시 국민들 중에 기독교인의 수가 5%도 안 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무리한 처사였다.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와의 형평성 논란 끝에 1975년에는 석가탄신일도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예수탄신일과 석가탄신일이 함께 공휴일인 나라가 되었다.2021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수는 개신교(20%)와 천주교(8%)를 합해 28%라고 한다. 국민의 70% 이상이 기독교인이 아니고, 불교신자도 11%라고 하니 어느 쪽도 국가를 대표할 만한 종교라고는 할 수가 없다. 불교의 경우 현재의 신자 수는 적으나 오랜 세월 국교였던 역사가 있으니 양대 종교로서의 균형이 크게 기운 것은 아닐 터이다. 아무튼 그 어느 쪽 신자도 아닌 사람들도 성탄절이나 석탄일을 공휴일로 정한 것에는 별로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성탄절이 기왕에 국가적 축제일로 지정이 됐으니, 비신자라도 한 번쯤은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수는 싯다르타, 공자,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릴 만큼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유럽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배적이었고, 지금도 25억의 신자들을 가진 세계 제1의 종교다. 예수는 기독교인들 신앙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자 성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만큼 인문학적 교양을 위해서라도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예수가 어떤 인물인지는 기독교 신약성서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예수의 행적에 대해 보고들은 바를 기록한 것을 4복음서라 한다. 그 중에서 마가복음서는 35쪽 분량으로 주로 예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다. 예수 사후 베드로와 동행하면서 그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으로 보인다. 예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산상수훈으로 일컫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를 읽으면 예수의 핵심 사상을 알 수가 있다. 여기까지가 최소한의 상식이고, 관심이 가는 사람은 다른 부분도 읽어보면 될 것이다.연말과 성탄절을 앞두고 조금은 들뜨고 한편으론 어수선한 분위기다. 얼마 전 이태원참사의 충격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고 경제사정도 좋지를 않아 마냥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에 따라 성탄절을 맞으면 될 테지만,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도 올해는 예수의 탄생이 이 시대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태원참사가 주는 교훈도 그렇고, 무슨 명절이든 축제든 우선은 그 의미부터 새겨보는 것이 문화인다운 태도라는 생각이다. 예수가 전 인류의 스승이듯 성탄절도 기독교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는 것이 공휴일로 정한 취지일 것이다. 이번 성탄절은 국민 모두가 좀 차분하게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2022-12-22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윤영대 수필가 하얀 눈발이 설핏 다녀간 동지(冬至)도 지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분위기 속에 도심 거리와 바닷가의 가로수에 입혀진 꼬마전구 옷이 찬란하게 반짝이며 천사와 함께 내려온 은하수 같지만, 나무들은 밤새 시민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라 잠을 잘 수도 없겠다.전국 17개 도시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져 시민의 기부금으로 따뜻해지며 100도를 향해 올라가는 중이니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한 ‘희망 2023나눔 캠페인’에 참여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으로 사랑의 열매를 키워나가자.코로나 열병에 지치고 대형 참사에 침체된 마음을 치유해주기 위해 문화예술 행사도 많이 열리고 있다. 포항문예회관에서는 오페라 ‘토스카’가 열려 많은 시민의 열광을 받았고 연말에는 가족 뮤지컬 ‘피터팬’도 계획되어 있다. 성탄절 전야에 경쾌하고 맑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마다 울리게 되면 집안에 꾸며둔 크리스마스트리에는 빨간 모자의 산타 인형이 저물어가는 한 해의 따뜻한 사랑을 선물해 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각자가 산타클로스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라이온즈 협회 등 많은 사회단체나 기업 등에서 매년 해 오고 있는 이웃돕기 활동으로 사랑의 연탄 나누기와 쌀 나눔 행사 등을 통해 홀몸 노인이나 취약계층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연말의 축복이다.이번 성탄절이 일요일이 되고 보니 국경일에만 적용되는 대체공휴일을 석가탄신일과 함께 지정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국민 휴식권 확대, 내수 진작과 함께 종교계의 요청도 있는 모양이다. 각급 학교에서도 따뜻한 마음의 행사가 행해지고 있어 엷어져 가는 듯한 사제 간의 믿음과 사랑의 온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행스럽다. 포항 시내엔 ‘산타 버스’도 다닌다. 차 안에는 색색의 종이와 장식물로 예쁘게 꾸미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운전기사가 친절한 인사로 맞으며 한 해를 바쁘게 마무리하려는 마음을 밝게 한다. 이러한 작고 착한 일들이 쌓인 덕분인지 ‘내 삶이 즐거운 복지희망 특별시’를 꿈꾸는 포항시가 다양한 복지 서비스 사업 분야 평가에서 우수평가를 받아서 우수지자체로 선정되어 복지 활동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 것은 참 잘된 일이다.올해도 대한결핵협회의 크리스마스씰이 나왔다. 마침 월드컵 16강에 오른 우리의 축구 대표 손흥민 선수를 그린 10장 1세트가 3천 원이지만 사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는 것이다. 요즘 손편지를 잘 안 쓰는 풍조이지만 연말연시 연하장이나 카드를 보낼 때 붙여 보내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 즉, 매일 50여 명이나 발생한다는 불명예를 씻어주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도 많은 기금이 모여 국내외 결핵 퇴치에 도움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또 길모퉁이 어디에선가 따뜻한 종소리에 끌려 가보면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가 걸려있다. 이 거리 모금 통에 지폐 한 장을 넣어주면 마음도 조금 행복해진다.이렇듯 주위의 다양한 퍼네이션, 즉 ‘재미(fun)와 기부(donation)’를 함께 찾아내어 일상생활 속에서 재미있고 즐겁게 나눔을 생활화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해 본다.

2022-12-22

집행부와 의회의 힘겨루기

홍석봉 정치에디터 #1. “첫 출발부터 좌초됐다” “대구시 신청사 용역 5건 모두 보류, 더 이상 논쟁 없었으면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최근 언급이다.대구시와 대구시의회가 대구시 신청사 건립 사업을 두고 맞부딪혔다. 대구시는 최근 3년 전 시민평가단 회의 등을 거쳐 마련한 신청사 사업계획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의회는 130억 원의 내년도 신청사 설계용역비를 전액 삭감하며 맞불을 놓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즉각 신청사 용역사업 5건을 모두 보류했다. 시청 내 관련 조직도 없앴다.홍준표 시장의 일부 신청사 부지 매각안이 발단이다. 신청사 건설 재원을 마련키 위한 방안이었다. 달서구 출신 등 일부 시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시의회의 관련 예산 전액 삭감과 관련부서 폐지 및 용역 보류로 이어졌다. 시청사 건립사업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최악의 경우 무산 가능성도 제기된다.대구 시민의 숙원 사업이 예산 조달 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제대로 논의조차 못한 채 무산 위기다. 지역간 치열한 유치경쟁과 갈등, 공론화와 시민 합의까지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신청사 건립안이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판이다. 소통부재의 현장이다.#2. 지난 15일 대구 중구의회의 여성의원 3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구청 직원들이 예산 감액을 이유로 욕설하고 공포감을 조성했다”며 구청 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틀 전 예결특위 최종 심사 직후 간부 공무원들이 회의장에 들어가 “예산을 다 깎으면 일하지 말라는 말입니까”라며 위협적인 태도와 고성으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주장했다.내년도 중구청 예산안 심사가 단초다. 중구의회는 구청이 당초 제출한 예산안 3천25억 원 중 58억 원을 삭감했다. 삭감 예산 중 52억 원은 구청장 핵심 공약 사업 예산이다. 중구의회는 해당 관광 사업의 실효성이 부족했다고 했다. 중구청은 예산 삭감을 수용할 수 없다며 소명 기회를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폭력 시비로 번지며 대화가 단절됐다. 뒤 이어 의회 의장 등 구의원 4명이 ‘집행부 폭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혀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폭력’을 주장하는 구의원들의 예결위 복귀도 촉구했다. 공무원노조는 예산 갑질을 넘어 폭력이라며 가세했다.중구청의 경우 대규모 예산 사업에 대해 집행부가 사전에 구의회와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이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 후과다. 서로 감정 싸움만 벌이고 있다.위 두 사례는 대화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이 요인이다. 소통부재다. 집행부와 의회가 힘겨루기를 하며 서로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몫이다. 집행부는 의회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원칙만 내세우면 행정 만능주의로 흐르기 쉽다. 의회는 집행부가 머리 숙이고 대접해 주길 바란다. 서로 맞부딪히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집행부와 의회는 행정의 양축이다. 집행부는 의회의 기능과 권한을 인정하고 의회는 집행부가 행정을 잘 펼 수 있도록 협조하고 감시하는 것이 그 주된 역할이다. 서로 힘을 겨루면 주민만 죽어난다.

