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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락(伯樂)과 토정(土亭)

▲ 강희룡 서예가손양(孫陽)은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말의 관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서 말을 보면 비록 비루먹어서 아무리 비실거리는 말이라도 그 말이 천리마임을 알아내는 혜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를 일컬어 별칭 백락이라고 했다. 백락(伯樂)이란 본래 천상(天上)의 별자리 이름으로 천마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백락(伯樂)이 지었다고 하는 `상마경`은 말의 관상을 보는 관상도감이다. 당(唐)시대 대 문장가이며 정치인이던 한퇴지는 `세상에 백락이 있은 다음에 천리마가 있는 것이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지 않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백락이 지나간 곳에는 명마가 남아 있지 않아 명마를 모두 뽑아갔다는 뜻이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명마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그 명마를 알아보는 백락 같은 사람은 좀처럼 없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도 올바른 인재는 대대로 끊임없이 나타난다고 했지만 언제나 이러한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문제였다. 토정 이지함(1517~1578)은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검약하고 절제 있는 삶으로 일관했다. 그는 조선의 내로라하는 명문가문이었지만 `토정`이라는 흙집에 살았다. 젊은 시절 유학(儒學) 경전은 물론 역사서, 제자백가서까지 섭렵한 토정은 어느날 돌연 과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에 대해 `선조실록`에는 과거에 급제한 이웃이 요란하게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고 천하다고 여겨 과거를 포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토정 선생이 포천 현감에 임명됐을 때 베옷과 짚신, 포립(布笠) 차림으로 관청에 출근했다. 관아의 아전이 음식상을 올리자 선생은 한참을 살피더니 젓가락도 대지 않고 `먹을 게 없구나` 했다. 아전이 뜰에 무릎을 꿇고 `고을에 특산품이 없어 밥상에 별미가 없습니다`라며 다시 상을 차리겠다고 했다. 얼마 뒤 진수성찬이 올라왔다. 선생은 다시 한참을 들여다본 뒤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자 아전이 두려워 떨며 죄를 청했다. 선생은 `나라 백성들은 생계가 곤궁한데 모두들 앉아 먹고 마시며 절제가 없다. 나는 밥상에서 식사하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잡곡밥 한 그릇과 우거짓국 한 그릇만을 삿갓 상자에 담아 올리라 했다. 다음날 관리들이 와서 인사를 할 때 시래기죽을 쑤어 권했다. 관리들은 고개를 숙이고 수저를 들었으나 먹지를 못했고 선생은 죽을 다 먹어치웠다.오늘날 토정이 유명하게 된 것은 `토정비결`이다. 정초가 되면 생년월일과 주역의 괘를 이용해 한해의 운수를 점친다는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이 토정의 저서로 알려져 있지만 `토정비결`이라는 책이 19세기 이후에 보이는 점을 들어 누군가가 토정의 이름을 가탁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훗날 역술가가 그 비결을 지으며 `주역`에 능하고 민초들과 동고동락한 토정을 필자로 내세웠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맹자는 `마음을 수양하는데 욕심을 적게 가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토정 선생 역시 가장 경계한 것은 욕심이었다. 그의 문집 `토정유고`에 실린 글은 시 2편, 논설 3편, 상소문 2편이 전부다. 논설 가운데에 포함된 `과욕설(寡欲說)`은 토정의 좌우명이라고 할 정도로, 토정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은 욕심은 본능이며 추구할수록 커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정은 욕심이 인간의 본성일지라도 부단히 줄여간다면 무욕(無慾)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락에게 뽑힌 토정 같은 인재의 발굴인데 출세하기에 급급한 자들이 신의를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떼 지어 몰려다니며 사회를 어지럽히는 현실에 국민들은 크게 실망하고 있는 듯하다.벼슬과 학문의 관계에 대하여 주희(朱熹)는 `이치는 같으나 일이 다르다`했다. 인성과 학문이 이뤄지기 전에 개인의 영달을 위해 출사하는 사람들은 아직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500년 전 토정이 남긴 진짜 `토정비결`은 욕심을 없앤 봉사하는 검약정신인 것을 위정자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6-03-21

괜찮아! 이게 바로 인생인걸

▲ 김현욱 시인치료(治療)가 주로 육체의 상처나 병을 낫게 하는 일이라면, 치유(治癒)는 마음의 상처와 병을 낫게 하거나 회복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오랜 불화 끝에 선택한 이혼,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과 같은 크나큰 상실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절망의 구덩이를 낮은 포복으로 하릴없이 기어가는 가엾은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분노와 슬픔, 두려움과 아쉬움의 감정들이 마구 뒤엉켜 영혼을 황폐화 시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분노와 슬픔, 두려움과 아쉬움은 분명 치유의 감정입니다. 이 네 가지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간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이 아물려면 우리는 반드시 치유의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분노의 시간, 슬픔의 시간, 두려움의 시간, 아쉬움의 시간을 회피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남자와 여자의 치유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남자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에서 치유의 기미를 찾는 반면, 여자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찾음으로써 치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연과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자신이 겪은 일을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치유 과정입니다.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 그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 새로운 사랑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 씨앗의 이름은`용서`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우리는 진심으로 상실을 슬퍼할 수 있습니다. 헤어져서 서로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면 서로를 위한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보고 상대방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추스르는 길이고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을 찾아 다시 마음을 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마음을 추스르기 전까지 남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려하고 여자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믿지 못합니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시작하지만 책임을 지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여자는 또다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관계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사랑의 상실에 대해 충분히 분노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아쉬워해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은 텅텅 비워집니다. 빈 마음에 새로운 사랑과 희망의 빛이 스며드는 것은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이 밝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알다시피 여자는 관계 지향적이고 남자는 해결 지향적입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체득되는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버림받은 느낌입니다. 남자는 무엇이든지 해결하려고 하고 인정받으려 합니다. 남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오랜 불화 끝에 선택한 이혼,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은 남녀 모두에게 이 세상에 버림받은 듯하고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감정을 들게 합니다. 그러한 감정에 마구 휘둘릴 때는 그 감정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유의 시작입니다.어떤 상실을 겪든 과거를 돌아보고 고통 없이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은 치유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괜찮습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니까요.

2016-03-18

같이 좀 살자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우리나라는 뛰어난 가인(歌人)이 넘쳐난다. 역사적 자료를 대충만 훑어보아도 우리 민족의 타고난 음악성은 어렵잖게 고증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적 탁월성은 현대에 와서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를 넘어 중동, 유럽으로까지 위세를 확대하고 있는 한류(韓流)의 거대한 한 축이 이른바 `아이돌` 가수의 활약에 기인한 것임을 두고 볼 때 우리 민족의 음악적 재능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더욱 놀라운 것은 공중파, 케이블 가릴 것 없이 각양각색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경신하고, 그때마다 우리의 눈과 귀를 놀랍게 만드는 신인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점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음악적 자질을 반증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우리 민족의 타고난 음악성을 이야기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지난 해 가을 방송이 끝난 유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한 젊은 음악인의 노래를 들으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서다. 이십대 초반 나이의 임예송이라는 참가자가 예선에서 불렀던 `양장점`이라는 제목의 자작곡을 들었을 때, `아니, 저렇게 어린 친구가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지?`라며 무척이나 놀랐었다.겨우 스물을 넘긴 어린 나이의 가수가`양장점`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지만, 더욱 놀라웠던 까닭은 그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대충 이런 내용의 가사다. “젊은 날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맘을 굳게 먹고 문을 열고 선, 어느새 때는 바야흐로 20년이 지나갔는데, 간판 위에 쌓여 가는 하얀 먼지들과 같이 내려앉는 근심 걱정에도, 또 건물들은 삭막하게 쌓여 올라가, 이제는 이별해야 하는 건가요. 나의 삶의 장소와 추억들도 이젠 다 허물어지고 무너지네. 내 작은 가게들은. 같이 좀 살자. 우리도 살자. 같이 좀 살자. 나도 좀 살자.”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이 노래는 조금은 단조로운 곡조로 진행된다. 그러나 오히려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이 보다 잘 전달되는 장점을 지닌 곡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읊조리듯 전해오는 어린 가인(歌人)의 노래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무거운 주제를 일상인의 눈으로 심상하게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심상한 전달 속에서도 마지막 구절이 전달하는 울림은 매우 강렬했다.`같이 좀 살자`, `우리도 살자`, `나도 좀 살자`는 소시민의 애끓는 절규가 아직은 이 시대의 아픔을 속속들이 겪어보지 못했음직한 소녀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올 때, 그래서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노래를 자작(自作)한 임예송씨는 서울 지하철 합정역 7번 출구에 위치해 있던 오래된 양복점이 어느 날 불현 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체인점이 들어선 모습을 목격한 후 양복점 주인의 감정에 이입하여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청운(靑雲)의 꿈을 품고 문을 열었던 가게가 이십 년 세월 속에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는 노랫말의 상황은 이미 우리 주변에 일상화된 현실이다. 삶의 터전과 온갖 흔적들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극단까지 내몰린 심정에서 같이 좀 살자고, 우리도, 나도 좀 살자고 내뱉는 읊조림은 그 자체로 웅변적이다.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이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로 넘쳐나는 캠퍼스를 거닐다가 스쳐 지나가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읽어내기 보다는 절망을 먼저 떠올린다. 과연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그때는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까라고. 취업난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이 과연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는지. 이들의 입에서 `같이 좀 살자`, `우리도 살자`, `나도 좀 살자`는 장탄식(長歎息)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2016-03-17

