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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로나 줄서기

윤영대수필가코로나19가 국내에 번지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지난해 최대 고비를 넘기며 모범적인 K-방역으로 주춤하더니 또 재확산이 우려된다. 확진자 수는 매일 400명대를 오르내리고 누적 7만7천 명을 넘었다. 방역 2.5단계로 비대면과 5명 이상 모임 금지가 이제는 일상이다,빠른 백신 접종으로 국민의 걱정도 덜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 시행이 늦어지고 있는 이때 포항시에서는 전국 최초로 ‘1가구당 1명 이상’ 의무진단 행정명령을 내리고 1월 26일부터 약 18만 명을 대상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면 지역을 제외한 20개소에 선별검사소를 설치하였었다.첫날은 몰랐다. 포항사랑 상품권을 구하려고 동네 농협을 찾아가서 줄을 섰다가 길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매진된다기에 다른 곳으로 가는 도중 두호동 옛 미군부대 주차장에 사람들이 웅성대기에 알아보니 코로나 선별검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인근의 신협 등 여러 곳을 기웃거려도 상품권을 구하지 못해 포기하고, 검사나 할까 하고 그곳으로 가보았더니 이미 길게 줄서기를 하고 있어 단념했다.다음날 정오쯤에 갔더니 더 길었다. 뒷줄에 물어보니 2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하고 일찍 한 사람은 오전 8시 이전에도 왔었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북구보건소로 가보니 골목엔 이미 주차할 곳이 없고 줄서기는 역시 길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내친김에 장량동 행정복지센터에도 가봤으나 입구부터 요원들이 길 정리를 하고 있었고, 한 바퀴 둘러 양덕동 한마음체육관으로 갔는데 이곳은 드라이브스루 하는 곳이라 차들이 1km 정도 길게 줄지어 있고 네거리에는 경찰이 수고하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다.사흘째 오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멀리 주차하고 걸어 가보았더니 100명도 안 되어 이상했다. 어제까지의 불만을 들었음인지 2월 4일까지 연기하고 다섯 개 대형병원도 검사에 참여했단다. 잘됐다 싶어 30여 분 줄 서서 검사를 받았다. 그곳은 주차장이라 바닥에 주차선이 있어 거리 두기가 정확하게 실시되고 있어 다행이었다.끝내고 나오니 때마침 세찬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드라이브스루는 이날도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깥에 줄 서서 추위에 떠는 것보다 따뜻한 차 안이 좋겠지만 장시간 엔진을 켜고 있으면 연료도 많이 소모되겠다. 죽천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코로 들어 마시니 마음이 후련하다.다음날 강풍 및 한파 주의보와 포항시청 안내문자가 떴다. “별도 통보를 받으신 분 외에는 전부 음성입니다.” 다행이다. 그러나 무증상자 25명을 찾아냈다니 포항시의 특단조치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검사소도 25곳으로 늘었고 팀도 73개로 증원했다니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수고하시는 공무원과 봉사자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비와 찬바람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찬찬히 검사를 받는 공공질서 의식으로 우리 모두 선진사회의 시민임을 알리고 있음은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 느낀 뿌듯함이다. 마스크 사려고 줄 서고 상품권 구하려고 줄 서고, 또 선별검사로 줄 서보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줄을 서는 일이 참 어렵다고 생각된다.

2021-01-31

우리는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입과 손발을 묶어둔 지, 약 1년이 되어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북구에서 남극까지, 바다에서 하늘까지 사람들이 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 모든 이동, 만남을 중지시킨 지 1년이 되어간다.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그 홀로 있는 시간에 어떤 이는 공부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와 명상을 했으리라. 그러나 혹 어떤 이는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못 자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즉, 생각에 또 생각을 더 하며 생각의 꼬리를 자르지 못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생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현실과 자신의 본성을 잊어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나의 상담실에 와서 사람들은 말한다.“생각이 멈추지 않아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러다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이런 생각 과다로 인한 심리적 고통의 호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들과 만남을 못 하게 하고, 혼자 있도록 한 이후 좀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홍자성의 ‘채근담’에는‘마음과 몸이 밝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하는 머리가 어둡고 우매하면 환한 대낮에도 도깨비가 나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도깨비라는 것은 정신건강 용어로 ‘환청, 환시 등 환각을 말한다. 이 환각이란 조현병을 특징짓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며, 심리적 부적응의 종착지에서 겪게 된다.즉, 혼자 있고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 불안해지고, 더 심해지면 강박증이 되고, 조현병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들에 한 번도 노출된 적도 없고, 주변에 물어볼 정신건강전문가도 없는 경우, 그 충격은 상당히 클 수 있다. 실제 증상의 위험성에 비해 그 후폭풍이 더 커서 지혜로운 판단을 못 하게 된다면, 삶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도 있다.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생각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그는 혼자 있으면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결과로, 마음의 병이 올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홀로 있는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이 길어지는 요즈음, 정신건강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사람들의 정신건강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고 백신이 보급되어, 혼자가 아닌 둘이, 셋이 아닌 여럿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래본다.‘우리는 여기 그리고 지금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2021-01-31

아우슈비츠에서 날아온 희망의 메시지

윤경희 청송군수우리의 역사에서 1930년대는 극심한 고난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땅을 빼앗기고, 온몸을 짓밟힌 고통의 터널. 그런데 그 즈음 우리처럼 엄청난 핍박 속에서 대량 학살을 당한 민족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로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을 가장 많이 수용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는 4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숫자의 안타까운 목숨이 끊어졌다.코로나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2021년 1월 말까지 통계된 전 세계의 코로나 사망자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독가스만 살포되지 않았지 지난 1년여 간 전 세계는 아우슈비츠처럼 공포와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좀 잠잠해지는가 싶던 확진자 수가 겨울이 오고부터 폭증하면서 또다시 살벌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전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승격시키며, 또 연장하면서 방역에 열을 올리고 있다.우리 청송도 마찬가지로 코로나와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같이 다중이용시설을 꼼꼼하게 방역하고 5인 이상 집합 금지 행정명령과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도 열심히 홍보하면서 군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여념이 없다.지난해 12월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청송군은 대규모 선제적 진단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확진 환자를 조기에 찾아 N차 감염을 차단하는데 성공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코로나19 대응 특별교부세를 확보하기도 했다. 또 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코로나 전파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하여 방역 강화를 위해 전 군민에게 기부 3매를 포함한 방역마스크 8매씩을 무료로 배부했다. 특히 경기침체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올해 들어 경북도내에서는 최초로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설 연휴전 지급을 목표로 적극 추진 중이다.덕분인지 몰라도 우리 지역은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들 덕분이다. 이 분들의 노고와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감히 지금의 안정세를 이어갈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숨은 곳에서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지키며 군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찬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 분들 이외에도 코로나 방역을 위해 각종 봉사활동에 애써준 분들도 많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노고가 있었으므로 지금의 안전한 청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청송은 적극적인 방역 활동으로 군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힘들지만 이 위기를 지혜롭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모두 동참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인생에서 가장 의미 없이 보낸 날은 웃지 않고 보낸 날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1년은 뜻하지 않았지만 웃음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두려웠다. 다시 웃을 수 없을까봐. 하지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런 희망이 시작된다.끔찍한 고문과 생체실험, 매일매일 죽음이 엄습하는 그곳 아우슈비츠에도 희망은 있었을 것이다. 노역에 찌들다가도 겨울이 지나고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에 수용자는 엷은 미소를 띠었을 것이며, 안네 프랑크는 숨어서도 희망이 깃든 일기를 써내려갔다. 수많은 전쟁이 인류를 위협했지만 인류는 살아남았듯, 우리에게 닥친 이 시련을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그러니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 머잖아 당도할 봄처럼 아우슈비츠에서 문득 날아온 메시지를 곱씹어본다.

