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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병신(丙申)

육십갑자 중 서른세 번째는 병신(丙申)이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는 태양, 지지(地支)의 신금(申金)은 큰 바위 또는 바위산이다. 큰 바위에 햇볕이 내리쬐는 모습이다. 동물로는 영리한 붉은 원숭이다.병신일주는 화(火)가 오행 가운데 예(禮)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깍듯하게 예의를 잘 지킨다. 상대방의 허물을 잘 보며, 활력이 넘치고 열정적이다.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하고,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추진력이 있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이런 분들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함부로 반말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욱하는 성질이 있지만, 뒤 끝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양(陽) 기운이 넘쳐 사회활동과 결실의 힘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리더십이 있다. 남의 눈길을 끌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겉모습을 꾸미는데 관심이 많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외모도 훤칠하며, 솔직담백하므로 비밀이 없다. 남자나 여자나 잘 생겼다. 자칫 사치에 빠질 가능성도 있으며, 결과를 너무 과시하면서 생색내다가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병신(丙申)은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철광석을 녹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으로 창조성이 뛰어나다. 다방면에 재주가 많고 잡기에도 능하다. 원칙과 소신 있게 행동하지만, 여연살(女戀殺)이 있어 남자의 경우는 배우자 몰래 애인을 숨겨둘 여지가 있다.조선시대에는 병신일주를 풍수를 보는 지관의 사주라고 했다. 지관들이 풍수를 보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역마) 머무는 마을마다 여자와 인연이 생겨 숨겨둔 자식이 있다고 했다. 또한 ‘병신 육갑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장님이나 장애인들이 점보는 일을 많이 했다. 특히 병신일주 사람들이 역학에 소질이 많아 육십갑자를 더하여 ‘병신이 육갑한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키듯이, ‘병신자식 효도한다’라는 속담도 있다.병신의 신금(申金)은 원숭이다. 옛날에는 ‘잔나비 띠’라고 불렀다. 재주가 많고 활동성도 강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든지 다녀야 직성이 풀린다고 보면 되겠다. 병신일주는 재주 있고 똑똑하며 호탕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솔선수범하고 융통성이 있으며 빼어난 말솜씨로 사회생활에 지극히 잘 어울리는 성향을 갖고 있다. 공직생활에는 외교관, 회사생활에는 무역부서에서 일하면 재능을 발휘해 쉽게 인정받고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기운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단점으로는 지나친 활동성과 성과에 집착하는 공명심이 있다. 빨리 남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부하직원이나 주변사람을 닦달하는 성향이 있다. 뻐기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외부로 향한 관심을 내면으로 돌려 부실함을 채우고, 결과 및 인정욕구에 연연해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예로부터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 하여 조선에서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다. 주로 불교국가에서 원숭이 이야기가 많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에 가면 네 귀퉁이의 처마 밑에 원숭이가 연화받침 위에 무릎을 세우고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이 있다. 두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고, 한쪽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다. 세상에 떠도는 말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여겨진다.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불경 ‘육도집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전생에 500마리 원숭이의 왕이 되어 원숭이 무리를 죽음으로부터 살려내고, 자신은 국왕에게 잡혀 “벌레 같은 몸뚱이의 썩어질 살이니 가히 왕에게 바치면 하루아침의 반찬이 될까합니다”하여 국왕을 감동시킨 이야기다. 지붕을 받들고 있는 원숭이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원숭이들은 부처님에 대한 끝없는 공경을 나타내어 감동을 주며, 도편수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병신일주는 재물을 깔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문창귀인이 있어 문필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창의성을 발휘하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1866년 중편소설 ‘도박꾼’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그는 낭비벽과 도박으로 늘 빚에 시달린 생활을 이어갔고 죽은 형의 빚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때 출판업자가 혜성같이 나타나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새 소설의 원고를 1866년 11월 1일까지 넘겨주면 3천루블을 지불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작권을 포기하는 조건이다.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수락했다. 받은 돈 대부분은 형의 빚을 갚았고, 남은 돈은 유럽의 도박판에 가서 신나게 날려버렸다.날짜는 다가오는데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졸속으로 쓴다 해도 한 달 안에 원고지 1천500매를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친구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속기사를 추천해 주었다. 속기사는 건전하고 젊은 상식적인 여자였다. 10월 4일부터 그는 구술했고 속기사는 속기로 적은 뒤 집으로 돌아가서 정서해 가져왔다. 이런 식으로 10월 29일에 마쳤다. 26일 만에 소설이 완성되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소설 ‘도박꾼’은 도박판의 탐욕과 공포, 도박꾼들의 흥분과 좌절과 긴장을 완벽하리만큼 실감나게 써냈다. 도박꾼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소설화된 것이다. 게임의 흥분과 스릴 추구는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다. 그는 생존을 위해 도박을 했고, 또한 생존하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다.계약 이행보다 더욱 값진 성과는 속기사와의 결혼이다. 두 사람은 작업 과정에서 가까워졌고, 25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과 사랑으로 남편이 도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책을 직접 파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빚을 청산함으로써 비교적 안정된 만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이 1880년 11월 탄생됐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그는 이듬해인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다.타고난 재능을 믿고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는 수긍할 만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소홀히 대하지 않기 위함이다. 전력을 쏟지 않고 얕은꾀를 부리는 것,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 방관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바보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도 의미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것과 같다.

2023-04-19

장애인을 위한 건강검진 시설 대폭 늘려라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 기념일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에 장애인의 날을 둔 것은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서다.건강기본법에는 “모든 국민은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건강을 증진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관련 법률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에게 맞춤형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장애인 건강검진사업을 시행토록 하고, 동 사업을 위한 예산 및 행정적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북도내에는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안동의료원, 구미 순천향병원 경산의 경북권역재활병원이 지정돼 있으나 그중 순천향병원은 사업을 포기한 상태여서 실질적 운영은 두 곳뿐이다. 그래도 경북은 두 곳이라도 운영하고 있으나 전국적으로 대구와 광주, 울산, 세종, 충남 등 5개 시도에는 한 군데도 없다. 인구 50만명의 포항도 물론 없다.정부가 장애인의 건강검진 접근성 강화를 위해 2024년까지 권역별로 100군데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을 목표로 사업을 펴고 있으나 실적은 10% 정도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으로 지정 요건에 맞는 시설을 설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간의료기관의 호응이 거의 없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장애인이 건강검진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국립재활원의 장애인 실태조사에 보면 중증장애인의 건강검진 완수율이 25%에 그치고 있다. 장애인은 의료기관 방문시 불친절한 의료진과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이유로 장애인의 검진 수검률은 일반인보다 크게 떨어지고 있다.건강검진은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보건예방 행위다. 장애인이 건강검진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게 검진시설의 확충이 절실하다. 현실에 맞는 정부 지원으로 장애인의 건강을 나라가 지켜주어야 한다.

2023-04-19

지방대, 통합 앞서 과감한 자체혁신 선행돼야

학령인구 급감으로 지방대 위기가 현실화되자 대학통합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로 국립대끼리 통합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난 14일에는 교육부가 사립대인 경주대와 서라벌대의 통합을 승인했다. 같은 법인 산하의 두 대학은 지난해 4월 통합 승인신청을 한 후 4차례에 걸친 심사를 받았다.교육부도 그저께(18일) 존폐 갈림길에 있는 상당수 지방대의 활로 모색을 위해 ‘글로컬(Global+Local)대학’ 육성정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 사업을 통해 5년간 지방대 30곳을 선정해 3조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대학 한 곳 당 1천억원을 준다. 가능성이 있는 지방대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취지다. 교육부가 요구하는 것은 대학 간 통합을 비롯해 대대적인 구조혁신과 정원 조정, 학문 융합 등이다.교육부는 서로 통합을 추진하는 지방대들이 사업에 지원하면 공동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경북도내에서는 4년제 국립대인 안동대, 금오공대와 공립 전문대인 경북도립대가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도 시·도마다 국립대 1곳이면 충분하다는 ‘1도 1국립대’ 모델을 선호하고 있다. 3개 대학이 하나로 합쳐지면 경북도내에서 유일한 국립대가 된다. 지난 2001년에는 경북대와 대구교대, 금오공대, 상주대(폐교), 안동대를 통합하자는 의제도 나왔지만 구성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현재 정부의 지방대 통합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많은 대학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체 혁신 노력은 하지 않고 손쉬운 통합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교수연대회의도 그저께 성명을 내고 “대학이 먼저 혁신을 하고 통합을 해야지, 통합만 한다고 혁신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자칫 글로컬 대학 육성사업이 대학의 양극화와 서열화를 심화시켜 오히려 지역 소멸을 가속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경쟁력을 잃은 대학들의 경우, 서로 통합을 한다고 해서 시너지효과를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통합에 앞서 반드시 개별대학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맞춤형 인재양성 같은 혁신적인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2023-04-19

글로컬 포항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상이 변했다. 물리적 한계와 함께 지역이 고립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극동의 변방이었으며, 포항은 나라 안에서도 시골구석이었다. 상대적 박탈감도 한 몫 거들어 나라와 지역은 세계를 향하는 글로벌을 외쳤다. 수출은 여전히 국가경제의 주축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인터넷과 온라인은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지구를 통째로 묶어버렸다. 큰 나라들만 판을 치던 세계질서는 어느새 급변하여 대한민국을 날로 인정하는 모양이 아닌가. 중심과 변방이 따로 없으며 수도와 지역의 구분은 사라져간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만 알아주던 무대에 이제는 낯선 얼굴들이 쑥쑥 올라온다.21세기가 중반으로 달리면서, 또 한가닥 변화의 모양새가 눈에 뜨인다. 세계로만 달리는 태도로는 부족하다. 글로벌로만 달리면 모두 같은 모양이 되고 만다. 맥도날드가 그렇고 블루진이 그렇다. 글로벌 기준에 변화가 일어난다. 세계로 달리면서 지역의 모습을 함께 심는다.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함께 버무려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낸다. 20세기에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글로벌을 겨냥했다면, 21세기에는 글로벌과 로컬을 의미있게 섞는 상상과 창의가 필요하다. 글로벌마인드 뿐 아니라 글로컬마인드를 요청하고 있다. 시선은 글로벌을 향하면서 상상력의 기초는 로컬에 두는 21세기형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글로컬포항’이 그래서 가능하다. 지역특색을 담아 세계적 경쟁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역의 상상력이 주도하는 특별한 세계화는 수도권이 시도하는 밋밋한 국제화보다 앞설 수 있다. 독특한 문화적 경쟁력을 끊임없이 기대하는 시대정신과도 맞물린다. 세계화와 지방화가 만나야 한다. 지역에는 그럴만한 소재도 다양하다. 바다가 그렇고 철강이 그렇다. 온 나라와 여러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여성과 아이들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연로하신 어른들을 바라보는 존경심이 그래야 하고 젊은 청년들의 지역 생각을 키워야 함이 또한 그렇다. 포항에만 있거나 포항에는 있어야 하는 소재와 가치들을 찾아내고 일구어서 글로벌시장과 상대해야 한다.글로컬 시대에는 지방에서 뿌리를 찾아 세계시장과 겨루는 상상과 창의를 키워야 한다. 교육부가 나서서 지방대학들이 글로컬 가치를 살피고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일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몇 개 안 되는 대학들을 선별하여 차등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공연히 경쟁심을 유발하고 돈으로 줄을 세우는 낡은 발상이 숨어있어 우려스럽다. 글로컬의 힘은 모든 지역에 숨어있을 터이다. 한정된 재원을 나누어 사용한다 해도, 백(100) 또는 영(0) 식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건강한 글로컬리즘의 개발과 진전에 도움이 될까.글로컬의 세상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이미 저 앞에 서 있다. 한반도의 작은 도시 포항과 지역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이 되기 위하여 어떤 가치를 뿜어낼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시장을 직접 두드리는 포항의 미래가치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3-04-19

