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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솔선의 중요성과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회사나 동호회 등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솔선이다. 솔선(率先)은 ‘남보다 앞장서서 먼저 함’을 의미한다. 어느 조직이든 모두가 솔선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좋은 성과는 물론 트러블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열광의 조건’의 저자인 데이비드 시로타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변으로 추구하는 것이 공정성, 성취감, 동료애라 하였으며 불만이 생기고 트러블이 발생하는 원인이 공정하지 못한 업무나 평가라고 한다.심지어 요즘과 같이 맞벌이하는 부부가 많은 가정에서 조차도 다툼의 원인이 아내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피곤함을 무릅쓰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하는데 남편은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쉬기만 할 뿐 가사를 공평하게 하지 않는다는 이유이다. 그렇다 보니 요일 별로 서로 가사를 분담하여 적어 놓고 실천하는 집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정에서의 솔선은 서로 정해진 가사가 있더라도 시간이 되는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먼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서로 시간이 되는 사람이 먼저 가사를 했더라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불만도 생기지 않고 부부싸움의 원인도 발생하지 않는다. 서로 가사를 하고 대가를 바라는 순간 ‘나는 이만큼 했는데 당신은 왜 그것 밖에 안해’하는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직원들 간의 솔선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 동료의 일을 조금 더 하는 것이며 상사는 남보다 앞장서서 어떤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부하는 상사의 등을 보고 배운다’라는 말까지 있다.포스코의 혁신활동이 지금까지 잘 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는 솔선활동이다. 솔선하는 방법도 초기에는 현장 직원들과 설비 주변의 오염 개소를 같이 청소하는 수준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청소보다는 마이머신과 과제해결 방법론을 직접 해보고자 공장에서 쉽게 활용하는 팁(Tip)을 직원들에게 제공한다거나, 최근에는 ‘공장장/리더 모델 Plant 활동’을 통해 문제가 되는 공정 전체를 직접 주도, 개선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이렇게 장기간의 혁신활동을 통해 꾸준히 솔선을 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번과 같이 대형 태풍 힌남노로 냉천이 범람하여 제철소 대부분의 설비가 물에 잠겨 가동이 불가하게 되었음에도 본사와 현장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직원들과 직책자들이 스스로 솔선하여 놀랄 정도로 빠르게 대부분의 설비가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2006년 QSS활동을 처음 시작하여 모든 직원들이 너나 없이 참여하여 마이머신활동을 하기 시작할 때 2열연공장의 800m가 넘는 지하의 설비들을 새것 같은 설비로 만든 것을 당시 경영진이 현장을 보시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했다’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회사든 개인이든 살아가면서 어려움은 늘 있겠지만 ‘남보다 앞장서서 먼저 한다’는 솔선의 의미를 새기면서 노력한다면 극복 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2022-12-19

반가움의 온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따스한 아랫목을 찾게 되는 겨울이다. 북풍에 한설이 휘몰아치고 논배미나 개울가로 얼음이 얼어붙어 스산하고 황량한 겨울 삽화가 그려지고 있다. 인파가 붐비는 길거리에서는 따끈한 호빵이나 군고구마 장사가 등장하고, 간혹 찹쌀떡 장사의 호객 외침이 애절한 듯 천연덕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연말에 추위까지 더해지지만 사람들은 주변을 한번 더 살피고 챙기면서, 뜸해졌던 사람들과 연락하고 소통하며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한 해를 지내오면서 잊을 건 잊고 지울 건 지워서 다가오는 새해를 보다 새롭고 알차게 맞이하기 위한 송구영신의 모임을 으레 열면서 그간의 안부를 나누며 정을 다지기도 한다.이른바 송년회란 지난해를 보내며 성찰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가진다는 뜻으로, 연말이 되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지인이나 친구, 직원들 간의 사이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명목상 송년회라 하지만, 다같이 모여서 밥 한끼나 술 한잔을 하면서 우애와 친목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다. 1년을 줄기차게(?) 살아왔으니 한 해의 끝자락에서 서로 얼굴 한번 보며 건재함을 확인하고, 지난날의 되새김 속에 새로운 날들의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3년만에 제대로 모임다운 송년회를 열 수 있다니, 그간의 회포를 풀며 여간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 아닐까? 그렇게 회합과 성찰의 시간을 통해 사람들은 조금씩 두터워지고 익어가는지도 모른다.사람은 만남이나 교류를 통해 친숙해지고 소통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모바일시대에 온라인 상의 SNS나 비대면 방식의 소통, 상호작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지만, 사람이 직접 만나 얘길하거나 친분을 나누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직접 만나는 것에는 스스럼없이 악수를 한다거나 가벼운 터치, 익살스러운 농담, 싱그런 웃음, 특유의 얼굴 표정이나 장난기 섞인 언행 등을 서로 주고받거나 부담없이 대하면서 한결 푸근한 정감을 느낄 수가 있다. 그만큼 반가움의 온기가 피어나고 전해진다고나 할까? 애써 시간을 내어 먼 길을 오고 가서 만나는 것도 그러한 설렘과 정겨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이든 예정된 모임이건 만난다는 것은 곧 살아가는 감칠맛을 더해주는 활력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인간 세상은 험한 바다/사람은 모두 외로운 섬/그대와 나 함께 술잔 띄움은/다리 하나 서로 놓는 것”(塵5BF0(환)是險洋 人衆皆孤島 爾我共浮杯 一橋相築造) -강성위 한시 ‘致藝誠’ 오언절구 전문어쩌면 만난다는 것은 뜸해진 가슴에 마음의 다리를 하나 놓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차(茶) 또는 밥이거나 술이건 만날 수 있기에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옷깃을 여미는 계절에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의 다리를 놓으며 교감과 왕래의 온기를 서로 느껴보면 어떨까?

2022-12-19

‘시민햇빛발전’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2월 14일, 지역 주요 신문 조간에 “2050년 대구 온실가스 배출 ‘0’”이라는 제목의 1면 톱기사가 동시에 게재된 사례는 환경보다는 경제를 우선시 해온 지역 정서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탄소중립’이 우리 지역민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고 관심이 많은 이슈라는 것을 방증한다.대구시는 ‘시민중심! 탄소중립 선도도시 대구’를 비전으로 하고,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대비 2030년 45%, 2040년 70% 그리고 2050년에 100%로 설정하였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85개 과제를 13조원을 투입하여 추진하기로 하였다.대구시가 수립한 2050탄소중립 정책은 ‘기후환경’ 등 8대 분야로 나누어 추진할 것이며, 시민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8Green’ 전략으로 명명하였다.그리고 ‘산단 지붕 태양광 프로젝트’, ‘Green Mobility 대구 구축’, ‘탄소중립 시민실천활동 “탄소줄이기 1110”’, ‘중수도 시스템 구축’, ‘Forest 대구 프로젝트’ 등 5대 대표과제를 선정하였다.아울러 ‘8Green’ 정책분야별 8대 핵심과제도 제시하였다. 대구시는 이들 과제선정에 지역의 특성과 여건, 탄소중립 선도 모델로서의 잠재성, 통합신공항 건설 등 대구시 미래 번영 50년 프로젝트와의 연계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였다고 한다.5대 대표과제와 8대 핵심과제의 틀에서 살펴보면 엄청난 규모의 국·시비와 민간자본이 먼저 투입되어야 할 사업들도 있지만 결국에는 대구시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참여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 대부분이다.대표적 사례를 들어보면 8대 정책분야 중 ‘에너지전환’ 분야다. 2030년 대구시가 계획한 온실가스 총 감축량(약 493만t) 대비 기여율이 16.6%(약 67만t)로 ‘건물·도시’ 26%, ‘녹색교통’ 24.7% 다음으로 기여율이 높은 분야이다. 이 분야 세부 사업에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시민에너지 복지향상’, ‘시민햇빛발전소’.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스마트그리드 구축’ 등이 포함된다.이들 세부 사업 대부분은 민간사업자 대규모 선투자와 함께 국가와 대구시가 지원하는 사업들로 구성되는데, 기존 중앙정부 주도 화석연료 및 원자력을 기반한 대규모 에너지와의 시장경쟁 극복, 기존 전력망에 연결 확대 및 간헐성 문제 해결이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이를 위해 지역에너지 분권 강화와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에너지전환’ 분야 세부사업 중 유일하게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햇빛발전소’ 설치사업의 활성화가 매우 절실하다.대구시는 2030년까지 ‘시민햇빛발전소’ 설치사업 규모를 32㎿로 확대 계획하였다.이를 위해 ‘주민주도형 지역균형뉴딜’ 우수사업으로 추진 중인 ‘누구나 햇빛발전 플랫폼’과 ‘햇빛 마일리지’의 성공운영과 이를 견인할 대구 ‘지역에너지센터’와 ‘탄소중립지원센터’의 설립과 역량 강화가 더욱 필요하다.

