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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록일 2023-11-12 18:41 게재일 2023-11-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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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홍부국장
박진홍부국장

인류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국주의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최초의 제국은 BC 2250년 메소포타미아의 사르곤 대제가 다스렸던 아키드다.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대부분, 이란과 터키 일부 지역을 지배했다.

뒤를 이어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힛타이트, 페르시아 등이 메소포타미아 고대 제국의 바통을 받았다.

BC 550년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왕은 ‘피정복민들은 우리 신민이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남겼다.

아마 키루스 대왕은 대제국에 병합되면 ‘당시 중소 민족·국가들간 치열했던 생존 전쟁 위협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보인다.

제국주의의 요건은 무엇일까?

다른 문화 정체성을 가진,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다민족·다국민들을 지배하면서 영토 확장에 공격적인 국가로 규정할 수 있다.

때문에 제국들은 단일 정치체제로 수많은 민족과 지역들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가치와 다양성, 개방성, 표준화 등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다.

로마제국을 예를 들면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기 전까지, 다신교를 신봉했다.

또 피정복민들에게도 일정 세월이 지나면 로마 시민권을 부여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회였다.

심지어 48년 클라우디우스황제 때가 되면 피정복민 골족 출신이 권력 핵심 원로원에 입성했고 2세기에는 식민지 이베리아반도 출신이 잇따라 황제까지 된다.

식민지에 대해서도 세금과 국방을 일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지방자치를 허용했다.

다만 로마제국은 3·4세기 2차례 기독교 탄압으로 기독교인 수천명이 죽음으로써 매우 폭압적인 체제로 비쳐지는 오명을 썼다.

하지만 당시 다신교였던 로마제국은 일신교인 기독교가 체제 유지에 부담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기독교의 인류 평등의 가치는 신분제 붕괴를, 군 복무에 부정적인 태도 등도 문제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중·근대 유럽의 신·구교 종교전쟁으로 기독교인 수백만명이 서로 학살하거나 죽임을 당한 점을 감안하면, 로마가 패쇄적인 체제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 현대인들은 제국주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아마 과거 제국들이 식민지 정복 과정에서 보인 참혹한 전쟁과 노예화, 대량 학살 등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서구 열강들의 무자비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식민지 수탈과정은 여전히 많은 분노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 제국의 속살과 후세에 미친 영향 등을 돌아보면 긍정적인 면이 없지도 않다.

최소 수십년이 걸렸던 피정복민들의 동화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제국들은, ‘세계적인 통합과 협력’을 이뤄냈다.

인류 첫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천여년동안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제국들을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면서 ‘통합 문화’를 만들어냈다.

BC 7C∼AD 5C 고대 세계 중심지였던 지중해의 수많은 민족들도, 폐르시아·그리스·카르타고·로마 등에 병합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닮은 꼴이 돼 갔다.

중국의 경우 BC 20C경 상나라가 통치한 황허강 주변 사람들만 한족(漢族)이었으나,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변방 이민족들까지 한족(漢族)으로 동화 돼 갔다.

BC 221년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했으나, 본래 한족(漢族) 입장에서 진제국 역시 중국 북서쪽에 위치한 변방 이민족이 만든 나라에 불과했던 것.

중국은 이후 2천년 동안 또다른 수많은 이민족·지역들을 정복 했으나, 현재 중국인 90% 이상은 스스로 한족(漢族)으로 여기고 있다.

또 인류의 중요 문화 유산들이 제국의 잉여경제에서 생산 됐음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영어는 로마제국의 라틴어에서, 동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은 현재 과거 자신을 정복했던 한나라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세 유럽 합스부르크제국은 주변 지역을 지배하며 얻은 잉여 경제력으로 모차르트와 하이든에게 월급을 주고 작곡케 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깔끔하게 분리하는 것도, 인도 역사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사실 불가능하다.

고대 인더스문명을 만든 드라비다족은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침입해 온 아리아족에게 정복됐다.

카스트제도와 힌두교 등을 믿었던 아라아족 왕조는 16C초 중앙아시아에 발흥한 이슬람 무굴제국에게 멸망 당했다.

다시 무굴제국은 1857년 대영제국에게 정복되면서, 인도의 정복과 피정복 역사는 뒤죽박죽 돼 버렸다.

인류사에는 정의가 없었다.

정복과 피정복의 끝없는 반복 뿐 이었다.

제국주의는 우리 사피엔스종의 이기적 본성, 끝없는 탐욕 때문에 탄생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탐욕이 인류사에 많은 발전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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