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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해 공무원 피살, 인권 혹은 정쟁

김진국 고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를 넘지 마라”고 했다.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작 여부를 수사하는 데 대해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불만을 표시했다. 언뜻 보기에 문 전 대통령이 부하를 보호하고,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대인배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그런 첫인상에 의심이 생긴다.2020년 9월 21일 실종된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를 하루 뒤 북한군이 사살, 소각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씨가 월북했다가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발표대로라면 그는 대한민국이 싫어서 달아났고, 우리와 대치 중인 북한에 귀순했다. 죽었어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 자기 의지로 죽을 곳을 찾아갔다. 이 씨 가족도 죄인이다.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월북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라고 발표했다. 해경도 “수사했지만,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뒤집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적국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많은 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부역자로 낙인이 찍힐뻔한 이 씨가 정부의 부실 대응 탓에 희생된 억울한 국민이라고 인정받는다. 가족도 손가락질이 아니라 사과와 위로, 보호와 보상을 받게 된다.이 사건은 정쟁의 대상이면서 인권 문제다. 두 가지 성격을 다 담고 있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과 힘없는 개인이 얽혀 있다면, 국민의 인권, 생명 문제를 먼저 살펴보는 게 순서다. 국민 옆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이 이 씨와 그 가족에게 사과부터 하지 않고, “도를 넘지 말라”며 정치적 반격을 한 것은 실망스럽다.문 전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다고 한다. 이 씨가 월북했는지, 표류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단정할 수 없다면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게 하는 게 형사법의 원칙이다.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보도를 보면 단순히 부족한 정보로 추정만 한 것인지도 의문이 생긴다. 조작 가능성이다. 당시 조사 당국은 이 씨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정보를 애써 무시했다.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다른 정황들도 모두 외면했다. 관련 첩보를 삭제한 흔적도 있다. 채무 등 이 씨 형편도 과장됐다.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의심된다. 국가 공권력이 힘없는 하위 공무원이 살해되도록 방치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었다면 중대한 인권 범죄다.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월북’이라는 판단을 ‘최종승인’, ‘수용했다’라고 밝혔다. 판단을 잘못하고, 조작했다면 자기 책임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교묘한 말장난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이 ‘판단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와 판단을 ‘수용했다’라고 했다. 조작이나 오판은 부하들 책임이라는 말이다. 자신은 잘못된 보고를 받고 ‘수용’한 책임밖에 없다.문 전 대통령은 “다른 가능성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비난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가능성이나, 다른 증거를 확인하려면 수사가 필요하다. 그 증거가 어디 있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볼 수 없게 봉인했다. 유족에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해놓고, 확인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풀어줄 수 있는 건 본인이다. 그런데 감사원의 서명 조사 요구에도 그는 “무례하다”라고 발끈했다.문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국가 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는다”라고 비난했다. 증거를 조작하고, 불가능한 판단을 억지로 내려 인권을 짓밟은 ‘공직자의 자부심’은 강조하면서, 확인하지도 못한 혐의를 씌워 고통받은 피해자에게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무례하고, 도를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감히 전직 대통령을 건드린다는 말인가.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황제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는 게 민주국가다. 국민의 편, 인권의 눈으로 이 사안을 바라볼 때 국민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할 것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12-04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즐기는 이유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오랫동안 테니스와 골프를 즐겨왔다. 둘 다 나이가 들어도 즐길 수 있는 개인 운동으로 즐겁고 건강에도 좋은 운동들이다.그런데 “테니스와 골프 중 어느 운동이 더 즐거운가”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테니스”라고 대답한다.필자가 왜 테니스를 더 좋아하고 즐길까 하는 이유가 좀 색다르다. 운동량이 더 많아서 라든가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이 보통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좋아하는 대표적인 이유이다.테니스가 2시간 정도의 운동량으로 4시간의 골프운동량을 넘어서고 잠시 시간을 내서 칠 수 있지만 골프는 하루 종일 시간을 내야 하고 비용도 한국에서는 테니스보다 엄청 비싸기에 그런 이유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대표적 이유가 된다.그런데 필자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이유는 위에 열거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주 색다른 이유가 있다.스코어를 세는 방식이 공정하기에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이다. 테니스는 상대의 공을 받아치면서 스코어가 카운트 되기에 속일 수도 없고 봐줄 수도 없는 경기이다. 물론 약한 상대를 위해 살살 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스코어도 정확히 카운트 된다.그런데 한국의 동호인 골프는 시작부터 룰이 파격적이다. 첫 홀이나 마지막 홀은 모두 파(par)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더블보기(double bogey) 이상은 카운트 안한다든가 하는 룰도 있다. 또 그린에서 OK라는 제도가 있는데 기준이 들쑥 날쑥이어서 한사람이 버디(birdie)를 하면 모두 OK라고 하면서 퍼팅을 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을 만지고 라이(lie)를 개선한다든가 오비, 해저드 티(OB, Hazard tee) 가 별도로 플레이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캐디에게 들은 이야기는 일본이나 미국사람들이 골프를 치면 스코어를 공정하고 정확히 카운트 한다고 한다. 스코어를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공정한 카운트를 통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한국 골퍼들에게 인기를 끄는, 줄로 연결된 티(tee)가 왜 미국에는 없는지 한동안 의아했었다. 그런데 줄티는 타구 방향을 가르치기 때문에 룰에 어긋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룰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한국에서 불공정한 스코어링으로 진행되는 골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적당주의를 거부하고 룰을 지키는 그들의 몸에 밴 문화 때문이 아닐까?‘MIT, 스탠퍼드 같은 미국 명문대의 조교수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말은 그들이 테뉴어라고 일컫는 종신직을 얻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반면, 한국 대학 교수들의 테뉴어 심사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명목뿐인 경우가 많다. 한국대학에서 테뉴어를 못 받아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교수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학계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부터 시작해서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 사고는 물론,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학계, 사회,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얼마 전 미국유학 중 맹장이 터져 수술을 해야 하는 아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수술을 즉시 하지 않고, 항생제 투여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는 의사를 보면서 답답해하던 기억이 있다. 수술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미국 의술의 현장 집행 방법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던 적이 있다.한국의 친구 의사는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골프도 잘하고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도 잘하는 거야. 자네 아들 맹장염 수술도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필자에게 한 가지 진한 의문이 다가왔다. “골프도 잘하고 수술도 잘하는 손재주 좋고 머리 좋고 재능 있는 한국 사람들이 왜 노벨상은 단 한 개도 타지 못할까?”엉뚱하게도 필자는 골프에서 원칙을 지키는 스코어링과 맹장염 수술을 미루면서 원칙에 충실하려는 미국의학이 답답하긴 해도 노벨상 수백개를 타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사실 수천가지 약품은 한국인이 만든 건 없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만든 약품과 CT, MRI 등 기술과 로봇 수술 등 대부분 서양에서 만들어 졌다. 손재주는 좋다고 하지만 그들이 만든 수술방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할까?“빨리빨리” 와 적당주의가 빨라보여도 결국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를 가져와 각종사고는 물론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얕은 학문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닐까?아마도 그건 동호인 골프에서부터 적당주의 카운트 방식을 몰아내는 것이 첫 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2022-12-04

기후 변화 불확실성에 대응할 역량 있는가?

양만재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폭우가 또 내렸다. 지난달 22일 오전 11시까지 울진군 온정면 182.5㎜, 영덕군 영해면 146.4㎜, 포항시 호미곶 139.5㎜의 비가 내렸다. 11월 최대 강수량이라고 했다.겨울에 즈음하여 집중 호우는 기후변화를 연속 실감한다. 지난 9월초 한반도에 상륙한 힌남노 태풍은 한국의 제조업의 기반을 붕괴시켰고, 포항지역 시민 10명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갔고, 600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시간당 100㎜ 이상 내린 폭우에 따른 천재지변의 자연재난과 도시화와 산업화에 의한 인재와 결합된 일명 ‘복합참사’(hybrid disaster)일게다.8월 서울 폭우, 9월 힌남노 폭우에 이어 11월에 다시 우리 경상북도 지역은 집중호우로 생명과 재산에 위협에 느끼고 있는데 반해, 호남지역은 최악의 가을가뭄으로 인해 광주지역은 30년만에 제한 급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기후변화에 따른 참사라는 말이 언어의 수준을 넘어 재산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갈수록 점증되고 있다. 왜냐면, 첫째, 기후변화는 태풍, 홍수, 산불 등과 같은 재난을 갑작스럽게 발생케 한다는 것이다.포항시가 겪은 힌남노 태풍으로 홍수 피해도 기후변화의 속성을 보였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자연재난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연속적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여 재난의 피해가 ‘계단식’(cascading)으로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서울과 경상지역에서 예기치 않은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전라도 지역은 최악의 가뭄 사태로 재난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상황이 입증하고 있다.기후변화는 다중적인 속성을 실감케 한다. 이상 기후현상이 발생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예기치 않은 재난이 발생하는 특징도 보인다.예컨대 지난 500년 동안 홍수피해와 무관하였던 지역에서 홍수피해를 키워 세상이 변했음을 체험하고 있다.우리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포스코 창립 50여년만에 공장가동이 멈춘 초유의 사태를 직면했으니 말이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창출하기도 한다. 지구의 평균기온 1℃가 증가하면 지구의 극단적인 참사를 일으키는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로 귀속시킬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다.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세계협의체가 지난 4월에 발표한 내용이다. “만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에 도달하면 약 22억 인구가 5년마다 더 잦고 거센 폭염에 노출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일부 생물종은 멸종하고 식량위기가 심화하고 새 전염병이 출몰한다.”점진적인 작은 기온 변화가 갑작스럽고 예측가능하지 않는 참사의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이다. 202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시작하지 않으면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기후변화의 재난증가는 이제 더 이상 강 건너에서 바라볼 불이 아니다. 재난의 강도, 범위, 빈도가 증가할 것이며 일상의 삶을 파괴하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세계 국가의 정상들을 향해 비판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전달하고 있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더욱 위협적인 주장을 했다.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존재론적 위협이며 이로 인해 인류는 여섯 번째 대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생존은 회색 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죽느냐 사느냐의 영역이다. 현대 문명의 존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후 변화는 저지되어야만 한다.”기후재난 위험에 대응하는 전략과 방안도 결코 쉽지 않다. 복합재난인데다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예측가능성이 낮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이나 다름없다. 예컨대 기상청의 예보가 예상에서 벗어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우수한 장비를 갖춘 기상청은 힌남노 태풍이 포항에 근접할 것이라는 예보는 할 수 있지만, 포항시의 어느 지역에 어느 시간대에 400~500㎜ 집중호우 예측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아직은 못 미치고 있다. ‘위험’을 쉽게 인지할 수 있고 충분한 예상을 할 수 있고, 사전 징후와 예고가 통하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다. 위험을 예측하기 힘들고 예측할 확률적 지식도 부재한 ‘불확실성이 높은 복합재난’이다.그럴지라도 우리는 지역수준에서의 기후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실천적 전략으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과 함께 살고 대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예측과 통제로 주도하는 중앙 집중식 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지식에 의해 대처하는 기술 관료적인 방안으로는 부족하다.지역에서의 민관이 자발적이며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협조와 참여를 이끌어 내고 다양한 지식을 활용하는 ‘회복탄력성’과 ‘변혁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현실이다.