2022-12-19

포항제철소 완전복구, 카운트 다운 시작됐다

태풍 힌남노로 가동이 중단됐던 포항제철소 압연공장 중 핵심인 2열연공장이 지난 15일부터 재가동됐다. 지난 9월 6일 침수 이후 100일 만이다. 포스코는 이달 말 스테인리스 2냉연공장과 1전기강판공장을 가동하고, 내년 1월 안에 도금공장·스테인리스 1냉연공장을 재가동해 포항제철소 복구를 모두 완료한다는 계획이다.정부까지 금년내 정상화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던 2열연공장이 재가동된 것은 임직원들이 총력을 쏟은 덕분이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이번 태풍 피해복구 과정에서 ‘재해가 인재(人災)’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경영진에 칼끝을 겨눈 정부와 일부 정치인과도 신경전을 벌이며 마음고생까지 해야 했다. 지난 9월 6일 새벽 포항에 시간당 110㎜의 폭우를 뿌리며 포항제철소와 인접한 하천을 범람시킨 힌남노는 포스코 경영진이 철저히 대비했더라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 재해였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2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가 연간 생산하는 제품 중 33% 수준인 500만t을 생산하며, 제철소의 대동맥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포항제철소 슬래브(철강 반제품)의 약 33%를 처리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쉬는 시간 없이 슬래브를 연속으로 압연하는 설비를 보유해 생산성이 높다.포항제철소는 침수 피해가 컸던 2열연공장 복구를 위해 포스코 명장들과 전문 엔지니어를 총동원했고, 글로벌 철강업계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거대한 압연기용 모터들을 1년 이내에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포항제철소 임직원들이 밤낮없이 복구작업을 벌여 연내가동을 성공시킨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남은 과제는 도금공장과 스테인리스 냉연공장 등 아직 완전 복구되지 않은 라인을 정상화시키는 작업이다. 최근에는 강추위가 계속되는 만큼, 포항제철소 임직원들은 안전관리에 유의하면서 마지막까지 복구작업에 총력을 쏟아주질 바란다. 하루라도 빨리 포항제철소가 정상화돼야 그동안 위축됐던 포항지역 경제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2022-12-19

대구 찾는 대만 관광객…관광 재기 신호탄 되길

대만 단체관광객 1만4천여명이 내년 1월부터 4월까지 순차적으로 대구를 찾는다. 내년 1월에만 4천여명의 대만 단체관광객이 대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등 코로나 이후 모처럼만에 외국 단체관광객의 대구 러시를 구경할 수 있게 됐다.대구를 찾는 대만 관광객은 대구와 경주 등을 오가며 3박4일 머물며 서문시장, 대구 찜질방, 구암마을, 팔공산 등 대구 주요 관광지를 둘러볼 예정이다. 대구시도 대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대만 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증정하는 등 환영 행사를 통해 외래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일 생각이다.대만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한해 동안만 29만8천여명이 대구를 방문하는 등 대구 전체 외래관광객의 41%를 차지했다. 이번에 대구 방문이 시작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대구시의 관광객 유치 노력이 큰 힘이 됐다.대구는 도시 규모에 비해 국제화 수준이 매우 낮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뜸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대구와 경북을 방문한 사람은 100명 중 고작 3∼4명에 불과하다. 대구, 경북이 가진 관광자원에 비해 매우 저조한 외국인 방문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특히 대구와 경북의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두 지역간의 상생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대구의 도심관광과 경북의 문화역사관광을 잘 엮어 관광 상품화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외국인을 위한 면세점을 확충하고 숙박의 편의성 제고 등 관광 인프라 개발과 확충에도 집중 투자해야 한다.잘 알다시피 관광산업은 굴뚝없는 산업이라 불린다.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매우 높다. 대구시는 올 3월 7차 대구권관광개발계획을 발표하고 대구만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대한민국 대표 내륙관광 도시로 도약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아 여의치 못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대구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 정책개발의 노력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만 단체관광객의 대구방문이 지역의 관광산업 활성화의 새로운 전기가 되길 바란다.

2022-12-19

문화유산국민신탁

홍석봉 대구지사장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국민과 기업의 기부로 문화재를 매입·보존·활용하기 위해 2007년 탄생한 문화재청 산하의 특수법인이다.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가 모델이다. 창립 15년 만에 회원수 1만5천명을 넘어서는 단체로 성장해 지난 10월 덕수궁에서 회원들이 힐링콘서트를 갖기도 했다.국민신탁은 그동안 덕수궁 중명전을 비롯 서울 이상의 집,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보성여관, 부산 문화공감 수정,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등 문화유산의 보전, 위탁 관리 등에 힘써왔다. 지난 2018년 복원공사를 마친 워싱턴의 주미대한제국공사 매입과 복원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국민신탁은 지역에도 뿌리를 내렸다. 2011년 울릉도와 독도의 근현대사를 체험할 수 있는 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를 개소했다. 19일에는 ‘마지막 신라인’ 고(故) 고청 윤경렬(尹京烈) 선생의 생애를 기리는 고청기념관이 국민신탁의 도움으로 개관한다. 윤 선생은 평생 경주 남산을 조사 및 소개하고 어린이들에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자긍심을 가르쳤다. 기념관은 경주시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국민신탁’은 개인, 기업, 단체의 기부·증여 등을 통해 위탁받은 재산·회비 등을 활용해 보전가치가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등을 취득하고, 민간차원의 자발적인 참여방식으로 유산을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운동을 뜻한다.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보전하는 데에 힘을 쏟아왔다.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보존 관리 활동이라는 점에서 시민운동과도 궤를 같이 한다.우리 주변의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의 복원·관리에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19

‘문화 지체’와 ‘성장의 한계’

이정희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최근 ‘문화 지체’와 ‘성장의 한계’라는 개념 탐구에 빠져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용어가 완전히 신개념의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문화 지체’는 미국의 사회학자 W.F.오그번의 1922년 저서 ‘사회변동론’에서 처음 언급한 이론이다. 설명을 살펴보면, 비물질문화가 물질문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여기서 물질문화는 주로 과학 기술의 발달을 말하고, 비물질문화는 인간의 생활방식에서부터 각종 제도적인 면,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인 부분까지 아우른다. 쉽게 말하자면, 예를 들어 자동차의 개발과 보급은 자동차공업의 발달과 함께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는 반면, 자동차와 관련된 우리의 교통 질서의식이나 그에 따른 제도 확립 등이 갖추어지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이러한 문화 지체로 인해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층간 소음 분쟁도 문화 지체 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이태원참사 역시 문화 지체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문화 지체 현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경시하기에 이른 것이다.‘성장의 한계’는 1990년대 일본 유학시절에 읽었던 책으로 당시에는 빗나간 예측에 우울한 예언서 정도로 일축해 버려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최근 원폭문학이나 재난문학 등의 생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성장의 한계’책을 구입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성장의 한계’는 1972년 로마클럽이라는 민간단체가 당시 전 세계를 감싸고 있는 여러 우려되는 상황들을 문제 제기해서 연구한 것으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인구 폭발, 식량 생산, 공업화, 환경 문제, 천연자원의 고갈 등의 주제로 인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 보고서이다.다시 읽어본 ‘성장의 한계’는 놀라울 정도로 이 시대를 예견하고 있어서 나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책이 나온 지 50여 년이 된 이 시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사회와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던 팬데믹을 생각해보면 책의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성장의 한계’의 기준에는 인간의 생태발자국을 측정해서 그것을 지구의 수용능력과 비교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태발자국은 인간에게 자원(곡물, 사료, 목재, 물고기, 도시로 수용된 토지)을 제공하고 지구촌이 배출하는 배기가스(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 면적을 이른다. 그리고 현재 지구의 사용 가능한 면적을 비교했을 때, 인간의 자원 사용량은 지구의 수용 능력보다 20퍼센트를 초과한 상태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너무 많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즉, 앞으로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려면 인간 전체의 생태발자국을 줄여야만 하는 것이다. 문화 지체에서 오는 불평등과 갈등을 서서히 해소하고,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뿐인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 생각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22-12-18

뇌 말고 몸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한 달 전, 벼르고 벼르던 스탠딩 책상을 샀다. 최근 들어 30분만 앉아있어도 집중력이 떨어져서 까만 것은 글자고 하얀 것은 종이구나 하는 상태가 되고,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팠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큰마음 먹고 구매했는데, 서너 시간 지나도 멀쩡하다. 앉아있을 때는 허리가 불편하여 주의가 분산되는데, 서 있을 때는 덜 불편하니 작업 집중력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물론 깔창 있는 운동화를 신는다.애니 머피 폴의 책 ‘익스텐드 마인드’를 보니,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미국의 초등학교 교사도 학생들 책상을 스탠딩 책상으로 교체하고 수업 듣는 자세도 편하게 하고 움직일 수 있게 했더니 학생들이 더 집중하고 자신감 있고 생산적으로 변했다고 한다.앉아있는 것보다 서 있는 것만 작업에 효과적인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일하는 것도 집중력이 증가한다고 한다. 방사선 전문의 제프 피들러 박사는 매일 1만5천 개 사진을 앉은 자세로 검토하다가 사진을 대형 스크린에 띄워 놓고 그 앞에 트레드밀을 설치해서 걸으면서 사진을 보았더니 이상 징후를 더 잘 찾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서 있거나 걸을 때 작업 능률이 오르는 이유는 신체 활동을 할 때 우리의 시각이 더 예민해지기 때문이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에 한두 시간을 꼭 달린다고 하니, 운동을 한 후에도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제스처는 소통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설명하거나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제스처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말을 더 잘 이해하고, 제스처가 있을 때 한 말을 더 기억하기도 한다. 밀턴 에릭슨이라는 심리 상담사는 내담자의 동작을 은연중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내담자와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상담이 잘되었다고 한다.자연의 다양한 색과 형태 역시 창의성에 자극을 준다. 저자는 예술가 잭슨 폴록이 롱아일랜드에 갔다가 위안과 자극을 동시에 받고 바로 그 지역으로 이사 가서 걸작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소개해준다. 자연은 우리의 인지 부담을 줄여주어 창의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공간 역시 창의성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연극 수업을 받으러 갈 때 매시간 책상과 의자 배치가 달라서 수업에 관심이 더 생기고 다음 수업도 기대하게 되었던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다. 국립도서관에서 한두 시간만 있어도 두통을 느꼈는데, 도서관 리모델링 후에는 서너 시간 있어도 컨디션이 좋았던 것 역시 이런 맥락일 것이다.생각은 뇌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움직여야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하는 저자의 말을 듣다 보니,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온종일 교실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우리나라 수험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교육 방식도 말로만 하거나 기껏해야 영상 자료를 활용할 뿐이다. 교실 모양도 천편일률적이다. 손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많이 하고, 공간에도 다양하게 변화를 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한창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학생을 움직이게 하라.

