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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洪시장, 남은 2년도 대구혁신에 올인해달라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저께(26일) 민선 8기 2년간을 정리하면서, “쇠락한 대구를 변화시키기 위해 지난 2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결과, 변화와 혁신의 100+1틀은 모두 완성했다. 대구혁신사례가 대한민국이 도약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100+1틀’은 지금까지의 대구 100대 혁신정책에 TK(대구경북)행정통합 과제까지 성사시키면 대구혁신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TK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도 들린다.TK통합과 관련한 홍 시장의 지론은 TK가 딴살림을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수도권과 ‘TK특별시’ 양대 축으로 균형발전을 해야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이다. TK가 통합되면 향후 TK신공항과 달빛철도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거대 남부 경제권이 형성돼 수도권과 경쟁하면서 동력을 키울 수 있다는 논리다.대구시장직 인수 당시부터 대구의 고질적인 카르텔(기득권) 타파와 공공기관 통폐합 등 혁신적인 과제를 추진한 홍 시장은 지난 2년간 전국적인 뉴스메이커가 될 정도로 대구변화를 뚝심있게 이끌어왔다. 취임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대구 미래를 위한 다양한 동력을 만들었으며, 보수적인 도시이미지도 젊고 밝게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실 홍 시장 취임 이후 대구 이미지는 많은 변화를 했다. 빈점포가 즐비하던 중구 동성로에 다시 청소년들이 몰려들고 있고, 많은 나무와 스포츠시설, 공연장이 들어선 신천도 ‘젊음의 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대구산업구조가 첨단화되는 것도 희망적이다. 수성알파시티와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대구의 주력 산업을 ABB(AI, 블록체인, 빅데이터)·반도체·로봇 등 첨단산업으로 바꿔 놓은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홍 시장의 업적이다. 시민건강과 직결되는 식수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모습도 시민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홍 시장의 남은 임기 2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앞으로도 대구혁신과 TK미래를 위해 지금처럼 모든 열정을 쏟아주길 바란다.

2024-06-27

식인상어의 동해안 출현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 ‘죠스’로 잘 알려진 식인상어가 동해안에 자주 출몰할 것이란 예측이 나와 눈길이 간다.여름철 해수욕장 개장을 앞둔 가운데 국립수산과학원이 밝힌 동해안 상어 출현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다. 공격성이 강한 상어의 출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해수욕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찝찝한 소식이다.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 주변 바다 수면온도가 상승하면서 상어의 주 먹이인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 방어 등이 동해로 유입되고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상어들도 동해로 찾아들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작년 6월 28일 경북 울진군 망양정해수욕장 인근 해상에서 2m 크기의 청상아리가 자망그물에 산채로 잡혀 화제가 됐다. 지난해 동해안에서는 발견되거나 잡힌 상어가 모두 25건에 이른다. 직전 해인 2022년 1건과 비교하면 폭증한 수준이다.상어 중 백상아리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포식성 물고기로 보통 크기가 4.6∼5m에 이른다. 몸무게도 900∼1300kg이다. 암컷 중 가장 큰 상아리는 6.1m에 몸무게가 2t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국내서는 그동안 많지는 않았지만 상어로 인한 인명피해는 주로 서해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동해에서의 상어 출현이 예고되면서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개인이 해수욕을 하다 상어를 만나면 상어를 자극하지 않고 침착하게 조용히 밖으로 나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동해안 상어 출현에 대비한 관계당국의 대응책도 있어야겠지만 개인도 상어 공격에 대응할 예방책 정도는 익혀두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7

김치를 담그다

피귀자 수필가 ‘쩍’ 배추의 단말마. 배추를 가르던 손이 멈칫한다. 칼날아래 꽉 찬 속살이 환하다. 뽀얀 줄기 끝에 오글오글 노란 잎들이 아기손가락처럼 꼬물거린다.자른 배추를 씻긴다. 갓난아기를 다루듯 연한 잎사귀가 부서지지 않도록 살살 달랜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문지르고 다리와 발가락까지 꼼꼼히 헹군다. 흐르는 수돗물에 샤워를 하듯 여러 번 헹구자 반짝반짝 빛이 난다. 속살이 달작지근한 통배추는 어디에서 자라다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을까. 어느 하늘 아래의 정겨운 바람과 따뜻한 대지의 숨결을 마셨을까.부모님 보호아래 곱게 자라다가 시집온 새댁처럼 뿌리가 뽑힐 때의 아픔 또한 다르지 않았으리. 옮겨 앉은 자리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살이 찢기는 해산의 고통을 맞이한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땅에서 한번 뽑힐 때 까무러치고 속이 갈라질 때 두 번째 기절한 것까지도.커다란 다라에 물을 받고 굵은 소금을 녹인다. 음식에 간을 맞추듯 조심조심 휘저어 간을 본다.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배추가 세 번째 기절할 순간이다. 갈라놓은 배추를 소금물에 풍덩 넣었다가 한 잎씩 들춰가며 굵은 소금을 뿌린다. 소금물에 빠져서 재채기에 콧물까지 정신이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얀 소금을 뒤집어쓰니 닿는 자리마다 속살이 따끔거린다. 시댁 식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금을 뒤집어 쓰 듯 불편했던 새댁처럼. 소금이 들어앉은 켜켜이 퍼덕거리던 교만이 고개를 떨군다.소금 세례를 마친 배추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지그시 누른다. 원망과 불평이 함께 소금물 속에 잠긴다. 절인 배추는 하룻밤을 자고나면 알맞게 숨이 죽을 것이다. 소금을 더 뒤집어쓰기 싫으면 욱하는 성질을 죽이고 외고집도 줄여야하리. 외롭지 않으려면 옆 지기와 살갑게 지내고 내편도 만들어야 할 게다.되직하게 쑨 찹쌀 풀에 멸치액젓과 고추 가루를 함께 섞는다. 걸쭉한 빨간 옷이 마련되었다. 무채를 썰고 갈아놓은 마늘과 생강도 함께 섞어 준다. 바싹 마른 청각은 따뜻한 물에 불려 종종 썰고 싱싱한 보리새우로 옷맵시를 가다듬는다. 매실 액기스로 분단장도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알맞게 숨죽은 배추를 말간 물에 헹구어 엎어 놓는다. 얌전히 엎드려 있어야 물기가 잘 빠진다. 네 번째 기절할 순간을 기다리며 약간의 체념도 배운다. 드디어 뽀얀 속살에 빨간 옷을 입힌다. 고명도 사이사이 배부르게 넣어준다. 빨간 양념이 고루 베지 않으면 김치가 제대로 맛을 낼 수 없으니 새 옷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리.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개성마저 잃어버리면 고유의 맛이 사라질지니 이성의 눈을 말갛게 뜨고 감성을 다스리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신 줄을 굳게 잡고. 짠 젓갈과 매운 고추 양념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터지는 기침에 콧물까지 범벅이 되더라도.양념이 골고루 베인 배추를 사각의 김치 통에 꼭꼭 눌러 담는다. 겉잎으로 치마를 두르듯 감싸 안은 자태가 얌전하다.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거짓 없이 진실 된 마음으로 침묵에 익숙해지면 서서히 성숙해지리라. 자칫 게으름을 피우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되리니 성실하게 기다리면 금상첨화일 터.아버지는 신 김치를 싫어하셨다. 가장의 영향인지 식구모두 신 김치를 꺼려 김치가 시어지면 어머니는 옆집으로 퍼 나르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먹지 않는 걸 남에게 준다고 역정을 내시고 좋아하는 집에 보내는 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며 엷은 다툼을 벌이시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배추 한 쪽으로서는 감칠맛을 낼 수가 없다. 여러 쪽이 함께 손잡고 환경의 변화에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김치 냉장고에서 얌전히 기다린다면 숙성된 인격으로 완성되리라. 모두가 입맛 다실 김치로. 제 맛을 내려면 배추는 다섯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로 태어나는 법. 여러 번 기절했던 새댁도 잘 익은 김치처럼 서서히 동화되어 배추김치처럼 푹 익어 가리라. 우리네 인생처럼 시큼하게!

2024-06-26

소서(小暑)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열한 번째가 소서(小暑)다. 태양의 황경이 10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7월 6일(음력 6월 1일)이다. 음력으로는 6월의 절기다. 소서는 하지와 대서(大暑) 사이에 있다.소서(小暑)라는 말은 ‘작은 더위’라는 뜻이다. 태양이 가장 높게 오래 떠 있는 절기는 하지다. 일반적으로 하지가 가장 무더울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날씨가 본격적으로 뜨거워지는 때는 소서와 대서 사이다. 태양의 복사열이 지구를 데우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여름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소서와 대서에 이르러야 진정한 무더위를 느낄 수 있다.소서는 장마와 관련이 매우 깊다. 소서를 전후해서 우리나라에 장마전선이 머문다. 이 무렵부터는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하천이 넘치고 논이 잠수돼 종종 피해가 발생한다. 소서는 밭매기로 분주한 시기다. 하지 때 보리를 수확한 밭에 팥이나 콩, 조와 수수를 심었기 때문에 밭의 김을 매어야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소서 때 논매기를 했지만, 요즘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의 김을 매지 않는다.소서의 속담은 ‘소서가 넘으면서 새 각시도 모 심는다’, ‘소서의 모는 지나가는 행인도 달려든다’ 등 모내기와 관련이 많다. 왜냐하면 소서인 7월이 되면 모내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다. 아직 모내기를 하지 못한 농가가 있으면 마을 전체가 힘을 모아 모내기를 했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좋은 전통에서 생겨난 관습이다.소서(小暑)는 미월(未月)이 시작되는 절기다. 미월(未月)의 미(未), 한자를 풀이하면 가지가 무성하게 자란 나무의 형상을 본뜬 글자다. 나무가 성장을 다한 상태, 이제 더 이상 자랄 일이 없는 나무이기에 ‘아니다’라는 뜻이 나왔다. 이와 함께 미래, 장래의 뜻도 있다.명리학에서 미(未)는 오행으로 토(土)에 해당하므로 미토(未土)라고 부른다. 미(未)를 어두울 매(昧)로 보기도 한다. 미월(未月)의 양기가 더 자라지 않고, 음의 기운이 자라서 만물이 쇠해 가는 어두운 시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미월(양력 7월)이지만, 계절 순환의 이치로 이미 가을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다. 음양 교차의 미묘함을 느낄 수 있다.미(未)는 동물로 양(羊)이다. 양은 평화를 상징하고, 무리를 지어서 살고,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적응해 살아가는 동물이다. 양(羊)은 무리지어 살아가기에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기보다 무리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해심이 많고 마음도 여리다. 우울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기도 한다. 은근히 고집이 있어 한 번 마음먹으면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토(土)의 성질로 대인관계가 무난하며, 중재하고 화해모드를 조성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계하(季夏)의 달, 즉 6월(음력)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미(未) 방향을 가리킨다. 이 달의 방위는 중앙이며, 미(未)는 오행상 토(土)에 해당한다. 색깔은 황색이며, 숫자로는 5다. 맛은 단맛이며, 냄새는 향내다.천자는 누런 옷을 입고, 누런 말을 타며, 누런 옥을 차고, 누런 깃발을 세운다. 천자는 후토(后土) 즉, 토지 신에 제사를 지내며, 제물은 심장(心腸)을 먼저 바친다. 이 달의 오행인 토(土)를 생하는 것은 화(火)다. 화는 심장을 나타내므로 제물로 바치는 이유다.이 달에는 나무가 바야흐로 무성하게 자라는 시기다. 벌목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제후들을 모아 토목공사를 일으켜서도 안 된다. 백성들을 동원하고, 군대를 일으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때는 흙이 축축하고 날씨는 찌는 듯이 더우며 때때로 큰비가 내리니,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다.여름에는 상대적으로 화(火) 기운이 성하고, 수(水) 기운이 약해지기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잦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소서와 대서 사이에 삼복더위가 있다. 삼복(三伏)은 초복과 중복, 말복을 말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7월 15일), 네 번째 경일이 중복(7월 25일),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이 말복(8월 14일)이다. 삼복은 24절기는 아니지만 오랜 풍습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복날에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면 사람의 기력이 쇠하기에 보양식으로 주로 삼계탕을 즐겼다.경일(庚日)을 복날로 정한 이유는 경(庚)은 음양오행으로 볼 때 차가운 금(金)에 해당하며, 계절로는 가을이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품은 경일(庚日)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자는 생활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음양오행 사상이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소서 때는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해지는 시기다. 생선 종류는 민어가 제철이다. 민어는 조림, 구이, 찜으로 먹는데 애호박을 넣어 끓여 먹으면 맛이 있다. 애호박에는 단물이 나고, 민어는 기름이 한창 오를 때여서 첫 여름의 입맛을 상금하게 돋워주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또 밀을 수확한 뒤여서 국수와 수제비도 즐겨 먹었다.인간의 생명은 형(形), 기(氣), 신(神)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형(形)은 생명이 머무는 곳이며, 기(氣)는 생명을 채우는 것이며, 신(神)은 생명을 통솔하는 것이다. 이들 중 하나라도 제자리를 잃으면 세 가지 모두 손상이 된다. 즉, 몸에서 형기신이 각각 제자리에 머물고 상호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의 삶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 여름은 극심한 폭염과 집중호우가 예상된다. 각자 건강과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2024-06-26

