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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버려진 사진

윤명희 수필가 친구가 운영하는 고물상에 들렀다. 부탁해 둔 주물난로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날은 겨울 추위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화물차에서 묵은 짐들을 내렸다. 요양원에 간 이웃 할머니의 살림을 정리 중이라 했다. 냉장고에서 나온 계란 몇 알이 소쿠리에 담겨 있고 그 옆에는 미숫가루가 반쯤 담긴 통과 고춧가루 통이 발치에 차였다. 냉동실에서 나온 고등어와 얼어붙은 시루떡 몇 뭉치에 지난 가을에 넣어 둔 홍시까지 혼자 살아 온 할머니의 생활이 다 보이는 듯했다.바닥에 떨어진 수주(數珠)를 줍는데 발밑에 사진이 있었다. 남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발이 화들짝 놀라 뛰었다. 고물상의 흙먼지를 덮어쓴 여러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에는 할머니와 단발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를 동년배의 모습도 있었다.짐을 내리던 고물상 친구는 할머니의 자식들이 이런 걸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넘어진 박스를 세웠다. 박스에는 효자손을 비롯한 잡동사니와 많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여러 짐들이 분류되어 고철더미 위로 던져지고 잡동사니들은 대형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친구는 안이 훤히 보이는 쓰레기봉투에 사진을 넣기가 뭣한지 한쪽으로 모았다. 할머니는 자기 얼굴이 고물상 바닥에서 남의 발에 밟히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손때 묻은 살림들을 정리하고 남은 것이 앨범이었다. 동생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펼쳤다. 엄마가 살아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은 외할머니 흑백사진부터 자식들의 결혼사진, 손자의 돌 사진까지 찰나의 순간들이 영원으로 남았다. 사모관대를 한 아버지와 족두리를 쓴 엄마의 흑백사진은 손이 빠른 첫째 동생이 챙겼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던 결혼사진은 제 각각 가방에 넣었다. 손자들과 함께 웃는 사진을 보며 그때의 이야기로 눈물을 찍어냈다.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엄마만의 사람들이었다. 연분홍 저고리가 진달래 꽃밭에 숨어있는 친구들은 내 나이보다 더 젊었다. 장구 장단이 흥에 겨운 동네 분들의 사진에서는 내 어릴 적 친구들의 부모들도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행적은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 그 인연들은 우리에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억하고 싶어 찍어 둔 관광지의 사진들은 길바닥에 버려지는 광고 전단지나 별다르지 않았다. 남은 사진들을 모으니 앨범 한 권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왔다. 그 후로 나는 카메라 앵글에서 멀어져갔다.기회만 되면 태우겠다는 약속은 빈말이 되어갔다. 그 앨범은 이사할 때마다 창고에서 창고로 옮겨졌고, 이삿짐 속에 묻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아스라한데, 한 번도 뵌 적 없는 동네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뒤늦게 그 앨범을 떠올리고 있다.고물상 마당에 있는 주물난로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의 자식들을 대신 해 사진을 한 장 한 장 집어넣었다. 삶의 조각들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멍청히 듣고 있다. 할머니의 모습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창고를 뒤졌다. 먼지 앉은 보자기를 푸는 손이 바빠졌다. 앨범은 서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자 오랫동안 잠을 잤던 사진의 한 귀퉁이가 찢겨나갔다. 한 장 한 장 빼며 사람들 속에 묻힌 엄마와 마주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신의 지난 시간들이 누구도 보지 않는 사진으로 남았다.당신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가져가시라고 불을 붙였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휴대폰에 저장된 내 사진들을 넘겨보았다.메모처럼 넣어둔 오래된 것부터 하나하나 삭제했다. 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데 sns에 올려놓은 흔적들이 딴죽을 걸었다. 만인이 보는 앨범에 내 생활을 펼쳐 놓고는 열쇠마저 감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인터넷 계정의 비밀번호는 oooo이라고.

2023-03-22

우리집 강아지 베리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겨울 베리가 많이 아팠다. 남편이 데리고 병원 다녀오더니 방광암이 의심된다는 거였다. 약물로 치료하되 나을 기약을 할 수 없단다. 힘겨워하는 베리를 안고 며칠 밤을 같이 지샜다. 얼마 못갈 것같아 울며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영정사진도 찍어야 하나 아득해하며 또 울었다. 힘든 약물치료보단 좋아하는 것 실컷 먹이며 여생을 보내게 하자 결정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90 아닌가. 노령견에게 좋다는 저지방 사료에, 황태와 닭을 푹 고아 갈아 먹였다. 사골국물에 사료를 말아 먹이기도 했다. 마룻바닥엔 매트를 깔았다. 기저귀도 채웠다. 그렇게 정성을 쏟으며 겨울을 났더니 많이 나아졌다.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고 기저귀가 벗겨지면 집안 곳곳에 오줌스팟을 만들긴 하지만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코끝이 반들거리는 걸 보고는 건강해진 것 같아 안도해한다.11년전, 4살의 베리가 왔을 때는 그야말로 까도녀였다. 까칠하고 도도하고 세련된 미니핀. 눈썹 위, 발목 부분의 노란 색을 제외하곤 온몸이 윤기나는 짧고 검은 털의 베리는 매력적인 도시여자같이 예뻤다. 유기견인 강아지를 보호하던 아들이 동물보호센터에 보낼 수 없다며 데려왔다. 똑똑하고 깔끔하여 배변 문제로 속 한 번 썩이지 않았다. 뭐든 너무 잘 먹는 게 단 하나 흠이었다. 처음 올 때 날씬하던 몸매는 2년만에 마치 까만 베개같았다. 산책 때 사람들이 뚱뚱하다고 입대면 미니핀 아니고 미니픽이에요 할 정도였다. 다이어트하면서 체중계를 내오면서 “몸무게”라면 달랑 올라앉았다.그 식탐이 문제가 되었다. 아무거나 먹고는 탈이 낫고, 어김없이 응급실행. 병력도 화려하다. 입원 4번, 수술은 두 차례나 했다.첫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비 오는 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베리가 토하고 비틀댄다며 남편이 걱정했다. 119로 전화했더니 강아지는 안된단다. 남편이 아는 수의과 교수에게 전화해서 큰 병원으로 갔다.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 장장 4시간의 검사에 치료를 한 후,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그 후에도 몇 차례 응급실을 찾았고 비용도 만만찮았다. 우린 종종 천만 베리라고 한다. 병원비가 천만 원 이상 든 때문이었다.작년 여름, 또 한밤중에 병원을 찾았다. 췌장염으로 열흘이나 입원하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도 못해 전화로 상태를 전해 듣곤 하던 때였다. 우리집엔 베리말고 아키라는 갈색 푸들이 한 마리 더 있다. 5년전 베리 친구 삼는다고 아들이 키우던 애를 데려와 같이 놀던 베프다. 베리가 없자 아키가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겨워했다. 아무것도 먹질 않고 베리의 담요에 엎드려 꼼짝 않는다. 베리가 그리워 그러는 것 같았다. 병원에 전화하여 상황을 얘기하고 면회를 간청했다. 병원 측의 배려로 입원실 대신, 병원 뜰에서 둘은 상봉했다. 어쩜 그리도 애틋할까. 서로 몸을 부비며 즐거워하는 걸 지켜보는 우리 부부가 더 감격해했다. 집에 온 아키는 사료를 폭풍흡입했다. 90 노인 수발들 듯하는 요즘이지만 베리가 잘 먹고 신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 닥치지 않은 일은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한다.

2023-03-22

나잇살은 안 빠진다구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50대 환자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젊었을 때는 체중 조절이 어렵지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줄어들고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겨 내장지방 등의 축적이 빨라지는 것을 나잇살이라고 한다. 이 나잇살은 못 빼는 걸까 안 빼는 걸까?중년이 되면서 콜레스테롤 약을 먹는 분이 많다. 콜레스테롤에는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좋은 콜레스테롤(HDL)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비만의 주범인 지방에도 나쁜 지방(백색 지방)과 좋은 지방(갈색 지방)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갈색 지방은 백색 지방이 공급해주는 연료(포도당)를 사용해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이나 어린 아이에게 많고, 어른에게는 거의 없다. 사람은 신생아시기에 가장 많은 갈색 지방세포를 가지고 있어서 운동량이 적어도 체온 유지를 잘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갈색 지방 세포는 줄어들다가 없어지니까 나잇살은 못 빼는 걸까?하버드 의대 연구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운동할 때 우리 몸에서 ‘아이리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이 백색 지방세포에 작용하면 백색 지방세포가 갈색 지방세포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백색 지방세포가 갈색 지방세포처럼 변한 것을 ‘베이지색 지방세포’라고 한다. 이 베이지색 지방세포 60g은 1년에 4kg 정도의 지방을 태운다고 한다. 즉, 우리가 운동 등을 통해서 백색지방 세포 60그램을 베이지색 지방세포로 바꾸기만 하면 1년에 4kg은 그냥 빠진다는 말이다. 아이리신 호르몬은 운동할 때 나온다. 저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이나 고강도의 짧은 운동에 상관없이 나온다. 다만 저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에서 좀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걷기 달리기 등산 수영 등 어떤 운동이든지 꾸준히 하는 것이 나잇살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자.또 다른 실험에 의하면 베이지색 지방세포가 증가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조금 추운 상태에서라고 한다. 16도 이하에서 베이지색 지방세포의 활성도가 많이 증가하고 27도 이상에서는 활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음식 중에서는 녹차에 많이 함유된 카테킨을 12주 이상 꾸준히 복용한 경우에 베이지색 지방의 밀도가 증가하고 근육 세포의 지방 함량이 줄었다고 한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이나 파프리카에 많은 캡시노이드 성분을 6주 이상 먹었을 때도 베이지색 지방의 활성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줄이고, 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식사를 하는 것이 나잇살을 없애는 식단이라는 뜻이다.한방에서는 비만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방풍통성산 같은 처방들로 연구한 결과 백색 지방세포의 크기가 줄고 베이지색 지방세포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족삼리 천추 등의 혈자리에 맞는 전침 역시 백색 지방세포가 베이지색 지방세포로 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중년의 다이어트, 나잇살 빼기 방법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꾸준하게만 하면 1년 뒤에는 날씬하고 건강해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2023-03-22