제발, 좀 도와주세요(1)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인간과 기계, 세기의 대결! 인공 지능 인류를 넘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 제목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 대표는 대한민국 이세돌, 기계 대표는 구글이 만든 알파고(AlphaGo), 대결 종목은 바둑! 이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 세계의 이목이 대한민국에 집중되었다. 결과는 인류의 패배!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 때문에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기계들이 넘을 수 없다던 바둑의 영역을 인류는 기계에게 내주었다. 언론들은 마치 인류가 멸망이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사람들은 알파고의 승리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알파고는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두 가지 신경망을 통해 결정을 내리며,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계의 학습은 인간의 학습과는 분명 다르다. 문제가 주어지면 수천대의 컴퓨터들이 동시에 자료를 찾고, 이를 분석하고,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최고의 해결방법을 내놓는다. 반면 인간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감정(感情) 때문에 판단능력이 떨어져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하고 만다. 그리고 그 실수를 잊어버린다.기계들은 벌써부터 사람을 뛰어넘는 뇌를 가졌다. 그것을 사람들은 인공지능(AI, 人工知能)이라 부른다. 이제 기계에게 남은 것은 사람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이다. 물론 그러한 몸을 가질 날도 멀지 않았다. 그 몸도 물론 인간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뇌와 인간보다 훨씬 강한 몸을 가진 신인류가 출현하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지난 주말 인간들의 잘못된 감정 때문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 알파고에게 접수됐다. 평택에서 실종된 아이가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영하 12℃ 날씨에 부모라는 인간들이 아이 몸에 찬물을 붙고 화장실에 감금했단다. 알파고는 이번 사고를 어떻게 판단할까. 기계들의 학습 자료는 인간이다. 기계들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저장한다. 그리고 어느 상황이 주어지면 저장된 자료를 바탕으로 행동에 옮긴다.`기계들의 역습`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부터라도 인간이 기계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지만 기계들에 의해 인류가 처참히 짓밟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절규하는 어머니가 있다. 지금의 잘못된 사회와 교육계의 판을 뒤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편지를 소개한다.“도와주세요! 저는 4년 전부터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좀 여리고 느린 성격인데 부모가 헤어진 뒤부터 더 소심해져서 친구 사귀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거기에 선생님들도 보탬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기저기 전학을 다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반 아이의 지독한 언어폭력과 왕따에 스스로 117에 신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결국 엄마로서 아이를 바로 키우기 위해 학교를 알아보던 중 대구에서 가까운 대안중학교를 찾았습니다. 중학교 정식 인가가 난 학교라 당연히 아이가 기존에 받던 한부모 저소득 지원은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전학 절차를 밝았고요.그런데 전학을 하는 과정에서 교육청으로부터 이 학교는 중학교로 인정은 해주되 중학교 범주 안에 넣지 않기에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존에 아이는 저소득 한부모 가정으로 급식비와 방과후 교육비를 지원받고 있었으나 그것마저 다 중단한다는 겁니다.대단한 사립학교가 아닙니다. 마을공동체 생활로 아이들의 인성과 자존감을 일깨워주고 근래에 드물게 마을어른들과 함께 공동체, 즉 서로 도와가며 함께 살아가는 학교입니다. 말 그대로 시골 학교입니다. 내 아이가 도시에서의 모든 사교육을 다 포기하고 이곳을 선택한 건 아이의 자존감을 다시 찾고 엄마로서 정말 미안하고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헤어짐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을 치료해 주고 싶어서였습니다.그런데 너무 힘이 듭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2016-03-16

대구미술관의 역할과 책무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3월초 대구미술관에서는 현재 전시중인 미술품에 대한 진위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대구 출신의 작고작가 이인성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대상으로 포함 시켜 소장하겠다는 미술관측의 발표로 일단락이 되었다. 기자간담회에서 미술관장과 이인성기념사업회장, 연구원들이 참석해 진위논란이 되는 작품의 제작배경에 대한 자료제시와 위작이라고 단정 지을 학술적 근거가 없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우리나라 근대미술품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이다. 이처럼 한국의 근대미술품에 대한 논란은 비단 이인성의 작품에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미술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과 미술품 유통이 가진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히고 설켜 생겨난 일들이다.이번 이인성의 `연못` 진위논란 문제는 지난해 대구의 유명 미술품수집가가 평생 수집한 작품 600여점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미술관에서는 이들 작품에 대한 평가와 소장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옥석을 가려내듯 심도 깊은 선별과정이 과연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전국적인 사례를 보더라도 몇 안 되는 대규모 미술품 기증문화를 몸소 실현한 기증자의 숭고한 의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심의위원들의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이 있었다면 이런 사태까지 벌어졌을까 하는 아쉬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규모의 미술품 기증이 이루어질 때에는 충분히 생겨날 수 있는 사안이기에 먼저 미술관 내부적으로 수집을 위한 충분한 학예연구가 이루어지고 기증 작품의 질적 수준에 대한 평가가 병행되어졌다면 최소한 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중 진위논란이라는 구설수에 휩싸이지 않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천재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이인성이 과연 수작(秀作)만을 제작했겠느냐 하는 문제는 이번 진위논란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불과 100여 년 남짓의 우리나라 서양화 역사 속에서 진위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과연 몇 점 정도 될 수 있을까? 아직까지 대구근대미술에 대한 깊이와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항 속에서 무작정 근대미술품 한 점을 유명작가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고 해서 사장(死藏)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루어질 수 없는 문제이다. 특히 이런 학술적 연구가 수반되어져야 하는 진위문제를 아니면 말고 식의 익명의 언론제보는 대구미술 연구를 퇴보 시키는 부끄러운 모습이다.1920년대 우리나라에 서양화가 유입되던 시기에 대구는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서양화 기법을 익히고 귀국한 선각자들에 의해 급속한 성장과 보급을 가져왔고, 이들이 남긴 작품들은 6·25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탓에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현재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했던 서양화가들 중 그들이 남긴 자료 중 망실되거나 소장처를 확인할 수 없는 작품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 작품들은 대구근대미술 아니 나아가 한국근대미술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에 그 가치는 더욱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대구미술관은 대구 근대작가들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자료 수집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설립되어졌다. 이러한 시대적 책무를 이해하고 앞으로 발굴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다보면 이번 사태처럼 진위논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수없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시립미술관이 그런 학술연구를 이어가지 못한다면 누가 이 일을 대신해 줄 것인가? 오늘도 묵묵히 미술관 학예실을 지키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는 학예사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2016-03-15

