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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군위 인각사의 수난

홍석봉정치에디터 ‘삼국유사’는 경북 군위군의 트레이드 마크다.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고려말 승려인 일연(1206∼1289)이 삼국유사를 편찬한 곳으로 이름 높다. 643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에 기린이 뿔을 얹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인각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은 인각사를 중창하고 이곳에서 입적했다.보물로 지정된 인각사보각국사탑 및 비석이 중요문화재다. 2008년 인각사 건물지 유구에서 출토된 금속공예품과 청자 등 18점의 유물도 보물로 지정됐다.삼국유사와 인각사의 가치를 꿰뚫어 본 군위군은 2010년부터 삼국유사의 역사를 관광자원화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1년엔 삼국유사 테마파크가 문 열었다. 2021년엔 기존의 고로면의 명칭을 삼국유사면으로 바꿔 삼국유사의 고장 조성에 한 획을 그었다.군위군은 소중한 기록 문화유산인 삼국유사를 유네스코 기록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인각사에서 삼국유사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를 기원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그런데 이런 군위군의 노력에 재를 뿌리는 일이 발생했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인 인각사 주변에 수자원공사가 무단으로 전봇대를 세웠다가 철거하는 소동을 빚었다. 수자원공사는 인각사 부근 삼국유사로에 전봇대 12개를 세우고 시설물을 설치하려다 군청의 공사중지와 함께 원상복구 명령을 받았다. 인근 군위댐의 수상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인각사 인근에서 문화재청 허가 없이는 어떤 개발 사업도 할 수 없는데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공기업의 행태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23

경제난속 화물연대 총파업… 협상으로 풀어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포항, 구미 등 지역 산업계도 비상이다.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으로 경제적 손실을 경험했던 지역 산업계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나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경제적 손실 발생은 불가피하다.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때는 포항공단 철강업체들이 물량출하 지연으로 수만t의 생산물량을 바깥에 쌓아놓았는가 하면 생산을 축소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특히 태풍 힌남노 피해로 피해복구에 나서고 있는 포항제철소는 이번 파업이 시작되면 설비자재 반입과 폐기물 반출이 어려워져 정상 가동을 위한 복구작업마저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구미 국가산업단지의 일부 업체들도 총파업에 대비해 물류를 미리 확보하는 등의 비상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파업이 장기화하면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경북도와 포항시 등이 비상대책반을 운영하면서 파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서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불법적 운송거부나 운송방해 행위 등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나 대화를 통한 수습이 우선돼야 한다. 화물노조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관련, 노사가 입장차를 좁히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우리 경제는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으로 2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물류대란으로 생기는 피해는 결국 중소기업과 국민의 몫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정부와 노조는 협상 테이블에 빨리 마주 앉아야 한다.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생산, 소비, 투자 등 트리플 감소와 수출 부진 등으로 휘청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경제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마당에 노동계의 파업 강행은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노동계의 잇단 파업이 예고돼 있어 국민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노동계의 대규모 파업은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노사 모두가 패자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2022-11-23

선거 낙마로 힘들때 힘이 돼준 양식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은 인간의 원초적 질문임과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숙연한 물음으로 연말이 다가오는 이맘때 즈음이면 많은 사람이 문득 그런 생각에 빠질지 모르겠다.러시아 출신의 레프 니콜라이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그의 뛰어난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을 통해 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며 작품 속에 그의 생각을 녹여 넣은 세계적인 문학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사상가로서도 평가되고 있다.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사람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이러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삶의 의지를 일깨워 준 책이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오늘날 고전으로 불리는 그의 훌륭한 장편들보다 특별히 1885년 발표된 이 단편소설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묜과 그의 아내 마트료나, 하나님의 벌을 받고 인간 세상에 떨어진 천사 미하일, 부유하고 거만한 모피 신사와 쌍둥이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키우는 마리아를 통해 인간 삶의 본질과 한계, 그리고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에 대해 매우 쉽고 따뜻한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이 소설은 등장인물 미하일에게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마치 19세기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21세기 대한민국의 김하수를 위해 쓴 책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가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집도 농토도 없이 세 들어 살면서 하루하루 구두 수선으로 자신들의 앞가림에 급급하던 세묜과 마트료나 부부가 고단한 일상에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리는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1년 동안이나 끄떡없이 신을 수 있는 가죽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신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죽게 되는 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마리아가 엄마를 잃은 이웃집 쌍둥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으로 기르는 일,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하다 날개를 꺾여 인간 세상으로 보내진 천사 미하일이 마침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세 가지 본질을 알아 가는 과정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이들의 행동이 가슴 깊이 다가온 것은 그 당시 심한 좌절과 고통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고, 없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올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그 힘으로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일찍이 가톨릭에 몸담아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경상북도의회 의원으로 보람을 느끼고 꿈을 키우며 고향 청도의 군수 선거에 나섰다가 근소한 표 차이의 연이은 낙마로 스스로 능력과 한계에 대해 질문하며 힘들어하던 나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한나절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부족한 인간이지만 내면의 사랑을 끌어올려 그 힘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라고 말했다.신이 주신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군수로 당선되면서 ‘청도를 새롭게! 군민을 힘 나게’의 슬로건을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고자 기꺼운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랑하는 고향 청도의 발전과 군민 행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며 “더 큰 사랑으로 군민들과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의 다짐을 한다.

2022-11-23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큰 아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하며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경기장에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경기장에 온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보며 90분의 강습 시간을 기다린다. 수업은 상급·중급·초급으로 구분해서 진행되지만, 초급반의 경우 아이들 실력 차이가 제법 난다. 이제 처음 강습을 받기 시작한 아이와 스케이트를 배운지 두 달이 넘은 아이는 같은 초급반이지만, 도저히 함께 배우기 어려울 정도의 실력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문제는 이런 구조에서 생겨났다.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자주 넘어진다. 하지만 초급반 강사는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넘어지는 아이 한 명을 챙겨줄 수가 없다. 보통의 부모는 넘어진 아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지만, 일부의 부모는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달려온다. 90분의 시간은 귀한 우리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불편해진 나는 경기장 주변을 달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아이의 요청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얼마 전 학과의 학생회장과 이야기하다 학생회비 사용처를 묻는 학부모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학생회비의 사용처는 투명하게 학생들에게 공개하지만, 학생-부모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안 되자 답답해진 부모가 학생회장에게 직접 연락을 한 것이다. 이 정도는 귀여운 상황이다. 학생회 활동의 적절성까지 따지는 부모가 있다니, 이쯤이면 자식 사랑이 남다르다고 생각하며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다.2010년대 중반, 교수에게 아이의 성적 이의신청을 한 엄마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런 부모는 존재한다. 아니 이제 부모는 대학에서 아이가 겪는 크고 작은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중·고등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가 직접 대입을 설계하고 자식이 따라가지 못할 때 생기는 갈등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낙오한 아이들은 상처받고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왜,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게 지켜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성인이 된 자식이 겪는 어려움까지 해결해주려고 하는 걸까?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원인을 분석하기 쉽지 않다. 일단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입시 위주의 대한민국 교육이 만든 결과라는 점이다. ‘공부’하기도 부족한 아이를 위해 공부 이외의 일은 아예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모의 열정(?)을 온전히 부모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적지 않은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과학기술의 시대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요즘 대학이 강조하는 ‘플립러닝’이나 문제해결기반학습(PBL)은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한 수업 방법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스로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 아이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2022-11-23

집회와 문화

오낙률 시인·국악인 산야에 무리를 지어 피는 꽃의 광경을 축제적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일반적 시각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꽃이 모여 피는 모습에서 그 꽃들이 모여서 피는 것에 목적이 있고 인간에게 요구사항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까? 아마도 그 광경은 오늘날의 인간을 상대로 하는 꽃들의 집회 내지는 시위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싶어 더 좋은 자연적 환경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꽃들의 절박한 집회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해마다 철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야단법석을 떨며 꽃 잔치를 즐긴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낮 빛은 꽃보다 더 붉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집회라는 것은 애당초,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고 나약함이 모여 강함을 이루어 내려는 여린 생명들의 소박한 지혜가 아닐까도 싶다.언젠가 서울역 인근에서 벌어진 어느 단체의 집회 현장에서 의도치 않게 충실한 관객이 되어드린 기억이 있다. 무릎이 불편한 탓에 지하철역에 내려서 행사 현장까지 걷는 불편을 덜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그 순간의 선택이 십 분이면 갈 곳을 한 시간 십 분 만에 도착하게 한 황당한 기억이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서울역 주변과 종로 주변에 조그만 공터만 있어도 각기 다른 이름의 단체들이 다투어 집회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택시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한 단체는 집회 참가자가 6만 명이나 된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여러 대의 커다란 방송 차량을 앞세우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교차로마다 수많은 경찰이 동원되어 교통 통제를 하고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느낀 경찰의 모습은 도로에서 볼모로 잡혀있는 시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시위참가자를 위한 경찰처럼 느껴졌었다. 종로 일대가 교통지옥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쩌렁쩌렁하게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는 행위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집회가 아니다. 이는 마치 강력범죄 사건을 다루는 영화에서나 봄 직한 인질극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주의 탈을 쓴 조직적 폭력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집회와 시위로 인해 도로 한복판에서 몇 시간을 인질로 잡혀있던 사람들은 감히 그 행사 주최 측에 항의할 엄두도 못 내었을 것은 뻔한 일이고, 오히려 다수의 군중과 개인 간에 느낄 수 있는 공포심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이제 우리나라도 집회와 시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해서 필자는 이참에 국가에서 집회와 시위를 위한 공원이나 대규모 광장 하나쯤 조성하면 어떨까 싶다. 국제 공항을 건설하듯, 변두리 평야 어디쯤 여의도 면적 크기의 부지를 확보하여 그곳으로 국회의사당도 옮기고 대통령 집무실도 옮기고 신문사, 방송국 등 각종 언론매체도 이주시키고, 모든 집회와 시위를 그곳에서만 이뤄지도록 법령도 만들고 해서, 제발 도심 한가운데서 거리 행진을 벌이는 그런 이기적인 집회가 ‘집회문화’라는 탈을 쓰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