2022-12-18

당심과 민심 사이, 양당제의 그늘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규칙을 놓고, 논란이다. 당 대표를 선출하는데 일반 시민 여론을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문제다. 현행 당헌 26조는 ‘선거인단의 유효투표 결과를 70%, 여론조사 결과를 30% 반영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여론조사 비중을 10%로 줄이거나 없애자는 것이다. 일반 시민의 생각과 상관없이 당원이 원하는 대표를 뽑자는 주장이다.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이다. 일반 사회단체도 회원들의 의견으로 대표를 뽑는다. 그렇게 보면 정당도 당원의 뜻을 모아 대표를 선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를 포함한 건 선거 때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서다. 선거에서 이기는 게 정당의 목표다.물론 당원이 선택한 사람은 중도층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거나, 국민 여론을 반영하면 중도층의 지지를 더 끌어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당원 투표만 하면 아무래도 후보들이 당원들이 좋아할 주장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당의 노선이 강성으로 흐를 수 있다.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모두 당원 투표로만 대표를 선출해왔다. 여기에 여론조사를 처음 도입한 건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다. 2004년 탄핵과 차떼기 후폭풍으로 총선에서 참패한 뒤 당원 외에 국민여론조사 50%를 반영하도록 바꾸고, 2년 뒤 30%로 줄인 뒤 지금까지 유지했다. 민주당은 2013년에야 국민여론조사를 도입했다. 이재명 대표를 선출한 지난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여론조사 비중이 논란이었다.“경기 도중 골대를 옮기느냐”는 지적이 옳다. 경기 규칙은 여유 있게 미리 고쳐야 공정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정당 내부 선거도 초읽기로 규정을 고치는 나쁜 습관이 우리 정치권에 있다. 후보들 윤곽이 드러난 뒤 규칙을 바꾸는 건 위인설법(爲人設法)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도 선거 막판에 후보자에 맞춰 게리맨더링 하는 게 버릇처럼 됐다.굳이 내년 3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 선출 규칙을 바꾸려는 국민의힘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답답한 심정은 이해는 간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주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적합도를 물은 결과 유승민 전 의원이 37.5%로 압도적 1등이고, 안철수 의원 10.2%, 나경원 전 의원 9.3% 순으로 나왔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나 전 의원이 18.0%, 한동훈 법무부 장관 16.0%,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14.2%, 안철수 의원 13.6%, 김기현 의원 11.0%였고, 유 전 의원은 8.7%로 6등이다. 반대로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유 전 의원이 60.0%로 압도적 1위다. 다른 조사도 대체로 비슷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중도층 확장도 좋고, 민심 반영도 필요하다. 특히 선거에 나갈 후보는 중도층 확장성이 당락을 가른다. 그렇지만 당원에게는 비호감 대상이면서 경쟁 정당 지지층이 열광해 당 대표가 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극심한 진영정치, 팬덤 정치, 증오 정치가 낳은 부산물이다.국민의힘 안에도 문제가 많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제껏 여야 협치는커녕 당내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잊을만하면 ‘윤핵관’ 논란이 반복된다. 이러다가는 거수기가 되기에 십상이다.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기반은 어림도 없다. 당심-민심 논란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카리스마 있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여론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은 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당원들이 모인 그런 정당에서 대표가 되려 할까. 왜 정치적 견해가 같은 동지들과 따로 정당을 만들지 않을까. 문제는 한국에서 양대 정당 이외에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이다. 제3정당을 만들어 성공한 예가 없다. 유 전 의원도 경험이 있다. 제3정당은 고생길이다. 선거제도를 포함해 모든 규정이 양대 정당에 지나치게 유리하다.정상적인 정치에서 당심과 민심이 다르면 다른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도 갈등과 분열 요인을 안고 있다. 억지로 양당으로 묶는 건 부당한 특혜다. 정치적 견해에 따라 정당을 만들고, 연대할 수 있도록 선거법부터 고쳐야 한다. 정치적 자유의 기본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12-18

나에게도 감동 준 포르투갈 대통령의 칭찬

김하수청도 군수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한국팀의 8강 진출이 아쉽게도 좌절되었다.그러나 조별 리그에서 보여준 한국팀의 기량과 전술, 투혼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ESPN을 비롯한 유수의 세계적인 스포츠 매체도 매우 관심 있게 다루었다.지난달 28일 열린 한국-가나 경기는 비록 우리가 2대3으로 아깝게 지긴 했지만, 내용에는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 최고의 게임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특히 한국의 극적인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지난 3일의 포르투갈전은 믿기 어려운 기적의 드라마로 평가되고 있다.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훌륭한 경기력과 투혼을 보여 준 한국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한국이 포르투갈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16강 진출을 확정하자 지켜보던 축구팬들은 물론 전 국민이 기뻐하고 환호했으며 윤석열 대통령도 직접 축전을 전하며 대통령 휘장이 선명한 축하와 응원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까지 했다.한 마디로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축하하고 기뻐한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이러한 가운데 외신은 짤막하게 새로운 소식 하나를 전했다.포르투갈 언론 코레이오 다 마냐와 마이스푸테볼 등에 따르면 한국-포르투갈전이 끝난 직후 드소자 대통령은 한국팀의 벤투 감독에게 “포르투갈이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유능한 벤투 감독이 한국팀을 잘 이끈 결과다”며 “우리는 한국보다 좋은 전력을 갖췄지만, 오늘 경기는 한국이 더 잘했고 나는 벤투를 좋아한다”고 자국 출신의 한국 대표팀 감독이 16강 진출한 것을 기꺼이 축하하고 나섰다.벤투 감독은 알려진 것처럼 현역 시절에는 포르투갈의 국가대표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던 포르투갈 출신 감독이다.이러한 외신의 짤막한 보도를 접하며 나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일국의 대통령이 자국팀에 패배를 안기며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끈 벤투 감독을 향해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다니.이처럼 공정한 경기 규칙에 의해 치러진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비록 자신이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해도 승자를 축하해 주는 스포츠 정신은 참으로 위대하다.여기에서 정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국 출신 지도자가 경쟁국의 감독이 되어 자국 대표팀에 패배를 안겼음에도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 드소자 포르투갈 대통령의 마음가짐이다.어찌 보면 이렇게 거창하게 찬사를 보낼 일이 아닌지도 몰라도 그의 솔직한 축하 메시지에 나는 감동 받을 수밖에 없다.우리는 살면서 자연환경이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를 통해 배움과 깨달음을 얻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지혜를 구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 포르투갈의 드소자 대통령은 그의 짧은 메시지 하나로 한국의 지방 소도시 군수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처럼 진실함은 모든 것을 넘어선다.속담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가 있다.천냥은 현재 가치로 5천만원에서 7천만원 상당이라 한다. 이처럼 큰 금액이라도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지만, 보통은 말을 잘못하거나 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서 손해를 본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이상한 현실에 살고 있다.내가 전하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된다.우리의 삶도 다양하고 치열한 경쟁의 상황에 놓일 때가 잦은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끝에 오는 결과에 대하여 겸허히 받아들이고 승자를 축하해 주는 문화가 확산하기를 바라본다.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하며 각각의 요인을 분석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 삶의 질도 더 높아지고 따뜻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긴장과 흥미를 더해가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의 와중에 들려온 먼 나라 대통령의 메시지를 통해 작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22-12-18

사그랑주머니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시로 쓰는 자서전’ 수업할 때였다. 어르신들의 삶을 이야기로 나누고 그것을 받아 적으니 모두 시가 되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몇 부분으로 나누어 질문하고 어르신들의 생각을 끌어냈다. 결혼할 때는 어떠했는지, 그땐 그랬지요, 라고 맞장구를 쳐 드렸다. 아이들 키울 때는 어떠했는지?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며 어르신들은 이미 추억 속에 가 있었다. 금방 웃으시다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도 있다며 시무룩해하셨다. 끝없이 달려 나오는 이야기를 녹음하고 기뻤을 때는 기쁜 표정으로 추임새를 넣었다.그날은 사진을 보고 시를 쓰는 수업이었다. 어르신들이 갖고 온 사진은 다들 꽃 속에 찍은 것들이다. 예쁘게 차려입은 옷은 봄 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같은데, 표정은 어둑해 보였다. 가물가물한 추억이 된 사진을 보고 오늘에서야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는다. 언제, 어디를 누구와 갔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사진에 관한 추억을 반죽하고 부풀리느라 교실이 시끌벅적했다.“옜다, 선물이다.”“니, 엄마 보고 싶제?, “니, 엄마도 있고, 나도 있다.”엄마 친구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설악산 어느 바위 뒤에서 세 명이 찍은 사진이었다. 꽤 오래된 사진 속에 젊은 엄마가 보였다. 한 장의 사진은 추억으로 가는 빗장을 열어주었다.생각해 보니 젊은 엄마는 싸움을 잘했다. 산비탈 돌짝밭에서는 크고 작은 돌멩이와 숨바꼭질하듯 싸우고 동구 밖에서는 논에 물 대는 일로 이웃과 자주 싸웠다. 옆집 논에서 물길을 돌려야 할 때는 아버지를 앞세우고 뒤에서 요목조목 큰 소리로 따졌다. 그 무엇보다 엄마가 제일 잘하는 것은 자식들을 위한 모든 싸움이었다.엄마 주머니에는 항상 먹을 것이 있었다. 산골 마을에 어스름이 내리면 엄마는 대문을 들어서고 수돗가에 하루치 노동을 부려놓았다. 우리는 엄마 곁에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의 양쪽 주머니에는 이것저것 먹을 것이 나왔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아무것도 없는 날은 부엌에서 눈 깜박할 사이 주전부리를 만들어 냈다. 이순혜 수필가 사진 속의 엄마를 뚫어지게 보았다. 사진 너머 있는 엄마의 무심한 표정에 자꾸 눈길이 갔다. 힘든 농사일에서 잠시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려 나들이해서 좋을 텐데, 여행이 즐겁지 않았는지. 엄마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만약 단 몇 초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이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갑자기 교실이 시끌벅적거린다. 모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한 사람씩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정했다. 흑백에서 컬러사진까지 다양했다. 이제는 그때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엄마 친구도 설악산의 어느 바위 사진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엄마와 같이 죽도시장에서 옷도 사고 신발도 샀다고 했다. 설악산의 커다란 바위를 보았던 그날은 힘들게 산에 올랐지만 힘들었던 만큼 많은 것을 보았단다. 마치 햇살이 따스한 고향 집 툇마루에 앉아 있는 듯했다. 손에는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서 구입한 ‘효도 관광’이라고 쓴 등 긁개를 들고서.아마도 그날은 강원도 어떤 간식을 먹었을 것이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고이 싸 온 간식을 우리에게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아주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의 부른 배를 두드렸을지도 모를 일이다.그날의 기억은 이제 사진에서만 볼 수 있다. 나는 사진 속 엄마 옷 주머니를 훑어보았다. 아직은 밋밋하지만,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엄마의 사랑이 불룩했을 것이다.엄마는 그랬다.