영화적 상상력으로 죄를 묻다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3·1절 전으로 개봉된 `동주`(이준익 감독)와 `귀향`(조정래 감독), 두 편의 영화가 한국을 뜨겁게 하고 있다. 두 영화가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잔혹한 일을 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주`는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시 `서시`를 쓴 독립운동가 윤동주 시인의 짧은 일생을 그린 영화이고, `귀향`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불안한 시국의 청춘임을 부끄러워 했던 그 분/들어봐 별 헤는 밤 윤동주 알고 있나요?/사람은 모두가 별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난 난 너의 별 그리고 넌 넌 나의 별/함께 별을 헤어봅시다`라며 레퍼 술제이는 윤동주의 `서시`를 `별헤는 밤`으로 노래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에 가면 윤동주 문학관이 있고, 그 주변으로 시인의 길이 있고, 연세대 핀슨홀에는 윤동주 기념관이 있고, 기념사업회도 있다. 기념사업회에서는 시문학상, 기념강좌, 시암송대회, UCC경연대회, 시작곡경연대회, 백일장, 해외문학상 등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해서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특별히 지난 2월 16일은 윤동주 서거 71주기를 맞아 평전과 시집이 출간되었고, 3월 20일부터 창작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가 시작되고, 차여울 밴드가 윤동주 헌정앨범을 냈다. 윤동주가 유학했던 일본 릿쿄대학에서는 올해로 9년째 그를 기리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윤동주를 기리기 위한 사업과 행사가 여러 군데에서 이루어졌지만, 영화 `동주`만큼 광범위하고 짧은 시간 만에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동주`는 2월 29일 일일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하며 4만4천608명의 관객이 늘어 누적관객은 65만5천910명에 이른다.이준익 감독은 윤동주가 술제이의 랩처럼 불안한 시국의 청춘임을 부끄러워하는 인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송몽규(박정민 분)의 외향적이고 직설적인 성격과는 달리 윤동주(강하늘 분)의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이 영화를 보는 시간 내내 답답하게 만들지만,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식민지 주체이자 청년 시인의 고뇌와 행동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윤동주의 죽음은 송몽규의 대사로 처리되지만, 흑백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지켜본 관객이 그의 죽음의 장렬함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당시 후쿠오카 교도소 수감자 1천800명의 의문사였다. 의문사를 통해서 일본의 죄를 묻는 것,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든 진짜 이유라고 했다.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며칠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한국과 일본 정부가 맺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지나간 세월에 상관없이 피해자 고통을 다루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최근의 영화로 `마지막 위안부`(2014, 임선 감독), `소리굽쇠`(2014, 추상록 감독), `눈길`(2015, 이나정 감독) 등이 있었지만, `귀향`(조정래 감독)만큼 뜨거운 반응을 받은 영화는 처음이다.`귀향`은 지난 달 24일 개봉 직후부터 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으며, 개봉 5일 만에 100만관객을 넘겼다고 한다. 조정래 감독의 제작의도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최대한 잘 전하되, 고통전시에 머무르지 않고 치유로까지 나아갔다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의도는 이준익 감독처럼 죄를 묻는 데 있지 않았을까? 영화적 상상력으로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방법으로.

2016-03-14

기초생활수급자조차 외면하는 경북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2016학년도가 돛을 올렸다. 장기결석 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광풍으로 몰아친 이후여서인지 교육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정말 두 번 다시 어른들의 무지와 이기심 때문에 희생되는 학생들이 없기를 기원하며 필자도 2016학년도를 시작한다. 교문마다 만국기처럼 내걸린 입학 축하 현수막 아래로 학생들은 운동회보다도 더 신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꿈꾸며 교정에 첫발을 내디뎠다.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긴 겨울잠을 자던 학교 조경수들이 잠을 깨고 꽃눈을 밀어 올렸다. 산수유와 매화의 개화를 시작으로 모든 생명들은 때에 맞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자연의 장단에 맞춰 학생들의 학교생활도 활짝 피길 바란다.최근 학교에는 `안정부장`이라는 보직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위기학생대응매뉴얼이라는 것이 내려왔다. 뒷북 코리아답게 뒷북치는 꼴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육 당국의 의지를 확인 할 수 있는 조치라는 측면에서 필자는 매뉴얼을 읽고 또 읽었다.교육청에서 온 매뉴얼 중 필자의 마음을 움직인 또 하나의 매뉴얼이 있다.`2016년 초·중·고 학생 교육비 지원 매뉴얼`이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두 딸과 함께 어머니가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정부는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고 송파 사건과 같은 불행한 사건이 없도록 저소득층의 최저생활을 현실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세 모녀 법`을 제정했다. 이 또한 뒷북 처리법이지만 정말 필요한 법이기에 여야와 전 국민이 환영했다. 하지만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그런데 이런 현상은 사회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있다. `교육비 지원 매뉴얼`에 나와 있는 내용을 잠시 보자. “각급학교에서는 저소득층자녀의 4대 교육비 지원 절차 및 방법을 충분히 검토하여 업무처리 과정에서 지원 대상자가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를 기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나라의 교육 복지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뒤에 예외 사항이 있었다. “단 대안학교는 정보화지원만 가능함”. 분명 추진 배경에는 “저소득층 가정 학생의 실질적 교육복지 실현과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 경감을 위해 교육비 지원 사업 지속 지원 필요”라고 적혀 있었다.그런데 대안학교는 안 된단다. 그 이유가 너무도 궁금해서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했다. 정말 어렵게 연결된 보건복지부 직원으로부터 필자는 교육부에 알아보라는 너무도 퉁명스러운 답을 들었다. 굴욕감까지 느껴졌지만 필자는 교육부에 전화를 했다. 예상은 했지만 교육부 직원의 답변은 더 퉁명스러웠다. 물론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필자와 통화한 그들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공무원 조직의 문제점인 관료주의, 부처 이기주의 그 자체였다. 교육비 지급은 교육감 재량 사업이니 교육청에서 알아보라는 말끝에 교육부 직원은 “그럼 일반 학교에 다니면 되잖아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들의 교육비 지원이 교육감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니?화가 났지만 그 학생들이 일반 학교를 두고 왜 대안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필자의 말은 잡음에 지나지 않았다.그래서 필자는 다시 교육청에 전화를 했다. “대안학교는 돈이 많이 드니까 지원을 할 수 없다, 경상북도 교육청의 내부 방침”이라는 말에 필자는 “자율고, 특목고는 되면서 왜 의무교육 대상자인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안 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들은 말 할 것이다. “그럼 일반학교 다니면 되잖아요.”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처럼 교육계엔 아직 봄은 멀고도 멀다. 진정한 교육의 봄을 위해 보건복지부, 교육부, 교육청에 묻는다.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왜 대안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는지 학생과 학부모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는지? 왜 그들을 공교육에서는 책임지지 못했는지? 그들이 대안학교를 선택할 동안 교육청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현장에서 교육 약자들의 소리를 들어 볼 생각은 없는지? 공교육의 최대 피해자인 그들은 어디 가서 보호를 받아야하는지?

