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끝없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몇 시간을 달렸지만 변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듯 했다. 간혹 양 떼나 소 떼들이 저녁이 되어 집으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으면서 끝없이 펼쳐진 완만한 곡선의 초원 지대! 하지만 자세히 보면 꼭 초원지대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도로 따져보면 분명 풀이 돋아난 곳보다 비어 있는 곳이 훨씬 더 많았다. 워낙 넓으니까 그냥 모두 푸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몽골의 푸른 초원은 착시현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도로를 건너는 양 떼를 보고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몽골 현지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나라 NGO 단원이 이야기를 했다. 그냥 보면 양 떼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염소들과 양들이 섞여 있다고. 이들이 함께 있는 이유는 염소들이 무지 똑똑하여 양들을 이끌고 다닌다고. 염소들은 좋은 풀이 있는 데를 잘 알고 있으며 염소들이 양치기 역할을 한다는 것.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양 떼 무리에서 염소를 찾느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웅성거림도 오래가지 않았다. 몽골 사막화의 주범 중 하나가 염소라는 설명을 듣고서는 학생들은 조용해졌다. 양들은 풀만 뜯어먹지만 염소들은 풀뿌리까지 먹어치워 염소들이 지나간 곳은 황폐화 되어 그곳은 풀이 돋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된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탄식이 차 안에서 메아리 쳤다. 학생들의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몽골 특산품 중 으뜸은 캐시미어인데, 가장 고품질의 캐시미어는 염소 털로 만든 것이며, 몽골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일부러 염소의 숫자를 늘리고 있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얼굴은 석양보다 더 붉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사막화 방지 작업에 참여하느라 힘이 다 빠진 학생들이지만, 여기저기서 염소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저녁이어서 그런지 도로를 건너는 양 떼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분명 염소들도 있었다. 염소는 차가 가까이 오면 차를 피하기 위해 뛰어서 도로를 건넜다. 하지만 양들은 느긋해도 너무 느긋했다. 심지어 어떤 양은 도로의 열기를 느끼려는지 차가 목전까지 와도 도로와 한 몸이 되어 비키지를 않았다. 동승한 NGO 단원은 몽골은 동물보호 의식이 남달라 도로에서 동물을 치이게 되면 큰 벌금을 낸다고 했다. 운전기사는 가벼운 경적소리로 양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몇 번의 경적소리가 있고서야 양들은 길을 터주었다. 양들도 양들이지만 운전기사의 마음 씀씀이가 놀라웠다.
이른 새벽부터 몽골 바양노르 조림사업장 희망의 숲 조성 현장에서 뜨거운 태양도 아랑곳하지 않고 몽골 청소년들과 힘을 합쳐 약 970여 그루의 나무에 물을 주고, 오후에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엘승타스르헤 사막 현장을 찾아 사막화의 심각성을 체험한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에게 초원은 더 이상 관광과 놀람의 대상은 아니었다. 다음 날 에르덴 조림 사업장에서의 봉사활동을 위해 다시 먼 길을 나서는 학생들의 얼굴엔 피곤함보다 비장함이 가득했다. 그 비장함 속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등 봉사활동을 더 할 수 없음에 대한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내재해 있었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16배가 넘는 몽골이지만 그 중에서 쓸 수 있는 땅이 9%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학생들은 에르덴 조림 사업장에서의 봉사활동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이지만 정말 사람 사는 마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나타나는 마을도 70년대 우리나라 산간벽지 마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비록 변변한 화장실 하나 없었지만, 학생들은 둠스데이((Doomsday 지구 최후의 날)를 막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불편함 쯤이야 참아야 한다는 것을 몽골의 길 위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