2021-01-31

신춘 음악회

봄 마중을 나갔다. 온화해진 햇살이 걷기에 좋은 날씨라며 수목원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경북수목원을 향해 구불구불 길을 오르며 한 구비 돌아설 때마다 겨울 나목의 가지 끝이 물을 가득 올려놓았는지 발그레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차에 몇 명이 탔는지 확인을 했고, 주차 후에는 열 체크와 방명록도 적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주말이 아닌 평일 오후라 우리 말고 서너 명의 산책자들을 넓은 숲에 흩어놓으니 조용했다. 습지원에 들어서니 침입자가 나타났다고 바삐 지저귀는 새소리가 요란하다. 새소리 사이로 가만가만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였다.(사실 익숙한듯하나 작곡가도 제목도 몰라 검색찬스 썼다는 건 비밀!)겨울 숲은 잎을 발밑으로 일찌감치 보내고 난 가지뿐이라 속이 훤히 드러난다. 습지 사이를 연결한 다리 난간에 십이지신상 조각이 앉아있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아챘다. 꽃과 잎이 풍성한 계절에만 찾아와 꽃과 향기에만 취했었던 탓이다. 휑한 가지뿐인 나무의 발치에 써 놓은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만첩빈도리, 화살나무, 곰의말채나무를 떠듬거리며 가로수원으로 발길을 옮겼다.그사이 들려오는 가락이 경쾌하게 곡을 바꿨다. 비발디의 사계 중 한 곡인데 ‘봄’인지 ‘가을’인지 헷갈렸다. 스마트폰이 식물학자이자 음악선생이다. ‘가을’이 아니라 ‘봄’이라고 짚어주었다. 버드나무는 비발디 곡에 취해 가지 끝이 노르스름해졌고 뾰족한 봉오리를 가득 달고서 ‘나 목련이오.’하는 백목련이 키를 높이고 있다. 이름을 들어봄직한 나무들이 있는 유실수원을 지나니 경상북도 시군별 나무와 꽃을 모아놓은 동산이 나타났다. 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시군목 이었고 꽃은 장미가 많았다. 3월에는 산수유가 시화인 의성군에 갔다가, 안동시의 매화와 예천군의 목련까지 한꺼번에 보고 와야겠다.연구동 근처로 가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엇을 키우는지 물소리가 졸졸졸 흘렀다. 그때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이 타레가의 스페니쉬기타 연주로 물소리에 섞여들었다. 타레가가 알람브라궁전의 수많은 분수가 만들어낸 물소리를 기타로 표현했다는 그 곡이 오늘의 숲에서 연주되니 좋은 선곡이었다.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으며 무궁화원으로 들어섰다. 예전에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 키 낮은 묘목이던 것이 이젠 우리키를 훨씬 넘어서 의젓한 나무의 모습을 하고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자라있었다. 한 그루에는 새집도 한 채 들여놨다. 연못을 지나 손님을 기다리는 데크들을 지나니 옴나무, 황금, 지모, 여로, 세잎양지꽃, 이런 이름의 나무와 꽃도 있었구나 싶어 받아 적었다. 딸을 낳으면 심었다던 벽오동, 몸피가 특이한 복자기, 사람주나무, 죽단화, 낙상홍을 지나 눈을 맞고 섰던 기자 이름 같기도 한 박태기나무, 갯사상자, 수크령, 윷놀이가 아니라 윤노리나무, 열대우림에 자랄 것 같은 정글나무도 있었고, 포도는 학명이 그레이프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뜰보리수는 자태가 우아해 우리 집 뜰에 옮겨 심고 싶었고, 여느 소나무보다 잎이 통통한 잎인 금송,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해지는 팥꽃나무(찾아보니 꽃 색깔이 팥 색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토끼와 친구였던 계수나무, 덜꿩나무는 꿩하고 인연이 있는 거 아닐까 궁금해하다보니 산을 내려왔다.김순희수필가숨고르기 하며 거닐었던 길은 늘씬한 몸매의 메타세콰이아가 파란 하늘이 더 높아보이게 만들었다. 길에는 마사토가 깔려 있어 밟는 소리가 음악소리이다. 사박사박 사람들이 겨우내 밟지 않아서인지 더 폭신했다. 구름을 가득 품었던 연못은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연못 가운데 있는 독도는 인공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결되어 한 계절은 외롭지 않았다.겨울이 숲에게 주는 휴식 시간 겨울, 꽃 사진 찍느라 바빴던 다른 계절에 들리지 않았던 클래식 연주가 잔잔히 들려 숲을 감상하기에 더 좋았다. 숲의 속내를 들여다본 산책이었다. 화가 모네가 같은 장소를 시간에 따라 연작으로 그렸던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려준 겨울 수목원이었다.

2021-01-31

구미시의회,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김락현 경북부구미시의회가 2021년 첫 임시회를 동료 시의원에 대한 징계안으로 시작하면서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그동안 제8대 구미시의회의 행보는 역대 최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역대 가장 많은 9명 등원해 기대가 컸지만, 불법 공천 헌금 혐의를 받은 마주희(비례대표) 시의원이 자진사퇴한 데 이어 김택호, 심문식 의원이 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국민의힘 권기만 시의원도 미래통합당 시절 도로 개설 특혜 의혹으로 자진사퇴했다.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선우 시의원은 시립예술단 단원 선발 자격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데도 두 차례나 심사장에 포함됐다. 이 밖에도 구미시장에게 시립무용단 안무자 해촉을 공개적으로 요구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엄연히 구미시의회 행동강령 위반사항이었지만, 시의원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홍난이 의원이 불교계와 마찰을 빚어 장세용 구미시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9년에는 시의원 5명이 징계받는 등 구미시의회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내부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김재상 의장과 안주찬 부의장은 임시회를 통해 “시민들이 그만 싸움을 멈추고 지역 경제가 회복되는 데 힘을 모아주길 바라고 있다”면서 “더는 동료 시의원에 대한 제명이나 징계안을 올리는 일 없이 서로 합심해 구미 발전에 노력하자”고 말했다. 의장단의 반성하는 목소리가 한참이나 늦은 감이 있지만, 한낱 희망일지라도 기대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지친 구미시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더하는 게 아니라 작은 짐이나마 덜어주는 시의회가 되길 바란다. /kimrh@kbmaeil.com