2016-03-09

문예중흥과 포항문화재단

▲ 류영재 포항예총회장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지 벌써 20년, 성년의 세월이 지났다. 흐른 세월만큼 모양도 다듬어지는 법이어서 각 지자체들도 자구책에 몰두하여 자치의 틀을 다지고 있다. 물론 중앙정부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자치에는 여전히 일정부분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지자체는 저마다 지역정체성 확립을 위한 연구와 도시브랜드 가치의 상승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각 도시마다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슬로건을 정하여 이를 시정목표에 반영하고 지역축제를 계발하는 등 차별화된 문화정책 추진에 열중하고 있다. 문화가 지방자치의 첨병으로 도시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포항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역의 문화예술정책을 일관성 있게 계획하고 긴 안목으로 미래를 예측하며 추진하기 위해 필수적인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할 문화재단의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하니 만시지탄이나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재단 설립을 위한 여론조사에서는 시민들 절대다수가 설립취지에 찬성했다고 한다. 포항시민들의 문화적 소양이 높은 수준임을 시사해주는 것이며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향유 욕구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단들은 대부분 설립된 지 1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중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모범적인 운영으로 손꼽히는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된 지는 15년 남짓 지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우리 포항도 이미 15년 정도 지난 옛날에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필자가 40대 중반이던 시절, 포항의 미래를 염려하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문화재단의 필요성에 대하여 활발하게 토론하였고, 구체적인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성사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있다. 그 무렵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되었고 `경기학` 연구, `경기문화` 자원 발굴과 `경기정체성`확립 등으로 오늘날 예향으로 불리는 남도와 비견되는 경기지역의 문화지형도를 그려내는 기반이 된 것이다. 포항문화재단의 설립타당성을 검토한 용역보고서가 포항시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인구가 50만 이상인 15개 도시 중 13개 도시에는 이미 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포항시를 포함한 2개 도시에만 문화재단이 없는 상태라 한다. 물론 다른 도시에 있다고 해서 우리도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겠으나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문화정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단의 설립이 필수적이다.그동안 교통의 오지였던 포항의 환경이 KTX 개통과 고속도로 등 교통망의 정비로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오갈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된 바, 이 기회를 활용하여 동해변방의 철강산업도시로만 알려진 포항의 신성장 동력으로 포항문화재단이 중심이 된 포항학연구와 지역정체성 재정립을 통한 포항문화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림으로써 `도약하는 포항`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이 기회를 살려 문화도시 추진과 해양관광도시로서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갖추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문화관광의 역류현상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음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용역보고서의 사업적정성 분석에 의하면, 시 소유의 시설 및 장비사용으로 초기 설립자본금을 최소화함으로써 재정적 부담이 크지 않고, 문화행정서비스의 강화로 주민복리증진에 큰 효과가 있으며, 문화관광소비의 확대와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여 적정한 사업이라는 결론이라 매우 다행스럽다.다만,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제언하자면 문화재단의 업무는 각 지역의 재단마다 대동소이하므로 포항문화재단의 경우는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은 욕심은 자칫 방만한 운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긴 안목을 가지고 지역정체성의 재정립이라는 점에 집중하여 후대에까지 연면히 이어질 경쟁력을 갖춘 `포항학`의 뼈대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2016-03-08

경력단절여성, 고용유지의 길을 찾아서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용률 70% 로드맵 달성의 핵심은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참가율이 남성(78.2%)보다는 여성(56.9%)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여성가족부, 2015).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가 남성중심의 지배적인 구조인 반면에 중간관리직 이상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은 저조한 실정이다. 국내 여성 고용률 역시 54.6%로 남성(75.1%)과는 20.5%p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여성가족부, 2015). 국외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7.0%로 평균(62.8%)보다 낮으며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OECD, 2015). 여성인력의 활용이 낮은 이유는 결혼, 임신 및 출산, 육아와 자녀교육 등으로 경력단절과 같은 상황 때문이며, 이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여성 고용률이 30대초반부터 감소했다가 40대에 다시 증가하는 M자 패턴을 보인다. 이와 같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기 위해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을 제정해 40대 이후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비약적으로는 증가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재취업은 아직도 어려운 실정이다. 더 나아가 경력단절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육아휴직제도 정착, 양성평등문화 확산과 맞벌이에 대한 보육서비스 확충 등을 통해 여성의 경력단절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력했으며,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해 재취업의 기회를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때문에 경력단절여성의 고용유지 길을 찾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고용유지를 위한 취업지원 기반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인-구직간 근로조건 및 급여수준, 재취업하는 과정에서 갖춰야 할 조건 등을 고려한 일자리 매칭이 필요하다. 경력단절여성이 더 좋은 일자리로 재취업이 돼야만 고용유지의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구직자는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역량 강화 및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등 취업의지 확립이 중요하며, 구인업체에서는 여성의 근무 환경과 보수, 근무 시간 조정 등 인식 변화를 통하여 양질의 구인업체를 발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둘째, 경력단절여성이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자녀출산 및 양육이 가장 많이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육서비스 확충은 필수이다. 이와 함께 여성인력의 노동시장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결혼·출산·양육의 부담이 집중되는 시기에 노동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직무공유제나 희망하는 시간에 근무하는 탄력적 근무제도 등 대안적인 고용형태를 적용하여 개인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셋째,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직업의식 함양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경력단절여성의 직업의식 함양에 있어서는 여성의 변화된 성역할 이해와 취업에 대한 태도 개선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실현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사회 및 직업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마지막으로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인적자원통계 자료의 구축 및 확충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즉 정확한 기초 통계와 매뉴얼이 없으면 경력단절여성의 고용유지 방안을 모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 때문에 고용유지율에 따른 표준화된 매뉴얼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표준화된 고용유지 프로그램과 DB를 통해 중장기적인 계획을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노력은 경력단절여성의 고용유지율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6-03-04

태워지는 처녀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거리마다 태극기 물결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무슨 날이구나 하고 건성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 저리도록 아픈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근데 안타까운 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이 나라엔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역사가 아닌 역사교과서에 빠져 있는 이 나라에서는 얼마가지 않아 후자에 속하는 분들이 안 계실지도 모른다. 그땐 아마도 위안부, 일제 강점기, 독립, 애국심 같은 말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아, 아니다! 한 곳은 예외일 수 있겠다. 그곳은 바로 국회다.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4년마다 기막히게 이 단어, 특히 애국심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외친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바로 세울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아마도 그 놀라운 기억력은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4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그날만 다가오면 그들은 아무리 추워도 이른 새벽부터 거리에서 나와 허리가 부러지도록 인사한다. 그리고 외친다, 이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사람들을 심판하자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통계로 말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위기는 선거에 맞춰 4년 단위로 오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거에 나가는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까! 표를 얻기 위한 예비 정치인들치고 우리나라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선거만 되면 세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는 위기에 빠졌다고 하니 국민들은 정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다 안다. 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걸.이 나라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제외한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우리는 4년마다 양치기들의 거짓말을 계속 들어야 할까. 컷오프다 뭐다 해서 자신들은 그동안의 양치기와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양치기는 양치기일 뿐이다. 양치기들이 들끓는 이 나라 국회에서 양치기를 몰아낼 방법은 정녕 없을까.4월 13일을 두고 최근엔 양치기들의 싸움이 더 심하다.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분노지수만 치솟고 있다. 같은 양치기들이 자신들은 깨끗한 양치기라고 떠들어대니 정말 코미디도 이런 저질 코미디가 어디 있을까. 최근 언론은 필리버스터(議事妨害·filibuster) 쇼를 내보내고 있다. 말이 하도 낯설어 사전을 찾아보다가 정말 이상한 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행위. `합법적 방해`라는 말도 안 되는 역설적 표현에 억장이 무너졌다. 혹 필자가 합법이라는 말을 잘 못 이해하고 있지 않나 해서 사전을 찾았다. 사전에서는 합법(合法)이란 법령이나 규범에 적합함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합법적 방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합법적 방해를 하는 사람들도 물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필자는 10시간 넘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한 번 들어보았다.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듣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작과 함께 끄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금배지를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필리버스터 할 시간에 괴물주머니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나눠주기. 어쩔 수 없이 국회에서 몇 시간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횡설수설하지 말고 `태워지는 처녀들, 위안소 생활, 광복절의 기억, 꽃피는 봄날` 등 `역사가 된 그림`에 나오는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제한 토론 자료로 `귀향(鬼鄕)`을 국회에서 상영하고, 패널로 국민들을 초청하기. 이렇게 하는 사람은 분명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괴불주머니를 움켜잡고 울부짖는 소녀들의 비명 소리를 생생히 기억하니까.