태교 여행의 성지 ‘성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태교 여행이 신혼부부 등에게 새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임산부와 가족이 임신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육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다.세종대왕자 태실이 있는 경북 성주군이 인기 태교 여행지로 떠올랐다. 성주군이 세종대왕자 태실이라는 빼어난 관광 자원을 활용, 지역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임산부 가족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성주군은 지난 15, 16일 임산부 가족을 위한 ‘태실의 고장 성주, 미션 태교 여행’ 행사를 진행했다.국가 지정 사적(史跡)인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주 무대다. 올해 4년째 맞는 행사로 문화재청과 성주군이 주최했다. 자녀를 데리고 온 임산부 가족과 신혼부부들이 참여, 의미 있는 여행을 했다.행사는 선석사 태실 법당에서의 ‘산책 태교’, 태교음악 들으며 임산부에게 좋은 참외 성분 찾기, 성밖숲 산책, 오감을 만족시키는 예비맘 태교 맘마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그 중에도 세종대왕자 태실 산책 코스는 임산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의 태봉 정상에 있다. 세종의 열여덟 왕자와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집단 배치돼 있다. 국내에서 왕자 태실이 완전한 모습으로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이다.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성주군은 이참에 성주를 국내 태교 여행의 성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태교 여행은 임산부들이 문화재를 관람하고 심리적 안정과 치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성주군은 관광객과 성주 참외 판매 등 농가 소득 증대로 연결해 ‘꿩 먹고 알 먹기’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19

간호법 제정, 충분한 공론화 필요하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간호법 처리를 두고 의료계가 폭풍전야다. 간호협회만 숙원이 해결된다고 환영하지만, 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의료단체는 연일 집단시위를 하면서,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의 일방적인 간호법 처리가 자칫 우리사회의 의료시스템을 마비시킬 상황까지 간 것이다. 간호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지난 2021년 3월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민석 민주당 의원과 서정숙(약사)·최연숙(간호사)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이 발의했다. 2년여동안 의료계 각 직역간의 갈등을 조율해 여야 합의안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현행 의료법은 의사·한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단일한 법체계로 관리하고 있는데, 간호법은 이 법에서 간호사 업무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한 것이다. 쟁점이 되는 내용은 제1조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혜택을 받는다’라고 명시한 부분이다. 의사협회에서는 ‘지역사회에서의 간호혜택’이라는 문구가 간호사들이 의사 없이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고 있다. 간호법이 분리된 후 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단독개원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개연성도 우려하는 듯하다.반면, 간호협회에서는 간호업무 영역이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시설, 장애인시설, 어린이집, 학교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지만, 의료법은 의료기관 중심의 보건활동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법체계가 정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달라진 보건환경 속에서 간호 서비스가 지역사회에서도 체계적으로 제공되려면 간호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간호법에 대해 간호조무사들의 반발도 크다. 법안 제12조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하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이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면,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불법근무를 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간호조무사들은 장기요양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지역사회에서 간호사 없이 간호업무를 하고 있다. 현직 간호조무사는 80만명 정도이며, 간호사는 약 21만명(자격 보유자는 46만명)이다.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등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들이 자유자재로 자신들의 일을 빼앗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사를 위한 법률 외에도 모든 보건의료직역의 처우 개선을 위한 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간호사나 의료단체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하게 돼 있다. 고민이 클 것이다. 민주당이 노리는 것도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어떤 법이든 이처럼 정치공학으로 처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간호법과 같이 사회적 갈등이 큰 법률일수록 충분한 논의와 설득 절차가 필요하다. 의료계 직역 간 업무영역의 합리적 조정을 위해 지금이라도 차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23-04-18

인도 인구 세계 1위 등극

우정구 논설위원 올 1월 중국국가통계국은 2022년말 기준으로 중국의 인구는 14억1천175만명으로 전년보다 85만명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1961년 대기근으로 인구가 감소한 이후 중국에서 61년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준 것이 공식 확인됐다.인도가 중국인구를 추월할 것이란 예상은 이미 작년부터 국제기구 여러 곳에서 전망치가 나왔다. 중국의 출산율이 1.15명으로 뚝 떨어지면서 빠르면 2023년에는 인도가 중국의 인구를 앞지를 것이란 보고가 쏟아졌다. 지난 4월 15일 미국의 경제종합 미디어그룹인 마켓워치는 인도인구가 중국인구를 추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유엔의 인구 자료를 기초로 두 나라의 하루 인구변화를 적용해 이같이 추론했다.워싱턴 포스트도 유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인도인구가 중국을 제쳤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인구수로 세계 1위 자리를 놓친 건 1750년 이후 273년만에 처음이라 했다. 1990년만해도 중국인구가 인도보다 약 2억8천만명이 더 많았다. 32년이 지난 2022년 두 나라의 인구 격차는 900만명으로 좁혀졌다. 한 자녀 정책을 펼치던 중국이 다자녀장려 정책으로 전환하고 나섰지만 이제 세계인구 1위 자리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증가율을 보인 인도 경제에 대한 세계의 관심 또한 집중되고 있다. 인구는 생산과 소비 등 경제성장과 직결되면서 인도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중국에 이어 GDP 세계 3위국 부상 관측도 나온다.2030년 인도의 30세 미만 소비자가 3억5천만명으로 세계시장의 5분의 1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은 충격적이다. 인구가 가져올 폭발적 경제력을 우리는 부러워 할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4-18

대구·광주 달빛동맹 하늘길 이어 철길도 열어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과 광주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동시 통과 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구·광주 달빛동맹의 힘이 컸다. 대구·광주 달빛동맹은 지난 17일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에서 대구경북신공항 및 광주군공항 이전 특별법 동시 통과를 축하하는 기념행사를 열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강기정 광주시장, 지역정치권 인사 등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두 지역은 공항특별법 동시 통과에 머물지 말고 달빛고속철도 조기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면제 특별법과 2038년 하계 아시안게임 공동유치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동맹협약을 맺었다.달빛동맹은 2013년 양 도시가 교류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최대의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정치권이 양분되고, 지방에 공항이 건설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진 수도권론자의 견제에도 공항관련 두 도시의 특별법이 통과한 것은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균형발전은 인구소멸 단계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극복해야 할 주요 국정과제다.지방도시에 경쟁력 있는 공항이 생기는 것은 지역에 새로운 경제축을 만들고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같다. 도시간 경쟁으로 나아가는 글로벌경쟁 시대에도 부합하는 일이다.두 도시는 공항건설에 이어 이번에는 대구와 광주를 1시간 내로 연결하는 달빛고속철도의 조기건설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달빛고속철은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포함됐지만 경제성과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예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모두 4조5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이 사업은 대구경북과 전남북, 광주, 경남 등 6개 광역시도와 10개 기초자치단체를 경유하는 철길로 국토균형발전에 기여할 또다른 사업이다.또 2038년 하계아시안게임 역시 지방의 두 도시를 업그레이드할 좋은 기회다. 달빛동맹이 중앙정책에 대응하는 발전적 연대모델로 자리를 잡아 국가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모범적 사례가 되길 기대한다.

2023-04-18

文정부의 일방적 脫원전…피해보상은 당연

영덕군이 아직도 문재인 정부 당시의 신규원전 건설계획 백지화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어 안타깝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지난 14일 영덕군이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제기한 원전 특별지원사업 가산금 회수처분 취소소송에서 ‘380억원 가산금 회수 처분이 정당했다’며 정부 손을 들어줬다. 2021년 10월 소송이 시작된 후 1년 6개월 만이다. 영덕군이 이 소송에 쓴 돈만 해도 2억2천만원(인지대 등 1억4천만원, 변호사 수임료 8천만원)에 달한다.영덕 천지원전 특별지원사업 가산금은 영덕군이 자율적으로 원전을 짓겠다며 군의회 동의를 얻어 정부에 신청한 대가로 2014∼2015년에 받은 돈이다. 그 후 영덕군은 문재인 정부가 2017년 6월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하면서 이미 지급한 가산금을 회수하기로 하자 가산금과 발생 이자를 포함한 409억원을 우선 반납한 뒤, 가산금 회수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영덕 천지원전은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이미 건설 예정지(석리·매정리·창포리 일대 324만여㎡) 지정 후 고시(2012년 9월)까지 한 상태였다.영덕군은 항소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회계법상 회수조치가 불가피해 승산이 없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어 곤혹한 처지다. 영덕군 입장에서는 원전 건설요청에 동의한 지방자치단체에 수혜성격으로 지급한 특별지원사업 가산금을 회수하는 것은 당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도 쟁점이 됐지만, 정부가 원전건설 취소로 특별지원금의 법적 근거가 상실돼 회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에 2심 승소도 불투명한 상태다.문재인 정부의 일방적인 원전 백지화 후폭풍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천지원전 건설예정지 고시 후 영덕군과 해당지역민들은 행정조치와 이주 등을 하면서 실질적인 피해를 많이 입었다. 영덕군의 경우, 정부의 일방적인 탈원전 정책 피해 당사자인 만큼, 이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는 반드시 취해져야 한다.

