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과 강형욱의 공통점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태도를 취하는 보호자를 향해서는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이러한 행동이 아이나 반려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그와 더불어 보호자가 대상에 대해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 명확하게 선을 그어준다.
두 사람의 이와 같은 태도는 보호자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운다. 무조건적인 애정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나 반려동물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고, 문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무책임한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보호자는 대상을 어떤 위험이나 문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보호자는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
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주 이와 같은 보호자의 두 가지 책임을 헷갈려하거나 잊어버리곤 한다. 예컨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에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나 반려동물을 지나치게 통제하기도 하고, 반대로 통제하고 훈육해야 할 때에 ‘그럴 수 있지’라고 넘겨버리거나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비일관적인 보호자의 태도다. 동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나무라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기만 한다면, 이와 같은 보호자의 태도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오은영과 강형욱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보호자의 가장 큰 책임이란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통제하고 계도해야 하는 상황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상황을 구분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자신의 감정적인 혹은 공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피곤하더라도, 내가 힘들더라도, 내가 슬프고 괴롭더라도 ‘나’는 보호자로서 그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조금은 잘못된 접근일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지혜를 나는 다른 관계들에 적용해 보고픈 생각이 든다. 단지 부모와 아이의 관계나 반려 동물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일상적인 관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예를 들면 연애라거나, 직장 동료라거나, 혹은 이웃과의 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한 관계들이 결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방법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하기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나라고 해도,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통제하려 하거나 일방적으로 훈육하려 한다고 느낀다면 그가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느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지혜가 있다면, 그건 역시나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소 감정적인 상황이더라도, 혹은 피곤한 상황이더라도 상대방의 태도에 대해서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사람이 짊어져야만 하는 책임감이 아닐까? 이렇게 쓰고 보니, 관계라는 건 참 어렵고도 힘든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타자의 행동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까닭은 또 있다. 그건, 우리 또한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의 옳고 그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은영과 강형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아주 확실한 정답을 제시해주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자주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 그건, 어떤 방법이나 방책도 사랑과 애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완벽한 존재를 창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한 행동이다. 때문에 솔루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대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사실 ‘정답’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내면의 힘의 중요성이 아닐까 싶다. 어떤 관계도 한 번에 정답에 이를 수는 없다. 모든 관계는 오답들을 거치며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깨달음처럼 들려와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