2016-03-03

클래식 FM

▲ 김현욱 시인출퇴근길에 주로 클래식 FM을 듣습니다. 물론, 클래식에 전혀 문외한입니다만 자주 듣다보니 몇 가지 터득한 게 있습니다. 성악과 기악 중 성악이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들이 그러합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에 `축배의 노래`, `아, 그대였던가`, 푸치니의 `토스카` 중에 `별은 빛나건만`, `라보엠`의 `그대의 찬 손`, `내 이름은 미미` 등의 아리아들이 귀에 익숙해졌습니다. 오페라의 서곡과 간주곡들은 유명한 아리아들의 멜로디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현악곡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아는 것만큼 보이고 듣는 것만큼 좋아지게 됩니다. 별 뜻 없이 틀어놓았던 클래식 FM 덕분에 도서관에서 고전음악 관련 책도 찾아 읽게 되고 미처 몰랐던 작곡가들의 생애도 알게 됐습니다. 표제음악은 제목이 있는 것이고, 절대음악은 제목 없이 `소나타 3번` 등으로 불리는 것, 표제음악은 대부분 고전 시대를 지나 낭만파 시대에 생겨났다는 것도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감상 순서는 낭만파의 초기 작품,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의 작품과 쇼팽, 리스트, 비니아브스키, 파가니니 등 연주가를 겸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입니다. 음악은 시대별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흐와 헨델의 시대를 바로크 시대라고 합니다. 1600년부터 1750년까지를 바로크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의 음악은 청순하고 깨끗하면서도 종교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초보자들에겐 조금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바로크 시대가 끝나면 이어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 의한 고전 음악 시대가 열립니다. 고전 음악의 특징은 음 자체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형식을 중요시하는 형식미의 추구에 있습니다. 이 시기의 음악은 대부분 절대 음악의 범주에 속합니다.슈베르트는 낭만파 음악의 선두주자입니다. 초등학교 교장을 아버지로 하여 13번째로 태어난 슈베르트는 천성이 자유분방하여 형식을 무시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31세란 짧은 나이에 요절한 슈베르트는 일생 동안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지냈습니다.2악장의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 8번 `미완성`은 형식으로는 미완성이지만 듣는 이들에게 고독과 사랑을 느끼게 해줍니다. 소박함과 깨끗함의 극치를 이루는 `첼로 소나타 아르페지오네 8곡`의 즉흥곡, 속삭이는 듯한 즐거움의 조화를 이루는 피아노 5중주 `송어`, 슬픔 속의 격정을 나타내는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등 헤아릴 수 없는 슈베르트의 작품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작곡가들 가운데서 가장 부유했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그리고 `한여름 밤의 꿈`은 클래식의 세련됨을, 피아노 협주곡과 실내악곡들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무언가`는 예술의 화려함을 일깨워 줍니다.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을 통해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테크닉의 거장들, 파가니니, 리스트, 쇼팽으로 옮겨가면 좋습니다. 귀신같은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 준 파가니니의 협주곡 여섯 개, 무반주 카프리스는 정녕 바이올린의 매력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줍니다. 헝가리 출신의 리스트는 체르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워 1838년부터 온 유럽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피아노의 광인입니다. 헝가리의 민족음악인`마자로`족의 민요를 토대로 한 19개의`헝가리 광시곡`은 아름다운 서정과 넘치는 박력을 함께 느끼게 합니다.고전음악도 가요나 팝송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역사가 있고 그 속에 사연이 있습니다. 클래식 FM을 통해 솟구쳐 오르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2016-02-26

카버의 법칙과 새 학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사회에 연말이 있다면, 학교에는 학년말이 있다. 다들 연말 분위기를 잘 알 것이다. 아쉬움과 미련,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기대와 희망! 상반되고 복잡한 마음 때문에 괜히 심란해지는 연말! 그러면 학년말의 분위기는 어떨까. 학년말 역시 연말처럼 분주하다. 하지만 그 분주함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연말에는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분주하지만, 학년말에는 교사들만 잠깐 분주하다. 교사들은 잡무(雜務)로 전락해버린 형식적인 졸업식과 종업식을 치르느라 반짝 바쁘다. 그리고 더 반짝하는 바쁨으로 전력을 다해 또 하나의 잡무인 학생생활기록부를 정리한다. 그래야 힘들었던 학생들을 빨리 잊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 전에 학생들은 교사와 학교를 잊기 위해 빛의 속도로 교문을 빠져나가 PC방을 거쳐 학원으로 갔다.스승과 제자가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만 남은 우리나라 학교의 학년말은 그렇게 잠시 바쁘다. 그 잠시 동안에 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를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또 바쁘게 산다, 학생들은 학원에서, 선생들은 골프장이나 기타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학생과 선생이 떠난 2월의 학교가 참 쓸쓸하다. 비록 희망 고문일지언정 연말에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라도 있지만, 우리나라 학년말에는 새 학년에 대한 기대감 따윈 없다. 선생과 학생 모두 새 학년을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프다.2년 전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딸아이가 생각난다. “아빠, 나 빨리 학교 가고 싶어.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 달력 고장 난 거 아니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새로 산 가방이 다 닳을 정도로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연습을 한 아이. 그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학부모가 아니라 부모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빌고 또 빌었다, 저 행복한 모습이 제발 꺾이지 않기를.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교육은 2년도 안 되어 그 행복한 모습을 아이에게서 앗아갔다. 필자 또한 부모가 아닌 학부모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지독한 학부모가.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절규한다. “왜 매일 학교만 가라고 해. 숙제, 공부, 또 숙제, 공부. 아빠는 그 말밖에 할 게 없어.” 절규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잠시 진정한 아이가 말한다. “어휴, 이제 3학년이 되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기대와 설렘은 주지 못할망정 한숨밖에 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교육, 대한민국 학부모.2015학년도가 끝나가고 있다. 다음 주면 새 학년이 시작된다. 그런데 필자는 새 학년을 시작할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달력만 2016년이지 아무리 둘러봐도 대한민국 교육은 1900년대에서 멈춘 것 같다. 그동안 참 많은 제도들이 시행되었지만, 그 때마다 대한민국 교육 시계는 거꾸로 갔다. 역행하는 속도에 비례하여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곤두박질 쳤다.필자는 필자부터 변해야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해보지만 솔직히 말해 어떻게 변해야 될지 모르겠다. 많은 전문가들이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론과 현실이 너무도 동떨어진 게 이 나라 교육이다. 그걸 가장 잘 증명해 주는 교육계의 거짓말이 “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교육은 일년은커녕 한 학기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되었다.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한숨 소리가 마음에서 더 크게 메아리치는 학년 말. 필자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이먼드 카버의 습관을 빌려 신학기 계획을 세워본다.카버의 습관이란 `미래를 위해 물건을 쌓아 두지 않고, 날마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다 써버리고 더 좋은 것이 생기리라 믿는` 습관으로 일명 `카버의 법칙`이라 한다. 카버의 법칙을 수정해 신학기 다짐서를 만들었다.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쌓아두지 말고, 날마다 마음을 다해 가장 좋은 교육활동을 하자!” 그런데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교육활동이 있기나 할까? 새 학년을 앞둔 학생들의 탄식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2016-02-23

정치의 계절에 띄우는 서시(序詩)