2022-12-22

소득 4만달러 시대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는 유럽의 룩셈부르크다. 1인당 국민소득 11만7천달러로 우리나라 3배다. 1990년 이후 30년 동안 연속 1위를 차지한 나라다.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 둘러싸인 이 나라의 인구는 63만명. 면적은 제주도의 1.5정도 되는 소국이다.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를 보면 대개 국토가 작고 인구가 적은 소국이 많다. 아일랜드, 스위스, 노르웨이 등이 그렇다.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면서 잘사는 나라는 미국이다.2022년 기준 국가별 국민소득은 룩셈부르크가 1위, 미국(7만5천달러)은 7위, 일본(3만4천달러) 28위, 한국(3만3천달러) 30위다.룩셈부르크는 기업에 대한 세금을 낮춰 매출이 많은 해외의 유수 기업 본사가 이곳에 몰려있다.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고 금융업이 잘 발달된 나라로 알려져 있다.반면에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들은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부룬디는 1인당 소득이 272달러로 세계 194위로 꼴찌다. 세계적으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다.윤석열 정부가 2027년에 1인당 국민소득을 현재 3만4천달러에서 4만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만약 달성이 된다면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3만달러 시대를 넘어선지 10년만이다.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글로벌 경제위기를 넘어 4만달러 시대가 열린다니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가 암울하고 불과 5년 후 4만불시대가 열린다고 내 주머니 경제 사정이 확 좋아질 것으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인소득 양극화와 지역간 성장 불균형 등 국가적 난제가 풀려야 개인이 느끼는 소득에 대한 만족감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22

포항시 資産 100% 활용해 ‘50만도시’ 회복을

포항시 인구가 지난 6월말 50만명 아래로 떨어진 이후 회복될 기미가 없어 안타깝다. 그동안 포항시 인구 50만명이 갖는 정치·경제적인 상징성은 컸다. 경북도는 인구 50만 도시를 보유하고 있는 광역단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포항시도 대도시라는 타이틀로 기업 유치나 국책사업 공모 등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사실 인구감소 문제는 포항시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지난해 말 합계출산율이 0.81명인 점을 고려하면, 수도권을 제외하고 국내 모든 지자체가 겪는 홍역이다. 부산이나 대구 같은 대도시도 인구유인정책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포항시도 언급했지만, 이제 인구 감소 자체는 국가적인 현안이어서 지자체별로 경쟁하듯 인구정책을 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졌다. 최근 16년간 정부가 2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급락하고 있다.정부가 최근 인구 감소지역에서 정주 인구를 늘리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생활인구’ 개념을 통해 각종 지역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주목된다. 생활인구는 새해부터 시행되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도입되는 용어로, 사람 수를 주민등록상 ‘거주인구’가 아니라 ‘생활인구’로 계산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통신사의 위치정보를 활용, 월 1회만 체류해도 생활인구로 분류해 각종 사업추진에 활용한다고 한다.비수도권 모든 지자체는 요즘 낮은 출산율에다 청년층 수도권 유출 등으로 ‘인구절벽’ 현상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포항시도 이제 인구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생활인구 개념 도입과 함께 자료에 기반을 둔 과학적인 인구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인구정책의 핵심은 일자리와 사회·경제적인 인프라 구축이다. 포항은 포스코라는 대기업과 영일만항, 미래성장산업(배터리, 바이오, 수소 산업) 등 다른 비수도권 지자체와 비교하면, 많은 자산을 갖고 있다. 새해에는 이런 자산을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이미지로 활용하며 ‘인구 50만 회복’의 동력으로 삼길 기대한다.

2022-12-22

대구형 택시앱, 지역민 응원으로 성장해야

대구형 공공 택시앱인 ‘대구로’가 22일 출시됐다. 이용자의 수수료 부담을 대폭 낮춘 공공형 택시앱의 출시로 그동안 독점적 지위에 있던 기존의 카카오택시와의 경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공공형 애플리케이션(앱)은 지역상권 보호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전국 많은 지자체가 민간업체와 협력해 운영하고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특정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 등의 횡포를 막기 위한 대응수단으로 전국적으로 확산 추세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형 배달앱이다. 대구서는 ‘대구로’ 경북서는 ‘먹깨비’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이번에 출시된 대구형 택시앱도 30만명이 이용하고 있는 공공 배달앱인 ‘대구로’에 호출서비스를 탑재했다. 별도의 앱을 설치할 필요가 없으며, 회원가입 없이도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출시된 대구로 택시는 콜당 200원, 월 최대 3만원의 수수료만 내면되고 이마저 내년 상반기까지는 수수료가 없다. 한달 평균 월 15만∼20만원 정도 부담하는 카카오택시와 비교하면 지역택시업계로서는 파격적인 혜택이다.또 카카오택시는 이용객에게 1천원의 호출수수료를 부과하지만 대구로 택시앱은 승객 호출수수료가 없다. 파격적인 혜택으로 지역택시업계의 반응도 뜨겁다고 한다. 법인택시를 중심으로 가입이 쇄도하고 있어 올 연말까지 4천대 이상이 등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현재 대구 택시호출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카카오택시에 도전할 만한 움직임이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공형 택시앱은 부산과 수원 등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공공형 앱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타지역의 운영실태 등을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현재 대구와 경북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공형 배달앱이 비교적 순항하는 것으로 알려져 대구형 택시앱의 성공적 안착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우리는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로 시장 지배적 플렛폼사업자가 남긴 폐해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공형 앱이 특정 플랫폼의 독점적 구조를 깨고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관심과 시민들의 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2-12-22

경주시 간부인사 앞두고 각종설(設)에 술렁

황성호 경북부 “시장님 인사가 만사 입니다”경주시의 올해 마지막 4급 서기관 인사를 앞두고 신상필벌은 뒤로 한채 ‘밀실인사’설(設)이 나돌면서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이번 하반기 인사는 능력과 근무평정으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겠느냐는 직원들의 희망은 사라지고 밀실인사로 인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끝날것 같다는 볼멘 목소리가 높다.경주시는 이달 말 4급 서기관 승진인사를 실시한다. 승진 인사는 1년에 전·후반기 2차례 나눠하며 이달 말께 4급 승진인사를 단행한다.공직사회 승진 요인은 근무성적 평정(이하 근평)이 승진·전보 등을 결정짓는 객관적인 요소로 근평을 거쳐 부여받은 고가점수 등을 감안해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런데 4급 서기관 승진인사 두자리를 두고 최근 경주시청 내에서 A과장과 B과장이 승진을 한다는 소문이 두달 전부터 돌기 시작했고, 국·소장들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밀실인사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이번 4급 서기관 승진은 12월 말에 인사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주낙영 시장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한다.이들의 낙점 밀실인사에 대한 무성한 소문은 항상 직렬 파괴가 반복돼 그대로 발표된 탓인지 “원칙은 어디 갔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고 있다.특히 A과장은 경주시의회 요청으로 경주시와 사전 조율해 의회 4급 서기관 자리로 낙점됐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으며 경주시 간부들도 공공연하게 부정을 하지 않고 있다.또 B과장은 퇴직을 6개월을 남겨두고 있으나 언제부터인가 국장 택호를 바꿔주기 위한 방편으로 계속 이어지는 6개월 국장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6개월 국장은 각 과에 대한 업무파악 시작도 전에 자신의 정년이 끝나 시정에 도움이 안된다는 지적이다.익명을 요구한 직원 A씨는 “경주시 인사위원회가 열리기전에 시장도 모르는 특정인 승진이 거론되는 것은 인사관련 주요부서 직책의 직원들에게 문제가 많다다”며 “이러한 인사를 계속 반복하면 직원들 업무의욕이 저하되고 조직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만 점점 커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언제 인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인사에 대해 책임져본 적이 있느냐”며“그래서 그런지 인사때만 되면 이런 이야기가 터져나온다”고 불만을 터뜨렸다.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진급 대상자 후보군에 있는 A과장과 비록 6개월 정년이 남았지만 B과장은 기술직렬로 가장 근접한 관계로 직원들간에 추측성 소문이 나는 것 뿐이다”며 “최종 결정은 시장님이 하신다”고 밀실 인사설을 일축했다.앞서 민선8기 출범 후 첫 인사에서도 불공정·보은인사라며 경주시청본청에 인사불만을 표출하는 유인물이 시장실 등에 뿌려져 논란이 된적이 있다. 앞으로 있을 경주시 인사가 불공정, 보은·밀실인사라는 소문과 논란대로 이루어진다면, 인사위원회와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마저 신뢰를 잃게 될 수있다는 점을 경주시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hsh@kbmaeil.com