2021-01-28

데드크로스 시대

우리나라 인구는 작년말 기준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른바 인구의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감소를 시작했다는 뜻이다.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187개국 중 꼴찌다. 인구를 국가 경제력의 상징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위험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아야 한다.데드크로스(Dead Cross)는 주식시장 장세의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다. 주가의 단기이동 평균선이 중장기 이동평균선 아래로 뚫리는 현상이다. 장세가 나빠짐을 예고하는 지표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골든크로스라 부른다.선거판에서 1.2위 후보자의 지지율이 역전되는 상황도 골든크로스 또는 데드크로스라 부른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면 데드크로스고 그 반대면 골든크로스다. 요즘 우리 사회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부쩍 많아졌다. 대학이 학생 수 감소로 전전긍긍이다. 대학교의 신입생 정원보다 대학 지원자 수가 적어져 신입생 데드크로스 현상이 생기고 있다. 아파트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집값이 폭등 하는 아파트의 데드크로스 현상도 걱정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도 데드크로스 선상에 있다.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린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이 -1%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마이너스 성장이란 중소기업인, 소상공인 등 수많은 경제 주체의 노력이 성과를 못냈다는 뜻이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이 컸다는 의미도 있다. 코로나 속에 이 또한 데드크로스적 현상이다.정부가 우리 경제의 역성장 폭이 선진국보다 낮아 선방했다는 표현을 썼다. 적절치 않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지금은 자랑보단 경계심을 높일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1-28

바이든에 거는 기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조 바이든이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직업 정치인이지만 오랜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고 대통령 선거에 세 번째 도전 끝에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며 바이든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불복, 의사당 난입에 이어 사상 유례없는 트럼프의 2번의 하원에서의 탄핵 등으로 인해 어수선한 취임식이었다.더구나 미국의 오랜 전통인 전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이 없는 적개심이 남아있는 이상한 취임식이 되었다.지금 트럼프 정책에서 허덕였던 각 국가와 한국도 바이든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각국은 자국 손익계산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노선과 정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바이든은 전임 행정부와 철저히 단절하며 미국 안팎의 새 질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제사회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이미 수십 개의 트럼프 정책을 뒤집는 행정 명령(Executive Order)에 서명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몽니로 탈퇴하였던 각종 세계 기구에도 복귀하고 있다.바이든은 기본적으로 경제를 재건하고 환경을 보호하면서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자유주의의 가치와 미국의 리더십을 재건하겠다는 깃발을 내걸었다.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패권주의가 깔린 미국에서 의회와 안보 관련 기관의 대중국 매파의 세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으로 입은 상처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북한 문제로 동북아 정세는 여전히 안개 속에 중국과의 대립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세계는 미국이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통하여 중국을 합리적으로 견제하면서 세계무역 질서를 복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미국판 ‘인동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바이든은 변호사 출신으로 만 29세의 나이로 상대와 1% p 차,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단숨에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연소 상원의원,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 보였으나, 큰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들마저 잃었다. 그런 그가 내리 6선에 성공하고, 대통령에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한다.우리는 바이든이 보여준 이러한 인동초 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미국, 세계를 안정시키고 한국에 밝은 미래를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우리는 그의 한국 정책에 특히 주목한다. 자국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세계 경제를 함께하는 정책, 외국기업을 아우르는 정책, 글로벌 경영의 토대를 세울 것을 기대해 본다.주한미군의 안정된 주둔과 대북 정책에서 힘을 기반으로 하는 정책에서 한국의 현 정부를 설득할 것도 기대해 본다. 대중국 정책도 강한 힘으로 중국을 다스리면서도 세계평화라는 관점에서 유연성을 호소해 본다. 한국 정부는 대북한 굴욕외교에서 벗어나 바이든 정부와 호흡을 같이하며 품격있는 외교, 국방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에 기대한다.

2021-01-28

추천서를 쓰면서

내가 다니는 학교는 대학원생이 많은 곳이다. 국문과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축에 속할 것 같다.한번은 인문대학에서 공간 배분 문제 때문에 재적 인원을 물어본 적이 있어, 120명이라고 했더니 국문과 다 합쳐서 그런 것이냐고 했다. 아니고, 현대문학만 그렇다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외국 유학생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원래 국문학은 돈은 되지 않아도 학문적 열정만은 다른 곳 못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학생이 많다는 건 행복한 소리지만 그만큼 마음이 아플 때도 많다고 할 것이, 이렇게 공부한 귀한 학생들이 막상 박사 졸업장을 들고 사회에 나가려 하면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어디나 그런 것이 일자리 적은 요즘 한국 사회 풍토지만 이 박사들은 남들 서른 살도 안 되어 직장을 찾을 때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남은 사람들이다. 보통 2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기 시작할 나이에 책과 자료에만 매달린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박사학위를 들고 대학만 졸업한 학생들보다도 더 적은 월급밖에 주지 않는 강사 자리, 강의전임 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으랴.편할 수도, 좋을 수도 없는 마음으로 추천서들을 쓴다. 한 학기에도 여러 통 써야 하는 추천서니까 틀을 하나 정해 놓고 거기 맞춰 사람 이름만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가려는 대학마다 뽑는 자리도 다르고 가려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다.어떤 사람은 공부도 정말 잘하고 논문 수도 많다. 어떤 사람은 논문 수는 좀 적어도 인격적으로 너무나 좋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이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큰 덕목을 잘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해서 아무 노력도 없이 이 위치에까지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또 다른 ‘칭찬’이 없을 수 없다.사실, 국문학이라 그렇고, 또 인문학 중의 하나라서 더 그렇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뭐든 돈이다, 실용이다, 하는 쪽으로만 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렵지 않느냐 하지만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신을 가진 존재고 그래서 빵만으로가 아니라 생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 해야 맞다. 가장 연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인 것이다.오래 준비한 학생들을 위해서 오늘도 나는 잠시 책상 위에 앉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느 대학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는 아무개입니다. 다름 아니오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 년 아무 일 아무개 삼가 올림”/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8

쇳물과의 상생(相生)

이성환포항뿌리회 초대회장작금의 포항이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마음에 지역을 사랑하는 한 시민으로서 호소드리고 싶다. 코로나로 일상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말은 ‘상생(相生)’,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코로나 역병이 확산되면서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할 개인방역도 나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이 이웃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근간이며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행복해지려면 서로가 존중하고 신뢰하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근 우리 지역에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이고 확산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행정당국의 모습에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또한 지난 2015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계속 줄어 50만 도시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항사랑 주소갖기운동’ 등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지난 2006년 포항뿌리회가 앞장서 ‘포항시민 인구늘리기운동’을 펼쳤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또 얼마 전 지역방송에서 포스코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가 부각되면서 우리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비쳐진 것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어느 것 하나 지역의 미래를 밝게 하는 일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떻게 우리 지역이 이런 지경까지 되었을까?나이든 사람으로서, 또한 지역사랑운동에 신명을 바쳐온 본인으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막중한 책임감마저 든다. 우리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 땅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많은 애향 시민들이 있는데도 총체적 난국이 되고 있음에 마음이 아프고 참담한 심정이 앞선다. 그나마 우리지역에서는 포스코라는 글로벌기업이 50여 년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산업의 쌀’을 생산하며 포항이 철강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환동해중심도시로서 50만 대도시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숱한 애증(愛憎)이 오고갔지만 서로 신뢰하고 화합하면서 쌓은 ‘상생’이란 이름아래 포항과 포스코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포스코 때문에 ‘죽음의 도시’로 불리게 된다면 50년 상생의 역사는 어떻게 되겠는가. 누가 뭐라 하여도 포스코 역시 포항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으며 포항 시민 또한 포스코를 사랑하며 응원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제껏 함께 살아온 반세기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한 쪽만 바라보는 좁은 시각보다는 지역사회와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고 또 함께 살아갈 미래를 위해 좀 더 폭 넓은 견해도 필요하리라 본다. 포스코가 어려울 때 포항 시민이 앞장서는 등 애정으로 함께한 역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언제나 포스코의 발전이 지역의 발전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성숙된 시민의식과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공감대가 이뤄지고 50여 년 함께한 기업이 100년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는 공생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가 못 넘을 산은 없을 것이다. ‘I ♡ POHANG WITH POSCO’라는 상생(相生)의 기치(旗幟) 아래 우리가 진정 사랑해야 하는 것은 ‘쇳물과 포스코’ 그리고 포항이다.