▲ 차봉준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민족의 시인 윤동주는 `서시(序詩)`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며 노래했다. 그는 암울한 식민치하에서 언제나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다짐했었고, 결국 이국(異國)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부끄럼 없이 마감했다. 윤동주는 1942년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과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공부를 이어가다, 1943년 여름 일본 특고 형사에게 체포된 후 조국의 독립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에 옥사한 인물이다.특히 릿쿄대학 시절 하숙방 한 켠에 고독하게 앉아 자신의 침전(沈澱)하는 삶에 대해 부끄러움을 고백한 시 한 편도 관심을 끈다. `쉽게 씌여진 시`라는 작품에서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는 시인의 고백은 시대 앞에, 민족 앞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철저한 반성이 전제됨으로써 나타난 진심어린 목소리다.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알리기 위한 갖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선거에 나선 개개의 정치인은 본인의 이력과 능력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피나는 경쟁에 돌입했다. 평소엔 얼굴조차 보기 힘들던 사람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신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이 붐비는 도심의 횡단보도와 지하철역 출입구에는 이른 아침 출근 시간과 밤늦은 귀가 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 알리기가 한창이다. 별반 신기할 것도 없는, 으레 4년마다 반복되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우리 지역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도대체 저 사람은 왜 또 나오는 거지?`, 그리고 `저 사람은 아직도 저러고 있어?` 정도의 호기심만 생길 뿐 도통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이런 와중에 유독 이번 선거에 도드라진 한가지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새누리당 소속 후보들의 이른바 `진박(眞朴) 마케팅`이 그것이다. 같은 당 후보자들끼리 `내가 진실한 사람이니`, `저쪽은 배반의 정치`니 하며 갑론을박이다.경상도 정서, 즉 `박근혜 대통령 팔이`에 호소하려는 얄팍한 속내가 낯 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다. 원래 정치하는 사람들이 낯이 두껍다고는 생각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몰랐다.도대체 부끄러움은 어디에 팔아버린 것인가! 표를 구하는 이들이 진심을 다해야 할 대상은 누구여야 하는가.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앞에 진실한 사람임을 호소해야 마땅한 게 아닌가. 진박(眞朴)이 아닌 진국민(眞國民)을 외치는 후보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이들에게 윤동주의 시를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죽는 날까지 국민들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진정 그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아무개 한사람이 아니라 국민들이다. 4년마다 한 번씩 그토록 간절히 한 표를 구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바로 그 `국민`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신을 가꾸어야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해야 옳다. 누구 한 사람에게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앞에 진실한 사람임을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고 국민 앞에, 국가 앞에, 민족 앞에 순교자(殉敎者)적 헌신을 고백하는 그런 위정자를 만나고 싶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 그런 소망을 갖기에, 그런 행복한 나라에 살기에 여전히 부족한 것일까?

2016-02-22

20년 20일

▲ 김현욱 시인2003년에 개봉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를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오대수는 누군가에 납치돼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됩니다. 누가 왜 자신을 가뒀는지 몰랐던 오대수는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고통을 견뎌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15년간 갇힌다면? 그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여러분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여기 `20년 20일`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1월 15일 암 투병 끝에 향년 75세의 나이로 별세한 고(故) 신영복 교수가 바로 그 분입니다.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풀려납니다. `20년 20일`은 신영복 교수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입니다.감옥에서 책을 읽는 것이 자유롭지 못할 때 한 권으로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당연히 동양고전을 선택하게 됩니다. `시경`, `주역`, 이 난해한 고전을 감옥이 아니었다면, 또 유년시절의 정서가 없었더라면 읽었을 리가 없습니다. 출소 후에 감옥에서 읽은 고전을 교재로 하여 고전 강독 강의를 하게 됩니다. 그 강의가 녹취돼 `강의`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신영복 교수가 선택한 것은 `동양고전` 읽기였습니다. 그로부터 준엄한 자기 성찰과 사색의 보고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국토와 역사, 새로운 문명에 대한 혜안의 메시지를 담은 `나무야 나무야`, 자본주의 체제의 물질 낭비와 인간의 소외, 황폐화된 인간관계를 `관계론`으로 성찰한 동양고전`강의`,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처음처럼`과 같은 주옥같은 저서들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희망의 언어가 됩니다.제목 그대로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가 된 `담론`(2015·돌베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중요한 것은 추상력과 상상력의 조화입니다. 추상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문사철이 바로 개념과 논리로 압축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 능력, 즉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그러면서 신영복 교수는 그러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의 문제라고 말입니다.동양학자 조용헌에 따르면 운명을 바꾸는 방법 중에 `독서`와 `명상`이 있다고 합니다. 운이 나쁠 때는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아울러, 하루 1시간씩 명상이나 참선을 권합니다.고 신영복 교수의 `20년 20일`은 `독서와 명상`을 통해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다른 인내와 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속에 핀 `석과불식`의 아름다운 메시지는 우리 곁에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2016년을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도 중순입니다. `독서`와 `명상`으로 올해를 가꾸어 나가기에 늦지 않았습니다.고 신영복 교수의 명복을 빕니다.

2016-02-19

첫사랑을 읽는 밤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연회의 끝, 밤이 깊어 12시 30분이 지나고 있음에도 이야기 나누기를 즐기는 집주인,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 세 사람은 남아서 `첫사랑`에 대한 경험을 주제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첫사랑`이라…. 특히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이 단어 자체가 주는 아련함과 로맨틱함이란…. 첫사랑이 있든 없든 매혹적인 추억을 불러오는 말임에 틀림없다.막상 집주인과 세르게이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이야기가 없어서 차례는 자연스럽게 블라디미르에게 넘어 간다. 블라디미르는 말솜씨가 없다는 이유로 첫사랑에 대한 기억들을 수첩에 적어 와서 읽어주기로 한다. 2주 후, 그들은 다시 만나 블라지미르가 들려주는 첫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그의 첫사랑 이야기는 대학 입학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서두르지도 않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던 16세 여름, 별장에서 지냈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책을 펼쳐보기보다는 이미 외우고 있는 시들을 큰 소리로 낭송하고, 몸 안에서는 피가 약동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감성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그동안 여자의 모습이라든가 여자의 사랑이라든가 하는 환영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그 앞에 지노치카라는 여성이 나타나게 된다.지노치카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자세키나 공작 부인의 딸이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그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몸동작은 어떤 말할 수 없는 매력이 풍겼고, 날씬한 몸매, 가느다란 목과 예쁜 손, 약간 헝클어진 금발, 반쯤 감긴 영리해 보이는 눈과 속눈썹, 갸름한 볼은 물론이고, 활기찬 얼굴에서 빛나는 커다란 회색 눈동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모든 것은 그를 사로잡고 만다.그 이후 블라디미르는 그녀의 모습을 환영처럼 떠올리기도 하고, 네스쿠치느이 공원을 거닐면서 어떻게 해야 그녀와 가깝게 사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인물이 된다. 자세키나 부인이 연루된 재판 사건을 매개로 두 집안은 자연스럽게 교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블라지미르와 지노치카의 만남은 잦아지게 된다.블라디미르보다 5세 연상인 그녀는 이미 5명의 구혼(애)자를 거느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5명의 구혼자를 물리치고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연적을 없애기 위해 비수를 품고 밤길을 서성이는 모험도 감행한다. 다행히 풀숲에 미끄러져 연적을 해치는 일을 실패로 처리한 점은 도덕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투르게네프의 재치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번개와 천둥이 계속 치며 비가 내리는 밤을 `참새의 밤`이라고 했듯이, 소년 블라디미르의 16세 무렵은 사랑에 온힘을 기울이며 보낸 참새의 밤이었다.`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가 어머니와 아저씨의 관계를 반투명하게 그려낸 것처럼, `첫사랑`의 블라디미르도 아버지와 지노치카의 관계를 반투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노치카로 인해 블라디미르 부모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고, 그의 가족들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됨으로써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은 끝이 난다.이 소설을 아들의 연적이 아버지였음이 드러나는 소설로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읽지 않길 바란다. 소설을 읽는 내내 16세 소년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감당하고, 정리해 가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겠다.지난 12월 31일 인문학진흥법이 제정되었다. 이제, 성적과 학원에 매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이 밤새워 찬찬히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을 완상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2016-02-18

