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다보면 종종 그런 글들을 마주치게 된다. “영국이 섬이라는 게 상식이야?”, “시계 읽을 줄 모르면 멍청한 거야?”, “꼭 자기 이름 한자로 쓸 줄 알아야 해?” 등등, 타박을 듣거나 혹은 창피함을 느꼈던 경험을 토로하며 정말 상식이 맞는 것인지 되묻곤 한다. 물론 여기에 달린 댓글은 대개 “응, 상식이야. 그 정도는 제발 좀 알아둬”와 같은 상식(?)적인 댓글이 달리기는 하지만, 간혹 그러한 글들을 읽다 보면 나 또한 의문이 들곤 한다. 대체 상식이라는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건가 하는 의문.초등학교 1학년 때 한자 시간에, 담임 선생님에게 그런 타박을 들은 적이 있다. 숫자를 10까지 한자로 쓸 줄 모른다는 이유로 상식이 없다는 둥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는 둥, 온갖 모멸적인 말이 8살 아이에게 쏟아졌다. 그땐 그게 어마어마하게 큰 죄인 것처럼 느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8살짜리 애가 모를 수도 있지. 왜 남의 집안을 들먹거린담? 자기는 8살 때 그렇게 잘 알았나? 아니 그리고, 애가 모르면 가르쳐야지. 참고로 그날 울먹이며 집에 돌아온 나를 본 할머니께서는 이야기를 듣곤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교무실을 아주 뒤집어 버리셨다. 애가 모르면 가르쳐야지, 선생이 애한테 못된 소리나 하고 있다며.조금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모르는 건 언제나 존재한다. 박사에 평론가에 이런저런 타이틀을 달고 있는, 밖에서 보면 어쩌면 꽤나 수재(?)같아 보일 나는, 사실 상식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당연히 배우는 내용은 잘 모른다. 열일곱 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했었고, 복학해서도 3학년 때까지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해본 일이 없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께 참 죄송하긴 한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모두가 똑같이 모범적이고 평범하게 살겠어요.지금도 학교에서, 문단에서, 출판사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걸 느낀다. 매번 대화를 끊고 모르는 걸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요즘엔 모르는 게 나오면 조용히 기억해놨다가 대화가 다 끝나면 옆 사람에게 몰래 묻거나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곤 한다(심지어 웃긴 얘기조차 뒤늦게 이해하곤 혼자 낄낄거리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 속에서 나름 체득한 게 있다면,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다만 어떤 순간에는 실례일 수도 있다는 것. 나로 인해 회의가 중간에 끊어지거나, 혹은 대화의 맥이 끊기는 경우들 말이다.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정중함을 장착하곤, 물어볼 타이밍을 조심스럽게 재곤 한다. “저, 사실, 제가 그런 쪽은 잘 모르는데, 그게 어떤 거죠?” 그렇다보니 누군가 내 이야기에서 모르는 부분에 대해 물을 때면 역시나 정중해지게 된다. “어, 음, 그게 말이죠. 사실 저도 잘은 모르는데 이런저런 이야기예요.” 중요한 건, 그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안기지 않는 것. 묻는 일에서도 대답하는 일에서도 중요한 건 ‘나’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지금이 무척이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대로 생각되겠지만, 나에게 체감되는 ‘현재’는 좀 과하게 엄하고 과도하게 엄밀한 시간 같기도 하다. 글에서 혹시라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틀릴 때면 곧장 자격논쟁이 벌어지기도 하거니와 방송에서 조금이라도 꼬투리 잡힐 이야기를 하면 하차하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비판과 비난의 경계쯤에 놓인 그 엄정한 말들에서, 모르는 것은 ‘죄’로 취급받으며 그에 대해 사죄하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진다(마냥 모르는 것도 마냥 틀린 것도 아닌데도). 나도 모르는 새에 우리나라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아주 상식적인 것으로 굳혀진 것 같다. 정작 그래야 할 부분에선 안 그러면서.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의 논점은 모르는 게 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무지를 죄로 취급할수록 무지한 자들은 자신의 무지를 숨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타인의 무지를 물어뜯는 것에만 더욱 집중하게 된다. 반대로,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니다. 알려는 노력이나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인정 없이, 사람은 나아질 수 없다. 모르는 게 죄냐며 발끈하는 사람과, 모르는 건 죄라고 발끈하는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말해보는 게 좋을지 고민이 많다.
20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