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구룡포는 과메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겨우내 구룡포 해풍에 꼬들꼬들 여문 과메기의 맛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합니다. 어느덧 과메기는 구룡포의 특산물이 됐습니다. 특산물이란 말 그대로 어떤 지역의 특별한 산물을 뜻합니다. 그곳이 아니면 제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말하지요. 이를테면 영덕 대게, 천안 호두, 풍기 인삼, 기장 미역, 하동 녹차, 영광 굴비, 상주 곶감, 영양 고추, 제주 한라봉 등이 그러합니다. 아이고! 떠오르는 대로 적다 보니 입에 군침이 도는 맛있는 것들만 잔뜩 골랐네요. 시장기가 도는 때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이렇듯 떠올리기만 해도 쓰릅쓰릅 군침이 도는 특산물처럼 동시도 어떤 지역의 특산물이 될 수 있을까요? 20여 년 전부터 제주도에 살며 제주도의 삶과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열심히 담아내고 있는 김희정 동시인에게서 그 가능성을 찾아봅니다.
“이상하다./ 저기 저 하얀 눈 덮어쓴 산/ 아직 겨울인가?// 이상하다./ 저기 저 붉은 꽃 노란 꽃 들판/ 벌써 봄인가?// 한라산이 내려다보며 갸웃갸웃/ 들판이 올려다보며 갸웃갸웃//”(`제주도의 봄`)
김희정 시인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월간 `어린이와 문학`에 실린 `제주도의 봄`이라는 동시 때문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제주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두 계절이 한데 맞물려 있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수채화처럼 산뜻하게 담아낸 솜씨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그 후 김희정 시인은 제주도의, 제주도에 의한, 제주도를 위한 동시를 선물처럼 독자에게 선보입니다.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가/ 오름에서 나물 캐다 낳았다는데/ 오름에서 꽃 따고 열매 따고 놀았다는데/ 오름에서 말 키우고/ 오름에서 농사짓고/ 한평생 살았다는데/ 죽어 오름에 누웠네/ 물매화, 꽃향유, 섬잔대/ 친구 삼아 누웠네/ 오름 위에 작은 오름 되었네.//”(`오름 위에 오름`)
`오름`이란 제주도 한라산에 따른 작은 측화산(側火山) 또는 기생화산(寄生火山)을 말합니다. 측화산의 측(側)은 곁 또는 옆, 기생화산의 기(寄)는 의지하다, 붙어살다, 는 뜻이지요. 쉽게 말해 한라산의 곁 또는 옆에 의지하거나 붙어있는 산 같은 언덕, 언덕 같은 산을 오름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에는 무려 368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오름이 왕국`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이 제주도와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랐는데 그때 한 줌씩 떨어진 흙덩이들이 오름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도 있습니다.
오름은 제주도 사람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오름에 터를 잡고 밭을 일구고 말을 키우고 초가지붕을 덮었던 띠와 새를 얻기도 하였지요.
“제주도 큰바람은 어찌나 힘이 센지/ 바닷물을 한 길이나 들어 올리고/ 방파제도 한 번에 뛰어넘지요.// 제주도 큰바람은 어찌나 짓궂은지/ 밤새 달강달강 덜겅덜겅/ 창문을 흔들고 쓰레기란 쓰레기/ 모두 끌고 다니면서/ 나뭇가지에도 전깃줄에도 걸어놓지요.// 그 사나운 바람에도 제주 사람들/ 나무 심어 달래 주고/ 돌담 쌓아 바람길 막고/ 지붕 낮추고/ 마음 낮추고 살지요.//”(`제주도 바람`)
`제주도 바람`이라는 시는 김희정 시인의 서시(序詩)입니다. 광활한 우주와 위대한 자연 속에 티끌 같은 존재인 우리 사람이 동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제주 사람들처럼 `마음 낮추고`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옳다고, 김희정 시인이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워낙 겸손해서 모른 척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한두 편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동시집 한 권을 통째로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삶이라는 책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