2022-12-04

경운기

가난했던 아버지는 반평생 땅 한 평 가지지 못했다.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산비탈을 개간하여 고구마나 콩을 심어 놓으면 짐승이 제 주인인 듯 먼저 다녀갔다. 실망한 아버지는 점점 바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산골의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들이닥치면 그제야 이불에서 빠져나왔다.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걸음이 재발랐다. 동살이 잡히면 채마밭에서 웃자란 풀을 향해 호미를 들었다. 고추, 상추, 호박이 잘 여물 수 있게 고랑을 돋우고는 부엌으로 우물가로 잰걸음을 걸었다.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봉수대처럼 산골 마을의 아침을 알렸다. 그러나 우리 집 살림살이는 쉽게 볕이 들지 않았다갑자기 어머니 걸음이 빨라졌다. 새마을 개발위원과 이장을 만나 머리를 맞대더니 이웃의 논과 밭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뭔가를 도모하는가 싶더니 읍내에 나가 경운기를 덜컥 샀다. 농사일에 서툴렀던 아버지는 돈이 없다는 것은 참 좋은 핑계였다. 더욱이 경운기처럼 덩치 큰 농기구를 들인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경운기가 집에 오는 날, 아버지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구령에 맞춰 출정식을 하고 우리를 경운기에 태웠다. 어머니는 대문을 활짝 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의 심장도 경운기 엔진처럼 힘이 넘쳤다. 스타트 레버를 수십 번 돌려 퉁, 퉁, 탕, 탕, 탕 경운기 엔진과 펌프질한 아버지의 심장이 밭으로 나갈 준비를 끝냈다.동창을 벗기는 것은 아버지의 경운기 소리였다. 비알밭을 맴돌고 있던 콩새는 아버지 연장 끄는 소리에 숨죽이고 경운기 소리에 댓 걸음 도망쳤다. 산비탈에서 탕탕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논에서, 하천 밭에서 저녁노을을 물릴 때까지 경운기 소리가 났다.타작할 때면 경운기에 줄을 걸어 탈곡기를 돌렸다. 경운기 소리 못지않게 탈곡기도 ‘아롱시롱’ 떠들어 댔다. 그 소리에 신이 난 우리는 마당과 뒤안을 쏘다니며 놀았다.하루는, 평상시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막 모퉁이를 돌아가다가 경운기가 갑자기 산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방향을 돌려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급기야 아버지는 조종간까지 놓쳐버렸다. 그 순간, 아버지는 거칠게 발버둥 치는 경운기에서 뛰어내렸다. 어머니까지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도망갔다.어머니는 평생을 같이한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고 따졌다. 다 늙어서 혼자 살려고 줄행랑치는 꼴이 볼썽사나웠다며 어머니는 분한 마음을 쏟아냈다. 겁이 나서 얼떨결에 그랬다고 아버지가 해명했지만, 경운기 사건이 소문이 나자 아버지는 대문 밖을 나가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물렀다. 이순혜 수필가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지런에 어지간히 시달린 경운기였지만, 헛간 구석으로 밀려나 녹이 슬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면 덜컹거렸던 몸을 쉬고 또 가야 할 곳을 생각하며 이우는 별을 헤아렸던 때가 가물가물했다. 후둑 후두두 헛간 슬레이트 지붕에 비가 내려도 아버지는 경운기를 돌보지 않았다.아버지도 다리에 힘이 빠졌다. 헛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경운기와 마루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는 그렇게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경운기도 탕탕거렸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헛간에 오도카니 놓인 경운기에 아버지는 더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아버지의 전성기도 이울었다. 뜨거운 심장 소리를 내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아버지는 더는 경운기 시동을 걸지 않았다. 마당 구석에 있던 경운기는 텅텅 힘 빠진 소리를 내며 옆집 아재네로 옮겨졌다.경운기는 일머리를 모르는 아버지에게 자존심과 같은 존재였다. 그 자존심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기력도 쇠하여졌다. 그렇게 경운기가 없는 헛간은 오래도록 고요에 들었다.어디선가 탕탕탕 경운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22-12-04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대구 동구

윤석준 대구 동구청장 “모든 것은 SF로 통한다. 현대의 SF 작가들이 오늘 발명하는 것들을 당신과 나는 내일 실현할 것이다.”무려 50년 전, 영국의 SF 소설가이자 역사가인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가 한 말이다.드론택시, 플라잉카, 자율주행차 등 SF 작가들이 상상하고, 수많은 영화로 나왔던 장면들이 이제 현실로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그 현실에 한 발 다가간 날이 최근 있었다. 동구청이 주관한 공항후적지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미래모빌리티와 첨단산업이 융합된 스마트도시’란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국내 최고의 도시계획과 미래모빌리티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주제 발표와 토론을 듣는 내내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았다.드론 택시로 이동하는 시민들, 버티포트(Vertiport)라고 불리는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교통)의 정류장에서 하늘로 날 준비를 하는 플라잉카 등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우리 동구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을.‘UAM은 가까운 미래의 이동수단이 될 것이며, 그 중심엔 대구 동구가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많은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어디 상상이나 한 번 해봤을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낙후된 도시, 소음의 도시, 고도제한의 도시였던 곳이 바로 동구였다.하지만 이제 동구는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UAM 특화도시로 발돋움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토론회에서 공항후적지가 UAM 특화도시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임이 확인됐다.특히 공항후적지는 자유로운 도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고도 설정부터 회랑 설계가 용이하고, 충분한 서비스 인프라를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 마디로 공항후적지는 계획된 UAM 특화도시로 건설이 가능하다는 말이다.앞으로 공항후적지는 UAM이 결합된 친환경 글로벌 수변도시로 거듭나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의 대변혁을 이끌 것이다.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항후적지 개발에 대한 동구 주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동구청에 실시한 공항후적지 개발 구민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93.6%가 ‘공항후적지 개발이 동구발전에 기여할 것이다’고 답한 것. 인상 깊었던 점은 공항후적지 개발을 통해 동구에 계속 거주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도 95.7%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공항후적지 개발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과제도 확인 할 수 있었다.응답자 중 40.3%가 다양한 첨단산업이 어우러진 중견 기업도시 조성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34.9%는 국내외 대기업 1∼2개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꼽기도 했다.즉 아파트 위주의 공동주택이 아닌 첨단산업을 통한 기업 유치로 일자리를 만들라는 게 동구 주민들의 생각이다. 또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답했다.이제 시작이다.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의견 그리고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주민들의 생각을 모으고 모아 공항후적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내 신공항 특별법 역시 통과되어야 한다.앞으로 대구 동구청은 공항후적지 개발과 관련해 주민들의 생각을 묻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 생각이다.특히 공항후적지 인프라 구성에 대해 ‘테마가 있는 도심 숲, 수변공간 조성’(38.9%), ‘대규모 복합쇼핑몰’(29.1%), ‘세계적인 테마파크 유치’(17.8%) 등 의견이 다양한 만큼 주민들이 원하는 수변공간의 모습은 무엇인지, 원하는 쇼핑몰과 세계적인 테마파크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지속적으로 들어볼 생각이다.토론회에 참여한 한 주민은 나에게 “공항이 간다는 말을 들은 게 10년도 넘었다. 가지 못할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토론회를 보니 이제 공항이 가는 게 조금 실감이 난다”고 말씀해 주셨다.주민들의 기대가 크다.소음과 고도제한 등으로 수십년 고통을 받아온 우리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성공적인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과 공항후적지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동구 주민 모두와 함께 무한한 가능성이 확신이 되고,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공항후적지를 반드시 만들겠다.

2022-12-04

개인과 국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월남(越南) 작가 이범선(1920∼1982)의 단편소설 ‘오발탄’(1959)을 읽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요즘엔 상상하기도 힘든 새빨간 가난이 등장인물들을 날로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가장인 철호의 모친은 해방이 되었다고 곱게 차려입고 만세까지 불렀지만, 토지개혁으로 집과 땅을 빼앗긴 채 남한으로 내려온다. 6·25 한국동란 와중에 폭격으로 실성한 그녀 입에서는 ‘가자, 가자’하는 소리만 흘러나온다.계리사(공인회계사) 사무실 서기로 일하는 철호에게는 이대를 졸업한 아내와 다섯 살 먹은 딸아이, 남동생 영호와 여동생 명숙이 있다. 10년 전 음대 졸업식장에서 싱싱하고 어여뻤던 아내는 가난에 찌든 만삭의 몸이고, 딸아이는 철호의 셔츠를 잘라 만든 치마를 입고 있다. 영호는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제대한 후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2년 넘게 무직이다. ‘양공주’ 노릇을 하는 명숙에게 철호는 말을 섞지 않은 지 오래다.“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엔 속이 너무나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재가 군데군데 헌 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처절한 빈곤으로 시달리는 철호에게 영호가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던지자고 말한다. 양심은 손끝의 가시, 윤리는 나일론 팬티, 관습은 리본, 법률은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가시는 빼내면 그뿐이고, 나일론 팬티는 입으나 마나 하며, 리본은 없어도 그만이고, 허수아비에 참새는 놀라지만, 까마귀는 그것을 비웃는다는 명석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하지만 양심적인 지식인이자 선량한 인간 철호는 영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과 정의 그리고 윤리와 도덕은 철호가 금과옥조로 지키는 신념이자 철칙이다. 생활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철호는 금지의 선(線)을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영호의 생각과 행동은 철호와 다르다. 법과 정의가 무너진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극단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인 은행강도 짓을 하는 것이다.우리는 ‘오발탄’의 결말을 알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한 그들을 찾아오는 것은 죽음과 감옥과 처절을 극한 완벽한 절망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철호의 선택과 영호의 선택을 사유해야 한다. 국민의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하여 영호는 격렬한 저항의 방식을 택하지만, 철호는 순응 일변도로 나아간다. 현대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하는 심각한 문제를 이범선은 제기한 셈이다.이승만 치하에서도 적잖은 인간들은 호의호식했고, 일부는 권력의 호사마저 누렸다. 그러나 허다한 철호와 영호는 가족은커녕 개인 하나도 구원하지 못한 국가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그 가난뱅이들의 뼈아픈 삶의 질곡을 외면하고 그 같은 참상에 침묵하는 국가를 어찌할 것인지, 그런 정황에 처한 개인의 선택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오발탄’은 묻고 있다.

