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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3-10-26 19:55 게재일 2023-10-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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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벼논의 가을걷이가 끝나간다. 우리 고장의 올해 쌀농사는 풍년이다. 가뭄도 심하지 않았고 태풍의 피해도 없었다. 하지만 풍년가가 울려 퍼지는 흥겨운 분위기는 아니다. 풍년이 되어 수확량이 늘어나면 쌀값 하락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가을걷이를 해야 할 농작물은 벼 말고도 콩과 팥, 조, 기장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조와 기장은 요즘 보기 드물어졌다. 쌀, 보리, 콩과 함께 오곡이라 하여 주요 곡물이었으나 보리와 같이 주식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다. 김장용 무·배추와 감·사과의 수확은 아직 좀 이르다. 농부의 가을걷이는 자연의 추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가을이면 대부분의 초목들이 결실을 해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피자식물만도 4천 종 가까이 된다니 농작물의 수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작디작은 씨앗에서 출발한 들풀의 농사는 실로 엄청난 결실이다. 망초나 쑥 같은 국화과 풀들은 수만 배의 결실을 하는 게 보통이다.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에도 아주 망하는 법이 없이 생태계를 이어갈 가을걷이를 하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에서는 생태계의 모든 종들이 계절에 맞추어 살아간다. 한해살이로 생을 마치는 종들도 상당수 있다. 사람들도 농경사회까지는 부지런히 계절을 쫓아가는 생활을 해왔다.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거름 주고 김을 매고, 가을에는 추수를 하는 것이 삶의 내용이었다. 그러다보니 가뭄과 홍수, 태풍 같은 기후의 영향을 어느 동식물 못지않게 받고 살았다. 치산치수로 자연재해를 줄이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불가항력에 대해서는 천지신명에 빌기도 했다. 문명이라는 꾀를 내기도했지만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지금은 농어민이나 관광관련 사업을 하는 인구를 제외하고는 계절과 기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는 삶이다. 그러나 년·월·주 등을 단위로 하는 생활 역시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사이클에 따른 삶이어서 자연의 조건을 아주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생업의 여가시간은 여행이나 야외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다 많이 자연을 가까이 하기를 바란다. 먹이를 구하는 수단을 농경에서 산업으로 바꾸었지만, 삶의 본질적인 생태는 친자연적이라는 얘기다. 의식주의 해결을 넘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현상에서 보다 근원적이고 생리적인 삶의 동력이나 감성 같은 걸 얻게 되는 것이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다. 농부가 아니라도 그런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봄이면 꽃구경을 가고, 여름에는 바다를 찾고, 가을에 단풍놀이를 하는 것도 계절을 수용하는 삶이지만, 수시로 집 가까운 공원이나 야외로 나가서 계절의 추이에 젖어보는 것도 삶을 한결 깊고 충일하게 하는 일이다. 추수가 끝난 들길을 걸으며 나의 한 해 농사는 어떠했고 무엇을 수확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내 삶의 알곡은 과연 무엇인지, 금싸라기 같은 하루하루를 나는 그저 빈 쭉정이로만 산 것이 아닌지를 돌아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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