2022-12-21

경북메세나協 출범, 지역문화 성숙의 계기로

경북메세나협회가 그저께(20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경북메세나협회의 출범으로 앞으로 기업인의 문화예술 참여가 늘어나고 도내 문화예술 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메세나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1994년 한국메세나협회가 창립되고 현재는 대구, 부산, 경남, 제주 등에서 메세나협회가 별도 운영되고 있다. 경북은 7번째 만들어졌다.이들 메세나 단체들은 예술인이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기업과 문화가 상생하며 문화생활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메세나 사업은 크게 세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기업과 예술단체의 결연과 후원 등으로 이뤄지는 파트너십 사업, 또 지역사회에 맞는 문화공헌 활동을 펼치면서 많은 이가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공헌사업, 조사연구학술사업 등이 그것이다.우리나라 경제가 비약적 발전을 하면서 경제와 더불어 예술의 발전도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돼 메세나 운동이 일어났다. 지방에서도 메세나 단체가 잇따라 설립된 것은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기업인의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문화예술과 기업의 전략적 협력이 보편화돼 있다.경북의 메세나협회 출범이 다소 늦으나 도시의 품격을 올리고 문화예술 영역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를 출범토록 힘쓴 관계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또 이번 경북메세나협회 출범에 거는 기대도 크다.문화활동 지원이 국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민간부문에서 특히 기업의 지원이 활발히 전개되면 문화예술계가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기업은 이윤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기업윤리 측면을 넘어 기업의 가치를 올리고 홍보수단으로서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문화예술 영역에서 경북은 오랜 전통을 가진 도시다. 이번 메세나 단체의 출범을 계기로 경북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과 격려가 더 커졌으면 한다. 또 예술인의 창작력을 고무시키고 문화예술을 누리지 못한 지역민에게도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문화적 기회가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2022-12-21

성탄과 새해, 정치와 언론

장규열 한동대 교수 다사다난 2022. 디지털시대를 만나 수북이 쌓이는 뉴스들 가운데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자락이 별로 없다. 언론이 뉴스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늘 슬프고 힘들거나 충격적인 소식들만 따라다닌다. 올해의 ‘10대뉴스’도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소식들로 한가득이다. 그런 틈을 비집고 2022년에 희망을 선사하고 마음을 즐겁게 했던 뉴스들이 있다.지난 6월, 우주의 문이 열렸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목표고도 700킬로미터에 인공위성을 거뜬히 올려놓았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1톤 이상 실용위성을 쏘아 올리는 우주선진국이 되었다.또한, 8월에 달탐사선 ‘다누리’가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한국 첫 우주탐사가 시작되었다. 인사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최근 소식이 걱정스럽지만, 이제 우주를 향한 대한민국의 꿈이 드디어 날개를 단 소식은 모두에게 희망을 준다.‘오징어게임’. 발표는 작년에 했지만 넷플릭스의 한국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지난 9월 에미상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기생충’과 ‘미나리’, 그리고 BTS의 활약은 K-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창의와 상상력의 가능성에 한계가 없음을 새삼 증명해 준다. 이들 작품에 실린 예능적 기예뿐 아니라, 콘텐츠에 담긴 메시지도 모두의 관심과 느낌을 불러일으킨다.한국축구. 온 국민의 애증의 대상인 한국축구가 큰일을 했다. 모처럼 겨울에 감상한 세계축구 축제마당에서 당당히 겨루어 16강에 오른 선수들에게 한없이 감사하다. 사방을 에워싸는 궂은 뉴스들 한복판에서 밤을 지새며 응원에 집중한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에 보답한 쾌거가 아닌가. 다음 월드컵에도 좋은 성과를 내려면 축구협회가 세간의 의혹을 떨치고 멋진 지원을 해야할 터이다.과학, 문화, 체육이 해냈다. 정치, 경제, 언론이 걱정만 끼치는 와중에 그래도 오늘이 살만한 날임을 증명해 주었다. 내일을 향한 희망과 기대를 다시 걸게 하였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려운 소식 틈바구니에 좋은 뉴스자락들을 더많이 만나고 싶다. 언론이 분발하여 사건사고의 고발과 함께 문제해결방법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충격과 함께 해결의 실마리도 더불어 제공하는 언론을 만나고 싶다. 디지털문명과 함께 쏟아지는 이야기들 가운데, 훈련되고 정제되어 조리정연한 분석기사들은 오히려 희귀해져 간다.신문과 방송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오히려 필수산업이 되어가는 중이다.책임있는 언론행위, 표현과 언론의 자유, 사실확인 취재보도, 양심바른 권력견제, 진실추구 원칙언론, 시민독자 중심언론, 불편부당 독립언론 등 온라인의 어지러움 가운데 혹 잊었을까 싶은 언론의 기준들은 못내 절박하도록 유용하다.정치와 경제가 난해할수록 독자시민에게 알 권리는 소중하다. 형태를 불문하고 힘을 가진 이들을 바르게 견제하는 일도 언론만 할 수 있다. 성탄과 새해를 맞으며, 언론이 언론다운 나라를 기원한다. 언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2-21

고향세 답례품 경쟁

홍석봉 정치에디터 고향사랑기부제(고향세) 시행을 열흘 가량 앞두고 가장 핵심이랄 수 있는 기부자들에 대한 답례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자체마다 기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답례품 선정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색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답례품을 찾았다.고향사랑기부제는 자신이 거주하지 않는 지자체에 일정액을 기부하면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10만 원 초과분은 16.5% 세액공제)를 해주는 제도다.지자체는 기부액의 30% 범위 내에서 답례품을 줄 수 있다. 10만 원을 기부하면 최대 13만 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1인당 연간 기부 한도는 500만 원이다. 기부금은 해당 지역의 주민 복지나 문화 혜택 등에 사용된다.지자체마다 답례품 선정위원회를 두고 심의와 조례 입법을 거쳐 다양한 답례품을 마련, 출향인 마음잡기에 나섰다. 고향 특산품이 많다.눈길을 끄는 답례품이 적지 않다. 영천시는 조상 묘 벌초 대행 이용권을 내놓았다. 출향인의 벌초 일손을 대신해 주겠다는 취지다. 경주시는 관광도시의 이점을 살려 관광지 이용권과 숙박권을 제시했다.포항시는 과메기, 김천시는 지례흑돼지, 안동시는 간고등어, 울릉군은 명이와 부지갱이 등 지역 특산물을 내걸었다. 영주시 인견, 경산시 대추, 의성군 마늘소, 영덕군 대게, 청도군 반시, 성주군 참외, 고령 딸기 등도 있다.고액 기부자를 위한 고가의 상품도 마련됐다. 호텔 숙박권과 한우·한돈 세트, 대게, 송이버섯, 도자기 등이 대표적이다.고향세는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마련됐다. 10만 원을 기부하면 13만 원을 돌려받고 고향 발전에 기여한다. ‘일석삼조’의 효과다. 내년에 고향세가 얼마나 걷힐지 기대된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21

대구 3대 도매시장, 전문경영인에 맡겨진다

대구시가 내년 군위군 편입을 앞두고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 도매시장과 검단동 축산물 도매시장, 중구 약전골목 한약재 도매시장을 총괄 관리하는 대구농수축산물유통관리공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 타당성 연구용역과 관련 조례 제정을 마치고 9월쯤에는 공사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전국 지방정부 중에는 서울시만 유통공사 형식의 ‘농수산물식품공사’를 설립해 가락·강서·양곡 농수산물도매시장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대구시는 그동안 유통 물량 전국 3위(연 1조원매출)인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직영하면서 공무원 신분인 직원들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관리에 한계를 느껴 왔다. 때마침 군위군 대구 편입으로 농산물 유통이 더 늘 것으로 예상돼 전문성과 경영혁신차원에서 공사설립 결정을 내렸다. 대구시는 공사 출범 직후에는 일시적으로 공무원을 파견 형태로 운영한 뒤 안정기에 접어들면 공사 자체에서 신규 직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대구시는 지난 10월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발생한 대형화재 이후 내부적으로는 유통공사 설립의지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도매시장을 좀 더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운영주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축산물 도매시장과 한약재 도매시장도 유통공사 관리체제로 일원화한 것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유통공사 전환에 대한 의견은 꾸준히 나왔지만 공사 관리·운영비 부담이 커 상인과 경매인 등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백지화됐다. 유통공사가 현재 대구시가 관리하고 있는 검단동 축산물 도매시장을 비롯해 약전골목의 한약재 도매시장을 같이 관리할 경우 경제성과 효율성이 훨씬 커지게 된다.대구의 농수산물도매시장과 축산물 도매시장, 그리고 전국 최대규모였던 약전골목 한약재 도매시장의 혁신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전문가가 전담해 경영을 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유통공사 설립을 계기로 이들 3대 도매시장이 우리나라 전체 농축수산물과 한약재의 물류 거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2-12-21