2022-12-04

“축구공은 둥글다”

우정구 논설위원 축구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현대식 축구의 개념이 완성된 곳은 영국이다. 1863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축구협회를 설립했고, 이후 축구의 세계화에 기여함으로써 종주국의 위치를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우리나라에 축구가 전해진 것은 1882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군에 의해서다. 육지에 상륙한 그들이 축구를 하고 이를 지켜본 어린이에게 축구공을 건네주고 간 것이 시발이라 한다.축구공은 총 12개의 5각형과 20개의 6각형으로 이어져 있다. 공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각 부분들이 부풀어 오르면서 꼭지점과 모서리가 없어지고 둥근 모양으로 변한다.“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을 쓴다. 축구 경기에는 이변이 일어날 수 있기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연속 이변이 일어나 화제다.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꺾고 연속 16강에 올랐는가 하면 한국이 포르투갈에 역전승하면서 16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한국과 일본 등의 승전보는 아시아권 국가의 축구 역량이 크게 신장된 결과기도 하지만 이들 국가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평가도 있다.특히 일본은 2005년 ‘일본의 길’ 프로젝트를 시작해 이번 대회에 모두 19명의 유럽파 출신 선수를 등용했다. 우리(8명) 보다 2배나 많은 숫자다.월드컵 4회 우승 경력을 가진 독일 전차군단의 몰락 또한 이변이다. 준우승 4번까지 합쳐 독일만큼 막강한 팀은 없으나 2번 연속 16강 탈락으로 독일은 충격에 빠져 있다.스포츠 경기의 이변은 스포츠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다. 뻔한 승부는 재미가 없다. 둥근 축구공 때문에 한국 축구에 거는 기대감 또한 높아져 있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04

포항만 제공할 수 있는‘항만 낀 테슬라 産團’

포항시가 ‘테슬라전기차 아시아 제2공장’ 유치를 위해 전용 산업단지를 영일만에 조성하기로 한 것은 놀라운 발상이다. 포항시는 지난 1일 테슬라 기가팩토리 전용 산단 지정을 위해 경북도와 협의 절차에 들어갔다. 해당 부지는 북구 흥해읍 용한리(영일만3일반산업단지와 영일만4일반산업단지 우측)다. 이 부지는 영일만 산업단지 중에서 항만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정부가 최근 개최한 테슬라 공장유치 제안설명회에서도 밝혔듯이, 포항은 테슬라 공장입지로는 국내 최적지다. 전용항만 제공 외에도, 포항은 전기차의 핵심인 전국 최강의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포항의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에는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같은 세계적인 이차전지 대기업이 포진해 있으며, 정부로부터 3년 연속 우수 특구로 지정됐다.포항에는 이미 세계 기업가치 1위인 애플이 들어와 있다. 포스텍에 입주한 애플은 지난 4월부터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를 개설해 최근 두 번째 학기 수강생을 모집하는 중이다. 9개월 과정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애플 아카데미는 소프트웨어 핵심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다. 애플은 이와 함께 포항에 ‘애플 제조업 RD 지원센터’도 열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신 스마트 기술을 트레이닝시키고 있다. 애플은 그동안 스마트폰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시장에 투자할 마음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지만,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포항에 투자하게 됐다. 경북도와 포항시, 포스텍이 민·관 합동TF를 구성해 애플 유치에 총력을 쏟아온 결과다.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재 포항지곡연구단지에는 제3·4세대 방사광가속기, 나노융합기술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등의 우수한 연구기관과 포항창조경제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자산과 애플기술까지 연계할 경우, 테슬라 전기차 공장의 효율성과 경제적 성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 2공장 부지를 찾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포항을 눈여겨볼 것을 기대한다.

2022-12-04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나눔 캠페인에 동참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희망2023 나눔캠페인을 시작했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경북은 도청 앞마당에서 출범식을 갖고 사랑의 온도 탑을 채우기 위한 본격 장정에 나섰다. 이 캠페인은 이달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62일간 진행되며 전국 17개 시도가 함께 동참한다. 경북은 지난해 목표액보다 11%가 늘어난 152억6천만원을 목표로 했다. 대구시 목표액은 100억원이다. 이 기간동인 기부에 참여할 사람은 공동모금회 사랑의 계좌나 각 주민센터, 언론사 등에 성금과 물품을 기탁하면 된다.매년 이맘때쯤 사랑의 온도탑이 올라가게 되면 우리는 또한번 우리의 이웃을 생각하게 된다. 한눈팔지 않고 바쁘게 살아왔던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어렵고 힘든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시하는 시간이다.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3년째 이어지는 데다 글로벌 경제난까지 겹쳐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이 더 늘었다. 물가는 다락같이 올랐고 일자리마저 줄어 방황하는 이웃들도 늘었다.십시일반의 기부가 지금 필요한 때다. 작은 나의 기부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이웃에게는 희망을 안겨 준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강국이라 하지만 기부문화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2020년 세계기부지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110위권에 머물렀다. 매년 기부금은 늘지만 기부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나눔과 봉사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경북어린이집연합회는 2014년부터 사랑의 동전모으기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고사리손으로 모은 동전이 모여 2억원이 넘는 돈이 경북지역의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전달됐다. 이번도 이들이 모은 동전이 사랑의 탑 첫 기부자로 등록했다. 이웃사랑은 실천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 기부액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실천이 중요하다. 올해도 사랑의 온도탑을 채워 우리 사회에 훈훈한 온정의 등불을 밝히자.

2022-12-04

시대, 헷갈리다

강길수 수필가 ‘날더러 어찌 살라고 이리도 갑자기 불어닥칩니까. 야속해요. 헷갈려요!’…. 학교 담장에서 들려 오는 소리다. 소리 내는 장미꽃 붉은 볼에 냉기가 스며있다.듬성듬성하게 아직도 푸른 잎 사이로, 네댓 송이 장미꽃 붉은 볼이 초겨울을 밝힌다. 11월 마지막 날부터 밀어닥친 한파를 담장에 매달린 채, 장미꽃은 무방비로 사흘째 견뎌내고 있다. 더 매서운 칼바람 덮쳐오면, 저 장미꽃과 잎은 산 채로 얼어버릴 것이다. 그리곤 마른 미라가 되었다가 스러져 갈 테지. 운 좋아 장미 뿌리 사는 땅에 떨어지면 훗날, 장미꽃으로 환생할 수도 있으리라.장미뿐만 아니라 아직 잎 푸른 나무와 많은 풀, 꽃을 피워낸 화초들도 높바람에 헷갈리다 산 채로 얼어 생을 다할 터. 자연은 늘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라고 누가 말할지 모른다. 아니다. 한 세기도 못 산 내 눈에 비친 자연은, 어릴 때와는 너무 달라졌다. 기후변화 시대라 해도 요즈음의 자연은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사계절이 한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꼈던 게 엊그제 같다. 한데, 하루에 기온이 초가을에서 한겨울로 간 것처럼 변하니 사람도, 식물도 헷갈리고 어지러운 것이리라.그래서일까. 한 주 전쯤 제자리 돌기라도 한 듯, 몇 시간 약한 어지럼증이 왔었다. 빈혈 증세거니 했는데, 아내의 성화로 이튿날 난생처음 신경과에 가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이상소견 없음’으로 나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이 들며 기력이 쇠하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자연환경 요인과 정치 사회적 요인, 심리적 요인이 그렇게 했을 수 있다.다른 나라에서 바닷물이 상승하여 육지를 삼키는데도,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제주도를 비롯한 동해안 등 국토의 해안선에 해수면이 오르며 심각한 변화를 일으켜도, 언론과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미온적이다. 꿀벌개체수나 곤충이 줄어들어 농민들이 작물 재배에 수분(受粉)용 벌을 키우거나, 사람이 수분 작업을 하는 사태에 이르러도 사회는 무관심하다.헷갈린다. 나와 너, 우리나라와 지구촌도 헷갈린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촌을 헷갈리게 한다. 민생을 버린 채 핵폭탄을 생명줄로 삼아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도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간이 부었는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정치권의 행태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을 헷갈리고, 분노케 한다. 명분 없는 파업으로, 나라 경제를 볼모 잡는 소위 귀족노조들이 우리를 헷갈리고 허탈하게 한다.우리나라 나아가 지구촌은, 헷갈리는 시대를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46억 년이라는 지구촌 역사에서 ‘자칭 만물의 영장 인간’이란 종이 등장한 것은, 길게 잡아 800만 년 전이라 한다. 현생인류와 가까운 계통은 역사가 300만 년 정도라고 본다. 하여, 인간이 지성체라면, 지구와 다른 생명체의 입장도 헤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인간은 자연을 헷갈리게 하는 악질변종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이제 인간은, 자기 욕망과 욕구를 극복하며 이 헷갈리는 세상과 자연을 치유하는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 길이 비록, 탈 문명을 요구한다 해도….

2022-12-04

대표라는 무게

유영희작가 2022년은 참 힘 빠지는 한 해였다. 국정 지지도를 회복하지 못하는 집권 여당은 물론,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 거대 야당의 행태에 국민의 한숨은 날로 커지고 있다.집값은 좀 내려간 듯하지만 거래 절벽으로 큰 효과는 없는 상태다. 고물가 때문에 실질 소득은 2.8% 줄고, 하위 20% 가구는 명목 소득마저 줄어들어 빈부 격차는 더 커졌다.이렇게 우울한 한 해를 보내던 우리 국민에게 12월 3일 새벽 울려 퍼진 대표팀의 월드컵 16강 진출 소식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우리 팀이 16강에 진출할 확률은 9%였고, 32강 진출도 어마어마한 성과였다고 하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이 포르투갈에게 먼저 1점을 내주었을 때 선수들이 얼마나 절망했을까? 우리가 1점을 얻어 추가 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의 선수들의 긴장감 역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 선수 7명에게 둘러싸인 손흥민이 가랑이 사이로 환상적인 패스를 하고, 열심히 공을 따라온 황희찬이 귀신같이 이 공을 잡아채어 골을 넣었으니, 소설을 쓴대도 이런 역전극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 결과가 나오기까지 5분은 선수들에게 숨 막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무엇보다 이 역전 드라마가 더 감동적인 이유는 손흥민과 황희찬의 부상 투혼 때문이다. 손흥민은 바로 한 달 전 챔피언스리그 경기 중 부상으로 안와골절 수술을 받아 마스크를 끼고 뛰고 있었고, 역전 골을 넣은 황희찬 역시 허벅지 부상으로 1, 2차 전에는 출전도 하지 못하고 3차 전에서도 후반전에서야 뛸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다.이런 부상에도 이들을 열심히 뛰게 한 원동력은 1억6천만 원의 포상금이 아니다.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9%라는, 그 작은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너무나 많이 노력했고, 부담 속에서 성장해왔다고 하면서, 골 넣은 것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16강 진출이 기쁘다고 한다. 16강 진출이 온 국민의 열망이라는 것을 선수들은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개인의 명예나 부는 그 책임을 다했을 때 뒤따라오는 포상일 뿐이다.그런데 정작 안전과 생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을 약속하여 선출되었건만, 당선된 후에는 공복으로서의 책임은 뒷전이고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 10·29 참사만 봐도 일선에서 책임져야 하는 용산구청장은 거짓말까지 하며 발뺌하기 바쁘고, 수해로 일가족이 참사한 지역에 간 정치인은 비가 와야 사진이 잘 나온다는 망언까지 서슴없이 한다.요즘 내가 사는 지역의 기초 의회 정례회를 참관하는 중이다. 의원들이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오거나, 공무원의 답을 듣지도 않고 윽박지르거나, 심지어 결석하는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의원들이 여럿 보였다. 중앙정치인들처럼 이들에게도 대표라는 무게는 가볍기 그지없었다. 혹시 우리가 스포츠에 거는 기대만큼 정치에 관심 갖지 않아서 이들에게 대표라는 무게가 이토록 가벼운 것일까?