개구리소년과 와룡산의 진실

홍석봉 대구지사장 다시 봄이다. 봄만 되면 비통한 기억에 가슴앓이를 한다. 개구리소년 유족들이다. 오는 26일은 개구리소년 실종사망사건 32주년을 맞는 날이다.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대구 달서구도 유가족 못잖게 몸살을 앓았다. 달서구는 32주년을 맞아 아동권리와 안전의식을 높이는 각종 행사를 한다. 기념식과 추모식, 캠페인 등 행사를 갖는다.지역아동센터는 아동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 등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교육을 할 예정이다. 네거리와 지하철역에서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이 펼쳐진다.달서구 용산동 선원공원 개구리소년추모비 앞에서 5개 지역아동센터 아동 30여 명이 개구리소년을 추모한다. 유가족들도 26일 추모행사를 갖는다.지난 1991년 3월 26일 도롱뇽 알을 주우러 와룡산에 갔다가 실종,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된 초등학생 5명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타살로 결론나고 미제사건으로 남았으나 아직도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경찰은 사건 초기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가 단서를 찾을 기회를 놓쳤다. 국내 단일 실종 사건으로는 최대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색 인력이 투입되고 전국에 1천만 장의 전단지가 뿌려졌지만,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개구리 소년 찾기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안타까운 사연은 노래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범인은 물론 범행 도구도 밝히지 못했다.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 후 한 차례 경찰이 재수사했지만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사건은 모두의 가슴 속에 묻었다. 우리 사회는 재발방지와 아동들의 안전과 꿈을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다시는 아이들의 억울한 주검이 있어서는 안 된다. 3월의 다짐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2

복수가 해결책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우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에 열광하였다. 폭력에 대한 징악과 보복을 탓할 수는 없다. 감정적으로 시원하고 최후 승리를 거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 방법으로 보복과 복수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학교, 교육청과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학교폭력이 사회적 담론의 이슈가 되는 경로가 있다. 미디어가 전하는 뉴스나 드라마를 통하여 학교폭력의 실상이 전달되면, 대중적 분노를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일시적으로 생성된 피해의식과 응보감정을 정책마련의 근거로 삼는다. 분노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가해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일에 방점을 둔다.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려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학교폭력의 처리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입은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일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한국청소년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20대 성인들의 34% 정도가 어린 시절에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며 그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자살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학교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씻어내기 어려운 온갖 피해를 안긴다.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만성적이며 장기적인 외상을 안긴다. 발생했던 학교폭력을 가해자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피해자들은 방금 벌어진 듯 생생하게 되뇌이며 마음에 입은 상흔을 털어놓곤 한다. 피해학생과 가족들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언론과 미디어의 충격적인 보도에 대한 관심의 강도는 약간 증가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다루는 사회적 기관들은 넘쳐나는 가운데,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와 회복에 관심을 두는 공적 기관은 드문 형편이다.학교폭력을 바라보는 학교의 시선도 문제다. 학생들의 바른 인성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폭력’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노력을 교실에서부터 기울여야 한다. 학교폭력을 교사가 성가시고 귀찮은 현상으로만 치부한다면, 폭력없는 학교가 온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운영하는 대안학교 ‘해맑음센터’가 피해학생들을 맡아 돌보며 지도하지만, 정작 그들이 떠나온 학교는 교실 분위기에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지 의문이라고 한다. 학생을 기르는 일이 학교의 일이라면, 폭력없는 즐거운 교실을 확보하는 일은 교사의 당연한 책임이 아닌가.최근 증폭된 관심에 따라 교육부는 학교폭력근절대책을 준비한다고 알려졌다. 학교폭력 경력을 생활기록부에 적극적으로 기재하고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가중한다는 방침은 학교폭력의 뿌리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 처벌에 더하여 진정한 화해와 조정,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피해복구와 관계회복에 초점을 두는 피해학생 보호와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폭력은 범죄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가해자를 벌하는 엄정한 접근과 함께 피해자와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폭력이 사라져야 교육이 산다.

2023-03-22

의정비 지급제한 앞장선 대구 서구의회

기초의회인 대구 서구의회가 조례 개정을 통해 논란이 된 비위행위 지방의원에 대한 의정비 지급을 제한키로 의결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의원이 구속되면 의정비 중 의정활동비는 지급하지 않으나 월급개념인 월정수당 등은 제한 규정이 없어 비위행위로 구속이 돼도 계속 지급을 해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왔다.대구 서구의회는 지난 21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서구의회 의원 의정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의원이 구속되거나 출석정지 등 징계를 받으면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 여비까지 모두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했다.지방의원의 의정비 지급 문제는 작년 11월 대구시의회 모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됐음에도 옥중에서 월정수당을 받자 시민단체가 나서 지급 중단을 요구하면서 지속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돼 사실상 일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월정수당을 꼬박 받는 것은 선출직으로서 파렴치한 행위”라며 지급 중단을 촉구했다.비위행위 의원의 의정비 지급 관련해서는 국민권익위도 작년 12월 구속의원에 대해서는 예산 낭비 등을 이유로 의정비 지원을 제한하라는 권고를 지방의회에 통보한 바 있다. 특히 대구 서구의회는 구속뿐 아니라 의원이 징계를 받았을 때도 의정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강화된 조례를 만들었다.이번 대구 서구의회의 의정비 강화 조례가 다른 지방의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계가가 됐으면 한다. 의정비 지급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란 측면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옳다. 지방의회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지방의회가 지역주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선출직인 국회의원도 세비와 관련해 이런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국회에서 이런 취지의 법안이 여러 차례 나왔으나 번번이 무산돼 국회의원의 도덕성이 추락한 게 사실이다.대구 서구의회가 앞장서 조례를 개정한 것은 선출직으로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뜻으로 칭찬받을 일이다. 지방의회는 지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다. 의정비 개선 노력이 신뢰의 또 다른 시작이길 바란다.

2023-03-22

TK신공항 특별법 3월 처리에 총력 쏟길

국회 국토교통위가 지난 21일 교통법안소위를 열고 TK(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3개안(홍준표·주호영·추경호안)을 병합 심사한 뒤 수정 가결했다. 부산지역 야당 정치권의 반발로 원안이 일부 수정됐지만, 국비지원과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종전부지(동구 지저동 일원) 개발사업에 대한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핵심내용은 포함됐다.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소위를 통과한 만큼, 오늘 열리는 국토위 전체회의와 27일 법사위, 30일 본회의에서는 순조롭게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3월 임시국회에서 특별법이 최종적으로 통과돼 TK신공항이 빠르게 건설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TK신공항은 로드맵대로 이행되면 오는 2030년 개항한다.소위심사에서 핵심쟁점이 된 정부 재정지원 부분에 대해서는 ‘신공항 건설비가 종전부지 개발사업 수입을 초과할 경우 국가가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국비 지원의 근거가 마련됐다. 부산지역 정치권이 이 부분에 합의를 해 준 것은 기부대양여 사업의 차액에 대한 국비 지원이 공항개항 이후 정산돼 가덕신공항 국비 지원과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지원 규모는 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통제권을 갖게 됐다. 문제가 됐던 ‘중추공항’이나 ‘활주로 길이’ 표현은 삭제키로 했다.TK신공항 특별법이 발의된지 10여 년 만에 국회통과를 눈앞에 둬 다행이다. 해당 특별법은 지난 2013년 대구공항을 지역구로 둔 유승민 전 의원이 ‘군 공항 이전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3개의 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에 상정됐다. 홍준표 시장이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을 만나서도 언급했지만, TK신공항 건설은 국토균형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다. 물류를 신속하게 처리할 국제항공노선이 개설돼야 대구경북도 살길이 생긴다. 대구시와 경북도, 그리고 정치권은 이제 남은 절차인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또다시 묶이지 않도록 총력을 쏟길 바란다.

