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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경찰관

등록일 2016-06-23 02:01 게재일 2016-06-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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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하 생략)” 요즘 출퇴근 시간에 필자가 자주 읊조리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다. 필자의 출퇴근길은 붓을 들지 않더라도 보는 그대로가 그림인 아름다운 길이다. 아무리 뜨거워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곧은 자세로 하늘을 이고 어린 열매들을 키우는 포도나무들을 보면서 필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불평불만 가득한 필자의 마음을 다스린다.

이 시에서 “먼 데 하늘”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학창시절 이 시를 배운 사람들은 지금도 외우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먼 데 하늘은 곧 이상향, 희망이다”라고 강조하신 국어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필자는 힘들 때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넣어 이 시를 주문처럼 외우곤 한다.

“우리 학교 6월은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익어가는 시절 / 교정마다 꿈과 희망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 말을 들은 누군가는 필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희망은 무엇이냐고. 희망이 부재한 시대에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모순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힘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을 위한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지난 주 목요일 6교시! 산자연중학교 도서관에서는 구수한 대중가요가 울려 퍼졌다.“세월아 비켜라 /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특별한 배경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음향 시설도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분위기만큼은 최고였다. 1절이 끝나자 학생들의 박수소리에 도서관 서가에서 잠자고 있던 책들이 묵은 먼지를 틀어내었다. 그리고 2절이 시작되자 노래는 갑자기 합창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피었다. 그 미소는 분명 희망의 미소였다.

학생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영천 화북면 치안센터장! 예전 표현으로 하면 화북 파출소 소장!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경찰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래서인지 제복 입은 경찰의 등장에 갑자기 학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6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전교생이 도서관에 모였다. 학생들은 좀처럼 경계 가득한 눈초리를 풀지 못했다.

하지만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복은 결코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몸으로 보여주는 치안센터장의 진정성이 학생들에게 통했다. 학생들은 야쿠르트 경찰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제복 입은 경찰관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야쿠르트와 경찰관의 연관성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필자는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서는 감동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산자연중학교에는 매주 목요일 6교시 `마을학교`라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은 마을 어르신들을 모셔 마을 이야기를 듣는 인성교육 시간이다. 마을학교 교사는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면장, 치안센터장 등 마을과 관련된 분이면 누구나 다 된다. 지금까지 마을학교를 다녀간 일일명예교사는 무려 20명이 넘는다. 마을학교 강의는 매번 학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지만 지난 주 마을학교 일일명예교사로 초빙된 조재호 화북면 치안센터장의 강의는 더 남달랐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치안센터장으로 부임하는 마을마다 제복을 입고 들판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마을 주민을 찾아 간다는 것. 그 때마다 시원한 야쿠르트를 들고 간다는 것. 처음에는 경계의 눈으로 보다가 야쿠르트를 건네고,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주면 마을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신다는 것. 당신 제복의 의미는 이와 같이 마을 주민들의 힘듦을 들어주는 옷이라는 것.

어느 순간 학생들의 손에도 야쿠르트가 들려 있었다. 포토 넝쿨 같은 학생들의 마을학교 노트에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음 같은 글귀가 적혔다. “꿈을 가져라! 진정한 꿈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희망은 희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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