2022-12-04

겨울의 맛, 과메기

윤영대수필가 올해 첫눈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야 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겨울이 되면 제일 먼저 생각되는 것이 구룡포 바닷가 덕장이나 죽도시장 건어물 거리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반쯤 마른 꽁치 과메기, 또 그 맛이다.과메기는 관목(貫目), 즉 ‘눈을 꿰다’는 말에서 ‘목’을 ‘메기’로 부른 사투리가 굳어진 것이라 하며, 청어나 꽁치를 통째로 짚끈에 묶어 약 1주일간 바닷가 찬바람에 말린 반 건어물로 포항 지역 특산품이다. 원래 가마솥 부엌의 연기로 그슬며 말렸다 얼렸다 하는 ‘엮걸이’ 통 과메기가 전통 방식이었고 조금은 비린 맛과 물컹한 식감이 좋은 훈제였는데 요즘은 반으로 잘라서 말린 ‘배지기’ ‘편 과메기’가 대세이고 11월부터 건조설비를 이용하여 말리기도 한다. 나는 청어 과메기가 귀한 탓인지 맛은 더 있는 것 같다.시장에서 과메기를 고르다 보면 ‘발 과메기’라고 있기에 ‘발로 밟아서 숙성시키나?’했더니 발(足)이 아니고 해변에 즐비한 덕장의 발(簾)에 걸어 말렸다는 뜻이란다. 10여 년 전까지는 20마리씩 엮어놓은 것을 사서 아파트 뒤쪽 외벽에 걸어두고 한 마리씩 빼먹곤 했는데 가끔 큰 새들이 매달려 쪼아먹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제대로 말리면 짠 내나 비린내가 없고 초고추장에 찍어 알배추나 깻잎, 생미역 또는 생김에 싸서 먹으며 소주 한잔 마시는 것도 겨울의 별미요 낭만이다. 예전에는 주점 난롯가에 앉아 껍질을 직접 벗겨 먹고 구워 먹는 맛도 있었다. 언젠가 여름철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과메기를 그대로 먹어봤더니 푸석하게 씹히며 맛은 어디 가고 없다. 과메기는 겨울철 음식인 것이 틀림없다. 불포화지방산과 오메가3 등 영양분이 많아서 혈관과 뼈, 두뇌와 눈의 건강에 좋고 노화 방지 등에도 효과가 많다고 하지만 꾸덕한 기름 덩어리가 산패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서 먹어야 한다.12월 3일과 4일 이틀간 과메기 특구로 지정된 구룡포의 과메기 문화거리 ‘아라광장’에서 코로나로 2년간 열리지 못했던 제23회 과메기축제가 열린다. 힌남노 태풍의 피해를 극복하는 힘을 보태자는 마음으로 ‘바다와 바람이 키운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구룡포 과메기’를 표방하며 축하공연과 가요제, 그리고 깜짝 경매까지 열린다니 옷 두껍게 입고 둘러보며 시식도 해보고 포항 지방의 특산물을 K-푸드로서의 가치를 높여보자.매년 연말이면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채소와 고추장 등으로 푸짐하게 꾸며져 잘 손질된 과메기 1세트씩을 보내어 맛보게 한다. 모두 잘 먹었다는 감사 인사와 함께 내년 겨울이 기다려진다며 웃음을 전해오면 나 또한 50여 년 전 낯선 포항에 와서 처음 과메기를 맛본 기억들이 생생하다. 자랑하듯 꽁치 과메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기에 그 작고 마른 꽁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었던 꽁치는 ‘양미리’였고 사투리로 알았던‘삼마’는 일본말이었던 것이다. 과메기 꽁치가 통째로 식탁에 올라왔고 각자 껍질을 벗겨 먹으며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새롭다.올해도 첫눈이 내리면 겨울의 맛, 과메기에 꽂혀 요즘 어수선한 세태의 씁쓸한 맛을 날려버리고 싶다.

2022-12-01

유언비어, 청담동 술판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 2022년 7월 20일 01시에서 03시 사이, 서울 청담동의 모 술집에서 김앤장로펌의 변호사 30여 명과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장관,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총재 등이 모여 술판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첼로 반주에 맞추어 ‘동백아가씨’ 노래를 불렀고, 한동훈 장관은 윤도현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반주를 한 첼로연주자는 경비원들의 통제로 남자친구와 전화통화도 할 수가 없었다.# 위의 스토리는 그 술집에서 첼로를 연주한 채아라는 여성이 당일 02시 59분에 남자친구에게 한 전화의 내용이다. 그 통화를 녹음한 남자친구는 ‘더탐사’라는 유튜브에 제보를 했다. 그것을 또 누가 더불어민주당에 제보를 해서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 10월 24일 국회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을 불러놓고 통화녹음을 공개하면서 사실이냐고 물었다.# 한동훈 장관은 장관직을 걸겠다면서 강력 부인했지만, ‘더탐사’ 유튜브가 연일 의혹을 부풀리는 방송을 하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가세에다 다른 언론매체들이 베껴서 쓰거나 방영을 하는 바람에 일파만파 국내외로 퍼져나갔다. 일단은 육하원칙을 갖춘 위의 통화내용에 대해 절대로 아닐 거라고 확신을 한 국민들은 그리 많지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는 반신반의 했을 것이고, 틀림이 없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11월 23일 첼로 반주자 채아라는 여성이 서초경찰서에 출두해서 당시 남자친구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 거짓이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 시간에 남자친구에게는 말 못할 다른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거짓말로 둘러댄 거라는 얘기다. 온 국민을 의혹의 늪에 빠트린 사건이 허무하게 끝나는 결말이었다. 그러면 폭로라는 미명으로 모함과 음해에 가담했던 자들은 ‘아니면 말고’ 한 마디로 깨끗이 손을 씻을 수 있는 일인가. 하기야 아직도 그 여성이 경찰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해서 거짓 자백을 한 거라고 믿는 자들이 없지 않지만.# 23년 동안 한겨레신문 기자였고, 청와대 대변인 경력에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 과연 ‘청담동 술판’을 사실이라고 믿었을까. 국감장에서 발설하기 전에 최소한의 사실 확인만 했더라도, 아니 자신의 청와대 근무 경험으로 미루어도 대통령이 심야에 그런 술판을 벌였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는 일이다. 더구나 바로 그날 한·가봉 정성회담이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 접견이 있으며,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앞둔 대통령이 새벽 3시까지 술집에서 술판을 벌였을 거라고 믿는다면 어찌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의혹을 제기하고 부풀린 자들은 아무도 팩트체크(fact-checking)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혹을 부풀리기 위한 구실을 찾는 데만 혈안이었다. 그들은 옛날 윤지오 사건 때처럼 채아라는 여성이 외국으로 도피하거나 아주 사라져서 기껏 부풀려 놓은 의혹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허황된 기대는 꺼지고,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모함하고 음해한 책임을 질 일만 남았다.

2022-12-01

아이들과 함께 읽는 ‘영혼의 난로’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해도 다 지나가고 있다. 절대 가난을 경험한 우리 세대에게 겨울은 추운 계절이다. 메주를 쑤고 김장을 담는 겨울 준비 속에서 연탄도 들이지 못하고 힘든 추위를 타는 아이들은 없을지 걱정이 된다.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이웃의 이야기들이 간간이 들려오는 이 겨울, 풍요 속에 가려진 빈곤이 자신의 부끄러움인양 아프다는 티도 못 내고 혹시나 배를 곯지는 않을까 걱정이다.그러나 더 걱정인 것은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며 배보다 가슴이 먼저 허기진 아이들이다.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속 패달을 밟고 있다지만, 우리 아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계가 단절되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높아져 각종 정신건강 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내 머릿속에 아직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이 느껴질 때,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은 식어버린 내 감성에 모닥불이 필요할 때면 나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 ‘20세기의 성서’라 일컬어지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The Prophet)’로 고교시절 읽었던 감동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책이다. 100여년 전의 생각이라 어떤 이에게는 지금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모순적이라고도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모순이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소중한 무엇인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그렇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 영혼이 바로 그것이다.‘알무스타파’라는 예언자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사랑, 결혼, 일, 아이들, 가르친다는 것, 선과 악 등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진리를 깊이 있게 던져준다. 스물여섯 편의 시적 에세이와 그가 직접 그린 신비스러운 삽화들이 담긴 이 책은 지금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화가이자 시인이며 작가인 칼릴 지브란은 1923년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영혼의 순례자’로 영미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자’이자 ‘듣는 자’이며, 자신이 전하는 말보다 오팔리즈 시민들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20세기의 단테라 칭송받는 칼릴 지브란의 글귀는 사후에도 전 세계에 널리 널리 퍼져 사람들에게 따스한 울림을 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육신의 거처를 마련해 줄 순 있겠으나 영혼의 거처까지 마련해 주진 마세요.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들은 그곳을 꿈에서조차 방문할 수 없으니까요.……(‘아이들에 대하여’ 중에서)그의 말은 힘이 있다.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한 철학자이자 시인의 말은 그 무엇보다도 진실하다. 나는 그 치열한 진정성에 나의 기도를 덧붙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이 겨울 홀로 떨지 않기를, 홀로 외로워하지 않기를... 삶이 무엇인지, 아파질 때 읽어보라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을 넘어, 볕이 잘 드는 창 앞에 손을 맞잡고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내가 한 줄 질문을 하고 네가 한 줄 답으로 들려주면 더 좋겠다. 그럼 서로의 체온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손난로처럼 영혼을 다독이는 영혼 난로가 되겠지.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아이들 마음속에 푸른 가지를 품었으면 좋겠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는 따뜻한 경북교육의 지향점도 이것이 아닌가 한다. 손을 맞잡고 오히려 더 따뜻한 겨울을 지내고 싶다.