2023-03-22

기고 신종금융사기 범죄 수법을 알면 예방도 가능해요

김중환 경위 영천경찰서 남부지구대 경찰관은 금융사기로 인해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을 송금하여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112신고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경찰관으로서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112신고이다.피해자는 금융사기 범죄조직에 기망을 당하여 피해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절대 알리지 말 것을 요구받고, ‘금융기관의 고액인출 고객이 있다’라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기망을 당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찰관의 설득을 외면한다.금융사기 피해는 피해자가 땀 흘려 아끼고 아껴 모은 소중한 재산이기에 피해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이렇게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관으로서 피해자를 설득하지 못해 국민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공무적 책임이 마음속에 남게 된다.우리나라는 ‘06년 5월경 보이스피싱 범죄가 최초로 발생한 후로 금융사기 범죄 수법이 날로 발전하여 ’08년부터 스마트 폰이 보급되면서 신종금융사기 범죄가 해마다 증가할 뿐만 아니라 피해액도 많아지고 있다.신종금융사기 범죄에는 스미싱, 파밍, 메신저 피싱 등이 있다.“스미싱”은 문자(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인데, 인터넷 주소가 포함된 문자를 피해자의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보내 악성코드를 설치하도록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빼내 가는 범죄 수법이다.“스미싱” 피해 예방은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수신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문자 메시지의 〈인터넷 주소〉 클릭을 절대로 하지 말고 바로 삭제하면 피해를 예방 할 수 있다“파밍”은 악성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가 가짜 금융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유도한 후 금융정보를 조작하여 피해자의 금융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범죄 수법이다.“파밍” 피해 예방은 컴퓨터 또는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수신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파일이나 E-mail은 즉시 삭제하고 또한 무료 다운로드 사이트 이용을 자제해야 하며, 컴퓨터와 E-mail 등에 공인인증서나 보안 카드 사진, 비밀번호 저장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면 피해를 예방 할 수 있다.“메신저 피싱”은 메신저에서 지인이나 금융기관 또는 공공기관을 사칭하여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빼내어 가는 범죄 수법이다.“메신저 피싱” 피해 예방은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메신저 또는 문자를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받은 경우, 우선 의심부터 하고 절대 클릭하지 말아야 하며 먼저 전화로 그 상대방에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에 ‘시티즈코난’이나 ‘피싱아이즈’ 앱을 설치하여 악성 앱 설치 여부를 반드시 검사하고 악성 앱이 설치되어 있다면 바로 삭제함으로써 예방 할 수 있다.『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처럼, 이제 신종금융사기의 범죄 수법이 무엇인지 알고 예방법을 통하여 국민과 금융기관, 경찰이 합심하여 신종금융사기 범죄 피해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2023-03-22

與圈은 ‘이너서클’로 총선 치르려 하나

심충택 논설위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일본에서 “반도체시장 한·일협력이 가능하냐”는 기자 질문에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한 말이 여운을 남긴다. 세계반도체 전쟁에서 일본이 경쟁상대이긴 하지만,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공생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이다. 공감이 간다. 이 말을 총선을 1년여 앞둔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세력이 명심했으면 한다.집권당의 내년 총선전망은 어둡다. 승패의 최대변수가 될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지극히 나쁘다. 한국갤럽이 지난주(14∼16일) 발표(조사대상 1천3명)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이 33%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20대 지지율이 17%에 그쳤다는 점이다. 당의 기반인 TK(대구경북) 지지율(49%)만 40%를 넘어섰다. ‘TK 꼰대당’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PK(부산울산경남 지지율 34%)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부정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 출범 2년의 중간평가 성격을 지녀,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성적표와 직결된다.더 비관적인 것은 민심이반을 막을만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노동개혁은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지금 민주당 태도를 보면, 실현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루빨리 민심을 얻을 묘수를 찾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윤 대통령에게 가장 큰 적은 이너서클(Inner circle)이다. 이너서클은 생리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의 리더도 이너서클에 포위되면 외부 비판여론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게 된다. 국민의힘이 최근 당직자 인사에서 사무총장, 사무부총장 등 총선공천위원들을 이너서클 멤버로 채운 것은 아주 위험한 신호다.여당이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은 이준석 전 대표가 쫓겨나기 전 출범시켰던 ‘최재형 혁신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국민의힘 혁신위는 지난해 8월 당 공천관리위원회 권한이었던 ‘후보자의 부적격 심사권한’을 당 윤리위에 넘기는 안을 ‘1호 혁신안’으로 발표한 후 곧바로 해체됐다. 당시 이준석이 윤 대통령 측근들의 수도권 험지출마를 요구한 게 발단이 됐을 거라는 추측이 나돌았다.국민의힘이 3·8 전대 이후, ‘안철수·유승민은 되지만 이준석은 안 된다’고 정리를 했지만, 나는 이것이 최악의 수(手)라고 생각한다. 이준석은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과 함께 우리나라 정계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과제를 던진 청년이다. 진영논리보다는 실용지향적인 청년들을 정치권에 흡수시킴으로써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우리 정계를 한 단계 성숙시킨 인물이다.내년 총선은 TK와 호남 등 강한 진영논리를 가진 지역을 제외하고는, 젊은 유권자들의 의중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곳이 다수일 것이다. 이들을 흡수하려면 민심을 감동시킬만한 공천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친윤계로 공천리스트를 짰다간 TK에서도 의석을 잃게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하루빨리 이너서클 울타리를 벗어나 열린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2023-03-21

TK, ‘기회발전·교육특구’ 지정에 올인하라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소위를 통과했다. 입법예고 된 지 5개월 만이다. 여야가 합의한 만큼 오늘 열리는 행안위 전체회의와 30일 본회의에서도 무난히 통과될 것 같다. 특별법은 그동안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으로 설치돼 있던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지방시대위원회’로 통합한 것이다. 지방시대위 위원장은 이미 우동기 현 국가균형발전위 위원장이 내정돼 있다. 특별법 핵심은 윤석열 정부 지방시대 국정과제인 교육자유특구와 기회발전특구 지정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특별법 입법예고 과정에서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가려면 20대 대기업 본사나 공장,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 특목고를 함께 내려 보내야 효과가 있다”고 언급한 말은 특구 지정의 의미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지자체와 기업이 협의한 후 정부가 지정하는데, 특구로 이전하는 기업과 직원에겐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 교육자유특구는 학생선발·교과과정 개편 분야에서의 규제 완화와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교육 공급자 간 경쟁을 통해 다양한 명문 학교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전 장관의 말처럼, 지자체 역량에 따라 서울 명문대의 특구이전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당초 법안에 수도권은 기회발전특구 지정에서 제외돼 있었지만, 법안심사 과정에서 수도권 의원들의 반발로 ‘수도권 접경지역이나 인구감소지역 중 지방시대위가 정하는 지역’을 포함시킨 부분은 아쉽다.지방시대위 발족은 비수도권 지자체들로선 둘도 없는 기회다. 만약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곧바로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물론, 인구소멸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대구·경북은 특별법에 명시된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로 반드시 지정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2023-03-21

일하는 노인이 많은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이어족이란 말이 유행했다. 30대말∼40대초까지 조기 은퇴를 목표로 회사 생활을 하는 젊은이를 두고 한 유행어다.이들은 수입의 70∼80% 이상을 저축하는 등 극단적인 절약을 생활화하며 산다. 일반적인 은퇴 연령인 50∼60대보다 빨리 은퇴생활을 시작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목표다.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조금 덜먹고 덜 쓰더라도 외식이나 여행을 즐기는 삶을 찾아 나서겠다는 것이다.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현상이다. 미국에서 시작해 영국, 호주 등 전 세계에서 이런 흐름이 나타났다. 학자들은 일에 대한 불만족, 높은 실업률, 경제적 불확실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우리나라는 OECD가 공식 인정하는 일하는 노인이 많은 나라다.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 인구 비중이 40%다. 일본 25%, 미국 18%, 홍콩 13%에 비해 월등히 높다.지난달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나라 60세 이상 일하는 노인의 수는 57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10년 전보다 2.1배가 늘었고, 1996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통계청이 조사한 고령층의 취업실태에서 장래 취업 의사가 있는 인구 비율이 68%다. 그들이 밝힌 취업 의사 이유로는 “생활비의 보탬”이 57%로 가장 높았다. 이는 우리나라 노령층의 상당수가 생활고에 시달려 일을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우리 출산율과 고령화 추이를 보면 국민연금은 없는 돈으로 생각하고 각자 알아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난다. 늙어서 일한다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1

대구 현안에 전폭 지원하겠다는 국토부장관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작년 5월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구를 찾았다. 그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만나 최근 국토부가 지정한 대구 미래스마트기술 국가산단과 대구경북신공항 지원에 관해 긴밀한 협의를 벌였다. 원 장관은 “달성군에 조성될 대구 스마트기술 산단의 조속한 추진과 국비로 지원되는 민간공항이 충분한 규모로 건설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특히 대구 미래스마트기술 산단은 신속한 예타절차를 거쳐 10개월 안에 모든 절차를 끝내고, 미래차와 로봇이 융합된 미래산업의 중심지로 대구 성장을 이끄는 첨단산업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신공항건설과 관련해 국토부는 신공항특별법 통과에 함께 노력하고 신공항과 연결되는 교통망 구축에도 적극 협조한다는 뜻을 전했다.대구시는 이날 국토부가 국비로 건설하는 민간공항이 충분한 규모로 건설될 수 있도록 대구시 제안이 국토부 용역에 반영될 수 있도록 건의했다. 또 신공항과 연결되는 팔공산 관통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제3차 고속도로망 계획에 반영해 줄 것도 요청했다.달성군에 들어설 제2국가산단과 대구경북신공항은 대구 미래의 운명을 가늠할 중요한 지역 현안이다. 홍 시장은 이를 두고 대구 굴기의 핵심사업이라 한다. 대구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국토부의 지원은 필수적이다.홍 시장은 “국토부가 대구시를 직접적으로 도와줘야 할 일이 많고 국토부 장관의 결단이 대구 미래 50년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GRDP(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를 유지하는 대구는 새로운 산업 유치와 신공항 개설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새 정부 들면서 국가산단이 대구에 추가 지정되는 등 대구경제에 조금씩 비전이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원 장관의 대구 방문은 이런 점에서 대구시민에겐 관심사다. 특히 원 장관은 국토부와 대구시가 원팀이 돼 긴밀히 협조하고 책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지역 현안 해결에 무게감을 더해 준다. 국토부 장관의 약속이 지켜지길 기대하고 대구시도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03-21

