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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모기 같은 해충을 없애야

▲ 강희룡 서예가여름철은 항상 모기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계절이다. 모기를 매개로 하는 감염병 질환은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황열, 치쿤구니야열, 지카바이러스 등이 있으니 모기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해충이다. 크기가 작다보니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좀 참고 견디려 하지만 밤새도록 쫓고 또 쫓아도 끊임없이 다시 귓가로 날아와 웽웽대며 잠을 설치게 한다. 피를 빤 자리에 독과 병균을 넣어 가렵게 하고 긁으면 그 자리를 병들게 하거나 온몸을 병들게 한다. 참다못해 일어나 불을 켜고 잡으려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지금은 시대가 발달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모기 퇴치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야영을 하거나 집안의 방충을 조금만 소홀히 하여도 모기는 뚫고 들어와 어김없이 물어댄다.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이러한데 전 왕조시대에는 오죽했을까. 가장 존귀한 지위에 있던 왕조차 `모기가 밉다`는 제목으로 시를 지을 정도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괴로움은 알만하다. 정조(正祖)의 홍재전서(弘齋全書) `춘저록(春邸錄)`에 다음과 같은 `모기가 밉다`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면서/ 어둠 틈타 부리 놀리며 주렴 뚫고 들어오네/ 세상의 많은 식객들 끊임없이 웽웽대며/ 권세가에 들락거리는 것은 또 무슨 마음인가.” 인재를 선발하는 데 있어 신분이나 당파보다 능력을 중시했던 정조가 보기에 떳떳하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생각은 하지 않고 출세를 위해 경박하고 가증스럽기 짝이 없게 권세가의 대문을 들락거리는 자들은 그가 가장 미워한 모기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빗대어 경고한 것이다.몸이 작고 날쌔고 숨어 있어서 웬만해선 잘 보이지 않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더 가증스럽다. 정조는 모기에 대한 미움의 화살을 권력과 물질을 좇는 난신적자들에게로 날린 것이다. 이 모기들이 마치 작은 이득이라도 얻어 보려고 분주하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 때문에 달라붙는 모리배들 같다는 것이다. 이익을 꾀하는 것은 잘못은 아니다.그러나 올바른 자리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17세기의 문인 신정(申晸)은 `모기 이야기`라는 글에서 하는 짓은 모기 같은데 모기보다 더욱 해로운 인간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화성(花城)이라는 고을의 수령이 백성들이 모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병들고 있다고 근심을 한다. 그러자 신정이 말한다. “지금 같은 사람으로서 백성을 기르고 보살피는 권한을 받은 자들이 대낮에 대놓고 백성들의 골수를 뽑고 고혈을 빨아먹고 있으니 모기가 살갗을 깨무는 따위보다 그 독성이 훨씬 심하오. 그대는 이를 통해 약한 백성들을 괴롭히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소.” 이 사회의 진짜 무서운 적은 모기보다도 권력과 부정부패에 찌든 인간이라는 것이다.이 사회에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넘쳐날지 모른다. 다만 그런 능력에 도덕성까지 겸비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의 지도층이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은 도외시한 채, 권력에 편승하거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하여 개인의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골몰하였던 탓에 이렇게 된 것이다.이와 같은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정말로 귀감으로 삼아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조 최고의 경세가(經世家)였던 잠곡(潛谷) 김육(堉·1580~1658) 선생이다. 특히 앞으로 고위직에 올라 국정을 담당하기를 꿈꾸는 공직자들은 반드시 이 분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잠곡의 어떤 점을 공직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가? 바로 잠곡이 일생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서 실천하고자 했던 그의 정신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그가 품고 있었던 정신은 바로 `애물제인(愛物濟人)`의 정신이다. 애물제인이란 `만물을 사랑하여 사람들을 구제하라`는 뜻 아닌가. 말단부터 고위층까지 공직자들이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2016-07-27

나쁜 놈은 내가 할래!

▲ 김현욱 시인올해는 예기치 않게 과학 교과 전담을 맡았습니다. 15년 동안 담임을 맡아 반 아이들과 시 암송이며 시 쓰는 재미로 살았는데, 올해는 아이들 시 읽는 기쁨이 사라져 내내 서운했습니다. 쾌쾌한 약품 냄새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인체모형이 떡하니 서 있는 과학실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수십 개의 수납장과 도감(圖鑑)들이 있어서입니다. 과학실은 수납장이 많습니다. 보관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수납장 열어 보는 재미가 이리 쏠쏠한 지는 과학실에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도감을 발견한 것은 큰 행운입니다. 동물도감, 식물도감, 곤충도감…. 쉬는 시간 틈틈이 곤충도감을 읽었습니다. 읽다가 벼락을 맞은 듯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곤충도감이야말로 동시의 보물창고구나!`시골가시허리노린재는 꽁무니를 대고 짝짓기를 합니다. 물자라 수컷은 등에 알을 지고 다닙니다. 멧노랑나비나 각시멧노랑나비는 더위를 피하려고 여름잠을 잡니다. 여름잠이라니! 하루살이는 실제로는 이삼일부터 열흘까지 삽니다. 한 달이나 두세 달쯤 사는 하루살이도 있지 않을까요? 왕잠자리 애벌레는 아가미가 똥구멍 안에 있습니다. 똥구멍으로 물을 빨아들이고 내뿜으며 숨을 쉰다고 합니다. 똥구멍에서 물을 내뿜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니 참 신기합니다. 똥구멍 얘기만 꺼내도 까르르 웃는 아이들에게 똥구멍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르쳐 줘야겠습니다.학교 운동장이나 마당, 공원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개미는 일본왕개미와 곰개미입니다. 곰개미는 일본왕개미보다 크기가 조금 작습니다. 곰개미는 살아 있는 먹이를 잡을 때는 배 끝에서 개미산을 쏩니다. 개미가 물어뜯는 것 외에 무엇을 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개미` 하면 독자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부터 국내에 200만 권 넘게 팔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앤트맨`도 순위에 들 것입니다.그리고 어쩌면, `어이없는 놈`(문학동네, 2013), `커다란 빵 생각`을 낸 김개미 시인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 동시를 기다려온 독자라면 말입니다.점잖은 정치가는 준혁이, 네가 해/ 나는 구름처럼 다가가 주머니를 터는/ 외로운 소매치기 할래// 숲 속의 잠자는 공주는 다흰이, 네가 해/ 나는 외다리 목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술 마시고 노래하는 카리브 해 해적 할래// 깐깐한 보안관은 예담이, 네가 해/ 나는 아무 데나 총 쏘고 도망치는/ 흉악한 현상 수배범 할래// 은행 강도 놀이를 하든/ 못된 마법사 놀이를 하든/ 나쁜 놈은 나야, 내가 할래// -`역할 놀이`김개미 시인의 동시집 `커다란 빵 생각`에서 한 편만 골라달라면 나는 이 시를 선택할 것입니다. 실제로 동시집을 읽고 가장 먼저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들에게 소개한 시가 `역할 놀이`입니다.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강낭콩 수업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역할 놀이`를 읽어 줬습니다. 아이들 표정이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옮겨 갔습니다. 입꼬리가 씩 올라가더니, “한 번 더 읽어주세요”라는 앙코르 요청(?)까지 받았습니다. 그건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닙니다. 김개미 시인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기쁠까요?그런데 몇몇 동료 선생님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나는 아무 데나 총 쏘고 도망치는 흉악한 현상 수배범 할래` 이건 너무 과하다는 식이었습니다. 외로운 소매치기, 카리브 해 해적, 흉악한 현상 수배범, 은행 강도, 못된 마법사가 되기를 간절하게 꿈꾸는 아이들이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하긴, 모를 일입니다. 장래에 소매치기, 해적, 강도, 소년병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과 `역할 놀이`라는 시를 듣고 깔깔깔 웃으며 잠시라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슬픈 세상이니까요.