2023-04-18

부족함 속에 감춰진 능력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다.첫째,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기대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힘을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자신의 연설을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칠 정도의 말솜씨. 이처럼, 플라톤이 이야기하고 있는 행복의 조건에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완벽함이 아닌 부족함이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우리에게 지속해서 완벽함을 요구하지만 때로는 부족함이 우리의 인생에 더 큰 가르침을 주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이를 “부족함 속에 감춰진 능력”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앞서 언급한 부족함 속에 감춰진 능력은 빅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과 관련된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전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과 담금질 기법 알고리즘(Simulated annealing algorithm)의 전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전 알고리즘의 경우에는 선택(Selection), 교배(Crossover), 변이(Mutation), 엘리티즘(Elitism) 등의 전략에 따라 조금 더 포괄적으로 근사해를 탐색하며, 담금질 기법 알고리즘의 경우에는 메트로폴리스 규칙(Metropolis criterion)을 적용하여 항상 최적의 해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확률에 따라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해도 선택하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들은 결국 수많은 국소 최적해(Local optimum)를 가진 복잡한 문제에서 최적화를 수행하는 과정 중, 국소 최적해에 수렴하는 것이 아닌 전역 최적해(Global optimum)에 가까운 근사해를 찾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다시 말해, 이러한 알고리즘의 아름다움은 때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해가 탐색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위의 알고리즘 예제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눈높이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부족함은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필자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는 목적이 “5천인분을 먹을 수 있는 부자가 아닌, 5천명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5,000인분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완벽한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평소에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현재의 삶에 감사가 있게 되고 매사에 겸손한 자세를 지니는 원천이 될 것이다.부족함은 결코 우리의 삶에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에 더 많은 성장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한 부족함 속에는 분명 감춰진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2023-04-18

‘감사의 날’ 선포식장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비가 잦아든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될 무렵이면 하늘에서도 ‘때를 알아 좋은 비를 내리고(好雨知時節), 가는 비로 살며시 만물을 윤택하게 하니(潤物細無聲)’ 시의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 무렵의 비는 한 해의 풍년을 가늠하기도 하기에 단비(甘雨) 또는 희우(喜雨)라고도 한다. 이처럼 때맞춰 오는 좋은 비는 반가운 손님 마냥 기쁘고 반가우며 감사하기만 할 것이다.좋은 시절을 알고 때맞춰 내리는 비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의 마음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표현하는 시가 이러할진데, 사람사는 세상에는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얼마나 숱하고 즐비할까?“이 세상 무엇 하나/고맙지 않은 일이 있으랴//태어나고 자라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며 사랑하며/숨쉬고 먹고 자고 입고 마시고 즐기고 느끼며/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밝고 맑고 곱고 즐겁고 반갑고 멋지고/보고 듣고 읽고 말하고 쓰고 알고 배우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하며/일하고 땀 흘리고 노력하고 인내하고 성취하고 감동하고 만끽하고/은혜를 알고 표현을 하고 보답을 하고 마음에 되새기며/관심의 문을 열고 긍정이 물결치고 이해의 배를 타고 배려가 넘실대며/사랑이 샘솟는 온 누리 순간순간 감사의 빛살….//감사는 마음 따뜻한 선물/눈물겨운 행복이어라”-拙시조 ‘감사’ 전문(2012)어쩌면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감사하고, 일생을 감사하게 마무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감사의 울림은 끊임없이 메아리 치고, 고마움의 나눔은 햇살처럼 비춰 들기 때문이다. 매순간 숨쉬며 건강하게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만나서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며 베풀고 나눌 수 있음이 고맙지 않을까? 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작은 감사에서 비롯되며, 감사하는 습관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감사는 은혜를 아는 자의 마음의 열매이며, 감사한만큼 삶이 여유롭고 따뜻해질 것이다.감사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선진사회를 이루기 위한 ‘감사의 날’ 선포식이 최근 포항에서 개최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0년 전 범시민운동으로 다양하게 추진된 ‘감사운동’이 대한민국 1호 ‘인성도시’로 인정받은 감사의 메카 포항에서, 전국 최초로 민간 주도의 감사운동이 재시작된 것이다. (사)대한민국감사국민위원회는 5천만 국민의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매월 5일 오(5)!감사 엽서쓰기 등 전국민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국정목표로 출범한 현 정부와 함께 감사와 배려, 긍정과 나눔의 사회문화 정착으로 전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포항시산림조합, 포항교육지원청 등 130여 곳의 기관 단체들과 감사나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포항시감사운동본부를 창립하는 등 감사운동이 전국적으로 재점화해 감사와 존중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랬다.마음 따뜻한 감사, 향기나는 꽃길 같고 빛나는 보석 같은 감사문화의 확산으로 모두가 행복해지길 빌어본다.

2023-04-18

AI라는 미지

OpenAI社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ChatGPT가 화제다. 사용자의 질문에 답변해주는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인 ChatGPT는 생활과 관련된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어학, 공학, 인문학, 자연과학 등 각종 분야의 전문학술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답변할 수 있는 분야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 직종에서 활발하게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나 또한 글쓰기 강사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ChatGPT를 부분적으로 학습시키고 있다. 복잡한 부분까지 가르치기에는 학문적 소양이 부족해 무리이기에, 프로그램의 간단한 구조와 답변 방식, 글쓰기에 있어 활용할 수 있는 부분 등을 가르치고 있다. 시의성 높은 화제를 찾는 방법에서부터 ChatGPT가 답변해준 화제를 바탕으로 개요를 짜는 방법 등 글쓰기에 필요한 사전 작업에 응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헌데 일선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ChatGPT를 가르치다보니, 예상외의 반응이 느껴져 신기했다. 아이들은 내 생각과 달리 ChatGPT를 활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컸다. 레포트를 쓰는 데에 ChatGPT를 활용했다가 감점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반응에서부터, ChatGPT를 쓰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는 반응에 이르기까지. 예컨대, ChatGPT를 쓰는 건 정당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잘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이다. ChatGPT는 결국 검색 엔진이고, 검색 결과를 문장 형태로 출력해 보여주는 것일 뿐인데, 아이들은 ChatGPT를 일종의 치팅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글을 쓰고 결과물을 만드는 데 있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출판물만을 제 가격을 지불하여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ChatGPT에 대해서는 이런 반감을 느끼는 걸까. 이런 반응은 아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나와 같은 세대들도 회의용 문서를 작성하거나 연구를 하는 등에 있어 이러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일종의 치팅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사실 ChatGPT가 해주는 일이란, 인터넷을 검색하고 정리하고 요약하는 과정을 대신해주는 것일 뿐인데도 사람들을 ChatGPT가 인간 자체를 대신하는 존재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사실 ChatCPT는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인간의 주관적 감각에 기반한 정보, 예컨대 대상에 대한 호불호를 비롯한 주관적 정보를 출력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인터넷을 통해 접근 불가능한 정보는 취급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든 정보를 바탕으로 답변하기에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ChatGPT 또한 답변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ChatGPT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바로 결정과 책임이다. 그들은 우리의 일 가운데 일부를 대신해주는 것일 뿐,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인간 자체를 대신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결정과 책임. ChatGPT가 항상 올바른 답변만을 제시할 수는 없다는 모델 자체의 한계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건 모든 인간이 만든 도구가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어떤 도구도 인간을 대신해 결정하고 책임을 져줄 수는 없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만이 결정과 책임을 질 수 있다. 지금보다 훌륭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되더라도, 결정과 책임이라는 최소한의 자유의 영역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 장치의 신. ChatGPT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표현을 인용하며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로서 느끼는 인상은 ChatGPT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계 장치의 신도 아니고, 아주 간단한 답변조차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그럼에도 사람들은 ChatGPT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반감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자신의 업무를 대신해버릴 것이라는 공포에서부터, 그들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리라는 SF적인 공포, 혹은 프로그램이 잘못된 답변을 제공하면 어떡하냐는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포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런 설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공부를 해야 하고, 지식을 계속해 축적해 나가야만 한다고. 우리가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변의 정당성과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에 준하는 수준의 지식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건 기술이 아닌 지식이다.

2023-04-18

평점으로 평하지 않기

책상 앞에 앉아 활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고단하게 느껴지던 주말, 강원도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짙고 푸른 바다를 기대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막상 몇 시간이고 운전하노라니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저릿저릿했다. 고생한 것에 비해 해변에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이렇게 힘들게 와서 아무거나 먹을 순 없지’하는 생각으로 맛집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별점과 평가로 점철된 음식점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기 위해 끙끙거렸다. 그렇게 보고 싶던 바다를 앞에 두고 네모반듯한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보기만을 반복, 평점에 따라 선택한 식당은 더할 나위 없이 평범했다.그러한 경험은 여행지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생활 전반에서 평점에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배달앱의 별점을 따져가며 음식을 주문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때도 후기를 따라간다. 좋아하는 평론가가 높은 별점을 주었다는 영화를 우선순위로 선택하며 좋지 않은 평을 했다고 하면 ‘유치한 작품인가 보다’하고 지레짐작한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그렇다. 평론가들이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 가장 뛰어난 것처럼 읽히고 각종 출판사에서 부여한 상을 받은 작가들의 신작 위주로 작품을 찾아 읽게 된다.어쩌다 이렇게 평점에 의지하게 되었을까? 인생은 시험이 아니라고, 만점을 받기 위해 애쓰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뭔가에 너무 쉽게 점수를 매기고 또 거기에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무언가를 별 다섯 개로 평가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개개인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일은 꼭 필요하기도 하다. 평점에 도움을 받는 일도 많다. 정말 좋은 것들이 선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꼭 부정적으로 보아야만 하나 싶기도 하다.바야흐로 정보 과잉의 시대다. 뭔가를 구매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하면 비슷한 상품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현명하게 골라내지 못하면 우매한 소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뭐가 좋은지 나쁜지 따져보다가 하루가 다 가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이미 그것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평가일 수밖에 없다.이제 큐레이터의 활동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를 선별하여 전달해주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늘어났다. 그것은 예술작품을 떠나 생활면으로 확장되었다. 가구, 식물, 의복, 음식과 생필품에서도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의 조언에 따라가다 보면 편리하고 무언가를 소비할 때 실패할 위험성이 낮다.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를 편견 없이 직접적으로 겪어보는 일이 드물어질 수밖에 없다.매일매일 최신의 것이 자꾸자꾸 등장한다. 바쁘고 빠르게 시간은 흘러간다.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소비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안전한 것만 추구하다 보면 전형성이라는 틀에 갇히게 된다. 유연함은 사라지고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다.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를 망쳤다는 생각이 들고 취향이 아닌 영화를 보면 무의미하게 시간을 버린 것만 같다. 그것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지만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매일 실패해야 한다. 그러한 실패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시선과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그것은 성공에 가깝다.자본주의 사회에선 모든 것에 차등을 둔다. 높은 별점을 받은 식당이나 물건이 더 많이 전시되고 소비되는 것은 마치 공정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물건이나 공간을 넘어서 인간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곳에서 그런 식으로 개개인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존엄까지도 수치화된 세계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가깝다.무언가를 선택할 때 평점에 현혹되지 말자는 당연하고도 어려운 결심을 해본다. 놀라운 사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근사한 관계는 오해에서부터 시작된다. 별 다섯 개로 규정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할 때 비로소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2023-04-18