기계다워지는 인간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애틀랜틱 잡지에 기고한 니콜라스 카의 글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과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인간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검색엔진에서 찾은 정보를 일회용 플라스틱처럼 사용하고는 그냥 버려 버린다. 필요시 언제나 다시 검색 할 수 있는데, 굳이 칼로리를 소비하면서까지 자신의 뇌에 그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창조의 신비인 우리의 뇌는 그렇게 버림받는 중이고,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이제 비와 함께 내린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보도했다.ChatGPT는 45 TB가 넘는 양의 웹 페이지, 책, 기사 등의 글을 가지고 학습되었다. 사람 한 명이 이만큼의 글을 읽으려면 최소 약 4천 번 정도 인생을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방대한 양을 가지고 학습되었기에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매우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 방식이든 디지털 방식이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가능케 하는 핵심 동력 중의 하나는 글, 즉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글쓰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ChatGPT는 없다. 문제는 인간의 글쓰기 능력은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례로 서울대 자연과학대 입학생 25%는 정규 글쓰기 과목을 수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글쓰기 능력이 부족했다. 미국과 호주 등 다른 나라도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ChatGPT의 출현은 사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촘스키 같은 언어학자들은 어떤 형태이든 문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ChatGPT는 웹에 있는 인간의 글들, 즉 데이터만을 가지고 인간 언어를 학습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들을 ‘생성’한다 (‘창작’이 아닌 ‘생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에 유의하자). 이렇게 생성된 글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시 웹에 게시할 것이고, 이렇게 웹에 게시된 글들은 다시 ChatGPT의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어지는 반복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좀 과한 비유를 하자면, 먹었던 음식(데이터)을 소화하고 배설한 후(생성), 그 배설물을 다시 먹는 격이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면, 기계가 생성한 글은 학습데이터에서 제외하고 인간의 창작 글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야한다. 문제는 주어진 글이 생성인지 창작인지 구분도 안 될 뿐더러, ChatGPT에 열광하는 우리는 순수 창작 글쓰기를 더 멀리 할 것이라는 점이다.존 컬킨은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 ChatGPT가 높은 품질의 답을 생성할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을 만드는 인간의 작업을 Prompt Engineering이라고 한다. 도구를 인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구에 맞춰지고 있는 격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엔지니어링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몇 십 년 전에 검색엔진최적화(SEO)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가 기계를 인간답게 만드는 동안, 인간은 점점 기계다워지고 있는 것이다. 배설물을 가지고 다시 학습한다면 ChatGPT의 성장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인간이 계속 기계다워진다면 말이다.

2023-03-21

결핍의 시간을 지나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춘분에 즈음해서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온갖 꽃들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울긋불긋 피어나고 새들은 나무를 새장 삼아 정답게 지저귀는가 하면, 부드러운 바람 결에 실버들은 연둣빛 머리채를 하늘하늘 풀어헤치고 있다. 메마른 땅에 어김없이 생동의 기운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한 나날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의 정취와 향기를 이제는 마스크 없이도 느낄 수 있다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봄날의 환희이던가.불과 4년 전의 겨울에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얼마나 위협적으로 지구촌을 옥죄여 왔던가. 조마조마한 가운데 초기의 확진자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멸시와 냉대 속에 적개심마저 불러 일으키게 했고, 언제 걷힐지 모를 암울의 장막같은 불안과 침체의 늪에 허우적거리며 공포와 조바심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그러나 언 땅에도 봄이 찾아들듯이, 끝이 보이지 않던 괴질의 아귀도 이제는 한 때의 고질(痼疾)로 여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올해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율의 확연한 감소세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벗어난 듯해 사뭇 서로가 따뜻한 위로와 공감으로 다독이고 챙기며, 병은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재삼 되새기게 된다.어쨌든 코로나 이후 세번째의 봄날이 왔고, 좀 늦긴 했지만 감염병의 소멸추세에 사람들은 조금씩 안도와 평온의 일상을 되찾아가는 듯하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꿈결 같고 한 순간 같다지만, 희대의 코로나19는 혹독한 시련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팬데믹과 네트워크상의 소통, 공유 증가로 우리는 점점 직접 마주하는 기회가 줄어드는 비대면 문화와 일방적인 대화, 표현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건조한 듯 단순해 보이고, 당연한 듯 무관심에 주눅들어가는 개인화와 비정(非情)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모종의 딜레마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싶다.‘春日短/幷且去/吾君邪/頻相處(봄날은 짧다/그리고 간다/우리 그대여/자주 만나자)’- 강성위 한시 단가(短歌) 致君(그대에게) 전문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난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지구는 한 개의 점이나 티끌에 지나지 않고, 한철이나 한 시대는 유구한 세월 속의 창해일속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만큼 길거나 크게 보면 현재와 맞닥뜨리는 일련의 현상은 한때의 미약한 움직임이고 아주 소소한 변화나 진배없을 것이다. 그에 비춰 보면 지겹기만 했었던 악몽 같은 코로나의 엄습도 ‘한때의 신음’ 정도가 되지 않을 듯싶다.3년만에 봄다운 봄을 푸근하게 맞이할 수 있음은 그만큼 억눌리고 발목 잡힌 누림의 결핍이 컸었기 때문일 것이다. 묵묵히 참으며 오랜 기다림이 있었기에 새롭게 맞이하는 봄날이 한결 따사로운지도 모른다. 짧기만한 봄날이지만 마음껏 즐기고 누리면서 분출되는 욕구를 구가하는 것도 괜찮을 일이다. 뜸해졌던 만남의 물꼬를 흔쾌히 트며 피어나는 봄꽃 마냥 환한 웃음꽃을 피워보자.

2023-03-21

‘덕질’은 구원입니다

‘덕질’이라는 말이 있다. ‘수집가’의 뜻을 가진 신조어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쉽게 말하자면 그냥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기도 하고,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하자면 뭔가에 미쳐하는 행동을 ‘덕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미친 듯이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건 포켓몬 스티커 덕질이고, 미친 듯이 아이돌 관련 굿즈를 사 모으는 건 아이돌 덕질인 셈. 어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취향에 미친 듯이 몰입하는 것, 그걸 위해 얼마든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 그게 덕질인 셈.최근엔 ‘진격의 거인’에 미쳐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지냈다. 집에 콕 박혀서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그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가슴 졸이면서. 그렇게 한 일주일을 살고 나면, 일상의 스트레스를 모두 잊어버리고 만다. 그게 중요해? 지금 엘런이 거인이 됐는데? 아르민이 불타 죽게 생겼는데? 말이 좀 그렇긴 하지만, 나한테는 나름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힐링인 셈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이 바쁜 시즌이 되면 흐름이 뚝 끊어지게 돼서, 강제로 ‘탈덕’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3월은 바야흐로 ‘탈덕’의 계절이다. 강의가 시작되고, 계간지의 새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니까. 프리랜서는 일 할 수 있을 때 일해 둬야 비시즌에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취미나 취향이나 애정보다 일이 앞서는 시기인 셈이다. (물론 이런 말을 했더니 출판사 팀장님은 나에게 “방학이 있는 삶에 감사하라”고 잔소리를 하시긴 했지만...) 좋아했던 모든 일로부터 멀어져 강의를 준비하고, 특집 원고를 준비하고, 새로 시작할 연구를 준비하고. 그나마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삶이 싫진 않지만, 바쁘게 일만 하면서 살다 보니 사는 낙이 없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런 때엔 술마저 맛이 없다. 마치, 일찍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는 것처럼 술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최근엔 1학년 대상의 글쓰기 수업을 위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하는 수업이다 보니 왠지 재밌게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 생글생글 웃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나름 많이 준비해 가곤 한다. 그렇다보니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할 때에는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곤 하지만, 막상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면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든 내일 수업을 또 준비하고, 다른 할 일들도 해야 하는데, 정작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지친 것인지 침대에 몸져눕듯 쓰러져 한 시간쯤 잠들어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먹기 싫은, 어른의 투정인 셈.그런 하루 중에 유튜브 알림이 울린다. 좋아하는 인디 밴드의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되었다는 알림. 겨우 손가락 움직일 힘만 남아, 가까스로 알림을 클릭한다. 검은 창에 유튜브의 마크가 뜨고,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와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와, 음악 진짜 좋다. 영상 진짜 멋있게 찍었네. 대박. 대박. 보컬 엄청 잘생기게 나왔어. 얘들 왜이래. 진짜 대박 나겠다. 이제 나만 아는 밴드 아니겠다. 속상한데 더 성공했음 좋겠다. 너네라도 성공해라. 난 이번 생은 글렀다. 와 근데 노래 진짜 좋네. 영상 대박 멋있어. 완전 대박. 어, 이거 만화 오마쥬인가? 소년 만화 주인공 같네. 멋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실리카겔’이라는 밴드의 ‘Mercurial’을 그렇게 하루 종일 보고 들었다. 가사의 의미와 뮤비에 나온 오브제들을 보며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이상하리만치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 버티길 잘했다 싶은 기분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심미적인 만족감 같은 걸까? 사실 잘은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들뜨고 내일도 또 들어야지 싶고.내일도 또 들어야지, 지하철에서 뮤비 봐야지, 영상도 더 찾아봐야지. 어디 인터뷰나 코멘트 한 거 없는지 찾아봐야지, 그런 소소한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그런 때면 왠지 어릴 때 생각이 난다.좋아하는 게임 하나에 몰입해, 혼자 게임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이런 저런 살을 붙이고, 내일은 뭘 해야지 하고 계획하며 두근거리던 기분. 분명히 별 것 아니지만,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1인용 위안 같은 것들. 참 별 것 아니긴 한데, 그 사소하고 작은 ‘덕질’ 하나에 하루의 의미가 바뀐다. 버티고 버틸 뿐인 삶에서, 내일을 두근거릴 수 있는 삶으로. 그렇게, 오늘 나의 하루는 구원받는다. 사소한 애정이 나의 하루를 이토록 두근거리게 해줄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감탄하면서.