2022-12-18

겨울철 우울증 주의보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고운 단풍이 낙엽이 되고, 상쾌한 가을 바람 스산한 바람 되는 늦가을을 넘어 일조량이 급격히 줄어 어둡고 추운 겨울로 계절이 바뀔 때 우리는 마음과 몸의 변화를 겪곤 한다.떨어진 낙엽에서 감성적인 분위기를 넘어 생명의 쇠진함을 느끼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다 못해 울적해진다.만사가 귀찮아지고 무기력해지며 자도자도 피곤하며 단 것이 자꾸 당기고 식욕은 부쩍 늘고 뱃살도 는다.이런 증상들은 겨울의 문턱에 자리한 늦가을에 시작하여 겨울에 많이 나타난다.최근 연구에 의하면 성인의 약 15%가 겨울철이 되면 기분이 울적해짐을 경험하는 일시적인 우울감을 보이고, 2~3%는 소위 ‘겨울철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특정 계절에 반복되는 우울증, 소위 계절을 앓는 사람들, 이를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계절성 우울증 중 가장 흔하고 심한 소위 ‘겨울철 우울증’은 남위도 지역보다 북위도 지역에 더 많으며 11월과 12월에 가장 악화한다. 또한, 여성이 전체의 60∼90%를 차지할 정도로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특히, 20∼40대 여성에서 계절성 감정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겨울철 우울증의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으나, 현재까지 밝혀진 주요 생물학적 원인은 다음과 같다.첫 번째는 겨울철에 일조량이 줄어 비타민D 합성과 세로토닌 생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햇빛을 통해 비타민 D를 합성하며 비타민 D는 행복한 감정과 긍정적 사고를 하게 해주는 세로토닌이라는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 그런데 일조량이 줄어 비타민 D가 부족해지면 세로토닌 결핍이 일어나 우울감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는 겨울철에 낮이 짧고 밤이 길어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과다 분비돼 수면 욕구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겨울철 우울증은 전형적인 우울증과 다른 증상 양상을 보인다.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상은 우울한 기분,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정신운동성 초조, 식욕저하, 체중감소, 불면을 나타낸다. 그러나 겨울철 우울증의 증상은 우울한 기분보다 무기력감과 피로감이 더 특징적이다. 정신운동성 초조보다는 정신운동성 지체가 심하여 팔다리가 마치 납처럼 무거워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식욕이 늘어나는 기현상(奇現象)을 경험한다. 특히 달거나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잠들기 전에 식욕 증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밤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체중이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겨울철 우울증의 경우, 수면에 관여하는 멜라토닌이 증가하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고 온종일 자고 싶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겨울철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햇볕 쬐기와 운동이다. 첫째, 겨울철 우울증의 원인이 일조량 부족에서 오기 때문에 답은 햇빛이다. 온몸으로 햇빛을 맞이하자. 햇볕을 많이 쬐면 망막 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뇌를 자극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매일 낮 시간에 30분 이상 햇볕을 쬐고 비타민 D를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비타민D는 세로토닌을 많이 만들게 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억제한다.다만, 비타민D의 복용은 과잉 섭취에 유의해야 한다.둘째, 우울할 때는 몸을 움직이자. 우울할 때 우울한 기분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우울할 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스트레스를 경감시켜주고 세로토닌 등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연구에 의하면, 걷기 시작 5분 후부터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해 15분 후에는 최고도에 다다른다고 한다.걷기 운동을 할 때는 평소보다 보폭을 넓히고 조금 빠르게 걷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햇볕을 쬐며 걸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춥다고 실내에서 웅크리지 말고 밖으로 나가 움직이는 시간을 늘릴수록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운동을 통해 칼로리를 소모하면 겨울철 우울증의 폭식으로 인한 체중 증가도 예방할 수 있다.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지만, 때로는 감기가 심해져서 폐렴으로 이어지기도 하듯 감기라고 마냥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겨울철이 되면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겨울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많아진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스스로 병원을 찾듯, 만약 겨울철 우울증 증상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줄 정도로 심하거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의학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우울증을 방치하면 뇌의 신경전달물질 등에 생물학적 변화를 초래해 후에 심한 우울증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우울증을 앓는 동안에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자살 등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겨울철 우울증의 치료방법으로는 일반적인 실내조명보다 약 20배 정도 강한 밝기인 1만룩스(lux) 정도의 광선을 쪼여주는 광선치료와 선택적 세로토닌재 흡수억제제와 같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약물치료, 부정적인 인지왜곡을 긍정적인 인지체계로 바꾸고 활동을 많이 하도록 해주는 인지행동치료 등이 있다.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은 일조량이 적어 어둡고 추운 날씨지만 마음만은 밝고 따뜻한 계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2-12-18

의대 열풍, 문제는 없는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금년도 대학입학 수학능력 시험(수능) 채점 결과 만점자 3명이 나왔고 이 지역 포항의 고교에서도 만점자가 나왔다고 한다.그런데 이 만점자 전원이 의대를 지원하고 합격했다는 뉴스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의학이 중요하지 않다는건 아니지만 의대는 물론 치대, 수의대의 약진은 대학 전공의 선택이 점점 더 현실적으로만 되어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는 이과는 물리, 문과는 경제 등이 인기가 있었다. 물리는 순수학문이고 경제도 취업보다는 정책적으로 인기를 끄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과는 의학, 문과는 경영이 압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선택은 졸업 후 취업과 금전적 수입과 관련된 현실적 전공 선택이며 이러한 현상이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대학에 상관없이 의대 들어가기가 최우수 대학들의 이공계 들어가기보다 힘들다고 하니 참으로 의대 열풍의 시대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의대생의 실력은 대학을 막론하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선택하는 전공이다. 의과대학을 향한 학생들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겁다.이러한 와중에 포스텍, 카이스트 등 연구중심 과학기술대학의 ‘의과학자 양성 연구형 의과 대학’설립에 의사협회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서고 있다.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추어진다.의대 열풍이나 연구형 의대 설립 반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물리나 화학 같은 순수학문보다 의대를 선호하는 것도 그리고 의사협회가 연구형 의대 설립을 반대하는 것 모두 인류를 위한 학문의 발전보다는 금전적 이득의 현실적 이유일 것이다.그런데 한편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볼 만하다. 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대학들은 소위 “반수”를 하는 친구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린다는 소문이다. 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그러한 배경에 안정된 수입이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의대 내의 전공 선택도 수입이 절대적 기준이 되면서 의과학을 선택하는 의대생은 소수이다. 많은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이러한 가운데 의학계가 의과학자 육성 의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현재 병을 치료하는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고 한다. 한국의 의사들은 다른 나라가 개발한 약을 처방해 주고 수입을 올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그 약을 개발하는 일은 방치되고 있다.의대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좀 더 많아져야 한다.미국에는 의대 출신으로 신약개발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가 많다고 한다. 의사과학자는 의사이면서 과학연구를 하는 과학자이다.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우리는 지지해야 한다. 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의료계가 의과학자 육성 의과대학 설립을 줄기차게 반대하자 의사과학자들이 임상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법적 조항을 마련하겠다는 의견이 국회에서 나오기까지 했다.“의사과학자를 육성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바이오 헬스 산업의 주도권을 잃게 되고 새로운 국가 동력을 잃게 된다.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설립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라는 지역 국회의원의 호소와 함께, “진료하는 임상의와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개원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다.최근 카이스트 총장 역시 “의사과학자는 바이오 신약 부분의 핵심이다. 체계적인 양성이 필요하다”면서 “카이스트와 포스텍은 (연구중심의대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전문의가 될 수 없으며 임상으로 가기도 굉장히 어렵다.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해서도 법적 장치를 마련해 예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최근 만나본 한 의사는 “믿지 못한다”라고 하면서 연구형 의대 설립에 반대를 표시했다. 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신약은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과학 발전으로 보완될 수 있다. 의학계의 대승적인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2022-12-18

2025년 亞육상대회 유치한 구미시의 저력

구미시가 중국 샤먼시를 제치고 2025년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 대회를 유치한 것은 대구·경북의 쾌거인 동시에 구미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연맹 이사회에서 구미는 투표권이 있는 이사국 16명 중 10명의 표를 얻어 전국 기초단체로서 처음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육상대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경쟁도시 샤먼시는 시진핑 주석이 부시장을 역임한 도시로 중앙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받아 구미시의 대회유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되기도 했다. 샤먼시는 서울의 3배 면적, 인구 528만명, 지역 내 국제공항과 30여개의 5성급 호텔이 있는 도시다. 국제마라톤대회 경력과 2023년 완공되는 경기장이 완비된 곳이다. 누가 봐도 외형적 규모에서 구미시가 샤먼시를 이기는 것은 힘든 일이다.그러나 “도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김장호 구미시장의 과감한 도전정신이 유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김 시장 취임 후 구미시는 반도체클러스터특구 구미유치와 방위산업 관련 대기업 유치 등 구미경제 도약을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구미시의 이런 노력에 더해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시아육상대회를 유치한 것은 구미경제 발전의 시너지로서도 기대되는 바가 크다.구미는 우리나라 전자산업 메카이자 수출전진기지로 성장한 도시다. 최근에는 군위·의성지역에 들어설 통합신공항의 배후도시로서 또다시 성장의 기회를 맞고 있는 곳이다. 또 이번 대회 유치가 구미시민의 자존심을 살렸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다. 2025년 대회 유치를 통해 글로벌 구미를 알리고 구미경제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 노력에 더 집중해야 한다.김 시장은 “아시아국가의 구미시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대회 성공개최가 구미의 저력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구미경제 도약의 발판이 되도록 해야 한다.이번 대회 성공이 국제육상대회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중앙정부와 경북도의 전폭적인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