무자(戊子)

육십갑자 중 스물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무자(戊子)다. 천간(天干)은 무토(戊土)이고, 지지(地支)는 자수(子水)다. 무자일주는 척박하고 건조한 땅(사막)에 물이 있는 오아시스다. 마르고 거친 산과 땅(무토)이 물(자수)을 만나 생명이 살 수 있는 좋은 땅으로 바뀐 모양이다. 무토는 둑, 제방, 댐 같은 물상으로 흙으로 물을 가둔 상태다. 돈과 재물이 많이 모인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신용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며, 도량이 넓고 성실하며, 언행일치하는 결단력도 있다.우직하고 통이 커서 큰 사업을 꾸준하게 진행하며, 욕심과 욕망이 많아 가정보다는 사회나 직장 일을 중요시하며, 가정생활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의외로 허영심과 허식이 있어 복권이나 경마, 경륜, 도박을 좋아하기도 한다. 자신 이득을 우선하므로 나쁜 평가를 받는다. 타인에 의해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갑작스럽게 화를 내거나 남을 의심하며 흥분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한 예로 어느 고을에 부자(富者)가 있었다. 어느 날 일찍이 보지 못했던 큰비가 내려 그의 집 담장이 무너졌다. 그러자 그 부자의 아들이 “담장을 다시 잘 쌓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웃에 살던 어떤 노인도 똑같은 말을 하였다.그날 밤, 공교롭게도 부자의 집에 도둑이 들어서 많은 재물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부잣집의 모든 사람들은 그 아들의 총명함에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였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재물을 훔쳐간 사람이 혹시 이웃집 노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훔쳐간 사람보다는 잘 간수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떠넘겨 스스로 위안을 받으려는 생각이다. 무토(戊土)는 흙으로 다져 물을 가두어 놓는 제방이고, 자수(子水)는 동물로는 황색 쥐다. 쥐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象)이다. 여기서 물은 술일 수도 있어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술로 인해서 고집은 있으나 박력이 없어 큰일을 성취하가 어렵고, 또한 귀가 얇아 실수가 잦고 잘 속는다. 밤늦게 마시는 술을 조심해야 한다.천성이 내성적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잘 드러내놓지 않는다. 다재다능하고, 한 가지 일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업무 처리에 빈틈이 없으며, 임기웅변에도 능하다. 사색을 즐기며 신앙심이 깊기 때문에 종교나 철학 계통에도 관심이 있다. 남자는 배우자 몰래 다른 여자를 만들기 쉽고, 그로 인해 금전적 손해나 송사를 겪는다. 배우자에게 가권을 넘기고 성실하게 일하면 된다. 여자는 배우자의 건강이나 생이별로 인하여 가정을 꾸려야 하는 여성 가장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무자일주는 쥐의 성질로 밤에 주로 활동하고, 주위의 환경변화에 민감하며 다른 사람과 나의 사생활을 구분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하고 대인관계가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보수적이고 빈틈없는 성격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성향이 강하다.우리는 3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페스트’가 생각난다. 해안도시 오랑에서 발생한 ‘페스트(흑사병)’가 점차 도시를 공포로 마비시키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전염병이 번진 상황에서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무력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다. 알제리 해안도시 오랑에서 피를 토하고 죽은 쥐들이 나타난다.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아파트 경비원 노인이 원인 모를 열병으로 사망하자 예전에 사라졌던 페스트임을 확신하고 시에 전염병 확산방지 조치를 강력히 요청한다.시는 상황을 인지 못한 채 허둥대다 도시 전체가 페스트로 퍼진다. 뒤늦게 페스트 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한다, 여행객 장 타루는 자원봉사대를 모집하여 보건대를 만든다. 임시직 공무원 그랑은 타루의 보건대에 참여하여 도운다. 이때 파리에서 취재 온 기자 랑베르는 도시에 갇히게 된다. 탈출을 시도하지만 의사 리유가 아내를 요양소로 보내고 페스트에 맞서는 것을 보자 마음을 바꾼다.신문기자 랑베르도 개인적인 안위만을 추구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보건대에 합류한다. 마을에서 존경받는 파늘로 신부는 “페스트는 오랑시의 죄에 대한 신의 벌”이라고 설교한다. 기약 없는 도시봉쇄로 시민은 혼란과 공포를 느낀다. 나중에 신부도 전염병 때문에 죽는다. 평소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 와인과 양주를 파는 여행가 코타르는 자기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알고 이 와중에 담배와 술을 밀수하여 큰돈을 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죽음의 공포와 혼돈 속에서도 의사 리유와 다른 사람들이 묵묵히 받은바 소임을 다하는 성실성을 보여준다. 페스트가 종식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애도한다. 의사 리유는 아내의 죽음에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페스트는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다. 방, 지하실,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운다. 그리하여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내는 날이 분명 올 것이라는 사실을….이라며 소설은 끝난다.소설은 페스트의 확산으로 봉쇄된 도시 안에서 재앙에 대처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잔혹한 현실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공동체와 연대하여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코로나가 장기화하고 일상화되는 가운데 자칫 방심하면 더 큰 재앙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위기 속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성이 필요한 시기다.

2022-12-21

담장을 허물다

배문경 수필가 바람이 분다. 건물과 담벼락 사이로 세찬 바람이 지나간다. 담장아래서 병아리처럼 아이들이 모여 햇빛바라기를 했다. 흙담은 따뜻했고 바람을 피해 앉아서 종알종알 어린 우리의 일상은 바람을 맞지 않아 좋았다.형제가 떠난 자리는 허전했다. 언니 둘이 결혼해서 어린 나를 놔두고 자신의 둥지로 떠났다. 애지중지 머리를 닿아주고 서캐를 옮겨왔을 때 참빗을 들고 머리를 쉴 새 없이 빗어 내리던 언니들의 빈자리는 가을 추수한 들녘처럼 쓸쓸했다. 어린 막내라고 목마를 태워주던 오빠들이 그리워 담벼락에 붙어 서서 자주 훌쩍였다. 해가 뉘엿해지면 덩달아 그늘진 담은 더 차갑게 나를 밀어냈다.어둠살이 내리던 골목길 담벼락은 나처럼 혼자일 때가 많았다. 인적이 끊긴 겨울 늦은 시간이면 졸고 있는 전봇대가 불을 밝히고 긴 그림자를 끌고 피곤한 진수네 아버지가 지나갔다. 자주 술을 마신 채 비틀거렸다. 동네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우당탕탕 시끄럽게 귀가했다. 서로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동네가 떠들썩하게 사랑했던 순자언니의 사랑은 담 그늘에서 사랑의 꽃으로 결실을 맺었다. 담장 너머로 서로를 향한 뜨거운 눈빛이 마주쳤던 모양이다.요즘은 담장에 스토리를 그려 넣거나 문화재나 시(詩)를 보기 좋게 써두지만 그때는 무서운 가위가 그려지거나 귀신같은 것이 자국을 남겨두곤 했다. 싸리를 꽂아 담장을 쳐둔 창식이네 집은 멀리서도 뭐하는지 다 보였다. 하지만 뒷집 기와집 할배네 집은 담장이 높았다. 철대 문이 한 번씩 삐거덕 거리며 열렸지만 간혹 사람보다 가래 뱉는 소리가 더 잦았다. 새벽이면 그 집에서는 요강을 들고 나와 밤새 볼일 봐둔 것을 개울물에 부어 버리곤 했다. 혼자만 대단한 듯이 담장을 높인 집이라 사람들도 얼씬 하지 않았다.최근 한양도성 탐방이 인기라는데 서울을 두른 성문과 성곽이 과히 높지 않다고 한다. 소실된 성곽이 상당 부분 복원되면서 한양도성(성문과 성곽)을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순성(巡城)놀이다. 한양을 둘러싼 도성에는 8개의 성문이 있고 성곽의 길이는 40리(18.6km)다. 하루에 한양 성곽을 다 돌면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한다는 속설이 생겨나면서 순성놀이는 더욱 유행했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성, 궁궐, 성곽 짓기였단다. 울창한 소나무 숲도 곳곳에 보이고 공간을 아늑하게 만드는 조선식 조경기법인 취병(翠屛)이 있다고 하니 나도 언젠가 낮은 성을 돌며 서울구경을 제대로 해볼 참이다.지금은 살만큼 살아서 일까. 어디에 가더라도 주위를 파악하고 행동하지만 어릴 때는 주눅이 잘 들었다. 보리자루처럼 서있었다. 그렇지만 몸이 가벼워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 타잔처럼 담장을 타고 놀고 집 뒤란에 서있는 감나무에 올라 노을을 혼자 보곤 했다. 담장은 계단처럼 느껴졌다. 차곡차곡 올려둔 블록 위에 올라서면 세상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도 그때 간곡히 기도한 때문이지 싶다.오래되어 낡은 것들이 정감 있게 살아나던 부산 감천마을을 떠올려보면 집의 담장 들이 서로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옆집이 무엇을 하는지 쉬이 알 수 있었으리라. 담은 가리개가 되고 혹은 적당한 소통의 간격으로 보였다. 곳곳에 그려진 그림은 삶이 묻어나 있고 벽을 스치며 그림과 조우하는 나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이제 높은 담장을 쌓아 경계를 두는 일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낮은 꽃 화단이 겨우 이곳과 저곳을 나눌 뿐이다. 내 것이 허물어지고 타인이 들어올 때 소통은 훨씬 편해진다. 곳곳에서 공사하는 현장들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내 것이 열리고 타인을 받아들여야 공감의 장은 넓어진다.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공광규의 ‘담장을 허물다’)나또한 생(生)의 담장을 낮추어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고 인연을 맞고 기쁨을 맞을 생각이다.