`동주` `귀향`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한때 할리우드 영화 일색이던 극장가에 최근 들어 `명량`, `국제시장`, `연평해전`, `내부자들`, `히말라야`, `검사외전 `등 우리 영화들이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열거한 영화들 이외에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우리 영화들이 더 많이 있다. 국민들의 문화 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이들 영화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역사가 호이징가는 인간의 본질 중 유희(遊戱)에 주목하여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학명을 창안했다. 여기서 유희는 단순히 논다는 뜻이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 활동을 의미한다. 창조 활동의 결과는 산업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를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빵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되었으며 빵 너머의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갈망의 간절함에 비례하여 산업은 빠르게 변했다. 산업이 사람의 생활방식을 좌우하던 시대는 갔다. 이젠 사람들의 생활방식, 즉 문화가 산업 및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주5일제 정착과 함께 우리 사회에 가장 이슈가 된 단어가 `여가(餘暇)`이다. 여가 생활, 여가 문화 등 여가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일벌레처럼 살아온 우리 국민들에겐 아직 여가란 낯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여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간혹 여가의 뜻을 곡해한 사람들의 일탈 행위는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우리나라의 많은 제도와 문화들이 그렇듯이 여가 문화 또한 너무 빠르게 우리에게 왔다. 모든 것에는 곰삭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어설플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여가 문화를 들여다보면 너무 슬프다. 직장인들의 여가를 대표하는 단어는 휴가이다. 그런데 그 휴가문화는 어떠한가. 우리의 휴가는 계절과 장소가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 계절은 여름, 장소는 바다 아니면 계곡. 그래서 휴가철이 되면 바다나 계곡은 물론 그 곳으로 가는 도로까지 사람과 차로 넘쳐난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더 지쳐 돌아온다.그런데 성인들의 슬픈 여가 문화가 학생들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고 있다. 학생들은 조기교육을 통해 휴가, 삼겹살, 술이 모두 같은 말이라는 것을 어른들로부터 배웠다. 자기들끼리 캠핑이라고 갈라치면 어려서부터 체득한 지식들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 알고 삼겹살은 기본, 술은 필수로 준비를 하고 휴가에 대한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으로 밤새 흥청망청한다.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여가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 잘 노는 것이 경쟁력이다`와 같은 말이 공허한 말이 아님을 스마트 사회는 잘 증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잘 노는 방법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교사 또한 제대로 노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여가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여가가 곧 재창조라는 사실을 인식한 기업들은 직원들의 효과적인 여가생활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문화관광체육부는 여가에 대한 긍정적 인식 제고 및 일과 여가의 균형을 통한 삶의 질 개선, 국가의 행복 수준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국민여가활성기본법을 제정하였다.우리의 여가문화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한국 영화 열풍이다. 운동, 등산 등에 국한되었던 여가 문화가 이제 예술로 확대되고 있다. 예술이 바람직하고, 또 창조적인 세계관을 제시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볼 때 이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그 반가운 소식에 부응이라도 하듯 역사관을 바로 세워줄 두 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동주`와 `귀향` 우리 민족의 처절한 아픔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들이 슬리퍼 히트를 기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의 여가 문화도 분명 한 단계 더 크게 발전할 것이고, 발전된 우리의 여가 문화가 새로운 한류로 떠오를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 정치인에게 시를 선물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2016-02-16

명화의 진실공방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큐레이터2007년 5월 한국 미술품 경매에 있어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의 작품 `빨래터`가 45억2천만원이라는 경이로운 가격으로 낙찰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서민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적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예술적 가치를 엄청난 경제적 가치로 산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박수근의 산화는 진위논란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으며, 진실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동일한 제목으로 제작되어진 두 점의 작품 출처와 표현기법의 상의함에서 오는 소란은 결국 `진품추정`(?)이라는 애매한 법원 판결로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우리나라 생존 작가 중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우환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 780217`이 위작논란에 새롭게 휩싸이며 한국미술의 위상과 국내 미술시장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시선이 교차하며 사회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급기야 정부는 박수근과 이중섭 등 유명화가의 모든 작품을 한권의 도록에 수록하는 `전작 도록(Catalogue Raisonne)` 제작사업을 착수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으며 미술시장은 더욱 큰 혼란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미술품 양도세 적용에 이어 전작도록 제작을 둘러싼 미술시장의 정형화는 우리나라 미술계를 퇴보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국내미술품의 진위여부를 감정하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2012년을 기준으로 10년 동안 감정의뢰를 받은 작품 5천130점 중 1천329점인 26%가 위작으로 판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진품은 71%인 3천655점이었으며, 나머지 3%는 진위를 판단하기 힘든 작품들이었다고 밝혔다.그중에서도 감정의뢰가 가장 많았던 천경자 화백의 경우 총 327점 중 30.3%인 99점이 위작으로 판정되었으며, 김환기 역시 262점 중 24%인 63점이 진품 아닌 위작으로 확인되었고 위작 판정비율이 가장 높았던 화가로는 이중섭이 차지해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이중섭의 의뢰 작품 총 187점 중 58.5%인 108점이 위작으로 판정되어지면서 미술품 진위를 둘러싼 혼란은 더욱 가열되었다.이러한 미술품 진위에 대한 혼란과 갈등은 유독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만 오랜 악습처럼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규모가 큰 유럽의 미술시장의 경우 미술품 진위에 대한 논란은 의외로 적다. 미술품을 사고 팔 때는 거래를 주선하는 화랑들이 작성한 보증서가 늘 함께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미술품이 본격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던 300여년 전부터 이미 자발적으로 시행되어졌던 관행이 이제는 정례화 되고 그 과정에서 미술품이 소장된 경로가 투명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행은 오늘날까지 정직하게 이어지고 있고, 미술품 거래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주는 근간이 된다.이처럼 유럽의 선진화된 미술시장 유통구조가 결국은 유럽미술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배경이 되며, 안정된 미술시장을 통해 세계적인 화가를 배출해 내는 토양 역할을 한다.이제 우리나라의 미술정책도 일대변혁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미술품 유통은 등록된 화랑(gallery)을 통해서 적절한 절차와 보증서 같은 등록서류를 작성한 후 거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장가가 작품을 판매할 경우 보증서를 함께 첨부해 유통과정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게 해주어야 할 것이며, 가급적 공인된 화랑을 통해 투명하게 거래해야 할 것이다.명화에 대한 진실공방 이전에 미술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진정한 자기철학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016-02-15