OCI미술관 지방순회전, 문예 발전에 건강한 역할 수행 기대

허혜지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팀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는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고미술 전시 ‘완상(玩賞)의 벽’을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는 OCI미술관에서 OCI(주)와 함께 추진하여 포항을 이어 광양, 군산을 순회할 예정이다. OCI미술관은 개관 이후, 격년제 전시로 지역민을 꾸준히 찾아왔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4년 만에 전시를 개최한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지 않을 수 없다.‘완상의 벽’은 우리의 도자기와 회화를 선보인다. 사실 전시 제목에서 ‘완상(玩賞)’은 ‘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한다’라는 뜻으로, 전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완상 문화를 소개한다. 사실 ‘그릇’은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문인들에게는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굳게 지키면서도 일상의 겪을 높이는 물건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도자 그릇들은 부엌의 실용품이자 서가를 장식하는 예술품으로 수집되었다. 결국 완상의 대상은 저마다 가지각색이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것은 그릇이었고, 이는 공예를 넘어 회화에도 영향을 끼치며 한국의 대표적 완상 문화로 자리 잡았다.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먼저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청자이다. 청자는 특유의 비색(翡色)과 유려한 형태로 고요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사방 연속으로 만자문의 표현이 깃든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은 당대의 수준 높은 미의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시는 회화로 이어지는데, 이는 회화 속에서 그릇이 비중 있는 소재가 되었음을 시사한다.‘완상의 벽’은 한국의 완상 문화를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OCI 그룹의 창업주인 송암(松巖) 이회림 선생이 수집한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로서 그 의미 또한 크다. 특히 한 개인이 수집한 사적 취미가 깃든 작품을, 기꺼이 아무런 제약 없이 나누는 것은 예술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OCI미술관은 지방순회전을 꾸준히 기획하여 지방 사업장이 있는 도시에서 다양한 전시를 선보여 왔다. 이는 예술을 매개로 기업과 지역 사회 간의 교류를 증진하고, 문화 향유의 기회를 지역민들과 나누려는 기업의 메세나 정신이다. 더욱이 OCI(주)는 미술관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창작 활동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기업의 ESG+메세나를 확대해오고 있었기에 기업의 메세나 정신이 더욱 와닿는다. 바라건대 앞으로도 OCI(주)가 문화예술을 통한 창의적이고 선진적인 기업문화의 발전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시민들이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발전에 건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23-04-17

황리단길 유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포항과 경주는 지척이다. 경주에 가면 주로 황리단길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다. 황리단길의 경관은 1960, 70년대에 지어진 구축을 리모델링한 것이 주를 이루지만 일본식 이자까야(주점)나 일본식 라면집, 퓨전 일식집 등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여행 후기를 찾아보면 ‘일본풍 가게가 많다’는 감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가게들의 맛과 서비스에 만족했다는 반응이 많지만, 기대했던 풍경이 아니었다며 실망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황리단길 유감’이다.황리단길이 소위 ‘왜색’에 물들었다고 단순하게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황리단길에는 일식 외에도 맛있는 식당과 카페, 재미있는 상점들이 많이 있다. 특히 십 원짜리 동전에 불국사 다보탑 문양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십원빵’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진짜 문제는 ‘황리단길 유감’에 내재된 지방에 대한 대상화와 고정관념이다. 서울(수도권)에서 이따금씩 여행 삼아 지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지방이 그들이 생각하는 ‘지방다움’을 유지하기 바란다.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 전주는 한옥마을, 부산은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가 나야만 한다. 지자체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지방다움’을 강화하는 사업들을 진행한다.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지나치다 싶은 경우도 많다. 1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인천의 ‘새우 타워’가 대표적 사례다.이러한 기대와 부응의 프로세스는 기존 거주민들을 소외시키기 쉽다. 때로는 주거지역의 관광지화로 기존 거주민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지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 일어나기도 한다. 황리단길이 황리단길이 되기 이전,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황리단길’ 사진들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낙후된 주거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지금의 황리단길은 일종의 테마파크가 되었다. 방문자들은 경주 주민들의 일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공간을 거닐며 ‘맛집’과 ‘인스타 핫플’을 즐긴다. 사진만 잘 나온다면 일식이든 한식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지금 황리단길에 투입된 자본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물론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경주 여행’들이 축적되었을 때, 어떤 헤리티지(문화적 유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이다. 냉정히 말해 SNS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오는 식당이나 카페를 꼭 황리단길에서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황리단길보다 더 ‘핫한’ 또는 ‘힙(hip)한’ 거리가 나타나 입소문을 타게 되면 지금의 인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장소의 헤리티지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과정이 누적되어 만들어진다. ‘경주 황리단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험은 경주 주민들의 삶, 경주의 다른 장소들과 어떻게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인가? ‘왜색 논란’을 넘어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2023-04-17

명확하고 공정한 법으로

김규인수필가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근로자 김용균 씨 압사 사고, 이천 물류창고 건설 현장 화재 사고, 모 중공업의 아르곤 가스 질식사고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산재로 인한 사망률은 줄곧 상위권을 차지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작년에도 6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산업현장에선 잠시 방심하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일어난다. 특히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는 요즈음의 건설 현장의 추락사고는 사망으로 이어진다. 기본 자재가 중량물이 많아서 운반 시에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중량물을 떨어뜨려서 신체 일부를 다치거나 낙하물에 부딪혀 다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기계를 다루는 산업현장도 회전체에 신체 일부가 감기거나 회전체 사이에 몸이 끼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물건을 운반하는 지게차에 부딪히고 공기가 부족한 공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가 질식사하는 경우를 언론을 통해 접한다. 교통사고 없는 날이 없고 이번에는 다리의 인도교가 무너지는 사고까지 발생한다.이러한 와중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를 막지 못한다. 법의 제정 당시에는 경영자의 불만이 많았고 사고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왜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와 근로자의 부족한 안전 의식도 있지만 중심을 잃은 언론과 급속한 성장에 젖어 결과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도 남의 일인 양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언론은 흔들리는 눈으로만 본다. 언제나 사고의 본질은 묻힌 채 신문 기사가 나가고 독자들을 모으는 일만 중시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는 사고의 예방과 공정한 법을 만드는 것보다 표를 얻기 위해 지지자만 바라본다. 경영자도 유권자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대재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 그런데도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법 조항, 경영자에게 과중한 불공정한 처벌은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법은 명확하고,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합리적이며 실행 가능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외면당하는 법은 힘을 잃고 만다.2024년부터는 5인 이상의 중소기업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는다. 대기업은 그나마 조금 낫지만, 정보나 기술이나 자금이 모두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는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자금과 기술과 시장을 모두 관리하는 대표의 구속은 회사의 존립마저 어렵게 한다. 경영자를 향한 처벌이 나머지 근로자의 생계마저 위협하는 꼴이다. 법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국회에서는 자문해 보아야 한다.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실행 가능해야 법의 생명력이 길어진다. 법을 지켜야 할 국민들이 외면하는 법은 존재 이유가 없다. 고용노동부는 처벌 보다 사업장 스스로 안전 체계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 방향을 바꿨다. 중대재해 법령을 개선하는 태스크포스팀을 발족하여 6월까지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사고 없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가능할까. 안전에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올해는 안전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지는 한 해가 될 수는 없을까.

2023-04-17

쇠퇴하는 동성로 상권 살리기에 나선 洪시장

코로나19와 경제불황 등으로 최근 급속히 쇠퇴하는 대구 동성로 상권에 대한 점검을 위해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4일 직접 동성로 현장을 둘러보았다. 홍 시장은 통신골목에서 시작해 대구역까지의 거리를 둘러보고, 공실 상가와 상인 등도 만나 업계의 애로를 청취했다. 옛 중앙파출소에서 대백 앞을 거쳐 대구역까지 연결되는 0.92km의 동성로거리는 오랫동안 대구를 대표하는 젊음의 거리다. 10년 전만해도 하루 평균 50만명이 찾는 등 서울 명동에 비견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붐볐다. 외지 관광객이면 반드시 들리는 쇼핑관광코스기도 했다.코로나19 확산과 온라인 위주로 바뀐 유통구조, 대구 부심권의 새로운 상권 형성 등으로 동성로 상권은 언제부턴가 급속도로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역에 본사를 둔 대구·동아백화점 본점이 문을 닫고, 롯데영프라자, 호텔 등이 잇따라 폐쇄되면서 동성로에는 이제 빈 상가가 늘기 시작했다.한국부동산원 조사에 의하면 대구 동성로 소규모상가 공실률은 2018년 2.3%에서 2022년에는 14.8%로 늘어났다. 전국 평균(6.9%)과 대구 평균(8.2%)을 월등히 앞선다.“동성로가 살아야 대구가 산다”고 할만큼 동성로는 대구의 자랑거리이자 시장경제의 중심지다. 쇠퇴하는 동성로를 살릴 묘책이 절실하다. 시대흐름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 개발과 이벤트 등으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지난해 탈락했던 관광특구 지정을 다시 추진하고, 주차시설 확충 등 도시 재정비 사업도 서둘러야 한다.때마침 홍 시장이 이곳을 둘러보고 “동성로 상권 부활”을 약속했다. “젊은이가 문화와 공연을 즐기고 먹거리가 풍부한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홍 시장은 취임 후 대구 현안에 대한 추진력 있는 사업으로 성과도 많이 냈다. “동성로를 리모델링해 상권을 부활시키겠다”는 그의 약속에 시민의 시선이 주목되고 있다.동성로는 대구근대역사길과 대구약령시 등과 맞닿아 있다. 쇼핑과 문화공연 등이 어울려지면 젊은이가 붐비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 ‘젊은이의 거리’ 동성로의 재탄생을 기대한다.