2022-11-23

소설(小雪)즈음에

배문경 수필가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단풍을 보려고 창문을 열자 찬바람이 먼저 들어앉는다. 가을인가 했더니 십일월이 벌써 겨울이다. 바람에 내려앉은 낙엽이 차바퀴 바람에 춤을 춘다. 따라나서는 은행잎이며 가로수 잎이 버석하다.김동길은 나이만큼 세월은 가속도가 붙는다고 했던가. 흔하고 흔한 이야기로 모를 사람이 없지만 세월이 내달리는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하루하루가 활시위를 떠난 화살촉처럼 저 끝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그 화살은 계속 날아가지만 불혹을 넘기고서야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착과 안달하던 시간이 조금씩 미풍처럼 부드러워진다. 사람도 사랑도 그리움도 한 발씩만 벗어나면 편안해지는 것을 놓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늘 앵앵거렸다. 그 마음이 엉덩이를 깔고 앉으니 그 만큼 편해진다.친구들과 함께 한겨울 대관령을 갔었다. 언덕을 오르자 때 묻은 양떼들이 마른 짚을 먹으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림에만 보던 양들이었다. 중년의 여자들이 양털이 정말 옷에 사용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얼굴에 와 닿던 찬 기운 때문에 웃음꽃이 피었다.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여고 친구들은 쟁여놓은 이야기보따리로 2박3일이 늘 모자란다. 더 늙기 전에 제주도로 일본이든 중국이든 외국여행을 떠나자며 호들갑을 떨었다.오래전, 한여름 바닷가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밀려오던 파도와 달리고 모래성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고 와서는 배가 고프다했다.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아이들을 건사하고 푸른 바다 앞에서 마시던 한 잔의 커피는 어쩌면 힘들게 낳은 아이들로부터 잠시잠깐의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이제는 현관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조바심 내던 시간들이 안정적이고 등두드릴만큼 커줘서 고맙기까지 하다.나이 들고 나이를 먹고 나이가 차는 일이 늘고 지치고 힘들지 만은 않다. 먹고 사는 일로 바쁜 일상을 살다 문인협회 일을 보조하다보니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행사를 한다. 눈부신 햇살 아래 넉넉한 날, 백일장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노고가 절로 녹는다. 뿌듯하고 감사하다. 넉넉해진 마음자리를 느낄 때가 많다.혼자 토함산 등산을 하고 내려왔다. 주말이라 제법 사람들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강장이 붐볐다. 버스를 기다리는 또래의 여자에게 다가가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대구에서 왔단다. 남산 산행 후 토함산을 다시 오르고 내려온 상황이었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과 또래라는 것에 버스손잡이를 붙잡고 흔들리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 나를 털어놓고 타인의 삶에 공감할 나이란 얼마나 편안한가.소설가 박경리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고 노년의 박완서 또한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데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라고 했다.수레가 달려봐야 얼마나 달릴 수 있었을까. 기차가 생기고 나서 인상파 화가가 생겼다는 일설이 있다. 기차가 속도를 내며 달리자 들판의 나무며 꽃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속도감은 낱낱이 상세히 보이던 정밀을 놓치는 대신 커다란 시각적 변화를 가져왔다. 흐리게 그러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야와 마음의 부피도 커진 만큼 풍요롭고 편안해질 수 있다. 시야가 넉넉해지는 것이 화풍(畵風)의 변화만은 아닐 것이다. 바삐 내달리는 인생 후반전이 더 많은 것으로 마음을 채우는 일이 된다. 살아온 만큼 쌓아둔 곳간의 곡식처럼 이제 마음의 양식으로 넉넉해지면 좋겠다.따뜻한 겨울 준비로 소설(小雪)에 김장을 챙긴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고 물을 빼고 양념에 버무려 통에 담으며 늘 해 오던 일이 주는 감사를 손으로 느낀다. 익어 식탁에 오르는 김치처럼 일상이 잘 버무려져 풍미를 더해갈 일이다. 익어감에 감사하며.

2022-11-23

을유(乙酉)

육십갑자 중 스물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유(乙酉)다. 천간(天干)은 을목(乙木)이고, 지지(地支)는 유금(酉金)이다. 을목과 유금은 음 기운이다. 을목은 연약한 나무나 담쟁이넝쿨, 꽃 등으로 여성적이다. 유금은 금(金)의 결정체로서 단단함을 가진다. 동물로는 닭이다.을유일주(乙酉日柱)는 겉모습이 화초다. 여린 나무라 부드럽지만, 속은 유금의 속성으로 날카로운 칼의 형상이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한 외유내강한 사람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과는 타협을 싫어한다. 어떤 위기에서도 풍파를 이기고 나온 화초같이 노련한 지혜와 고집이 있다.을유일주는 단단한 바위 사이에 핀 화초, 담장을 타고 자라는 능소화로 비유된다. 남을 의식하여 좋게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출세 지향적이며, 우아하고 단아하다.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흔들린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성실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중국 당나라 때 백거이문집 ‘유목편’에 나오는 시다.“꽃나무 능소화는 곱기도 하여도 고상하다고는 못하네/ 옆에선 나무를 타고, 넝쿨 넝쿨 백 자나 뻗어 나가며 발부리 돋아 내어 나무줄기에 붙이고, 나뭇가지 끝마다 꽃을 피우네/ 스스로 꿋꿋함을 뽐내며 태풍인들 나를 흔들까 으스대지만/ 어느 날 아침 의지하던 나무가 쓰러지고 나니/ 홀로 서있는 것이 어느새 깃발처럼 나부끼네/ 문득 동풍이 불어 닥치니 아침밥 먹기도 전에 부러지누나/ 해 뜰 때 구름 같던 꽃들이 해도 지기 전에 쓰러져 땔나무로 되는구나.”스스로 일어서려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맥없이 쓰러지는 저 꽃나무를 배우지 말아야 한다. 남의 세력을 등에 업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행운과 불행이 결정된다.환경이 뿌리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날카롭고 끈질긴 성격으로 공과 사는 분명하다.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은 높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라도 겨울에 꽃피는 인동초 같은 끈질김도 있다.을유일주는 지지 유금(酉金)이 도화(桃花)를 뜻하는 글자이기에 감각적인 면이 뛰어나서 연예계나 예술계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동물로는 닭이다. 닭 벼슬처럼 남녀 모두 고고한 이미지나 유려한 모습이 있는 분들이 많다. 남자는 부드럽고 지적인 얼굴에 날카롭고 차가워 보인다. 여자는 화분에 심은 꽃처럼 아름답고 치장을 잘한다. 특히 평균 이상의 미인이 많다.을유일주는 지지 유금(酉金)안에 경금(庚金)과 신금(辛金)이 차가운 칼을 가지고 있는 형상이기에 냉정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정도로 차가운 사람으로 변한다. 특히 원수가 되면 언젠가는 복수를 하고 마는 기질이 있다. 가급적 원한을 살 일이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자의 경우는 질곡의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프랑스 작가 에밀졸라(1840~1902년)의 소설 ‘목로주점’은 성실하고 착했던 여성 제르베즈의 삶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숙명적으로 철저하게 파멸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절름발이이지만 착하고 예쁜 제르베즈는 가족과 함께 파리에 정착한다. 그러나 씀씀이가 헤프고 바람둥이인 남편 랑치에는 제르베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도망쳐 버린다. 그녀는 불행을 딛고 세탁소의 점원이 되어 열심히 살면서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다.이때 기와장이 쿠포의 거듭된 청혼에 그녀는 재혼을 하게 되고, 일시적이나마 안정과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쿠포가 작업 중 추락사고를 겪으면서 다시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사고 이후 불쑥 나타난 전남편 랑치에가 한집에서 기숙하게 되고, 그녀의 몰락은 가속된다. 제르베즈는 세탁소를 처분하고 남의 집 세탁부로 나선다. 이 와중에 딸 나나도 가출과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쿠포도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한 삶을 마감한다. 제르베즈도 역시 알코올 중독과 정신이상으로 죽고 만다.19세기 자연주의는 인간의 삶이란 개인의 노력과 구상과 결심에 의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상황과 유전적 소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우리나라에서는 계용묵(1904∼1961)의 소설 ‘백치 아다다’가 좋은 예다. 아다다는 백치, 벙어리에다가 소박데기다. 노총각 수롱이는 사고무친에다 가난뱅이였다. 볼품없는 외모, 제 깜냥 갖고는 평생 장가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죽을 판에 아다다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녀가 비록 불구였지만 부지런하고 순진해서 수족처럼 움직여주니 더 바랄 데 없다. 거기에다 명색이 김초시의 딸 아닌가. 류대창 명리연구자 둘은 신미도라는 섬 마을로 도망쳐 살림을 차린다. 수롱이가 아다다에게 뭉칫돈을 꺼내면서 밭을 사서 둘이 열심히 농사지으면 큰돈을 벌 것이라고 신이 났다. 하지만 아다다는 깊은 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첫 남편과의 짧은 결혼생활이 생각난 것이다. 싸들고 간 지참금 덕에 한 밑천 잡게 되자. 번듯한 여자를 들여놓고서는 아다다를 소박을 놓아버렸다.수롱이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에 뭉칫돈을 꺼내어 바다로 가서 흩뿌려 버린다. 그러자 수롱이는 아다다를 개 패듯이 팬 다음 바다에 던져버린다. 결국 돈 없이 가난해도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아다다의 희망은 파도에 묻혀 버렸다.유전과 환경이 삶의 고비와 곡절을 온통 지배한다는 생각은 그 시대의 편견인 듯 여겨진다. 사람은 물건처럼 단순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신체결함을 지닌 채 살아가는 하층민의 삶에도 충실함과 소박함, 수고로움이 녹아있다. 경제개발 과정을 통해 성취한 부와 안락한 생활을 위해 숱한 아다다를 바다에 던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인간의 존엄성을 되새기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 본다.

