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정치의 계절에 띄우는 서시(序詩)

등록일 2016-02-22 02:01 게재일 2016-02-22 18면
스크랩버튼
▲ 차봉준<br /><br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 차봉준 차봉준 숭실대 교수·베어드학부대학

민족의 시인 윤동주는 `서시(序詩)`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며 노래했다. 그는 암울한 식민치하에서 언제나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다짐했었고, 결국 이국(異國)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부끄럼 없이 마감했다.

윤동주는 1942년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과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공부를 이어가다, 1943년 여름 일본 특고 형사에게 체포된 후 조국의 독립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에 옥사한 인물이다.

특히 릿쿄대학 시절 하숙방 한 켠에 고독하게 앉아 자신의 침전(沈澱)하는 삶에 대해 부끄러움을 고백한 시 한 편도 관심을 끈다. `쉽게 씌여진 시`라는 작품에서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는 시인의 고백은 시대 앞에, 민족 앞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철저한 반성이 전제됨으로써 나타난 진심어린 목소리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알리기 위한 갖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선거에 나선 개개의 정치인은 본인의 이력과 능력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피나는 경쟁에 돌입했다. 평소엔 얼굴조차 보기 힘들던 사람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신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이 붐비는 도심의 횡단보도와 지하철역 출입구에는 이른 아침 출근 시간과 밤늦은 귀가 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 알리기가 한창이다. 별반 신기할 것도 없는, 으레 4년마다 반복되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우리 지역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도대체 저 사람은 왜 또 나오는 거지?`, 그리고 `저 사람은 아직도 저러고 있어?` 정도의 호기심만 생길 뿐 도통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이런 와중에 유독 이번 선거에 도드라진 한가지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새누리당 소속 후보들의 이른바 `진박(眞朴) 마케팅`이 그것이다. 같은 당 후보자들끼리 `내가 진실한 사람이니`, `저쪽은 배반의 정치`니 하며 갑론을박이다.

경상도 정서, 즉 `박근혜 대통령 팔이`에 호소하려는 얄팍한 속내가 낯 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다. 원래 정치하는 사람들이 낯이 두껍다고는 생각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몰랐다.

도대체 부끄러움은 어디에 팔아버린 것인가! 표를 구하는 이들이 진심을 다해야 할 대상은 누구여야 하는가.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앞에 진실한 사람임을 호소해야 마땅한 게 아닌가. 진박(眞朴)이 아닌 진국민(眞國民)을 외치는 후보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들에게 윤동주의 시를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죽는 날까지 국민들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진정 그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아무개 한사람이 아니라 국민들이다. 4년마다 한 번씩 그토록 간절히 한 표를 구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바로 그 `국민`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신을 가꾸어야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해야 옳다. 누구 한 사람에게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앞에 진실한 사람임을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고 국민 앞에, 국가 앞에, 민족 앞에 순교자(殉敎者)적 헌신을 고백하는 그런 위정자를 만나고 싶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 그런 소망을 갖기에, 그런 행복한 나라에 살기에 여전히 부족한 것일까?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