2021-01-28

트로트 신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발명왕으로 불리는 에디슨은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흔히들 그 말을 ‘천재는 영감보다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뜻으로 알고 있으나, 에디슨은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인데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타고난 재능이 없이 노력만으로 천재가 될 수는 없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같은 노력을 해도 타고난 소질과 재능에 따라 현격한 기량의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각 분야마다 신동(神童)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유아기부터 어떤 분야에 몰입하고 특출한 능력을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분야에 천재적 소질을 가진 아이도 있고, 체육 분야에 특출한 기량을 보이는 아이, 수학이나 언어 분야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천재성이 불후의 음악이 되어 인류에 기여하는 것처럼 신동들은 잘 길러지면 인류문명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요즘은 트로트 신동들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유소년기의 아이들이 트로트 가요를 가수들 뺨치게 잘 불러서 환호와 갈채를 받고 있는 걸 본다. 어린아이들이 성인가요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것도 물론 신동이라 할 만하다. 그 소질을 잘 키우면 훌륭한 가수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사자는 물론 그걸 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아서다.성인들도 갑자기 엄청난 각광을 받게 되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중력상태가 되기 쉽다. 아직 모든 것이 미성숙한 아이들이 갑자기 엄청난 관심과 환호를 받게 되면 정상적인 정서나 인성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타고난 끼와 소질을 아예 무시하거나 막으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청소년이 되기 전까지는 대중 앞에 세우는 걸 유보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다. 특히 방송매체는 시청률을 위해서 과장되고 자극적인 연출을 하게 마련이다. 성인프로그램은 어린아이들의 정서와 이해의 수준에 부적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는 그 정서와 기억이 평생을 간다. 노년이 되어도 옛날의 동요를 듣거나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유소년기의 아이들에게는 성인가요보다는 그 또래의 사고와 정서에 맞는 동요나 가곡을 부르게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노래는 곡조 못지않게 노랫말도 중요한 법인데, 유행가 가사가 어찌 동심(童心)에 어울린다 하겠는가.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되바라졌다고 하나 그 연령대에 맞는 정서와 동심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이다. 동요보다는 유행가에나 빠져들게 방치하지 말고, 요즘 아이들의 감각에 맞는 노래를 지어서 보급하고 권장하는 것이 아이들 정서와 심성을 함양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음악교육에 대한 성찰과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1-01-28

그들이 왔다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제2차 세계대전 때에 포로가 되어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영국의 군인 맥도널드(Murdo Macdonald) 목사는 어느 날 새벽의 감격을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그의 가까운 친구가 전기 기술자인데 그 친구가 비밀리에 라디오를 조립하여 영국의 BBC 방송을 듣고 전쟁의 상황을 수용소 내에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맥도널드 목사를 흔들어 깨웠습니다.여보게 친구야! “그들이 왔어(They have come!)”라고 흥분된 얼굴로 엄청난 감격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전하여 준 말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왔어(They have come!)”라는 이 희망의 소식이 퍼지자 온 수용소 안에 있던 포로들은 너무 너무 기뻐서 수용소 마당으로 나가 춤을 추며 서로 부둥켜안고 “그들이 왔다(They have come!)”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그러나 연합군 상륙 뉴스를 아직 모르던 수용소 독일군 감시병들은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미치지 않았나 해서 총부리를 겨누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수용소 포로들에게 외부적인 조건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용소의 벽은 여전히 높고 그 위에 철조망도 여전히 두꺼웠으며 독일군의 총부리와 기관총도 여전히 그들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갇혀서 고통받는 포로들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의 세계가 달라졌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이끄는 연합군인 아군이 그 땅에 도착했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이미 자신들을 향해 전진해 오고 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들이 왔다”라는 소식에 희망이 솟고 기쁨이 넘치며 용기가 생기고 삶에 확신이 온 것입니다. 오늘날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우울해지고 죽음의 공포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삶의 현장에 우리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소식은 없을까요? 성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상륙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흉용하고 핍박과 고통이 내 곁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상륙 사건입니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 지구촌에 상륙하신 사건이 바로 예수 탄생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구름 속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과 기쁨으로 기다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 흰 소의 해 신축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형체를 입으시고 우리 인류를 죄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상륙하신 일을 기억하고 모두가 행복한 신축년 새해 맞으시길 소망합니다.

2021-01-27

46대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인간 승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미국 46대 대통령 바이든의 취임식이 우려 속에서도 무사히 끝났다.지난 미국 대선에서 80세 고령인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 예측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현직 트럼프의 공격적인 선거 캠페인에 대응해 최후의 승자가 됐다. 트럼프는 아직도 대통령 바이든을 인정치 않고 취임식에도 참석치 않은 채 백악관을 떠났다. 그는 연방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 당했음에도 측근 43명을 사면하고 플로리다 집으로 떠났다.지지자들에게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인들의 관심은 새 대통령 바이든에게 쏠리고 있다.변호사 출신 대통령 바이든의 삶의 궤적은 부동산 재벌 트럼프와는 완전히 다르다. 바이든은 20대 후반부터 의회 정치 경력을 꾸준히 쌓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델라웨어 대학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졸업 후 시라큐스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학교 성적은 최하위 정도이다. 우리의 지방의원격인 카운티 의원에 이어 상원의원에 가까스로 당선됐다. 6선의 상원의원(1973∼2009년) 시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했고, 오바마 하에서 8년간 부통령직을 수행했다. 1942년생 79세인 그는 3수만에 꿈에 그리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바이든 대통령의 화려한 정치 경력 뒤에는 굴곡된 그의 삶이 점철되어 있다. 그는 젊은 날부터 인간적인 고뇌를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말을 더듬어 고생했다. 그는 1972년 아내와 딸까지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다. 그의 장남 보 바이든 마저 뇌종양으로 잃었다. 자식과 아내를 먼저 보낸 그의 가슴은 멍이 들어 있다. 1988년 그는 뇌동맥 파열로 사망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이러한 비극 앞에 보통 사람은 정치를 포기했을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미국 최고령 대통령 바이든의 삶은 그야말로 인간 승리이다.바이든 대통령 앞에는 새로운 미국을 건설할 책무가 놓여 있다. 분열된 미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의 위상을 되찾는 과업이 급선무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정치는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로 미국을 완전히 분열시켜 놓았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인종차별주의를 조장했다. 바이든은 벌써 통합의 상징으로 최초의 흑인 부통령 해리스뿐 아니라 오스틴 국방장관도 흑인으로 임명했다. 그의 경호 책임자 데이비드 조는 한국계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식 압제와 배제의 정치 대신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려고 한다.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에서도 국제 평화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 마저 파기하고, 파리 기후 변화 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도 탈퇴했다. 그는 전통적인 우방에 대한 동맹 외교도 무시하고 방위비 협상마저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김정은과의 북미 정상 회담 마저 대선용으로 던져 보기도 했다. 미국의 우방 마저 트럼프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린 상태이다. 세계 인권과 평화를 중창하던 미국의 위상은 추락된 지 오래다. 바이든은 추락된 미국 외교부터 복원해야 한다. 바이든에게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