올 여름은 된더위·폭우와 전쟁 선포라도 해야

기상청은 올여름은 예년보다 덥고 비도 많이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높은 습도와 온도로 인해 찜통더위가 자주 나타날 거라는 뜻이다. 6월 들어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자 지난 19일에는 이상민 행자부 장관이 대구 쪽방촌을 찾았다. 이곳에 거주하는 취약계층 주민의 생활실태를 둘러보고 올여름 더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6월 더위가 예사롭지 않아 걱정이다. 올 6월 1일부터 20일까지 폭염일수가 2.4일로 집계됐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6월 평균 폭염일수 0.6일의 4배 수준이다. 최악의 더위를 기록했던 2018년보다 더 많다. 대구와 경북은 작년보다 7일 빠른 지난 10일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기상청의 예고대로라면 지금의 더위는 시작에 불과하다. 지구촌의 기상이변이 남의 나랏일이 아니다. 우리도 똑같은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긴장감 갖고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무더위로 온열질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의하면 대구와 경북에서 20일 현재 4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전년보다 28명이 늘었다 한다. 지난해 전국에는 281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그중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온열질환이란 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해 인체의 체온조절 기능이 손상돼 발생하는 질병이다. 온열질환은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각자가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농촌지역이 많은 경북은 농업인의 온열질환 발생도 염려된다. 농사일이 바쁘더라도 낮시간대 활동을 자제하고 챙이 긴 모자나 헐렁한 옷을 입고 질환 예방에 신경써야 한다.폭염 예고에 따라 각 자치단체가 폭염 대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평년수준의 대책으론 재난 피해를 줄일 수 없다. 올해만큼은 특별하고 더 꼼꼼한 준비로 재난방지에 나서야 한다. 이달 말부터 장마도 시작된다고 하니 폭우 대책 마련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난해 7월 발생한 청주 오송지하차도 침수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는 일이 없게해야 한다. 올 여름 폭염과 폭우에 대한 당국의 대비는 전쟁선포와 맞먹는 비상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2024-06-26

위기관리는 아무 일도 없을 때 해야 한다

장규열 고문 비행기를 타면 예외없이 이륙과 함께 비상시 대피요령 등을 안내한다. 멀쩡하게 비행할 터이지만,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르는 위급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위기를 만나 급하게 대처하려면 이미 늦는다. 위기를 관리한다지만, 위기를 정작 만나면 모든 상황이 헝클어져 그 무엇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위기는 평소에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위기에 맞닥뜨려 위기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재난의 규모나 강도가 점증하고 있어 적절한 위기관리의 필요가 심대하게 증대되었다.화성에서 또 큰 사고가 있었다. 정부는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하였다. 고용부는 사고 인지 후 범부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을 설치하고 범정부TF를 구성한다고 한다. 중앙산업대책본부(중산본)와 지역산업재해수습본부(지산본)를 두고 대응한다고 한다. 늘 이런 모습이다. 사고가 터져야 대책본부를 꾸리고 회의를 한다. 미리미리 해당 업계의 안전설비 규정과 사고예방 대책 등을 상시적으로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점검했다면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사람들도 사고에 대비한 주변정리와 대피요령 등을 세심하게 살펴 대비했다면 아까운 인명손실은 없지도 않았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소잃고 외양간만 고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미국은 지난 2001년의 9·11 테러사태와 2005년 뉴올리언즈 대홍수사건을 겪으면서 전 국민의 각성이 일어나 정부 독립조직인 연방재단관리기구(FEMA·Federal Em ergency Management Agency)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강화하였다. FEMA는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준비상황과 대비태세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재난이 일어났을 적에 대국민 경보시스템을 관리하고 재난의 형태에 따른 대응전략을 수립하며 피해국민 보호와 현장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확립한다. 또한 재난발생 이후에 회복과 복구에 만전을 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닥은 재난방지를 위한 조직을 상시적으로 설치하여 발생가능한 모든 환경에 미리 예방하고 대책을 준비한다는 점이다.발생한 위기상황에는 즉각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발생하기 전에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을 확보하여 단단하게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위기예방과 재난대비를 소관업무로 하는 정부조직을 상설화하기를 제안한다. 지진과 산불 등 자연재해와 화재와 홍수 등 안전사고, 테러와 강력범죄는 예고없이 발생한다. 발생한 즉시 대응한다고 해도 일반인이 예고없이 위기상황을 만나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각급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각종 안전시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야 한다. 다양한 위기상황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하여 상설 정부조직이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극심한 인명손상 등 안타까운 재난을 당하고 나서 안전불감증 등을 되뇌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정부는 재난예방대책기구를 상설화하여야 한다.재난은 평소에 대비해야 한다. 위기는 평소에 관리해야 한다.

2024-06-26

애플에 이어 구글도 경북에 둥지 틀었다

경북도가 빅테크 기업인 구글과 손잡고 인공지능(AI) 전문인재를 양성한다. 경북도는 그저께 안동대에서 지난해 업무협약을 체결한 구글 클라우드와 공동으로 ‘인공지능 전문인력 양성사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애플이 지난 2022년 포스텍과 함께 앱 개발자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를 대학안에 개설한 이후, 빅테크 기업이 경북에 둥지를 튼 것은 두 번째다.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는 애플이 앱 개발자, 디자이너, IT기업가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교육기관이다. 전 세계 17곳에 아카데미가 있는데, 아시아에는 인도네시아와 포항에만 있다.구글의 AI교육프로그램 내용은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 활용방법을 비롯해 인공지능 모델 구축, 인공지능 처리, 실습 프로젝트 수행, 기업 프로젝트 맨토링 과정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지역 IT기업과의 멘토링 교육과정은 교육생들에게 실무경험을 쌓을 기회를 줄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 취업연계도 가능하다.이정우 메타버스과학국장이 언급한 것처럼, 지금은 AI인재 확보가 지역 경쟁력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AI를 개발하는 빅테크들이 대규모 인력을 흡수하면서 한국에서 AI전문 교육과정을 마친 인재의 40%(2022년 기준)가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뉴스도 보도됐다.정부가 올 들어 태스크포스까지 가동하면서 이공계 인재 양성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경북도처럼 지방자치단체도 첨단산업인 AI와 반도체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해 4월 구글 클라우드와 아카데미 개설 MOU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2018년 구글 본사를 방문했을 때 ‘변해야 산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인공지능 관련 직업은 AI개발자뿐만 아니라 AI의료영상 전문가, AI교육컨설턴트, AI콘텐츠 전략가 등 의료·교육 분야로까지 업무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행정통합을 진행하고 있는 TK지역의 미래동력을 확보하려면 AI를 비롯한 첨단산업 유치가 필수적이며, 이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전문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2024-06-26

위기에 빠진 해병정신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국민에겐 봉사하는 양이 되고, 적과 맞설 때는 사나운 사자가 돼라.”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의 말이다. 이게 바로 세칭 ‘해병정신’의 골자.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해병대가 보여준 용맹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은 여타 군(軍)을 압도했다. 오죽하면 미군 정보장교가 “한국 해병대는 귀신도 잡아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을까.전투에서 보여준 ‘사나운 사자’와 같은 해병정신은 창설 직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발군(拔群)이었다. 이에 이견을 낼 이들은 많지 않다.지난해 물난리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을 때 갓 스물을 넘긴 어린 해병 한 명이 75년 전 자신이 몸담은 부대를 만든 최고 지휘관의 슬로건 중 또 다른 하나를 실천하다 숨졌다.2023년 7월 19일. 수해가 난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찾던 해병1사단 소속 채수근 일병이 급작스레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양’이 되고자 했던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전쟁 때는 사나운 사자로, 수난을 겪는 국민을 위해선 봉사하는 양으로 위국헌신을 몸과 마음에 새겼던 해병대원들. ‘해병정신’을 실천하다 숨진 이들 모두는 귀하디귀한 우리 아들들이다. 전투 중에 산화했건, 대민봉사 현장에서 생명을 잃었건.그런데 이상하다. 군대는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 그럼에도 숨진 채수근 해병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양이 되라’고 명령한 사람이 불분명하다.임성근 해병1사단장은 “지휘가 아닌 지도를 했다”하고, 그 아래 여단장은 “임 사단장이 지시했다”고 말한다. 유치한 말장난 같다. 묻고 싶다. 어린 해병의 죽음 앞에 고위급 장교가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해병정신 중 하나인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26