2022-11-23

마음의 상처

조현태수필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폐품을 모아 힘겹게 생활하는 중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그 남자에게 남은 가족이 있다면 칠 년여를 함께 살아온 ‘똘이’라는 개 한 마리. 그 개에게도 남자가 유일한 가족이지만 갑자기 사라졌다. 왜냐면 어느 날 그 집에 화재가 발생해 집이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크게 화상을 입어 119구급차로 이송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똘이 역시 화상으로 다리를 절룩거렸지만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직 주인 남자가 없다는 것만이 관심이었다. 전소된 집터에 널브러진 남자의 바지 하나와 평소에 똘이가 누웠던 자리만 보면 애타게 주인을 찾는 소리를 질렀다. 바지에서 맡아지는 익숙한 주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길게 우짖는 소리. 집 앞을 지나다니는 차량을 유심히 살피는 눈길. 갑자기 혼자만 남겨두고 왜 주인도 사라지고 집도 없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똘이의 표정은 불안하고 어둡기만 했다.한편 남자는 매우 아픈 화상치료에 정신이 팔려 똘이를 깜빡 잊고 있었다. 알고 보니 똘이도 화상을 입은 채 절룩거리면서도 자기를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었다.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데 똘이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자신을 탓하며 울먹인다. 그렇다고 개를 병원으로 데려올 수도 없으며 만나러 나가는 외출도 허용되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웃이 나섰다. 개를 붙잡아 치료도 하고 먹이도 제공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불안한 눈만 굴리고 있었다. 갑자기 당한 생이별이 얼마나 큰 간극을 벌려놨는지 훤히 보이는 장면이었다. 동물병원 수의사가 말했다. 육체에 생긴 상처로 아프고 쓰라린 고통은 별거 아니지만 생이별하게 된 마음의 상처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고통을 남긴다고 했다. 둘 사이에 생이별을 해결해 줄 방법은 다시 만나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선 주인의 영상을 보여주고 ‘어서 와, 밥 먹어’라는 녹음된 음성도 듣게 했다. 익숙한 목소리에 관심을 갖는 듯 하다가 주인의 모자와 지갑을 먹이 곁에 놓아주고서야 똘이가 경계를 풀고 먹이를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특별히 배려하여 똘이를 병원 뒷마당까지 데려와도 된다고 허용했다. 이제는 영상이 아니라 직접 만나는 기쁨까지 누리게 해 주었다. 미리 뒷마당에 나와 똘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인의 감정과 멋모르고 실려와 ‘똘이야’부르는 정겨운 소리를 얼른 알아차리고 뛰어가서 안기고 핥아주는 감정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단 둘만 남은 가족인데 재활치료가 끝나면 다시 한 집에서 더욱 사랑하며 살 것만 같았다.이러한 형편을 알게 된 이웃들이 힘을 합하여 불타버린 집도 새로 마련하고 세간과 똘이 집까지 마련하여 주었다. 텔레비전에서 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콧날이 찡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이 처처에 있다. 그나마 상처 준 잘못을 깨달으면 똘이처럼 치유가 되겠지만 상처를 주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아! 똘이보다 못한…. 필자는 희망을 갖는다. 우리에게는 선하고 아름다운 이웃이 있다는 것을.

2022-11-22

모기보다도 간담 서늘한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 나는 코 골며 잠잘 수 있고 /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 있어도 /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 모기 한 마리 왱 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려 있는 한시 ‘증문’(憎蚊, 얄미운 모기)의 첫 8행이다. 조선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73세라는 나이로 장수를 하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 유학의 한 학풍인 실학을 기반으로 하여 천문, 지리에서부터 수학, 의학, 동물학에까지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사회, 경제, 사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친 500여 권이라는 엄청난 저서를 남긴 정약용은 2012년의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물론 이 시에서의 모기는 호랑이나 뱀과 같은 거대 권력 권력이 아닌 말단 관리의 횡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위대한 학자인 정약용에게도 모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존재였음은 분명하다.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3년째 겨울을 맞고 있다. 11월 22일 현재 전 세계의 확진자 수는 6억4천160여만 명에 사망자는 662만 명에 이르고, 한국 역시 인구 절반 가까운 2천658만여 명의 확진자에 사망자는 3만 명이 넘었다. 하도 코로나가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마치 코로나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전염병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해친 전염병은 말라리아이다. 그리고 이 말라리아 전염병을 인간에게 퍼뜨린 것이 바로 모기이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에서는 호박에 갇혀 화석이 된 모기가 빨아 먹은 공룡의 피에서 DNA를 복제하여 공룡을 부활시킨다. 이처럼 모기는 인류보다 훨씬 전에 지구상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 생명의 연원이 오랜 만큼 모기는 지속적으로 인간을 괴롭혀 왔고 엄청난 해를 끼쳤다. 2019년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티모시 C. 와인가드가 쓴 ‘모기 :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라는 책에 따르면, 모기가 유발한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연간 10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고,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약 20만 년 동안 존재했던 1천80억 명의 사람 중에서 약 520억 명의 목숨을 모기가 앗아갔다고 한다.이쯤 되면 코로나는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는 아직도 매일 1만 명에서 5만 명대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숫자의 많고 적음에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나는 한국에서 돌고 있는 색깔 덧씌우기라는 전염병이 코로나보다도 모기를 매개로 한 전염병보다도 더 우려스럽다. 단순히 색깔 덧씌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색깔이 다르다고 생각되면 서로를 비난하고 그러다가 급기야는 상대를 향한 눈과 귀를 막고 문을 닫아 버리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모습이 모기보다도 모질고 간담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2022-11-22

포스텍의대 설립, 공감대 확산되고 있어 다행

의사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포스텍(포항공대) 의과대학 설립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저께(21일) 포스텍을 방문, 이강덕 포항시장, 김병욱 국회의원, 김무환 포스텍 총장 등과 간담회를 가지고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바이오헬스 시장이 확대되고 관련 기술개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이를 선도할 의사과학자의 양성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고 밝혔다. 조 장관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대구(대구첨복단지)와 포항을 택해 의사과학자 양성의 긴급성을 언급한 것은, 포스텍 의대설립의 서광(瑞光)으로 여겨진다.간담회에서는 나날이 확장되고 있는 바이오 헬스산업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의사과학자 양성에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이 집중 논의됐으며, 조 장관은 정부차원의 지원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자리에서도 김병욱 의원이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질의하자 조 장관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학부-전공의-박사-박사후과정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의대정원 자체를 확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고 답했었다.우리나라는 매년 3천명 이상의 의대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지만, 의사과학자는 고작 0.3~0.7%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의대 졸업생 4만5천여명 중 3.7%에 해당하는 1천700여명이 의사과학자로 양성되며, 1960년대부터 이미 의사과학자 양성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기업이 빠르게 생산해낸 코로나 백신은 이러한 인재양성 덕분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 글로벌 제약사 최고과학자 책임자 중 70%가 의사과학자 출신이라는 통계도 있다. 포스텍은 오는 2026년을 목표로 현재 경북도와 포항시, 정치권의 지원을 받아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조 장관도 언급했지만, 정부가 의사과학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면 이미 공학과 기초과학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포스텍에 일정대로 의과대학이 개설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2022-11-22

대구교통사고 역대 최저, 교통안전 도시 되길

지난해 대구지역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977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8년 이후 5년 연속 0명을 유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대구가 교통사고 다발도시에서 교통사고 모범도시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이어서 반갑다. 교통사고 예방은 차량 운전자의 교통의식도 중요하지만 보행자의 교통법규 준수 의식도 매우 중요하다.따라서 대구시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줄고 있는 것은 대구시민의 안전의식이 크게 높아진 것이며, 선진국형 교통문화가 정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대구시에 의하면 지난해 대구지역 교통사고 사망자는 79명으로 2016년 158명의 절반 수준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1대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2번째로 낮았고, 8개 특별·광역시 중에는 가장 낮았다. 또 전년 대비 사망자 감소율은 전국 1위로 집계됐다.올해도 10월 현재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56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가 줄어 역대 최소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도 높다고 하니 대구의 교통안전문화 정착이 기대된다. 대구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감소한 것은 2016년부터 교통사고 특별대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교통위험 시설 개선과 교통문화 선진화 캠페인 등 대구시와 경찰 등 각 기관의 다각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어린이 교통사고 5년 연속 0명 부분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교통안전 문제만큼 신경 쓰이는 것도 드물다. 자녀들이 안전하게 학교 등을 다녀올 수 있는 교통체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부모들도 안심하고 본업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이다.선진국일수록 어린이와 노약자 등 교통약자에 대한 교통안전 배려가 우선이다. 대구가 교통안전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통시설의 개선과 더불어 안전의식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활동이 있어야 한다. 대구시민 모두가 몸에 밴 교통안전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통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대구시는 이번 결과에 만족지 말고 더 분발해 대구가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우뚝 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2-11-22

“대~한민국” 함성이여

우정구 논설위원 붉은 악마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서포터즈의 이름이다. 1997년 PC통신의 한 축구동호회가 국가대표팀을 공식적으로 응원할 서포터즈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으면서 탄생했다.붉은 악마의 응원전은 이듬해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 예선부터 시작됐고, 그해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인 한·일전 때는 길거리 응원전으로 확대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와서는 길거리 응원이 절정에 이르러 대회기간 동안 동원된 연 인원이 무려 2천400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붉은 악마란 이름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을 당시 외국 언론들이 대표팀을 ‘붉은 악령’으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 붉은 색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부터 선수들이 상의를 붉은 색으로 입어와 대표팀 상징 색으로 어색함이 없다. 붉은 악마는 치우천왕기를 응원기로 쓰는데, 치우천왕은 환인의 후손으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전설의 군신(軍神)으로 알려진 인물이다.일본도 국가대표 공식 서포터즈로 ‘울트라닛폰’이 있고, 중국은 ‘볼에 미친 사람’이란 뜻의 ‘치우미(球迷)’란 이름의 서포터즈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붉은 악마처럼 외국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는 활약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되면서 붉은 악마의 서울 광화문 거리 응원전을 두고 갑론을박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국민을 하나로 만든 응원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이태원 참사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거리응원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맞서 있다.결정이 어떻게 나든 “대~한민국”의 함성은 또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11-22