2021-01-27

(학)부모가 답이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코로나19에 무너진 세상은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은 벌써 1월 달력을 넘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2021년이지만, 그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올 1월에 대한 기억은 최강 추위와 코로나, 그리고 저질 정치 이야기뿐이다.2021년 1월 1일, 국가 지도자들은 저마다 새해 희망 메시지를 발표했다. 내용이 복사 수준이어서 아쉬웠지만, 희망이 멸종된 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 했습니다. 모두의 삶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걷겠습니다. (중략) 국민이 희망이고, 자랑입니다.” 말한 사람을 모르고 보면 정말 희망적이다. 필자는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말을 예전부터 봐왔다. 그것은 교육부의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표어이다. 그런데 두 문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대통령이 말한 “국민”, 또 교육부가 말한 “모든 아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코로나 시대 교육격차 완화 (….)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공정에 대한 요구에도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대책을 보완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비록 희망 고문이지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박수는 금방 멈추었다. 대신 헛웃음만 났다.그래도 필자는 희망을 믿는다! 왜냐면 이 나라는 특정 정치 성향의 대통령을 보유한 나라가 아닌 우리의 희망인 학생의 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부모님을 보유한 나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학생들의 행복 교육을 찾아 전국에서 오신 부모님과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들의 생각은 그 자체가 교육학 개론이었다. 교육의 답을 찾지 못하는 청와대와 교육부에 답이 적힌 그 개론서를 전한다.“시험을 위한, 수능을 위한, 대학을 위한 교육이 아닌 지구인으로 생존하기 위한,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그리고 행복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학교 교육의 틀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문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수업 시간의 질문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교육이 삶이 질을 높이는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수치로 평가된 평균적인 삶보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정받고 (중략) 더 나아가 창조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교육의 시작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평생 학교이며, 부모는 아이들에게 있어 첫 번째 선생님이자, 평생 교사다. 부모가 바로 서야 자녀도, 가정도, 교육도, 그리고 국가도 바로 선다. 이 나라는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이룬 주역들을 길러낸 부모를 보유한 나라다. 그들이 바로 이 나라의 답이다.

2021-01-27

넛지

정미영수필가찬바람머리에 수변공원을 거닐었다. 지난여름 운암지를 충만하게 덮고 있던 아리연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가는 텅 비어 쓸쓸했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물 아래에는 혹독한 겨울을 길게 견디며 봄물 번지기를 기다리는 연꽃 씨앗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시리다고 불평하지 않는다.절정을 꿈꾸며 인내하는 씨앗들을 생각하다 보니, 요 며칠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독서를 해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을 깊이 하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인 사유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나날이 늘었다. 연꽃 씨앗의 인내를 닮아 내 행동을 바로 잡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넛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넛지는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타인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설득을 말한다. 팔을 잡아끄는 것처럼 강제와 명령 없이, 팔꿈치로 툭 치는 것 같은 유연한 개입으로 자발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연꽃 씨앗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정자가 나왔다. 정자 한 쪽 귀퉁이에 빛바랜 책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청이나 공원 관리소에서 마련했는지 살펴보아도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겨 책장 문을 열었더니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가장자리에는 조그만 글씨로 ‘책을 깨끗이 본 다음, 꼭 제자리에 두고 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 넉넉한 이가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훈훈한 바람이 일었다. 누구든지 공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책을 보라는 뜻이리라. 뭇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책장 주인의 사려 깊은 행동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멋진 생각을 한 선한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는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타인에게는 아직 보탬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작은 나눔이 큰 선행이 되어 남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기증물품을 오랜만에 정리해야겠다. 나는 책장 주인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나도 잡지 한 권을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리우올림픽 경기에 출전했던 네덜란드의 승마선수 코르넬리슨에 관한 기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경기 중에 자신의 말 파지발이 아프다는 걸 눈치 채고 기권을 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19년을 함께한 파지발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다. 코르넬리슨은 경기 전 아픈 파지발을 옆에서 보살피고 잠도 마굿간에서 함께 잤다.다행히 시합 날에는 파지발의 열이 많이 내려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파지발이 뭔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경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바로 파지발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동료 선수,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나는 어떤가? 몇 년 전 겨울,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정글리안 햄스터를 죽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매섭게 춥던 날이었다. 음식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깜빡 잊고 외출했다. 볼일을 보던 중에 펑펑 우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엄마, 해미가 움직이지 않아. 어떡해.”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햄스터를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집이 추워서 동면에 든 것 같았다. 야생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는 달리 애완용 햄스터는 동면에 들면 죽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햄스터에게 미안했다. 코르넬리슨처럼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면, 동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잡지 글 한 대목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오늘은 산책을 하는 동안 부드럽게 넛지를 거듭 당했다. 내 마음에 벌써 봄꽃이 피었는가. 은은한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2021-01-27