달리기와 뇌건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건강하게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3가지를 꼽으라면 첫째 식이조절, 둘째 적절한 운동, 셋째 충분한 수면이다. 식이조절과 운동은 내가 능동적으로 개선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수면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수면 조절과 이로 인한 부수적인 효과는 운동을 통해서 개선 시킬 수가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건강의 조건 중 운동은 제일 하기 싫고 힘들기도 하다. 특히 달리기는 더욱 힘들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달리기를 하다보면 늘게 되고 달리기를 하면 심폐 지구력과 혈액순환 뿐 아니라 뇌건강과 정신과적 부분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달릴 때 우리 몸의 심장과 폐 뇌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한다. 뇌는 뛰는 것 때문에 바빠지기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즉 뛰는 것에만 집중을 하게 되고 많은 잡생각이 사라진다. 현대인들은 쉴 때도 뇌가 쉬지를 못하고 그날 있었던 일이나 미래의 일을 생각하느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그러나 달리기를 할 때 우리 뇌는 달리기에만 집중하여 일처리를 하게 되고 그동안 복잡했던 머리에 머물던 생각들은 가라앉게 된다. 평소에 받던 스트레스가 뛰는 순간에는 모두 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되고 누적되면 스트레스 지수가 감소하고 이에 우울이나 불안감 같은 정신적 문제도 많이 개선이 된다. 잡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주의 집중력이 높아지게 된다. 당연히 학생들은 공부가, 직장인은 업무효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도 줄어들기 때문에 효율적인 일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그리고 달리게 되면 새로운 뇌신경 세포들의 생성이 촉진된다. 성인이 되고 나선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죽는 뇌세포가 조금 많아지는데 이것이 방지 된다. 새로운 신경세포가 조금이라도 더 생기면 뇌세포간의 연결이 더 다양해지고 견고해진다. 주의력 집중력 학습력이 올라가고 인지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학습이 어렵고 깜빡하는 것이 많아진다면 밖에 나가서 조금씩이라도 뛰는 것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러닝머신을 해도 좋지만 당연히 야외에서 뛰는 것이 다양한 환경을 접하기 때문에 더 좋다. 10분 정도 약간 숨이 찰 정도로 뛰어 주면 되고 이보다 더 뛰다 보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가 된다. 엔돌핀이 분비 되면 행복감이 충만해지고 자신감이 상승한다. 우울과 불안 등의 정신과적 문제가 개선이 된다. 엔도르핀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고 안정감과 진통효과를 주는 물질들도 분비가 된다. 즉 달리면서 일정한계를 넘게 되면 행복감과 안정감, 몸의 통증도 개선이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흔히 달리기는 심폐기능 위주로 좋아진다고 생각을 하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신에 관련된 부분도 많이 좋아진다. 육체와 정신이 같이 좋아지는 전신 운동이다. 달리기가 힘들면 나가서 걸어도 된다. 걷다가 1분 달리고 다시 걷고 1분 달리고 힘들면 중단한다. 이것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는 10분을 뛰게 되고 20분을 뛸 수 있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걷고 뛰어 보자. 그곳에서 내가 뛰면 자연이 주는 전신 치료를 공짜로 즐길 수 있다.

2024-06-26

“만져봐야 알지” 독일여행기(中)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외사촌이 사는 튀빙겐에 거처를 정해두고 인근 도시를 다니면서 늘 기차를 탔다. 낮의 기찻길 차창 밖은 전형적인 독일 시골 풍경이었다. 멀리 비스듬하게 야트막한 언덕은 모두 포도밭이라고 동생이 얘기해 주었다. 가까운 둔덕도 온통 푸르렀다. 남편이 저기 있는 건 무엇이냐고 물었고 동생은 들판, 초원, 평원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의 물음은 거기 푸른 들판에 심은 작물을 묻는 것이었고, 동생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남편의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났다. 슈트트가르트에서 튀빙겐으로 오는 길이었다. 셋이 서로 마주앉아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느 역에선가 웬 남성이 양해를 구하더니 남편 옆 빈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한국어로 얘기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어디서 왔느냐며 불쑥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이라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단다. 놀라는 우리에게 남편의 휴대폰을 슬쩍 봤더니 한글이 보여서였다며 웃었다.이참에 남편은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지 차창 밖의 푸른 들판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었고, 동생이 유창한 독일어로 묻고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주먹 진 왼손의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로 펼쳐가며 열심히 설명하고 동생은 들으면서 크게 웃었다. 아마도 몇 가지의 작물 후보를 꼽는가보다 생각하며 동생의 통역을 기다렸다. “밀인지, 보리인지, 귀리인지 모른다. 만져보면 알 수 있는데…. 잘 모르겠다.” 맞는 말이긴 하다. 가까이 가서 보거나 직접 만져봐 알 수 있다는 그의 대답은 지극히 정확했다. 우리는 그의 말에 크게 동의하면서도 그 말이 왠지 몹시도 우스웠다. 그렇게 얘기의 물꼬를 튼 김에 우리는 튀빙겐에 도착할 때까지 유쾌한 수다를 나눴다. 그와 헤어진 후에도 우리는 그의 대답을 곱씹고 흉내내며 웃고 또 웃었다.며칠 후 비오는 저녁이었다. 동생이 평소 자주 가는 산책길 옆에 저런 밭이 있다며 가서 직접 만져보자고 했다. 엄청나게 크게 펼쳐져 있는 밭엔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두 가지 작물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만져 봐도 별무소득이었다. 농촌에 산 적이 없는 우리였다. 네이버 렌즈로 사진을 찍어 검색했더니 보리라고 했다. 그 옆 밭도 보리란다. 아직도 정확한 답을 못 찾은 우리는, 만져봐도 모르겠다며 깔깔댔다. 마침 거대한 트랙터를 몰고 오는 농부가 있었다. 동생은 손짓으로 차를 세웠다. 트랙터의 굉음까지 멈추고 얘기를 나누는 동생을 지켜보면서 나는 궁금증에 조바심이 났다. 그와 헤어진 후 동생은 나를 밭 가까이 데려갔다. 이건 밀이고 저건 보리래. 그런데 왜 웃었느냐는 내 물음에 동생은 대답했다. “밀은 빵을 만드는 거고, 보리는 맥주를 만드는 거래. 저기 보리밭은 자기 건데, 맥주를 만드는 게 아니고, 소를 먹이는 거래. 그렇다고 소가 취하지는 않는대. 아마도 우리가 밀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봐.” 드디어 농부를 만나 우리의 의문을 풀었고, 남편에게 밀과 보리라는 명쾌한 답을 전했다. 독일에서 만난 두 명의 남성은 독일인답게 진지해서 유쾌했다.그 후 여행 내내 셋 중 누군가가 무엇에 대해 물으면 먼저 이렇게 대답했다. “만져봐야 알지….”

2024-06-26

기억해야 할 다부동 전투

우정구 논설위원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북한군과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6·25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로 손꼽히며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격렬하게 싸웠던 베르됭 전투와 비교된다 하여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부른다.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무기와 훈련이 부족했던 국군을 연이어 물리치고 전쟁 발발 사흘만인 28일 서울을 함락한다. 7월 20일 대전을, 7월말 목포와 진주를, 8월초 김천과 포항까지 함락시킨다. 북한군은 그 기세를 몰아 8월 15일까지 부산 점령을 목표로 낙동강 방어선에 가용 병력의 절반을 배치했다.그러나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국군 1사단 병력과 미군 2개 여단의 강력한 저항으로 북한군 일방의 전투가 낙동강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밤사이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로 다부동 골짜기는 능선마다 고지마다 시체가 쌓이고 핏물이 마르지 않았다.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우리쪽 병사만 1만명이 넘는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학도병과 군복도 없이 포탄과 부상병을 지게로 날랐던 칠곡군 주민의 희생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이들의 희생으로 백척간두에 처했던 나라의 운명을 건질 수 있었으니 다부동 전투의 기억을 누가 잊을 수 잊겠는가.어제는 6·25전쟁 발발 74주년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한 가운데 국제정세마저도 날로 험악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 고장에서 벌어진 구국의 전투, 다부동 전투의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5

푸틴의 협박, ‘양치기소년’ 보듯 해도 되나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 야당 단독으로 연 국회법사위 청문회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증인으로 불려나온 전직 국방장관과 현역 해병대 장성을 상대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인격모독을 한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언행은 많은 시청자를 분노케 했다. 박지원 의원은 정 위원장이 ‘10분간 증인 퇴장’ 명령을 반복하자 “한발 들고 두손 들고 서 있으라고 해야 되지 않느냐”며 조롱하기도 했다. 당장 전쟁이 나면 부하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야 할 현역 군인을 앉혀놓고 모욕과 협박을 하는 국회의원의 거친 태도는 충격적이었다.법사위 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을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북·러간 파트너십 조약’체결에 대해 우리정부가 대응조치를 취하자, 즉각 “보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푸틴의 거침없는 협박을 듣는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참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들이 무차별 살육되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당하는 외신뉴스는 지구촌 전체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동아시아”라고 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나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한국의 안보위기를 우려하는데도, 우리정치권은 ‘정쟁’에 여념이 없다.22대 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오히려 러시아 편을 드는 것처럼 비친다. 대통령실이 북·러 군사조약에 항의하며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한·러 관계를 파탄 내고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며 푸틴입장을 두둔했다.박찬대 원내대표는 과거 북한의 오물풍선 공격과 관련해 우리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휴전선에서 고사포탄 날아가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거냐”며 빈정대기도 했다.국가안보마저 정쟁으로 몰아가는 민주당 행태를 보면서,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정치상황이 오버랩된다. 조선은 연산군 이후 임란 직전까지 4대사화와 훈구·사림 세력간 당쟁, 관료들의 부정부패, 여진족과 왜구의 약탈사건 등으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백성들은 당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만, 관료들은 당쟁으로 날을 지새웠다. 그러다가 1592년 4월 임란이 발생하자 관료와 정규군은 대부분 도망가고, 의병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선을 유린한 임진왜란의 참혹함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러시아는 6·25전쟁 당시 북한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해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제 군사원조를 핵심으로 하는 북·러간의 조약체결로, 한반도 전쟁 시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정치권은 푸틴의 협박을 ‘양치기 소년’ 보듯 해선 안 된다.국가 안보는 절대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정치인들이 현역 해병대 장성을 국회에 불러 모욕을 주고, 북한과 러시아의 도발을 정쟁용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임진왜란 전의 조선 정치상황과 흡사하다.