피에타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2015년이 저물어 갈 무렵 미술중점학교 학생들을 인솔해 대전시립미술관에 갔다. 특별 기획전시인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하이퍼리얼리즘 작가 15인의 `극사실주의 특별전:숨쉬다`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교육부지정 미술중점학교 운영담당자로서 학생 인솔이 임무였으나, 벅찬 현실 속에서도 평생 붓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필자에게 아직도 순수한 예술가의 꿈이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으니 세계적인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설렘 또한 적지 않았음이 사실이다.`21C 하이퍼리얼리즘:숨쉬다`는 서양현대미술의 핵심을 보여주는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와 조각 등 극사실주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관객들의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유발하고 예술표현의 한계를 확장하는 것이 기획의도였다. 사진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회화의 매체성, 더욱 정교해진 표현과 더불어 신소재를 사용한 조각 작품은 20C 하이퍼리얼리즘과는 다른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20C의 하이퍼리얼리즘이 외형을 복제하는 것이었다면 21C의 그것은 외형 뿐 아니라 내면의 영혼까지 고스란히 스캔해내는 느낌이었다.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작품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관람 진행을 도와주는 도슨트의 설명이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고 걸음을 옮기기가 두려울 만큼 나 자신의 내면이 해체되는 것 같은 충격, 지금 현재의 나 뿐 아니라 몇 생을 거슬러 오르내리며 나에게 던져주는 강렬한 예감들에 전율하였던 것이다. 전시작품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느껴졌다.한 작품의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이어지는 다음 작품이 주는 놀라움은 좋은 작품을 만난 환희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평생 예술가의 꿈을 내려놓지 못했으나 정신없는 일상에 허덕이다 전시 일정에 맞춰 바쁘게 그려내는 내 그림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한계, 이미 탈장르의 시대에 입체가 가지는 힘과 평면의 한계, 첨단 재료의 차용에 대한 연구, 대상에 대한 집중력, 표현에 대한 기술적인 연마 등 숱한 상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이 전시에서 나를 가장 사로잡은 작품은 샘 징크스의 `피에타`였다.`피에타`는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빠진 성모를 표현한 미켈란젤로 조각상의 오마주다. 샘 징크스의 `피에타`는 젊은 자신이 늙어서 죽은 자신을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살아가면서 죽음을 응시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그 작품이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거기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양복 입은 장년의 남자가 백발의 늙은 남자 시신을 흰 천에 감아 안고 있는 모습….실리콘, 섬유유리, 수지, 탄산칼슘 등의 첨단 재료로 머리카락 한 올, 창백한 피부 속의 실핏줄 흐름까지도 표현해 낸 집중력은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했으며 누구나 삶의 과정에서 만나게 될 생로병사의 모습이고 그것이 삶의 보편성이라는 허무함과 쓸쓸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흔히 예술을 순수라 하여 현실과 분리하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현실의 삶 속에 있는 법이다. 물질의 경박함을 예술행위들이 완충하여 상호 보완함으로써 세상을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녹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이 시대 앞선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내면의 깊은 성찰 없이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다양함을 혼돈으로 여기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할 것, 알 수 없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고 내가 배운 것, 내가 해온 것, 그리고 직접 경험하여 잘 알고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한다면 살아있는 내가 미래의 죽은 나를 안고 그렇게 허망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어느새 어둠을 품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 떠날 때의 설렘은 간 데 없고 어두운 차창엔 죽은 남자의 시신을 안은 내 모습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2016-02-12

구룡포 황보태조 씨의 자식농사

▲ 김현욱 시인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농사는 자식 농사라고 합니다.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그렇겠지요. 기실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정상입니다. 자식을 부모 마음대로 어찌 해보려는 게 화근이고 욕심이지요. 예전에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Watso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 잘 성장되고 건강한 12명의 아이를 달라. 그리고 나의 특별한 세계 속에서 그들을 양육하게 하라. 그러면 나는 임의로 배정된 어느 누구라도 그의 재능, 기호, 성격, 소질, 능력, 조상의 경력에 관계없이 내가 선택한 어떤 특별한 유형의 사람 이를테면, 의사, 법률가, 예술가, 사업가, 심지어 거지나 도둑으로도 훈련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사람이 로봇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프로그래밍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행동주의의 한계는 극명합니다. 자녀의 성격과 기질을 살피고 수평적 위치에서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며 나아가 삶의 조력자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소리지요.구룡포 농부 황보태조 씨의 5남매는 서울대 의대, 경북대 의대, 가톨릭대 약학과로 진학하여 4명은 의사, 1명은 약사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인 황보태조씨의 화려한(?) 자식 농사는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소개되고 책까지 출간하게 됩니다. 항간에 사람들은 황보태조씨가 5명의 자식을 모두 의사, 약사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처럼 말입니다. 무언가 대단한 방법이 있는 줄 압니다. 황보태조 씨의 책을 찾아 읽고 강연을 듣기도 합니다만 그래봐야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굳이 요약하자면, 공부를 놀이처럼, 질책보다는 칭찬을, 아이에 따른 교육법을, 그리고 성실 근면하셨던 부모의 모범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예전에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약 270년쯤 시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칼 비테와 황보태조씨는 좋은 부모로서 서로 닮았습니다. 칼 비테(1748~1831)는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재였던 Jr. Witte의 아버지이자 목사였습니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을 가정교육을 통해 훌륭하게 길러 낸 경험을 바탕으로 1818년 `칼 비테의 교육`이란 책을 썼습니다.당시 루소와 페스탈로치는 재능과 환경의 중요성을 각각 강조했습니다. 칼 비테는 페스탈로치의 견해에 가까웠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면 누구나 80~90%까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누구나 잠재력(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특히, 4세 이전의 환경이 아이의 인격과 재능, 소질에 큰 영향을 준다고 칼 비테는 굳게 믿었습니다.`그렇다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첫째는 언어, 음악, 문자, 그림과 같이 지능을 형성하고 대뇌 활동의 기초가 되는 것과 둘째는 올바른 인성과 태도다.` 칼 비테는 가난한 시골의 목사였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첫걸음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부모가 금세 알아차리는 것에 있고, 이는 부모와 아이가 하나의 띠로 연결되었다는 뜻으로 훗날의 교육에 감정적인 기초가 된다고 말하였습니다.황보태조씨는 책 출간 후 받은 인세를 전액 사회에 기부하였습니다. 그의 5남매가 모두 의사, 약사가 된 것보다 부모의 따뜻한 가슴을 이어받은 자녀들이 어떤 나눔의 삶을 살 것인가가 더 궁금하고 가슴 설렙니다. 자식 잘 키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보다 더 훌륭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16-02-05

진실한 사죄만이 답이다

▲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북한이 함부로 남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우리나라의 중2들 때문이라고. 이는 극심한 사춘기를 겪는 이 또래의 아이들이 일으키는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과장이자 해학이다. 대개 이 시기에 접어든 아이들로 인해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많은 골치 아픈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행히 우리 집 아이는 지난 한 해 이 시기를 비교적 가볍게 넘어갔다. 그러나 가볍게 넘겼다고는 해도 부모 된 입장에서 불안하고, 노엽고, 신경 거슬렸던 일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사안마다 가벼운 전쟁(?)만 치르고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이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끝까지 잘못을 숨기고, 합리화하고, 알량한 자존심에 버티기로 일관했더라면 사단이 났어도 여러 번 났을 일이다.지난 해 연말 `몽고간장`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백년 전통의 향토 기업이 연로한 명예회장의 어른답지 못한 언행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15년 내내 우리 사회를 달궜던 `갑질 논란`과 `금수저 논란`의 결정판으로 주목 받기에 부족함 없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다행히 회사 측의 발 빠른 대응과 당사자의 사과 표명으로 사건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가 싶었는데 해가 바뀌고도 여전히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처음 문제를 제기한 운전기사의 폭로에 이어 관리부장, 비서실장 등의 폭로가 추가로 이어지면서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방송을 통해 중계되던 대국민사과 방송을 지켜보았던 필자로서도 그 날의 사과에 진실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후속 조치로 인해 사과의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음이 더 큰 이유다.지금 또 하나의 논란이 우리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해 12월 28일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된 소식이 전해졌다. 두 나라 장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로 발표했다. 아울러 아베 총리가 위안부로서 고통당하고 상처 입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표한다는 전향적 태도의 발언이 보도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우선은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기껏 그 정도 배상금으로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느냐부터 시작해서 정작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는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절차상의 문제까지 뒷말이 무성하다. 이에 더해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 논란까지 겹치면서 여론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아울러 일본에 대한 불신과 분노도 더욱 거세다. 회견 이후 일본 정부 관료와 우익단체 등이 보이는 행태들이 회견문의 취지와 반하는데서 이들의 사죄에 진실성이 있는지를 의심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보다 진실한 사죄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협상 과정에 나타난 미진한 부분에 대해,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소통 부재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과거 정부가 손도 대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했다는 식의 자화자찬으로 공(功)을 앞세우기보다는 여론의 따끔한 질책을 겸허히 수용함으로써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 아베 정권과 보수 우익단체의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한일 간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기 위해서는 일본 당국의 진실한 사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답이기 때문이다.

201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