2023-03-21

나는 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보면 동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고들 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물론이고 대중의 내밀한 욕망까지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인터넷 서점 사이트만 들어가 봐도 그렇다. 읽으면 부를 거머쥐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책과 욕심을 내려놓고 흘러가는 바람처럼 살아가자는 책이 나란히 놓여있다. 이러한 양극의 발화야말로 우리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외침과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조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다. 세상을 향해 힘차게 주먹을 휘둘렀으나 보이지 않는 손에 어퍼컷을 맞고 KO패 당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살면서 누구나 냉소와 허무를 맞닥뜨리기 마련이고 그날그날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렇게 나태하게 살 순 없다고,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혼란한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명백한 답을 찾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그런 면에서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사이비 종교를 고발하고 집단적인 폭력에 관해 파헤치는 내용의 프로그램은 공개와 더불어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다.그 어떤 이유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인간의 존엄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행위들. 어떠한 가치를 향한 의지가 크면 클수록 자기 존엄성보다 희생이 앞설 수밖에 없다. 사이비 종교 집단은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행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가감 없이 벌인다.다큐멘터리에서는 눈이 찌푸려질 만큼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피해 상황을 보여준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이나 권위를 내세우던 사람이 몰락하는 과정, 한 인간을 무분별하게 신격화하는 것의 위험성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모습까지. 모두 인간이 행한 일이며 종결되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진리를 알고 그를 통해 구원받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정답을 나 혼자 알고 있다는 사실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당장의 현실은 고달플지 몰라도 믿고 따르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책을 덮고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라는 자기계발서의 조언을 따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나가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 정답이 있다고 보장되어있는 한, 누구나 자신만만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다.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적극적인 자기 확신과 맹목적인 자기 믿음은 다르다. 한 사이비 교주를 체포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애써왔던 사람은 그의 실체를 마주하고 이렇게 보잘것없고 겁 많은 사람을 쫓던 것이 허무했노라고 고백한다. 어떤 인간도 완전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신이라는 절대자를 붙잡는다. 인간은 완전해질 수 없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에 가깝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했던 그 유명한 변론을 떠올려 보라. 그가 유일하게 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던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의문하고 의심하고 전복하면서 철학과 과학과 종교는 발전되어 왔다. 사랑과 행복 같은 관념은 늘 선행적으로 존재한다. 결국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본질이다.언젠가 외부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소설을 써야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까?” 질문 자체보다 거기에 무언가를 대답하려고 했던 나 자신에게 당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을 정답이라고 내어놓을 수도 있던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질문자의 얼굴에서 실망의 기색이 떠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이따금 생각한다. 나는 그때 어떤 답을 주려고 했던 걸까. 어쩌면 이제껏 그것을 답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모르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어떤 상황에선 모르겠다는 발화가 명쾌하고 산뜻해 보이기까지 한다. 끝끝내 어려운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그것은 무지의 영역보다는 앎의 영역에 가깝다. 자기 의심과 자기 확신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는 그 걸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2023-03-21

‘정책시뮬레이션’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어린이집, 노인복지관, 응급의료병원, 보건소, 도서관, 체육시설, 공원, 박물관, 주민센터, 공공주차장 등을 일컬어 우리는 생활SOC(Social Overhead Capital·사회간접자본)라 한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자녀를 키우고, 노인을 부양하고, 일하고 쉬는 등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인프라와 삶의 기본 전제가 되는 시설들이다. 이 시설들은 국민 누구나 어디에서나 품격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 최소수준 이상 공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관할 부서간의 칸막이식 공급체계의 단점을 해소하고 공급된 시설의 질적 제고와 국민의 체감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지난 2018년 국토연구원에서 인구와 생활SOC 접근성 데이터를 이용하여 거주지로부터 10가지 기초생활SOC까지 10분 이내에 이용할 수 있는지를 접근성 지표를 분석해보았다. 시급 도시는 3㎞, 군지역 5㎞ 거리 기준을 차량 이동 10분 거리로 설정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국 거주지의 20.9% 지역은 10분 내에 접근 가능한 기초생활SOC가 하나도 없는 취약지역으로 나타났으며, 도시 근교와 농어촌지역으로 갈수록 생활SOC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소득, 고용, 교육, 주거, 건강, 생활환경, 안전 등 필수 7대 영역에 대한 결핍 정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지역 여건의 차이를 상대적으로 측정한 지수를 ‘복합결핍지수’라 한다. 이 ‘복합결핍지수’를 10등급으로 구분하여 도시와 농촌지역에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도시는 1, 2, 3 등급의 비율이 높고, 농촌은 8. 9, 10 등급의 비율이 높았다. 상위 10%의 가장 양호한 지역은 서초, 의왕, 세종 등 도시지역이었고, 하위 10%의 가장 결핍된 지역은 강원, 경북, 충남 등 농촌지역과 일부 광역시 원도심 지역이었다.이렇게 생활SOC 접근성이나, 국민생활 7대 영역 결핍도는 급속하게 발달한 빅데이터와 정보기술 등 을 활용하여 지리정보시스템의 전국 지도에 읍면동 단위로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접근성이나 결핍도 등을 산정하는 수식에 임의로 생활SOC의 신규 설치나 폐지, 7대 영역 세부지표값을 가정하여 높이거나 낮추어 보는 행위 즉,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국가나 지방정부는 한정된 재원과 복잡한 규제, 이해관계, 시급성 등을 고려하여 주요 정책의 추진에 앞서 ‘정책시뮬레이션’을 통해 효과성 검토를 해야 한다.지난 2월 1일 개원한 대구정책연구원은 신산업육성전략, 신공항경제권 클러스터화, 군위군 편입 및 후적지 개발을 위한 메가대구 공간디자인, 청년정착형 職·住·文 기반구축, 스마트동네생활권, 기후환경선도도시 등 시민 삶의 질 혁신을 위한 주요 정책연구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크로스코칭, 전문가 라운드 테이블, 시민소통(리빙랩)에 이어 ‘정책시뮬레이션’을 반드시 수행하여 핵심정책을 제안하는 단계적 연구관리 프로세스를 생활화 하고자 한다.

2023-03-20

포항공대, ‘K푸드’ 세계시장 진출에 참여

정부가 ‘K문화’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푸드테크 산업에 포스텍(포항공대)이 참여하기로 해 주목받고 있다. 포스텍은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푸드테크 공모사업에 선정돼 대학 석사과정에 관련 계약학과를 개설하기로 했다. 이 학과는 기업들과 연계해 산업체 맞춤형 업체 종사자를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푸드테크산업은 경북도가 미래 100년을 이끌 몇 안 되는 산업으로 인식하고,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야다. 포스텍은 올 7월말까지 교육생 모집 등 학과 개설 준비를 완료하고 올 2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입학생은 등록금의 65%를 지원받으며 대학은 연간 7천만 원의 학과운영비, 기업은 연간 6천만 원 규모가 지원된다. 강의내용은 로봇기반 식품과 AI 융합, 스마트팩토리, 개발기술 등 푸드테크 분야 이론 및 실습 교육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관련기업들에겐 과제해결을 위한 컨설팅도 해 준다.푸드테크는 식품(food)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반도체, AI(인공지능), 로봇 등 4차 산업 기술과 K푸드로 불리는 문화적 부분까지 결합한 신산업이다. 포스텍과 같은 명문 공과대학 석사과정에 관련학과가 개설되는 이유다. 온라인 배달 플랫폼부터 무인 주문 시스템인 키오스크, 식물과 곤충을 활용한 대체식품, 음식료 제조·배달 로봇 등 진출분야도 다양하다. 지난달 정부주도로 ‘푸드테크 산업 발전협의회’가 구성됐으며, 이 자리에서 “푸드테크 산업 투자기회를 놓치면 700조원 규모의 시장을 해외 기업에 잠식당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다.이 산업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수출 효자 품목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지만, 아직 국내 스타트업이 100곳 내외일 정도로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푸드테크 기업이 성장하려면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이 필수적이다. 타이밍을 놓쳐 한번 뒤처지면 모든 기술을 선점당해 끌려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포스텍과 같은 유수대학이 주도해서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2023-03-20

외국인공동체 조성사업, 인구대책 물꼬 되길

경북도가 외국인 유치와 정착 사업을 통해 전국 처음으로 인구위기 문제 해결에 도전해 눈길을 끈다. 경북도는 지난해 9월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올해부터 외국인공동체과를 별도 신설하는 등 외국인공동체 조성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그동안 부서별로 흩어져 있던 외국인 지원업무가 한곳으로 모이면서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됐고, 학계 등과 연계한 전문가 그룹의 외국인공동체 TF단도 구성했다.지금부터는 도지사가 영주권 바로 아래 단계인 거주비자(F-2)를 추천 발급할 수 있게 돼 도내 인구감소지역에 거주·취업하는 외국인들은 10년 이상 걸리던 거주비자를 바로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비자 문제로 한국을 떠나야 했던 외국인의 불편도 덜 수 있게 됐다.경북도가 이처럼 외국인공동체 사업에 적극 나선 것은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취업 중이거나 유학 중인 외국인이 경북에서 정착하고 또 이들이 지역사회에 진출하면 지역사회 활력과 인력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글로벌 시대라는 흐름에 맞고 저출산 국가인 한국의 인구문제와 관련해서도 경북도의 외국인공동체 사업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성과를 잘 낼 수 있을지가 숙제다. 경북도는 2015년을 기점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 지금은 23개 시·군 중 18군데가 인구소멸 위험지역이다. 그 중 청송, 영양, 영덕 등 7곳은 고위험지역에 해당한다.지금 상태라면 인구감소로 인해 빚어질 사회적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이철우 지사는 “경북을 아시아의 작은 미국처럼 외국인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외국인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경북에는 현재 9만8천여 명의 외국인이 거주한다. 10년 전보다 그 수가 74% 늘었다. 한류 문화로 한국을 찾으려는 외국인 수요는 앞으로 더 늘 전망이다. 경북도의 외국인공동체 조성사업이 전국적 모델로 성공할 수 있도록 치밀한 준비가 있길 바란다. 이 사업은 인구문제 해결의 물꼬이자 글로벌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2023-03-20

