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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영웅과 전장연 시위

등록일 2022-05-03 18:50 게재일 2022-05-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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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신념이 사회라는 전체와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언스플래쉬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단편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48세의 미혼모 ‘재경’은 인류를 대표해 ‘우주 터널’을 통과할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우주 터널 저편에 있을 새로운 유토피아를 탐사하기 위해, 척박한 우주에서 생존하기 위해 18개월의 신체 개조를 견뎌낸 그녀는 사이보그 같은 초월적 몸을 갖게 된다. 마침내 우주 터널 프로젝트가 개막하는 날, 재경은 우주로 가는 대신 깊은 심해로 몸을 던져버린다. 엘리트주의가 한 개인에게 과도하게 짊어지운 성공 서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주체적 선택을 통해 우주가 아닌 심해라는 제3의 세계,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개인을 위한 완벽한 자유를 개척한 것이리라.

재경은 동양인, 여성, 미혼모, 48세, 왜소한 신체 등 온갖 소수자적 조건을 갖춘 약자이자 비정상인이다. 이러한 재경이 인류를 대표하는 우주인으로 선발된다는 설정은 엘리트주의가 강요하는 ‘정상성’ 개념을 비판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독자들은 우주가 아닌 바다로 뛰어든 재경의 선택을 두고 생각이 복잡해진다. 정상성이라는 왜곡된 신화를 해체하는, 획일화된 성공 서사를 무력화하는 소수자 여성의 주체성으로 읽으면 응원하게 되지만, 우주 터널 프로젝트에 동원된 사회 자본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한없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양가적 감정 사이에 김초엽은 우리에게 화두를 하나 던진다. 개인의 신념과 행복 추구가 사회라는 전체와 충돌할 때, 또 소수자의 목소리가 보편다수의 평화에 노이즈를 일으킬 때 우리는 과연 그들의 타자성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재경에게 지워진 세계의 과도한 기대와 부담, 그것을 저버린 그녀의 주체적 선택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와 진보 지식인들은 ‘남북 평화’, ‘세계 평화’라는 거대담론을 내세워 선수 개개인에게 남북 단일팀 구성이라는 부당한 희생을 강요했다. 젊은 세대에서 반발이 일자 “어차피 메달권도 아니다”, “올림픽 정신도 모르는 이기적 철부지” 따위 막말도 했다. 국가라는 전체주의의 낡은 망령이 개인에게 가한 이 폭력을 보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선수들을 응원했지만, 일각에서는 “국민 세금으로 국가가 제공한 시설에서 운동한 선수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시위를 두고 여론이 팽팽하다. “그만큼 절박하기에 저렇게까지 해서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게 아니냐”는 옹호 여론과 “아무리 절박해도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폭력이다”는 비난 여론이다. 나는 전장연의 시위가 벼랑 끝에서 살려달라고 간신히 내뱉는 신음 같아서 안타깝고 아프다. 그들의 행동이 다 옳은 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입장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애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야멸치게 느껴진다. 그런데 ‘당사자성’이라는 네 글자가 가슴 깊은 곳에 가 박히면 꽉 막힌 체증이 된다. 전장연 시위로 인해 중요한 취업 면접에 가지 못했다는 한 청년의 사연이 내 이야기였다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고상하고 정의로운 척 그들을 옹호할 수 있을까?

사회의 소수자, 약자들이 절박한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의 권리 추구가 사회라는 전체, 보편다수의 ‘정상성’과 충돌할 때, 소수자들을 위해 다수가 자신들이 누리는 이익과 편리와 평화의 일부를 희생해야만 할 때, 그들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감수해야 할 때, 멀리서 쉽게 정의를 노래하다가 내가 피해의 직접 당사자가 될 때 우리는 과연 그들을 수용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

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한 대로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은 늘 ‘타자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김초엽 소설집의 또 다른 단편 ‘스펙트럼’에서 외계인 ‘루이’는 지구인 ‘희진’을 처음 본 순간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놀라움은 이질적 타자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고, 아름다움은 감성, ‘생물’이라는 단어는 합리적 이성을 지시한다. 소수자의 타자성 앞에서 우리는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 어려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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