2022-12-01

누가봐도 ‘테슬라 한국공장’ 최적지는 포항

경북도와 포항시, 그리고 포항지역 정치권이 최근 테슬라 전기차 공장(기가팩토리)의 포항유치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말 포항시 손정호 일자리경제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테슬라공장 유치팀’을 구성했으며, 정부에 사업제안서도 제출했다. 사업제안서 내용을 보면, 포항은 영일만항 물류 인프라와 원활한 교통망, 그리고 세계적인 철강회사인 포스코의 안정적인 철판 공급망을 갖추고 있는데다 전기차의 핵심인 2차전지 클러스트(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포스텍의 연구기반까지 구축되어 있어 테슬라 공장 입지로는 최적지라고 설명했다. 포항시는 현재 테슬라 공장입지 후보지로 영일만배후산업단지와 블루밸리산단 50여만평을 준비중이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달 23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화상면담에서 “한국은 아시아권 최우선 투자 후보지 중 하나”라고 밝힌 상태다.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에 이어 연간 150만~2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아시아 제2 공장 건립을 검토 중이며 한국을 유력한 후보지로 꼽고 있다. 산자부는 지난달 29·30일 이틀간 항만시설과 철강업체가 입지한 광역자치단체를 상대로 유치 제안 설명회를 가졌다. 국내에서 포항시와 유치경쟁을 펼치고 있는 지자체는 경기 평택, 경남 창원, 전북 군산, 전남 광양, 강원 동해, 부산, 울산, 인천 등 8곳이다.포항시 유치팀이 언급했듯이, 포항은 누가 봐도 테슬라 공장이 들어서기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기차 공장 입지조건 중 가장 중요한 대규모 항만시설과 배터리 클러스트 뿐 아니라 포스텍 같은 연구기관까지 갖춘 도시는 국내에는 거의 없다. 전국 지자체에서 유치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테슬라 입장에서는 포항만큼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테슬라 공장이 포항에 유치될 경우, 포항은 1973년 포항제철소 준공 이래 지역 경제발전의 최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무엇보다 테슬라 공장과 연관업체의 고용창출만 최소 1만여명에 이른다니 포항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경사는 없을 것이다.

2022-12-01

위기의 제로코로나

우정구 논설위원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 감염증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폭발하면서 시작된 시위가 지금은 ‘반봉쇄’를 넘어 ‘반정부’ 양상으로까지 치달아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외신들은 중국에서 벌어지는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反)시위는 1989년 6월 발생한 천안문 사태를 연상케 할만큼 심각한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베이징과 상해 등 적어도 전국 10개 이상 도시에서 제로코로나 정책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특히 카타르 월드컵 중계를 통해 마스크를 벗고 즐겁게 응원하는 세계인의 모습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젊은이를 중심으로 제로코로나 반대시위가 일어나 그 기세가 얼마나 커질지 주목된다. “카타르와 중국은 다른 행성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하니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중국인의 불만과 불신의 정도를 가늠할 만하다.시위가 “영수를 원하지 않는다” “언론자유를 달라”는 등 시진핑 퇴진으로 분위기가 바뀌자 중국 당국도 긴장된 모습이라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봉쇄조치 일부를 해제하는 등 강온양면책을 쓰기도 하고 있으나 강경책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다.중국 당국은 2019년 홍콩의 반중 시위 때처럼 이번 시위도 외부 적대 세력의 개입으로 규정하고 강경 단속 중이다.15억의 거대한 인구와 도농간의 의료환경 격차가 큰 중국으로서는 제로코로나 정책의 선택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오랜 봉쇄로 숨이 막힌 주민들이 반정부 시위로 나오면서 시진핑의 중국정부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2-01

홍준표와 5·18의 뒤끝

홍석봉정치에디터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광주에서 배척당했다.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5·18 단체들이 홍준표 시장의 광주 방문 때 홍 시장의 5·18 민주 묘지 참배를 거부했던 것이다. 대신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에 대한 사과와 추모공간 방문을 요구했다. 5·18 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에 5·18 유공자 4천296명 명단이 공개돼 있으니 홍 시장이 직접 방문해 명단을 눈으로 확인하라는 것이었다.홍 시장은 지난 6월 대구시장 당선인 신분으로 방송에 출연,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인에게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5·18 단체에게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이 단체는 이를 새겨두었다가 광주를 찾은 홍 시장에게 5·18 묘역 참배 거부로 응답했다. 홍 시장은 대구시장 취임 후 처음으로 ‘달빛동맹’ 행사에 참석키 위해 광주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홍 시장은 결국 묘역 참배는 않았다. 개운찮은 뒤끝을 남겼다.지난 2020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즈음해 5·18 유공자 명단이 논란이 됐었다. 5·18 연금 수령자 명단에 유력 정치인 등 5·18 현장에 없던 인사들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사회 일각에서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SNS 등에는 이들을 대한민국 신귀족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최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이 일면서 광주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공적조서 공개 요구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홍 시장은 당시 5·18 유공자 명단에 부적합한 인사들의 이름이 오른 것을 두고 공개해야 한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방송에서 스쳐 지나갔던 발언이 대구와 광주가 ‘달빛동맹’을 통해 상생발전을 꾀하는 상황에 돌출 장애물이 됐다. 양 단체장의 양해로 난처한 국면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대권을 꿈꾸는 홍 시장의 행보에 ‘돌부리’가 될 소지가 없지않아 보인다.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도 께름칙하다. 광주의 상처를 건드리고 자긍심을 금 가게 한 때문이다. 정작 5·18유공자 명단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홍 시장은 사단이 벌어지고 난 후 광주지역 방송과 대담에서 “유공자에게 제대로 된 예우가 필요해서 공개하라고 했다”고 해명했다.한때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과거 발언 찾기가 유행했었다. 바로 ‘내로남불 발언 찾기’였다. 조 전 장관의 기고문과 SNS 글이 대상이었다. 무수한 내로남불 사례가 SNS 등에 올라왔다. 여러 매체에 쓴 글이 되레 조국의 올가미가 됐다.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의 발언은 언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모른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되돌아올 때는 당사자에게 뼈아픈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공직자의 처신과 언행은 진중해야 한다. 홍 시장의 5·18 발언은 소신 발언이었고 당시 여론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한 것이다. 하지만 특정 언급이 장소와 형편에 따라서는 되레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혐오의 시대에 차별하고 구분 짓고 상처 주는 말은 금물이다. 하물며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임에랴.

2022-12-01

시민편의 먼저 생각한 대구지하철 노사 타결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던 대구지하철이 가까스로 파업 위기를 모면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맞서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지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노사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구지하철 노사가 타결을 이뤄낸 것은 그나마 큰 다행이다. 지하철 파업으로 교통대란을 우려했던 대구시민들도 한 시름을 놓게 됐으니 다행스럽다.특히 대구지하철 노사의 협상 타결이 정치적 파업이 아닌 시민의 불편을 우려해 조속 성사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대구교통공사와 대구지하철 노조는 파업을 하루 앞둔 30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조정위원회를 통해 ‘항구적 노사평화 실현을 위한 노사특별합의서’에 공동 서명했다.노사는 특별합의서를 통해 최대 쟁점이었던 4조2교대 근무제 도입은 내년 상반기 중 협의를 하고, 문제점이 없을 시 7월 중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고 합의했다. 또 구조조정 및 민영화 부분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지금 우리 사회는 노사 갈등이 노사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 갈등으로 그 파장을 넓히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철강 생산이 중단되고, 건설현장이 멈춰서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발생하는 손실이 막대하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경제를 걱정하고 한발 물러설 생각을 않고 있다.민주노총이 6일부터 전국 동시다발로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면서 노동계의 파업 전선이 확대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될 글로벌 경제난이 우리 경제를 억누르고 국민 모두가 역대급 어려움에 처해 있다. 노사가 힘을 합쳐도 난국 타개가 쉽지 않은 국면이다.대구지하철 노사의 이번 타결은 그나마 단비같은 소식이다. 시민들의 교통불편을 미리 고려하고 상호 양보함으로써 타결점을 찾았다는 데 시민들도 환영이다.노사의 원만한 합의가 난국 타개의 지름길이다. 시민의 호응을 얻지 못한 파업은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노사문화 형성이 중요하다. 대구지하철 노사의 타결은 이런 점에서 모범을 보였다.

2022-12-01

실타래처럼 엉킨 마음 풀게 해줘

이야기 도덕경 쉼 없이 흘러가는 복잡 다양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억지로라도 마음속에 한번씩 쉼표를 찍을 필요가 있다. 그 쉼은 뒤처짐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힘을 얻어 더 큰 도약에 이르게 하는 보약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얼마 전 ‘잊지못할 한 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에게는 그럴 만한 책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은 마음의 휴식을 갖게 해준 책이 떠올라 소개하고자 한다.바로 노자의 도덕경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 놓은 ‘이야기 도덕경’이다.처음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언뜻 도무지 욕심 없고 한없이 느긋한 사람이 노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의 글 곳곳에서 고요한 가운데 묵직한 깨달음을 보게 된다.거듭 곱씹어 읽어본 구절을 소개하자면 그 첫 번째로 ‘정말 제대로 사는 것은 물과 같으니 물이 제대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에게 이롭게 하면서도 제가 했다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 머무는 곳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꺼리는 곳이니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그 머무는 자리는 언제나 제대로 된 곳이며, 마음 씀은 그윽하고 어울림에는 다사로우며 말은 미덥기만 하고 바르다고 하는 것은 제대로 균형이 잡혀 있으니 그러하고, 일은 능숙하며 움직임은 때에 맞는데, 도무지 다투려고 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뒤탈이 없다’라는 구절이다.필자는 참으로 잘하는 능력이란 스스로 잘한다는 그것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고, 그렇게 한 일이 워낙 탄탄하기도 할 뿐더러 다른 이에게 부담이나 불편이 되지도 않아 시샘의 건더기도 남기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일을 하다 보면 자꾸만 내 공을 드러내고 싶어지고, 혹시 몰라주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많은데 나와 함께 이 구절을 되새겨 실천한다면 마음은 평온히 가라앉고 위상은 더 없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두 번째는 ‘남을 아는 것을 슬기라 할 것이고 저를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며, 남을 이기는 것을 강하다고 하며 무엇이 만족인지 아는 사람을 부유하다고 하고, 힘찬 실천은 뜻을 세운데서 나오고 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오래 살았다고 하며,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을 참으로 오래 살았다고 할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이 부분에서 핵심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며,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시도는 존재하는 그 순간의 가치를 비로소 제대로 쓸 줄 아는 것이며,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지나온 날을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내다보면서 그저 한걸음 한걸음을 찬찬히 내딛는 그런 삶을 두고 탄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자신이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하니, 지금 당장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안타깝게도 도덕경을 한 자리에서 모두 펼쳐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구절 이야기는 이제 접어 두고 ‘도덕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무위(無爲)를 이야기하며 끝맺을까 한다.무위는 말 그대로 하면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사실 순리대로 사는 삶을 의미한다. 무위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다음의 말을 듣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몸을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추우면 히터를 틀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몸을 움직인다. 무위의 삶이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은 인간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말, 한 가지 행동도 순리에 맞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노자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일이다.