2016-07-25

공부의 배신? EBS의 배신!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우연하게 채널을 돌리다가 한 아이의 손가락을 보게 되었다. 도저히 여중생의 손가락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르튼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채널은 고정되어 버렸다. 그리고 입으로는 “어떻게, 어떻게”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가위눌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영상을 볼 수밖에 없었다. 화면에는 핏기 하나 없는 여중생의 모습과 함께 아이의 말이 자막으로 나왔다. “하루에 내신 공부만 열 몇 시간씩 했어요.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요. 이면지에 써서 요약정리를 하고 안 보고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써요. 안 그러면 마음이 안 놓여요.” 자막이 끝나고 다시 볼펜에 짓눌린 아이의 손가락이 나왔다. 볼펜을 받쳐 든 중지의 살점이 뜯겨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쓰라린데 아이는 이를 악물고 쓰고 또 쓰고 있었다. 아이의 책상 정면이 화면 가득 들어왔다. 그곳에는 힘이 가득 들어간 아이의 목표가 적혀 있었다. 목표는 다름 아닌 전주에 있는 자사고 입학이었다. 아이는 자사고 입학을 위해 손가락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교과서를 외우고 또 외운 것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가 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공부뿐이었다. 물론 아이는 전교에서 최상위권에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늘 불안해했다. 아픈 손으로 아이는 수학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그 모습 위로 내레이션과 함께 다시 자막이 나왔다.“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누구 하나는 문제 하나를 더 풀고 있겠지. 한 학년은 육백 명에 육박했고, 다들 학원을 너덧 곳씩 다니는데다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괴물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절박했다. 나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내 집안 형편이 미워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만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현실을 증오했다. 그래서 더 죽도록 공부했다.”누가 이 글을 십대의 글이라고 할까. 이 아이는 죽도록 공부해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첫 수학 시험에서 하위권 성적을 받았다. 아이는 괴물들이 득실대는 이 나라를 얼마나 증오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등을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프로그램 제목은 공부의 배신인데, 왜 갑자기 집안 형편이 나올까?` 그래서 다른 연작들을 찾아서 보았다.다른 회(回)에서는 성균관대, 서강대, 서울대 등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나왔다. 이들로 말하자면 위의 여학생이 죽도록 공부하는 이유인 학생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부모들이 당신 자녀의 미래상으로 바라는 학생들이다. 더 나아가 괴물이 득실거리는 이 나라 학교의 교사들이 학생들을 들들 볶는 근원적인 이유들이다. 필자 또한 예전에 그랬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출세하고 싶으면 죽도록 공부해서 IN서울 하라고.화면 속 대학생들은 하나 같이 너무도 힘들어 했다. 성균관대학교에 다니는 여대생은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하고 있었고, 서강대학교 졸업반인 학생은 취업이 안 되어 결국 낙향하였다. 이 학생들의 생각을 대변하듯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 기회(부모의 경제력 등)를 갖지 못한 거고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거든요.”필자는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공부하던 여중생과 `공부의 배신`에 출연한 대학생들의 말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건 다름 아닌 성공의 조건이었다. 이들 학생들이 말하는 성공의 조건은 바로 부모의 능력이었다. 이들 학생들은 비록 자신들은 열심히 공부했지만 부모가 무능력해서 자신들은 이 사회에서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건 그것을 EBS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학생들을 무의미한 공부로 꽁꽁 묶어 둔 것이 EBS라는 것을 안다면, `공부의 배신`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웃기는지 이해할 것이다. 정말 공부의 배신이 아니라 EBS의 배신이다. 방학, 과연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16-07-21

마음을 감동시키는 진정한 예술을 위해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몇 해 전 TV에서 `세시봉 친구들`이라는 음악프로그램에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등 네 명의 포크가수가 출연해 너무나 친숙하고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르며 열창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40년의 깊은 우정과 함께 다정다감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 부르던 모습에서 중장년층 시청자들은 추억과 함께 진한 감동을 전달 받았을 것이다. 1960~70년대 청년문화의 주축이며, 통기타와 청바지 문화를 대표했던 세시봉 친구들의 음악이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되불러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멤버들의 진실한 마음과 열정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예술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것은 예술가의 진솔한 모습과 일반인들은 흉내 낼 수 없는 뛰어난 재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욕과 노력을 가졌다하더라도 예술에 대한 뚜렷한 자기철학과 확신, 일관된 표현방법, 테크닉 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쟁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만큼 예술가의 진실 된 마음이 담겨질 때 진정한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하지만 최근 들어 세시봉의 주요 멤버였던 가수 조영남이 대작(代作)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예술에 대한 진실공방이 확대되고 있다. 그가 과연 `예술가`인가 `사기꾼`인가 하는 화두는 그의 작품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렸기 때문에 사기이다” 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정의하기엔 현대미술이 가지는 복잡한 사고와 예술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가 극명하기에 섣불리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시켜 주기에 충분할 것으로 판단되어진다.그가 지은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2007년·한길사)에서 그의 현대미술에 대한 태도와 사고를 짐작해 볼 수 있다.“우리는 그가 내뱉는 말, `예술은 사기꾼 놀음이다`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치밀한 두뇌플레이 없는 사기는 사기가 아니다. 백남준은 낡은 철물을 얼기설기 얽어서 로봇인간이라는 키네틱한 조각, 그러니까 움직이는 조각을 만든 적이 있다. 그 로봇의 몸에다 개 목줄 같은 것을 잡아매서 그걸 끌고 뉴욕거리를 산책했다. 물론 무언의 퍼포먼스였다. 그의 목적은 자신의 인조 로봇이 불시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이었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이는 것이다. 마침 뉴욕은 무단횡단의 천국이고 나는 뉴욕에서 무단횡단 단속하는 걸 본적이 없다. 자신의 작품이 차에 치이면 `뉴욕 타임즈`의 기자가 달려오고 각 방송·뉴스·텔레비전에서 득달같이 달려온다는 걸 계산에 넣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고도의 두뇌 플레이로 현대미술의 흐름에 휩쓸려 들어갈 수 있었다.”아마도 조영남은 백남준과 같이 사기꾼 놀음을 즐기며 현대미술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모두 얻으려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조영남은 백남준과 같이 처절한 예술가의 삶과 현대미술을 통해 세상을 바꿔 보려는 깊은 성찰이 이어지질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미술과 음악 등 예술이 인간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충격과 자극적 요소에서 비롯되는 관념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전해지는 깊은 감동과 여운은 강한 아우라를 남긴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그의 노래처럼 관객의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깊은 반성과 사과, 그리고 성찰하는 모습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2016-07-20

팽나무의 기억

▲ 강민건 대구대 교수·영어교육과올 여름 날씨 변덕이 심한 것을 보니 겨울채비를 일찍 해야 할 것 같은 괜한 걱정이 든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동네어귀 아름드리 큰 팽나무는 오슬오슬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게 아주 좋은 바람막이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 후에야 방학을 틈타 내려갔던 고향의 그 나무는 이제 시가지 확장으로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지금은 내 기억 속에만 옮아와 살고 있다. 내 기억의 흐릿한 회색 풍경 속에 짙은 초록의 뚜렷한 자태로 서 있는 그 늙은 나무는 겨울철 모진 계절에 시달려 한쪽이 모지라졌지만, 봄에는 아름드리 꽃구름을 피워 올리고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소나기처럼 귀청 따갑게 왁자하니 쏟아지던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팽나무는 이제 한편의 수채화처럼 기억 속에서만 내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순진했던 시절의 기억 따위는 세상살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처럼 인간이 취급되는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약간의 위세를 부리고 스승이라는 명목으로 세상살이와 정치와는 일정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위선으로 대학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 학생들을 애써 꾸짖거나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시대가 다르다고 나의 대학생활과 지금의 학생들을 비교해가며 안타까운 척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태도는 나의 보잘 것 없는 허세와 위선에서 나온 것이다.현대사회는 열린사회이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공간이라고 가정한다면, 비인간적인 무한 경쟁과 자본으로 무장된 대학의 삶은 무색해 보인다. 그 안에서 `행복과 꿈`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다양한 삶을 요구하는 이들에게는 이 사회와 대학은 `열린사회의 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동물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는 포퍼의 말이 무색해 보이는 순간이다. 동물적 사회에 대항하여 그저 본능적으로 살고자하는, 원시적 사고의 틀은 뉴스에 비춰지는 온갖 범죄와 인간이 서로에게 적이 되는 공간을 양산하기도 한다.오늘날 대학은 교육부가 제시하는 사업과 자본으로 암묵적인 서열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각 대학의 특성화된 학문 구조와는 무관하게, 프라임 사업, 코어 사업, 에이스 사업 등과 같은 프로그램 제목마저도 난해한 사업들을 유치하기에 여념이 없으며, 대학과 정부, 자본이 잠재적인 공모자가 되어 온갖 교육 사업 모델을 단지 학생들에게 실험하는, 교육이념이 상실된 실험장으로 전락하고 있다.“열린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보되고, 개인이 그 이성에 의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책임지는 사회이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는 포퍼의 말을 통해서, 오늘날 대학교육현장의 문제와 관련한 극단적 결정에서도 열린사회의 적을 본다. 대학은 지나친 교육 경쟁정책을 건강하게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경쟁으로 학생들의 입을 틀어막고, 학점과 등록금의 은밀한 거래를 부추겨 `감시와 처벌`의 시스템을 완성한다. 이 감시와 처벌 안에서 아이들에게 건강한 사고와 비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거래가 완결된 이후의 학생들의 삶은 비루하거나, 자본의 노예가 되거나, 혹은 대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유난히도 더운 올 여름, 한가롭게 연구실에 앉아 기우와 공상을 하는 동안, 가을학기의 등록금을 벌어보겠다고 학교를 등지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고난한 땀을 몸에 적시고 있을 아이들에게 도저한 청춘의 삶과 사랑은 이미 물 건너갔을 일이고, 정치공약으로 난무하는 최저임금보장은 아이들이 근근이 모으고 있는 등록금과는 거리가 있다. 문득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든든한 그루터기가 되어 주었던, 팽나무가 되어주지 못한 내 처지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올 가을은 피어 오르기도 전에 시들어가는 아이들의 시선이 따가울 것만 같다.