2024-06-25

與, 야당이 폭주하더라도 협상포기는 안 돼

국민의힘이 결국 야당이 남겨놓은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수용하기로 했다. ‘국회 보이콧’ 상태에서는 더는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당의원이 위원장을 맡을 상임위는 외교통일·국방·기획재정·정무·여성가족·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정보위원회다. 국민의힘은 3선 의원을 중심으로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배분하고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여당의원들의 불참 속에서 입법청문회 등을 독단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해병대원 특검법, 방송 4법 등 쟁점법안을 상임위에서 처리했다. 이 때문에 여당내에서 ‘민주당의 국회폭주를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돼 왔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지난주 단독 개의한 법사위 광경은 마치 왕따를 만들고 집단 폭행을 가하는 학폭 같았다. 국회를 ‘이재명 국회’가 아니라 국민의 국회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추 원내대표는 24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사의를 표명했지만 재신임될 가능성이 크다.국회 원 구성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야당이 단독 국회를 소집해 첨예한 쟁점이 돼 온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청문회까지 연 것은 처음 보는 장면이다. 특히 지난 21일 법사위에서 열린 야당 단독 ‘해병대원 특검 청문회’에서 정청래 위원장과 야당위원들이 현역장성이 포함된 증인들을 불러놓고 조롱과 모욕을 주는 모습은 많은 국민을 분노케 했다.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여당이 민주당의 입법폭주를 막기 위해 국회등원을 결정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거대야당과 피곤한 싸움을 하더라도 협상테이블마저 걷어차선 안 된다. 국회는 여야가 다양한 국민 목소리를 수렴해서 정부를 견제하고 협상을 통해 법률을 제정하는 곳이다. 지금과 같은 여야의 ‘벼랑끝 대치’ 모습은 22대 의원들의 정치력 부재에서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 여야 의원 모두 장외가 아니라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장에 앉아서 민생현안 해결과 안보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2024-06-25

미분양 무덤 대구, 지역 맞춤형 주택정책 필요

대구지역의 주택분양 시장을 두고 미분양 무덤으로 부른지가 꽤 오래됐다. 수년째 전국 최고의 아파트 미분양 물량을 보유하고 있으나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올 4월 기준으로 대구지역의 미분양 주택은 9667가구다. 1만가구가 넘던 미분양 주택이 14개월째 연속 감소했지만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후 미분양은 7개월 연속 상승해 1548가구에 이른다. 미분양 물량이 준공후 미분양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택건설업계의 신규 분양사업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대구시도 미분양 물량이 안정화될 때까지 신규 사업승인을 보류하겠다고 했다.일부 주택건설업체들은 준공후 분양으로 분양 방식을 바꾸어도 보았지만 이 역시 분양이 어려워 일부는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등 궁여지책을 찾고 있다.주택건설사업과 연관된 광고기획사, 분양업체 등은 사업을 접거나 일부는 부도도 났다. 신규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넘쳐나면서 기존 주택시장의 거래도 한산하다. 거래가격이 큰폭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기존 집을 팔아 새아파트로 입주하려던 수요자들은 입주금을 맞추지 못해 낭패를 겪고 있다. 대구지역 부동산 시장은 정상적 거래조차 이뤄지지 않는 동면 상태다. 주택건설 시장의 장기침체로 지역경제도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대구시가 이런 제반 문제점을 감안해 미분양 주택 해소를 위한 총력 대응책을 발표했다. 그 중 주목을 끄는 것은 중앙정부 주택정책 권한의 지방 이양이다.현재 정부가 쥐고 있는 주택정책 권한은 지역마다 사정이 다름에도 일률적 조치에 그친다. 효과가 미미해 지방 실정을 잘 아는 지방으로 정책권한을 넘겨달라는 뜻이다.수도권 중심으로 흐르는 주택정책을 세분화하자는 뜻이다. 지방자치 정신에도 맞고 정책의 효과성으로 볼 때도 바람직하다. 지방 사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가 콘트롤타워가 돼야 주택 수요와 공급에 맞는 정책을 펼 수 있다. 늦은 감은 있으나 정부는 지금이라도 신중하게 권한 이양을 검토하는 것이 옳다.

2024-06-25

나라경영과 성장하는 베트남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나라경영은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을 관리하고 자원과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국민 복지와 나라의 발전을 이루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부의 지도력, 정책 결정, 자원 분배, 외교 관계, 법과 질서유지, 공공 서비스 제공 등이 포함된다. 나라경영을 잘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후퇴한 국가들이 많고 역사적 결과를 볼 때 나라님의 능력과 리더십이 국민 삶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 높은 부패 수준, 외채 문제와 정치적 불안정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 때 장충체육관을 지어줄 정도로 잘 살았던 필리핀은 마르코스 나라님을 만나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로 1인당 GDP가 반으로 감소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반면,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1986년 ‘새롭게 바꾸다’라는 뜻의 도이머이 정책을 도입, 시장경제로 전환하며 경제 성장과 빈곤 감소, 역동적인 성장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필자는 코로나 이후 모처럼 베트남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다낭을 갔다. 월남전쟁의 아픔도 있지만 베트남은 한국을 사돈의 나라로 인식하고 호의적이라고 한다. 1226년 베트남 리 왕조의 마지막 왕자가 고려로 망명하여 숙종이 성을 하사한 화산 이씨 후손이 3만명에 이르고 있다. 베트남은 불교 국가고 한국보다 유교가 강한 나라이기도 하다.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초기 한자를 사용했고 아직도 한자 문화가 남아 있다. 17세기 프랑스 선교사인 알렉상드르가 라틴 알파벳 기반으로 쉽게 읽고 쓸 수 있게 체계화시킨 것이 오늘날 베트남 언어라고 한다.베트남은 85% 비엣족을 중심으로 다민족 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소수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여 다양성의 사회 문화를 이루고 있다. 평균 34.4세 젊은 나라로 활력이 넘친다. 국민성이 부지런하고 값싼 노동력과 손재주가 좋아 다낭중심으로 세계 전자 부품의 생산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베트남에 투자와 무역규모가 큰 한국과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하기 위해 2021년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선정되어 중등교육에 적용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열린 사고와 정책이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것으로 보인다.중국 장자의 ‘추수’ 편에 나오는 정중지와(井中之蛙)는 좁은 시야와 한정된 경험에 의존하여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는 공간의 우물 안 개구리를 말한다. 요즘은 시간의 우물 안 개구리가 더 중요해졌다.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거나 현재의 시간에 갇혀 있으면 미래로 못 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우울 안 개구리다.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내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나라경영은 지도자의 자국에 대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보는 안목과 국가 비전, 이를 실현시킬 바른 정책으로 리딩 해나가야 한다. 베트남처럼 공간, 시간, 지식을 넘어서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자국에 맞는 정책으로 건강한 국가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한 국가의 나라경영은 지도자의 리더십이 근간이 됨을 새삼 느낀다.

2024-06-25

비 오는 날의 문학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월의 푸르름을 짙게 하는 비가 하루 건너씩 내리고 있다. 새소리나 빗소리에 기분이 맑게 깨이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면 왠지 설레는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계절은 어김없이 초목을 무성하게 하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를 지나면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는 여름날을 열어가고 있다.때이른 무더위가 벌써부터 시작되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올여름의 기온이 전례 없이 높을 것이라고 예보하지만, 날씨와 기상은 변수가 있으니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때이른 무더위도, 줄기찬 빗줄기도 무색하게 하며 뜨겁고 거침없는 마음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인연과 유대가 있었기에 친소여부에 상관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어울리며 친근한 동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그들은 이른바 전국을 캠퍼스로 여기고 있는 한국방송대학의 졸업생이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젊은 시절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거나 주경야독(晝耕夜讀) 또는 새로운 배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만학도의 꿈을 다시 펼치면서 동문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색적이고 독특한 방송대 동문문화를 조성해가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인 동문회의 인적구성과는 달리 나이와 성별, 직급 등 배경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그들은 언제 어느 때 만나고 어울리더라도 한결같으며, 친화력과 포용성이 큰 동문사회를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동문회의 일원이 모처럼 만나 강원도 동해안으로 소풍 가듯이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잔뜩 찌푸리던 날씨가 오전부터 비를 뿌렸지만, 오히려 빗소리의 낭만과 운치가 여행의 맛을 더하는 듯했다. 그렇게 설레는(?) 가슴으로 다다른 곳은 삼척시 신기면에 위치한 강원종합박물관.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2만 여 점의 자연사 및 도자기·금속공예·민속·종교·목공예·석공예 등의 다양한 유물과 예술품들은 기존 박물관의 개념을 깬 듯한 엄청난 규모로 ‘평생문화교육의 배움터’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빗길을 한참 치닫아 강릉시 운정동 한 켠의 고가(古家)로 국가민속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선교장(船橋莊)에 이르러서는,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정취 속에 조선시대의 숨결이 빗소리의 여운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저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 기념관엘 들러 매월당(梅月堂)의 고매한 얼을 기리기도 했다. 또한 초당동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을 찾아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개혁정신을 짐작해보고, 그의 누이인 유명 여류시인 난설헌의 문학적 업적과 생가터 유적을 둘러볼 때는 낙숫물 소리가 더없이 정겹게 들리는 듯했다.비오는 날의 문학기행은 또다른 묘미를 안겨준 것 같았다. 아담한 정원의 나무와 연못, 고즈넉한 정자며 고택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수천수만의 음률처럼 들리기도 하고, 먼 옛날의 자취가 아련한 속삭임으로 여울지는 것 같았다. 길 떠나고 주변을 살펴보면 미처 몰랐거나 색다른 느낌을 주는 명소가 많다. 옛적의 학우들과 교유하며 소통과 교감하는 시간 속에는 새로운 추억과 감흥이 몽글몽글 피어날 것이다.

2024-06-25

그렇게, 전쟁의 풍경이 된 여성들

잔뜩 비를 머금어 당장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어두텁텁한 구름 속에 들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전쟁의 기운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모두를 풍경으로 만든다. 전쟁의 중심에서 누구와 싸우는지 알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도, 그 어두운 구름의 가장 가장자리에서 삶만은 여느 때나 다름없어 보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시선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전쟁의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고, 누구와 왜 싸우고, 지금 어떤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전쟁이 일으키는 찜찜한 분위기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작가 박경리(1926~2008)가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기 전에 썼던 ‘김약국의 딸들’(1962)이나 ‘파시(波市)’(1964)는 모두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한국의 가장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과 통영에서 이어지고 있던 삶을 그린 작품이다.전쟁이 남긴 상처가 그토록 깊고도 깊었기 때문인지, 막상 닥쳤을 때는 무언가 콱 막혀 전혀 명료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던 상처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나서야 터져 나오기 때문인지,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작가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전쟁의 가장자리이자, 작가의 고향이었던 통영의 바닷가에서.이 중에서도 소설 ‘파시’는 1964년 7월에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당시 화단의 중진으로 성장하고 있던 화가 천경자(1924~2015)가 삽화를 맡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고흥 출신인 화가 천경자와 통영 출신의 작가 박경리가 만나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국면인 한국전쟁을 겪는 여성들의 내밀한 역사를 그려냈던 것이다.이 작품은 부산의 대청동에서 조만섭이라는 나이 든 남자와 수옥이라는 젊은 여자가 통영으로 들어가는 연락선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전쟁 이전에는 부유하게 살았지만, 전쟁 중에 월남하면서 가족을 모두 잃고 조만섭 손에 맡겨진 수옥의 안타까운 사연은 나중에서야 알려지지만, 박경리 작가의 필체로부터 수옥이 가지고 있는 불안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다. 스물한 살이나 되었지만 무엇을 물어보아도 시원한 답이 오지 않는 수옥의 태도는 분명 말 한 마디를 잘못해서 죽어버리고 만 부모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까닭이리라. 그처럼 말 한 마디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수옥을 눈여겨 보고 있던 남자는 그녀를 노리고 접근한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수옥이 겪는 고난과, 조만섭의 딸 명화가 겪는 꿈의 좌절과 관계의 상실이다. 그런 이야기야 전쟁과 상관없이 인간 세계에서 늘 일어나는 것이다.이 소설에서 여성들은 종종 소설의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난다. 이 작품에서 전쟁의 공포를 유일하게 목격했던 수옥은 한 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끝내 수동적인 태도를 버릴 수 없다. 명화는 결혼이냐 유학이냐 하는 문제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끝내 좌중우돌하기만 한다. 그 때문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이 두 여성 주인공은 종종 독자들의 바람을 벗어나 시선의 바깥으로 사라져 풍경이 된다. 그들의 존재가 풍경이 되는 것은 단지 그 존재가 미미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는 박경리가 아닌가.어쩌면 그들이 풍경이 되는 것은 소설이라는 글쓰기를 통해서는 그들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욕망어린 시선으로는 그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전쟁을 다룬 소설이라는 제대로 볼 수 없는 도구로 그들을 보려고 하니, 그들은 풍경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과연 그렇게, 풍경이 된 여성들은 어떻게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어떻게./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06-25