2022-11-30

태고의 공원을 만나다

정미영 수필가 포항에 있는 다섯 곳의 국가지질공원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먼저, 천연기념물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는 발산리를 찾았다. 예전부터 모감주나무 열매는 알알이 꿰어 염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 앞에서 기도했던 수많은 이들의 절실한 말이 열매 속에 응집되어 있다가 염주가 되는 것이리라.대동배 해변을 따라 걸었다. 땅과 바다의 경계선 중간에 바다계단이 거대하게 존재했다. 해안가에서 육지 쪽을 바라보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계단모양의 해안단구를 명확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바다계단을 수호하는 독수리 바위와 악어 바위를 찾았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궁궐과 사찰에는 돌계단을 수호하는 사자, 해태, 해치가 있었다. 그들처럼 바다계단을 독수리와 악어가 지키는 것 같아 정겨웠다.구룡소에 도착했다. 용이 살았던 연못은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오늘날에는 해안형 돌개구멍이라고 부른다. 해안형 돌개구멍은 파도를 따라 자갈이 움직이면서 집괴암을 깎아 만든 접시 모양의 구조이며, 이곳에 바닷물이 채워지면서 연못처럼 보인다는 것이다.구룡소 9개의 굴 중에는 5리가량의 깊은 굴이 있다. 파도가 칠 때 굴 입구로 흰 거품과 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마치 용이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파도에 의해 육지가 깎여 평평하게 만들어진 파식대지와 타포니 옆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작은 돌탑이 드문드문 보였다. 설령 너울에 휩쓸려간다고 해도 절박한 염원의 편린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영속성을 유지할 것 같았기에 나도 한 켠에 돌을 포개어 탑을 쌓아보았다.바다에서의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내연산 12폭포에 도착했다. 약 14km에 이르는 계곡을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진 폭포가 발달한 곳으로 하나의 계곡에 이처럼 여러 개의 폭포가 발달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무풍, 관음, 연산폭포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에 웅장하게 발달하고 있으며,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의 배경이 되었다.정선의 그림은 내연산 세 군데 폭포를 그렸다. 맨 위에 연산폭포, 가운데가 관음폭포, 가장 아래는 잠룡폭포다. 선열대 아래 깊은 계곡에 잠겨 있어서 잠룡이다. 공자는 잠룡의 의미를 ‘용의 덕성을 지니면서도 숨어있는 자, 세상을 은둔하고 살아도 마음에 언짢음이 없으며, 옳음을 인정받지 못해도 억울해 함이 없이 확고하게 자신의 의지가 흔들리지 아니 하는 자’라고 했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안심이 되는 곳으로 변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은 세상을 떠도는 약한 바람에도 자존감이 뿌리 채 흔들려 휘청대기 일쑤다.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는 이가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부터 잠룡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연일읍 달전리 주상절리로 향했다.달전리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육각기둥 척추를 우뚝 세우고 오늘도 산허리에서 중심을 옴팡지게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직한 골격 안에는 포항의 오랜 내력이 담겨 있으리라. 주상절리의 미학은 삶의 여유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풍광을 마음속에 옮겨 놓고 걷다 보면 누구나 위대한 대자연의 형상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일상에서 가졌던 날선 방어 기제들이 한결 누그러지고 편안해졌다.마지막 행선지인 두호동 화석산지는 환호공원 해안도로 옆의 이암사면에 분포한다. 고래부터 메타세쿼이아 잎, 게, 소라 등 다양한 육지와 바다 생물화석이 산출되는 곳이다. 화석을 바라본다는 것은 과거를 등에 업고 현재를 인식한다는 것임에랴. 생물학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내 기억의 퇴적층에는 어떤 흔적들이 쌓여 있는지, 자분자분 회상해 보았다.박물관에서 만나는 자연사(自然史)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 보다 태고의 신비가 곰비임비 쌓여 있고, 오래된 전설과 설화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국가지질공원을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보는 것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나는 오늘 태고의 공원을 만났다.

2022-11-30

기후위기와 데모크라시

유성찬 경주대 교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의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다. 백인들이 인디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다. 수업시간에 시험을 치르게 됐는데, 교사가 문제를 내자 인디언 아이들이 한 아이를 중심으로 여럿이 모이는 것이었다. 백인 교사가 아이들에게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따로따로 앉아 혼자서 시험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그러자 인디언 아이들의 항의가 있었다. 어려운 문제는 친구들과 함께 풀어야 쉽게 풀 수 있는 것이라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인디언 아이들이 인디언 사회에서 배운 교육은 백인 교사의 그것과는 달랐던 것이다.미국사회의 프래그머티즘 교육체계에서는 학생 개인의 학습 효과와 능률을 올리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또 서열을 중시하는 학업경쟁사회에서는 혼자서 공부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맞는 방식이겠지만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옳은 방식이 아닌 것이다.회의 참여자의 자유로운 발표와 토론을 중시하는 브레인스토밍 회의만 떠올려봐도 문제의 해결은 혼자 똑똑하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반증한다. 브레인스토밍은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의 답을 찾는 지름길이라고 가르친다.영어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민주주의라고 번역한다. demo는 대중, cracy는 통치·지배라는 의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데모크라시,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나 이즘(ism)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앞서 말한 학습과 토론의 방법론은 문제해결의 방식이지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두가지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닐 것이기에 상황에 따라 논의의 방식은 변경될 수도 있다. 생명을 다루는 전문기술인 의술에 있어서는 가장 임상경험이 많은 숙련된 의사의 판단이 맞을 가능성이 확실히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예외는 많을 것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그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방법론이 가장 민주적이고도 옳은 방식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많은 과학자들이 ‘지구기후의 위기’라고 말한다.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기에 다행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에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 대신에 문제해결 가능성의 전제조건에 인간의 실천력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지역사회에서도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는 시민들의 의지와 투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행동에는 참여와 데모크라시가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미래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힘, 시민들의 자각된 정신과 스스로의 의지가 필요하다. 일단 시민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 시민의 참여도가 높아야 문제의 해결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몇몇 엘리트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지구의 기후위기에는 인간생활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문제의 핵심과 실천력에 대해 느끼고 반응하는 지역시스템, 데모크라시가 존재해야 한다.데모크라시가 존재하는 조직이 어떤 것이 있을까? 참여의지가 있으면 자유롭게 참여하고 발언을 할 수 있는 조직의 형태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포럼(forum)의 형태일 것이다. 포럼이라는 말 자체에 ‘광장’이라는 뜻도 포항되어 있다.지역사회의 여러 단체, 시민사회영역, 여성, 장애인, 일하는 사람들, 농업관련인, 어민, 산림업인, 지방정부의 유관단체들 등 참여가능한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참여에 벽이 있을 수 없다. 공동의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참여, 그 자체가 문제해결력인 것이다.예를 들어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고, 탄소중립만이 대한민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살릴 수 있다. 그러기에 포스코를 위시한 철강산업과 배터리산업을 친환경적으로 이룩해나가는 노력들이 필요한 포항에서는 산업체와 지방정부, 관변단체들, 지역언론,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더 큰 ‘탄소중립포럼’이 필요하다.인간의 산업활동으로 인해 산성비, 황사와 미세먼지, 오존층파괴, 환경호르몬, PM2.5, 미세플라스틱, 수은중독 등의 환경오염으로 인한 문제들도 해결해가야 하지만, 지구환경위기의 근원적인 문제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의한 기후변화위기이기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에는 범시민적인 어젠다를 형성해야만 해결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지구가 산업혁명 이전 보다 1.5℃가 더 뜨거워지면 지구의 파멸은 돌이킬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 2015년 12월의 파리기후협약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자는 국제적인 약속,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요즘은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체와 산업시설에서는 탄소에너지 저감과 이산화탄소 배출의 감축을 논의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학교에서는 환경교육 시간에 주부들은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면서 배우게 된다.이렇듯 가정, 학교, 직장에서도 기후변화, 이산화탄소, 온실효과 등이 대화내용으로 올라올 정도이므로, 탄소중립에 대한 논의와 실천에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지역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앞에서 말한 탄소중립실천을 위한 조직인 탄소중립포럼은 열린공간을 의미하며, 몇몇의 시민단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역량을 총합하여 만들어져야 할 것이며, 그것이 데모크라시이며 ‘광장’일 것이다.특히 뜨거운 용광로를 끌어안고 생활해야만 하는 세계적인 철강도시 포항이라면 모든 시민사회역량이 모여 탄소중립사회로 전진하기 위한 힘들을 모아야 한다. 공동의 힘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모크라시가 최선의 방도이다.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2022-11-30