2022-12-18

MZ세대와 정치

우정구 논설위원 MZ세대를 제대로 알려면 플렉스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미닝아웃 소비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영어의 플레스(Flex)는 몸의 근육 등을 푼다는 의미다.MZ세대에게 플렉스는 몸이 아닌 돈이다. 돈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행동 등을 플렉스 문화라 일컫는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젊은세대의 플렉스 문화가 필요 이상의 돈을 쓰며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을 뜻하는 사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한 트렌드 분석가는 그의 저서에서 밀레니엄 세대에 대해 “있어 보이기 위해 비싼 물건을 사는 것보단 자기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것에 더 주목한다”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른바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 형태다. 의미를 뜻하는 meaning과 드러낸다는 coming out의 합성어인 미닝아웃 소비는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기능과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한다면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다. 소비 행위를 신념 표출의 수단으로 삼는 거와 같다.언제부턴가 MZ 세대는 고가명품 브랜드업계에서도 큰손으로 등장했다. 가격을 올려도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가 되니 가격을 덧붙여 명품을 되파는 리셀러까지 나타났다.MZ세대에게 소비는 가치에 대한 투자 개념이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가격보다는 취향을 먼저 따지는 세대다. 휴대폰, 인터넷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그들에게 민주화와 산업화로 대표되는 정치 구호는 무의미하다.이미 잘사는 나라에 태어난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청년들이 어떻게 먹고 잘사느냐 하는 문제다.정치가 MZ세대에게 인기가 있으려면 MZ세대와 마음이 통할 수 있는 공감 능력부터 갖추는 것이 순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2-18

일자리 찾아 떠나는 청년들, 잡을 방안 없나

경북의 청년 인구 감소가 매우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어 걱정이다. 2030 청년세대 인구 감소는 경북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인구 감소폭이 다른 광역단체보다 높아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경북도가 지난 15일 발표한 2021년 ‘경북 청년통계’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말 기준 청년인구는 66만6천600명(경북 전체 인구의 25.4%)으로 2015년 이후 계속 감소추세다. 2012년과 비교하면 청년인구 비율이 6.8%나 줄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5.4%, 타 도지역 5.5%에 비해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경북도는 지난 2018년부터 2년마다 만 15세 이상 39세 이하를 기준으로 하는 청년통계를 작성해 오고 있다. 지난해 경북 청년의 총전입은 14만2천900명, 총전출은 15만1천100명으로 순이동이 마이너스 8천200명에 달한다. 연령별로는 20~24세 인구유출이 가장 많다.경북도는 청년층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정책을 펴왔다. 지난 2020년부터 청년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청년정책관 부서를 신설해 청년계층의 사회참여와 소통을 확대하는 한편, 많은 사업도 해오고 있다. 지난해는 ‘청년이 머무는 행복한 경북’을 캐치프레이즈로 148개의 세분화된 사업을 벌여 취업·창업 지원(9천여명)과 행복카드(1천355명) 지급 혜택을 줬다. 행복카드는 중소기업 근무 청년들 중 월 급여가 적은 이들에게 연 100만원 상당의 바우처 카드를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주에는 문경 달빛탐사대, 상주 054마을, 영덕 뚜벅이마을 등 ‘청년마을’의 성공적인 운영을 인정받아 ‘청년자립 및 활력지원’ 분야에서 대통령 기관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경북도의 이러한 노력에도 청년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청년인구 유출은 일자리와 임금, 교육환경, 삶의 질 문제 등과 맞물려 있어 해결책 마련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각 시·군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서 지역을 지키는 청년층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2022-12-18

수사(修辭) 과잉의 나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늦게 시작한 겨울이 조금씩 겨울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아니하여 온화하면 이듬해 농사와 어로(漁撈)에 애로가 생기기 마련이다. 차고 넘치는 벌레들의 향연과 은성(殷盛)한 축제도 그렇고 해양 생태계 역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35세 청년 공자의 명언 ‘군군 신신 부부 자자’가 떠오른다. 제(齊) 경공(景公)이 정사(政事)에 관해 물었을 때 당대 최고 천재 중니(仲尼)의 답변이 그것이었다.일기 예보에 관한 일간지들의 협박성 보도를 보자. “일요일 ‘최강한파’ 닥친다…아침 체감기온 영하 21도.” 12월 18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과 체감온도는 각각 영하 14도와 영하 21도로 예보된다. 여기서 기자의 주안점은 ‘최강한파’다. 최강(最强)이란 말은 더는 강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자의 머릿속에 자리한 최강의 한파가 영하 14도에 체감온도 21도라는 얘기다. 정말 그것이 지구와 대한민국의 최강한파인가?!1805년 출간된 현동 정동유의 ‘주영편’에 따르면, 그때까지 조선에는 쇠바늘이 없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글이 유씨(兪氏) 부인의 ‘조침문’이다. 청나라 사신으로 간 시삼촌에게 바늘을 얻어 27년을 쓰다가 바늘이 부러지는 바람에 애통한 심사를 수필로 풀어낸 것이 ‘조침문’이다. 사대부 집안 처자(妻子)야 청국의 쇠바늘을 얻어쓸 수 있었으나, 민초(民草) 아낙들은 대바늘로 옷과 이불을 꿰맸을 터 겨울의 우심(尤甚)한 추위를 어찌 견뎠을까?!4∼50년 전 서울 최저기온 14∼5도는 연례행사였다. 그 정도 추위는 당연했고, 석유-가스보일러 따위는 언감생심이었다. 문풍지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이닥쳤고, 윗목에서는 아버지의 자리끼가 쩍쩍 얼어붙었다. 연탄 한두 장으로 하룻밤 나는 게 예사였고, 식전 댓바람에 세수할라치면 문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었다. 그때 기자들은 ‘최강한파’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첨단의 창호와 난방으로 한겨울 실내온도 25∼6도에 딸기와 열대과일이 넘쳐나는 시절에 ‘최강한파’ 운운하니 기가 막힌다. 기후 온난화로 밋밋하고 맹숭맹숭한 겨울을 보내는 판국에 조금 내려간 기온을 두고 ‘최강한파’라고 호들갑 떤다. 여기에 맞장구치듯 날씨를 보도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감기 조심해라, 건강 유의해라, 하면서 어린애 다루듯 시청자를 희롱한다.3주 연속 베를린의 최저기온이 영하 30도, 최고기온이 영하 18도였을 때 최강이라 과장한 도이칠란트 언론사를 본 적 없고, 최저기온 영하 20도인 흑룡강(黑龍江) 추위를 중국 기자들이 ‘최강한파’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없다. 평상시 영하 40도 최저기온이 영하 28도로 올라가자 ‘따뜻한 겨울’이라 서운해하는 러시아인들의 표정은 환하고 밝았다. 고작 영하 14도 가지고 숱한 언론사 기자들이 합창하는 ‘최강한파’ 놀음에서 벗어났으면 한다.수사의 과잉은 언어의 과잉을 낳고, 언어의 과잉은 행동의 과잉을 낳는다. 필요 이상의 꾸밈과 언어와 행동은 사회 구성원들의 불화와 충돌을 초래한다. 적절한 기준선을 지키는 언어와 행동이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규준(規準)으로 자리했으면 한다.

2022-12-18

닭똥집의 고장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는 치킨산업으로 전국적 명성이 있다. 멕시카나, 교촌, 호식이두마리, 땅땅치킨 같은 전국 브랜드가 대구가 고향이다. 외지에서 대구를 ‘치킨 성지’로 부르는 까닭도 수많은 치킨 프랜차이즈가 대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한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에 대구서는 치맥페스티벌이 열린다. 폭염도시 대구와 치킨이 잘 어울려 만들어진 축제다. 행사 기간 1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도 좋다.닭의 모래주머니로 요리한 속칭 닭똥집 전문점이 대구에서만 유독 발달한 것도 대구 치킨산업과는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다.대구 동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은 그 역사가 50년 된다. 다른 곳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닭똥집 요리를 대구서는 수십업소가 모여 시장을 이룬다.닭똥집은 막창과 납작만두, 따로국밥 등과 같이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1970년대 평화시장 앞에 형성된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술로 아쉬움을 달랠 때, 어느 부부가 닭을 손질하고 난 뒤 남은 닭똥집을 바삭 튀겨 안주로 내놓은 게 시발이 됐다고 한다.노동자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 저렴하고 푸짐하게 내놓았으니 점차 인기가 높아졌다. 닭똥집은 닭의 모래주머니를 이르는 말. 닭은 이가 없어 섭취한 먹이 중 단단한 것은 모래주머니에서 소화시킨다. 모래주머니는 근육이 잘 발달돼 지방이 거의 없다. 좋은 단백질 공급원도 된다. 맛도 담백하고 쫄깃해 한번 맛을 본 사람은 다시 찾게 된다.대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이 농림부 주최의 외식업선도지구 경진대회에서 최고상인 최우수 외식거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치킨 성지’ 대구의 명성을 또한번 알린 쾌거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2-15