2022-12-21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케어’를 건보 재정을 파탄내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하며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의 시각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고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이번 논란의 본질이 아닐 수 있다.돈 때문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명제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코로나19’ 가 한창 유행하던 당시에 미국의 코로나 검사 비용은 400만 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정부가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맡긴 탓이다. 그러니까 세계 최강 미국에서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 보장을 해주는 것은 비효율적인 행위일 뿐이다.미국의 사례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OECD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개선하면 될 일이다. 보장성 강화 정책에 부작용이 있다고 물줄기를 바꾸자는 것은 자본과 경쟁의 논리, 즉 시장 중심의 사고방식이 국민의 건강을 대상으로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최근 집안 어른이 갑자기 쓰러져서 간병비로 하루에 최소 13만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동이 어렵거나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일일 간병비는 더 올라간다. 간병비로 한 달에 400만원을 감당할 수 있는 집이 얼마나 있을까. 간병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집에서 환자가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알다시피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동 간병인 제도는 문재인 케어의 대표적인 성과이다.나는 정부가 폐기하려는 문재인 케어의 구체적인 항목을 알지 못한다. 다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국민의 삶과 죽음의 경계가 결정된다. 다시 묻자. 가야만 하는 길이 비바람으로 엉망이 되었다고 목적지가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처음부터 다른 목적지로 갈 마음이 있었던 것 아닌가?지난 16일은 ‘이태원 참사’ 49재였다. 여전히 여당 일각에서는 그날의 참사를 이태원에 나간 대학생 아이들을 말리지 못한 부모 책임으로 돌리려는 시각에 존재한다. 100명이 넘는 시민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죽었지만, 시스템에 대한 성찰은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건강보험 보장성을 폐기하려는 시각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2022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23년은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며 유례없이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새해에는 부디 각개전투가 아니라 공동의 전선이 마련될 수 있기를! 국가에 기대하지 말고, 내 가족의 건강과 함께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

2022-12-21

원시반본(原始反本)

오낙률 시인·국악인 ‘원시 반 본’이라는 말이 있다. 원불교 사전에 나오는 말로 정확한 한자 해석은 시원을 살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말에 대하여 종교적 의미와는 별도로 오랜 세월 동안 의식 깊은 곳에 새기며 살아온 것 같다. 예컨대 ‘원시 반 본’이란, 생명의 씨앗이 자라서 또 씨앗이 되는 일이며 모든 생명이나 사물이 이 세상에 생겨나서 결국은 제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니, 이 네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단어에서 실로 오묘하고도 커다란 순환의 진리를 고스란히 느끼는 것은 오히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필자가 생활하는 농촌 환경은 오십여 년 전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뭇 다르다. 이는, 앞서 말 한 ‘원시 반 본’의 순환 원리에 따른 자연의 변화된 모습이면서도 바쁜 현대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대자연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과거 우리네 부모님께서 금쪽같이 여기시던 비탈밭 하며, 산자락에 붙은 제법 큼지막한 농토까지 점차 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농촌에서 자랐거나 현재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 변화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의 차이는 각자의 삶에서 그 의식하는 바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자연은 참으로 관대하거니와 그 품이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그것과 흡사하다. 먹거리가 곤궁하던 시절에 흔쾌히 제 등짝 같은 산자락의 개간을 허락해주고, 인간이 풍요로울 때를 기다려 묵묵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니, 인간이 고향 산천에서 느끼는 정은 가히 우리네 어버이에게서 느끼는 그 정과 흡사하다 할 수 있겠다.곡괭이로 일군 ‘때기 밭’ 서너 자리를 합쳐서 밭 한 마지기가 되고, 산골짝 ‘다랑논’ 너덧 자리를 합쳐도 논 한 마지기가 될까 말까 한, 오십여 년 전의 우리네 목숨줄 같은 농토가, 이제는 촘촘히 소나무며 참나무 등이 자라는 건강한 모습의 산자락으로 돌아간 것이다. 흙 쟁기 끌던 늙은 암소가 해 그름에 저 혼자서 제집을 찾아가던 그 꼬부랑 논길도, 천수답 골짝논에서 수확한 볏단을 지게로 져 나르던 논둑길도, 이제는 건강한 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사람들이 주말이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찾는 산행이 그 시절 산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위한 발걸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부모님께서 일구시던 야산 자락이 오랜 농사일에 늙고 탈색한 어머님 아버님의 흑백 사진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이, 단지 겨울 산을 바라보는 필자만의 생각일까도 싶다.생각해보면,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태어나신 고향 산천 자락에 묻히셨으니 그 또한 자연으로의 회귀이며 ‘원시 반 본’의 진리를 따르셨음이다. 내 어린 시절 귓전에 머문 산새 소리하며 앞산에 울던 고라니 소리, 그리고 안산 자락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꽃들도 아마 지금쯤 ‘원시 반 본’에 들어 끝없이 순환하고 있을 것이며 필자 또한 어느 장래에, 내 태어난 고향 산천에 뼈를 묻으며 ‘원시 반 본’하는 순환 원리를 따르게 될 것이다.

2022-12-21

개 눈에 똥

조현태 수필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뜻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 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디에도 이런 현상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학생 시절에 만원버스를 타면 학생들은 학교생활과 학업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되었다. 막노동하는 사람들은 노동 현장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장사꾼은 물건 사고파는 이야기를, 농부는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도 그 휴대폰에는 그 주인의 최대 관심사가 검색되어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터이다.한 가지 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 경우를 꼽으라면 2002년 월드컵 경기 때가 아닌가 한다. 그 당시의 축구 응원은 대한민국 전체를 넘어서 온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생각해보면 개의 눈이라서 똥만 보였다기보다 똥만 보였기 때문에 개의 눈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쳤던 대한민국 국민의 결집력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중심으로 말하고 듣는다. 한발 더 나아가보면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확신하고 있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월드컵 게임의 경우 처음에는 자기중심에서 우러나는 응원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국 팀을 응원하니까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덩달아 응원했다. 군중심리가 작동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보니까 어느덧 축구 경기에 몰입하게 되고 저절로 한국 팀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내가 볼 때 남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 나도 슬퍼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것은 남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내가 슬프기 때문에 남도 슬퍼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논리에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남이나 사회에 그 탓을 돌리게 된다. 그러므로 남을 탓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우기면 참으로 무서운 논리다. 내가 믿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려’도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정치는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해야 한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맡은 정치에도 연예인과 같은 좋고 싫음의 잣대를 대는 것 역시 잘못된 짓이다.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여 건설한 후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때 이성계가 농담 삼아 무학대사에게 말했다. 오늘 무학대사가 돼지 같아 보인다고 말하자 무학대사는 태연하게 전하께서는 부처님처럼 보인다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예리한 꼬집음을 일컫는다.비슷한 뜻으로 채근담에도 ‘자신이 성실하기 때문에 남도 성실히 보아서 그 사람을 믿게 되고, 자신이 남을 속이기 때문에 남을 의심하게 되어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작금의 세태에는 차라리 월드컵 군중심리라도 좋으니 국민 전체가 부처님 눈이기를 빌어본다.

