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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의 법칙과 새 학년

등록일 2016-02-23 02:01 게재일 2016-02-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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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사회에 연말이 있다면, 학교에는 학년말이 있다. 다들 연말 분위기를 잘 알 것이다. 아쉬움과 미련,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기대와 희망! 상반되고 복잡한 마음 때문에 괜히 심란해지는 연말!

그러면 학년말의 분위기는 어떨까. 학년말 역시 연말처럼 분주하다. 하지만 그 분주함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연말에는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분주하지만, 학년말에는 교사들만 잠깐 분주하다. 교사들은 잡무(雜務)로 전락해버린 형식적인 졸업식과 종업식을 치르느라 반짝 바쁘다. 그리고 더 반짝하는 바쁨으로 전력을 다해 또 하나의 잡무인 학생생활기록부를 정리한다. 그래야 힘들었던 학생들을 빨리 잊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 전에 학생들은 교사와 학교를 잊기 위해 빛의 속도로 교문을 빠져나가 PC방을 거쳐 학원으로 갔다.

스승과 제자가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만 남은 우리나라 학교의 학년말은 그렇게 잠시 바쁘다. 그 잠시 동안에 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를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또 바쁘게 산다, 학생들은 학원에서, 선생들은 골프장이나 기타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학생과 선생이 떠난 2월의 학교가 참 쓸쓸하다. 비록 희망 고문일지언정 연말에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라도 있지만, 우리나라 학년말에는 새 학년에 대한 기대감 따윈 없다. 선생과 학생 모두 새 학년을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프다.

2년 전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딸아이가 생각난다. “아빠, 나 빨리 학교 가고 싶어.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 달력 고장 난 거 아니야.”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새로 산 가방이 다 닳을 정도로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연습을 한 아이. 그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학부모가 아니라 부모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빌고 또 빌었다, 저 행복한 모습이 제발 꺾이지 않기를.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대한민국 교육은 2년도 안 되어 그 행복한 모습을 아이에게서 앗아갔다. 필자 또한 부모가 아닌 학부모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지독한 학부모가.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절규한다. “왜 매일 학교만 가라고 해. 숙제, 공부, 또 숙제, 공부. 아빠는 그 말밖에 할 게 없어.” 절규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잠시 진정한 아이가 말한다. “어휴, 이제 3학년이 되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기대와 설렘은 주지 못할망정 한숨밖에 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교육, 대한민국 학부모.

2015학년도가 끝나가고 있다. 다음 주면 새 학년이 시작된다. 그런데 필자는 새 학년을 시작할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달력만 2016년이지 아무리 둘러봐도 대한민국 교육은 1900년대에서 멈춘 것 같다. 그동안 참 많은 제도들이 시행되었지만, 그 때마다 대한민국 교육 시계는 거꾸로 갔다. 역행하는 속도에 비례하여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곤두박질 쳤다.

필자는 필자부터 변해야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해보지만 솔직히 말해 어떻게 변해야 될지 모르겠다. 많은 전문가들이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론과 현실이 너무도 동떨어진 게 이 나라 교육이다. 그걸 가장 잘 증명해 주는 교육계의 거짓말이 “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교육은 일년은커녕 한 학기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한숨 소리가 마음에서 더 크게 메아리치는 학년 말. 필자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이먼드 카버의 습관을 빌려 신학기 계획을 세워본다.

카버의 습관이란 `미래를 위해 물건을 쌓아 두지 않고, 날마다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다 써버리고 더 좋은 것이 생기리라 믿는` 습관으로 일명 `카버의 법칙`이라 한다. 카버의 법칙을 수정해 신학기 다짐서를 만들었다.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쌓아두지 말고, 날마다 마음을 다해 가장 좋은 교육활동을 하자!” 그런데 우리나라에 가장 좋은 교육활동이 있기나 할까? 새 학년을 앞둔 학생들의 탄식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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