‘윗돌 빼 아랫돌 괴기’ 인구 대책

홍석봉 정치에디터 비관적인 인구 전망이 쏟아졌다. 골드만삭스는 2050년엔 한국이 인니와 나이지리아에 추월당하고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전망했다.CNN은 한국이 지난 16년 간 260조 원을 인구정책에 쏟아붓고도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저출산·고령화에 극심한 인구 유출로 지방은 인구소멸 위기다. 더 좋은 교육과 직장을 찾는 젊은 층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젊은 인구 유출은 지방 붕괴를 가속화시킨다. 아이는 놓지 않는데 빠져나가는 인구가 많다보니 지방은 노인 왕국이 됐다. 그냥 둘 수는 없고 마땅한 방법도 없다. 지자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경북의 시군 인구가 50만 명, 10만 명의 벽이 붕괴되고 5만 선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저출산·고령화의 수렁에 빠진 한국의 현주소다. 지자체의 인구늘리기 운동이 거세다. 현 인구를 지키기 위한 인구 사수 운동이다.인구감소는 예산과 행정기구 축소로 이어진다. 지역경제와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인구늘리기는 지자체의 숙명이다. 지자체는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봉화군이 인구 3만 명 사수를 위해 ‘봉화사랑 주소갖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10만 명이 넘던 인구가 저출산·고령화로 3만200명까지 줄었다. 인구 3만 명 선도 간당간당한다. 봉화군은 공무원과 유관기관, 기업체 임직원들을 중심으로 인구늘리기 운동을 시작했다.지난해 50만 명 선이 무너진 포항시도 인구 늘리기에 나섰지만 별 효과가 없다. 주소 이전 지원금, 근로자 이주정착금 등을 내세웠지만, 터진 둑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의 행정 특례도 제외될 처지다.행정권한이 축소되고 남·북구청은 폐지위기다. 경찰서와 소방서, 보건소도 1개로 준다.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 인구 늘리기 방안을 찾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찮다.인구늘리기 운동이 경북 대부분 시군의 연례행사가 됐다. 없던 사람이 갑자기 불쑥 생길 리가 없다. 결국 옆집 인구를 빼온다. 그러다가 인근 지자체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인근 도시로 출퇴근 인구가 많은 대구는 주 타깃이다. 하지만 그 때뿐이다. 지자체의 인구늘리기가 ‘윗돌 빼 아랫돌 괴기’ 식의 임시방편에 그치고 있다.온갖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청송군은 기피시설인 교정시설 유치까지 내놓았다.지자체가 ‘생활인구’에 주목하고 있다. 생활인구란 특정 지역을 방문해 체류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도시와 농어촌 양쪽에 거점을 두고 생활하는 ‘5도2촌’같은 생활 방식을 인정하고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을 같은 주민으로 보자는 것이다. 관련 특별법도 내년부터 시행된다.충북 옥천군은 타 지역 거주자에게 디지털 주민증을 발행하고 숙박과 관광지 이용 시 할인 혜택을 준다. 두 달 만에 온라인 주민 1만3천400여 명이 등록했다. 가능성이 엿보인다.내년 시행하는 ‘고향사랑기부제’도 기대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격인 인구 대책, 해결책을 찾는 지자체의 도전은 끝이 없다.

2022-12-15

탄소중립…대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한화그룹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설비 투자를 성사시킨 대구시가 그저께(14일)는 탄소중립도시를 전격 선언하며, 시민들에게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2050년까지 대구시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전력) 100%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선언이다. RE100이행을 약속한 것이다. 탄소중립 도시는 대기업 유치에 올인하고 있는 대구시로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어렵다고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지금까지 ‘2050년 RE100 달성’을 약속한 기업은 많지만, 대구시처럼 지방정부가 이행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국내외를 통틀어 이례적이다. 올해 초 통계를 보면, 전 세계에서 구글, 애플, 이케아 등 349곳의 다국적 기업이 RE100에 가입했다. 한국도 SK그룹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고려아연 등 14개 기업이 가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가입했다. 대기업들이 잇달아 RE100 이행을 약속하는 것은 유럽의회가 지난 6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세’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달성 여부가 모든 기업에게 ‘무역장벽’이 된 것이다. 탄소국경세 대상에는 대기업 본사뿐 아니라 협력사, 운송·보관(창고)업체 모두 포함된다.대구시가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과제로 제시한 것은 85가지로, 이행 1단계인 2030년까지 모두 13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대표적인 5대 과제는 지역 17개 산업단지 지붕 태양광 설치, 친환경 대중교통 시스템 구축, 탄소 중립 시민실천활동, 중수도 시스템 구축, 숲 도시 대구 프로젝트 (온실가스 40만t 흡수)다.지방정부가 싼 공단 부지와 조세혜택으로 기업을 유치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기업들이 선호하는 도시가 되려면 RE100 달성은 이제 필수사항이 됐다. 대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DNA가 있는 도시다. 기업과 시민 모두가 똘똘 뭉쳐 대구시가 제시한 5대 과제를 철저히 실천하면 ‘탄소중립 도시 대구’가 실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2022-12-15

13번째 경북원전 가동, 지역경제 활력소 되길

울진군 북면 덕천리·고목리 신한울 1호기가 14일 준공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당초 2017년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던 신한울 1호기는 경주지진으로 인한 부지 안전성 평가 등 여러 가지 클레임을 이유로 준공이 미뤄져 오다 12년만에 완공을 본 것이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최대 희생양으로 평가되는 신한울 1호기 가동으로 우리나라 원전산업은 이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신한울 1호기 준공을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정책을 정상화한다”고 밝혀 원전산업의 새로운 개막을 알렸다.신한울 1호기 가동은 원전 1기 추가 가동의 의미를 넘어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한국원전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또 100% 한국형 원전 APR1400 모델의 완성과 글로벌 원전산업을 주도할 발판이 마련됐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일이다.신한울 1호기 가동은 겨울철 전력 수급에 큰 힘이 되고 우크라 전쟁으로 가격이 급등한 천연가스 수입을 낮춰 전기료 억제와 무역적자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다.신한울 1호기는 대한민국의 27번째 원전이며, 경북에는 13번째 설립된 원전이다. 현재 가동되는 원전 25기 중 경북은 13기가 운영되는 국내 최대 원전 밀집지역이다.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영덕에 건립될 예정이던 천지원전이 취소되고 울진도 신한울 1호기를 비롯 2·3·4호기 착공이 중단되면서 지역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어 대혼란을 겪었다.경북도는 울진 신한울 원전과 영덕 천지원전 사업 중단 등으로 지역의 경제적 피해가 28조원대에 이른다고 추산한 바 있다.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 요구에 나서는 사태까지 이르렀으나 원전정책이 신한울 1호기를 시작으로 원상 회복에 들어가 그나마 다행이다.원전 건립이 국익이 아닌 이념의 문제로 흔들리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 신한울 1호기 가동으로 영덕·천지원전 부활 목소리도 나온다. 윤 정부의 원전산업 정상화가 국가적으로는 국익에 도움이 되고 경북서는 지역경제 활력의 중요한 기반이 되길 기대한다.

2022-12-15

민노총의 정체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자본가는 생산원가의 절감을 통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 하고, 노동자는 여유롭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하여 보다 나은 근로 조건을 원한다. 그래서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는 임금수준, 노동시간, 노동강도, 노동조건 등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마찰과 대립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갑의 위치에 있는 고용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성된 것이 노동조합이고, 국가에서도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같은 권리를 법제화 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좌파계열 운동가들과 조선공산당 박헌영 등의 후원으로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와 우파계열로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을 명예총재로 하고 유진산, 전진한, 김두한 등을 중심으로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대한노총)가 출범했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좌파 불법화에 따라 1950년 강제해산 당했으나 대한노총은 1960년까지 존속했다. 5·16 이후 군사정권은 노동조합 모두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대한노총 역시 강제해산 되었다가 산별노조 정책에 따라 한국노총이란 이름으로 재결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995년 11월 11일에 창립했다. 창립 당시에는 비합법 조직이었으나 1997년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합법적인 조직이 됐다. 그러나 민노총의 그간 행적은 순수한 노조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라고 강령에도 밝혔듯이 노동운동보다는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폐지, 국정원 해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등 정치세력으로서의 활동에 치중해왔다.민노총을 이끌고 있는 주체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는 점도 그들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말해준다. 경기동부연합은 1980년대 중반 형성된 NL(민족해방파)계열 중에서도 북한 주체사상을 가장 신봉하는 친북단체이다. 이 조직의 핵심 세력은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가 해체된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 출신이고, 2013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 8년 형을 받고 복역한 전 통합진보당국회의원 이석기가 그 위원장이었다. 민노총 홈페이지에는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중앙위원회에서 보낸 문서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내용인즉, “미국과 남조선의 윤석열보수집권세력은 이 시각에도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각종 명목의 침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놓고 있으며 이제 얼마 후에는 북침을 겨냥한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는 내외 반통일세력의 이러한 대결망동을 단호히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이 모든 정황들이 민노총의 정체를 드러내는 게 아니고 뭔가.바람직한 노동운동이란 기업의 발전과 융성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의 복리를 극대화하는 것일 터이다. 기업과 나라를 궁지로 몰아넣는 불법파업을 근절하는 것이 결국 노동자들을 위하는 일이다.