여름 삽화

오춘 할머니 네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을 안노인들은 날만 새면 그 집 대청마루에서 여름을 났다. 그 집을 드나들던 할머니들 손에는 귀한 주전부리들이 들려있기도 했다. 집집마다 종이부채로 견디던 시절 그 집 마루에서는 저 혼자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가 돌아갔다. 할머니들이 마루에 빙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민화투를 치는 진종일 선풍기는 쉬는 법이 없었다. 마루를 가득 채운 할머니들에게 골고루 바람을 나눠줘야 했으므로 선풍기는 항상 회전을 했다. 사이사이엔 마당에서 뛰어놀다 더위에 지친 어린 우리들도 끼어 있었다.선풍기가 내 얼굴을 한 번 쓱 스쳐가고 나면 다시 선풍기의 방향이 나를 향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세월처럼 지루했다. 얼굴이 여러 개 달린 선풍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어린 마음에 생겨났다.일찍 혼자되신 오춘 할머니는 너른 집에 손주들과 함께 살았다. 아들 내외가 시내에 가게를 얻어 분가하면서 아이들을 맡겨둔 때문이었다. 덕분에 오춘 할머니 네는 할머니들의 사랑방뿐 아니라 동네 꼬맹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는 꽃을 유난히 좋아해 골목과 대문 사이 네모모양 자투리땅에는 해마다 분꽃 씨앗 뿌리는 걸 잊지 않았다. 향기로운 분꽃이 피면 꼬맹이들은 그 꽃을 따서 대문 앞에 퍼질러 앉아 소꿉을 살았다. 넓은 마당도 예외는 아니어서 채소밭과 꽃밭이 나란히 반반을 차지했다.여름 마당엔 해바라기며 달리아, 백일홍 따위 키 큰 꽃이 많았고 옥수수며 들깨 온갖 채소도 우거져 있었다. 꼬맹이들은 꽃밭과 채소밭을 넘나들며 자주 숨바꼭질을 했다. 오춘 할머니가 남새밭이며 꽃이 망가진다고 호통을 내지르면 꼬맹이들은 우르르 도망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선풍기 앞으로 몰려들었다.오춘 할머니네 우물은 얕고도 시원했다. 우물이 없는 옆집에서는 항상 오춘 할머니네로 물을 길으러 다녔는데 여름에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게다. 날마다 김치통이 드리워있고 어쩌다 새끼줄에 묶인 수박이 담겨 있기도 했으니 그것들을 피해 가며 조심조심 두레박을 내리고 물을 길어야 했던 탓이다.우물 속에서 나온 열무김치는 서늘해서 입맛 없는 여름에는 제격이었다. 대청마루에 모인 안노인들은 점심때가 되면, 커다란 양푼에 우물에서 갓 꺼낸 열무김치와 살강 위 대소쿠리에 식혀 놓은 보리밥과 고추장을 듬뿍 넣고 한데 비볐다. 마지막엔 오춘 할머니 텃밭에서 나온 참기름도 한 방울 들어갔는데 그 고소함에 반해 눈치 없는 꼬맹이들이 숟가락을 먼저 들이밀곤 했다.여름내 잘 돌아가던 선풍기가 말썽을 부릴 때가 있었다. 되짚어보면 하루도 쉬지 않고 회전을 하며 마을 안노인들의 땀을 식혀주었으니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선풍기를 고치러 보낸 얼마 동안 할머니들도 꼼짝없이 부채질을 하느라 팔을 쉴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는 화투 패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신 부채질을 하다가 차례가 돌아오면 부채를 내려놓고 화투장을 내놓고 집어가곤 했다. 부채질로는 더위가 가시지 않는 어느 오후 오춘 할머니는 아이들을 불러 점방에 얼음을 사러 보냈다. 꼬맹이들이 낑낑 거리며 심부름을 다녀오는 동안 마루에는 우물 속에서 건져 올린 수박이 초록빛도 선명하게 놓여있었다. 꼬맹이들에겐 반으로 툭 자른 수박을 양푼에 퍼 담고 설탕과 얼음을 넣어 휘휘 젓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물 한 방울 남김없이 싹싹 비웠던 어린 날의 수박화채는 고장 난 선풍기가 준 선물이었다.오춘 할머니네 꽃밭도 선풍기도 시들해지는 날이 있었다. 그 집 언니들이 유난히 심술을 부려 꼬맹이들을 못 살게 군 그런 날이었을 게다. 그런 날은 우리 집 감나무 그늘이 꼬맹이들을 불러 모았다. 감나무 아래는 오래된 평상이 여름 내 놓여있었다. 꼬맹이들은 평상에 앉아 마당에 핀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고 종이 인형을 오리며 놀았다. 평상에 햇빛이 들어오면 어른들이 평상을 들어 그늘 쪽으로 옮겨주었다. 가끔씩 평상 위로 감나무에 살던 송충이가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꼬맹이들에겐 송충이를 구경하는 일마저 놀이가 되어주었다. 감나무 그늘 아래는 바람이 시원했고 바람이 없는 날은 부채가 바람을 만들었다. 꼬맹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향해 팔이 떨어져라 부채질을 해주며 깔깔거렸다. 감나무 이파리도 팔랑거리며 따라 웃었다.오춘 할머니도, 그 집 마루에 그득하던 안 노인들도 이미 다른 세상으로 떠나신 지 한참이 지났다. 열린 양철 대문 안으로 철철이 다른 꽃을 피워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잡던 그 집도 사라진 지 오래다.지금 그 자리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로 바뀌었고 주변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층수를 자랑하는 아파트촌이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를 올려다보면 에어컨 실외기가 빠짐없이 나와 있다. 우물을 갖지 않은 아파트에선 선풍기만으론 살 수 없다는 듯 집집마다 날개가 없어도 시원한 바람을 쏟아놓는 에어컨을 설치해 놓고 쾌적하게 여름을 난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별을 생각하니 오춘 할머니 네 마루에 떡 하니 자리하고 앉아 여름내 마을 안노인들의 더위를 식혀주던 선풍기와 감나무 그늘과 평상에 놓였던 부채가 참으로 고마운 것들이었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2024-06-25

횃불 하나

강길수 수필가 22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의원이 다수인 야당은 소수인 여당의 반대와 관행을 무시하고 단독 국회를 열어, 법사위를 포함한 11개 상임위원장을 뽑았다는 보도다. 자유민주주의인 우리나라에서, 이름에 ‘민주당’이 든 1야당이 의회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회 독재를 또 시작했다. 국민이 뽑은 다수라 강변하겠지만, 올 총선의 진실을 알고도 그랬다면 그야말로 후안무치다.지난 4·10 총선 선관위 발표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G 박사는, 58개 지역에서 승부가 바뀌어 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주장했다. 여야의 진짜 의석은 여당 166, 1야당 118이라고 했다. 당일 투표와 사전투표 결과의 차이가 통계학 대수의 법칙을 위반한 계산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경영학을 했던 나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투표는 국민, 당락은 선관위!’라는 경천동지할 주장이 유튜브 등에 퍼져도 선관위는 물론, 제도권과 주류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입으로 ‘민주주의’를 읊지만, 실제로는 입법 독재를 자행하는 거대 야당의 행실을 투표지의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국민은 또 목도하고 있다. 일말 양심도 없는 의원 나리들이다. 자기들이 어떻게 거대 야당이 되었고, 진짜 민심을 속으론 다 알 터. 도덕, 윤리는 고사하고 눈치마저 팽개친 철면피들이다.‘여의도 대통령’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 국민은 명확히 알게 되었다. 대체 언론의 책무와 지식인, 정치인들의 사명과 시민단체들의 정의, 종교인들의 사랑은 다 어디에다 버린 걸까.정치인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국가는 어찌 될 것인가. 야당은 현 정권을 ‘검찰 독재’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시민 나는 그 반대로 느낀다. 재판 중인 범법 혐의자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특권을 악용, 재판 지연 등 법질서를 파괴해도 멀쩡하다. 이래도 ‘검찰 독재’인가. 21대 국회에서 나라의 안위와 살림은 안중에 없이, 포퓰리즘적 법안을 쏟아내 정부 발을 묶은 사실을 국민은 다 안다. 암울한 야만의 필드였다.횃불 하나 밝혀졌다. 갓 출발한 22대 국회의 여당 수석대변인 K 의원의 횃불이다. 자신의 SNS에 4·15와 4·10 부정선거 문제를 22대 국회의원으로선 처음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이 사실을 보도한 한 유튜브 방송은 18시간 만에 4100명이 시청했고, 댓글 799개가 달렸다. 댓글은 대부분 용기 있는 의원을 응원하고 존경하며, 차기 당대표와 대통령감에 추천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국민이 새 희망을 본 것이다.그렇다! 정상 국회의원이라면, 부정선거 의혹만 나와도 달려들어 바로잡아야 할 최우선 국가 근본 과제다. 한데, 지난 4년간 우리 국회는 외면했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얼마나 상심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초선 K 의원을 당대표와 차기 대통령감이라는 댓글까지 많이 달까. 국민은 언제까지, 가짜일지 모르는 국회의원들의 탈 쓴 행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해야만 하는가.지금은 국민 각자가 나라와 나의 길이 같음을 다시 깨달아, 무엇이 국가를 위한 일인지 찾아내야 할 시기다. 또, 참여할 일엔 분연히 일어나 횃불을 함께 들 때다.