2016-07-19

470만원의 힘? 효율적 이타주의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산자연중학교 맞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산자연중학교입니다.” 7월 들어 필자는 거의 전화기 앞에 붙어살고 있다. 왜냐하면 7월 초에 전·입학 설명회가 있었고, 또 7월 말에 진학캠프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무슨 입학 설명회를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리 말씀드리면 산자연중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학생을 배정받아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라 입학 전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전국 단위 모집 중학교이다. 처음에 전화 받았을 때는 단순한 입학 상담 전화라고 생각했다. 목소리에 묻어나는 연륜으로 보아 손자 손녀를 위해 전화를 하신 것으로 판단되어 그렇게 상담을 진행하려고 머릿속으로 로드맵을 짰다. 그런데 그것은 타성(惰性)이 가져다 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기부를 더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가요?” 기부(寄附)라는 말에 필자는 모든 생각이 꽁꽁 얼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만든 것도, 또 정적을 깬 것도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였다. “지난 번 모금 오셨을 때 너무 적게 낸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필자를 비롯한 산자연중학교 교직원들은 대한민국 1%를 꿈꾸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교육부와 경상북도 교육청의 무관심으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대구 경북에 있는 성당을 돌며 교실 신축 기금을 모으고 있다. 지난주에는 대구 어느 성당을 다녀왔는데, 그 때 정성을 모와주신 분이었다.“네, 가능하십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 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좋은 일 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더 보태고 싶습니다. 470만원을 더 보내겠습니다.” 금액을 듣고 필자는 또다시 얼음이 되었다. “적지만 좋은 일에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일어서 있었고, 공손히 손을 모은 채 전화기 너머의 독지가(篤志家)에게 큰 인사를 하고 있었다.필자의 머릿속엔 순간 김밥 할머니가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김밥 할머니는 우리 사회 기부의 상징이 되었다. 충남대학교에 50억을 기부한 이복순 할머니, 어린이 재단에 3억을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의 공통점은 모두 김밥 할머니이다. 두 할머니는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우리 사회에는 이 두 할머니 이외에도 빈 병을 모아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복을 사준 박순선 할머니, 노점상을 하며 번 돈을 충북대학교에 쾌척한 김화임 할머니 등도 있다. 이 분들이야 말로 위태위태한 이 나라의 진정한 버팀목이다.그런데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김밥 할머니들을 포함해 이 나라 국민들의 99%를 개, 돼지로 만들어버렸다. 더 나아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라고까지 말하면서, 자신은 1%에 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그는 어떤 노력을 하였기에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을까.수년 동안 필자는 산자연중학교 학부모들과 함께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받고 있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교육부에 진정을 넣었다. 진정의 요지는 각종 학교 학생들도 헌법이 보장한 의무교육혜택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한결 같았다.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처음에는 정말 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 돼지 발언을 보면서 교육부의 불편한 진실을 정확히 알았다. 국민들을 개, 돼지라고 생각하는 교육부 관료들에게 대안학교 학생들이 학생으로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나라 교육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부일까? 혹 1%를 위한!그 나라의 미래는 교육에 달렸다고 한다. 교육을 책임지는 곳은 교육부이다. 그럼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떨까. 정말 암담하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극으로 치닫고 있는 양극화이다. 그 양극화의 주범이 새로운 계급을 만들고 있는 교육부라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신뢰가 무너진 이 나라에는 공직후보 국민추천제라는 것이 있다. 혼돈에 빠진 이 나라 및 이 나라 교육을 구할 최적임자로 김밥 할머니와 대구의 기부 천사를 교육부 수장으로 정식 추천한다.

2016-07-15

양성평등시대, 여성정책 패러다임 변화 필요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세계화에 따른 전문 인력의 양성이 정책적으로 주요한 변수로 떠오르면서, 21세기 이후의 사회는 섬세하고 유현함과 같은 여성특유의 가치가 존중되고 힘이 발휘되는 사회로서 여성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국가경쟁력 강화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여성정책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적인 국가정책의 하나이며, 그러나 여성정책을 대상에 따른 범주로만 보면 정부의 모든 정책이 여성정책이 아닌 것이 없게 될 정도로 그 적용 범위가 한없이 넓어지게 된다.여성문제는 노인, 아동, 빈민 등 모든 대상에 걸쳐 있으며 작용하는 분야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노동, 문화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으며, 여성정책의 목표와 연계된 보다 구체적인 개념규정이 필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정책의 도입에서 추진되어온 정책들은 여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처우나 불평등한 결과를 금지하는 등 적극적 조치의 정책으로만 초점을 두었다.이후 1995년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성 주류화를 여성정책의 전략으로 선택하게 되었으며, 성 주류화와 성 인지적 접근이 여성정책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은 WID(여성중심적 접근: Women in Development)에서 GAD(젠더중심적 접근: Gender and Development)로의 전환, GM(성주류화 접근: Gender Mainstreaming)으로 변화가 되었다.여성중심적 접근(WID)의 여성정책은 부녀 행정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으나, 젠더중심적 접근(GAD)은 서서히 남녀 차별적인 내용이 수정되고 남녀 평등한 정책 도입의 움직임이 생겨났다. 1995년에는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라는 의제의 등장과 더불어 전통적 여성상을 부추기는 사업들이 폐지 또는 수정되고 일반 여성의 참여를 유도하는 사업의 비중이 커졌다. 즉 성, 교육, 복지, 노동, 정치, 건강 등 여성의 삶의 다양한 영역에 걸친 정책대안들을 제시하고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면서 정책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던 부분들이 새로이 정책의 대상으로 포괄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또한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국가의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여성정책담당 국가기구가 설치되고 국가발전계획에 여성발전계획이 포함되는 등 특히 법과 제도면에서는 그 성과가 컸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정책과 법안들이 급박하게 입안되거나 여성계의 요구에 대한 임시적 방편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2002년 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에 의거한 성주류화 접근(GM)은 각종 성차별적 법령ㆍ조례ㆍ규칙의 발굴 및 개정, 성별 분리통계의 구축, 성인지적 접근의 정책분석, 공무원의 성인지적 능력 향상, 성별영향분석평가체계 구축 등 정책 도구의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모든 정책영역으로 확산됨으로써 성불평등의 이슈가 더 이상 여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처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증가했다. 예컨대 여성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가사와 양육의 부담을 사회와 남성에게 재분배하여 기존의 성역할 분업을 극복하는 반면, 남성에게 편중된 정치와 경제적 자원을 여성들에게 재분배하여 국가와 남성으로부터 여성들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여성정책이 성주류화 정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이 필수적이다. 즉 여성과 직접 관련된 법안, 가족 및 아동과 관련한 의제들이 성인지적인 접근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비율 역시 증가되어야 한다.금년도 양성평등주간을 맞이하여 성주류화 정책은 외형상의 성장보다는 실질적 양성평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야 할 것이며, 정책적 접근에 대한 체계적 성찰을 통하여 효과적인 전략과 과제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2016-07-14

문제는 학교가 아니라 사회야!