2022-12-15

한파가 밀려오면

윤영대수필가 이번 주,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우리의 일상이 조심스러워진다. 기상청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에 한파 특보를 발령하여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이번 주말 서울이 영하10도 가까이 되는 등 올겨울 ‘최강 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보다. 다음 주 초에는 더 기온이 낮아지고 서해안과 제주에서는 대설특보가 내려지고 있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내에 눈이 5cm 이상 쌓일 것으로 예측될 때 내려지고, 대설경보는 20cm 이상일 때이다. 이보다 앞서 최악의 ‘겨울 황사’가 찾아왔었다. 이 ‘봄의 불청객’이 한겨울에 찾아온 것은 내몽골 고원의 건조한 날씨 탓이라고 하니 눈이 내려 말끔히 씻어주면 좋겠다.한파가 닥치면 심뇌혈관, 심근경색 등 고혈압, 고지열증에 근거한 환자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으니 체온 유지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하여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3년, 아직도 그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또다시 전염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이번 한파를 잘 견디어나가 사회의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파가 몰려오면 흔히 동상이나 저체온증이 우려되며 추위에 얼어서 피부 손상이 생기는 동창(凍瘡) 등의 한랭 질환도 염려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도 고위험 상태의 사고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야외작업 시에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게 된다. 겨울이면 걱정되는 것은 수도관 동파이다. 시골집 수도계량기도 잘 덮어주어야겠다.한파가 밀려오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이런저런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한파 대응책이 필요하다. 먼저 난방비의 부족으로 인한 연탄수급이 문제가 되는 등 안타까움이 있는 만큼 각 지방자치단체와 봉사단체는 취약가구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한 한파 대응 물품 지원사업을 마련하고 있다.또 요즈음 경제적 한파도 문제다. 코로나의 장기화 등에 따른 고용 한파로 인해 일자리 부족과 얼어붙은 노동시장으로 청년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최고치를 기록하며 취업률 감소로 악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는 등 경제적 한파를 맞고 있다고 하니 이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MZ 세대는 삶이 고되더라도 비관하지 말고 생명이 움트는 봄을 기다려 보자.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특징 중 하나가 삼한사온이다.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해지며 반복되는 시베리아 기단의 계절 특성도 이번 한파에는 ‘삼한’이 조금 길어질 것이라는 예보다. 북극에서 발생한 이동성 고기압의 차가운 기운이 남하하면 ‘삼한’이 되었다가 동쪽으로 이동해서 우리나라를 덮게 되면 바람도 약해지고 따뜻해지는 ‘사온’이 되는데 최근 경향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불규칙해진다는 관측도 있다.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추위가 심한 계절에 한파가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계절의 섭리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딛고 일어서서 조용한 일상을 즐기고 국민 모두가 하나 된 긍정적 생각으로 경제적 한파도 이겨내리라 믿는다.

2022-12-15

문재인케어의 종말

홍석봉정치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케어’ 폐지를 공식화했다. 지난 5년간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국민 부담만 늘었다. 문재인케어가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국민 희생을 강요했다고 평가했다. 건강보험의 대수술을 예고했다.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60% 초반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임기 내에 7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가 목표였다.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했던 비급여 진료 3천800여개를 급여화했다. 노인·아동·여성·저소득층 등의 의료비를 대폭 낮췄다. 2022년까지 30조6천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었다.2018년 10월 뇌·뇌혈관 MRI를 시작으로 2019년 두경부·복부·흉부·전신·특수 질환 MRI와 복부·생식기 초음파 등이 순차적으로 건보 급여화됐다.하지만 바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초음파와 MRI검사가 10배 늘었다. 의료현장에서는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생겨났다. 급여 확대로 건보 재정이 과도하게 지출됐다.일부 과잉 이용 항목은 보장 축소나 시행 시기를 연기했지만 늦었다. 과도한 의료쇼핑도 문제였다. 2021년 한해 150회 이상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만 19만명에 달했다. 한 40대 여성은 2천50회나 병원을 찾았다. 재정지출이 폭증했다. 오는 2028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된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의도는 좋았으나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재정 파탄을 앞당겼다. 문재인 정권의 ‘퍼주기’ 정책의 말로다.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공짜 좋아하다 곳간이 거덜났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2-14

바닥 위기 건강보험재원… 긴급수술 당연

윤석열 대통령이 그저께(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이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면서 건강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공식화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석 달만인 지난 2017년 8월9일 발표한 이른바 ‘문재인케어’를 정면으로 비판한 발언이다. 문재인케어는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며, 로봇수술, 초음파, 자기공명영상촬영(MRI), 2인실 등 고비용이 들어가는 3천800여개 비급여(본인이 모두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 진료 항목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어서 부작용이 컸다. 개인 부담금이 확 줄어들면서 과잉 진료가 늘었고 그만큼 건보 재정이 악화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와관련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문재인케어가 시행되면서 병원은 과잉 진료를 서슴지 않았고, 상당수 환자들도 마치 쇼핑하듯 병원에 다녔다. 문재인케어 적용 첫해인 2018년 1천891억원이었던 초음파·MRI 진료비가 지난해 1조8천476억원으로 10배나 늘어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수지가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병원에 덜 가면서 흑자를 냈지만, 내년에는 1조4천억원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6년 뒤엔 적립금마저 바닥난다고 한다.지난 5년간 시행해 왔던 건강보험 적용 항목을 줄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문재인케어에 대한 대수술은 시급한 사안이다. MRI나 초음파 검사 같은 고액진료 남용행위를 막으려면 급여항목과 자격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외국인 피부양자나 장기 해외 체류 중인 국외 영주권자가 입국 직후 고액 진료를 받는 건강보험 무임승차는 꼭 차단해야 한다. 이렇게 절감한 돈으로 현재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것과 다름없는 소아 진료나 분만 등에 투자를 늘리는 보험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2022-12-14

문화강국을 겨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김구 선생은 그의 ‘백범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인류가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세계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실현되기를 원한다.”세상이 하도 어지럽다 보니 문화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인류문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문화’가 강한 민족이 끝내 융성하였다. 인의와 사랑이 문화에서 비롯한다는 백범의 통찰도 놀랍다. 정서와 느낌을 문화로 녹여내어 표현하고 발산할 때, 문화의 힘은 무력과 금력을 너끈히 능가할 터이다. 여유롭고 풍성한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게 하여, 민족적 자신감과 사회적 연대감이 든든해질 것이다.하버드대 조셉나이(Joseph Nye) 교수는 군사력·경제력 같은 하드파워(hard power)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치명적으로 중요해졌으며, 문화적 매력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힘이야말로 현대 국가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하였다.문화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다양한 문화의 가능성을 배워야 하며, 문화의 힘이 발휘하는 영향력을 일깨워야 하고, 누구든 문화 에너지를 적용하여 상상과 창의를 발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문화적 소양은 개인적인 능력이면서 집단활동으로서 공동체적 산물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피어나며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기반이 생겨난다.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많아질 때, 지역 공동체는 협력과 상생의 정신이 살아나고 함께 살아가는 묘미에 빠져들게 된다. 문화적 토양이 척박하고 메마르면, 사람들을 모으기 어렵고 지역의 공동체성도 고갈되기 마련이다. 음악과 미술, 연극과 영화, 춤과 뮤지컬, 전시와 공연이 마을과 지역에 넘실대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함께 사는 재미로 출렁거린다.학교에서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잃어버린 음악시간과 미술시간이 여느 교과만큼 다시 주목받아야 한다. 문화적 감수성을 심어야 하고 교차문화적 식견도 길러야 한다. 나의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남의 문화를 아끼고 존중하도록 배워야 한다. 문화소양과 함께 상대적으로 소외된 영역이 운동역량이다. 문화와 스포츠가 나라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학교는 음악, 미술과 함께 체육시간도 늘여야 한다. 말로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면서 대학입시를 위해 달리느라 찌든 몸은 도외시하지 않았던가.우리가 겨냥하는 문화강국은 어떤 모습일까. K-POP과 한국영화, 드라마, 웹툰과 게임 등에서 이미 앞자리에서 겨룬다. 멋진 콘텐츠를 만들어 문화상품으로 겨루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두의 문화감수성이 뛰어나서 대한민국의 문화역량이 세계문화 속에서 넉넉히 견주어져야 한다. 문화적 영향력이 세계시민들의 호기심과 관심에 불을 당겨 대한민국을 찾고 배우게 하여, 평화와 안녕에 기여하기까지 밀어 보았으면 싶다. 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2-14

가스안전사고, 철저 점검이 최상 예방책

2018년 수능을 끝낸 고등학교 3년 동급생 10명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강릉의 한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3명이 숨지고 7명이 크게 다친 사고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경종을 울렸다. 우리 사회의 안전부재 의식과 허술한 안전망 관리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후진국형 참사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8월까지 숙박업소 등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했다.하지만 지난 10월 포항의 한 모텔에 숙박했던 여성 투숙객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지는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또 같은 달 전북 무주에서도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일가족 5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져 경보기 설치 의무화와 무관하게 가스중독 사고는 되풀이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일산화탄소는 무색, 무취, 무미로 밀폐된 공간이면 어디서든 중독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경보기 설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년동안 가스보일러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전국 936개 특정가스사용시설 숙박업소 중 58곳이 일산화탄소 경보기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경보기가 설치돼 있지 않거나 설치 위치가 적절하지 않은 업소다. 이처럼 경보기 설치가 의무화돼 있음에도 상당수 업소가 안전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 특히 안전공사 점검범위 밖에 있는 소규모 업소에 대한 관리점검 업무는 거의 이뤄지지 않아 인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가스 관계자에 의하면 가스 점검기간이 1년으로 규정돼 너무 길고, 점검 미신청 업소에 대한 강제 제재가 없어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가스안전 관리에 대한 내부적인 지침이 별도 마련되는 등 시스템의 재정비도 꼭 필요하다.그와 함께 사용업소나 가정에서 가스 안전관리에 대한 안전의식을 돈독히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가스를 많이 쓰는 겨울철이다. 업소나 가정마다 가스안전 점검과 관리에 신경을 써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2-12-14