2023-04-17

포항 송도해수욕장의 재탄생

홍석봉 대구지사장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포항 송도해수욕장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피서지였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개장, 해마다 여름철이면 수 십만 명의 피서객들이 찾는 명소였다. 1980년대 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하지만 1968년 포항 철강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수질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해양환경이 변했다. 태풍으로 인한 모래 유실이 가속화되면서 백사장이 점차 황폐해졌다. 2000년대 들어선 사실상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많을 때는 12만 명의 방문객이 찾았던 해수욕장이 결국 2007년 문을 닫고 말았다.추억만 남긴 채 그렇게 기억에서 멀어져간 송도해수욕장이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폐장 16년 만인 올여름 재개장을 목표로 준비작업이 한창이다.송도해수욕장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포항시는 2012년부터 294억원을 들여 백사장 복원 공사를 벌였다. 그 결과, 백사장 모래 품질과 수질 등이 지정 요건을 갖춰 해수욕장을 재개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주민들은 백사장이 되살아나고 해수욕장이 재개장하면 주변에 새로 조성된 운하와 솔밭 등이 한데 어울려 송도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을 염원하고 있다.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 입점도 희소식이다. 주민들은 이미 유명 커피숍과 카페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일대에 조성된 카페문화거리의 분위기가 더욱 풍성해질 것을 기대한다. 이곳에 자리잡은 카페들은 매장에서 동해 바다와 울창한 소나무 숲, 포스코의 야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젊은층 사이에 카페문화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인생샷’을 찍는 문화가 유행이라고 한다. 또다른 매력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송도해수욕장의 재탄생이 기다려진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17

‘신공항경제권’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4월 1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 후 4개월이 경과한 8월부터 시행된다.언론에서는 이날을 대구와 경북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역사적인 날로 지칭했다.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사업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구 동·북구 주민들이 군사공항 K2의 소음과 개발제한 등의 피해를 호소하며 시작되었다. 당초에는 군공항만의 이전에서 영남권 신공항건설 백지화로 인해 기부대 양여방식의 군민간공항 통합 이전으로 전환되었다.많은 진통 끝에 군위군·의성군 공동 통합공항 이전 후보지가 결정되고는 통합공항 이전이 순항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법 통과도 쉽지 않았다.그러나 대구경북 미래 50년을 견인할 ‘통합신공항특별법’은 지역민의 염원을 담아 마침내 입법되었다. 당초는 항공기 소음과 개발제한이라는 환경·안보 문제로 인한 군공항 이전 사업이 이제는 국토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제고를 위한 ‘통합신공항 건설과 종전부지개발’로 크게 변모하게 된 것이다.코로나 백신 접종 확대와 국제 여행 규제 완화로 인해 글로벌 항공 여객 수요는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고, 앞으로 안전한 여행 환경이 조성되면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화물 시장도 전세계 국제 무역 및 전자상거래 확산, 글로벌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 등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기술 및 항공기 유형의 도입, 저비용 항공사의 확장, 인프라 투자 및 개선 등이 미래 항공화물 시장의 성장을 크게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현재의 대구국제공항 시설은 부지면적의 98%가 군소유이며, 중단거리 운항 항공기만 이용할 수 있는 짧은 활주로만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터미널은 이미 처리용량을 넘어선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여기에다 국제 항공화물은 수도권 인천공항이 무려 국내 항공화물의 98.6%(2019년 중량기준)를 독점 처리한다. 대구와 경북 등 수도권 이외 지역 기업은 촌각을 다투는 수출용 고부가가치 항공화물을 처리하기 위해 인천공항까지 보내는 내륙운송 물류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로 인해 첨단 신산업을 영위하는 핵심 기업은 인천공항에서 멀어지지 못하는 것이다.‘공항경제권’은 대구경북 신공항과 같은 대형 공항 주변(10~20㎞)에 신공항도시(Air-City)와 첨단산업단지가 건설되어 국제 및 지역간 교통과 물류 인프라에 의존하는 다양한 기업과 산업이 형성되는 곳이다.이 지역은 교통 및 물류 효율성, 다양한 기업 및 산업 협력, 경제적 효과, 국제화를 통해 지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촉진한다. 또한 ‘공항경제권’을 핵으로 대구경북 지역과 주변지역 산업단지와 공항후적지를 고속철도와 도심항공교통(UAM)으로 연계한 ‘초광역경제권’ 형성도 촉진한다. 이와 같이 ‘대구경북통합 신공항경제권’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 50년 대변화를 이끌 것이다.

2023-04-17

활력잃은 영일만항, TK관문으로 再起하길

‘제2의 영일만기적’을 꿈꾸며 개항한 포항 영일만항이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니 안타깝다. 영일만항 운영주체인 포항영일신항만(PICT)은 최근 적자경영을 견디지 못해 회사 매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PICT의 최대주주는 대림건설(29%)이며, 포스코건설과 코오롱건설 등 국내 6개 건설사, 그리고 경북도와 포항시(각 10%씩 지분보유)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PICT는 그동안 선사와 물류유치 등 다양한 경영개선 노력을 해 왔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제철소 생산물량이 급감한데다, 항만 물동량과 선박입출항이 줄어 경영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적자 누적으로 금융권 차입금이 350여 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해양수산부와 경북도·포항시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경영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 신세가 된 것이다.지난 2009년 8월 20여 년간의 공사 끝에 개항한 영일만항은 포항제철소에 이어 제2의 영일만기적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개항 당시 영일만항의 목표는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와 정부 북방정책의 물류 거점항만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5월에 포항시가 영일만항의 항로 다변화를 위해 필리핀 마닐라항,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과 정기 컨테이너 항로개설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남북경협과 북방교역이 벽에 부딪히고, 부산항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면서 PICT가 경영난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북방교역의 경우, 미·중의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향후 전망도 비관적인 편이다.PICT는 현재 대형선사와 물류전문기업을 대상으로 매각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부채가 걸림돌이 돼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의 특성상 대형선사나 물류전문기업이 PICT를 인수하는 것이 경북도와 포항시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영일만항이 하루빨리 새로운 주인을 찾아 대구·경북이 태평양 연안에 있는 각국과 활발한 경제교역을 하는 관문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2023-04-17

17세기 어느 저명인사에 대한 가짜뉴스의 진실

김령의 ‘계암일록’ 중 8책, 신사년(1641) 일기 수록. /사진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선인의 일상생활, 일기(https://diary.ugyo.net)’ 21세기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신속한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편의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심각한 폐해도 야기하고 있다. 책임 없는 표현의 자유가 무한하게 허용되면서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정보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그 안에 가짜뉴스가 있다. 카더라식 억측 보도를 넘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민 뉴스, 현재 세계는 이 가짜뉴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가짜뉴스의 최대 피해자는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다. 가짜뉴스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고 또 그물망처럼 얽히게 되면서, 가짜뉴스의 양산과 유포는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조선 시대에도 가짜뉴스는 존재했다. 경상도 예안의 선비 김령(金坽·1577~1641)은 일기에서 이와 관련한 일화를 기록하며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었다.1641년(인조18) 1월 8일의 일기에서 김령은 3일 전 초5일에 여강서원의 사당 참례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가짜뉴스 일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날 권귀중이라는 인물의 성명을 서원 명부에서 지워 버렸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얼토당토않은 말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을 비난하고 배척했기 때문이었다.권귀중은 평소 떠들고 다니길 1577년 인종(仁宗)의 정비(正妃)인 인성왕후(仁聖王后)가 세상을 떠나 국상(國喪)을 치를 때 그 초기에 김성일이 소를 잡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말의 출처를 따져 물을 때마다 권귀중은 ‘안동의 어떤 사람에게 들었다’라며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었는데, 이날 여강서원 사당 참례 때 그 출처가 정유번이라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백성 전체가 상복을 입는 왕실의 초상에 사가(私家)에서 소를 잡았다는 루머를 퍼뜨렸으니 김성일의 명예가 실추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김성일은 경상도 안동 출신으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1568년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는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되어 의병장들과 함께 전투를 이끌었다. 이듬해 경상우도순찰사를 겸해 도내 각 고을에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령은 ‘계암일록’에서 다음과 같이 일기를 이어나갔다.“이때 와서 비로소 그 말이 정유번의 혀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정유번은 비루하고 패려궂은 인사로 매우 형편없는 자인데, 권귀중이 그의 말을 곧이듣고 함부로 선대의 현인(賢人)을 비난한 것이다. 대개 섭섭한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 하니, 통탄스럽고 분하다. 정축년(1577) 겨울, 국상(國喪) 초기에 지역이 멀어서 미처 부음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안동 임하의 한 일가에서 일이 있어 소를 잡았다. 그러나 부음을 듣자마자 쇠고기를 다른 곳에 두고 아주 탄탄하게 봉해서 닫아 두었다. 이 당시 학봉[김성일]은 서울에 있으면서 미처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때였다. 그때에도 와전된 말이 있어서 임하의 온 문중이 이를 변론해 바로잡았는데, 어찌 60년이 지난 뒤에 또 이것으로 학봉에게 누를 끼치려 할 줄을 알았겠는가? 권귀중은 이 땅에 용납될 수 없는 자이다. 소인을 한을 품은 독이 매우 우려스럽다.” -김령의 ‘계암일록’ 1641년 1월 8일의 일기 중에서김성일 사후 60년이 지났음에도 그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김성일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기에 다행스럽게도 이 가짜뉴스는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물리적 거리에 따라 소통의 원활성이 결정되던 시대에는 정보 수집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변형되거나 왜곡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의도적이라기보다 입소문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물론 앞의 사례처럼 여러 가지 이유에서 악의를 가지고 악성 루머를 만들어내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오보나 허위 악성 루머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파급 범위와 영향력이 막강하지는 않았다.급속도로 발전된 기술력 위에서 가짜뉴스는 생산과 동시에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더욱이 지금은 사적 이익 추구만을 목적으로 처음부터 드러내놓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실정이다. 출처를 따져 진실을 가린다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리니 가짜뉴스에 현혹된 대중의 관심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넘치는 정보 속에서 사실과 거짓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팩트체크’가 수반되어야 할 만큼 정보를 걸러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에,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의심해야 하는지 반드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2023-04-17

