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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빈내항과 포항운하 이야기

등록일 2023-11-13 18:12 게재일 2023-11-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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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필자가 포항을 처음 방문한 것은 몇 년 전, 동해안 자전거 종주 때였다. 최북단 고성에서 출발해 4박 5일 동안 동해안 자전거길을 달려 포항에 이르렀다. 영덕과 흥해 지역을 지나면서 파란 동해 바다와 전원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포항 시내에 진입한 것은 밤 열 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모텔이 밀집한 지역에 숙소를 잡았다. 돌이켜 보면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였던 듯하다. 죽도시장에서 생선회로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열려 있는 식당이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당시에는 ‘동빈내항’이라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은은한 조명이 새카만 수면에 아름답게 반사된 야경이 실망한 나와 일행을 위로해 주었다. 그때의 광경은 내게 포항의 첫인상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포항에 살며 동빈내항이 과거 번창했던 항구였음을 배웠다. ‘포항운하 역사관’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동빈내항은 일제강점기와 1950, 60년대 동안 경북 일원에 식량을 공급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매립으로 인해 형산강과 동빈내항을 잇는 물길이 기능을 상실했고, 주변부는 난개발이 이루어져 낙후된 주거지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양학천, 칠성천의 생활하수가 동빈내항으로 그대로 유입되어 수질 또한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한다. 잘 정비된 지금의 동빈내항과 포항운하 일대를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포항운하는 형산강과 동빈내항 사이의 물길을 복원하여 수질오염을 개선하고, 시민들이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수변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조성 공사를 시작해 2014년에 완공되었다. 현재 이 지역은 포항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꼽힌다. 송도동에 있는 포항운하관에 가면 동빈내항과 포항운하 지역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운하 공사 당시의 사진 등 다양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형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전시관 내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포항운하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포항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도, 전시자료도, 멋진 전망의 카페도 아니었다. 전시관 외벽에는 운하 공사에 삶의 터전을 내어줘야만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주자의 벽(壁)’이 설치되어 있다. 이 벽에는 지금의 포항운하 자리인 매립지에서 살았던 827세대 주민들의 이름과 집의 위치가 지도상에 세심하게 기록되어 있다.

도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다는 말이 있다. 도시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필요와 요구들이 존재하고, 그에 호응해 도시공간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추억하듯, 도시도 이러한 기록과 기억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화려하고 말끔한 모습은 도시가 간직한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된 이야기, 잊혀 가는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포항운하관 ‘이주자의 벽’이 들려준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내 기억 속에도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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