“대구가 삼성 비메모리 사업의 최적지”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주말 열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추도행사가 주목을 받으면서 삼성과 대구와의 운명적인 인연을 떠올리게 된다.이 회장이 대구를 첫 사업 장소로 선택한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다. 1938년, 28세였던 그는 중국과 만주를 떠돌며 중계무역을 경험한 후, 서문시장(큰장) 맞은편에 전문 경영인 두 명과 함께 지금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별표국수’라는 브랜드를 가진 삼성상회는 창업초기부터 국수를 생산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6·25전쟁 중에는 별표국수가 피난민들의 주식(主食)이 되다시피 했다. 전쟁 중 삼성상회 앞에는 매일 피난민과 대구시민들이 몰려와 장사진을 쳤다고 전해진다. 그는 삼성상회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부산에 삼성물산을 재건했다.이 회장은 1954년에는 대구에 제일모직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대구는 당시에도 섬유산업이 발전한데다, 서문시장에는 전국적인 섬유류 도매상이 몰려 있었다. 여기에다 대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신천이 공업용수를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공장입지로는 최적지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천인근에 있는 침산동 논밭 7만여 평을 공장부지로 확보했다.제일모직 건설 당시 이 회장은 가건물에 사장집무실과 숙소를 만들고, 공사현장을 직접 지휘했다. 그는 특히 제일모직 사원들의 기숙사를 지을 때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에 읽은 ‘여공애사(女工哀史)’라는 소설에 영향을 받아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1956년 5월 2일 제일모직이 ‘골덴텍스’ 생산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 회장은 자주 대구에 내려와 제일모직 숙소에서 기거했다. 대구시는 중구 ‘삼성상회’ 터와 제일모직이 있던 자리인 북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까지 4㎞ 구간을 ‘경제 신화 도보길’로 조성해, 이 회장의 발자취를 기념하고 있다.삼성그룹을 승계한 이재용 회장이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분야 투자적지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전 세계 비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은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1위와의 격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초격차(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없는 기술 격차)’를 달성하려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천명을 채용한다는 계획도 발표해 놓은 상태다.삼성그룹이 잘 파악하고 있겠지만, 대구에 있는 경북대와 디지스트(DGIST)의 비메모리분야 RD 인프라는 국내 어떤 대학보다 경쟁력이 있다. 대구·경북지역 대학에서 한 해 배출되는 반도체 전문인력도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대구에는 K-2군공항이 이전하면 정주여건이 최고 수준인 후적지가 생겨난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취임 직후부터 비메모리 반도체 대기업 유치를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이재용 회장이 최첨단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갖춘 투자처를 찾는다면, 삼성상회와 제일모직 설립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선택한 것처럼 대구가 최적지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2022-11-22

상대평가라는 허상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날이 추워졌고,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한 학기가 끝나간다는 신호다. 학기 내내 얼른 종강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루라도 좀 맘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종강이 가까워지자 괜시리 마음이 바빠진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평가할 방법들을 점검한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내가 맡은 수업은 말하기 수업과 글쓰기 수업인데, 객관적인 평가가 다소 어려운 과목이다 보니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게 좋은 방법인지 항상 궁금해진다. 사실 말하기와 글쓰기는 개인의 노력 여하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 결과물을 중심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 옳은지 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글쓰기를 성취도로 평가를 하자니, 객관적인 결과물이 눈앞에 놓여있어 그 또한 석연찮기는 마찬가지이다.그래서 일종의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상호평가였다. 평가 점수의 절반은 내가 책정하고, 나머지 절반은 같은 반의 학생들이 책정하도록 했다. 단순히 점수만이 아니라 피드백 또한 해줄 것을 부탁했다. 생각보다 학생들이 성실하게 평가를 해주었던 덕분에, 1학기 때에는 성적 평가를 하기 꽤 수월했던 것 같다. 또, 해당 성적에 대해서 이의가 들어온 경우에도 이를 해명하고 설득하기에 꽤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자신 또한 평가의 주체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하지만 이렇게 학생들을 각각의 점수에 따라 줄을 세우더라도 여전히 의구심이 남곤 한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잘 가르친 걸까? 아이들은 내가 가르친 걸 잘 흡수한 걸까? 막상 이런 방식으로 평가를 하다보면 매 수업 성실하게 임했던 학생들이 항상 좋은 결과를 받는 것은 아니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수업을 성실하게 들은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재능이든 뭐든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 늘 헷갈리곤 한다. 어쨌든 둘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성적을 내곤 하지만, 그렇다고 의구심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사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상대평가 방식을 썩 신뢰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성취도가 아닌 상대적인 결과를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보니 그다지 성취도가 높지 않더라도 한 반 안에서 상대적으로 잘하기만 한다면 A+를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운이 안 좋게 학업 집중력이 높은 학생들이 많은 학과에서는 비슷한 성취도를 보이더라도 같은 성적을 받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 예컨대, 수업 반마다 성적을 책정하다보니, 한 반 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그걸 학교 전체의 규모로 놓고 보게 되면, 어쩔 수 없는 결과적인 불평등이 생기곤 한다.그리고 또 한 가지, 반 전체의 분위기가 다 같이 열심히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면 정말 걷잡을 수 없어진다. 어차피 성적은 상대적으로 결정 나는 것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만 열심히 하면 될 뿐, 교강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학 내 상대평가 비중의 강화가 경쟁력 강화를 위함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이건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폐해가 아닐까 싶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교의 목적이 지식의 습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이처럼 지식의 습득 여부가 아닌 상대적인 결과에 따라 성적을 매기는 건 어쩐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사를 비롯한 여러 과정에 있어 대학에서의 성적이 공신력과 변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상대평가의 비중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지식의 습득에 도움이 되는 결정인지에 대해서는 왠지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인문학 교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거기에 골몰하는 것보다는 수업 시간을 통해 이후에는 해볼 수 없는 고민을 해봤으면 싶다. 사실 입사를 비롯한 이후의 과정들에 대학에서의 성적이 그렇게 큰 변별력을 갖지도 못하는데, 왜 학생들이 오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에만 골몰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대학교육의 실패란, 단지 사람들이 상식이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사람들을 점점 더 아무런 사유도 질문도 하지 않도록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하지만 어쨌든, 이번 학기에도 나는 학생들을 평가하고 제도와 규칙에 따라 성적을 배분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고민들을 학생들에 대한 평가에 녹여낼 수 있을지, 과연 이런 고민이 언젠가 끝나기는 할지. 어쨌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좋은 평가방법을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겠다.

2022-11-22

나의 결핍이 자랑이 될 때

낙엽이 진 자리는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언스플래쉬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생각은 오후의 그림자처럼 자꾸만 길어진다. 그간 내가 이뤄온 성취와 다짐, 소망, 꿈꾸는 미래의 방향성이나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나의 단점까지 떠오른다. 스스로가 대견하다가도 한없이 작고 연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콧잔등 위로 눅진한 빛이 내려앉으면 불현듯 하나의 깨달음이 밀려온다. 아, 가을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감상적이구나.그런 날들이다. 달력을 한 장 넘기면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몇 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해가 밝아있을 것이다. 올해의 나는 어땠던가. 이번 해는 제대로 살아냈는가. 뭔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았지만 매일같이 실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고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발걸음이 중심이 아닌 언저리를 돌고 있다는 감각.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 끈덕지게 붙어있는 우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요즘에는 잠이 부쩍 많아졌다. 온종일 잠자는 것도 가능하겠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가끔은 잠자는 행위가 최후의 도피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날, 절망이나 고통과 같은 불행의 감정들이 내 안으로 썰물처럼 밀려드는 순간이 오면 나는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향함을 상상한다. 거기에서 나는 단 하나의 부족함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된다. 통장에 돈이 넘치도록 가득하고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근심이라곤 없는 하루를 보내는, 비극적 사건은 절대 찾아오지 않으며 주변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기쁘게 내어주는 그런 사람.그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정말 있는 줄만 알았다. 그들이 세상의 다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낙관적인 세계에서 산다고 여겼으며 웃는 얼굴의 사람들 사이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헤집고 다녔다. 그러면 어떤 상실감이 찾아왔다. 인생을 운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하나의 조각, 그것을 이미 획득한 자들에게 질투를 느꼈으며 그 열등감이야말로 내 삶을 추동하는 원동력이었다.동시에 그런 내 마음이 들킬까 봐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나를 두고 결핍이 많은 아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영 들키고 싶지 않던 비밀을 폭로 당한 사람처럼 마음이 홧홧해졌다. 그렇지만 친구 앞에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씩씩하게 웃었다. 내 안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어떤 부정성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슬픔, 모자람, 추하고 가끔은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내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었다.손에 쥔 것에 별로 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우울을 본다. 그것이 없다면 나는 메마르고 텅 빈 몸이 되는 것이다. 늦가을의 책상 앞에 앉아 삶에 대해 몇 시간이고 고민하는 날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내려는 시도도 없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세상을 불신하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질투하고 연민하는 일. 세상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고 평온한 일상에 목말라하는 일. 이것은 모두 살아서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감정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제 나는 나의 결핍을 자랑으로 여긴다. 내 안에 비루하고 나약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주지 않지만 인간으로 남게끔 해준다. 쓸모없고 형편없는 것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나의 영원한 한계이면서 동시에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것을 안다.나는 나의 결핍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혼자만 아는 어떤 표식을 남겨놓는 행위를 하는 일은 모두 나의 결핍 덕분이다. 나는 나의 결핍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떤 방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사귀 하나가 떨어진다. 버석버석한 낙엽이 차곡차곡 쌓인 거리를 바라본다. 이제 곧 긴긴 겨울이 온다. 늘 같은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나무는 다가올 추위를 견디고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황망하리만치 텅 빈 자리는 더욱 빼곡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 순환과 믿음을 떠올리는 가을이다.