시간의 음악과 움직임의 음악

정점을 향한 여정에 이제 한 발짝만을 남긴 인물이 있다. 물론 그 정점 너머 또 다른 목표지점이 나타나겠지만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지점의 초입에 다다른 사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며, 8개의 말러 교향곡 실황 녹음에 마지막 5번 교향곡 실황녹음을 앞두고 있는 ‘리디아 타르’. 물론 가상인물이다. 베를린 필은 한번도 여성 지휘자를 선임한 적이 없다.영화는 초반부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타르’가 쌓아 올린 음악에 대한 업적과 생각, 일관된(절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견해를 듣는다. 이 모든 것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고난과 극복의 과정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될 앞으로의 계획과 견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구구절절하지 않고, 단순하며 예리하게 반짝이는 어떤 존재의 강연을 듣는 느낌이다.대개의 경우 성공담이라고 하면 응당 뒤따르는 고난과 극복,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의 단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에 놓여 있는 길,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길이 아닌 밝고,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이는 길이지만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던 길의 마지막 지점에 가장 근접해 있는 마에스트로의 모습이다. 확고하고 의지에 차 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이미 성취된 것과 같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이렇듯 완고하고 완벽한(?) 정체가 도달한 예술(음악)의 빈틈없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토크쇼가 진행되면서 “요즘 시대에 다양하다는 건 좋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지금은 ‘전문가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종과 성별, 모든 것을 망라한 최고점의 존재로서의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의미로 읽힌다. 여성성을 대변하는 ‘마에스트라’라는 단어의 필요성 보다는 남성성을 대변하는 단어로 인식되는 ‘마에스트로’로 불리우길 원한다. 그래서 타르의 관점은 일관되었으면서 절대 다양하지 않다고 하겠다. 이제 정점의 초입에서 빛나던 존재의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직접적이지 않고, 격정적이지 않다.우회적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며 균열을 일으키는 내리막길을 보게 된다. 타르가 했던 말들과 행동, 생각들이 스스로를 향하면서부터 붕괴된다. 그 와중에도 기존의 권위와 명성을 높여가며 범접할 수 없는 지점으로 향해간다.영화 ‘TAR(타르)’는 외연적으로는 차갑지만 그 내부는 뜨겁게 끓어 오른다. 성공의 여정이 아닌 무너지는 지점으로 향하는 과정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악보를 흝는 것과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타르’는 “음악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속도다. 정해진 음표 속에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지휘자의 해석으로 연주된다. 그 속도 속에서 강약이 더해진다.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며 높고낮음을 조절하면서 음악은 진행된다. 타르의 음악에 대한 관점과도 같이 진행되며 사건은 차갑고 우아하며 단조롭게 시작되어 한순간에 그녀의 모든 것들을 무너뜨린다.하지만 견고했던 것을 무너뜨리는 쾌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극적이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만 쉽게 그것을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내부적으로 흔들리고 외부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며 임계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심판하지 않는다.추락한 그녀는 고향 집으로 돌아와 오래 전에 보았던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레너드 번스타인의 “모든건 음악은 움직임에 있으며,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흐르며, 그 움직임은 백만 단어보다 더 많은 걸 말한다”라는 회고담을 들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실존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가상인물 ‘타르’와는 다른 결의 마에스트로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실제 존재했던 20세기 위대한 지휘자처럼 베를린 필하모닉의 ‘황제’ 카랴얀처럼 시작한 타르는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자들의 친구’ 번스타인의 길을 보게된다. 바닥에서 다시 일어날 것인가는 마지막 장면의 해석으로 남는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4-17

불법 저지른 후보가 유리하면 안 된다

김진국 고문 신뢰도 조사를 하면 국회가 언제나 꼴찌다. 지난해 전국 지표조사에서 국가기관별 신뢰도를 물었더니 국회는 15%였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는 정치인을 믿는다는 응답자가 3.1%에 불과했다. 역시 바닥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넘친다. 신뢰를 생명으로 삼는 직업군에도 불신이 쌓여간다. 그렇지만 시공을 넘어 가장 불신받는 게 정치인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정치인이 부정과 비리, 특권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억울할지 모른다.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 없는 훌륭한 정치인도 있다. 그렇지만 정치인의 비리 사건, 특권의식과 갑질이 수시로 불거지니 여론탓만 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자치단체장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다. 그런데도 자기 손으로 뽑은 대표를 가장 믿지 못하니 참 딱하다. 정치인을 믿지 못하니 국민의 대표로서 수행한 일들을 믿을 수 없고, 대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도 어렵다.범죄를 수사할 때 가장 먼저 돈을 추적하라고 한다. 정치야말로 돈을 따라가야 이해할 수 있다. 돈이 이권만 사는 게 아니다. 표도 사고, 권력도 산다. 특히 과거 일본의 파벌정치는 보스가 정치자금을 마련해 돈과 공천을 나눠주고, 충성을 받았다. 우리도 과거 그런 행태를 따라 했다. 3김 정치가 그 시대의 마지막인가 했다. 그런데 아직도 남았다.전두환 정부까지는 여야의 정치자금은 비교가 안 됐다. 집권당이 폭포수를 받아쓴다면 야당의 정치자금은 폭포에서 떨어진 물방울 정도라고 했다. 야당은 정치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야당에 정치자금을 전달한 기업은 세무조사 등 보복을 당하기 일쑤였다. 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받기 위해 일부 나눠주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선거에 3천억원을 썼다고 회고록에 썼다. 그런데 김대중 야당 총재에게 20억 원을 줘 95년 문제가 됐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가능해지면서 야당도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인기를 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송중기 분)은 할아버지 진양철(이성민 분)에게 여당 후보에게 베팅하라고 조언한다. 진도준은 미래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조언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미래를 모르는 기업인들도 노태우 후보에게 훨씬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당장 정권을 쥐고 있어 언제든 보복할 수 있었고, 정권교체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자유당 시절은 물론 박정희 시대에도 막걸리, 고무신이 돌아다녔다. 5당4락이니 하며 선거자금으로 당락을 가르는 말이 나돌았다. 그에 비하면 많이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만큼 정치도 자유로워졌다. 그런데도 아직 돈 선거의 잔해들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을 뿌렸다는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현역의원 10명 등 40명 정도가 연루됐다고 한다. 민주당은 기획 수사라고 비난하지만, 녹취록이 나왔다. 녹음파일을 만든 이정근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시인했다고 한다. 부인만 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3만 건이나 되는 녹음파일을 풀고 준비작업을 한 것 같다며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조직선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돈이 필요하면 정당하게 정치자금법을 손질하는 게 옳다. 불법을 저지른 후보가 더 유리해서는 안 된다. 감춰진 돈에는 악취가 나기 마련이다. 불법 정치자금은 불법 선거로 이어지고, 당원의, 혹은 국민의 뜻을 왜곡하게 된다. 대장동 사건에서 보듯 용적률을 조금만 조정해줘도 수천억 원이 생긴다. 예산을 쏟아붓는 건 공짜 돈 같지만,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윤석열 정부가 아직도 아마추어라고 비판받는다. 잘하는 게 있다면 비리 수사다. 윤 대통령은 과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칼질한 경험이 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시대적 과제가 공정과 정의다. 민주주의가 바로 서려면 독재는 물론 돈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정치가 좀 더 깨끗해질 수 있도록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업적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16

100세 시대와 운전면허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울시가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시 10만원짜리 교통 카드를 주는 제도를 4월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한다.여러 지방자치 단체들이 앞다투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제도의 찬반양론과 함께 이 제도를 둘러싼 잡음도 일고 있다.일부 시·군들이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할 경우 인센티브로 제시한 현금이나 지역 상품권, 교통카드 등을 차일피일 미루며 수개월째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시·군들은 정부가 국비지원을 미뤄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행정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내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국민 5명 중 1명이 소위 ‘고령’이 되는 셈이다.유튜브에는 100세 시대에 젊게 사는 방법 등이 넘쳐 난다.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이를 20년 세월을 돌려 살아가라는 이론이다. 34세 나이에 미국 하버드대 역사상 최초로 여성 심리학과 종신 교수가 된 엘렌 랑거 교수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으로 유명하다. 그는 1979년 실험에 참여할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남성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오하이오주 지역 신문에 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심리적인 시간을 되돌릴 때 나타나는 사람의 생리적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연구팀은 시골의 한 수도원에 모였다. 수도원 내부를 20년 전인 1959년처럼 꾸몄다. 1959년 이전에 생산된 TV·라디오·신문·가구·집기 등을 배치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1959년 당시 드라마·뉴스·쇼가 흘러나왔고 신문도 1959년의 것이었다. 한마디로 1979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누가 봐도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도록 했다.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고 한다.실험에 참여한 시니어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가 놀랍도록 좋아졌다고 한다. 랑거 교수는 이를 “정신이 젊어지면 육체도 젊어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논문에 발표하였다. 이 실험은 시니어들의 젊게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이들은 ‘노인’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한다.시니어 전용 영화관에 들른 적이 있다. 티켓에는 ‘노인 할인’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더구나 그것도 55세 이상 노인 할인이라는 단어였다.문득 ‘노인?’하면서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그 하나의 느낌은 왜 55세가 노인인가 하는 생각이었다.평균 수명 80세가 넘고, 그리고 곧 평균 수명 100세가 다가오는 시대에 있어서 노인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신문을 보면 “노인들 겨울건강 주의보” “노인 교통사고 급증” 등 기사제목을 보면서 몇 살을 기준으로 노인이라고 하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또 하나의 다른 느낌은 과연 ‘노인’이라는 단어를 꼭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이 노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나이가 되면 노인이라는 단어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영어권 국가의 예를 보면 노년이란 단어에 해당하는 Old Man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시니어 시민(Senior Citizen)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시니어란 번역한다면 ‘선배’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극장 같은 공공 공연 장소에서 할인을 하는 경우 시니어 디스카운트(Senior Discount)란 단어를 사용한다.나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이가 들면 마땅히 다 병이 생기고 쇠약하게 되며 외모가 나빠진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노안, 노망, 노환이라는 질병 용어가 생겼고 노쇠하고 노약하다는 표현도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그러한 선입견을 몰아낸 ‘인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70세 가까운 나이의 시니어가 30대의 젊은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인데,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젊은 사람 밑에서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다. 오히려 내가 그 젊은 사람보다도 더 젊다는 선언이 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다.나이는 숫자가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니어’라는 말도 좋고 ‘선배님’‘선생님’이란 좋은 단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이제 노인이란 단어는 묻어야 한다.이제 100세 시대에 우린 살고 있고 시니어들의 활약도 사회의 중요한 몫이 되고 있다.그런 측면에서 운전면허반납 제도는 여전히 동전의 앞면을 가지고 있다. 시니어들이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 되는 것도 문제이다. 통계적으로 유의차가 있는 나이가 언제인가를 분석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운전포기는 결국 외출이나 행동반격을 좁히면서 건강에 해롭다는 100세 건강관리 이론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앞서 언급한 엘렌 랑거 교수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젊게 생각하면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젊음을 유지하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건 시니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100세 시대 운전면허 반납 제도는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2023-04-16