앵무를 찾아서 - 의기(義妓)의 표본 염농산

염농산(廉嚨山·1859~1946) 여사는 구한말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애국 사회운동가이다. 경상감영의 행수기생 출신인 농산은 ‘앵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한학과 시뿐만 아니라 가무에도 능했다. 이태백의 시에 등장하는 앵무와 농산을 이름으로 삼은 것만 봐도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다.앵무 여사가 주목 받게 된 것은 국채보상운동 덕분이다. 1917년 2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의연 활동을 한 여성이 앵무였다. 기생은 돈을 좇을 게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먼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몸소 실천했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앵무는 100환을 먼저 기부했다. “여력에 따라 의연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다.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는 없으니 누구든지 1천원을 출연하면 죽기를 무릅쓰고 따라한다.” 앵무 여사의 담대한 기개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인 서상돈·김광제 등의 각성으로 이어졌고, 전국민을 분발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지에서 고종황제에 이르기까지 국채보상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앵무 여사 같은 솔선수범하는 여성들의 기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생들의 연합인 달성 권번의 대표자로서 기생들을 규합하여 공연회를 개최해 구제활동에 쓰거나 민족운동 후원에도 적극 참여했다.염농산 여사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사를 기리는 빗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성주 나들이를 했다.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빛바랜 비석은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비석과 바로 이웃한 홍영기(81세) 옹을 만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홍수 피해에 시달린 마을 전답을 앵무 여사가 사재를 털어 방천을 축조한 뒤 학춤을 췄다고 한다. 그 공덕을 기리고자 마을에서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은 ‘앵무빗돌’, 방천은 ‘앵무방천’, 논밭은 ‘앵무들’로 불렸지만 이제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대구의 기생이었던 앵무 여사가 하필이면 성주까지 가서 그 큰 토목공사 비용까지 댔을까. 이문기 교수의 ‘대구 의기 염농산의 생애와 성주군 용암면 두리방턴 축조의 의미’라는 소논문에 의하면 방천 앞의 일부 토지가 그녀 소유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단다. 홍수로 유실된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농토를 복구하면서 방천둑을 축조하게 되었다. 먹고 살 만했던 앵무 여사보다, 살기 급했던 마을 사람들이 혜택을 받은 것은 자명했다. 방천 축조에서 염농산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제방 축조 후, 국유지로 개척된 농토는 염농산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불하되었다. 시행 주체에게 주어지는 토지 불하권을 마다한 것이다. 여성으로서 당당한 인격권을 외쳤지만 그 권리를 개인의 사욕에 두지 않고, 공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은 그가 국채보상에서 보여준 모범과 상통하는 것이었다.그의 선행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37년에는 교남학교의 부흥을 위해 부동산을 희사하여 민족운동의 당당한 후원자가 되었다. 관기에서 은퇴해 음식점을 경영한 돈으로 후원을 했다. 그의 가게는 노년까지 계속되었다니 의로운 일에 쓰이기 위한 노동을 끊임없이 한 셈이다. 넉넉한 자산은 물질적 선행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살림이 좋다고 누구나 선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대여성으로서 삶의 주체적 자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합리적 사고로 나라와 사회를 구제하려 했고, 적극적 행동으로 자립적이고도 평등한 여성을 꿈꿨다.앵무빗돌의 머릿돌은 깨어지고 비석 뒷면은 갈라지고 있었다. 빗돌집을 오르는 계단은 방치되어 잡풀이 돋았고, 뒤쪽 공터엔 쇠락한 집터만이 남아 있어 을씨년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당국에서 앵무의 존재를 알고나 있는지 홍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가끔 취재를 오는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어른들에게 귀동냥한 것을 전할 뿐, 학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뒷받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살로메 소설가앵무 여사가 축조했다는 두리방천은 앵무빗돌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그때의 축조 풍경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방죽을 받치고 있는 돌들 중 빛바랜 것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것이 앵무 여사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애국운동가나 사회사업가 교육사업가로서의 근대적 여성활동가는 드물지 않다. 앵무 여사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뒤에 머물지 않고 나서야 할 때는 의연하게 나섰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평등사상과 민권의식을 고취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했던 사람이 앵무였다. 그것을 알기라도 한다는듯 앵무 방천을 휘도는 바람마저 당당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2021-01-27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1억이 넘었다고 한다. 지구상에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게 아닌가. 사계절을 건너오며 오르내렸던 감염의 기세가 이제는 꺾이는가 싶었다. 조금씩 내려가던 숫자에 또 다시 충격을 주는 듯 집단감염이 드러나고 있다. 하필이면 교회를 비롯한 종교집단발 무더기 감염이 연일 방역을 힘들게 한다. 코로나19가 사상초유라지만, 14세기 흑사병의 그늘에도 교회가 있었다. 역병의 원인을 인간의 죄로 규정하였던 교회들 탓에 오히려 확산세가 불어났다고 한다. 21세기 첨단의료와 방역의 현장에서 팬데믹 현상에 종교적 원인을 끌어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 겪는 바이러스의 창궐이 하필 교회 언저리에 들끓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신천지, 인터콥, IEM, TCS. 코로나19의 확산세에 기름을 끼얹은 이들이 하나같이 기독교 관련 단체들이다. 일부 교단들도 방역수칙을 권하는 정부의 노력을 ‘교회탄압’으로 규정하며 거부하는 태도마저 드러내고 있다. 신앙인들에게 믿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신앙을 바르게 지키며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값진 일이다. 모두가 인정하며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집단으로 모이는 일이 방역에 치명적임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평소에 이웃사랑을 강조하며 배려와 섬김을 기준으로 삼던 교회는 어디로 갔는가. 의료과학의 눈으로 밝혀지고 방역의 수단으로 설정된 ‘거리두기’를 억압의 방책으로 오해하다니! 신앙을 교육과 버무려 어린 청소년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면, 이는 이웃을 섬기는 일인가 해치는 일인가. 사회 일반은 방역에 집중하는데 교회는 어디를 바라보는가.‘교회도 바뀌어야 한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역기조를 거부하는 교회들을 향하여 일침을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모두가 동참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영국성공회교단과 미국장로교단도 매우 세부적인 권고사항까지 적시하면서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미국 기독인의료협회들도 교회들을 향하여 ‘이웃을 위하여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강권하는 호소문을 내었다. 다른 목소리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회적인 동의가 눈에 뜨인다.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할 태도는 분명한 게 아닌가. 생명처럼 귀한 예배는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으로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모여는 있어도 이웃을 해할지도 모르는 ‘회칠한 무덤’같은 섬김을 누가 기뻐할 것인가.‘네 이웃을 사랑하라.’ 믿음이 높은 곳을 향할수록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혼자만 구원에 이르기보다 남들과 함께 이웃을 만들어야 한다. 죽어서 올라가는 게 천국이 아니라 여기서 당겨오는 게 하늘나라가 아닌가. 팬데믹이 얼른 지나가고 함께 교회에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얼른 오도록 오늘은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 탄압이 아닌 방역이 역병을 극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모이지 않고도 믿음의 공동체가 든든해지는 기억을 만들어야 한다.

2021-01-27

주식리딩방

주식리딩방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자칭 투자전문가가 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이들은 금융감독원의 규제를 받지않으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방송 등을 통해 대가를 받고 단순 투자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된다.주식리딩방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우선 카톡방 회원들의 투자성공담이라며 수익이 난 계좌정보 등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엄청난 투자수익에 귀가 솔깃해진 투자자가 가입 또는 투자 문의를 하면 고액의 회원가입비를 요구하거나 위탁투자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회원 가입비를 요구하는 주식리딩방의 경우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에 이르는 가입비를 요구한다. 가입하고 난 뒤 주식리딩방이 지시한 대로 주식거래를 해도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한다. 그제서야 납부한 회비를 돌려달라고 해도 상대방은 환불을 거부한다. 위탁투자를 위해 돈을 보낸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홈트레이딩 시스템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돈을 입금하게 하고 수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인다. 가령 개인투자자가 리딩방이 알려준 주식 사이트로 2천만원을 입금하면 얼마 후 1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투자한 돈과 수익금을 돌려받겠다고 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돈을 환급받으려면 수수로 등으로 인해 오히려 8천만원을 더 내야 환급이 가능하단다. 만약 요구한 돈을 만들어 보낸다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돈을 환급해주기는 커녕 또 다시 “돈을 더 넣어야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때서야 사기임을 알아차리지만 때는 늦었다.주식에 왕도는 없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과욕은 패망의 지름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7