2022-11-22

세월따라 추억 쌓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간혹 예전에 노닐던 등성이나 벌판을 거닐어 보노라면 문득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먼 지난날이 손짓하며 부르는 세월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옴을 느끼곤 한다.또래들의 시끌벅적한 재잘거림, 철딱서니 없는 아우성, 흥얼거리듯 외치는 환호 등 지금은 분간하기조차 힘든 유년의 함성이 눈길 따라 발길 따라 아련히 묻어나는데, 그토록 뻔질나게 부대끼며 목놓아 질러대던 그 시절의 주인공들은 지금은 다들 어디서 어떤 음조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짐짓 궁금하기만 하다. 뒷산에 올라 키재기하던 참나무는 내 키의 두배가 훨씬 넘는 거목으로 우뚝 섰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달음박질해야 겨우 다다를 수 있었던 앞산도 이제는 바로 지척에서 기웃거리는 듯하니, 무던한 시간의 물레에 버물려 자연과 나는 그렇게 변하고 성장했었나 보다.무릇 세월에는 소리와 향기가 있기 마련이다. 켜켜이 쌓인 책장 같은 나날에는 그날 그때의 장면이 고스란히 쟁여지고 사연이 응축되어 곰삭다가, 한 세월이 흐른 뒤에는 잘 익은 묵은지 마냥 새큼하고 걸쭉한 추억의 향기와 아스라한 울림으로 퍼지게 된다. 좋거나 좋지 않았던 기억의 편린들이 차곡차곡 뇌리에 쌓였다가 한동안의 숙성기간(?)을 거친 다음, 어느 순간 애증의 안개처럼 어련무던히 피어나는 것이다. 숱한 사연이나 애환의 잔상들은 세월의 저편에서 잠자듯 묻혀 있다가, 현실과의 교효작용으로 때때로 불현듯 스치거나 소환되고 꿈결처럼 여울지기도 하는 것이다.“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추억이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여러 곳을 떠돌며/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잠시 숨어들지도 모른다//처음으로 간 곳인데/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유모토 카즈미 ‘여름이 준 선물’ 중에서어려서는 꿈을 먹고 자란다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들 한다. 그만큼 좋은 경치를 보고 맛난 것을 먹으며 여행을 즐기고 누리는 경험과 기억이 많을수록, 대부분 자신의 삶이 풍부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승지를 관광하고 문화유적을 탐방하면서 느끼는 감탄과 만족감은 자신에게 희열감과 아울러, 선물 같은 추억을 덤으로 안겨주기에 사람들은 여행지를 더욱 즐겨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추억은 값지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모처럼 고향 친구들과 안동 일원에서 서원을 답사하고 탈춤공연을 함께 보는 문화체험과 고택을 감상하는 등의 나들이는 늦가을의 햇살만큼이나 정갈하고 따스했다고나 할까? 마음이 이끌리고 몸이 움직이는대로 더불어 어울리며 함께 한 시간들은 단순한 ‘추억 쌓기’ 그 이상의 의미를 더해줬다. 회심(會心)의 어울림과 즐거운 추억은 중년의 삶을 더욱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줄 것이다.

2022-11-21

설비의 구성과 양품 생산의 원리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잘 산다고 하는 말의 뜻은 먹고 싸고 자는 것에 특별한 문제나 걱정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영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이를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낮은 단계라 하며 ‘생리적 욕구’라 했다. 기본 욕구가 해결되어야 그 다음에 안전, 애정, 존중, 자아실현으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풍부해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면 당연히 맛있는 것을 찾게 되고 발달된 기술과 모바일 기기를 총 동원해 알리고 찾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맛있는 먹을 거리를 통해 자아실현 단계까지 연결 될 지도 모른다.맛은 회사제품으로 치면 품질에 해당된다. 그래서 제조업의 본질도 ‘좋은 제품(Quality)을 남보다 싸게(Cost) 만들어 고객이 필요한 시점에 제공(Delivery)’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그 첫째에 좋은 제품이 있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생산을 위해서는 설비와 사람이라는 공통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설비의 구성과 품질이 만들어 지는 원리를 잘 이해하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설비를 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다.사람 몸의 구성을 보면 방어 지시 및 운동은 골격 근육 외피 계로 이루어지고 조정과 통제는 신경계와 내분비계, 순환은 심혈관과 림프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양과 수분의 균형은 호흡기 소화기 비뇨기계로 구성되어 각 계통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유기적으로 잘 움직여야 몸의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설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전기제어, 윤활, 유압, 공압의 6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6개의 계통이 서로 사람의 인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잘 움직여야 불량이 없이 좋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라면을 먹기 위해서는 냄비에 적정량의 물을 넣고 렌지로 열을 가해 물을 끓인 다음 재료인 라면과 스프를 넣고 일정시간 이상의 가공 과정을 거처야 한다.이를 생산현장에 빗대어 표현하면 끓는 물과 라면이 만나는 부분을 ‘가공점’이라고 하며 이 가공점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재료를 잡아주는 도구인 지그(냄비)와 재료를 가공하는 도구인 툴(렌지)이 정확한 위치를 잡고 연속성을 유지하여야 하며 가공 재계(물, 스프, 가스·전기)의 조건이 맞아야 맛있는 라면이 된다.이렇듯 생산제품 또한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가공을 하기 위해서는 설비를 구성하는 본체체결, 구동전달운동, 전기제어, 윤활, 유압, 공압 6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재료의 가공점 위치를 올바르게 잡고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또한 각종 물 가스 등과 같은 가공재계에 대한 조건이 잘 관리되어야 좋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 설비별 계통의 구성과 가공재계의 종류와 조건은 생산되는 제품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가공 원리와 설비의 구성 계통을 알고 개선활동을 지속한다면 사람의 역량 향상과 회사의 경쟁력은 지속 향상될 것이다.

2022-11-21

중세미술 : 그림은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려진 성서

서양의 중세하면 ‘암흑’이라는 수식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만약 중세가 ‘암흑’이라면 인류의 역사에서 암흑이 아니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여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중세에도 명암은 있었고, 혼란과 혼동의 시기가 있었으며, 학문적 번영과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시기도 있었다.천년 동안 지속된 중세에 암흑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은 누구인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사람들이다. 역사학자 하위징아가 ‘가을’이라 일컬은 중세의 끝단 14세기와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다. 르네상스는 중세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지만 그것이 갈망했던 것은 고대였다. 고대의 부활을 꿈꾼 르네상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앞선 중세를 어둠의 시대로 못 박았다. 중세 후기 300년 이상 유행했던 미술양식을 야만적인 고트족의 미술 ‘고딕’이라 낮추어 부른것도 르네상스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작 고딕은 고트족의 양식이 아니었을 뿐더러 결코 야만적이지 않다.서양의 역사에서 중세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경 시작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통합한 로마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가 서거한 395년 동과 서로 분열됐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로마제국의 동쪽 비잔틴제국은 동서로마제국 분열 이후 천년 이상 존재했지만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의 침략을 견디지 못하고 몰락한다. 서로마제국을 정복한 게르만의 부족들은 여러 나라를 세웠고 그 중 가장 번성한 것이 프랑크왕국이다. 동서로마제국의 분열은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국이 나누어진 이후 서양미술사 서술은 비잔틴이 아니라 지금의 서유럽에 속하는 옛 서로마제국의 땅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좇는다.중세미술은 기독교미술이다. 교회가 지어졌고 교회의 실내공간은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교회에 그려진 그림들은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한 종교적 기능과 목적이 있었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던 대다수 신자들에게 성서의 말씀과 성인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그림의 기능이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그림 사용을 둘러싸고 동방과 서방교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는 모세의 계명에 따라 무엇이든 형상을 만들어 모시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기독교의 교리와 종교적 체계가 정립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그림 사용은 더더욱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서방의 로마교회는 그림 사용을 적극 장려했던 반면 비잔틴의 동방교회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로마교회가 그림 사용을 옹호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가톨릭교회는 게르만족 개종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포교를 위해 그림이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자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 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비잔틴 교회의 입장은 달랐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 해당하는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학문이 발달해 이단 사상이 출현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또한 각 도시들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동방교회의 수장이 모든 지역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비잔틴 교회는 이단 사상의 발생과 확산을 막기 위해 그림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다.그림을 둘러싼 동서교회의 대립을 정리한 사람은 대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40∼604년)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며 그림 사용을 옹호했다. “그림을 사용함으로써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책에서 읽지 못하는 것을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읽을 수 있다.” 교황의 주장에 따라 교회는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그림이 허용된 것은 아니다.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림은 가능한 단순하고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림은 엄격하게 본질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 로마제국의 높은 수준의 묘사와 표현이 서서히 쇠락하게 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11-21