2024-06-24

관계 맺기의 방법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미국에 사는 동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2년 만에 한국에 왔다. 지난 연휴 기간에 시간을 내어 동생네 가족을 만나러 상경했다. 올해 5살, 7살이 된 조카들과 우리 아이들은 잠시의 어색함을 극복하고 곧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7살 조카가 8살 된 첫째 아이의 이름을 자주 부르자 첫째 아이는 ‘누나’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미국 문화를 설명하자, 아이는 조금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어딘가 불편함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익숙한 한국의 문화를 쉽게 벗기 어려웠던 까닭이다.동생으로부터 우리를 만나기 전 아이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동생의 이야기는 이랬다. 동생이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있을 때, 다른 아이 두 명이 와서 조카들에게 나이를 물었다. 조카들의 나이를 듣자 그 아이들은 바로 형과 동생을 정리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있는데 나이가 아니라 ‘이름’을 묻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나이’와 ‘이름’,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이지만, 각각의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나이가 위계 서열화를 동반한다면 이름은 개인의 특이성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위계를 내면화했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아이들은 서로의 나이를 확인하고도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어울린다. 문제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는 바로 그 관습이며, 그것은 아이들이 관계 맺기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왜 아이들은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우리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 관계 맺기에서 나이를 확인하고 호칭을 정리하는 습관을 반복한다. 대학에 입학해서 동기들끼리 혹은 선후배끼리 나이를 확인하고 호칭을 정리하는 풍경은 익숙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20년 전에는 재수생까지는 편하게 이름을 불렀다면, 이제는 한 살이라도 많으면 바로 호칭이 바뀐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가 어린 시절의 놀이문화부터 형성된 것이라 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당장 나부터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름보다 나이를 궁금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더 이상 나이를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대학에 와서 관계 맺기에 서툰 학생이 많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지만 성장기의 수직적 환경이 크게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선생님 혹은 부모님이란 절대적 존재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 관계는 대부분 수직적이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나이가 혹은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자기의 생각을 따르길 사실상 강요한다. 대학에서의 자유, 수평적 관계성이 강조되는 순간이 학생들에게는 낯선 것이다.이제부터라도 관계를 맺을 때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특이성을 보려고 해야겠다. 요즘 20대가 아니라 각각의 이름을 가진 존재로서 그 학생의 면면을 관찰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럴 때 관계가 좀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24-06-24

與당권레이스, ‘尹心’이 최대변수돼선 안 된다

윤석열 정부 임기 중반부 당정관계를 이끌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레이스가 시작됐다. ‘한동훈·나경원·원희룡·윤상현’ 4파전 구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친윤(원희룡) 대 비윤(나경원·윤상현)’ 구도, 또는 ‘원내(나경원·윤상현) 대 원외(원희룡·한동훈)’ 구도가 어떻게 세력을 형성해 나갈지에 따라 판세가 요동칠 수 있다. 선거 결과는 다음 달 23일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발표된다. 이번에 뽑히는 당 대표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에서 여당의 승리를 견인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당권레이스 최대 쟁점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후보가 용산 대통령실과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정립하느냐에 따라 당원투표의 향방이 결정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당정관계를 둘러싼 계파 간 대립 양상은 초반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당정 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으로 쇄신하겠다”고 했다. 윤심보다 민심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나 의원은 ‘당정동행’을 강조했다. 판단의 절대 기준은 오직 민심이고, 국민이 옳다고 하는 대로 함께 가겠다고 했다. 원 전 장관은 “저는 대통령과 신뢰가 있다. ‘레드팀’을 만들어 당심과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했다. 윤 의원은 SNS를 통해 “대통령과 당이 갈등하면 안 된다”고 했다.4·10 총선이 끝난 지 석달째에 접어들었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무기력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끝없는 ‘국회 보이콧’이 국민을 피로하게 한다. 당원수가 가장 많은 TK정치권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여당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당 체질을 개선하고 올바른 당정관계도 설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후보들은 ‘윤심’이 아닌 당의 쇄신과 비전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192석의 국회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에 대한 대응책과 협치 전략을 후보마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당심과 민심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2024-06-24

태국의 한국 여행 보이콧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피부색, 인종, 종교, 국적을 이유로 개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건 명백한 범죄행위인 동시에 인간의 평등과 존엄에 대한 도전이다. 용서받기 어려운 일.한국을 여행했거나 여행하고자 하는 태국인들이 “전자여행허가(K-ETA)를 받았음에도 입국 거부 사례가 많다”며 한국 법무부가 태국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이런 분위기가 ‘한국 여행 보이콧’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태국여행사협회(TTAA)에서 흘러나온다.보이콧(Boycott)이란 특정 국가나 단체에 보복을 가하며 공동으로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론 소비자가 기업에 항의하는 불매운동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한국인들은 비자 없이 태국 여행을 즐기는데, 태국 사람들은 전자여행허가를 받고도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 이는 불공정하며 양국의 우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태국여행사협회의 주장일 터.실제로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한국을 찾은 태국 여행객은 11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1%가 줄어들었다. 동일한 시기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여행자가 대폭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을 찾은 태국인 중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SNS에 ‘한국 여행 금지’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수만 명이 그것에 동조하는 최근 상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국 법무부가 곤혹스러움에 빠졌다. 불법 체류자를 꼼꼼하게 찾아내는 본연의 임무가 ‘한국 여행업계를 죽이고 있다’는 비난으로 돌아온 탓.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태국인 불법체류자는 16만 명에 육박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딜레마에 빠진 법무부가 뾰족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24

마음의 심급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페이스북이 트위터에 이어 크고 작은 문단 일들을 실어나르는 도구가 되었다. 과장을 하고 엄살을 피우고 그렇지 않아도 현시욕에 사로잡힌 이들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다.‘정파고’라는 분이 각 SNS의 특징을 인용해 놓은 것이 있다. 페이스북: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 트위터: 나 이렇게 병신이다. 인스타그램: 나 이렇게 잘 먹고 산다. 트위터 요약의 비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데, 누군가 이렇게 정리해 놓았다고 한다.그러고 보면 문학인들이 아직은 인스타그램에 몰두하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간다. 문학인이 나 이렇게 잘 먹고 산다는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기에는 아직들 배가 고프다고 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페이스북에서 얼마 전에 표절 논란이 하나 일었다. 이런저런 사례들로 문단에서 표절은 아주 치명적임이 입증되었지만, 요행히 피해 가는 사람도 있고, 별일 아닌 것이 크게 과장되기도 한다.한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나들이를 했는데, 마침 입에 올리기 꺼림칙한 표절 논란으로 큰 곤욕을 치르신 분을 만났다. 사태의 전말에 대해 나 나름대로 판단은 섰지만 이 글에서 그 판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직접 당사자를 대면하면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조심스레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돌아오는 말씀이 뜻밖이었다.당신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지나칠 지 모르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많이 되찾았다 하셨다.그래, 나는 그분께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셨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개 문단에서 그런 일은 보통 일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떤 일이 생기면, 마음에 문제를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려는 욕구가 일게 되는데, 젊은 시절부터 그것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오셨다고 하셨다. 그래, 이번에도 일을 당하여 당신 자신을 옹호하려는 마음이 이는 것을 깨달으며, 당신이 잘못한 일로부터 생겨난 문제라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하셨다.이에 나는 겉으로 큰 반응을 나타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 많이 놀라고 있었다. 내 자신의 숱한 경험으로도 무슨 일이든 나는 옳고 나와 갈등하는 다른 이는 그릇되다고 생각했던 것이 한둘 아니었음을 깨닫고 있었다.나 자신이 옳은 일도 많았고, 틀리고 그릇된 경우도 참 많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옳았던 일도 더 넓은 견지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경우도 아주 많았다. 또 근본적으로는, 세상에 벌거벗은 몸으로 태어날 때, 그 몸과 마음에 무슨 옳고 옳지 못함이 함께 있었겠는가.표절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물텀벙에 빠져 허우적도 거리셨을 텐데, 그렇게까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기까지, 그분은 얼마나 자신을 모질게 대했어야 할까.마음의 심급.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다섯 개의 글자다.마음의 심급을 생각해 본다. 어느 깊이에 이르러야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헤아려 본다. 그리고 끝내 완전한 옳음에는 이를 수 없을, 불완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나와 물을 건너가는 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다. 괴로운 심사가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기대해 보면서.

2024-06-24

APEC 개최 경주… 도시발전 10년 앞당기자

기초단체인 경주가 광역단체인 제주도와 인천을 제치고 2025 APEC 개최도시로 선정된 것은 크게 두가지 요소가 중점 고려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첫째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란 점이다. 우리나라 전통의 문화와 역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천년고도의 장점이 개최도시 선정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경주는 알다시피 신라 천년고도로서 유네스코 지정의 세계문화유산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도시다.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 양동마을 등이 있는 세계문화유산도시이자 한반도 문화유산의 보고다.APEC 정상회의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21개국 정상과 각국의 각료 등 6000명 이상이 참석하는 세계 최대규모 지역 협력체다. APEC 회원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40%, 교역량은 50%다. 우리나라가 APEC에 수출하는 금액은 국내 총수출액의 76%에 달한다. 이런 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리는 장소로 경주가 선정된 것은 경주 발전의 절호 기회다.2025 APEC 개최를 통해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 경주발전의 획기적 전기로 삼아야 함은 당연하다. 부산은 2005년 APEC 개최 후 해양항만도시로서 도시 브랜드와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관광수입도 1000억원에 달했다.또 하나 경주가 개최도시로 선정된 배경은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국토균형발전은 국가 차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문이다. 균형발전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밝히고 지방의 인구소멸도 막아야 한다. 경북연구원은 경주서 개최되는 APEC으로 1조4000억원의 경제유발효과가 생긴다고 했고, 7900명의 취업 유발효과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경주 발전을 10년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주뿐 아니라 경북도와 정부까지 나서 내년도 APEC 정상회의 개최가 성공리에 치러질 수 있도록 치밀한 준비를 다 해야 한다. 특히 경주시는 이번 기회를 통해 경주발전을 10년 앞당길 수 있게 만반의 준비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4-06-24

포항사랑상품권 해프닝 그 이후

“포항 북구의 유명 음식점인데 지역사랑상품권을 안 받아요. 그뿐이 아닙니다. 바로 인근 줄 서서 먹는 물횟집도 상품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포항사랑상품권 취재는 한 지인의 제보로 시작됐다. 우선 사실관계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역 상품권은 사실상 현금 유통과 같은 효과가 있고 수수료가 붙지 않아(있다 하더라도 정부, 지자체가 모두 보전해준다) 점포주들이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포항시 경제노동과에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메일을 보냈다. 1시간도 안 돼 이상현 과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이 과장은 “지역 상품권 제도는 지역 소상공인, 전통시장을 육성하고, 지역 자금 역외(域外)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인데, 이 취지를 거스르는 점포가 있다면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며 “점포 실명을 제보해 주면 가맹점 취소 등 행정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사실상 현금과 다름이 없어 매출, 소득 증대와 직결되는 상품권을 점포주들이 기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상품권(지류형)을 모아서 현금화하는 과정이 너무 번거로운가?, 카드, 상품권을 받으면 매출, 소득이 노출돼 세금 문제가 따르나? 의문을 제기하니, 이 과장은 ‘그런 일조차 귀찮다면 장사 그만 둬야죠’ 하며 그 사례는 없을 것이라며 일축했다.한 경제관료와 기자와의 신경전은 10분 후 걸려온 전화 한 통화로 모두 일단락 됐다.“한 기자, 작년에 연 매출 30억을 초과해서 지역 상품권 가맹점에서 제외된 곳이 몇 곳 있는데, 아마 그 식당들인 것 같습니다.”포항시는 점포들이 연간 매출이 30억을 넘어서면 가맹점에서 탈퇴시켜, 그 효과가 영세상인들에게 내려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보통 병원, 주유소 등이 대부분이지만 유명 식당, 횟집들도 상당수 포함된다는 것. 한상갑 사회정치부 이로써 모든 오해는 풀렸다. 그런데 정작 지역 상품권이 ‘거부’되는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전통시장의 영세상인이나 노점의 어르신들이다. 이분들은 대부분 카드 단말기가 없거나, 있어도 작동이 서툴러 사용을 기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디지털 문외한인 이들에게 웹(Web)이나 온라인 결제 등은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 보니 노점들은 대부분 종이상품권만 취급할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 보호, 지역 경제 공동체 회복이라는 상품권 제도 취지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저희들이 노점에 계도를 나가면 ‘웹, 단말기, 그거 알아야 쓰지’ 하며 그냥 해오던 대로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어쨌든 단말기 설치까지는 지도를 하려고 합니다. 이것만 도입돼도 지역 상품권의 낙수(落水)가 이 어르신들에게 훨씬 많이 내려갈 수가 있으니까요.”연 매출 ‘30억 클럽’과 디지털 문맹인 노점 어르신, 그 간극에서 포항사랑상품권의 접점과 방향이 정해져야 할 것 같다./arira6@kbmaeil.com