▲ 황주환 안강여중 교사학생들이 온갖 소리를 내지른다. 기말 시험이 끝난 교실은 아이들 괴성으로 귀청이 떠나갈 듯하다. 아이들의 이 해방감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곧바로 여름방학 학원수업이 이어지고 다음 2학기 시험이 눈 깜짝할 새 닥칠 것이다. 학부모들은 이 괴성의 의미를 잘 모른다. 시험 치르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떤지, 손톱을 물어뜯고 코를 킁킁거리고 발을 떠는 아이들, 앞으로도 수년간 이어질 아이의 강박과 불안을 부모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학교 교육을 비판한다. 과도한 학습과 사교육을 모두가 비난한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비판하는 이 교육이 왜 바뀌지 않을까? 모든 국민이 이건 옳지 않다는데도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질문의 방식과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학교에 오래 있은 나는 말할 수 있다.지금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학교는 석차를 결정하는 시험 장소일 뿐이다. 누군가 10등으로 올라가면 또 누군가는 10등에서 내려와야 하는 제로섬 게임에서 학교 공부란 석차 순서 놀음일 뿐이다. 그런데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 지옥 같은 학교경쟁을 견디는 이유는 소위 `좋은 대학`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좋은 대학 가지 못하면 생존을 위협받는 한국사회에서, 모두가 학교 석차에 목매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 이름 자체로 로스쿨 당락이 결정되는 사회처럼, `좋은 대학` 가지 못하면 `좋은 직장` 구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대학 가지 못하면 비정규직 노비로 평생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누가 학교 석차경쟁에 모든 것을 걸지 않겠는가. 조선조 양반들이 그들만의 부와 권력을 확장할 때 모두가 양반이 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이다.자녀와 부모 모두 이렇게 학교경쟁에 몰입하는 것은 지금 학교석차에 뒤처지면 `내 아들`이 구의역 지하철 노동자로 일하다 전동차에 치여 죽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학교에서 옆의 친구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내 딸`이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김군처럼 하루 5시간도 못 자고 노동착취를 당하다 죽음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우리 사회 교육문제는 `정직한 노동 임금`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학교 석차보다는 사회노동이 대접받아야만 지금의 학교경쟁 압력을 줄일 수 있다. “엄마, 나는 공부가 체질에 맞지 않아요. 다른 일하면서 살아 갈래요”라는 아이에게 “그래, 열심히 일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으니까, 학교에서는 친구와 즐겁게 지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일한 만큼 공정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 즉 노동임금이 정직한 사회가 되지 않고는 지금 경쟁교육을 해결 할 수 없다. 구의역 지하철 노동자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대학 진학을 꿈꾸다가 죽는 사회가 아니라, 특성화고 실습생 김군이 대학 진학을 위해 살인적 노동착취를 견디다 죽는 사회가 아니라 즉 대학이 아니라 `지금-이곳의 일자리`가 정의로워야 한다. 그들 청춘이 죽은 바로 그 자리를 내 아들 딸이 다녀도 될 만한 사회로 만들지 않는다면, 이 지옥 같은 학교 경쟁도 끝나지 않는다.그러니까 지금 우리 교육을 비판하고 싶은 사람들은, 학교가 아니라 사회를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이 대접 받는 사회를 말하면,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지금 힘든 건 학교 다닐 때 네가 공부 안 했기 때문인데 누굴 탓하느냐!”며 이를 사회 윤리와 정의로 내세운다.그런데 이 말만큼 우리사회의 노동 천시를 보여주는 것이 또 있겠는가. 이 말은 우리가 학교에서 노동(자)의 가치와 권리를 학습한 적이 없다는, 우리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부와 권력을 틀어쥔 조선조 양반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천시했던 것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천하게 여기는 언어는 요즘도 넘쳐난다. 그리고 그 `양반의 언어`를 내 것으로 충직하게 학습한, 바로 우리의 어긋남이 우리 교육병폐의 뿌리이다. 그러니까 이 차별의 언어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경쟁교육을 그렇게 쉽게 비판해서는 안 된다.

2016-07-13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 강희룡 서예가`격몽요결`은 율곡선생이 초학자들에게 학문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율곡은 서문에서 학문이 아니라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학문 외에 사람 되는 방법은 없고 사람답기 위해서는 학문이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학문이란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라 부모, 부부, 형제 자녀,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 등 인간관계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이지 신묘한 것에 마음을 두고 특이한 것을 엿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보면 바람직한 인간상은 일상생활의 매 순간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자신의 위치에서 그것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 마땅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윤리적 반성과 그에 따른 행동이 우리를 바른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겠다.논어 `자장편`에는 공자의 제자들 사이에 소소한 예절을 놓고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자유와 자하 간의 논쟁은 집안 청소하고 손님과 대화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 즉 일상의 소소한 에티켓이 공부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자유는 그것들이 지엽적인 일이어서 근본이 없다고 본 반면, 자하는 사람의 재능에는 차이가 있어 소소한 일이라도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근본에 나아갈 수 있다고 반박한다. 논어에서 두 사람의 논쟁은 결론이 안 나지만 송대의 주자는 `논어집주`를 통해 자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주석에서, 배우는 자의 수준이 깊고 얕음을 헤아리지 않고 높고 원대한 것만을 말해서는 안 된다며 순차적인 가르침을 강조했다. 주자의 이런 생각은 아동교육서 `소학`에 그대로 반영됐으며, 가장 먼저 배우는 예절의 하나이자 개인 수양의 방법으로 중시됐다.하지만 중국에서 만들어진 소학의 내용이나 체계가 조선의 실정과 맞지 않자 율곡이 `격몽요결`을 펴낸 후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한국판 소학이라고 볼 수 있는 `사소절(士小節)`을 집필한다. `사소절`은 당시 선비가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는 뜻이지만 오늘날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소절, 즉 작은 예절을 적은 책이다. 이덕무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사소절에 `창가에서 책을 보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책장이 날린다. 부싯돌이 무디어 부싯깃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노비를 세 번이나 불렀는데 곧바로 응대하지 않는다. 행장을 꾸려 떠나려는데 갑자기 비가 온다. 해 질 무렵 나루에 당도했는데 대기하고 있는 배가 없다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을 당할 경우 버럭 화를 내어 화평한 기운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 우선 마음을 안정시키고서 다시 상황에 알맞게 처리해야 한다. 이것을 작은 일이라 하지 말라. 작은 일이지만 모두 인간이 되는 바탕이다.`라고 적고 있다.이러한 에티켓은 배려와 공감, 나눔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지킬 수 있는 덕목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입시 매몰로 인성교육은 사라지고 물질만능·학벌지상주의 조장으로 천박해졌다. 최근 소위 `SKY`로 불리는 명문대 남학생들의 여학생들에 대한 성적 대화를 나눈 `카톡 성희롱사건`, 수사 중인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 `소라넷`의 창립자 부부 역시 명문대출신이다. 그 외에도 법조인들의 부에 편승한 전관예우라는 비뚤어진 윤리의식과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정치인이나 정당이 같은 패거리들의 부정부패를 정당화 시켜주고 현란한 정치슬로건으로 덮어버리는 행위, 연예인들의 일탈, 부모·자식간의 살인행위 등 흉악범죄가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작은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을 더럽힌다(不矜細行 終累大德)`는 `서경`의 구절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굳이 수신제가의 덕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윤리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첫째 조건이다.

2016-07-11

교육부의 모순-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2016년이 절반이 지났다. 남은 반년을 위해 상반기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본다. 한파 폭설 제주공항 마비, 북한 수소폭탄, 개성공단 폐쇄, 지카 바이러스, 아동학대 시신 은폐, 한반도 사드 배치, 이세돌 VS 알파고, 옥시 사태, 강남 역 묻지 마 살인사건, 브렉시트(Brexit) 등….여전히 참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이 중에는 종료된 사건들도 있지만 옥시 사태와 같이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들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부디 2016년 하반기에는 우리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희망 가득한 일들만 가득하길 기원해본다.사회 다른 분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교육 분야는 2016년 하반기에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등 뭔가 그럴듯 해 보이는 일들이 펼쳐질 것 같지만 대한민국 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곳이기 때문이다. 최첨단 시대를 선도해야 할 교육이 시대에 가장 뒤떨어진 곳이 되어버린 이런 웃지 못할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학교 구성원들 중에서 이런 모순 상황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교사이다. 이 시대 교사들은 탓하기를 좋아하는 월급쟁이 직장인이다. 그들은 아무런 부끄럼 없이 소리친다. 도대체 지금의 학생들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정말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나같이 예의가 없으며 모든 것이 제멋대로라고. 그리고는 퇴근 시간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모순으로 넘치는 학교에서 모순을 참지 못하는 구성원은 바로 학생들이다. 그들은 묻는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국어는 왜 배우며, 시험은 왜 치며, 왜 꼭 공부는 교실에서 교과서로만 해야 하느냐고, 정말 자신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과연 월급쟁이 교사들은 이에 대해 얼마나 성실히 답해 줄 수 있을까. 답은커녕 학생들의 생각을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들어줄까. 필자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는 위와 같은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가며 답을 찾아줄 교사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정시에 퇴근을 해야 하니까.그럼 학생들은 어디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들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 밖에서, 아니면 사이버 공간에서 답을 찾는지 모른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런 모습이 교사들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학생들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기준에 학생들을 가둬버린다. 혹 그 기준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견을 제시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순식간에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만다. 한 번 찍히면 학교를 나오지 않는 한 절대 그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청소년들을 `학교밖청소년`이라고 부른다.교육부에서는 `학교밖청소년`을 막기 위해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안교실`이다. 그런데 그 대안교실이라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교실밖청소년`을 양산하는 수단밖에 되지 않고 있다. 교육부만 모르지 알 사람들은 다 안다. 대안교실은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 `교실밖청소년`을 만드는 제도라는 것을!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안교실로도 부족하여 200억을 투자해 `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를 만든다는 것이다. 정말 교육부에 묻고 싶다, 건물만 지어주고 운영은 민간에 맡긴다는데 그럼 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는 공립인가 아니면 사립인가?분명 지금도 온갖 어려움을 다 감내하면서 특성화 대안교육을 받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교육하는 민간형 사립 대안학교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립 대안학교를 두고 이름도 생소한 `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를 굳이 개교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지금 있는 사립 대안학교를 엄선해 그 학교들이 제대로 대안교육을 하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모순도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2016-07-08