연재를 마치며

올 1월부터 본지에 연재된 소설 ‘Grasp reflex’가 지난주 끝을 맺었다. 연재를 시작할 즈음 김 작가는 “두 개체가 조우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우연의 방식이거나 혹은 한 개체가 다른 개체가 있는 곳으로 한 발 내딛는 것. 쓰는 이와 읽는 이의 경우는 어떤가?”라고 물으며, “우연은 차치하자. 자, 여기 문학이 있으니 와서 보시오. 하며 좌판에 앉아있는 것은 아닌가? 쓰기만 하시오, 내가 찾아가겠소. 이런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이 지점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겠다. 일어나야겠다. 걸어야겠다”는 소설가로서의 결심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연재가 마무리되는 시점. 아래는 작가가 보내온 원고 ‘연재를 마치며’다. 문학에 관한 김강 작가 나름의 정의와 앞으로의 출간 계획까지가 담겨 있기에 가감 없이 게재한다. 편집자 주이야기가 내게 와 나의 손을 빌려 문자로 모습을 드러내고 나의 입을 통해 마지막 문장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보았다면 ‘기괴한 표정이다’라 말했을 것입니다.그때 나는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입 꼬리를 바짝 올리면서도 눈은 아래를 향했고 찌푸린 미간 탓에 양쪽 관자놀이의 피부가 당겨졌지요.왼쪽 가슴이 쿵쿵쿵 뛰었는데 그것이 기뻐서인지, 아니면 두려워서인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기다렸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기에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책임감, 같은 것들이 반가움과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글을 쓰는 이는 곧 글을 전하는 이 이어야 합니다.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한다는 전제는 글을 쓰는 일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선한 행위, 존재할 가치가 있는 어떤 일이 되도록 강제합니다. 그것은 쓰는 이, 그의 손을 빌려 나타난 이야기에 의미를 입히고 살아 숨 쉬게 합니다. 진정한 마침표가 됩니다.또한 그 전제로 인해 작가는 자신이 내어 놓은 글이 만나게 될 독자를 염두에 두게 되고 자신이 내어 놓은 글이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글쓰는 이 자신의 관점에서지요. 쓰는 이는 독자를 보아가며, 눈치를 보며 타인의 입맛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바꾸는 부류가 아니니까요.어떤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그 지점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어느 순간 기회가 왔고, 마침표를 찍은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이야기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내게는, 나와 이야기에게는 경북매일신문 연재가 그 기회였습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저에게 주어졌던 이 기회가 다른 글 쓰는 이에게도 마땅히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입니까?”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저에게 문학은 질문입니다. 진실과 당위에 대한 질문입니다.”진실은 기억의 영역이며 당위는 미래의 영역입니다.기억 속에서 찾아낸 진실, 그 진실은 당위의 근거이며 미래를 예정합니다. 기억으로부터 미래가 시작됩니다.이 장편소설은 지금 우리 세계, 다가올 우리 세계에 대한 질문입니다.2022년이 지나고 2023년에 들어설 무렵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비로소 제게는 다음 질문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저는 그것을 이야기로 내어놓는데 열중할 것입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이 장편소설이, 저의 질문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합니다.촌스럽지만 꼭 하고 싶은, 이 자리가 아니면 하기 힘들 것 같은 감사 인사를 위해 지면을 빌립니다.지난 1년여 동안 매주 화요일자 경북매일 신문을 모으고, 저의 연재소설을 가위로 오려 스크랩을 만드신 아버님께, 매주 화요일 ‘아들, 파이팅!’, 문자를 보내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며 관리자인 그녀와 두 아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매주 연재소설을 읽고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신 독자여러분을 잊지 않겠습니다.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시기에 귀한 지면을 소설가에게 내어준 경북매일신문, 편집자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세상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따듯한 새해, 2023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11-21

‘조류독소’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녹조는 물속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이다. 광합성 작용으로 산소와 유기물을 만들어 수중 생태계의 1차 먹이를 제공한다. 수중생태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조류이지만 특히 남조류가 과도하게 성장하면 물의 색깔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고 이를 ‘녹조현상’이라고 한다.‘녹조현상’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된 하·폐수나 쓰레기가 점오염원 또는 비점오염원 형태로 질소나 인과 같은 영양물질을 하천이나 호수 등에 풍부하게 공급한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 된다. ‘녹조현상’이 발생하면 물속의 생태계가 악화되고 하천 경관이 나빠지며, 남조류가 생산하는 ‘조류독소’로 인해 물이용이 어렵게 된다.우리는 남조류가 생성하는 ‘조류독소’로 간독성 유발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많이 듣고 있지만, 그 외에도 똑같이 간독성을 유발하는 ‘실린드로퍼몹신’이라는 물질이, 신경독성을 유발하는 ‘아나톡신’과 ‘BMAA’라는 물질도 존재한다. 이런 ‘조류독소’를 주로 생성하는 남조류는 ‘마이크로시스틴’의 경우 ‘마이크로시스티스’, ‘아나베나’와 같은 종류이고, ‘실린드로퍼몹신’은 ‘신린드로퍼몹시스’, ‘아파니조메논’과 같은 것으로 제각각 이다.이들 ‘조류독소’ 유발 대표적 남조류의 형태는 현미경으로 뚜렷이 관찰된다. ‘조류독소’로 유발된 수질사고 기록 중 가장 큰 사건은 공교롭게도 1993년과 1996년에 같은 나라인 브라질에서 각각 88명과 60명이 사망한 사고이다.‘조류독소’로 인한 수질사고는 1878년부터 발생하였고 최근까지 사람뿐만 아니라 물고기, 개와 가축 및 새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여러 종류의 남조류와 이들에서 발생한 다양한 ‘조류독소’가 유발한 수질사고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 수질사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류독소’가 주원인인 것인지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조류독소’ 원인물질이 다양하고 반응 메커니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최근 국내 물 관련 대표적 학회인 ㈔대한상하수도학회와 ㈔한국물환경학회가 공동주관으로 ‘조류독소’ 분석과 관련한 기술세미나를 8주에 걸쳐 진행 중이다. 국내외 ‘조류독소’ 분석과 관련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가하여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위 전문가들의 발표에서 많은 ‘조류독소’ 분석방법들이 소개되었는데 대체적으로 ‘조류독소’의 존재를 파악하는 최초단계에서는 ‘쥐 생물검정’, ‘효소면역분석법: ELISA’, ‘단백질 포스파타제 억제법: PPIA’ 등의 생물학적 방법이 사용된다. 존재량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액체크로마토그래프-텐덤질량분석법: LC-MS/MS’과 같은 물리화학적 방법이 사용된다. 국내의 상수원수 내 먹는물 수질감시항목에 ‘마이크로시스틴’을 지정하고 공정시험기준으로 ‘LC-MS/MS’ 분석법을 제시하고 있다.이처럼 ‘조류독소’ 분석기술이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마시는 물이나 물놀이를 위한 수질과 독성 기준은 많은 추가연구가 필요하다. 낙동강과 금호강 물을 마시고 물놀이를 즐기고 싶은 대구경북 지역민들을 위해 ‘조류독소’의 막연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

2022-11-21

어획고 감소로 시름에 빠진 동해안 어민들

최근 경북 동해안 항포구마다 어획량 부진이 심각해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고 한다. 동해안지역 수협 통계에 의하면 구룡포를 비롯 영덕, 울진, 경주 등 경북 동해안 위판장에 출하되는 어획량이 작년보다 작게는 15%, 많게는 6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구룡포의 경우 이달 현재 위판액 기준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4억원이 줄었으며, 어종에 따라 60%가 줄어들기도 했다고 한다. 영덕도 올 현재 위판 어획량이 1천859t, 위판액 5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4천251t, 88억원보다 어획량 기준 60% 가까이 줄었다.울진과 경주도 비슷하다. 특히 지난 3월 대형 산불이 난 울진의 경우는 비가 오면 타고 남은 잿물이 바다로 유입돼 어획량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강원도 삼척에서도 대형 산불이 난 이후 2년 이상 어획량이 감소했던 것으로 알려져 어민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다.경북 동해안의 어획량이 주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 변화가 주된 이유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구 온난화로 전세계적으로 바다 수온이 상승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 주변 바다 수온 상승률은 세계 평균보다 2배가량 높다.해양수산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표층수 온도는 지난 54년간(1968-2021년) 약 1.35도 상승해 전지구 해역 상승률 0.52보다 2.5배나 높았다. 특히 경북 동해안은 2021년 7월 기준으로 전지구 해역 중 평년 대비 수온이 가장 높았던 곳 중 하나로 손꼽혔다.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뛰면서 어민들이 사용하는 면세유 가격도 지난해보다 91%나 올랐다.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출어를 망설이거나 아예 출어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또 외국인 선원의 근무지 이탈의 문제도 어업인을 괴롭히고 있다고 하니 “수산업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어업인의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어업 환경이 날로 악화되는데 대한 당국의 지속적 대책이 필요하다. 해양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장기적 대책도 마련돼야겠지만 단기적으로 어민의 어업 활동을 격려할 지자체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다.

2022-11-21

여야 ‘예산전쟁’ 불똥 튄 TK신공항 특별법

내일(23일)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소위 일정에 포함돼 있었던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안 심사가 여야의 극한대립으로 기약없이 보류됐다. 민주당이 대통령실 앞 용산공원 조성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여당 의원들이 발끈해 소위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군위군 대구시 편입’ 법안 심사도 제동이 걸린 상태다. 법안소위가 특별법안 통과의 필수관문이기 때문에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법안 상정 자체가 불가능하다.TK정치권에선 1~2주 내 소위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이번주부터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하기 때문에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에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야당 지도부가 여당과 협조를 할 가능성이 계속 낮아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특별법안의 연내 통과가 불투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그나마 특볍법안과 관련된 실무 논의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은 다행이다. 오늘(22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는 통합신공항 특별법안과 관련한 당·정 회의가 예정대로 개최된다. 홍준표 대구시장, 주호영 원내대표와 국토위 간사인 김정재 의원, 행안위 간사인 이만희 의원을 비롯해 기재부·국토부·국방부·행안위 차관, 대통령실 이관섭 정책기획수석도 참석한다. 홍준표 시장은 “특별법안의 연내통과를 위해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발로 뛰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통합신공항이 오는 2030년 개항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이 반드시 연내에 제정돼야 한다. 하지만 다음달 초 소위가 다시 열리더라도, 민주당이 현재 통합신공항 특별법안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안의 내용이 비슷하다는 점을 내세워 두 법안의 국회통과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안은 이제 겨우 국방위에서 논의가 시작된 상태다. 민주당의 동시 통과 주장은 통합신공항 특별법안 통과를 늦추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홍 시장이 오는 25일 강기정 광주시장과 만나 두 법안의 차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2022-11-21