2024-06-24

유안진 시인의 안동 악센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유안진 시인은 1941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65년 ‘현대문학’에서 박목월 추천으로 등단한 원로시인이다. 시집 ‘달하’,‘물로 바람으로’,‘날개옷’,‘달빛에 젖은 가락’,‘영원한 느낌표’등을 발간하면서 꾸준한 시작활동을 하였다. 목월문학상, 공초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이형기문학상, 구상문학상 등 숱한 문학상의 행운을 누렸다. 평생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를 지낸 학자이기도 하다.14권 가까운 시집들의 작품을 일별해 보면 시인의 시작의 기품을 느낄 수가 있다. 서구문학은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을 통해 인간 구원을 언어예술로 풀어내었다면 오랜 세월 성리학의 세례를 받아온 우리나라 시문학은 자기 절제와 안존한 통제를 통한 인격 수련의 자세를 연마하였다. 그래서 문학의 지향성이 다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았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이후 인간 중심의 존재 탐구 시대로 넘어왔지만 궁극적으로는 참 인간의 모습을 추구하는 일이 문예예술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유안진 시인은 선비의 고향 안동 명문가 출신이다. 그래선지 전형적인 반가의 여인으로서 그가 직조한 시작의 내면 속에 그 그림자를 읽을 수가 있다. 자신의 삶의 태도와 방법과 같이 안존하고 자신을 치켜세우지 않는다.오양진이 ‘문학의 이유’(파란, 2023) 중 ‘숙맥노트’에서 유안진의 시작의 태도를 평한 바 있다. “말하는 시인이 아니라 귀로 듣는 시를 겸허한 자세로 제목처럼 숙맥같은 모습으로 인생을 조명하는 시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단히 정확한 평가라 아니할 수가 없다. 작가가 청자이면서 화자가 되기도 하지만 시인은 늘 낮은 자세로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심각하게 청취하는 양반가의 문화와 습속을 자신의 시속에 오롯이 담았다. 그는 조물주와 같은 창조자입네 하면서 잘난 체하며 머리를 쳐들고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는 시인이 아니라 기품을 유지하며 안존하게 소리를 듣는 시인이다.화자가 내는 그 소리는 비록 표준어로 발화하지만 안동의 악센트와 안동의 화법이 묻어있다. 유독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만연한 유년의 풍경화 속에는 안동방언이 묻어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지러지게 불러대는 말매미들의 합창을/귀로 먹고 자라는 여름 가족들이/사람 떠난 마을에 더 주민답다”, 유안진, ‘귀도 입이다’에서 유안진 시인의 세상을 조망하는 방식이 보인다. 즉 낮은 마음으로 화자의 소리를 듣는 겸손한 청자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비록 화자가 사람이 아닌 말매미라도 고향을 지키니까 사람보다 중하다며 고향지킴이라는 명예를 부여해 준다. 참 신선하다. 오랜만에 시를 왜 읽어야 하는지, 시를 읽어보면서 인간 삶의 도리와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배울 기회를 얻는 것 같다.만년에 4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남편의 죽음은 시인에게 꽤나 충격적이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자신의 소리는 억누른다. 대신 퇴근하면서 현관에 들어서는 남편의 투박한 목소리 “나 와 쏘!”에 섞인 사투리 억양. 그래서 더욱 그립고 안타깝다.유안진의 ‘벌초, 하지 말 걸’에서는 들판 벌레들의 소리를 듣는 어머님의 혼령이 말한다. 표준어로 시를 썼지만 내 귀에는 마치 안동의 방언의 에코가 여운으로 날아든다. ‘모자’, ‘바늘에게 바치다’,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화자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통하여 듣는다.유안진 시인의 시작이 기대는 곳은 고향이다. 안동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 자매, 그리고 일가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할배요 오늘 장에 가시니껴?” 그리운 안동이 어느새 감익는 마을은 온통 고향으로 전환된다.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 /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사람 떠난 빈 집을 붉게 익는 감나무 저 혼자서 지켜 섰다/ 가지마다 불 밝히고 귀 익은 발자욱소리 기다리고 섰다.//” 유안진,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에서는 시집을 가서 아이들을 낳고 시가 부모님과 조상을 모신 타향조차 내 고향으로 치환한다. 내 고향은 멀리 있어도 향기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항상 함께 하는 곳이다.시인은 계절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다. 봄과 가을 겨울의 흰 눈을 소재로 한 섬세한 서정일기도 고요하고 잔잔하게 울려온다.

2024-06-24

떠난 자들과 남은 자들

지난 번에는 니가타항을 떠나 북한으로 간 재일교포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10만여 명에 이르는 이들은 북한행 편도 표만을 가지고 니가타항을 떠난 사람들인데요. 일본에는 왕복표를 가지고 니가타항과 북한을 오고간 이들도 있습니다. 바로 ‘귀국 교포’의 가족이 그 주인공입니다. 양영희는 ‘귀국 교포’의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창작 원천으로 삼아 활동해 온 영화감독입니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김일성주의자로서, 아버지 양공선은 조총련 오사카 본부의 부위원장과 오사카조선학원의 이사장까지 역임한 정치적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제주 4.3의 처절한 비극을 피해 오사카로 밀항하여 조총련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양영희의 부모는 세 명의 아들 모두를 ‘귀국 교포’로 북한에 보냈는데요. 이 때 오빠들의 나이는 각각 만 열네 살(중학생), 열여섯 살(고등학생), 열여덟 살(대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양영희도 ‘조선인 부락’으로 유명한 오사카 이카이노(현 이쿠노구)에서 태어나 치마저고리를 입고 자랐으며, 이후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양영희의 다큐멘터리 3부작(‘디어 평양’(2005), ‘굿바이, 평양’(2009),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 장편소설 ‘조선대학교 이야기’(2018), 산문집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2022)는 모두 이러한 자신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그녀는 니가타항에서 북송선에 오른 오빠들을 배웅한 이후에도, 여러 번 만경봉호를 타고 니가타항과 북한의 원산항을 오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기에 ‘귀국 교포’와 그 가족의 삶에 대한 재현에 있어, ‘당사자 서사’에 가장 가까운 서사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양영희입니다.최근에 발표된 산문집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에는 ‘귀국 교포’의 북한 생활이나 일본에 남겨진 가족들의 삶이 매우 밀도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귀국 교포’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는데요. 이와 관련해 이 산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북한에 간 아들들의 사진을 처음 받아보고 어머니가 보이는 반응입니다. 오빠들은 처음 평양과 원산에 위치한 ‘총련 간부 자녀 합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오빠들은 처음부터 편지에 음식을 보내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는데요, 정치적으로 신실한 어머니는 “되도록 현지인과 같은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라”며 음식 대신 약품이나 학용품 정도만을 보냅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오빠들의 빼빼 마른 사진을 본 엄마는, 너무나 놀라 그 사진을 찢어 버리고는 소리 죽여 흐느낍니다. 이후에는 음식이 될 만한 것은 뭐든지 가리지 않고 소포에 꾹꾹 눌러 담아서 보내기 시작하는군요.무엇보다 ‘귀국 교포’들의 안타까운 삶은 큰오빠의 삶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님의 환갑에 바치는 청년 축하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간 큰오빠는 클래식 음악과 해외 명작들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받고, 자기비판을 강요당하고, 감시당하고, 미행당했으며, 결국에는 우울증과 조울증에 시달리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죽고 맙니다.그런데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에는 ‘귀국자’라는 신분이 북한 사회에서 반드시 핍박과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드러나 흥미롭습니다. 둘째 오빠는 아들 둘을 낳은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곧 새로운 아내 정순과 결혼하여 딸 선화를 낳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병으로 선화가 다섯 살일 때 죽고 맙니다. 둘째 오빠는 “당분간 재혼하고 싶지 않다. 정순이 같은 멋진 여자는 다시 없을 거다”라고 공언하지만, 오빠의 바람(?)과는 달리 정순이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혼담은 물밀 듯이 들어오는군요. 이러한 인기는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생활비와 애정이 가득 담긴 소포가 온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실제로 어머니의 평생 과업은 북한에 있는 세 아들과 그 가족들에게 온갖 방법으로 물건과 돈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정신이 온전치 않게 되어서야 비로소 “송금 걱정”에서 해방됩니다.또한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에는 재일교포들이 북한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양영희에게 몇 번이나 해준 이야기에는 젊은 시절 당한 테러의 경험도 있습니다. 젊은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하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오사카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요. 이때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 잉크를 온몸에 뿌립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외할머니가 분노에 몸을 떨며 호통을 치지만 그 범인은, 오히려 “조선인이 건방지게!”라는 말을 내뱉고는 사라져버리는군요. ‘조선인’을 차별하는 이러한 분위기는 양영희 세대에도 여전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양영희의 아버지는 멀쩡한 교사일을 그만두고 예술가가 되겠다는 딸을 향해, “일본에서 조선인이 어떻게 예술을 하니. 라디오나 TV에 나갈 수나 있다니? 꿈같은 소리 마라. 동네 사람들, 우리 딸이 미쳤어요!”라고 소리치기도 합니다.이처럼 인간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성공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많은 재일교포들은 북송선을 탔던 것입니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어디에선가 양영희는 가족 이야기를 “계속 우려먹고 우리는 계속 곱씹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양영희의 가족 이야기에 식민지와 분단 전쟁으로 이어진 한국의 현대사는 물론이고, 가족, 개인, 이데올로기, 국가 등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모두 담겨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박찬욱의 ‘계속 우려먹고 계속 곱씹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양영희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보다도 북에 남은 두 명의 오빠와 그 가족은 안녕한지, 그들의 후일담이 너무나 궁긍합니다.

