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治療)가 주로 육체의 상처나 병을 낫게 하는 일이라면, 치유(治癒)는 마음의 상처와 병을 낫게 하거나 회복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오랜 불화 끝에 선택한 이혼,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과 같은 크나큰 상실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절망의 구덩이를 낮은 포복으로 하릴없이 기어가는 가엾은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분노와 슬픔, 두려움과 아쉬움의 감정들이 마구 뒤엉켜 영혼을 황폐화 시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분노와 슬픔, 두려움과 아쉬움은 분명 치유의 감정입니다. 이 네 가지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간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이 아물려면 우리는 반드시 치유의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분노의 시간, 슬픔의 시간, 두려움의 시간, 아쉬움의 시간을 회피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치유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남자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에서 치유의 기미를 찾는 반면, 여자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찾음으로써 치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연과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자신이 겪은 일을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치유 과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 그 사람과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 새로운 사랑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 씨앗의 이름은`용서`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우리는 진심으로 상실을 슬퍼할 수 있습니다. 헤어져서 서로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면 서로를 위한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아보고 상대방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추스르는 길이고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을 찾아 다시 마음을 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기 전까지 남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려하고 여자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믿지 못합니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시작하지만 책임을 지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여자는 또다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관계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사랑의 상실에 대해 충분히 분노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아쉬워해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은 텅텅 비워집니다. 빈 마음에 새로운 사랑과 희망의 빛이 스며드는 것은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이 밝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알다시피 여자는 관계 지향적이고 남자는 해결 지향적입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체득되는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버림받은 느낌입니다. 남자는 무엇이든지 해결하려고 하고 인정받으려 합니다. 남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오랜 불화 끝에 선택한 이혼,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은 남녀 모두에게 이 세상에 버림받은 듯하고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감정을 들게 합니다. 그러한 감정에 마구 휘둘릴 때는 그 감정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유의 시작입니다.
어떤 상실을 겪든 과거를 돌아보고 고통 없이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은 치유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괜찮습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