‘농촌유학’, 희망을 본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농촌유학’이 인기다. 폐교 직전의 농촌 학교를 살리는 효자가 됐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은 활기를 찾았다. 농촌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다.농촌유학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2010년부터 농촌유학시설에 운영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시작됐다. 현재 전국 28개 농촌유학센터가 운영 중이다. 정부는 종사자 인건비, 컨설팅·홍보비, 기자재 구입비 등 연간 15억 원 가량을 지원한다.해마다 참여 학생 수가 느는 등 농촌유학에 대한 관심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만족도도 높다. 유학생,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농촌유학생은 정서적 안정과 인성 함양에 도움됐다는 평가가 많다.서울시 교육청 조사결과 10명 중 6명 이상이 농촌유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건강 식생활’, ‘자립심 향상’ 등이 이유다. 학부모 10명 중 4명이 농촌유학을 보낼 의향이 있다고 했다.2013년 대구은행에서 퇴직한 부부가 설립한 경북 봉화의 ‘청량산풍경원’ 농촌유학센터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올해 농축산부(11억 원)와 경북도(4억 원)로 부터 15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 각종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현재 서울·부산·대구 등에서 온 20명의 유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학생들은 농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수확하고 개울에서 물놀이하면서 다양한 농촌·생태 체험을 한다. 마을 인구의 절반이 이곳 학생이다. 폐교 위기의 명호초교와 청량중학교도 활력을 찾았다. 봉화의 상급학교로 진학생도 꽤 있다.농촌유학센터가 도농 교육 교류 활성화 기여 등 농촌살리기의 모범 사례가 됐다. 농촌에서 희망을 본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0

불법만 아니면 다 괜찮은가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삼일절, 한 아파트 베란다에 일장기가 내걸렸다. 이를 본 주민들은 해당 가구를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했고, 세대주 부부는 ‘일장기 거는 게 불법이냐’라고 응대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토착왜구’라는 신조어로 대표되는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의 문제로 보는 관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들에 ‘법’ 외에는 아무런 판단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언(法諺)이 있다. 인간 사회에는 도덕, 관습, 윤리 등과 같이 법보다 더 넓은 차원의 규범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즉, 어떤 행위의 위법성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다 용인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국가나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법이 강제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의 유지와 구성원의 존엄을 위해 규범을 만들어 낸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다.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이나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같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존재하고 식민지 경험이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한, 일본이 식민 지배의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와 보상을 실현하지 않는 한 삼일절에 일장기를 내거는 행위는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니 처벌할 수는 없지만, 도덕적 비난까지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김수영 시인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비판하기 위해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다. ‘김일성 만세’와 같은 극단적 의견도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언론자유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표현의 자유 역시 법으로 강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성숙한 사회라면 ‘김일성 만세’를 법으로 처벌하는 대신, 공론장에서의 논쟁과 합의, 그리고 교육을 통해 독재자를 찬양하는 행위를 사회적 금기로 만들어 낼 것이다. 금기를 위반하는 자는 시민적 상호부조 시스템에서 추방함으로써 응징하면 된다.독일의 옛 동독 지역에 오래 거주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지역에서는 네오나치 집회가 종종 일어나는데, 파시즘과 신고립주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그 몇 배로 모여들어 네오나치 시위대를 감싸고 구호를 외쳐 그들의 모습과 메시지가 외부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식과 양심, 역사의식을 갖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의 존재가 필수적이다.‘불법이냐 합법이냐’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 사회를 상상해 보자. 그런 사회를 반길 사람은 재력과 권력으로 법의 허점을 파고들 줄 아는 자밖에 없을 것이다. 양심과 상식이라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2023-03-20

왜 고독사는 계속되는지

김규인수필가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 핵가족화를 향해 간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후진 개발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지켜보는 이 하나 없는 캄캄한 방안에서 사람들이 홀로 죽고 한참 뒤에야 발견된다. 25%를 넘는 1인 가구 사회에서 만나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전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는 이러한 경향을 부채질하고 자본주의는 홀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 외로운 삶을 부추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호모 사피엔스, 우리 인간은 그 사회성을 잃어간다. 홀로 사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이 막대 두 개를 잇댄 사람 인(人)의 의미를 이해나 할 수 있을까.국민소득이 높아져도 그것은 남의 일이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부의 불평등은 심해지고 경제적으로 실패한 사람은 일어서기조차 힘겨운 현실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사회로부터도 너무나 쉽게 고립되고 외로움은 가까이 찾아든다. 그래서 사회와 사람과 정보와 공간에서 고립된다. 찾아갈 곳도 찾는 이도 모임도 사라진다. 투명 인간으로 남는다.고립은 나이를 가라지 않는다. 피가 끓는 젊은 사람에게도 다가간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좁은 방에서 취업을 꿈꾸는 핼쑥한 청춘에게 거듭되는 실패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혼자만의 시간만 늘어난다. 이제는 웃음을 잃고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는 것도 힘이 든다.빨리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어 사느라 날마다 겪는 혼밥, 언제나 나를 피해 가는 취업 합격의 소식, 갑자기 삶을 산산조각 낸 사고, 사업의 실패로 인한 가족의 해체, 나이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죽음 앞에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 날마다 올리는 기도에 응답 없는 신을 원망하는 날이 늘어난다.우리가 자랑하던 3대가 모여 살던 삶의 공동체는 각자의 일을 찾아 떠난 현실 앞에 너무나 맥없이 무너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고 돈마저 없는 사람은 존재감마저 사라진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진 사회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고독사는 너무 흔하다. 그들은 쉽게 잊힌 사람이 된다.몇 번의 클릭만으로 지구 반대편의 사정을 알 수 있는 현실에서 정작 내 옆의 이웃이 죽어가도 모르는 이 현실이 맞는 것인지.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인지 통계조차 없는 현실이 부끄럽다. 늦게나마 ‘고독사 예방법’이 제정되고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각 지자체는 고독사를 줄이는 정책을 내어놓는다. 그들의 생존 신호를 이제 사회에서 감지하기 시작한다.사람과 사람을 잇자. 사람이 만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자. 외로운 사람들이 한곳에 모을 수 있는 틀을 만들자.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사람이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현대사회에 길들어버린 인간의 야성을 되찾자. 마주 잡은 손에서 온기를 느끼고 응어리진 가슴을 열게 하자.고립된 사람들의 생존 신호를 우리 사회는 찾고 그들의 삶을 응원해야 한다. 살아있을 때는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아플 때는 위로하고 삶이 다 할 때는 사람들의 빈 자리를 채워주자. 더불어 사는 삶의 틀을 만들자.

2023-03-20

1919년 3월, 잊어서는 안 되는 참혹했던 시간들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3·1 운동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해마다 삼일절로 시작하는 3월과 광복절이 있는 8월이 돌아오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되짚으며 항일독립에 헌신한 선열들을 추모한다.지나간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러한 시간을 만들어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쌓이면서 그 의미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돌아오기 때문에 그저 반복적인 습관처럼 잠시 생각하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지금 3월, 그때 그 시절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위해 힘겹게 저항했던 선조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장석영(張錫英·1851~1926)은 1919년 2월 4일부터 11월 1일까지 기록한 ‘흑산기사(黑山記事)’에서 성주 지역의 만세 운동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3월 2일은 성주의 장날이었고, 이날을 맞이해 유생이고 상인이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대거 모여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소문이 이전부터 파다했다.무성한 소문은 태풍 전 고요처럼 불안을 야기했고, 곧 일어날 만세 운동이 염려스러웠던 일본은 순검을 보내 장석영을 불러들였다.유림의 존장인 장석영이라면 만세 운동을 저지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처럼 되지는 않았다.“3월 2일, 본 고을(성주)의 장날이다. 본 고을의 유생(儒生)과 교도(敎徒) 그리고 상인들이 이날에 크게 만세를 부를 것이라는 풍문이 심하게 돌았다. 이날 식후에 고을의 순검(巡檢) 두 사람이 와서 만나보기를 청했다. (생략) 얼마 후 공문을 가지고 왔기에 부득이 수레를 타고 가는데 고을 가까이에 이르자 만세 소리가 산악을 뒤흔들었다. (생략) 가마꾼을 재촉해 출발했는데 고을 밖으로 나가자마자 만세 소리가 또 한바탕 크게 일어났고 잠시 후 대포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상인들이 풍비박산되었다. 대개 수 천 명의 상인들이 날이 저물어도 흩어지지 않고 깜깜한 밤에도 곳곳에서 만세를 계속해서 불렀으므로, 일본인이 변괴가 있을까 염려해 발포했던 것이다. 대포에 죽은 자가 6명, 중상을 입은 자가 10여 명이라고 했다.” -장석영의 ‘흑산기사’ 1919년 3월 2일의 기록 중에서성주의 순검은 대구 경무청의 요청으로 장석영을 찾아왔다. 장석영이 공문이 없다면 응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자 순검이 곧장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공문을 가져왔다.결국 가마를 타고 성주 경찰서로 들어가는데, 읍내 근처에 다다랐을 때 큰 함성의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문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한 장석영에게 경무청의 사람은 군민의 만세를 제지시켜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이에 장석영은 “내가 부르라 시킨 적도 없지만 찬성한 적도 없다. 오늘 만세를 부르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사람의 힘이 아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세를 외치는 것이 어찌 나의 찬성을 기다린 것이겠는가.”라고 대답하며 거절했다. 덧붙여 경무청에 속했지만 당신도 한국 사람이니 비록 함께 만세를 외치지 않아도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되물었다.면담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섰을 때 다시 만세 소리가 진동했다.뒤이어 대포 소리가 크게 들리면서 만세를 외치던 수 천 명의 상인들이 풍비박산 나듯이 날아가고 흩어졌다. 해가 져도 흩어지지 않고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곳곳에서 만세를 계속 불렀기 때문이었다. 더 크게 확산될까 두려웠던 일본인은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대포를 쏘았고, 이 대포에 사람들은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었다.장석영은 그 모습을 침통하게 지켜봤다. 그가 만세 운동에 찬성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이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그러나 장석영은 곧 체포되었다. ‘파리장서’와 ‘통고도내문’ 등을 쓰며 독립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옥중 생활은 그야말로 혹독했다.순사들은 잡혀 온 조선인들을 삼엄하게 감시하며 짐승처럼 다루었다. 감시 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뺨을 때리고 허리를 차는 등 못 견딜 정도로 능욕을 가했다.장석영은 이러한 능욕과 수모 속에서 죽을 결심을 하고, 굶어 죽기 위해 곡기를 끊었으나 쉽게 이루지 못할 것을 깨닫고 자결을 포기한 채 옥중 생활을 견뎌냈다.장석영을 체포한 후 일본인 검사가 “국법을 위반하고 인심을 선동하는 것은 국가의 적이 아닌가”라고 심문하자, 장석영은 매섭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지금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빼앗았다고 칠 때, 빼앗긴 사람이 토지를 찾고자 하는데 빼앗은 자가 도적인가 찾고자 하는 자가 도적인가? 찾으려는 자와 빼앗은 자가 재판소로 와서 송사를 벌인다면 재판관은 누구더러 도적이라 할 것인가”라고.지금 우리가 누리는 소중한 시간들은 그 시절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 발전적인 미래로 나아가지 못해서는 안 되지만, 지나간 역사를 쉽게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2023-03-20