목수

윤명희 수필가 조카뻘 나이의 그는 가끔 우리 사무실에 와서 얘기를 나누는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말이 별로 없고 덩치도 크지 않아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대화 분위기에 맞춰 가끔 옅은 미소를 짓는 그가 내 눈을 끈 이유는 닉네임이 목수기 때문이다.목수라면 어릴 적 동네 아저씨를 떠올리게 되어 젊은 그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취미가 목공예일 거라 여기며 요즘 만들고 있을 소품들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얼마 전, 친구가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샀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살다 간 그 집은 누렇게 뜬 꽃무늬 벽지에 창문이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렸고, 보일러는 녹물에 얼룩져 있었다. 친구는 타일이 깨진 욕실을 보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했다.계단을 내려가다 1층에 리모델링하는 집이 눈에 띄었다. 저 집은 어떻게 수리하고 있는지 구경이나 하자며 가는데 아는 얼굴이 보였다. 목수? 내가 아는 그 목수? 그가 손을 흔들었다. 복도를 따라 공사 현장으로 갔다.그의 먼지 묻은 작업복이 먼저 눈에 들었다. 자초지종 내 얘기를 들은 그는 들어와 보라고 했다. 싱크대는 물론 문짝에 문틀까지 떼어낸 집 안은 살점이 뜯어져 나간 생선 가시처럼 앙상했다. 머릿속으로 그려보아도 이 집이 어떤 집으로 되살아날지 감이 오지 않았다.3층 친구의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우리를 따라온 그는 바깥으로 된 욕실 문을 여닫으며, 욕실 문은 안으로 달아야 물방울이 바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단순한 이치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우리 집 문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보며 신경 써서 챙겨야 할 부분들을 체크해 주었다. 눈에 띄지 않은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에 친구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그가 해 준다면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헌집을 주고 새집을 받고 싶은 두꺼비처럼 나는 맡아서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약속해 놓은 일만도 줄을 서, 도저히 날짜 맞춰서 해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일을 마다할 수 있다는 게 의아했다. 맵짠 그의 손재주가 젊음과 어우러져 공사 현장을 잡고 있었다. 그는 취미로 하는 목수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이미 선수가 되어 있었다.몇 번의 들락거림과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끝났다. 새로 칠해진 현관문을 열고 스위치를 올리자, 은은한 조명 아래 신혼집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다.집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스치고 지나간 손길의 위대함을 느꼈다. 목수가 수리한 1층 집이 그려졌다. 그 집은 새로 도배한 벽의 풀냄새와 새로 칠한 하얀 페인트 냄새에 분명 목수의 나무 향이 날 것 같았다.요즘 들어 가끔 그가 사는 집 창을 올려다볼 때가 있다. 창에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의 웃음이 담긴 불빛이 비친다.그 불빛을 만들어 낸 작업복과 눌러쓴 모자의 힘을 바라본다. 새집을 그려 낼 몽당연필을 오늘도 귀에 꽂고 다니는 그에게 지긋한 마음의 눈길이 가는 것은, 어젯밤에 받은 전화로 더 한 것인지 모른다.친구는 몇 해 동안 취직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책을 집어 던져 속상하다고 했다.두어 해 전에,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아들에게 지금까지 한 게 아까우니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사정했던 그녀다.아들이 번듯한 곳에 취직만 되면 장가부터 보낼 생각에 아파트까지 장만해 뒀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의 의지로 책상 앞에 앉아있을 친구의 아들이 떠올랐다. 그녀가 움켜잡은 손만 놓아준다면 아들은 목수처럼 자기만의 집을 스스로 짓지 않을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2022-12-14

정해(丁亥)

육십갑자 중 스물네 번째에 해당하는 정해(丁亥)다. 천간(天干)은 정화(丁火)이고, 지지(地支)는 해수(亥水)다. 정화와 해수는 모두 음의 기운으로 정적(靜的)이다.정해일주(丁亥日柱)는 정관(正官)의 바른 기운을 받아 기본적으로 착실하고 침착하다. 일처리도 정도로 잘하며, 주변에서 칭찬을 받는 타입이다. 단점으로는 추진력과 저돌성이 부족한 편이다. 간혹 변덕을 부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도 한다. 정관이 있어 남녀 모두 이성과 배우자 덕이 있다. 결혼운수가 적당하고 좋으며, 배우자를 잘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정화(丁火)는 물상으로 달, 촛불, 별이다. 해수(亥水)는 시간적으로 밤 9시30분에서 11시30분이다. 계절적으로 초겨울에 해당한다. 마치 달이 강가에 떠있고,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풍경을 연상한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인 소동파(蘇軾·1036년~1101년)가 신종5년(1082년) 귀양을 가서 10월에 쓴 ‘후적벽부(後赤壁賦)’는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은 것이다. “객이 있는데 술이 없구나, 술이 있어도 안주 없네, 달은 밝고 바람 시원하니 이처럼 좋은 밤이 있겠소” 라고 했다. 그가 당한 파직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유배지에서 펼쳐진 자연을 만끽하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우리나라 시인 박영희(1901~?)는 일제 치하에서 아무런 희망이나 기쁨의 일면도 찾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 시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을 발표했다. 그 시의 한 구절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 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우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病室)을 만들려 하야/ 달빛으로, 쉬지 않고, 짜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비인 나의 마음은/ 이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암울했던 당시 시인은 어둠을 밝혀 주고, 우리가 아름답게 보았던 ‘달’조차도 출구가 없는 방에 스며드는 달빛으로 병든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사물과 대상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식은 시대 상황과 인물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표현된다.정화(丁火)는 따뜻한 불에 해당하며, 은근하고 기분 좋은 명랑함을 전하며, 해수(亥水)는 물상으로 돼지를 의미하며, 온순하고 무엇이든 잘 모아둔다. 물의 총명함과 에로스 성향도 있으나, 평소에 잠잠하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경향이 있다. 정해일주 여자는 자태가 아름답고 명예를 중시한다. 남자는 신사의 풍모에 매력 있는 얼굴을 지닌다.정해일주(丁亥日柱)는 천을귀인(天乙貴人·하늘의 은덕을 받는 길신)이 있다. 그 영향으로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살아가는데 큰 고초를 겪지 않고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이룬다. 또한 매우 곧은 성품으로 선비와 같이 사유의 깊이가 있고, 사특함이 없어 관직에 어울리는 기운이다. 성품이 맑고 고결하게 태어난다고 해서 ‘일귀(日貴)’라고도 부른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천을귀인의 은덕을 받으면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20세기 모더니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어릴 때 의붓오빠의 성추행으로 만성적인 정신질환을 겪으면서 영국 빅토리아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는 글을 썼다. 여성으로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기법을 개척하고 완성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자기만의 방’ 등이 있다.버지니아 울프는 ‘우리가 모두 일 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 방을 갖는다면’이라는 말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를 표현했다. 이 같은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꿈이 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재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버지니아 울프의 성공 뒤에는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천을귀인 같은 레너드 울프가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다니던 오빠 토비의 친구들 가운데 레너드 울프를 22살에 처음 만났다. 30살 때 그녀는 결혼조건으로 레너드 울프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부부생활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과 나를 위해 공직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이었다.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그녀의 지성에 반한 바가 더 컸다. 마침내 그녀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녀도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된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면서부터 창작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가 전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의 간호를 맡은 후 25년간 이전과 같은 극심한 신경증의 발작은 없었다.그 시절, 그들의 결혼은 남자가 여자와의 결혼을 위해 직업적 기반을 포기한 흔치 않은 경우다. 레너드 울프가 아내의 신경쇠약에 기분전환을 위하여 인쇄기를 사서 호가스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의 간섭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었다. 1925년 5월에 ‘델러웨이 부인’ 초판본이 나왔으며, 책의 표지는 언니 바네사 벨이 디자인했다.결국 정신질환이 악화되자 1941년 3월 28일 버지니아 울프는 우즈강으로 갔다.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간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남편에게 밝히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를 유서로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다. 그녀는 결혼 후 30년 동안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말했지만, 홀로 남겨진 레너드 울프의 심정을 이해했을까 궁금하다.남편 레너드 울프는 버지니아 울프의 명성에 가려져 잊혀간 인물이 되었다. 나머지 생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자식도 없이 홀아비가 된 그 후의 삶과 죽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사람은 한 번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고, 터럭만큼이나 가벼운 죽음이 있다. 그것은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이다’ 라고 사마천은 말한다.

2022-12-14

석곡 이규준이 말한 세 가지 다행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지난달 18일에 포항시립동해석곡도서관에서는 ‘석곡 이규준 역사인물 해설사 양성과정 기초반’ 수료식이 열렸다. 기초반과 심화반으로 구성된 이 과정은 총 2년 동안 운영된다. 포항 출신 대학자인 석곡 선생에 대한 전문 해설사 양성 과정이 개설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북쪽에 이제마가 있다면, 남쪽에는 이규준이 있다.” 이제마와 함께 근대 한의학계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규준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함흥 출신 이제마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포항 출신 이규준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석곡 이규준 역사인물 해설사 양성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석곡은 유학, 한의학, 천문학 등 폭넓게 학문을 연구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융합형 학자였다. 시대를 앞서간 석곡은 포항시 동해면 임곡리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출생지와 인접한 마을인 석리에서 살았다. ‘석리(石里)’란 지명을 본떠서 만든 호인 ‘석곡(石谷)’은 고향에 대한 이규준의 애정을 느끼게 해 준다.유학의 이치를 연구하고 환자를 진료한 의사를 ‘유의(儒醫)’라고 부른다. 석곡은 조선 시대의 마지막 유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일광 작가가 쓴 역사소설 ‘석곡 이규준’에서는 그가 어떠한 유의였는지 잘 묘사되고 있다. 포항 장기에서 일어난 의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산막을 치고 진료를 했던 석곡의 모습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석곡의 한의학 이론을 대표하는 것은 ‘부양론(扶陽論)’이다. 그는 생명의 근원은 양기이지만 늘 부족하고, 반대로 음기는 항상 넘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양기 부족을 병의 원인으로 보고 이를 보완하는 연구에 주력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온열 약제인 부자를 많이 처방했다. 그에게 ‘이부자(李附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다.필자는 부양론과 함께 다행론을 새롭게 강조하고 싶다. ‘다행론(多幸論)’은 석곡이 이야기했던 ‘세 가지 다행한 것’에서 착안하여 필자가 이름을 붙여 본 것이다. 석곡은 자신이 가난했던 것, 집안이 변변치 못해 스승을 얻을 수 없었던 것, 혼란스러운 조선의 끝자락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석곡이 들려주고 있는 세 가지 다행한 이야기는 역설적이지만 공감을 자아낸다. 가난을 겪었기에 가난한 백성을 사랑할 수 있었고, 스승을 구할 형편이 못 되었기에 어떤 학파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학문을 펼칠 수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 태어났기에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그의 다행론은 개인적·시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혜안을 전해 준다.내년 3월에는 포항시 동해면 도구리에 ‘석곡기념관’이 건립된다고 한다. 석곡기념관에 ‘삼다행실(三多幸室)’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석곡기념관부터 석곡도서관에 이르는 길을 ‘석곡 이규준의 길’로 명명해서 그의 학문 세계와 인문 정신을 선양하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20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