특정 종교 단체의 정치 간여 이대로는 안 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정치에서 일부 종교 단체의 정치 참여가 도를 넘고 있다. 우리의 양극화되고 분열된 극한 정치에서 파생된 기이한 현상이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양자는 상호 존중할지언정 지나친 간섭과 투쟁은 우리 정치를 더욱 혼탁케 하고 불안케 한다. 정치의 궁극 목적은 흔히 말하는 국리민복이다.종교는 불완전한 인간이 초월자를 통해 참된 행복과 구원의 길을 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양자는 다른 영역인데 종교는 현실 정치에 야합하여 득을 보려 하고 정치는 종교 세력을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다.서구 기민당처럼 종교의 이상이나 진리가 정강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세 정교일치도 아닌 현대 사회에서 종교를 정치의 수단화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광훈 목사처럼 정치적 간여나 투쟁행위는 오히려 국민을 불안케 하고 정당정치의 퇴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과거 공산 독재국가나 오늘의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정치를 철저히 종교화하였다. 평양의 거리에서는 ‘김일성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미 김일성 부자는 신격화되어 인민의 우상으로 고착된지 오래이다. 3대 수령에 대한 믿음과 존중은 종교처럼 내면화되었다.주민들은 수령을 절대적 칭송과 흠모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공산권의 개방화 과정에서 공산 독재자들의 동상은 파괴되었다. 러시아 레닌의 동상마저 사라지는데 김일성 동상에는 아직도 참배객이 늘어나고 있다. 수령의 만경대 생가는 성역화되었고, 북한의 가정에는 수령 초상이 걸린 지 오래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은 북한수령을 통해 완전한 생명을 부여 받는다는 ‘사회 정치 생명체론’으로 대치되었다. 결국 북한당국은 정치를 종교화하여 체제 통제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최근 전광훈 목사의 정치 간여는 국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전 목사는 오래전부터 본 회퍼의 이론을 앞세워 광화문 보수 강경집회를 주도해 왔다.그는 줄곧 문재인 정권의 퇴진에 앞장서면서 강경 보수 정치인들을 집회에 끌어들였다. 그는 강경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진보 세력을 용공으로 매도하였다.전 목사는 각종 선거뿐 아니라 국민의힘 당의 당 대표 선출과정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한 흔적을 남겼다. 그가 지방선거뿐 아니라 차기 총선 공천권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전 목사는 기존 기독교 단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자기 과시형 언행을 쏟아 내었다. ‘하느님도 내 말 듣지 않으면 그냥두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최근 국힘당 김재원 최고위원의 ‘전광훈 목사가 자유우파를 통일했다’는 발언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쯤 되면 그의 행태는 목사이기 전 선동 정치인이다. 일부에서 그를 예언자로 칭송하지만 국힘당에서는 그를 시급히 손절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다.가톨릭정의사제구현단의 활동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어느 신부의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시의 비행기 추락을 위해 기도했다는 발언은 가톨릭의 가르침에도 크게 벗어난다. 가톨릭 성직자의 금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지난주 전주에서부터 출발한 정의사제구현단의 정치 집회에도 곱지 않는 시선이 존립한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성을 규탄하기 위해 전국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여기에도 진보와 보수의 찬반양론이 대립한다. 과거 가톨릭정의사제구현단은 유신 체제 타도라는 명분으로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암울했던 독재 정권 시절 그들이 고통받는 민중의 선봉에 선 역할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도 안 된 시점의 대통령의 탄핵 주장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따른다. 성직자인 사제의 입장은 정치적 투쟁이 아닌 종교적 신앙적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의 활동이 자칫 정치를 더욱 분열을 조장할까 우려된다.결론적으로 종교인들의 정치 간여와 투쟁은 자제되어야 한다. 자칫 이들의 행위가 이 나라의 양극 정치나 진영 정치를 조장하고 갈등과 저주의 정치를 촉발하기 때문이다.물론 전 목사의 정치 투쟁과 정의사제구현단의 행태를 평면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종교와 정치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며 양자의 범주 착오와 침범은 국론분열만 조장한다. 목회자나 성직자들이 정치에 직접 간여하려면 그들의 신분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영달이나 지지세 확산을 위해 종교 세력을 정치에 끌어 들이는데도 문제가 많다. 종교인들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종교와 정치는 상호 범주 착오나 침범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양자 간 애매모호한 영역은 존립한다. 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정치는 오직 민생과 복지를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2023-04-16

전기실 안전관리의 기본과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2022년 12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은 남자 80.6세, 여자 86.6세로 남녀 평균 83.6세를 기록했다. 이는 2000년도 대비 7.3세가 증가한 나이이며 조선시대 왕의 평균나이 46세에 비하면 무려 2배에 가깝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기대수명이 늘어난 대에는 의학기술의 발달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사회적인 변화도 있지만 청결하고 위생적인 관리가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사람의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것과 같이 생산현장의 설비도 청결하게 유지될 때 수명도 길어지며 작업안전도 확보된다. 사람의 몸도 씻지 않고 청결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되고 병에 걸리기 쉬운 것과 같이 설비 또한 같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산업안전보건법 제1편 총칙 첫 구절에서도 ‘사업주는 작업장 바닥 등을 안전하고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여야 한다’라고 청결을 제일 먼저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전기실의 경우 일반 설비에 비하여 더 청결한 관리가 요구된다.필자가 지도한 회사 중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곳으로 매일 수백t의 가정용 쓰레기를 수거, 이를 소각하여 그 열로 스팀과 전력을 생산 판매하는 현장의 전기실 개선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 방문시 전기실 내부는 장시간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뿌옇게 쌓여있었고 룸내는 밀폐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 외부에서 분진이 많이 유입되고 있었으며 내부에 설치된 각종 Panel과 케이블(Cable) 인입구 사이는 작업후 막음 처리를 하지 않아 그 사이로 쥐들이 드나든 흔적이 많이 보였다. 이런 상태로는 언제 큰 화재나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그래서 제일 먼저 전기실 전원을 차단하고 외부로부터 분진이나 이물질이 유입되는 곳을 모두 막아 청소를 한 번 하면 유지가 오래가도록 오염발생원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청소를 통해 판넬(Panel) 내부에 쌓인 먼지를 불어내고 바닥을 깨끗하게 한 다음 전기실 온습도관리 안전확보 설비점검 작업방법 측면의 모든 불합리를 현장에서 현물을 보면서 도출하여 개선활동을 실시하였다.온습도 관리는 센서를 설치하여 공조기와 연동하여 자동제어 되도록 하였으며 작업안전 확보를 위해 구획선 위험표지판을 보완하고 현장 점검이 필요한 곳은 각종 지시계류에 대하여 이상과 정상을 현장에서 현물로 파악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작업방법은 도면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표시하고 조작과 조치 요령을 판넬에 부착, 보이게 하였다. 개선 완료 후는 청결이 유지 될 수 있도록 일상관리가 필요한 청소와 점검 항목에 대하여 주기와 기준을 만들고 담당자를 정하여 표준에 반영하였다.지금도 많은 회사의 전기실 또는 현장의 조작 Panel을 가보면 관리를 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하여 화재나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설비가 병들기 전에 청결한 관리를 통해 예방하는 활동은 아무리 설비가 첨단화 되어도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2023-04-16

습관인가, 창의성인가

유영희 작가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자기계발은 선택 아닌 필수가 되었다. 자기계발 방법의 부동의 1순위는 바로 습관 만들기다. 자기계발의 목표는 대부분 부자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상위 0.1% 부자들의 루틴 따라 하기, 초대형 1조 부자들의 5가지 습관 등등 습관 만들기 영상이 넘쳐난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의 습관을 따라 하라는 것이다.그러나 부자들의 공통 습관을 따라 한다고 해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자가 된 사람 중에는 엄청나게 두뇌가 명석한 이도 있고, 물리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그들만의 환경과 경험이 있다. 그들의 습관은 부자가 되기 위한 한 가지 요소일 수는 있어도 전부는 아니다.여기서 중요한 의문은, 과연 그들의 행동을 습관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습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익혀진 행동 방식 또는 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어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이다. 그러나 이것을 좀 더 파고들어가 보면, 행동의 결과가 좋지 않은데도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을 습관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는 ‘습관’을 부정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뇌과학자 앤서니 디킨슨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는 행동에는 ‘습관’과 ‘목표지향적 행동’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쥐를 며칠 굶기고 표시등이 깜박이는 동안 그 쥐가 레버를 누를 때 먹이를 공급해주면, 쥐는 표시등이 켜질 때마다 레버를 누른다. 이때 배가 많이 고프거나 먹이에 대한 경험이 좋다면 레버를 더 잘 누른다. 그런데 배가 안 고프거나 그 음식을 먹고 배가 아팠는데도 레버를 누른다면 그것은 습관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담배가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기침하는데도 담배를 계속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목표지향적 행동은 그 행동을 처음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기억을 가지고 계속 그런 결과를 내기 위해 하는 의식적 행동이다.일찍 일어나기, 독서, 행복한 상상, 규칙적인 운동, 명상 등 부자들이 한다는 행동이 그들에게 활력을 주고 창의성을 준다면, 그것은 습관이라기보다 목표지향적 행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이 목표지향적 행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목표에 대한 인식이 또렷하고 그 행동의 결과를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올해 들어 심신의 안녕을 목표로 뜻맞는 친구들과 매일 5분 이상 명상을 80일째 하고 있고, 매일 A4 한 장 쓰기 모임에 참여하여 글을 쓴 지 60일이 넘었다. 명상이든 글쓰기든 목표가 또렷하기 때문에 하고 있을 뿐, 습관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어쩌랴, 그런 행동이 어떤 유익한 결과를 내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을.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습관이라면 더욱 어렵다.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를 또렷하게 갖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의식적으로 찾아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 그것이 창의적인 자기계발이다.

