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지 벌써 20년, 성년의 세월이 지났다. 흐른 세월만큼 모양도 다듬어지는 법이어서 각 지자체들도 자구책에 몰두하여 자치의 틀을 다지고 있다. 물론 중앙정부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자치에는 여전히 일정부분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지자체는 저마다 지역정체성 확립을 위한 연구와 도시브랜드 가치의 상승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각 도시마다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슬로건을 정하여 이를 시정목표에 반영하고 지역축제를 계발하는 등 차별화된 문화정책 추진에 열중하고 있다. 문화가 지방자치의 첨병으로 도시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포항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역의 문화예술정책을 일관성 있게 계획하고 긴 안목으로 미래를 예측하며 추진하기 위해 필수적인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할 문화재단의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하니 만시지탄이나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재단 설립을 위한 여론조사에서는 시민들 절대다수가 설립취지에 찬성했다고 한다. 포항시민들의 문화적 소양이 높은 수준임을 시사해주는 것이며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향유 욕구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단들은 대부분 설립된 지 1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중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모범적인 운영으로 손꼽히는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된 지는 15년 남짓 지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우리 포항도 이미 15년 정도 지난 옛날에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필자가 40대 중반이던 시절, 포항의 미래를 염려하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문화재단의 필요성에 대하여 활발하게 토론하였고, 구체적인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성사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있다. 그 무렵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되었고 `경기학` 연구, `경기문화` 자원 발굴과 `경기정체성`확립 등으로 오늘날 예향으로 불리는 남도와 비견되는 경기지역의 문화지형도를 그려내는 기반이 된 것이다. 포항문화재단의 설립타당성을 검토한 용역보고서가 포항시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인구가 50만 이상인 15개 도시 중 13개 도시에는 이미 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포항시를 포함한 2개 도시에만 문화재단이 없는 상태라 한다. 물론 다른 도시에 있다고 해서 우리도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겠으나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문화정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단의 설립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교통의 오지였던 포항의 환경이 KTX 개통과 고속도로 등 교통망의 정비로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오갈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된 바, 이 기회를 활용하여 동해변방의 철강산업도시로만 알려진 포항의 신성장 동력으로 포항문화재단이 중심이 된 포항학연구와 지역정체성 재정립을 통한 포항문화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림으로써 `도약하는 포항`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이 기회를 살려 문화도시 추진과 해양관광도시로서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갖추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문화관광의 역류현상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음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용역보고서의 사업적정성 분석에 의하면, 시 소유의 시설 및 장비사용으로 초기 설립자본금을 최소화함으로써 재정적 부담이 크지 않고, 문화행정서비스의 강화로 주민복리증진에 큰 효과가 있으며, 문화관광소비의 확대와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여 적정한 사업이라는 결론이라 매우 다행스럽다.
다만,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제언하자면 문화재단의 업무는 각 지역의 재단마다 대동소이하므로 포항문화재단의 경우는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너무 많은 욕심은 자칫 방만한 운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긴 안목을 가지고 지역정체성의 재정립이라는 점에 집중하여 후대에까지 연면히 이어질 경쟁력을 갖춘 `포항학`의 뼈대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