이창용의 넥타이와 진달래꽃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초겨울에 피었다. 절기상으로는 입동도 지났고 소설도 지났다. 그래서 연분홍색 봄꽃은 아니다. 검은색의 캘리그래피 디자인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던 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넥타이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넥타이는 메시지 전달용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연한 녹색 넥타이를 맸다. 무난함과 차분함을 대변하는 색상이었다. 10월 12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때는 주황색 넥타이를 맸다. 한은 총재의 넥타이는 붉은 계통이면 금리 인상을, 푸른 계통이면 금리 동결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그런데 지난달 24일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검은 색깔의 시구가 적힌 넥타이를 선택했다. 이날 기준금리는 3.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상됐다. 이 총재의 검은색 글자 넥타이는 금리 인상의 시그널로 해석될 수도 있다.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진달래꽃이 붉은 계열의 분홍색이기 때문이다.‘진달래꽃’ 시가 쓰여진 넥타이가 이자 부담을 겪고 있는 대출자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이냐고 기자가 물었다. 이 총재는 “제가 좋아하는 넥타이를 매고 나왔는데, 그 해석이 더 좋아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경제적으로 위로를 주는 시로 읽히고 있다니 주제의 확장성이 놀랍다. 하긴 김소월의 또 다른 시 ‘엄마야 누나야’에 나오는 “강변 살자”란 표현이 서울 강변의 아파트 마케팅에 사용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문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위로를 줄 대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영끌족뿐만 아니라 빚투를 안 하다가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도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금리 인상의 늪에 빠진 영끌족과 내 집 마련의 꿈을 상실한 벼락거지 사이에서 적정한 집값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진달래꽃 넥타이가 등장한 지 3일 만에 한국은행은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 결과를 공개했다.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72명 중 53.8%가 1년 이내에 금융시스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했다. 금융시스템 위기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부실위험 증가’(27.8%)였고,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과 상환부담 증가’(16.7%)가 그다음이었다.경제 위기는 블랙 스완이나 회색 코뿔소 등으로 비유되곤 한다. 그런데 세간의 관심을 끈 진달래꽃 넥타이 시그널에서는 위로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지금은 서민들이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이 생존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줄 때이다. 그러면서 위로를 전해야 참된 위안의 메시지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2022-11-30

이제는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겨울철을 맞아 우크라이나 전기시설을 노린 러시아의 미사일이 쏟아진다.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가 민간인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전기도 물도 공급받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로 만든다. 민간인의 삶을 통째로 구렁텅이로 밀어 넣겠다는 생각인지. 전쟁의 잔혹함을 행동으로 보여준다.전쟁으로 삶의 터전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 점령지 주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음식물을 빼앗는다.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성폭행하고 죽이기도 한다. 전쟁이 쓸고 지나간 곳은 폐허로 변한다. 특히 이번처럼 민간인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는 경우는 드물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에 쫓기면서 복수라도 하듯이 민간인을 향한 화풀이가 도를 넘는다.역사를 돌아보면 이웃과 친한 나라는 없다. 힘이 강할 때는 이웃 나라를 공격하고 힘이 약할 때는 침략당한다. 침략의 역사가 현재에 가까울수록 적대감은 더하다.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기를 쓰며 이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침략당한 나라는 모든 것을 잃는다. 영토도 문화도 국민마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가며 삶을 이어가야 하는 마음은 절박하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한순간에 달려있다.전쟁이 군인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군인이 민간인을 향하여 무기를 겨눌 때 이는 범죄가 된다. 민간인을 향하여 쏘아대는 미사일이 언젠가는 쏜 곳을 향하여 돌아가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언젠가는 전쟁은 끝날 것이고 누군가는 전쟁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누가 민간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는지.전기와 난방을 위한 연료와 식수마저 끊긴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뒷걸음질을 치는 러시아 사이에 이번 겨울은 중요하다. 서로 전쟁을 종식해야 할 시점이다. 우크라이나는 더는 피폐한 국민의 삶을 외면할 수가 없고 러시아는 더 이상 싸울 병사도 무기도 넉넉하지 않다. 서로를 위해 전쟁은 그만두어야 한다.전쟁을 지켜보는 지구인들의 마음도 편하지 못하다. 굳건한 지원을 하던 미국은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잃었고 유럽 연합국은 추위가 다가오는데 에너지 위기와 고물가로 휘청거린다. 두 나라의 전쟁으로 세계인들은 높은 물가에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세상 사람들은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맞을 것 같다.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사람의 목숨보다 더한 이유는 없다. 지금 쌓은 죗값만 하더라도 남은 생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의미 없는 싸움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아무런 명분도 없는 싸움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지 않는가. 추운 겨울날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을 이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평생 가슴에 박힌 전쟁의 파편으로 괴로운 삶을 살아갈 사람들이 많다.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누가 이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얼마나 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야만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는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2022-11-30

‘한국의 골드코스트’ 꿈꾸는 경북 동해안

경북도가 그저께(29일) 동해안 관내를 호주의 ‘골드코스트’와 같은 세계적 해양휴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내년에 ‘해양레저선박·장비 산업육성 계획’을 수립해 오는 2032년까지 6천억원을 투입, 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의회는 이를 위해 지난달 3일 ‘경북 해양산업 육성 지원 조례’를 개정했다.경북도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분야는 △레저선박·장비 산업기반 조성 △레저기업·전문인력 양성 △레저산업 활성화다. 이를 위해 레저선박과 장비기업 지원에 50억원, 실증과 인증체계 구축에 1천600억원, 교육과 전문인역 양성에 150억원, 해양산업 클러스터 조성에 4천억원을 투입한다. 경북도는 동해안에 해양산업클러스터가 조성되면 레저선박과 장비의 대여·유통·판매 등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신규 일자리도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도는 동해안에 레저선박지원센터도 설립, 국제보트쇼 등을 개최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해양레저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해양레저선박과 장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도 이에 대한 산업적 가치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육성계획은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해안을 낀 경북도가 부가가치가 높은 해양레저선박·장비 산업에 뛰어든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동해안의 중심도시인 포항은 영일만을 가운데 두고 204㎞의 해안선을 따라 주로 수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 도시다. 그동안 해수욕, 바다낚시 등으로 해양관광이 한정된 감이 있지만, 앞으로 포항만의 차별화된 해양관광 프로그램을 발굴하면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할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곧 해양관광의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마리나산업(크루즈, 요트, 윈드서핑, 패러세일링, 스쿠버다이빙, 잠수정)이 주목을 받을 날이 온다. 특히 해양레저분야 산업은 관련업체뿐 아니라 수리·부품업체,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쇼핑센터, 숙박시설까지 연계된 산업이어서 미래가 밝다.

2022-11-30

경북 반도체 육성위 가동에 거는 기대 크다

경북도가 구미지역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지난 29일 경북도는 ‘경북 반도체산업 초격차육성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구미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사활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장호 구미시장, 백홍주 원익큐엔씨 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반도체 특화단지 구미지역 유치와 함께 경북지역 반도체산업 육성에 총력을 쏟을 것을 선포했다. 정부는 다음 달 공모절차를 거쳐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에 나선다. 경북 구미시를 비롯 인천, 광주 등 전국 많은 지자체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나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최고의 경제 아이템이다. 미국을 비롯 우리도 경제안보의 1순위로 반도체를 꼽고 있다. 반도체가 세계 경제패권을 주도할 것이라데 이의가 없다. 지역마다 장점을 내세워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나선 것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로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구미가 오랜 전통의 전자산업을 배경으로 반도체산업 육성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나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를 낙관할 입장은 아니다.구미가 가지고 있는 반도체 관련 인프라와 연관지어 정부가 목표하는 반도체산업 육성에 맞는 전략을 잘 구사해야 한다.정부는 첨단전략기술 보유 여부, 산업생태계 성숙도, 기반시설, 전문인력 확보 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할 예정이다.구미시는 국내 전자산업 최대의 수출단지로 성장한 도시다. 첨단기술분야의 좋은 생태계도 보유하고 있다.대구, 포항, 울산 등과 삼각협력체제를 구축한다면 반도체산업 육성과 인력 양성에 최적의 입지가 될 수 있다. 인근에 신공항이 들어설 계획까지 있어 수출전진기지로서도 적합하다. “구슬도 잘 꿰어야 보배”라는 것을 교훈으로 좋은 환경과 입지를 묶어 이번에는 반드시 구미가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미지역이 특화단지로 지정된다면 윤석열 정부가 구상하는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상기시켜야 한다. 초격차육성위의 사활을 건 분발을 촉구한다.

2022-11-30

중부선 철도 허리 잇기

홍석봉 정치에디터 경북도민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중부선 문경~상주~김천 연결철도 건설이 지난 28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통과했다.당초 비용대비편익(B/C)이 낮아 예타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철우 도지사가 발로 뛰었다. 기재부 재정사업을 평가하는 SOC분과위원회에 참석, 문경~상주~김천 구간의 철도가 연결되지 않은 중부선 내륙철도는 반쪽짜리 철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 지방시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철도건설이 반드시 필요함을 주장함으로써 예타를 통과할 수 있었다.그동안 많은 SOC사업이 경제성 부족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 문경~상주~김천 연결철도는 낮은 경제성 예측치에도 불구하고 이철우 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 및 단체장과 주민 등이 똘똘 뭉쳐 탄원서를 제출하고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사업추진의 당위성을 호소한 결과 중앙부처와 관계기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결국 정성을 다한 지역민들의 염원이 반쪽자리 철도를 온전하게 만들었다. 국토 대동맥 철도SOC는 국토균형발전의 주축으로 사람과 물자를 대량수송할 수 있어 물류비용을 절감시키고 지역간 활발한 교류는 물론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철도 단절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철도단절로 인해 내륙 속의 섬 형태로 남았던 곳이 바로 중부선 문경~상주~김천 미연결구간이었다.중부선은 문재인 정부때 김천~거제 구간이 예타를 통과한데 이어 이제 서울~김천~거제까지 국토 중심부를 관통하는 기간망 철도로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됐다. 상주·문경시민들에게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경북도와 지역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30

대입제도, 어찌해야 하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의 교육은 대학입시가 망친다.’ 공교육이 유치원, 초등과 중등교육을 잘하고 싶어도 대학입시가 버티고 있어 힘들다고 한다. 학교는 치열한 경쟁보다 함께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지만, 대학입시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선생님은 친구들 사이에 화목하길 원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점수싸움의 늪으로 빠져만 든다. 아름다운 공동체적 가치를 가르치고 싶어도 수능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의 벽 앞에서 경쟁적일 수 밖에 없다.수능이 방금 지나갔지만 학원가에서는 벌써 특정대학 어느 학과에 들어가려면 수능점수 몇 점이 필요하다는 둥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경쟁과 눈치싸움으로 몰아세운다. 대학숫자가 많이 늘고 인구절벽으로 학생숫자가 대폭 줄었지만 대입의 현장은 수십 년 전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공교육과 대입현장의 부조화를 교육당국은 인지하고 있는지.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닐까.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버젓이 있으면서 대학입시가 빚어내는 사회, 문화, 교육적인 문제와 현상에 대하여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회적 트렌드가 아무리 바뀌어도 대입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데는 교육계의 반성과 함께 국가적인 숙고가 있어야 한다.대입제도와 시스템이 국가 공교육의 지향점에 도움이 되기보다 다소라도 방해가 된다면 이는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도 시급히 조정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나라의 장래와 교육의 앞날을 위하여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에 나서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계가 제안하고 시민과 학생이 폭넓게 참여하는 국민토론이 일어나야 한다.나라 안에 ‘교육을 위한 담론’이 태부족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구호일 뿐 누구도 교육이 세워 올릴 백년을 고심하지 않는다.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가 많아서라는 핑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나라의 미래를 담보해야 할 교육을 등한시하는 사회는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국민을 길러낼 뿐이다. 따뜻하고 풍성한 교육담론을 공교육이 수다히 만들어 열심히 운영하면서도 거대한 장벽 ‘대학입시’와 함께 만사가 물거품이 되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두고 볼 터인가. 선구자 한 사람이 제창하여 해결할 문제도 아닌 바에야, 국가적인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회적인 담론을 일으켜야 한다. 나라가 풀어야 할 필수과제임을 인식하고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우선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대학은 어떤가.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면서 온라인과 비대면교육을 경험하였다. 대학 강의실의 존재이유와 연구개발과 지식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터이다. 대학으로 들어오는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나라의 교육과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대학도 공적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 교육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하기 어렵다. 학생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물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대학입시 제도개선에 임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1-30