예술의 진정한 본질은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미술(美術)`이란 조형 활동을 통해 미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예술을 말하며 그 결과물을 보고 우리들은 보통 미술품이라고 부른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과 느낌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감정이다. 즉 화가의 멋진 작품을 보게 되면 우리는 대부분 그 작품 앞에서 `와! 멋지다. 아름답다`라는 탄성과 함께 경의를 표하는 것 역시 눈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충분히 충족 시켰을 때 나오게 된다.물론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은 시각에 의해서만 형성되어 지는 것은 아니다. 화가의 삶과 철학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때 미술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화가는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술과 온전히 맞바꾸며 예술 혼을 불태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이 담긴 작품들은 경제논리로 이해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될 수가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은 그만큼 예술이 위대하기 때문이다.최근 한국 미술계 거장인 천경자,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두고 진실공방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평생을 자기 분신처럼 여겨왔던 작품에 대한 진위여부를 두고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갑론을박을 벌이다 결국 미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고국에 돌아온 천경자 화백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자기가 그리지 않은 작품을 미술관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품으로 둔갑해 버린 `미인도`의 숨겨진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서화 위조범 권춘식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본인이 모작을 만들었다고 진술했지만 결국 진위논란에 대한 아무런 이견을 표하지 않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이 궁금하다.위조범이 진본을 모사해 유통시켰다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했지만 여전히 모두가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이우환 화백의 주장은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겐 예술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일들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화가들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수많은 아름다움들이 영원히 보석으로 남기 위해서는 진실에 대한 공방은 분명히 가려져야 할 것이다. 이는 일상에서 좀처럼 일탈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로망이 예술가들이며 그들의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게 미술작품이기 때문이다.남의 작품을 모사하는 행위는 최근 일만은 아니다. 16세기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활동했던 라이몬디는 르네상스 최고의 거장인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복제해 판매했던 유명한 복제 전문가였다. 그가 복제한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이다. 라이몬디의 복제작 `파리스의 심판`은 작은 화면 속에 이 신화 이야기를 정교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원래 라파엘로가 그린 것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원작은 사라지고 라이몬디의 복제품만 현재 남아 있다. 서양미술사에서는 `파리스의 심판`은 라파엘의 작품이 아닌 라이몬드의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또한 미술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유명미술관에 소장되어져 있다.진실에 대한 분명한 규명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품과 위작에 대한 평가는 작품의 금전적 가치로만 평가하는 것보다는 모사 또는 복제되어진 작품에 대한 평가와 유통경로의 투명성 확보로 이어진다면 이 또한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무작정 진실을 묻어버리려는 최근의 작태들이 예술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2016-07-04

술의 양면성

▲ 강희룡 서예가술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됐다. 중국의 앙소문화(仰韶文化) 유적의 각종 토기들을 비롯해 갑골문이나 종정문에도 술과 연관된 문자가 많다. 이로보아 지금부터 6천년 이전에 술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옳다고 보겠다. 고대 중국인들은 사람과 별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았으며 천상에 있는 별들이 사물을 조성하고 행위를 주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 술이 있는 것도 하늘의 주성(酒星)이 만들었기 때문이라 믿었다. 서기 648년의 진서(晉書)에 주기성좌(酒旗星座)에 관한 기록을 보면 헌원의 별자리 오른쪽 모서리 남쪽에 있는 세별을 `주기성`이라고 하면서 연회와 음식을 주관한다고 돼 있다. 이 주기성이란 표현이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고대의 예악을 집대성한 주례(周禮)인데 약 3천년 이전이 된다.명대(明代)에는 원숭이가 술을 만들었다는 전설로 당시의 문인 이일화는 `황산의 많은 원숭이들이 봄여름에 꽃과 과실을 채취해 돌 구덩이에 담아 술을 만들어 향기가 넘쳐나 먼 곳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대개 깊은 삼림에 사는 원숭이들이 술을 좋아하는 습성을 이용해 원숭이 다니는 길목에 술을 갖다 놓으면 냄새를 맡고 온 원숭이는 처음에는 핥아 먹다가 술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마구 마셔 술에 취하면 사람들에게 잡힌다.기원전 2세기의 역사서인 `여씨춘추`에는 `의적이 술을 만들었다(儀狄作酒)`는 기록이 있으며 전한의 유향이 편술한 주나라 안왕부터 진시황 때까지 240년간의 사실을 기록했다는 전국책(戰國策)에는 `옛날 황제의 딸 의적(儀狄)이 술을 맛있게 빚어 하(夏)나라의 우왕(禹王)에게 올렸더니 우왕이 이를 맛보고 그 맛에 놀라 반드시 훗날 술로서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술을 끊고 의적을 멀리 하였다란 기록이 있다. 출토된 원시 채색토기시대의 수많은 술그릇들은 의적과 같은 시기의 것들이다.우리나라에서는 고삼국사에 술에 얽힌 동명성왕의 건국신화가 전해진다.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인연을 맺고자 할 때 미리 술을 준비해 취하게 한 다음 큰딸 유화와의 사이에서 후일 고구려를 세웠다는 주몽을 낳았다는 신화다.부족국가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우리나라의 중요한 행사에서는 항상 술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위지동이전)에서는 예와 부여, 진한, 마한 등의 여러 행사에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옛 사람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 감각과 이성이 마비되어 황홀한 경지에 빠진 것을 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여겼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곡류로 이미 누룩을 빚어 술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으며 이 기술을 백제의 인번(仁番)이란 사람이 일본에 전파하여 주신(酒神)으로 추앙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당나라 현종(712~756)때의 대서가인 장욱은 오전에 지필묵을 준비해놓고 술이 거나하게 되면 일탈의 상태에서 자유분방하게 휘갈겨 큰 초서를 썼다. 그 서체가 바로 유명한 광초(狂草)이다. 나중 회소(懷素)도 같은 유형의 초서를 써서 장전소광(張顚素狂)이라 칭해졌다. 이런 행위 모두가 술을 이용해 속세의 잡념을 없앤 후 무아의 경지에서 이룬 결과로 이 후 서체가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나누어지게 된 사건이다.`잡코리아` 통계에는 직장인들 93%가 술을 마시며 독신가구 증가에 따라 혼자서 술을 마시는 `혼술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한다. 술 속의 알코올은 사람의 신경계에 작용을 하여 일종의 흥분제 역할과 진정제 역할을 한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것은 알코올의 신경계 작용으로 신경 전달계에 혼선을 가져와 운동 능력을 저하시키고 균형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며칠 전 어느 섬마을의 인면수심의 여교사 집단 성범죄도 술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술은 잘 마시면 약주가 될 수 있으나 잘못 마시면 패가망신하는 독주가 된다는 것을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6-07-01