수도원의 출현과 중세미술의 발달

중세미술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수도원은 오로지 종교적 삶에 헌신하기 위해 속세와 거리를 두고 세워진 신앙 공동체이다. 중세시대의 수도원은 근본적으로 종교적 목적을 위해 지어졌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기능을 수행했다.중세시대에는 보편 교육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이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고위 계층에 제한된 일종의 특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지식이라는 것은 일상이 이루어지는 좁은 영역 안에서 경험적으로 얻어진 것에 불과했다.이러한 중세시대의 상황 속에서 수도원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지식이 생산되고 그리고 그것이 보존되고 전수된 곳이었다.수도사들은 신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성서를 읽을 수 있어야 했고 수도원에서는 성서의 내용을 보존하고 보전하기 위해 필사작업이 이루어졌다.수도원은 고행수덕을 삶으로 실천한 종교적 은둔자들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성인 안토니우스(251∼346)는 일찍이 이집트 광야에서 홀로 은둔 수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여겨진다.홀로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이 서서히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수도원의 기원이 된다. 최초의 수도원은 터키의 카파토키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방의 교회들이 이를 받아들여 수도원이라는 종교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서유럽지역에서 가장 먼저 수도원이 세워진 곳은 프랑스의 시골마을 리귀제(Ligug00E9)이며 316년 뚜르(Tour)의 주교 마르티노가 설립했다. 372년에는 리귀제 인근 마을인 마르무티에르(Marmoutier)에도 수도원이 세워졌다.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당시 갈리아 지역에 특히나 많은 수도원들이 지어졌으며 5세기 무렵에는 무려 230여 개의 수도원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개별 수도원들은 각자 나름의 규율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수도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종교적으로 거룩한 삶을 실천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났다.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수도원들은 일정한 규칙과 규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이런 배경에서 세워진 곳이 엄격한 규율로 잘 알려져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529년 누르시아의 성인 베네딕토(480∼547)는 몬테 카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종교적 이상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면서 실질적으로 지켜야할 수도원 규칙서(Regula Sancti Benedicti)를 만들었다.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칙서의 핵심 내용은 경건한 기도생활과 지혜로운 실천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라틴어 문구가 ‘Ora et Labora’이며 우리말로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강한 어조의 이 규율은 수도사들에게 성서를 읽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함과 동시에 육체적인 나태함을 철저히 금하면서 동시에 육체노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베네딕트회의 규칙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 있다. “나태함은 영적인 것이다.따라서 수도사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 해야 하고 성서를 읽어야 한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육체적인 노동을 그 이후 저녁 6시까지는 성서를 읽어야하고 저녁 기도시간 까지는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수도회의 이 같은 규율은 육체노동이 종교적 영성활동과 밀접하게 닿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베네딕트 수도회에서는 수도사들이 잠시라도 나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도와 거룩한 독서 그리고 육체노동이 조화되도록 공동체의 일과를 구성했다.베네딕트 수도회의 엄격한 규율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삽시간에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3-20

사이비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김진국 고문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충격이다. 사이비 종교를 폭로하는 뉴스가 과거에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넷플릭스에 폭로된 내용을 보고는 숨이 막혔다.교주들이 메시아 행세를 하며 젊고 예쁜 여신도를 끊임없이 성폭행한다. 그러면서 마치 하나님이 은총을 내려주는 것처럼 감사하도록 세뇌한다. 여자 교주는 젊은 남자 신도를 침대로 불러들인다.그 울타리를 벗어나서야 명백한 사기였다고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교주는 신도들에게 물욕과 성욕을 철저히 멀리하도록 요구하고, 어기면 폭행한다. 그러면서 교주 자신은 ‘메시아’라는 이름으로 구역질이 날 정도로 그 욕심을 채우고, 또 채운다. 노예처럼 일을 시킨다. 심지어 어린아이를 돼지우리에 가두고, 신도들이 아이가 죽을 때까지 매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의 이모도 폭행에 가담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무 항변도 못 했다.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자기 뺨을 수없이 후려치고, 자책하며 울부짖었다. 그런데 아이가 죽을 때는 왜 몰랐을까. 다큐멘터리가 나온 뒤 증언이 이어졌다. 한 탈퇴자는 “보통 어린 나이에 입교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추잡한 성행위를 해도 ‘메시아가 하는 거니까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벌 좋고 멋있는 사람도 믿고 따르는데 ‘이 사람이 메시아일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정명석은 신도들에게 ‘미디어 절대 보지 마라’라는 공지를 내린다”, “신도들은 그의 말을 법이라고 생각하고 따른다”라는 증언도 나왔다. 폭로가 이어지자 JMS는 외부 사람의 교회 출입을 막고, 신자들의 외부 접촉도 단속했다.한 사기꾼의 힘으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추악한 범죄를 어떻게 믿고 따르게 했을까. 현란한 사기꾼의 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의 힘만으로 이런 범죄가 가능했을까.초등학교만 나온 정명석은 서울에 올라와 명문대 학생부터 전도했다. 명문대에서 명문대로 전파하고, 서울 시내 수십 개 대학에 종교 동아리를 만들었다. 기존 교단에 대한 젊은이의 불만을 건드리며 빠르게 확산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 현란하게 설교하는 모습이 ‘성령’의 힘으로 비쳤다. 배우지도 못한 사람을 잘생긴 명문대생들이 따르자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믿게 됐다고 한다.교세를 확장할 수 있도록 그의 후광이 되어준 많은 신자가 있었다. 정부 관리, 법조인, 의사, 언론인, 장교 등 사회 엘리트층이 사실상 그의 보증인이 됐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정보, 상식에 어긋나는 사법 농단이 그의 아우라가 됐다. 특히 교주의 범죄 행위를 법 기술로 빠져나가게 만들어 무법천지를 만들었다. 그들이 모두 사이비 교주의 공범이다.정치는 어떤가. 언젠가부터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상식이 사라졌다. 진실은 목소리를 잃고, 가짜 뉴스는 번개처럼 퍼져나간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아무 책임도 없는 1인 방송이 전통 언론을 압도한다. 사람들을 속이는 선전·선동술은 점점 더 교묘해진다. 방송 채널마다 진실을 호도하는 기술자들이 설친다. 그 기술을 이용해 그들은 정치권으로 발탁되고,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사이비 교주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자기 진영의 선동 외에는 귀를 닫는다. 자기 진영에 불리한 이야기는 사탄의 유혹이라고 여긴다. 조금만 다른 얘기를 하면 문자폭탄을 날리고, 협박한다. 사이비 종교가 따로 없다.정치에서 이미 진실은 사라졌다. 무엇이 진실이냐를 찾지 않는다. 우리 편에 이익이 되려면 무엇이 진실이어야 하느냐를 먼저 생각한다. 조국 사태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범죄 행위가 사실인지는 관심 밖이다. ‘교주’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건에서도 진실은 외면된다.범죄자는 법 기술로 무죄를 만든다. 수사기관을 악마로 만들고, 수사를 못하게 막는 것을 개혁이라고 세뇌한다. 법이 있어도 집행할 수 없으니 무법천지다.국민은 가짜 주장에 휘둘려 분열한다. 가짜에 속은 국민의 무지를 탓할 것인가. 가짜를 선동한 정치인의 책임이 더 큰 것 아닌가. 사이비 정치의 범죄자들이 역사의 죄인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3-19

흔들리는 수도권 공장총량제

우정구 논설위원 서울, 인천, 경기 등 이른바 수도권은 국토 전체 면적의 11.8%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구는 국내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1970년대 전체 인구의 28% 정도가 수도권에 거주했으나 지금은 비수도권보다 더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100대 기업의 91%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고, 상위권 대학의 80%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역량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일자리나 돈, 출세, 문화적 욕구까지 수도권으로 올라가야 얻을 수 있어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게 아니다.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이처럼 벌어진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지금 비수도권 지방의 도시들은 노령화와 도시소멸의 문제로 그야말로 전전긍긍이다. 초라해진 도시의 모습에 허탈해하고 있는 것이다.1994년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한 수도권 공장총량제는 이런 문제를 해결코자 만들어졌다. 수도권의 공장 신증설을 억제함으로써 지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국정 목표로 삼은지 오래됐다. 윤석열 정부도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여러 번 외쳤다.최근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향후 300조원을 투자하는 등 6대 첨단산업 분야에서 550조규모 민간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하지만 수도권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벌이면 지방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가균형발전이란 대의를 저버리는 정책이 아니길 바란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19