슬리퍼는 죄가 없다

홍석봉정치에디터 20여년 전 슬리퍼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엔 한겨울에도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집에서부터 슬리퍼를 질질 끌며 신고 와서는 그대로 교실로 들어간다. 하루 종일 슬리퍼와 함께 공부한다.대부분의 학교가 슬리퍼 등교를 금하며 복장불량으로 벌점을 주지만 학생들은 개의치 않는다. 신발주머니를 갖고 다니다가 교문 밖에서 바꿔 신기도 한다. 슬리퍼가 등하굣길 패션은 물론, 학생들의 일상 패션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느덧 아무 때나 편하게 신는 생활품이 됐다.슬리퍼(slipper)는 원래 실내에서 신는 신이다.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돼 있다. 국내에서 슬리퍼 유행에 불을 지핀 것은 흔히 삼선 슬리퍼라고 불리는 아디다스 슬리퍼다. 정식 명칭은 ‘아딜렛(Adilette)’이다. ‘아딜렛’은 1972년 출시돼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한 때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이 슬리퍼는 중고교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등하굣길 신발로 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MBC 기자의 슬리퍼 인터뷰가 시끄럽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때 MBC의 전용기 탑승 배제와 관련, MBC 기자와 대통령실 간 고성이 오갔다. 대통령실은 MBC 보도가 악의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시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며 공격했다. 공식석상에서 취재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비난했다. 야당은 취재 예의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의 편협함을 지적했다.슬리퍼는 죄가 없다. 그래도 공식적인 자리에는 곤란하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 준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1-21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법률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귀국하면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라고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나면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돌아오는 길에도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다.해외 순방으로 며칠씩 나라를 비우면서 내치 담당 장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158명의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된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윤 대통령은 법률적 책임론에 치우쳐 있다.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데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7일 국가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에서도 그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겠다”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살아왔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결백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적으로야 당연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비가 안 와도 임금님 탓이었다.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돌아도 임금님이 부덕해서라고 생각했다. 천재지변을 나라님 탓한 것은 미신에 가깝다고 해도, 수자원 관리나 보건 위생은 정부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일이다.책임 소관을 따지기 힘든 일이 무수히 많다. 천재지변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런 문제는 당한 사람만 억울한가. 사회의 그런 빈 곳을 찾아 메우고, 대비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인명 피해가 생기고, 바람이 불고, 가물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원균이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유능한 정부라면 대비해야 한다. 하물며 군중이 몰려 교통이 마비되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을 정부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법 조항이 있든 없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다. 대비가 안 돼 문제가 생기면 정부 책임이다. 정부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 잘못이다. 체제가 돼 있었다면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실무자는 물론 관리·감독을 잘못한 사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큰 참사를 빚어놓고 일선 파출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나. 이번 참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재다. 윤 대통령도 경찰을 향해 흥분하며 질타했다. 그 어이없는 행정력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안전 문제의 최고 행정책임자인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떠안아야 윤 대통령의 짐이 덜어진다.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길이다.이 장관은 여론에 불을 지른 책임도 있다. 참사 직후 그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말해 기겁하게 했다. 사퇴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또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말해 다시 여론에 불을 질렀다. 참담한 사고의 책임자로서 사퇴하는 것을 어떻게 ‘폼나게’라고 표현할 수 있나.윤 대통령은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품이다. 사법시험 직전에도 조문을 가고, 친구 함 팔이를 갈 정도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자신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데 조문을 거르지 않았다. 이 장관 같은 가까운 지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는 이 의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왜 무너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논란을 외면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키려다 정권을 넘겨줬다. 사적 의리에 얽매이면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조 전 장관 파문 때도 법률적 유무죄에 매달렸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는 법률적으로 죄를 묻기 어려워도 도덕적·정치적 책임이 더 무거운 때가 있다.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 인물인 용산경찰서장이 “보고를 못 받았다” “기동대 추가 파견을 요청했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법적 책임을 의식한 말이다. 형사사건으로만 보면 책임을 떠넘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더 큰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앞장서서 처리하지 않으면 밀려서 하게 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하다.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11-20

일에 지치고 힘들때 다시 용기주는 책

내년을 준비하는 부서별 보고자료를 들여다보다가 순간 집무실 책상 위 모퉁이에 붙어 있는 메모장이 눈에 띄었다. ‘잊지못할 한 권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쓰여진 메모 내용에 잠시 과거 회상에 빠졌다. 좋은 책은 여럿 추천할 수 있지만, 잊지못할 한 권의 책을 추천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며칠간 고민 끝에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서적보다는 모두가 잘 알고 접해 본 소설책을 소개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고른 책이 바로 우리 모두가 학창시절에 읽어봤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묘사되는 베르테르의 섬세한 감정표현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이야 직설적인 화법을 ‘사이다’, ‘돌직구’ 등으로 표현하며 솔직한 표현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지만, 내 젊은 학창 시절에는 완곡한 감정표현이 주를 이뤘을 때니 사뭇 생경할 따름이었다. 더 나아가 괴테가 이 소설을 집필했던 18세기에는 오죽했을까! 출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르테르를 모방한 각종 신드롬이 생겨난 건 이 책을 읽게 되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요즘 표현으로 베르테르의 당시 모습은 ‘힙’했다고 할까?로테를 향해 쏟아내는 서툰 감정과, 때로는 무모한 행동으로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우리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사랑하는 로테에 대한 감정은 늘 솔직하고 진심인 주인공이다. 그녀를 “그토록 지혜로우면서도 소박하고, 꿋꿋하면서도 상냥하며, 착하고 활발하고 영혼의 평화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하는 내용에서 여실히 그 감정이 드러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균형잡힌 이성보다는 위아래로 요동치는 감성에 좌우된 경험을 갖고 있을 터, 베르테르가 사랑한 로테는 어떻게 평가해도 어느 하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로테를 향한 사랑이 깊어 질수록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녀를 둘러싼 자들의 충격적인 소식은 결국 베르테르를 비극적인 결말로 이끈다. 불안정한 감정으로 가득 차 무책임한 선택을 한 철없어 보이는 베르테르를 이해하긴 쉽지 않다. 다만 제도권 안에서 구원받을 순 없지만 젊음 가득한 무모한 감정은 그것 자체로 자유롭고 통쾌하다. 신현국 문경시장 특히, 이제는 잔뜩 철든 어른이 돼 다시 베르테르를 돌아보니 그가 쏟아내는 순수하고 꾸밈없는 표현들이 흥미롭고 부러울뿐이다.집무실 밖에 내리는 가을비로 잠시 베르테르를 기억하며 떠난 추억 여행이 내 본래 삶으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을 기다리는 늦가을의 문경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취임 초기부터 시민들과 직원들에게 긍정의 힘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인구 감소로 불확실성 큰 현실에 함께 맞서고 있다. 간혹 일에 진척이 없고 힘이 부칠 때 베르테르처럼 치기 어린 행동일지라도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내 고민과 애착을 진심을 담아 절절하게 드러내며 외쳐보고 싶다.때로는 이런 무모함이 기존의 문법과 고정관념을 깨고 진일보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전무후무한 코로나19의 팬더믹 상황과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도 내일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22-11-20

착한 목자

강길수 수필가 안도의 숨을 쉰다. 기사를 자세히 보니 가톨릭 신부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신부란 사람이, SNS에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라고 했을까.하지만 그 안도의 숨이 멎기도 전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는 대통령 부부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이미지와 함께 추락을 기원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어안이 벙벙하고, 소름 돋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어찌 된 사람들일까. 성직자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 이가 아닌가. 내 편과 상대편은 물론, 지구촌과 삼라만상을 품어내는 인생길,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제직을 선택한 사람들이기에 믿으며 존경했다. 한데, 이 두 사건으로 존경심이 싹 사라진다.‘착한 목자’란 말이 성경에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성당에 다니며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가에서 소규모의 닭, 돼지, 소를 키울 뿐이었다. 하여,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땐 생경했다. 사진, 영화 같은 데서 서구 목장의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때문에, ‘착한 목자’는 낭만이 물씬 풍기는 동화 같은 나라의 목동으로 마음에 자리 잡았다.군에 다녀와 가정을 이루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착한 목자’란 말이 새롭게 와닿았다. 예수가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희생 제사를 바쳐, 제물과 사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야만 하는가’하는 의문도 들었다. 예수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착한 목자’ 자각을 성경에서 읽으면서, 공감도 하였다. 양을 치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을 헤아리면, ‘착한 목자’는 생존 자체였을 터다.예수가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은 착한 목자로 살아야 한다’는 명제다. 하면, 사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더 진실하고 큰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할 당위성이 주어진다. 생존은, 좌파도 우파도 뛰어넘는 절대 명제다. 따라서 종교의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고, 성직자인 사제는 그 중심에 서 있다.이 일로, 처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사제단 소개란에, ‘정의를 기초로 인간의 존엄, 인권, 민주화, 평화, 통일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정의’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기반이라는 건데, 어떤 정의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메뉴 전체를 둘러본 결과 반정부, 반미 정치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소개란에서 ‘인권’을 언급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말은 찾을 수 없고, 사업의 ‘반전 평화’ 메뉴에도 북핵 문제 언급은 없다. 또 단체명에 ‘정의 구현’이란 말이 있음에도, 작금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짓밟힌 본질적 첫 번째 문제인 ‘부정선거’ 의혹과 송사에 대한 언급은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치 ‘좌파 신부, 좌파 사제’란 말을 듣는다 싶었다.부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착한 목자’로 새로 태어나기를 빈다.

2022-11-20

신중년의 커튼콜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조명이 켜지고 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라는 무대에 배우가 되어 섰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 출연하여 한 사람당 10여 분간 독백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이었다. 9주 동안 현역 극작가와 배우의 지도로 5060 여성들이 참여했는데, 다양한 표현 활동을 거친 후 마지막에는 자기가 직접 대본을 쓰고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관객은 모두 가족이나 지인 중심의 조촐한 무대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참가자가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이라 그런지 서로 지지해주면서 인생 2막을 위한 커튼콜을 제대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이 프로그램 신청 자격은 5060 신중년 여성이었다. 50세에서 64세까지를 신중년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신중년’이라는 2017년 일자리위원회에서 ‘신중년 인생3모작 기반구축 계획’을 마련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베이비부머 효과 등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체 인구에서 506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했기 때문이다.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신중년에게 가장 근본적인 당면 문제는 소득 감소이기는 하지만, 주변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으며 질 높은 여가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 역시 긴급한 문제다. 은퇴한 5060에게 주변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경제적인 문제도 어려워지고 공허감이 밀려오기 쉽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까지 겹치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신중년 여성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여성이기 때문에 받은 차별까지 더해지면 5060 여성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과 같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의미는 크다. 특히 이번처럼 자신의 이야기로 대본을 쓰고 직접 연기까지 하는 활동의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같은 관심을 가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오랜 기간 묵혀온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때로는 새롭게 생긴 인생 과제에 대처하는 힘을 기르기도 한다.어떤 이는 돌아가신 엄마와 화해하고, 어떤 이는 가족에 갇혀 살던 지난 60년에서 독립할 것을 다짐했다. 어떤 이는 남과 다르게 살았던 자신이 잘못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난치병이 재발한 어떤 이는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깨달으며 더 의연해졌다. 어떤 이는, 그 어느 인생도 순탄하지 않았던 엄마와 자신과 딸, 누구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 삶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마음을 발견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남아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동지애를 느끼게 된 점도 뜻깊다.현재 기준으로 여성의 기대수명은 86.5세라고 하니, 5060 신중년 여성에게 남은 평균 시간은 최소 20년에서 36년이다. 신중년에게 이 시간은 연극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배우를 불러내는 커튼콜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중년의 시간이 의미 있고 풍요로워질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2-11-20