더 좋은 일자리, 젠더 거버넌스에서 길을 묻는다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최근 정부는 더 좋은 일자리, 더 많은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특히 지역맞춤형 일자리 창출과 함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과 같은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여 고용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있어서 탁월한 성과도 보였으나, 일자리 창출이 효율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사업의 계획, 집행, 평가, 환류 등 전 과정에 걸쳐 각 행위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일자리의 효율적 운영은 공공부문, 민간 사회서비스 일자리 수행기관, 기업체 등 관련 기관 간의 서비스 수요와 공급에 관한 통합·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네트워크 협력체계를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업예산의 변화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의회나 관련 위원회, 사업수행에 있어 위탁기관으로서 각종 단체, 그리고 각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영향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학계 전문가 및 언론기관, 새로운 일자리사업의 발굴 및 실태를 조사하는 연구기관 등의 행위자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더 좋은 여성일자리를 만들려면 젠더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젠더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지역 전문가, NGO, 의회, 정책담당자 등을 중심으로 한 더 좋은 여성일자리사업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여성일자리 창출사업의 실효성을 강화 하려면 성주류화 적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의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란 모든 분야의 법과 정책, 프로그램 등 모든 시행 계획을 여성과 남성 모두의 시각에서 평가하여 정책 시행의 모든 단계에 접목시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좋은 여성일자리를 만들려면 우선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등 위탁 및 유관기관들의 예산은 행정부서를 통해 지원되고 운영되기에 행정부서의 성인지적 수준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여성의 현실과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일자리 수만 늘리는 정책이 개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업의 근본 취지나 목적에 부합하게 수혜자를 선발하고 이들의 욕구나 만족도 등을 수시로 체크하고 그 결과를 사업 과정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관기관 역시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역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기업의 고용환경에 있어서도 성차별적 요소를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인 자문을 제시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여성일자리 창출사업에 있어 젠더 관점이 제대로 정착 및 확산하기 위해서는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주체들의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성차별적 요소를 개선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협력적인 연계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여성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젠더 거버넌스 단계별로 어떠한 역할이 있어야 하는가. 첫째, 정책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는 행정부서간 협조 및 연계 강화가 필요하며, 각종 관련 위원회에 여성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정책을 수행하는 단계에서는 지역의 수요가 있는 직종을 발굴하고, 유관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여성일자리 발굴 뿐만 아니라 취업정보 공유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정책을 평가 및 환류하는 단계에서는 여성친화적 직업훈련을 위한 홍보채널을 다각화하고, 여성일자리 이슈 발굴 및 환류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여성일자리 창출은 정부-전문가-NGO간의 협력네트워크 구축, 지방의회의 역할 강화에 초점을 둔 네트워크, 언론과 정책수혜자를 포괄하는 네트워크와 함께 수평적 젠더 거버넌스 운영이라는 기본방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2016-06-28

아이들에게 날고기를…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옛 어른들 말씀, `세월 참 빠르다`가 실감되는 요즘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어언 34년째 들었으니 세월이라 해도 될 만하지 않은가? 초임시절, 까마득한 어른이셨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인 `교학상장`의 의미를 이제 겨우 깨칠만한데 교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기는 한가보다. 돌아보면 행복한 시절이었건만 스스로 만족하지도, 모든 열정을 아이들에게 쏟지도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를 생각하면 언제나 내가 걸어온 길과는 딴 판인 답을 만나곤 하여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다.교사란 직업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중노동이다.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 자연스럽게 조화되던 시대의 학교는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만으로도 존재이유가 충분하였고 교사의 권위도 절로 존중되었으나 오늘날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지식의 분량이 방대해졌을 뿐 아니라 다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창의적인 인간형의 구현을 위해서는 교육의 페러다임도 혁신돼야 할 일이니 오래된 교사들의 마음이 편치 않음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골든 애플 어워즈, 올해의 교사상 등 교육분야 최고의 상을 수차례 수상한 교사 데이브 버제스(Dave Burgess)는 그의 저서이자 현장교사들의 실용지침서라 할 수 있는 `무엇이 수업에 몰입하게 하는가?`에서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수업을 설계하기 위해 해적교수법을 제시했다. 해적교수법, 대담하고 모험적이며 성공이 담보되지 않아도 거친 파도 너머의 보물선을 향해 기꺼이 뛰어드는 해적정신을 통해 `의도적인 계획아래 행하는 교수적 행위`인 교육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다를 게 없는 누런 소 수업으로 가득 찬 학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누런 소가 되지 않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지독할 정도로 집중하고 몰두한다. 분명 우리는 생고기를 접시에 담아 손님을 대접할 수는 없다.”그런데, 아무래도 이 대목이 걸린다. 교육이 진정 의도적인 계획아래 행하는 완벽한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일까? 학생들에게 생고기를 던져주지 말라는 그의 말은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낯선 지식을 마구 쏟아 붓지 말라는 충고이며, 학생들이 소화하기 쉽도록 적절하게 요리를 해서 던져주어야 학습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반대로 학생들에게 생고기를 던져주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던져준 고기가 지나치게 가공해서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주 푹 고아서, 그것도 모자라 꼭꼭 씹어서 `즉시 소화가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제공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닐까?지리산의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 `천왕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지리산에 반달곰 20마리를 방사했는데, 그 중 `천왕이`라는 반달곰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다시 생포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나 과일 등을 받아먹는 재미에 빠져 사냥할 생각은 않고 빈둥거리며 지내던 그 녀석이 결국은 충치 때문에 사과 하나도 우쩍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약골이 돼버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보면서 현재의 우리 아이들이 영락없이 이 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의 산맥과 지혜의 계곡을 호기심이라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달려야 할 아이들이 사각형의 교실에 갇혀 교사가 던져주는 가공된 지식을 폭식하며 소화불량에 지쳐 힘들어하는 모습이 그렇다. 지적 야성을 잃고 졸음을 견디다 혼수상태를 헤매고 있는 아이들….아이들에게 날고기를 던져주자! 그것으로 스테이크를 하든지 불고기를 해먹든 육회를 즐기든 스스로 요리를 하도록 맡겨두자. 창의적 미래는 바로 그들의 몫이므로.

2016-06-27

얘들아, 동시 읽자 - 제주도

▲ 김현욱 시인포항 구룡포는 과메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겨우내 구룡포 해풍에 꼬들꼬들 여문 과메기의 맛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합니다. 어느덧 과메기는 구룡포의 특산물이 됐습니다. 특산물이란 말 그대로 어떤 지역의 특별한 산물을 뜻합니다. 그곳이 아니면 제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말하지요. 이를테면 영덕 대게, 천안 호두, 풍기 인삼, 기장 미역, 하동 녹차, 영광 굴비, 상주 곶감, 영양 고추, 제주 한라봉 등이 그러합니다. 아이고! 떠오르는 대로 적다 보니 입에 군침이 도는 맛있는 것들만 잔뜩 골랐네요. 시장기가 도는 때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이렇듯 떠올리기만 해도 쓰릅쓰릅 군침이 도는 특산물처럼 동시도 어떤 지역의 특산물이 될 수 있을까요? 20여 년 전부터 제주도에 살며 제주도의 삶과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열심히 담아내고 있는 김희정 동시인에게서 그 가능성을 찾아봅니다.“이상하다./ 저기 저 하얀 눈 덮어쓴 산/ 아직 겨울인가?// 이상하다./ 저기 저 붉은 꽃 노란 꽃 들판/ 벌써 봄인가?// 한라산이 내려다보며 갸웃갸웃/ 들판이 올려다보며 갸웃갸웃//”(`제주도의 봄`)김희정 시인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월간 `어린이와 문학`에 실린 `제주도의 봄`이라는 동시 때문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제주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두 계절이 한데 맞물려 있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수채화처럼 산뜻하게 담아낸 솜씨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그 후 김희정 시인은 제주도의, 제주도에 의한, 제주도를 위한 동시를 선물처럼 독자에게 선보입니다.“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가/ 오름에서 나물 캐다 낳았다는데/ 오름에서 꽃 따고 열매 따고 놀았다는데/ 오름에서 말 키우고/ 오름에서 농사짓고/ 한평생 살았다는데/ 죽어 오름에 누웠네/ 물매화, 꽃향유, 섬잔대/ 친구 삼아 누웠네/ 오름 위에 작은 오름 되었네.//”(`오름 위에 오름`)`오름`이란 제주도 한라산에 따른 작은 측화산(側火山) 또는 기생화산(寄生火山)을 말합니다. 측화산의 측(側)은 곁 또는 옆, 기생화산의 기(寄)는 의지하다, 붙어살다, 는 뜻이지요. 쉽게 말해 한라산의 곁 또는 옆에 의지하거나 붙어있는 산 같은 언덕, 언덕 같은 산을 오름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에는 무려 368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오름이 왕국`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이 제주도와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랐는데 그때 한 줌씩 떨어진 흙덩이들이 오름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도 있습니다.오름은 제주도 사람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오름에 터를 잡고 밭을 일구고 말을 키우고 초가지붕을 덮었던 띠와 새를 얻기도 하였지요.“제주도 큰바람은 어찌나 힘이 센지/ 바닷물을 한 길이나 들어 올리고/ 방파제도 한 번에 뛰어넘지요.// 제주도 큰바람은 어찌나 짓궂은지/ 밤새 달강달강 덜겅덜겅/ 창문을 흔들고 쓰레기란 쓰레기/ 모두 끌고 다니면서/ 나뭇가지에도 전깃줄에도 걸어놓지요.// 그 사나운 바람에도 제주 사람들/ 나무 심어 달래 주고/ 돌담 쌓아 바람길 막고/ 지붕 낮추고/ 마음 낮추고 살지요.//”(`제주도 바람`)`제주도 바람`이라는 시는 김희정 시인의 서시(序詩)입니다. 광활한 우주와 위대한 자연 속에 티끌 같은 존재인 우리 사람이 동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제주 사람들처럼 `마음 낮추고`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옳다고, 김희정 시인이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워낙 겸손해서 모른 척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한두 편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동시집 한 권을 통째로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삶이라는 책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2016-06-24