2024-06-24

분노의 국가, 분노의 계절

날이 덥다. 그래서 주차 문제로 시비가 있었다. 날이 더운 것과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은 것 사이에 인과관계는 성립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가능하다. 날이 더우면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자기 안에 내재된 어떠한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것을 참아내는 것은 이성인데 가끔 이성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성미를 가진 사람이 지나치게 높은 기온에 놓이게 되면 이성의 만류를 뿌리치고 덜컥 화부터 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공동주택에 유난히 그런 사람이 한 명 살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주민 단체 대화방에서도 공개적으로 누군가에게 마구 화를 쏟아내더니, 오늘은 주차를 다시 해달라는 나의 요청에 분노를 쏟아내었다. 누가 주차를 잘했고 잘 못했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같은 말이라도 화를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자신의 불쾌함을 타인에게 무례하게 쏟아내는 태도이다. 장담컨대 그의 화의 원인이 전적으로 나였을 리가 없다. 일상에 내재된 어떤 화가 분명 그의 명치 언저리에서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특정인에게 이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분노가 지나치게 짙게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이미 화가 나 있고, 누군가 자신에게 불을 붙여주기만을 기다렸다가 뻥 하고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미처 안내문을 보지 못하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의 문고리를 붙잡았다고 상상해보자. 관계자가 달려와서 정중하게 ‘거기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라고 말하는 상황보다는 ‘어이! 거기 써놓은 것 안보여요? 출입금지라고요!’ 하며 성내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관에서 누군가의 휴대폰이 빛날 때도 ‘휴대폰 사용 좀 자제 부탁합니다.’ 하면 해결 될 문제를 화로 해결하는 경우를 빈번히 볼 수 있다. 그런 명백한 실수나 실책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분노는 너무나도 쉽게 표출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실제로 옷깃이 스쳤다는 이유로 서로 눈을 흘기는 상황, 아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뭘 보냐며 성을 내는 상황이 우리 주변에는 분명히 존재한다.인터넷 뉴스의 댓글 창을 봐도 온통 분노 투성이. 물론 화가 날 만한 기사에 분노의 댓글이 달리는 것이야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만났을 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이 땅을 사고 집을 샀을 때, 응원하던 스포츠 팀이 원하는 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스포츠 팀이 좋은 성적을 낼 때, 그냥 뭔가 마음에 안 들 때 사람들은 손가락 끝으로 온갖 분노를 터뜨려대곤 한다.나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경제, 기업경제, 가정경제 어느 하나 잘 풀리고 있는 것이 없는 나라라는 것은 이미 온 국민이 짜증거리 하나를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이 술술 풀리고 좋은 일만 가득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분명히 조금은 더 마음의 여유를 쓸 수 있고, 너그러운 태도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적인 우환이라 할 수 있는 경기침체 속의 우리 국민들의 여건상 모두의 가슴 속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도 할 수 있고 이해도 할 수 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노를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조금 답답하고 짜증나더라도 이성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를 줄도 아는 존재들이다. 그게 불가능한 상태를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자신이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선택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일 뿐일 것이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배우 마동석 씨나 드웨인 존슨 같은 사람 앞에서도 조절되지 않는 분노여야 진정한 분노조절장애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자 앞에서는 조절되고 약자 앞에서는 조절되지 않는 분노는 분노조절장애의 증상이 아니라 단지 추태일 뿐이다.다시 날씨 이야기로 돌아와서, 참 무더운 요즘인데 앞으로는 장마와 함께 습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올 여름은 지난 어떤 여름보다 더울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들의 불쾌지수는 더 올라갈 것이고 더 많은 분노가 펑펑 터져 나올 것이다. 그 분노로 다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꼭 그런 극단적 상황에 놓이지 않더라도 불필요한 분노가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터질 것 같지만 터뜨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사실 그런 존재들이다.

2024-06-24

독서의 기쁨과 슬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일종의 안부 인사라 할 수 있겠으나 가끔은 난감하다.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 같아서다.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봤느냐’는 질문에 ‘당연하지’라는 답을 내놓고 싶다는 허영심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다. 간단한 문제를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가 싶지만, 이를 통해 내밀한 부분을 들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설령 질문한 상대는 별생각 없더라도 말이다.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요즘의 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있다.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고전을 읽는 건 어쩐지 멋이 없어 보인다. 특히 톨스토이 같은 작가가 그렇다. 크롭티와 마이크로쇼츠가 유행하는 와중에 체크무늬 셔츠를 목 끝까지 잠그고 홍대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한국 사회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동시대적 감각을 기민하게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가올 유행을 분석하고 한발 앞서 가는 것을 훌륭한 역량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독서의 영역도 마찬가지라서 어떤 상을 받았다든가 화제의 인물이 적극 추천했다는 작품을 읽지 않으면 어떤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지만, 최근엔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전 작품을 꺼내 드는 빈도가 잦아진다.‘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의 러시아를 무대로 삼기 때문에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필요하다. 덕분에 나는 그와 관련된 역사 서적부터 찾아 읽었다. 본 여행을 위한 준비 과정이 꽤 길었으나 지평을 넓히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윽고 페이지를 펼치자 톨스토이다운 유려한 진행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인물의 이름이 헷갈려 스토리 라인을 놓치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2024년에 사는 문명인답게 유튜브를 켜고 톨스토이를 검색했다. ‘10분 안에 톨스토이 끝내기’ 혹은 ‘톨스토이 작품 읽은 척하는 법’과 같은 영상이 우르르 쏟아졌다. 벽돌처럼 두꺼운 4권의 책을 완독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유튜브에선 클릭 한 번으로 작품의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체험을 대리하는 것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독서의 영역까지 넘어오다니.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나는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파우스트’와 ‘싯다르타’는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읽는다. 몇 번을 읽었는지 손가락으로 꼽지 못할 정도다.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싶거든 꺼낸다. 특히 레빈의 풀베기 장면을 자주 찾아보는데 읽을 때마다 늘 비슷한 감동이 밀려온다. 나는 왜 이런 식의 독서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두뇌 회전이 느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명석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 에둘러 돌아가고 하나의 현상을 미련할 정도로 진득하게 바라본다.누군가에겐 굉장한 시간 낭비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독서 습관을 교정할 생각이 없다. 같은 텍스트를 반복하면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불편함이 없고 좋은 문장을 찬찬히 곱씹을 수 있다. 어제는 분노로 읽혔던 것이 오늘은 슬픔으로 읽히기도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자신만의 삶을 살며 구축한 생각이 내 안으로 조금씩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몸을 직접 통과하지 않은 것들은 쉽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어떤 슬픔을 직접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독서는 대단할 필요가 없는 활동이다. 글자를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특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서는 쇼츠를 넘기는 것보다 지루하다. 깨알 같은 글자 안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 순간이 더 많다.그런 면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독서에 접근하는 순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읽는 것을 통해 뭔가를 체화했다면, 그것은 독서 이후에 생기는 것이지 이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생겨나는 일들을 떠올려도 좋겠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좌절과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기쁨 같은 것들. 직접 경험하면서 생기는 실감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며 타인의 침입이 불가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2024-06-24

품격 있게 첨단산업화 시대에 앞장서자

김진국 고문 왜 TK인가. TK는 어떻게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섰는가. 도덕성을 지켜왔고 선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사림의 전통은 충(忠)과 효(孝), 선공후사(先公後私)다. 퇴계(退溪), 서애(西厓), 학봉(鶴峯)을 받들고, 학문을 사랑했다.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나라를 걱정했다. 국난 때는 붓 대신 창검을 들고 의병으로 나서, 강산을 지켰다. 이러한 TK전통이 대한민국을 받쳐온 정신이다.윤석열 대통령은 20일 대구·경북을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성지(聖地)”라고 말했다. 정신적 숭고함에 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TK는 산업화의 기관차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보릿고개를 넘는 기적을 이끌었다.윤 대통령의 표현대로 “우리나라를 근본에서부터 바꿔놓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도 청도에서 시작됐다. 포항은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의 획기적인 도약을 견인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정신이 우리 산업 발전의 토대가 돼 한강의 기적까지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많은 신생 독립국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 많은 나라 가운데, 산업화에 성공해, 원조받는 나라에서원조하는 나라로 변신한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 주역이 박 전 대통령과 TK다. 조상의 영광을 자존심으로만 간직한다면 비극이다. 본지가 창간한 지 34년. 노태우 정부 이후 대구·경북(TK)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이명박·박근혜, 두 분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과거의 리더십은 빛이 바랬다.TK가 한국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던 시대는 이제 역사가 됐다. 다른 지역에서는‘TK’를 ‘권력 지향’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90도 큰절을 하고, 동갑내기 동료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남인의 예법, 겸양이 된 지금이다. ‘TK의 시각’이라는 말은 강경 보수 세력 편협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추락했다.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문제와 관련해 ‘TK의 시각’이라고 표현했다가 결국 사과했다. 어쩌다가 TK가 이 모양까지 왔을까.국민의힘이 한 달 뒤 전당대회를 연다. 그런데 TK에는 대표 경선에 나설 사람이 없다. 중앙당이 공천하면 무조건 찍어주는 게 ‘텃밭’이다. TK와 호남에 붙은 불명예다. 호남은 ‘전략적 투표’라며 지극히 실리를 챙긴다. TK는 생각이 오그라들어 도계(道界)를 넘지 못한다. TK의 전통과 정신을 다시 수립할 때가 됐다. 그걸 이어가려면 당당해야 한다. 또 어른스럽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출세를 위해 허리를 굽히는 게 아니라, 국익을 위해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윤 대통령은 “경북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업구조 혁신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북아 첨단 제조 혁신 허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차전지 메카, 수소 산업의 허브, 경주 소형모듈원자로 국가산업단지, 경산 스타트업 파크, 구미 시스템반도체 설계 검증을 위한 RD 실증센터 등 청사진도 나왔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맨손으로 산업화를 이뤘다. 민둥산을 울창하게 만들고, 맨땅에 제철소와 조선소와 중화학공업단지를 일궈냈다. 미래를 향한 고속도로를 깔았으며, 나라를 위해서는 미국에 맞서기도 했다.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수구(守舊)가 아니었다. 개혁과 실용을 추구했다. 애민(愛民)은 국민이 배곯지 않게 하는 게 기본이다. 그의 시대에 맞춰 TK가 우뚝 섰다. 영광뿐 아니라 그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대구역 광장과 경북도청 공원에 박정희 동상이 건립된다. TK 전통과 정신에 다시 불을 붙였으면 한다.21세기가 벌써 4분의 1이 지났다. 밀레니엄의 꿈은 어디로 갔나. 인공지능시대에 고급 인력을 미국으로, 중국으로 빼앗기고 있다. 정치는 허구한 날 정쟁이다. 부(富)를 혐오하며, 첨단산업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 경부고속도로와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서 한발도 못 나갔다. 다양한 의견과 토론은 발전의 자양분이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정적을 죽이기 위한 반대는 국력만 소모할 뿐이다.경북의 시·군들이 소멸 위험지역이다. 경북도는 ‘저출생과 전쟁본부’까지 만들어 대결을 벌인다. 대구·경북 통합도 ‘잘살아 보자’는 몸부림이다. 유습만 고집하면 역사의 퇴행이다. 품격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곰방대만 두드려서는 안된다. 미래 한국을 키워갈 첨단산업의 불씨를 살리자. 그게 TK의 정신이자 전통이다. (본사 고문)

202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