‘아들’이 아닌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가 2022 한국프로야구 MVP에 등극했다. 타격 5관왕에 오르면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으니 올해 한국프로야구는 이정후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만 잘한 게 아니라서 더 경악스럽다. 데뷔 첫해 신인왕을 차지하더니 6년 연속 3할, 최소경기 1천 안타 등 놀라운 기록을 여럿 달성했다.실력만 좋은 게 아니다. 치열한 승부욕과 근성, 철저한 자기관리, 겸손한 성품, 잘생긴 외모까지 갖췄다. 이정후만큼 팬서비스를 잘하는 선수도 없다.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 팻말을 든 관중에게 정확하게 홈런 공을 날린 ‘홈런 배달’은 만화에서나 볼 법한, 가슴 설레는 낭만이었다. 행운을 차지한 두 여성팬에게 사인은 물론 좌석 업그레이드에 야구 배트까지 선물했는데, 그 팬서비스로 인해 야구팬이 적어도 10만 명은 늘었을 것이다.이정후가 MVP에 오른 건 그의 아버지이자 한국 야구의 전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이어 부자(父子)가 MVP를 수상한 유일한 사례로 세계 야구사에 기록됐다. 아버지는 데뷔 2년차인 1994년, 한국야구의 영원한 전율로 감각될 신화를 썼는데, 4할 200안타 100도루 20홈런에 도전하면서 타격 5관왕에 올랐다. 28년이 지난 후 아들 역시 25세 시즌에 신화를 썼다.“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다. 이름이 곧 ‘야구’인 전설적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운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아버지는 야구만큼은 절대 시키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 몰래 엄마 손을 잡고 초등 야구부에 등록한 날부터 이정후의 야구는 ‘홀로서기’이자 ‘아버지 넘기’라는 험난한 여정이 됐다. 스스로 이기지 못하면 평생 ‘이종범 아들’로 남을 것을 알기에, 아버지는 그 어떤 기술적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야구부 감독에게 전화 한 통도 안 했다. 그런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겠지만, 어린 소년은 ‘이종범’이라는 짙은 그림자를 혼자 힘으로 벗어나서 ‘아들’이 아닌 ‘이정후’가 됐다. 시를 빌리자면, 이정후의 야구 인생은 “나는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가 되겠다”(이경교, ‘에게해’)는 대서사시를 지나온 셈이다. 가난 극복이라는 뚜렷한 동기가 있던 이종범보다 세상의 주목과 기대를 넘어서야 했던 이정후의 싸움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지젝은 오늘날 부성적 권위의 쇠락에 대해 “아버지는 더 이상 자아 이상으로서 지각되지 않으며, 그 결과 주체는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근대의 수직적 가부장제, 거대담론, 근대적 제도들이 힘을 잃어버린 오늘날엔 ‘아버지’라는 대상 자체가 상징적 위엄을 가지지 못하므로, 깨뜨리고 넘어서야 하는 기성의 체제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근대적 자아 이상을 지각할 수 없는 주체들은 ‘아버지 극복’을 통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게 지젝의 견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제 아들이 교수가 됐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제 도움으로 의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만31살에 조교수가 된 셈입니다. 이제 집안에서 O교수라고 부르면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모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자랑하려다가 혹 붙였는데, 아버지의 논문 다수에 아들이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이 알려지며 특혜를 의심받았다. 오늘날 아버지다운 아버지, 아들다운 아들이 있긴 한가? 아버지들은 아들을 하룻강아지로 키운다. 아버지를 넘지 않아도 아버지가 가진 것들을 받을 수 있는 세습과 상속의 시대다. 고슴도치 아버지들, 또 아빠 찬스에 기대는 정신적 젖먹이들은 이정후의 성장서사를 학습해야 한다.글을 맺으며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정후가 거둔 성공은 스스로 알을 깨려는 부단한 노력과 아버지의 무심한 듯 세심한 훈육이 줄탁동시(5550啄同時)를 이룬 결과이지만, 이 놀라운 신화에는 ‘바람의 며느리’ 정연희 씨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이 아들과 아버지만 주목할 때, 정연희 씨는 소유격 조사 ‘의’에 스스로를 질끈 동여매고 ‘이정후의 어머니’로, ‘이종범의 아내’로 살았다. 그 덕분에 아들은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이정후’가 될 수 있었다. 부모는 결국 자녀에 의해 완성된다면, 정연희 씨는 위대한 어머니다. ‘아들’을 벗고 마침내 진정한 자기 이름을 얻은 이정후가 이제는 ‘정연희의 아들’로 불려도 된다.

2022-11-29

시지프스의 돌 그리기

최근 각종 취미개발 플랫폼에서 오일파스텔을 활용한 수업들이 많이 보인다. 미술 재료 도구 중 하나인 오일파스텔은 파스텔의 한 종류로, 크레용과 파스텔의 중간 정도 질감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파스텔에 왁스나 기름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기존 파스텔보단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그려지며 특유의 촉촉하면서도 매끄러운 질감 표현 덕분에 그리는 재미가 크다. 또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크게 필요치 않고, 물이나 팔레트 등의 도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장소든 간편하게 그릴 수 있단 장점이 있다. 덕분에 전문가뿐만 아니라 많은 미술 입문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재료기도 하다.오일파스텔은 기존 파스텔보다 단단하고 가루가 없으며, 입자가 두껍기 때문에 굵거나 두터운 굵기 표현이 가능하다. 오일파스텔에서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색 위에 색을 얹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장 손쉬운 재료인 손가락부터 압지나 얇은 가죽으로 말아 만든 찰필 또는 티슈나 스틱, 면봉 등의 재료로 세밀한 색 섞기가 가능하다.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 효과를 자연스럽게 줄 수 있을뿐더러, 치즈나 빵 등의 덩어리지는 느낌이나 쌀의 고슬거리는 질감 같은 섬세한 그리기 또한 가능하다.오일파스텔이 생소해서 다소 역사가 짧은 듯싶지만 사실 오래 전 입체파를 대표하는 화가인 피카소도 즐겨 쓴 재료 중 하나다. 오일파스텔은 평면상에 여러 선이나 색채로 형상을 그려내는 회화의 표현이 충분히 가능하면서도, 명암 위주로 그림을 그리는 소묘의 성격까지 모두 가졌다. 목탄에서 시작하여 파스텔, 그리고 오일파스텔까지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 흥미로운 미술 도구다.오일파스텔은 단순히 흰 도화지에 색을 가득 채워 넣는다거나 스케치 안에 색을 칠하는 방법도 있지만 긁어내기, 찍기, 덮어씌우기, 혼합하기 등 다채로운 기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표현할 때에 재미가 더해진다.오일파스텔은 무른 성질 때문에 종이 위로 미끄러지듯 그려진다. 힘을 얼마나 주는냐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생각했던 색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때가 있다. 색을 많이 써보고 힘을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더 나은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나아가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기까지 하다.나는 주로 러닝을 한 뒤에 그 날 본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그림을 그린다. 가만히 배경을 들여다보면 자연은 정확한 틀이나 일정한 규칙을 가진 모양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각기 다른 본질이 섞여 있고 그것이 모두 일정치 않고 다양한 선과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에 더욱 자연스럽고 경이롭다는 걸 알게 된다.구름은 단순히 흰색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하늘색, 분홍색, 보라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이 자연스레 섞여 있다. 생각하지도 못한 색상이 겹쳐 서로를 물들이고 있을 때에 대상이 더욱 구체적으로 보인다. 색과 색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섞일 때의 즐거움은 배가 되고 그리기의 행위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스케치를 한 뒤에 작은 디테일을 잡아가는 과정을 유유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 가득 채워진 색을 마주하면 걱정이 조금씩 녹아 물러지는 기분이 든다. 명암이나 색감, 형태 등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여러 색이 겹쳐 하나의 존재로 다가올 때면 종이 위로 생명력이 느껴지며 활기가 돈다. 마음이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날카롭게 깎곤 했던 다짐이 조금씩 누그러져선 끝내 안정이 찾아온다.근래 들어선 돌을 자주 그리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가장 맨 아래서부터 올린 바위는 산꼭대기에 다다르자마자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무한으로 돌을 굴러야 하는 시지프스의 벌은 영원히 끝나지 않기에 의미가 없다. 하지만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니체는 이를 두고 인생은 허무한 것이니 이 허무주의를 받아들이되, 오히려 나 스스로 중심을 정하여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원한 허무 속에서의 초인의 모습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무언가 덧없다거나 중심이 흔들리는 날엔 크고 작은 바위를 그린다. 신기하게도 그릴 때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을 지닌 각각의 돌이 탄생한다. 그렇게 나의 중심은 부드럽게 그려지고 수많은 색을 띠고 있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하면 퍽 안심이 된다.

2022-11-29

위기 가구

우정구 논설위원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위기의 가구란 말이 생겨났다.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상 문제, 사회적 고립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일컫는 용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실직이나 휴·폐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 중대한 질병, 장애 등으로 도움이 절실한 사람, 그리고 학대나 가정 폭력 등으로 긴급하게 위기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특히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가족이나 친척 등 주변의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이 또한 위기 가구다. 일본서는 오래전부터 노령층의 나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고독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져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2014년 생활고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의 충격으로 정부가 복지시스템을 한층 강화하고 나섰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지난 8월 수원 세모녀 사건에 이어 최근 서울 신촌에서도 생활고를 비관한 모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의 집 앞에는 전기료 독촉장이 나붙어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복지국가란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나라다. 국민 생활의 최저 보장은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경제대국이라 말하지만 사회보장적 측면에서는 많이 미흡하다.행정기관이 분류한 위기 가구가 대구경북에서만 수 만가구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그들의 수가 더 늘어났다고 한다.연말을 맞아 우리 주변에 위기의 가정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온정의 마음이 필요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