2022-12-20

1인 가구의 코로나 투병기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코로나에 걸렸다. 지난 2년 동안 운 좋게 피해왔는데 결국 걸려버리고 말았다. 백신은 2차까지 접종했지만 시일이 꽤 지나서 항체가 거의 없어졌던 모앙이다. 증상은 일요일 아침부터 발현됐다. 발열, 몸살, 오한, 목과 가슴 통증, 기침, 콧물과 가래 등 전형적인 코로나 증상이었다. 마련해두었던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하니 아니나 다를까, 두 줄로 양성 반응이 나왔다.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는데, 나는 꽤 심하게 앓는 축이었다. 코로나에 걸렸던 동료들을 내심 부러워하며 ‘나도 가볍게 코로나 좀 걸려서 일주일쯤 쉬었으면’하고 생각했던 것을 깊이 후회했다. 일반적인 감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열과 통증이었다. 특히 처음 며칠 동안은 가슴과 목을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어 코로나가 폐렴의 일종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상비약으로 구비해 둔 타이레놀 덕분에 일요일은 겨우 넘기고, 월요일 아침에 선별진료소를 찾아 PCR 검사를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나는 포항시에서 살고 있는 1인 가구다. 선별진료소는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기에 조금 힘들지만 혼자 걸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 문제는 PCR검사 결과 확진임을 문자로 통보받은 뒤다. 코로나19 감염증 홈페이지(https://ncov.kdca.go.kr/)에 안내된 의료기관에 전화를 걸어 원격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홈페이지 안내에 따르면 확진자는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절대 스스로 약을 받으러 가지 말고 가족 또는 대리인에게 부탁하라고 나와 있었기에, 원격진료 의료기관에 의약품을 집으로 배달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현재 그런 서비스는 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직접 차를 몰고 원격진료기관에서 처방전을 보낸 약국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해당 약국의 유리문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약국 앞에서 전화하면 약사가 약국 밖으로 나와서 약을 건네준다는 내용이 붙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내가 직접 약국 안까지 들어가서 약을 받고 결제까지 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치료의 온상이 되어야 할 약국이 오히려 코로나 감염의 허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포항시는 산업구조의 특성상 1인 가구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며, 전국적으로도 1인 가구는 급격한 증가세에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코로나19 감염증 홈페이지’의 확진자 행동 지침이 1인 가구를 고려하지 않고 가족 또는 동거인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은 문제가 크다. 가족공동체는 빠르게 그 수명을 다해가고, 사회구조는 1인 가구를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1인 가구들의 노동력이 산업현장을 지탱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가족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족에게 부여된 의무를 국가와 사회가 나눠서 짊어질 때 가족을 만들어 볼 생각도 드는 게 아닐까?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사회라면 출산, 육아, 노인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실행할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멍에가 아니라 기쁨이어야 한다.

2022-12-20

당신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꽃같이 젊디젊은 나이에 하늘로 간 영혼들을 두 번 죽이는 유족들”, “#우려먹기_장인들”, “자식팔아_장사한단소리_나온다”, “#나라구하다_죽었냐”. 지난 12일 국민의힘 소속의 창원시 의원 김미나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 아마도 그는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과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되는 자들을 향해 쓴소리를 하려던 것이겠지만, 그 소리는 쓰지도 않았고 달지도 않았다. 그건 단지 인신공격에 불과했을 뿐이다. 감정적으로 가장 약해져 있는 사람을 향한, 불필요한 인신공격.심지어 김 의원은 지난 달 말에도 방송사 인터뷰에 참여한 한 유족의 발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망언을 하기도 하였다. “지 XX를 두 번 죽이는 무지몽매한 XX”라며 “자식 팔아 한 몫 챙기자는 수작”, “당신은 그 시간이 무얼 했길래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가! 자식 앞세운 죄인이 양심이란 것이 있는가”. 엄연히 “지 XX”, “자식 팔이” 등의 원색적이고 악의적인 워딩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의 해명은 다음과 같았다. “유족들을 이용하는 단체를 향한 발언이지 유족들을 향한 발언이 아니다. (중략) 유족들이 들었을 때 부적절한 내용이 있다고 하면 죄송하다”.아마도 김 의원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으리라. 참사를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사건은 불의에 벌어진 참사일 뿐, 어떤 의도가 개입되어 벌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를 계기 삼아 정권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김 의원의 생각이 이와 같다면, 이건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생각이다. 그것이 불의에 벌어진 참사이며 어떤 의도가 개입되어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와 같은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었을 기회가 우리에게는 여러 번 있었다.예컨대,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다스린다는 말은 어떤 누군가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축적하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살피고 관리하는 일, 정리하고 수습하고 바로 잡는 일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그 다스림의 자리는 특정한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그 자리에 위치하더라도, 그것은 법이 정한 기간 내에서의 점유일 뿐,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잠시 ‘다스림’의 자리를 점유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것, 그리하여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막는 것에 있다.김 의원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슬퍼진다. 그와 같은 ‘정치’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모두 망각한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자기보전적인 말하기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자신이 행해야 할 정치와 다스림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망각하고, 자신을 그 자리와 동일시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여겨지는 정치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능력과 책임에 대한 고민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판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동일시한 것에 대한 공격과 그것에 대한 방어만이 존재할 뿐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문학 강사로서 그의 말이 한층 더 처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와 같은 정치적 방어의 언어가 어떠한 논리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시의원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으로서, 유가족의 말에 자리하고 있는 논리에 대해 논리로서 이야기해야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택한 것은 논리적으로 유가족의 말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 자체를 공격하고, 그들을 부도덕한 정치적 악의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그것도, 아주 원색적인 표현들을 남용하면서.진실과 거짓에 대한 판단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김 의원을 비롯해 막말을 쏟아내는 여러 의원들을 바라보며 그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진실은 단순히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연루된, 그렇기에 자신의 양심을 걸고 지켜야 하는 거짓 없는 사실,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막말을 일삼는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어떤 것을 진실로 여기며 살아가는가. 어떤 진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그러한 말을 쏟아내는가. 그리하여, 당신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당신이 원하는 국가란 정녕 어떤 모습인 것인가.

2022-12-20

말랑말랑하면서 단단한 것

예리하지 못한 사람에겐 그만큼의 말랑말랑한 구석이 있다. /언스플래쉬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상대의 말에 관해 곱씹고 생각해보기도 전에 고개부터 끄덕인다. 고치고 싶은 나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다. 상대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대하는 나름의 배려일까. 혹은 생각의 편협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방어적으로 취하는 행동이 아닐까. 무엇이 됐든 나는 상대의 의견에 긍정하는 형태를 자주 취하고 돌아서면 매번 후회하기 일쑤다.특히 그것이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 될 내용이었을 때, 상대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면 안 되었을 때,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취한 단순한 행동이었을 때, 나는 나의 나약함에 무너지고 만다. 왜 면전에 대고 말하지 못하지? 그건 틀렸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고. 무분별한 긍정과 무책임한 승낙 사이에 있는 건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려는 얄궂은 태도다.모두와 다 잘 지내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자꾸 행동하는 게으른 관성이다.글을 쓸 때는 살짝 용감해진다. 몇 번이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면서 내 생각을 가장 가깝게 표현해낼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수 있다. 거칠고 뾰족한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리한다. 그러나 나는 당연하게도 내 마음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것에 실패하고 만다. 내가 뱉어내는 이야기는 오해를 사기 쉽고 가장 싫어하는 나의 부분까지 들키고야 만다.글이란 참 이상한 것이라서 교묘하게 돌려서 보여주려고 해도 결국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은근히 탓하는 마음까지도 드러나게 된다. 내가 적은 문장은 수정될 수 없으며 끝끝내 내 뒤를 따라다닌다.어쩌면 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가닿은 언어는, 그것이 고약한 내용일수록,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모르는 것이 많고 미래의 나 역시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아서 나는 매일같이 나의 언어를 의심한다.정말 그렇다. 말이든 글이든 행동이든 쉬운 것이 없다.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데… 좀 더 뻔뻔해져도 될 텐데… 그게 어렵다. 긍정도 부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노라면 한숨부터 나온다. 의도적으로 딱 잘라 선을 그어보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그건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자기혐오의 일종일 수도 있고 흔한 자기 검열의 발현일지도 모른다.언젠가 그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분명한 태도를 해명하고 싶다는 욕구와 내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이불처럼 덮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관계를 맺는다는 건 어떤 면에선 필연적인 오독이 필요하니까. 단 하나의 오해도 없이 타인을 안다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누군가에게 나는 우유부단함으로 점철된 사람일 수 있고 불편하리만큼 내면을 보이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사실이다.어떤 면에서는 예리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또 그만큼의 말랑말랑한 구석이 있다. 냉철하고 적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잘하는 부류가 있다. 딱 잘라 표현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운용한다. 어떤 것도 완전한 답이 될 순 없다. 자기 태도가 옳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찾아오는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적의 손을 동시에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답을 내리는 것을 유보하고 현상을 찬찬히 마주하려고 하지만 누구보다 성급하고 저돌적인 면이 있다. 모순으로 똘똘 뭉쳐있으나 그것이야말로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첨예하면서도 여유로운.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한. 그런 것이 어디에 있겠나 싶으면서도 또 아주 없을까, 골똘히 생각해본다.그러니까 그것은 복숭아의 성질과 비슷하다. 복숭아라는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각각 고유의 특질을 지닌 맛 좋은 과일. 물복과 딱복이 섞인, 어떤 부분은 말랑하고 또 어느 부분은 단단한 그런 복숭아를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그래, 이런 형태도 있는 거지.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깨닫는 것. 반성하고 후회하면서도 ‘나’라는 구심점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것. 그뿐이다.

