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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지는 처녀들

등록일 2016-03-03 02:01 게재일 2016-03-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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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거리마다 태극기 물결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무슨 날이구나 하고 건성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 저리도록 아픈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근데 안타까운 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이 나라엔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역사가 아닌 역사교과서에 빠져 있는 이 나라에서는 얼마가지 않아 후자에 속하는 분들이 안 계실지도 모른다. 그땐 아마도 위안부, 일제 강점기, 독립, 애국심 같은 말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아, 아니다! 한 곳은 예외일 수 있겠다. 그곳은 바로 국회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4년마다 기막히게 이 단어, 특히 애국심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외친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바로 세울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아마도 그 놀라운 기억력은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4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그날만 다가오면 그들은 아무리 추워도 이른 새벽부터 거리에서 나와 허리가 부러지도록 인사한다. 그리고 외친다, 이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사람들을 심판하자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통계로 말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위기는 선거에 맞춰 4년 단위로 오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거에 나가는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까! 표를 얻기 위한 예비 정치인들치고 우리나라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선거만 되면 세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는 위기에 빠졌다고 하니 국민들은 정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다 안다. 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걸.

이 나라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제외한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우리는 4년마다 양치기들의 거짓말을 계속 들어야 할까. 컷오프다 뭐다 해서 자신들은 그동안의 양치기와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양치기는 양치기일 뿐이다. 양치기들이 들끓는 이 나라 국회에서 양치기를 몰아낼 방법은 정녕 없을까.

4월 13일을 두고 최근엔 양치기들의 싸움이 더 심하다.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분노지수만 치솟고 있다. 같은 양치기들이 자신들은 깨끗한 양치기라고 떠들어대니 정말 코미디도 이런 저질 코미디가 어디 있을까. 최근 언론은 필리버스터(議事妨害·filibuster) 쇼를 내보내고 있다. 말이 하도 낯설어 사전을 찾아보다가 정말 이상한 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행위. `합법적 방해`라는 말도 안 되는 역설적 표현에 억장이 무너졌다. 혹 필자가 합법이라는 말을 잘 못 이해하고 있지 않나 해서 사전을 찾았다. 사전에서는 합법(合法)이란 법령이나 규범에 적합함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합법적 방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합법적 방해를 하는 사람들도 물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필자는 10시간 넘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한 번 들어보았다.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듣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작과 함께 끄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금배지를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버스터 할 시간에 괴물주머니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나눠주기. 어쩔 수 없이 국회에서 몇 시간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횡설수설하지 말고 `태워지는 처녀들, 위안소 생활, 광복절의 기억, 꽃피는 봄날` 등 `역사가 된 그림`에 나오는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제한 토론 자료로 `귀향(鬼鄕)`을 국회에서 상영하고, 패널로 국민들을 초청하기. 이렇게 하는 사람은 분명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괴불주머니를 움켜잡고 울부짖는 소녀들의 비명 소리를 생생히 기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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