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연회의 끝, 밤이 깊어 12시 30분이 지나고 있음에도 이야기 나누기를 즐기는 집주인,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 세 사람은 남아서 `첫사랑`에 대한 경험을 주제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첫사랑`이라…. 특히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이 단어 자체가 주는 아련함과 로맨틱함이란…. 첫사랑이 있든 없든 매혹적인 추억을 불러오는 말임에 틀림없다.
막상 집주인과 세르게이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이야기가 없어서 차례는 자연스럽게 블라디미르에게 넘어 간다. 블라디미르는 말솜씨가 없다는 이유로 첫사랑에 대한 기억들을 수첩에 적어 와서 읽어주기로 한다. 2주 후, 그들은 다시 만나 블라지미르가 들려주는 첫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의 첫사랑 이야기는 대학 입학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서두르지도 않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던 16세 여름, 별장에서 지냈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책을 펼쳐보기보다는 이미 외우고 있는 시들을 큰 소리로 낭송하고, 몸 안에서는 피가 약동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감성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그동안 여자의 모습이라든가 여자의 사랑이라든가 하는 환영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그 앞에 지노치카라는 여성이 나타나게 된다.
지노치카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자세키나 공작 부인의 딸이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그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몸동작은 어떤 말할 수 없는 매력이 풍겼고, 날씬한 몸매, 가느다란 목과 예쁜 손, 약간 헝클어진 금발, 반쯤 감긴 영리해 보이는 눈과 속눈썹, 갸름한 볼은 물론이고, 활기찬 얼굴에서 빛나는 커다란 회색 눈동자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모든 것은 그를 사로잡고 만다.
그 이후 블라디미르는 그녀의 모습을 환영처럼 떠올리기도 하고, 네스쿠치느이 공원을 거닐면서 어떻게 해야 그녀와 가깝게 사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인물이 된다. 자세키나 부인이 연루된 재판 사건을 매개로 두 집안은 자연스럽게 교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블라지미르와 지노치카의 만남은 잦아지게 된다.
블라디미르보다 5세 연상인 그녀는 이미 5명의 구혼(애)자를 거느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5명의 구혼자를 물리치고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연적을 없애기 위해 비수를 품고 밤길을 서성이는 모험도 감행한다. 다행히 풀숲에 미끄러져 연적을 해치는 일을 실패로 처리한 점은 도덕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투르게네프의 재치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번개와 천둥이 계속 치며 비가 내리는 밤을 `참새의 밤`이라고 했듯이, 소년 블라디미르의 16세 무렵은 사랑에 온힘을 기울이며 보낸 참새의 밤이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가 어머니와 아저씨의 관계를 반투명하게 그려낸 것처럼, `첫사랑`의 블라디미르도 아버지와 지노치카의 관계를 반투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노치카로 인해 블라디미르 부모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고, 그의 가족들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됨으로써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을 아들의 연적이 아버지였음이 드러나는 소설로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읽지 않길 바란다. 소설을 읽는 내내 16세 소년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감당하고, 정리해 가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지난 12월 31일 인문학진흥법이 제정되었다. 이제, 성적과 학원에 매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이 밤새워 찬찬히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을 완상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