2022-12-20

봉화 분천 산타마을

우정구 논설위원 산타클로스는 북극에서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빨간색 옷을 입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다. 선물과 너그러움의 상징이다.산타 할아버지는 3세기경 현존하던 인물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는 지금의 터키 파타라지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상속받은 많은 재산을 나눠주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일생을 보낸 인물로 전해진다. 그는 후에 대주교가 되어서도 남몰래 선행을 베풀었는데, 이것이 산타클로스의 주인공으로 태어나게 된 배경이 됐다고 한다.네덜란드에서는 그가 성인이 된 날인 12월 6일을 ‘니콜라스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이날 쿠키와 사탕을 받기 위해 신발을 바깥에 내놓기도 한다고 한다.산타할아버지가 양말 속으로 선물을 전달하게 된 동화 같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자신의 선행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산타는 어느 날 한 가정의 굴뚝 안으로 동전을 던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날 집안 화롯가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동전이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는 굴뚝을 통해 선물을 주고 간다고 믿게 됐다는 것이다.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분천 산타마을은 산타클로스를 주제로 조성한 관광지다. 산림면적이 95%에 달하는 오지 중의 오지인 분천은 핀란드 산타마을을 벤치마킹한 아이템 하나로 사람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변신했다.한국관광 100선과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겨울 여행지 선호도 2위에 오르는 영예도 안았다. 지난 주말 분천산타마을이 3년만에 개장식을 가졌다. 이번 겨울 크리스마스 축제는 이곳에서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우정구(논설위원)

2022-12-20

소아환자 받는 응급실이 없어진다면…

심충택 논설위원 이대로 가다간 소아환자를 치료해줄 종합병원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쇼킹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밤늦은 시간에 갓난아이가 아파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본 부모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최근 전국 수련병원(대학병원) 69곳에서 내년 전반기 소아과 전공의(레지던트)를 모집한 결과, 대구·경북을 포함해 영남권 병원에서는 한 명의 의사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련의가 지원한 병원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11곳에 불과하며, 정원을 채운 곳은 서울아산병원과 강북삼성병원 2곳뿐이다. 정부가 지난해 소아과 전공의를 4년제에서 3년제로 단축하는 극약 처방을 단행했지만, ‘백약이 무효’임이 드러났다.지금 가장 큰 문제는 수련병원 중에서 당장 내년 2월 4년차 소아과 수련의들이 나가고 나면, 소아과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원이 속출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상당수 대학병원에서는 소아과 전공의가 모자라 교수들이 당직을 나눠 하고 있는데 내년 2월에 4년차 전공의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대구·경북을 포함해 대부분 대학병원이 소아의료 공백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대구·경북 수련병원(5곳)의 경우도 현재 1~3년차 전공의 충족률이 정원대비 8%밖에 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전국 대부분 대학병원의 야간 소아 응급진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 최근 인천지역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소아과 입원을 중단한 것도 밤에 환자를 돌볼 레지던트가 없기 때문이다.전공의들이 소아과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의료보험 수가(酬價) 때문이다. 소아과는 특히 모든 진료가 보험에 적용돼 환자를 어지간히 많이 보지 않고선 병원으로선 적자운영을 벗어나기 어렵다. 소아들은 수술과정이 힘들지만 어른과 수가가 똑같고, 약물투여나 검사비도 적게 나와 수입이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선 적을 수밖에 없다.저출산도 소아과 기피 주요 원인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초혼 신혼부부(혼인신고 후 5년이내) 중 절반(45.8%) 정도가 자녀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초혼 신혼부부 평균자녀수는 0.66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병원을 찾는 소아환자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귀한 아이’ 환자에 대한 의료사고 소송도 갈수록 늘어나 전공의들이 굳이 소아과를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한 종합병원에서 아픈 아이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이유로 전공의가 환자 보호자에게 뺨을 맞았다는 소문도 의사들 사이에선 화제가 되고 있다. 소아과에 오는 보호자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의사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건강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돼 만약 대학병원 응급실에 소아과 전공의가 없어진다면 한밤중 소아 응급환자는 누가 치료할 것인가. 소아과의사들은 우리사회의 필수적인 ‘의료안전망’인 만큼, 전문의 양성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수가 현실화 외에는 소아과를 살릴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2022-12-20

반도체특화단지에 사활 건 경북도와 구미시

내년 중 지정이 예고된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요건이 공개되면서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경북 구미시를 비롯 인천과 광주·전남 등 전국 10여개 도시들이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뛰어든 가운데 경북도와 구미시는 반도체특화단지 지정에 사활을 걸었다.경북도와 구미시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사활을 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리나라 최대 전자수출 전진기지로 성장한 구미시는 첨단분야 관련기업과 인력이 풍부한 지역이다. 삼성전자, LG이노텍, SK실트론 등 글로벌 대기업과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 123개 업체가 이미 밸류체인을 형성하고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비수도권 지역으로서는 유일하게 소재 부품부터 수요기업까지 반도체 전 공급망이 완비돼 추가 비용없이 이미 조성된 반도체산업 기반으로 신속한 반도체 공급망 구축과 성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또 구미 국가산단의 풍부한 공업용수와 안정적인 전력공급도 큰 장점이다.특히 대학, 연구기관, 기업부설연구소 등 우수한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재분야의 강점을 바탕으로 생태계 확대가 유리하다. 2030년 개항할 신공항과 불과 20분 거리여서 반도체 수출전진기지로서도 최적이다. 무엇보다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산업 클러스터를 구미까지 확대해 국가 균형발전의 돌파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국가를 설득할 최대의 무기다. 국가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삼는 현 정부도 균형발전을 촉진할 기회인 것이다.정부는 지난 7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340조원 이상의 기업투자를 촉진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최고 우위를 점할 계획이다.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는 반도체 산업의 영역을 넓혀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 정부 정책과도 부합하는 일이다.지난 1일 정부의 특화단지 지정 운영지침을 고시되면서 특화단지 유치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구미가 특화단지 요건과 당위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정부에 잘 알려 특화단지 지정이 반드시 성사될 수 있도록 다시한번 고삐를 죄야 한다.