나의 작은 동무

김규종 경북대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중국 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1월 14일 개봉된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작은 동무(The Little Comrade)’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란 나라가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묻는 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우리는 가끔 ‘발트 삼국’이라는 어휘와 대면한다. 북구와 러시아에 면한 발트해에 자리하고 있는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도상 위쪽부터 거명하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서다. 18세기에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세 나라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1차대전 종결로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1940년 스탈린의 강제 통합으로 국권을 상실한다. 세 나라는 1990년 다시 주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영화 ‘나의 작은 동무’는 1950년 스탈린 통치 아래 있던 에스토니아 시골 소녀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떠오른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전제정치로 자유를 향한 에스토니아 국민의 열망이 짓밟히던 시절. 여섯 살 소녀 렐로는 9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교사인 엄마가 소련에 저항하고, 에스토니아 독립을 지지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에스토니아 국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음에도 엄마 헬무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당한다. 아빠인 펠릭스는 여러 방면으로 구명 노력을 하지만, 렐로에게 약속한 9월 입학 전까지 헬무스를 빼내지 못한다. 그들 부녀가 만 5년 동안 겪어나가는 눈물겨운 애환이 영화의 얼개다. 약소국 에스토니아가 강대국 소련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목과 소련 앞잡이로 등장하는 펠릭스의 친구가 얄밉기 그지없다.영화를 보면서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민중과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일제 앞잡이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특히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하는 말로 유명한 의열단장 김원봉이 친일 악질분자이자 이승만의 충실한 하수인 노덕술에게 모욕당한 일이 절로 떠올랐다. 일제가 거금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던 김원봉이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앞잡이에게 당해야 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렐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도, 학년이 올라가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그러다가 1953년 3월 5일 공포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다. 하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2년 넘는 세월이 흐른 1955년 5월 헬무스는 열차 편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에 도착한다. 엄마를 찾으려던 렐로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 아빠를 본다. 조금은 어색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렐로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가 손을 내민다.어린아이에게 만 5년 넘도록 엄마를 빼앗아간 전체주의 통제국가 소련의 운명은 우리가 보고 들은 대로다. 그들도 1991년 12월 31일 종언을 고했다. 철권통치의 끝은 언제나 고약하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한다.‘나의 작은 동무’는 우리가 잊었던 시절을 일깨우는 소중한 영화다.

2021-01-26

홀로서기에 대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코로나19의 영향일까? 최근 들어 홀로 또는 따로 하는 문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을 우려한 한 줄 칸막이 식사를 한다거나 한 칸 띄어 앉기 등으로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혼자 하는 행위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먹거나 어울리고 활동하는 자체에 많은 제약과 기준의 적용으로 다소의 불편과 움츠림 속에서도 자구책(?)으로 나타난 것이 홀로 하는 문화라 할 수 있다.그러나 혼자 하는 식사나 행동, 작업 등은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의 생활 저변에 나타나거나 스며든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근래부터 1인 가구 혼족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움직이고 생활하는 문화가 늘어나다 보니 혼밥혼술이니 혼행, 혼잠 등의 유행어가 생겨나면서 ‘혼OO’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추세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시대가 변하면서 ‘홀로 생활’은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낯설지 않은 현재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실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나홀로 문화’가 당시 3~4개에서 2018년 39개, 2020년 말엔 65개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여 홀로 하는 세태가 더해지는 듯하다. 최근에 두드러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세된 영향도 있겠지만, 혼자 먹고 입고 놀고 자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일생을 크게 보면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지만, 작게 보면 소소한 개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이른 바 ‘나홀로 문화’란 자발적 고립을 택해 식사, 여가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즉,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혼자만의 일상생활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홀로 밥을 먹거나 여행, 캠핑을 즐기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타인과의 관계 보다는, 혼자의 생활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그 가운데서 자신만의 은밀한 만족을 맛보는 것이다.세상의 무엇이든 바뀌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 우리는 다만 적응의 문제를 간단없이 풀어나가야 한다. 미래의 상황은 환경변화라는 상수 속에 인간 욕망의 변수가 끊임없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희대의 감염증 확산에 따른 주거문화나 식사, 회식, 만남 등의 정서가 분화되고 이질적인 양상을 띄고 있지만, 우리의 고유한 습성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이고 유화적인 측면으로의 꾸준한 변모와 진전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사람은 어차피 홀로서기다. 홀로 태어나서 가족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지내다가 결국 홀로 가게 된다. 외롭고 쓸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는 뼈저릴만큼 혹독한 홀로서기에 달려있다. 그 모질고 처절한 혼자만의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예술작품은 탄생하고 빛 부신 새날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2021-01-26

재갈 물리기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유안진 시인의 ‘침묵하는 연습’이라는 시의 첫 두 구절이다. 말의 양과 공허의 깊이가 비례하는가 보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해야 뭔가 뿌듯하고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정치판이 대표적 다변의 마당이리라. 서울 시장,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딱히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눌변의 시대가 아닌 다변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아무말’에 다변이기까지 한 정치인 한 사람이 해가 바뀌면서 퇴장하였다. 집권 기간 내내 자기 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온통 말과 글로 들쑤셔 놓았던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백악관을 떠나면서도 “안녕,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대통령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말을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자신의 개인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로 돌아갔다.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까지 ‘아무말’을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대통령으로서의 특권을 찾아 누렸다.우리 속담에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다’라는 말이 있는데, 트럼프는 뒷걸음질도 옆걸음질도 아닌 마구잡이 행보로 쥐를 잡기는커녕 미국의 정치마당을 끝까지 들쑤셔 놓았다. 결과는 재갈 물리기로 돌아왔다. 트위터는 퇴임을 2주도 남기지 않은 1월 8일에 8천900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같은 날 구글과 애플은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SNS ‘팔러’(Parler) 앱을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각각 퇴출시켰다. 트럼프가 트위터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앱까지도 막아버린 셈이다. 다른 그 누구도 배려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거침 없는 언사, 함부로 된 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공자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이라 하였다. ‘더듬거리는 말’이란 뜻의 ‘눌언’을 여기서는 더디고 신중하게 하는 말 정도로 풀어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라고 해석하면 되겠다. 군자로서의 사람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좀더 말과 글에 신중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좀 심한 언사를 일삼던 남의 나라 사람 이야기이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개인의 사회적 소통 계정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침묵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음으로 자초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 기업의 재갈 물리기 앞에서 생각이 잠시 멈추어 버렸다. 그 틈을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의 한 구절이 들어와 앉는다.“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2021-01-26

경찰과 거짓말

사실이 아닌지 알면서도 상대방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하려는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을 우리는 ‘하얀 거짓말’이라 부른다. 또 뻔히 드러날 만큼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 한다.사람은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예쁘진 않으나 칭찬을 해줌으로써 상대가 희망이나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선의의 거짓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또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종종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거짓말은 상황에 따라 필요악으로 쓰일 때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고의적 혹은 상습적으로 하면 주변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런 거짓말로 인해 범죄가 성립되는 경우도 흔하다.미국에서는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은 중범죄로 다스린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대통령이 도청보다 거짓 증언 때문에 정치 생명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우리 경찰이 또 한번 궁지에 몰렸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내사종결한 사건의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 영상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경찰의 사건 은폐 의혹이 커진 것이다.경찰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는지는 이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봐 경찰의 증언이 합리적 의심을 받을만한 거짓으로 보인다. 언론도 경찰이 거짓으로 수렁에 빠졌다고 비판한다.거짓말이 영원히 감춰지길 바란다면 오산이다.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 속성이 있다. 진실을 거짓으로 덮으려 한다면 경찰의 신뢰는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1-26

