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인류 이래 인간의 꿈은 단 한 번도 고여 있지 않았다. 이상은 도전을 낳는다. 도전은 새로운 꿈으로 탄생해 너머의 세상에 대한 동경이 인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해 왔다.
인류의 역사는 길에서 만들어졌다. 그 길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단절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꿈의 길이며, 역사와 문화, 겨레와 겨레,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화합의 메신저다. 실크로드란,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다. 문명이란 자생적 혹은 모방적인 탄생과 동시에 이동하며 전파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실크로드는 인류 문명의 선구자적 자취가 담긴 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세상을 넓혀 나에서 우리로 확장해 민족이라는 뿌리를 내리게 한 길이다. 동방의 불빛을 따라, 혹은 서방의 이상을 갈망하며 허기를 채웠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메마른 사막을 지나 황량한 벌판을 내달려 지옥의 산맥을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구도자가 묵묵히 법(法)을 구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며, 혹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때론 정복이라는 명목으로, 제국주의의 촉수 선교란 핑계로, 값싼 원료를 구하고자 식민지 개척이란 욕망으로, 개화란 미명으로 파괴와 폭력에 이용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문명의 전파를 동반한 인류 역사와 문화의 연결 단초를 제공하는 쾌거로 이루어진 결과다.
실크로드란 말은 대략 140여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이 1869년에서 1872년까지 중국 각지를 답사하고, 1877년부터 ‘중국’(China)이란 책 5권을 저술하게 된다. 서북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물품이 비단(silk)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이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 슈트라센’(Seiden Strassen : Seiden 비단, Strassen 길을 영어로 Silk Road)이라고 명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차츰 그 개념이 확대되면서 하나의 상징적인 명칭으로 변했다. 사실상 초원로나 해로(海路)는 물론, 오아시스로(사막)도 그 길을 따라 비단이 교류품의 주종으로 오고 간 것은 역사상 짧은 기간이었을 뿐, 여러 가지 교역품이나 문물이 오랫동안 교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란 이름이 존속되어 온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문명의 탄생은 교통의 발달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교통의 후진은 문명의 후진성을 초래한다. 고대 오리엔트문명, 황허문명, 인더스문명, 그리스·로마, 스키타이, 불교, 페르시아, 이슬람 등 동서고금을 망라한 전 문명이 모두 실크로드를 동맥으로 하여 싹트기 시작했으며, 이 길에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무엇보다 실크로드는 한민족의 위상을 드높인 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인이라 불리는 계림(신라 경주) 출신의 혜초(慧超·704~787)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승려 혜초는 구법자(求法者)의 길을 걸었다. 죽음의 사막도, 험준한 산맥도 막지 못했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해로와 오아시스로를 거쳐 인도와 페르시아까지 다녀와 현지 견문록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이 명저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보다 약 550년 앞서 저술된 세계적 여행기로서 인류 공동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고구려의 후예인 당나라 장수 고선지高仙芝란 인물도 있다. 동양의 한니발로 불리는 그가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넘나들면서 11년간(740~751년) 5차례나 단행한 서정(西征)은 세계 전쟁사에 전례 없는 기적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원정에 의한 제지술의 세계적 전파와 중앙아시아 보물의 유입은 중세 문명교류사에 불후의 업적이다.
그렇다면 실크로드가 과연 이스탄불, 혹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중국 시안(西安)이 종착지라는 통념은 정설일까. 한반도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서역이나 북방계의 유물들, 그리고 내외의 관련 문헌 기록들은 일찍부터 한반도가 외부 세계와 문물을 교류하고 인적 왕래가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유물과 기록에 의해 실크로드 3대 간선인 초원로와 오아시스로, 해로의 동단(東段)은 각각 중국에서 멎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고대에는 우리나라를 무지개가 뜨는 아름다운 나라, 풍족하고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했다. 그들이 동경하는 이상세계 동방의 불빛을 따라 벌판과 사막을 지나 한반도 신라(경주)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풍부한 물산과 앞선 문화의 바탕 위에 서방의 문화를 수용해 우리 민족 특유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새롭게 서방세계에 전했다.
이렇게 보면 K-pop, K-드라마, 영화, 게임 등 한류문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되, 우리 것으로 새롭게 창조해 세계로 전파하면서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류의 위대함은 오랜 시간 축적된 한민족 문화적 동력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