2022-12-20

마트 의무휴업, 소비자성향과 맞지 않다

대구시가 지난 19일 북구 산격청사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대구지역 8개 구청장·군수, 전국상인연합회 대구지회 회장,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 협약식’을 열었다. 협약식은 현행 둘째·넷째 주 일요일에 시행되는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내용이며, 이르면 새해 들자마자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지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골목상권 보호가 목적이며, 한달에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도록 했다. 의무휴업을 폐지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의무휴업일 변경은 지방자치단체 조례개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대구시내 의무휴업일 변경대상은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코스트코, 이마트 트레이더스, 노브랜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 60여 곳이다..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변경에 대해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가 사라진다는 반대 목소리도 나오지만, 그동안 공휴일 의무휴업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소상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급속하게 팽창하는 온라인 쇼핑에 맞서, 오프라인 매장들이 손잡고 지역 상권을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대구시의 의무휴업일 평일 변경도 이같은 여론을 의식해서 추진됐다. 윤석열 정부도 출범하자마자 ‘국민제안 온라인 국민투표’를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여부에 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당시 이 제안은 최상위권에 랭크됐지만, 어뷰징(중복·편법 전송)문제로 무효가 됐다.아무리 강력한 골목상권 보호정책을 내놓더라도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효과가 없다. 사실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변화된 소비자 요구와 유통산업 흐름과 맞지 않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쇼핑과 외식, 레저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골목상권이 살아나려면 이러한 소비성향에 잘 대처를 하는 수밖에 없다. 유통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2022-12-20

뷰카(VUCA)의 시대

2022년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다. 올해는 팬데믹에서 엔데믹의 시대가 열리며 일상회복을 꿈꿨던 한 해였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뚫고 나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그래서였을까. 터널 앞 눈부심에 주춤하듯이 올해는 나아가려는 힘과 머무르려는 힘이 팽팽히 맞섰다. 평범했던 일상이 ‘뉴노멀’이라는 이름 앞에 변모했고, 새로운 변화가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체했다. 일시적이었던 재택근무가 엔데믹시대에도 혼용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고, 기술혁신으로 등장했던 메타버스와 AR 등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세상을 구축하며 승승장구 중이다.그 중 가장 큰 변화는 ‘관계’로 꼽힌다. 대면 중심의 관계가 비대면으로 이어지면서 SNS(소셜미디어)세상의 관계로, 직장의 사회적 관계에서 가족 중심의 관계로 확장·변모했다. 가족, 공동체, 쉼, 돌아보기 등의 단어가 유독 회자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즈넉한 풍경을 벗 삼아 불멍, 풀멍, 물멍을 즐기려는 이들로 산과 들, 바다가 붐볐다. 물론 가족 중심 등 소규모 여행이라 차분하게, 조용히 머무른 이들이 많았다.힐링을 위한 촌캉스와 워케이션의 장소로 단연 1위는 어촌마을이다. 바다 풍광의 감성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서핑 등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MZ세대까지 몰리면서 활기를 띠었다. 비대면 맞춤형 취미인 낚시인들도 꾸준히 바다를 찾았다. 단절된 관계의 헛헛함을 ‘훌쩍 떠나는 여행’과 ‘타지에서 1달 살기’ 등과 같은 낯선 체험으로 채우는 시간이기도 했다.자연이 내어주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일상의 불안을 잠재워준다. 파도소리와 바다내음, 수평선 위 반짝거리는 햇볕 등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치유자원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불안에 맞서 다양한 형태로 고군분투했다. 다만 그 사이,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대외적인 상황도 급격하게 변했다.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은 경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최근 자본주의 경제의 순환주기인 회복과 성장, 둔화, 침체의 완만한 곡선에 변화가 감지된다. 경기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현상도 뚜렷하다. 감염병 팬데믹이 불황으로 옮아가고, 곧이어 경제 위기로 향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위기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대증요법’ 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 동시에 뷰카(VUCA)라는 경제 용어도 자주 회자된다.뷰카는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함(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뜻하는 단어로 기업 경영에 쓰는 용어다. 최근에는 세계 경제 상황과 대외적 요인이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크며, 복잡하고 모호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뜻하는 말로 확장된 것이다. 코로나발 경제 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비견되며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이 또한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워낙 천문학적인 금액이 실물경제에 스며들었고 어떤 형태로든 해소되어야하기 때문이다.뷰카의 시대를 맞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팬데믹도, 경제위기도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올해 가족, 공동체(커뮤니티), 지역(로컬) 등의 화두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위기와 불안 앞에서 사람들은 가족 중심으로 모여 지역의 공동체 안위를 살피며 버텼다는 해석이다. 글로벌 대신 ‘로컬’이란 단어에 먼저 반응하고, 네트워크 중심의 오픈 관계보다는 지인 중심의 커뮤니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정현미 작가 이 지점에서 내년의 화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동안, 자본주의의 특징인 성장과 개발의 논리는 주춤했다. 동력이 부족해진 자본주의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우리나라도 그 과정에 있다. 경제분야의 뷰카는 곧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 실직과 고물가 등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작용해 지금보다 훨씬 팍팍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IMF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은 견고해졌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도 비슷한 진단을 한다. 결국 우리는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며 이 위기를 지나가야한다. 또 다시 힐링이다. 다만 이번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며 견고한 연대와 유대를 갖춰야 할 듯하다. 팬데믹 동안 각자 도생의 고군분투 역량을 키웠지만, 단절된 인간은 반복된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바다가 내주는 품과 커뮤니티가 안겨주는 안정감 등 어떤 형태로든 결속감을 키워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관계가 중요하다. 2023년에도 감성여행, 상담예능, 힐링 등의 키워드가 여전히 대세가 될 듯하다. 그리고 그 대세 속에서 바다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할 것이다. 내년에도 바다에서 희망을 길어보길 바래본다.

2022-12-19

세 개의 동사로 이루어진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포스터 불현듯 삶이 공허해진다. 안정적인 직장에 원만한 결혼생활, 경제적인 안정까지 꾸준히 쌓아 올렸던 일상,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에 의문이 든다. 진정 내가 원했던 삶은 무엇인가.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번쯤 던졌을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인생의 행로를 수정하며 살고 있는가. 쉽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를 깨닫는 순간 의문 가득한 불안한 일상 속에 머문다.물론 누군가는 과감히 떨치고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를 이탈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여건(경제적이거나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속에서 환기의 차원에서 잠시나마 다른 궤적을 그리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혹은 상상에 그친다.선택은 크고 작은 희생과 용기를 동반한다. 한쪽을 선택하게 되면 다른 한쪽을 희생해야 한다. 그 가치에 따라 끊임없이 저울질 한 끝에 택하게 되는 것. 하지만 그 선택이 늘 더 큰 이익과 삶의 가치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고 후회하게 되며, 머뭇거린다.다시 반복된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의 삶이 불현듯 공허해지고 이것은 아니라는 의문이 든다. 떠나야할 이유와 떠나지 못하는 이유 사이에서 발목을 잡는 것들의 총량을 가늠해보지만 전자는 구체적이지 않은데 반해 후자는 구체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이다. 떠나야할 이유가 불분명한 하나라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면서도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용기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기적같은 여행’이라고 시작한다. ‘머무는 것보다 힘든 건 떠나는 거’라는 선택의 어려움을 전제에 깔고 있다. 이 영화는 홍보 문구처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가볍게(?) 해소했을 때 찾아오게 되는 이상적인 여행의 전형을 그린다. 그리고 맹렬히 먹고 기도하며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 공허함의 원인을 찾아 다닌다.안정적인 직장에 결혼을 했으며 뉴욕에 집까지 마련한 저널러스트인 리즈는 “아침에 눈 뜨면 어떤지 알아? 열정, 희망, 감정, 아무 것도 안 느껴져. 제일 힘든 순간은 지나간 줄 알았는데 계속 이렇게 사는 건 죽음보다 잔인해”라고 하며 갑자기 찾아온 삶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발리의 어느 한 점쟁이에게 들은 점괘처럼 결혼생활과 일상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크고 작은 희생과 용기를 동반하는 자아와 행복 찾기에 있어서 분명 이 영화는 일반적이지 않으며 판타지에 가깝다.아픔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탈리아의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에서 리즈는 이곳이 온통 무너져 내린 처참한 자신의 삶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론 무너져도 괜찮아.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잖아”라며 “두렵지만 한 번은 무너져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인다.인도의 수도원에서 기도를 마친 리즈는 “내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는 거다. 신은 완벽한 인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신은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존재한다”고 인도에서의 여정을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발리를 찾아가 “때론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라며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비행기 표 세 장이 복권”이라며 떠나 온 자아찾기의 결과다.영화의 제목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모두 동사(動詞)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렇게하라는 권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어쩌면 명령인지도 모른다.버리고 비우면서 채워지는게 여행이라고 할 때, 이 영화는 간명하고 단순한 버림 뒤에 발견하고 찾아지는 것, 획득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우리가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일상의 끈에서 상상만으로 그칠 때, 이 영화는 세 개의 동사처럼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권유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남는 것은 “내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좀 더 솔직히 “내가 그럴 수 있는 경제적인 형편이 될까?”라는 의문이다./(주)Engine42 대표

202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