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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과 체감실업률 사이에서

등록일 2016-06-21 02:01 게재일 2016-06-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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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애<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대학은 지금 기말고사를 치르는 학생들의 열기로 한 학기가 끝나고 있다. 학년을 막론하고 방학 때 계획을 물어보면 여느 때의 방학처럼, TOEIC 공부, 자격증 취득 공부, 아르바이트, 여행 등을 한다고 대답했다. 취업 준비를 위해서 방학을 보내겠다는 학생들의 수가 많은 걸 보니, 취업에 대한 강박의 정도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취업과 실업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은 근대 초기부터 있어 왔다.

“뭐 어디 빈자리가 있어야지” K사장은 안락의자에 푹신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글쎄올시다,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 주십사고 무리하게 조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면 이 담에 결원이 있다든지 하면 그때는 꼭….“ K사장은 고개를 좌우로 두어번 흔들고는 여전히 하품 섞인 대답을 한다. ”결원이 그렇게 나나 어디…. 그리고 간혹 가다가 결원이 난다더라도 유력한 후보자가 몇 십 명씩 밀려 있어서….“

위의 글은 1934년에 발표된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서두이다. 주인공 P가 학교 선배인 K사장에게 구직을 하지만 거절당하는 장면이다. K사장은 당시 넘쳐나는 엘리트들을 맘껏 골라 쓸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으니, 당연히 고자세일 수밖에 없었다. 구직의 시장에서 백전백패의 경험을 한 P는 K사장의 공손하지 못한 거절에도 결코 충격을 받지 않는다. 당대에 P처럼 실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술이 없는 대졸자들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구직의 실패는 다반사이기 때문에 충격을 받지 않고, 직업은 없지만 막노동급의 일은 하지 않고, 때로는 열정페이에도 열광한다.

소설에서 P의 전공은 알 수 없지만, 기술이 없어서 실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으로 볼 때, 인문 계통의 전공자인 것 같다. 취업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겪은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인쇄소의 직공 일을 배우게 한다. 그의 선택을 보고 있던 인쇄소의 직원은 의아해 한다.“거 참 모를 일이요. 우리 같은 놈은 이 짓을 해 가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애를 쓰는데, 되려 공부시킬 줄 아는 양반이 보통학교도 아니 마친 자제를 공장엘 보내요?”

P의 선택과 인쇄소 직원이 던지는 물음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근시안적인 사유를 읽을 수 있다. P의 실업은 자신이 인문학을 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식민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힘든 직업은 외면하고, 열정페이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조건들…. 우리 시대는 진로교육법을 마련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일, 대학의 구조를 산업의 구조에 맞게 바꾸는 일을 실업률 감소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더 근본적인 문제들에 천착을 하면서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최근 청년층 체감실업률을 두고 통계청과 현대경제연구원은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결과도 22%:34%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비자발적 비정규직 청년층`과 `그냥 쉬는 청년층`을 구직 의사가 있는 잠재적 실업자로 셈할 것이냐의 여부와 두 기관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그 수치들의 차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고, 수치들로 읽을 수 없는 문제들을 더 발굴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1769년 호레이스 월폴은 호레이스 만 경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생각하는 자에게 이 세상은 한 편의 희극이고, 느끼는 자에게 이 세상은 한 편의 비극”이라고 썼다. 우리에게는 취업이라는 문제를 삶과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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