야쿠르트 경찰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하 생략)” 요즘 출퇴근 시간에 필자가 자주 읊조리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다. 필자의 출퇴근길은 붓을 들지 않더라도 보는 그대로가 그림인 아름다운 길이다. 아무리 뜨거워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곧은 자세로 하늘을 이고 어린 열매들을 키우는 포도나무들을 보면서 필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불평불만 가득한 필자의 마음을 다스린다.이 시에서 “먼 데 하늘”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학창시절 이 시를 배운 사람들은 지금도 외우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먼 데 하늘은 곧 이상향, 희망이다”라고 강조하신 국어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필자는 힘들 때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넣어 이 시를 주문처럼 외우곤 한다.“우리 학교 6월은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익어가는 시절 / 교정마다 꿈과 희망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 말을 들은 누군가는 필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희망은 무엇이냐고. 희망이 부재한 시대에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모순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힘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을 위한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지난 주 목요일 6교시! 산자연중학교 도서관에서는 구수한 대중가요가 울려 퍼졌다.“세월아 비켜라 /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특별한 배경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음향 시설도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분위기만큼은 최고였다. 1절이 끝나자 학생들의 박수소리에 도서관 서가에서 잠자고 있던 책들이 묵은 먼지를 틀어내었다. 그리고 2절이 시작되자 노래는 갑자기 합창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피었다. 그 미소는 분명 희망의 미소였다.학생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영천 화북면 치안센터장! 예전 표현으로 하면 화북 파출소 소장!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경찰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래서인지 제복 입은 경찰의 등장에 갑자기 학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6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전교생이 도서관에 모였다. 학생들은 좀처럼 경계 가득한 눈초리를 풀지 못했다.하지만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복은 결코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몸으로 보여주는 치안센터장의 진정성이 학생들에게 통했다. 학생들은 야쿠르트 경찰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제복 입은 경찰관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야쿠르트와 경찰관의 연관성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필자는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서는 감동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산자연중학교에는 매주 목요일 6교시 `마을학교`라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은 마을 어르신들을 모셔 마을 이야기를 듣는 인성교육 시간이다. 마을학교 교사는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면장, 치안센터장 등 마을과 관련된 분이면 누구나 다 된다. 지금까지 마을학교를 다녀간 일일명예교사는 무려 20명이 넘는다. 마을학교 강의는 매번 학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지만 지난 주 마을학교 일일명예교사로 초빙된 조재호 화북면 치안센터장의 강의는 더 남달랐다.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치안센터장으로 부임하는 마을마다 제복을 입고 들판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마을 주민을 찾아 간다는 것. 그 때마다 시원한 야쿠르트를 들고 간다는 것. 처음에는 경계의 눈으로 보다가 야쿠르트를 건네고,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주면 마을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신다는 것. 당신 제복의 의미는 이와 같이 마을 주민들의 힘듦을 들어주는 옷이라는 것.어느 순간 학생들의 손에도 야쿠르트가 들려 있었다. 포토 넝쿨 같은 학생들의 마을학교 노트에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음 같은 글귀가 적혔다. “꿈을 가져라! 진정한 꿈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희망은 희망을 낳는다.”

2016-06-23

청년, 실업률과 체감실업률 사이에서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대학은 지금 기말고사를 치르는 학생들의 열기로 한 학기가 끝나고 있다. 학년을 막론하고 방학 때 계획을 물어보면 여느 때의 방학처럼, TOEIC 공부, 자격증 취득 공부, 아르바이트, 여행 등을 한다고 대답했다. 취업 준비를 위해서 방학을 보내겠다는 학생들의 수가 많은 걸 보니, 취업에 대한 강박의 정도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취업과 실업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은 근대 초기부터 있어 왔다.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K사장은 안락의자에 푹신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글쎄올시다,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 주십사고 무리하게 조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면 이 담에 결원이 있다든지 하면 그때는 꼭….“ K사장은 고개를 좌우로 두어번 흔들고는 여전히 하품 섞인 대답을 한다. ”결원이 그렇게 나나 어디…. 그리고 간혹 가다가 결원이 난다더라도 유력한 후보자가 몇 십 명씩 밀려 있어서….“위의 글은 1934년에 발표된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서두이다. 주인공 P가 학교 선배인 K사장에게 구직을 하지만 거절당하는 장면이다. K사장은 당시 넘쳐나는 엘리트들을 맘껏 골라 쓸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으니, 당연히 고자세일 수밖에 없었다. 구직의 시장에서 백전백패의 경험을 한 P는 K사장의 공손하지 못한 거절에도 결코 충격을 받지 않는다. 당대에 P처럼 실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술이 없는 대졸자들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구직의 실패는 다반사이기 때문에 충격을 받지 않고, 직업은 없지만 막노동급의 일은 하지 않고, 때로는 열정페이에도 열광한다.소설에서 P의 전공은 알 수 없지만, 기술이 없어서 실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으로 볼 때, 인문 계통의 전공자인 것 같다. 취업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겪은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인쇄소의 직공 일을 배우게 한다. 그의 선택을 보고 있던 인쇄소의 직원은 의아해 한다.“거 참 모를 일이요. 우리 같은 놈은 이 짓을 해 가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애를 쓰는데, 되려 공부시킬 줄 아는 양반이 보통학교도 아니 마친 자제를 공장엘 보내요?”P의 선택과 인쇄소 직원이 던지는 물음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근시안적인 사유를 읽을 수 있다. P의 실업은 자신이 인문학을 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식민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힘든 직업은 외면하고, 열정페이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조건들…. 우리 시대는 진로교육법을 마련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일, 대학의 구조를 산업의 구조에 맞게 바꾸는 일을 실업률 감소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더 근본적인 문제들에 천착을 하면서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최근 청년층 체감실업률을 두고 통계청과 현대경제연구원은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결과도 22%:34%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비자발적 비정규직 청년층`과 `그냥 쉬는 청년층`을 구직 의사가 있는 잠재적 실업자로 셈할 것이냐의 여부와 두 기관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그 수치들의 차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고, 수치들로 읽을 수 없는 문제들을 더 발굴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1769년 호레이스 월폴은 호레이스 만 경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생각하는 자에게 이 세상은 한 편의 희극이고, 느끼는 자에게 이 세상은 한 편의 비극”이라고 썼다. 우리에게는 취업이라는 문제를 삶과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여유가 필요하다.

2016-06-21

신공항 핌피(PIMFY)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2006년 노무현 정권 때 공식 검토되기 시작했던 영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이 10여 년이 지나도록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이제야 입지선정 결과를 발표하려 한다. 여객기 이용 승객과 국가간 물류 이동량 등을 고려해 영남권 신공항의 필요성은 여러번 제기되어 왔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타당성 검토라는 이유와 대선과 총선을 위한 정치적 이슈로만 이용하고 이제껏 미뤄 온 것이다. 물론 5조~10조원에 이르는 신공항 건설경비 전액을 중앙정부(국비)가 담당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최근 항공업계는 저가 항공사들의 운항이 크게 늘어나면서 김해공항 수요가 2009년 예측보다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신공항의 필요성에 대한 조사보고와 용역의뢰가 여러차례 있어 왔었다. 실제 2009년 조사에선 김해공항 국제선 연간 이용객이 2020년이 되면 566만1천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이미 지난해 595만8천명의 예측수준을 훨씬 넘어선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 이러한 추세로 진행 된다면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는 540만명이라는 수용능력의 한계라는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방문하기 싫어하는 김해공장, 여행하기 힘든 대한민국을 만드는 꼴이 될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영남권에 신공항이 만들어지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밀양`과 `가덕도`라는 지역 유치를 위한 지역민 간의 갈등으로 현재 핌피사태라는 새로운 양상이 만들어 지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 중구 광복로 일대에서 열린 `가덕 신공항 유치, 범시민 궐기대회`에서 부산여성소비자연합 조정희 대표가 가덕 신공항 유치를 염원하는 삭발식을 가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TV뉴스를 통해 방송되며, 지역간 갈등은 절정에 이른 듯하다. 밀양에 신공항을 건설하게 되면 20여 개에 이르는 산봉우리를 절토해야 하고 자연환경 파괴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요소를 내재한 공항은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안전성 확보와 더불어 접근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과 경남권 주장은 접근성을 가덕도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고 있다. 가덕도는 지나치게 부산에만 유리한 입지라는 조건과 신공항 건립을 위해서는 영종도에 건설한 인천공항처럼 섬 매립 비용과 별도의 교통망 건설도 추가 되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추가적인 건설비용을 피할 수 없다.국토교통부는 “현재 프랑스 ADPi(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가 수행 중인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 결과가 24일쯤 발표될 예상이다. 이는 평가항목과 기준 등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 국제기준과 전문가 자문회의 의견 등을 거쳐 종합적으로 결정할 것이며 용역결과 발표 때 모든 평가항목과 평가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우리는 지난 과거 여러차례 지역 이기주의가 만든 국론 분열 사태를 경험했었다. 이번 신공항 입지 결정은 특정 지역의 현안이 아닌 범국가적 문제이다. 정치 논리보다 정확한 수요예측, 건설비용, 건설기간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객관적 기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최대 1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건설비용은 결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시설이 해당지역에 유치됨으로써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더라도 더 이상의 국론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결정이 이뤄져서는 안될 것이다.