2023-04-16

울진에서 열리는 제61회 경북도민체육대회

손병복 울진군수 300만 경북도민의 대화합·축제의 장이 될 제61회 경북도민체육대회가 4월 21일 오후 5시 울진군종합운동장에서 화려하게 개막된다.‘하나되는 화합울진 미래향한 경북체전’이라는 슬로건으로 펼쳐지는 이번 경북도민체전은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울진군 종합운동장 및 종목별 경기장에서 개최된다.울진군은 성공적인 체전 개최를 위해 울진종합운동장을 비롯한 31곳의 보수공사를 했다. 주 경기장인 종합운동장 천연잔디 교체, 입구 게이트 설치, 전광판 교체, 야외화장실 개보수 등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했다.울진군은 이번 도민체전을 문화와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도민체전 성공기원 전야제를 시작으로 미술·사진전, 뮤지컬 ‘가요톱텐’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 예술 공연을 기획했다.울진군은 대회 전날인 20일 저녁 7시 울진연호체육공원 축구장에서 도민체전 성공을 기원하는 화합콘서트로 체전의 개막을 알린다. 이날 콘서트는 멀티미디어쇼, 성화 안치식, 국내 최정상 가수의 축하공연으로 꾸며진다. 울진출신의 아티스트인 송푸름, 방준엽의 식전공연과 함께하는 울진이야기를 시작으로 성화 안치식, 화려한 멀티미디어쇼가 이어진다. 인기가수 축하공연에는 박창근, 에일리, 미스트롯 출신 은가은, 유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노라조 등의 가수들이 초청돼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화합과 축제의 한마당을 펼친다.21일 개회식에는 정동원, 이무진밴드, 스테이씨 등 국내 정상급 인기가수 등이 출연해 울진 도민체전의 개막을 축하한다. 도민체전을 밝힐 성화는 경주 토함산과 망양정 해맞이공원에서 채화해 10개 읍면을 순회하며 봉송에는 100여 명의 각계각층 군민들이 참여한다.또, 체전 기간 내 울진종합운동장에는 부대 행사장을 조성해 23개 시·군 농특산품 전시 부스와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울진군은 울진종합운동장 내에 꽃 조형물을 조성하고 읍면 도로변에 대회 배너기 등 홍보물을 설치해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체전 분위기도 조성했다.울진군은 대회기간 중 울진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깨끗하고 친절한 도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대대적인 환경 정비와 함께 교통질서 확립, 쓰레기 불법투기 근절, 노점상·노상 적치물 제거, 불법현수막 철거 등 기초질서를 확립한다. 식당과 숙박업소 종사자를 대상으로 친절한 손님 응대를 위한 교육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이와 함께 울진읍, 근남면, 죽변면, 후포면 총 6개 노선 도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우리 동네 반짝반짝 캠페인’을 통해 도민체전 홍보 및 손님맞이 시가지 환경정화활동을 벌이기도 했다.또한, 군은 숙박시설을 전수조사해 시·군 및 경북도 협회 숙소를 예약 완료했으며 도민체전 동안 관람객과 선수단을 지원해줄 자원봉사자도 365명 모집했다. 선발된 자원봉사자는 지난 7일 자원봉사자 발대식과 기본 소양 교육 및 직무교육을 시행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해 개막식 당일 울진종합운동장 주변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운영하며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개막식장으로 올 수 있도록 셔틀버스도 운행할 예정이다.선수단 급식은 숙소 주변 3~5곳 정도 음식점을 안내하고 선수단 규모를 고려해 사전 예약 안내로 불편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또 식품안전관리 대책으로 식중독 예방 교육 및 캠페인 실시, 접객업소 업주 및 종사자 위생교육, 목욕·다방·이미용업소 및 협회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지난달 21일에는 울진연호문화체육센터 대강당에서 전국모범운전자회 경북지부와 함께 ‘도민체전 성공 개최 기원 교통질서 지키기 실천 다짐대회’를 갖는 등 손님맞이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손병복 울진군수는 “경북도내 군 지역에서 유일하게 도민체전 2회 유치의 역사를 이뤄낸 울진군이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은 물론 300만 경북도민이 하나 되는 대통합의 장을 만들어 낸다는 비전을 갖고 성공적인 도민체전이 될 수 있도록 5만여 군민과 함께 만반의 준비를 통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3-04-16

흔들리는 봄, 마음의 꽃갈피

이희정 시인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나무들이 나타나앞을 가로막았다바람이 한 번 불자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흐드득,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복사꽃’ 전문시집의 서문 격인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작품을 정리하다 보니 꽃을 소재로 한 시가 여러 편이다. 고운 봄날 이 거친 시집을 꽃 피는 시집으로 잘못 알고 찾아오는 나비에게 오래 머물다 가진 마시라고 해야겠다.” 나비처럼 꽃에 관한 시를 뒤적이다 덩달아 마음이 흔들렸다. 나비에게는 꽃이, 꽃에게는 나비가 욕망처럼 무섭게 당기는 힘, 그것을 색(色)이라 한다.신의 창조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꽃일 것이다. 예부터 ‘미’의 상징이 되어왔던 꽃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대명사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되면 너무 좋아 정신이 몽롱해지네”라는 시문을 남기기도 했다. 꽃에 매료되는 것은 현대인도 마찬가지이다. 송찬호 시인은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멀리 피해 가라 했다”며 짐짓 미혹될까 두려워하는 포즈로 춘심을 드러낸다.우리의 문학작품에서는 미인을 꽃에 비유한 예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위 시에서도 복사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운 여인을 의미한다. 1918년에 발행한 ‘조선미인보감’에는 당시 서울의 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름에 꽃이 들어간 기생의 수는 절반을 넘었다.시인의 비유처럼 문을 열기 무섭게 “울긋불긋 복면을 한” 화인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야말로 ‘화신(花信)이 곧 춘신이고, 춘신(春信)이 곧 화신’이라는 봄의 정령들이 시인을 에워싸고 있다. 꽃은 그 아름다운 색과 자태, 그리고 그윽한 향기로 인하여 뭇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특히 복사꽃은 그 요염한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염부(艶婦)’를 상징하기도 한다.그 열매와 관련해서는 벽사력(僻邪力)을 지녔다고 믿었고, 열매의 씨앗이 일반적으로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이 마지막 연에서 돌연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한 연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봄의 마지막 절기가 아닌가. 그런데 눈부시게 무장한 무사들이 떡하니 막고 있어 다음 행보를 예비하는 데 조바심이 이는 것이 기우는 아닐 것이다. 해서 시인은 그것에 더해 비책을 제시한다.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한다며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라고. 결국 시인의 장기인 노래(詩)를 바치는 것으로 꽃의 무사들로부터 풀려난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헌화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생명체로서 꽃은 개화하여 번화하고는 시들어서 떨어지는 생리적 구조로 되어있다. 그것은 생로병사의 인간의 삶과 유사하나 꽃은 사람과 달리 다시 개화하는 재생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전문학 세상과 만나다’의 저자 이강엽은 “꽃은 흔히 절정의 한순간으로 꽃다운 청춘이라고 할 때 꽃은 최고의 호시절을 의미하며, 꽃이 피면 마음이 밝아지고 자연스레 흥이 분출하는데 꽃노래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다시 기운을 얻어 재창조할 힘을 주는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이다.”라고 했다. 독서 시간 청춘들과 일탈을 감행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교정을 거닐며 난분분 날리는 여린 꽃잎을 취했다. 이어 ‘모비딕’ 같은 두껍고 무거운 책 속에 한 잎, 한 잎 마음 다해 심었다. 다음 생에는 어여쁜 꽃갈피로 재탄생한 그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2023-04-16

세월호 대참사 9주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시간이 흐른다. 어제가 세월호 대참사 9주기였다. 참으로 신속하다. 열일곱 열여덟 살 먹은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흘러갔다니 실감 나지 않는다. 결코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사건으로 생떼 같은 청춘 250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자들은 희희낙락하며 절을 찾아다니며 정치 행각을 해대고 있으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그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구들방에 장작불을 넣고 있었다. 촌집으로 들어온 지 3주 남짓 시간이 흐른 때였다. 저녁 어스름 무렵 뒷집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당신 집으로 들어섰다. 왜 그러세요, 하는 내 물음에 텔레비전도 안 봐, 하고 대답한다. 집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던 나는, 안 봅니다, 했다. 그랬더니, 이를 불쌍해서 어쩌누, 하면서 연신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그날 밤에 나는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는 걸! 그 후 강의실에서 나는 경북대 학생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나 같이 나이 먹은 자들의 잘못이라고!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유민 아빠 김영오씨와 동조 단식을 하러 광화문으로 갔다.8월의 후텁지근한 기운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음습하고 뜨거운 열기와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속에서 수도승처럼 앉아 있던 그이를 잊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46일 동안 단식을 이어간 그의 초인적인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다. 단 한두 시간만 그런 자세로 앉아 있으면 무슨 말인지 실감할 터다.이듬해인 2015년 4월에 나는 청도에서 출발해 진도 팽목항 분향소에 다녀왔다. 6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진도 남쪽 끝에 자리한 팽목항 분향소 근처는 노란색 물결이었다. 305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던 분향소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영정 사진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저토록 많은 생명을 앗아간 자들은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온갖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었다. 제 나라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희희낙락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파렴치한 철면피는 마치 철가면(鐵假面)처럼 주둥이가 째진 채 허연 이를 히죽 드러내고 웃는 것만 같았다.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젊은이 159명이 다시 죽어 나가는 참사가 일어났다.지금까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뭉개고 있는 정부 여당의 행악질과 후안무치는 전임 정권과 판박이다. 툭하면 선진국 타령하는 인간들의 가증스러운 행태가 되풀이되는 와중에 발생한 대참사였다. 젊은이들과 어린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작태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세월호 9주기의 소감이다. 올해도 조기(弔旗)를 내걸고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빌었다.

202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