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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날고기를…

등록일 2016-06-27 02:01 게재일 2016-06-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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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재<br /><br />포항예총 회장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옛 어른들 말씀, `세월 참 빠르다`가 실감되는 요즘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어언 34년째 들었으니 세월이라 해도 될 만하지 않은가? 초임시절, 까마득한 어른이셨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인 `교학상장`의 의미를 이제 겨우 깨칠만한데 교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기는 한가보다.

돌아보면 행복한 시절이었건만 스스로 만족하지도, 모든 열정을 아이들에게 쏟지도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를 생각하면 언제나 내가 걸어온 길과는 딴 판인 답을 만나곤 하여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다.

교사란 직업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중노동이다.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 자연스럽게 조화되던 시대의 학교는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만으로도 존재이유가 충분하였고 교사의 권위도 절로 존중되었으나 오늘날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지식의 분량이 방대해졌을 뿐 아니라 다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창의적인 인간형의 구현을 위해서는 교육의 페러다임도 혁신돼야 할 일이니 오래된 교사들의 마음이 편치 않음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골든 애플 어워즈, 올해의 교사상 등 교육분야 최고의 상을 수차례 수상한 교사 데이브 버제스(Dave Burgess)는 그의 저서이자 현장교사들의 실용지침서라 할 수 있는 `무엇이 수업에 몰입하게 하는가?`에서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수업을 설계하기 위해 해적교수법을 제시했다. 해적교수법, 대담하고 모험적이며 성공이 담보되지 않아도 거친 파도 너머의 보물선을 향해 기꺼이 뛰어드는 해적정신을 통해 `의도적인 계획아래 행하는 교수적 행위`인 교육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다를 게 없는 누런 소 수업으로 가득 찬 학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누런 소가 되지 않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지독할 정도로 집중하고 몰두한다. 분명 우리는 생고기를 접시에 담아 손님을 대접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대목이 걸린다. 교육이 진정 의도적인 계획아래 행하는 완벽한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일까? 학생들에게 생고기를 던져주지 말라는 그의 말은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낯선 지식을 마구 쏟아 붓지 말라는 충고이며, 학생들이 소화하기 쉽도록 적절하게 요리를 해서 던져주어야 학습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학생들에게 생고기를 던져주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던져준 고기가 지나치게 가공해서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주 푹 고아서, 그것도 모자라 꼭꼭 씹어서 `즉시 소화가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제공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닐까?

지리산의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 `천왕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지리산에 반달곰 20마리를 방사했는데, 그 중 `천왕이`라는 반달곰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다시 생포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나 과일 등을 받아먹는 재미에 빠져 사냥할 생각은 않고 빈둥거리며 지내던 그 녀석이 결국은 충치 때문에 사과 하나도 우쩍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약골이 돼버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보면서 현재의 우리 아이들이 영락없이 이 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의 산맥과 지혜의 계곡을 호기심이라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달려야 할 아이들이 사각형의 교실에 갇혀 교사가 던져주는 가공된 지식을 폭식하며 소화불량에 지쳐 힘들어하는 모습이 그렇다. 지적 야성을 잃고 졸음을 견디다 혼수상태를 헤매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날고기를 던져주자! 그것으로 스테이크를 하든지 불고기를 해먹든 육회를 즐기든 스스로 요리를 하도록 맡겨두자. 창의적 미래는 바로 그들의 몫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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