2016-06-20

둠스데이(Doomsday)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정말 끝없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몇 시간을 달렸지만 변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듯 했다. 간혹 양 떼나 소 떼들이 저녁이 되어 집으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으면서 끝없이 펼쳐진 완만한 곡선의 초원 지대! 하지만 자세히 보면 꼭 초원지대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도로 따져보면 분명 풀이 돋아난 곳보다 비어 있는 곳이 훨씬 더 많았다. 워낙 넓으니까 그냥 모두 푸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몽골의 푸른 초원은 착시현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도로를 건너는 양 떼를 보고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몽골 현지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나라 NGO 단원이 이야기를 했다. 그냥 보면 양 떼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염소들과 양들이 섞여 있다고. 이들이 함께 있는 이유는 염소들이 무지 똑똑하여 양들을 이끌고 다닌다고. 염소들은 좋은 풀이 있는 데를 잘 알고 있으며 염소들이 양치기 역할을 한다는 것.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양 떼 무리에서 염소를 찾느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 그 웅성거림도 오래가지 않았다. 몽골 사막화의 주범 중 하나가 염소라는 설명을 듣고서는 학생들은 조용해졌다. 양들은 풀만 뜯어먹지만 염소들은 풀뿌리까지 먹어치워 염소들이 지나간 곳은 황폐화 되어 그곳은 풀이 돋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된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탄식이 차 안에서 메아리 쳤다. 학생들의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몽골 특산품 중 으뜸은 캐시미어인데, 가장 고품질의 캐시미어는 염소 털로 만든 것이며, 몽골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일부러 염소의 숫자를 늘리고 있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얼굴은 석양보다 더 붉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사막화 방지 작업에 참여하느라 힘이 다 빠진 학생들이지만, 여기저기서 염소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저녁이어서 그런지 도로를 건너는 양 떼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분명 염소들도 있었다. 염소는 차가 가까이 오면 차를 피하기 위해 뛰어서 도로를 건넜다. 하지만 양들은 느긋해도 너무 느긋했다. 심지어 어떤 양은 도로의 열기를 느끼려는지 차가 목전까지 와도 도로와 한 몸이 되어 비키지를 않았다. 동승한 NGO 단원은 몽골은 동물보호 의식이 남달라 도로에서 동물을 치이게 되면 큰 벌금을 낸다고 했다. 운전기사는 가벼운 경적소리로 양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몇 번의 경적소리가 있고서야 양들은 길을 터주었다. 양들도 양들이지만 운전기사의 마음 씀씀이가 놀라웠다.이른 새벽부터 몽골 바양노르 조림사업장 희망의 숲 조성 현장에서 뜨거운 태양도 아랑곳하지 않고 몽골 청소년들과 힘을 합쳐 약 970여 그루의 나무에 물을 주고, 오후에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엘승타스르헤 사막 현장을 찾아 사막화의 심각성을 체험한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에게 초원은 더 이상 관광과 놀람의 대상은 아니었다. 다음 날 에르덴 조림 사업장에서의 봉사활동을 위해 다시 먼 길을 나서는 학생들의 얼굴엔 피곤함보다 비장함이 가득했다. 그 비장함 속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등 봉사활동을 더 할 수 없음에 대한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내재해 있었다.우리나라 국토면적의 16배가 넘는 몽골이지만 그 중에서 쓸 수 있는 땅이 9%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학생들은 에르덴 조림 사업장에서의 봉사활동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이지만 정말 사람 사는 마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나타나는 마을도 70년대 우리나라 산간벽지 마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비록 변변한 화장실 하나 없었지만, 학생들은 둠스데이((Doomsday 지구 최후의 날)를 막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불편함 쯤이야 참아야 한다는 것을 몽골의 길 위에서 배웠다.

2016-06-16

술의 양면성

▲ 강희룡 서예가술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었다. 중국의 앙소문화(仰韶文化) 유적의 각종 토기들을 비롯해 갑골문이나 종정문에도 술과 연관된 문자가 많다. 이로보아 지금부터 6천년 이전에 술이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옳다고 보겠다. 고대 중국인들은 사람과 별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았으며 천상에 있는 별들이 사물을 조성하고 행위를 주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 술이 있는 것도 하늘의 주성(酒星)이 만들었기 때문이라 믿었다. 서기 648년의 진서(晉書)에 주기성좌(酒旗星座)에 관한 기록을 보면 헌원의 별자리 오른쪽 모서리 남쪽에 있는 세별을 `주기성`이라고 하면서 연회와 음식을 주관한다고 돼 있다. 이 주기성이란 표현이 최초로 나타나는 것은 고대의 예악을 집대성한 주례(周禮)인데 약 3천년 이전이 된다. 명대(明代)에는 원숭이가 술을 만들었다는 전설로 당시의 문인 이일화는 `황산의 많은 원숭이들이 봄여름에 꽃과 과실을 채취하여 돌 구덩이에 담아 술을 만들어 향기가 넘쳐나 먼 곳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대개 깊은 삼림에 사는 원숭이들이 술을 좋아하는 습성을 이용하여 원숭이 다니는 길목에 술을 갖다 놓으면 냄새를 맡고 온 원숭이는 처음에는 핥아 먹다가 술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마구 마셔 술에 취하면 사람들에게 잡힌다. 기원전 2세기의 역사서인 `여씨춘추`에는 `의적이 술을 만들었다(儀狄作酒)`는 기록이 있으며 전한의 유향이 편술한 주나라 안왕부터 진시황 때까지 240년간의 사실을 기록했다는 전국책(戰國策)에는 `옛날 황제의 딸 의적(儀狄)이 술을 맛있게 빚어 하(夏)나라의 우왕(禹王)에게 올렸더니 우왕이 이를 맛보고 그 맛에 놀라 반드시 훗날 술로서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술을 끊고 의적을 멀리 하였다란 기록이 있다. 출토된 원시 채색토기시대의 수많은 술그릇들은 의적과 같은 시기의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삼국사에 술에 얽힌 동명성왕의 건국신화가 전해진다.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인연을 맺고자 할 때 미리 술을 준비하여 취하게 한 다음 큰딸 유화와의 사이에서 후일 고구려를 세웠다는 주몽을 낳았다는 신화다. 부족국가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우리나라의 중요한 행사에서는 항상 술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위지동이전`에서는 예와 부여, 진한, 마한 등의 여러 행사에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옛 사람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 감각과 이성이 마비되어 황홀한 경지에 빠진 것을 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여겼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곡류로 이미 누룩을 빚어 술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으며 이 기술을 백제의 인번(仁番)이란 사람이 일본에 전파하여 주신(酒神)으로 추앙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당나라 현종(712~756)때의 대서가인 장욱은 오전에 지필묵을 준비해놓고 술이 거나하게 되면 일탈의 상태에서 자유분방하게 휘갈겨 큰 초서를 썼다. 그 서체가 바로 유명한 광초(狂草)이다. 나중 회소(懷素)도 같은 유형의 초서를 써서 장전소광(張顚素狂)이라 칭하여졌다. 이런 행위 모두가 술을 이용하여 속세의 잡념을 없앤 후 무아의 경지에서 이룬 결과로 이 후 서체가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나누어지게 된 사건이다.`잡코리아` 통계에는 직장인들 93%가 술을 마시며 독신가구 증가에 따라 혼자서 술을 마시는 `혼술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한다. 술 속의 알코올은 사람의 신경계에 작용을 하여 일종의 흥분제 역할과 진정제 역할을 한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것은 알코올의 신경계 작용으로 신경 전달계에 혼선을 가져와 운동 능력을 저하시키고 균형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며칠 전 어느 섬마을의 인면수심의 여교사 집단 성범죄도 술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술은 잘 마시면 약주가 될 수 있으나 잘못마시면 패가망신하는 독주가 된다는 것을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6-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