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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등록일 2022-04-12 20:29 게재일 2022-04-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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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게 과연 무슨 말을 건넬까? /언스플래쉬

그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게 한 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로또 당첨 번호를 외치는 것도 괜찮고 부동산 시장에 관해 귀띔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 그게 정말 최선일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내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막막한 시간 속에서 힘이 될 수 있는 말. 무수한 조언들 사이에서 시간을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는 말. 그렇다면 역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겠다.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돌아보면 그랬다. 나는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었고 보다 더 잘 살아가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언젠간 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둔 채로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자꾸자꾸 부풀어만 갔다. 십대에는 성인이 된 내 모습을 기대하며 수능특강을 풀었고 대학에 입학한 뒤엔 서른이 되면 경제적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상상하며 캠퍼스를 거닐었다.

서른이 되면 세상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힘든 일은 언젠가의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열정이 넘치지만 불안은 가득한 이십대를 지나면서 미래에 대한 갈망을 더욱 커져만 갔다. 무엇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었다. 여긴 완결된 페이지가 아니야. 더 멋진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믿으면서 삶의 어떤 부분을 미래의 나에게 미루었다. “내 꿈은 서른이 되는 것”이라며 떠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내게 너무 쉬운 꿈을 가졌다며 놀려댔었다. 그때의 내게 서른이란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의 상징에 가까웠다. 내게도 그날이 찾아온다는 건 일말의 위안이었다.

물론 미래를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몇몇 선배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왜 글을 쓰려고 해? 이거 쉬운 일 아니야.”

나는 그런 이야기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고 나를 좌절시키려는 그들의 태도가 원망스러웠다. 소설가로서의 삶이 대부분이 평균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섬뜩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건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었다.

서른이 된 지금, 선배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고 진짜 어른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얻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서른이 되면서 느끼는 이 흐릿한 패배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세상의 많은 부분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내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누군가에겐 하찮은 일 중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꾸자꾸 깨닫는 중이다.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후배들에게 그런 말들을 늘여놓는 것은 아닐까. ‘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조언에는 그 시간을 지나온 자의 쓰디쓴 경험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따금 소설을 쓰겠다는 후배들을 만나면 언젠가 선배가 지었던 그 표정을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텐데, 하는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는가? 그렇지 않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그런 이야기는 결국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곳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모험의 세상도,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곳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명예 혹은 경제적인 부의 동의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지난한 시간을 기꺼이 견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다시 나는 다가올 미래를 기다린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게 무슨 말을 건넬까? 현재의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가끔은 나 자신이 민들레 홀씨 같다는 기분이 든다. 목적지에 정확하게 안착하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아무렇게나 부유하는 느낌이다. 무력하게 흘러갈지언정 끝끝내 어딘가에 내려앉겠지. 그리하여 꽃을 피우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를 만든 과거의 나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캄캄한 내일을 향해 고군분투하던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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