꿈의 에너지 SMR(소형모듈원자로), 경주서 도약 나래 편다

주낙영경주시장 전 세계가 미래형 차세대 원전시장 선점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름하여 소형모듈원자로(SMR : Small Modular Reactor)가 바로 그것.SMR은 출력 300㎿급 이하의 소형원자로로 안전성이 높고 설계·건설방식이 간소할 뿐 아니라 활용도가 다양해 전 세계가 SMR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현재 세계 20여 국가가 71종의 SMR을 개발 중이며,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향후 SMR 시장규모가 6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특히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마이크로소프트(MS)社의 빌게이츠와 손잡고 2050 탄소중립의 핵심전략으로 SMR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원전수출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SMR 독자개발 등 원전기술 확보를 위한 대규모 RD사업 투자를 공언하면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이런 움직임에 우리 경주가 그 중심에 서 있다.이미 경주는 6기의 원전(월성원전 4기, 신월성원전 2기)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있어 원전산업의 최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또 지난해 7월 감포읍 일원에 SMR 연구개발의 요람이 될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착공에 들어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문무대왕과학연구소 건립사업은 국비 2천700억원 등 모두 6천540억원을 투입해 1천145만㎡ 부지에 연구시설 16개동을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오는 2025년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완공되면 연구 인력만 500~1천여명으로 차세대 과학혁신도시로서의 자리를 꿰차게 될 전망이다.이에 발맞춰 경주시는 SMR 국가산단 유치 타당성 조사에 나서며, 미래에너지 산업 중심도시로서의 비상을 서두르고 있다.유치 타당성 용역 최종보고서에는 △국가산단 지정 필요성 △지역여건분석 △국가산단 주요 유치업종 설정 △입주업체 수요조사 △국가산단 기본구상 및 부문별 개발계획 수립 △사업타당성 분석 및 재원조달 계획 수립 △국가산업단지의 효율적 관리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정부의 국가산단 지정 여부는 다음달 말 결론이 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진다.현재 전국 19개 지자체가 다양한 산업 분야의 국가산단 지정 신청서를 제출한 상황이며, SMR 국가산단을 신청한 지자체는 경주시가 유일하다.이에 따라 경주시는 지난 9월 SMR과 연계한 초소형·고효율로 축약되는 차세대 발전시스템 개발을 위해 국내 유수의 엔지니어링 회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SMR 국가산단 유치를 위해 관련 절차를 착실히 밟고 있다.최근 경주시가 시행한 SMR 국가산단 입주기업 수요조사 결과, 무려 225개 업체가 입주를 원해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줬다.이뿐만이 아니다.지난달 13일 경주시는 경북도, 포항공대, 한국원자력연구원, 한수원, 한전기술,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 유관기관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SMR 국가산단 유치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경주시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달 21일까지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신규 국가산업단지 제안서를 제출했고, 이번 달 있을 현장실사를 거쳐 국가산단 최종 후보지로 선정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SMR 국가산단은 단순한 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아니다.기존 원전 산업을 필두로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함께 산업구조 대전환에 대응하며, 경주의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경주시민의 의지와 염원이 담겨 있다.경주시가 현재 추진 중인 SMR 관련 프로젝트는 경주를 과학기술혁신도시로 변화시킬 핵심전략 과제이다.SMR 국가산단이 경주에 유치된다면 대한민국이 원자력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역사를 품은 도시를 넘어 미래를 담는 경주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경주시는 열심히 뛰고 있다.위대한 경주시민과 함께 누구나 살고 싶고, 찾아오고 싶고, 일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 ‘경주’를 반드시 만들고자 한다.

2022-11-20

뒤늦은 태풍이 할퀴고 간 숲길이다. 고갯길 마루에 참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다. 몸이 한쪽으로 휘어졌다가 다시 뻗었다. 그 모양으로도 어제의 곡절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했다는 듯, 가지 끝에는 듬성듬성 도토리를 달고 있다.나무의 품에 많은 것들이 다녀갔을 것이다. 딱새, 곤줄박이, 산비둘기들이 깃들어 새끼를 키워냈을 테고, 나약한 벌레들이 천적의 눈을 피하려고 시시때때로 몸을 숨겼겠다. 한여름 그늘을 드리우면 더위에 지친 사람이 땀도 식혔을 것이다. 썩은 밑둥치의 굵기로 보아 나무는 꽤 넓고 넉넉한 품을 지녔을 것 같다.어머니의 품에는 늘 흙냄새가 났다. 어머니의 옷에 묻은 흙은 빨래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종일 논밭으로 오가다 보면 옷자락에 흙이 가실 날이 없었다. 바깥에서 놀다가 어머니를 보고 달려들면 흙 묻는다며 나를 밀어냈다. 따뜻한 품이 그리울 때, 잠든 어머니의 품에 슬쩍 파고들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 나를 꼭 안아주곤 했다.어머니의 손은 뭐든지 만들어냈다. 시장에서 천을 떠와 재봉틀에 드르륵 박으면 예쁜 치마가 되고 티셔츠가 되었다. 부뚜막에 먹을 것이 없어도 어머니가 잠시 설치면 푸짐한 밥상이 툇마루에 올라왔다. 고봉밥 한 그릇 뚝딱 비운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잠들 수 있었다.어머니의 품은 넉넉했다. 봄바람이 불면 어머니는 새싹을 틔워 내고, 여름이면 뙤약볕을 견디고 태풍 한두 개쯤은 거뜬히 이겨냈다. 그러고는 단단하게 응축한 열매를 내주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가을 하늘을 받치고 있는 탐스러운 과일을 달고 있는 나무였다. 그 품에 깃든 우리는 아무 탈 없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꿀 수 있었다.서른이 다 되어 어머니의 품을 떠났다. 결혼이라는 울타리로 내 품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다. 어린 생명이 가만히 누워 입만 방긋거릴 땐 우유를 먹이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는 뒤에서 손을 뻗어 행여 넘어질까 조심했다. 잠시라도 아이를 품에서 놓을 때면 늘 마음이 쓰였다.아이들에게 훈훈한 품을 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언제든 와서 쉴 수 있게 넉넉한 그늘을 만들었다. 봄에는 상큼하고 파릇한 냄새로 불러들이고 여름에는 쭉쭉 뻗은 가지로 시원한 바람을 몰고 왔다. 가을에는 온갖 달콤한 열매로 먹는 일에 풍족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겨울, 그 황량한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댈지라도 꿋꿋했다.새도 알을 품는다. 암컷은 둥지에 앉아 수컷이 사냥해 온 먹이를 전달받아 새끼에게 조금씩 찢어 먹인다. 새끼를 지키기 위한 황조롱이의 정성은 도심 빌딩 속에서도 알 수 있다. 몸에 밴 습성은 높은 곳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직선으로 하강하기에 높은 건물이 제격이다. 어린 새끼를 지켜보는 암컷과 수컷의 눈매는 번뜩인다. 이들의 운명은 그들의 품이 가장 완성할 때까지 먹이를 물어다 준다. 이순혜 수필가 새는 새끼가 둥지를 떠나 날아오르면 더는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육아가 끝나면 새처럼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자식이 떠나도 늘 품을 마련하고 자식을 기다린다. 자식을 끌어안고 젖을 먹이는 포유류(哺乳類)이기 때문이다. 내 품에 자식을 안는 것, 자식 때문에 언제까지나 자신이 희생하는 것, 이는 포유류의 기쁨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다.어떤 작가는 모성의 완성은 자식을 품에서 내보내는 일이다. 라고 말했다. 머지않아 나도 자식을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모성은 완성했지만, 그때부터는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끔 돌아오는 아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더 넉넉한 품을 마련해야 한다. 내 어머니가 그랬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내려오는 길, 다시 한 번 쓰러진 참나무를 본다. 참나무는 온 힘을 다해 살고 이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 옆에서 작은 참나무가 가지를 뻗으며 품을 넓히고 있다.

2022-11-20

SMR예산 전액 삭감 위기…경북도 비상

지난 17일부터 열린 국회 예결특위 예산소위에서 윤석열 정부와 경북도가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예산이 민주당에 의해 전액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SMR 개발 예산을 두고 국민의힘은 “원안 유지”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예산 31억원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맞서다 결국 심사보류됐다. 관련 예산은 과기부가 내년부터 6년간 3천992억원을 투입해 혁신형 SMR의 설계·제조 기술 등을 확보하겠다는 사업의 첫 해분이다. 국회 절대권력을 쥔 민주당이 SMR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 정부로서는 이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최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원전 역할이 재조명되면서 원전선진국을 중심으로 안전성이 대폭 강화된 SM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뒤를 이어 러시아·중국·일본 등이 맹추격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삼성·SK·GS·두산 등 주요 대기업들이 이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국회에서 예산이 삭감될 경우, 현재 SMR 국가산업단지 경주 유치를 위해 총력을 펴는 경북도로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경북도는 지난달 13일 경주시청에서 산·학·연 관계기관장들과 만나 SMR 국가산단 경주유치를 위해 총력을 쏟겠다는 협약을 한 바 있다. 경북도내에는 이미 경주를 중심으로 원전관련 산·학·연 기관들이 집적돼 있기 때문에 SMR 국가산단이 조성되면 기술개발과 건설, 운영, 해체에 이르기까지 원전 전주기를 갖추게 된다.앞으로 SMR 시장은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지난 5년간 손도 못 댔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거칠게 밀어붙이면서 미래기술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지금 90%를 넘어섰다.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면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 에너지원이 SMR이다. 정부가 제출한 모든 예산을 무리하게 칼질하고 있는 민주당이 우리 국민의 미래 에너지원까지 정쟁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202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