나의 몸과 마음은 누구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의 몸과 마음은 그대들의 것인가?!” 학생들 얼굴이 뜨악하다.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몸과 마음은 모두 나의 것이란 자명한 사실을 왜 물어보느냐, 그런 눈짓이다. 문제는 이것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과연 우리 몸과 마음이 우리 것인지, 하는 문제가 단순명쾌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내 몸이 내 소유라면 몸은 언제나 나의 희망과 요구에 따라야 한다. ‘멘사 클럽’에 들어갈 만큼 머리는 명민해야 하고, 걸출한 운동선수의 체격과 체력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3년 넘게 고생한 우리로서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실상은 어떤가?! 툭하면 여기저기 문제를 일으키는 육신이 일반적인 현상인 걸 보면 내 몸은 내 바람과 무관한 듯하다.그렇다면 나는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변덕스럽지 않고 관대하면서 언제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나는 초조하고 불안하며 마음에 차지 않고, 툭하면 짜증을 내고, 토라지는 일이 다반사에 옹졸하고 쩨쩨하며 이기적이다.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아우러져 살아가는 일도 종종 있지만, 속으로는 앵돌아져 있으니 불편하기가 유만부동(類萬不同)이다.무언가의 주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조건은 항상성(恒常性)과 주재성(主宰性)이다. 언제나 그러하다는 것이 항상성이다. 들쭉날쭉 넘나듦이 없이 똑 고르게 그 본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내가 원하는 시공간과 상황에서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재성’이다. 아무리 곤고(困苦)하고 난처한 상황이라도 내가 바라는 수준을 지켜내고 오히려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녕 그러한가?!이런 설명을 듣고 난 학생들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고민해본 적도 없는 자명한 명제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나이 먹은 세대의 사유와 인식은 변화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성찰과 회개(悔改)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인식의 성립과 성장은 쉽지 않다. 반면에 20대 청춘의 영혼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이런 까닭에 그들이 더 나이 먹기 전에 최소한의 지적·정신적인 문제 제기가 절실한 것이다.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식의 전파는 여전히 주입식 교육과 집중적인 암기에 편중되어 있다. 학문과 종교의 차이는 ‘도그마’의 유무에 있다. 언제든 더 올바르고 새로운 진리를 향해 열려 있는 분야가 학문 혹은 과학이다. 반면에 특정한 방향으로 완전하게 닫힌 세계로 돌진하는 것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같은 유일신에 기초한 종교다. 오늘날 한국 대학에서 지식과 정보의 전파과정은 나날이 선교와 비슷해져 간다는 혐의가 짙다.유연한 자세로 학문에 임하려면 결론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명제와 지식과 정보에 물음표를 부여해야 한다. 미래로 열려진 지성의 시대를 기원한다.

2023-03-19

“포스코, 지역인재 양성에 적극 참여해달라”

포스코홀딩스가 지난 17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본점소재지를 포항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원안 의결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이번 주총 결의에 따라 포항지역사회와 상생한다는 합의정신과 그룹의 미래발전을 조화롭게 추구한다는 방침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초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했다가 포항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포항시민들은 본점소재지 이전을 환영하면서도 포스코홀딩스와 미래기술연구원 본원의 실질적 기능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번 주주총회 통과는 국가와 지역, 그리고 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기업이 지방에서 필요한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포스코그룹이 지역인재 양성에도 적극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이 시장이 언급한 것처럼, 지난해 포스코 문제로 포항지역사회가 홍역을 치른 핵심이유는 ‘지방=우수인재 부재’라는 ‘사회적 등식(等式)’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등식은 수도권 밑으로 가면 인재를 뽑기 힘들다는 ‘인재 남방한계선’이라는 기막힌 용어도 만들어냈다. 사실 기업투자 네트워크가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 이러한 용어가 생길 만도 한다.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부 대기업이 지방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포스코도 그동안 포항지역 스타트업과 인재양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포스텍(포항공대)과 산학협력을 통해 인공지능분야 전문가를 양성해 왔으며, 지난 2021년 포스텍에 개관한 체인지업그라운드는 현재 큰 성과를 내고 있다.포항시를 비롯해 대부분 비수도권 지자체는 지금 모든 인적·물적자원의 수도권 집중화로 소멸위기를 겪고 있다. 포항은 철강산업 활성화로 한때 인구가 52만명을 넘어선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50만명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다. 인구유출의 중요한 원인은 일자리 때문이다. 포스코 같은 대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지방의 인재를 양성할 경우 청년과 그 가족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2023-03-19

경북, 국가 원자력산업 메카로 도약해야

경북도가 지난주 경주 하이코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경주시, 울진군, 한수원 등 원자력 관련기관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선포식을 개최했다. 정부의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하는 등 원자력 생태계 강화라는 국정과제에 맞춰 경북도의 미래원자력산업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또 경북도가 국내 원전산업을 선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도 함께 표방했다.특히 지난주 정부가 전국 15곳에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지정하면서 경북 경주와 울진에 원전산업 관련 국가산단을 조성키로 발표하면서 경북의 원자력산업은 이제 입지가 더욱 공고히 됐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경북이 새정부의 친원전 정책에 힘입어 국가 원자력산업 중심지로 부상할 조짐이다.원전산업과 관련한 경북도의 치밀한 후속 조치가 잘 뒷받침된다면 경북은 우리나라 원전산업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여건에 놓이게 된 셈이다.경북은 국내 가동 원전의 절반인 12기가 운영되고 있다. 설계부터 건설·운영과 폐기물을 담당하는 모든 기관이 있어 원전의 전주기 운영이 가능 한 곳이다. 국내서 이런 기능을 갖춘 곳은 경북이 유일하다. 더욱이 대형 원전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로 옮겨가는 글로벌 추이에 맞는 인프라 조성도 경북이 가능하다.경주에 조성될 국가산단은 이런 국제적 흐름의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 생태계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현재 건설 중인 한국원자력연구원 문무대왕과학연구소는 소형모듈원자로에 대한 연구와 실증을 담당하게 된다. 연구기능과 산업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지역이 바로 경북인 것이다.게다가 우리나라 수소산업 전진기지로 육성할 울진의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이 조성되면 경북은 원전 가동과 원자력 연구와 산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명실공히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원자력산업의 지역으로 자리를 매김할 수 있다. 원전산업이 세계적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는 시기다. 경북의 원전산업도 시대 변화에 걸맞게 변신해 지역경제에 큰 활력소가 되어야 할 중대시기다.

2023-03-19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미래를 위해

박남서 영주시장 지난 2월 27일 환경부에서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사업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40년 동안 답보상태를 이어오던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허용은 2009년부터 소백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해왔던 영주시에도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러운 잔치 자리에 왕림한 기분”같다며 퇴계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소백산은 1987년 우리나라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특히 능선이 아름다워 철마다 수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지만 직접 등산이 어려운 사람들은 소백산의 절경을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이 때문에 영주시에서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추진해왔지만, 환경문제와 경제적 타당성 등의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소백산의 훼손에 대한 우려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케이블카 설치가 어쩌면 더 이상의 훼손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수많은 발길이 닿으면서 망가지고 상처 난 탐방로의 지켜야 할 곳과 개방해야 할 곳을 철저하게 구분해 식생의 회복이 필요한 곳을 쉬게 하는 등 환경도 지키면서 관광의 편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함께 달성하는 방법을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소백산 케이블카는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정복형의 탐방문화를 조망형으로 바꾸어 국립공원을 보호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추진되고 있다.영주시는 소백산 케이블카 설치를 통해 망가진 탐방로를 복구시켜 환경을 회복하고, 관광 편의를 높여 지역 관광객을 유입하는 두 가지 시너지 효과를 이루고자 한다.눈앞의 작은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보존하기 위한 결정이다.두 번째 이유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케이블카 설치와 같은 문제는 생태환경의 측면과 함께 장애인 등의 접근성의 측면, 관광 활성화의 측면 등 다양한 방향으로 검토돼야 한다.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은 관광의 편의를 높이는 노력을 점차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전국 22개의 육상 국립공원 가운데 케이블카가 설치된 곳은 단 3곳에 불과한 실정이다.보행이 어려운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케이블카는 높은 산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만큼 접근성이 어려운 고령자와 장애인들의 산악 관광을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인프라다.그리고 마지막 이유가 지역 관광산업의 활성화다. 영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비롯해 우리나라 유일의 K-문화테마파크인 선비세상 등 전통 문화유산을 보유한 전통문화의 도시다.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소백산 케이블카는 영주 관광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의 관광산업을 체류형으로 변모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실제로 목포의 경우 해상케이블카 설치 전 연간 380만명 수준이었던 관광객이 케이블카 설치 이후 700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이에 지자체에서는 케이블카와 연계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앞으로 관광객 2천만명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영주 지역 관광에도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영주시는 올해 소백산 케이블카 추진 위원회 구성을 추진해 공청회와 토론회, 주민설명회 등 의견수렴의 절차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연환경영향평가 용역실시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조선시대 풍수학의 대가 격암 남사고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죽령고개를 넘어오다 소백산을 바라보며 절을 하고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소백산이 그동안 우수한 자연경관으로 환경을 살리고, 사람을 살려 왔다면 이제는 지역을 살리는 산이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202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