조감하는 시선과 책을 읽는 시간

인간의 눈이란 본디 사람의 얼굴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를 향해 있는 그곳에 대한 제한적 시점밖에는 갖지 못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종 망각되곤 한다. 다름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주는,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주는 마음의 눈에 떠오르는 인상을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혼동되기 쉬운 때문이다.인간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기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걸어가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하고 있는 나의 장면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눈이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시점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한계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바로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의 시도였다. 어떤 대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는 착각을 평면 회화에 부여하는 ‘원근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을 회화에 부여하는 예술적 형식 말이다.우리가 하늘 저 위에서 새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조감도’라는 형식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머리에 붙어 있는 답답한 눈이 주는 시각적 답답함을 해방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생활의 관점에서 우리 눈앞에 주어진 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그래서 조감도나 지도 등을 통해 자신이 지금 있는 공간의 형태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가늠하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들어간다.작가 이상(李箱·1910~1937)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 위로 질주하오.”라는 그야말로 기묘한 시작을 기억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연작을 신문에 연재하기 몇 년 전에 일본어로 ‘조감도(鳥瞰圖)’라는 연작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생소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상은 건축을 전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삶의 공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13인의 아해(兒孩)가’로 시작하는 이 ‘오감도 제1호’는 사실 시간이 주는 답답한 12진법에서 해방되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눈이 주는 시각의 답답함과 그리고 조감하는 시선을 어떻게 ‘동시적으로’ 중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때, 지도를 꺼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지도 속에 들어 있는 실제와 연결된 기호들이나 상징들을 통해 조감하는 시선을 확보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니 상당히 편리하다.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갑자기 모르게 되어버렸을 때, 잠시 멈추고 누군가 하나의 시선을 통해 정리해둔 것을 보고서 삶을 조감하는 시선을 참조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시간에 있는지 모른 채 도로로 질주해가는 무서워하는 아해들처럼, 문득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조감의 시선이다. /홍익대 교수

2021-01-25

신라 이전의 역사, 사로국 1

‘기원전 57년,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를 6촌 촌장들이 추대하여 신라를 건국했다.’삼국유사에 전하는 이 짧은 기록은 마치 역사 상식처럼 알려지고, ‘천년 신라’라는 고유명사도 만들었다.그런데 이런 역사 기록이 사실(Fact)이 아니라면? 그렇다. 일반인이 흔히 아는 신라는 이때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경주분지에 터전을 잡았던 사로국이 등장했을 따름이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는 4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성립하며, 그때부터 경상도 일대를 영역화한 고대 국가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신라 이전에 경주에서 성장하고 있던 사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사로국 시기는 대략 기원전 150년(?)~356년으로 추정된다. 400여 년이 넘는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역사 기록은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 더욱이 문헌 기록의 초기 역사는 신화, 설화의 형식을 취하거나 후대에 부풀려지고 연대가 맞지 않아서, 당시의 물질 자료를 분석하는 고고학의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번 칼럼은 신라의 모태인 사로국을 2편에 걸쳐 다루기에 전반부(사로국의 소개와 주변국과의 관계), 후반부(사로국의 특징, 신라로의 전환 과정)로 나눠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사로국의 영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주시 일원으로 추정된다. 그 내부 구조는 비슷한 사회·문화를 공유한 5~6개의 지역공동체가 결합된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지역공동체(구, 군 규모의 행정 단위)를 ‘읍락’이라 부른다. 크고 작은 취락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다시 중심 촌락을 매개로 몇 개의 촌락이 뭉쳐 읍락을 형성했다. 이런 5~6개의 읍락이 결합해 초기 국가로 성장한 사회가 바로 ‘사로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 국가로 조직화된 사로국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에 흔적을 남겼을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옮겨간다.사로국 사회를 이끈 중심 집단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중국 동북지역이나 한반도 서북지방에서 경주지역으로 유입된 외부 세력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무렵 사회, 문화 속 가장 큰 변화로 ‘목관묘’(널무덤)라고 일컫는 새로운 구조의 무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목관묘 부장품은 멀리 떨어진 선진 지역으로부터 교역을 통해 입수한 제의용 청동기를 비롯해, 철제 무기, 농·공구 등으로 일괄 교체된다. 이런 물질문화의 변화는 이전 시기 거대한 돌을 이용해 ‘지석묘’(고인돌)를 공동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원거리 교역에 기반한 네트워크 사회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결국, 읍락 단위로 내부적 발전을 거듭해 나간 지역공동체에 선진 문화를 가진 외부 세력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정치체인 사로국이 형성되었고, 드디어 역사 무대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던 것이다.장기명학예연구사시간이 흐르면서 사로국은 주변 나라들과 함께 ‘진한(辰韓)’이라는 경제적·사회적 연맹체를 이루게 된다. 진한 연맹체는 점차 한반도와 그 주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낙랑, 대방, 동예, 마한, 왜 등과 교류하며 역사에 본격적으로 흔적을 남겼고, 그 중심에는 진한 연맹의 맹주로서 사로국이 있었다. 이러한 진한 연맹체의 활발한 대외 교역의 결과물로 중국 한나라의 청동 거울과 동전, 왜(일본)에서 생산한 다양한 청동 무기류 등 다양한 외래 문물이 경상도 일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외래계 문물들은 당시 경상도 일대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와질토기(瓦質土器)’로 불리는 회백색 토기 및 다양한 철제 도구들과 함께 사로국의 물질문화를 대표하게 된다.경제적 교역 공동체인 진한 네트워크는 문헌 기록에 남겨진 시점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1세기 중엽부터 확인되며, 4세기 중엽에 소속 국들이 사로국에 의해 신라로 통합될 때까지 오랜 기간 유지된다. 마치 고대 그리스에 자리 잡았던 도시국가 폴리스 동맹체제처럼 각기 고유한 영역을 지니고 상호 간에 화합과 견제를 반복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삼한의 소국들은 활, 창, 방패와 같은 무기를 잘 사용했고, 비록 다투고 전쟁을 하더라도 서로 굴복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라고 기록된 중국의 ‘진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렇지만 당시의 동북아시아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대외적 상황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유동적이었으며, 사로국의 지배 집단과 내부 구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당 시기 초기 국가는 결코 강력한 왕권에 기반한 구조가 아니었고, 국읍이라는 국가 중심지는 고정불변에 가까운 ‘수도’로 볼 수 없었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는 놀라울 만큼 동일한 역사상(歷史像)을 제시한다. 최고 지배자의 호칭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이라 불리는 토착 용어로서 존장자(종교 주관 혹은 나이·덕이 많은 사람)를 의미하였으며, 3성(박씨, 석씨, 김씨) 집단이 교대로 이사금을 배출했다거나 국읍에 의한 읍락의 통제가 어려웠다는 상황이 엿보인다. 실제로 탁월한 무덤이나 거대한 건축물은 한 지점에서만 지속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3~4개 유력 집단이 그들만의 근거지를 기반으로 각축을 벌이는 양상을 띤다.하지만 사람과 권력은 어느 순간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한 상황을 일순간에 변화시킨다. 더 이상, 바깥에서 불어오는 유동적 국제 정세와 안으로부터 국내 기반을 흔드는 견제 움직임은 국가 권력의 풍향을 바꾸지 못한다. 물론, 신라(新羅)라는 고대 국가로 새롭게 일신하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와 내부 구조를 모두 장악할 수단과 정당화 기제가 필요했다. 이런 핵심 키워드를 제공한 것이 ‘철’과 ‘통합 이데올로기’였다. 역사적 시간은 점차 흘러,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2021-01-25

‘신춘문예’ 생각

매년 그렇듯 이번 1월 첫 주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며 보냈다. 이른바 ‘신춘병’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1월 1일이면 가슴께가 아리다. 떡국 대신 열등감과 좌절감, 분노를 끓여 먹었던 새해 첫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12월 초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마감 시즌이 되면 원고를 들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녔다. 우편 사고가 일어날까봐, 혹 시인을 꿈꾸는 집배원이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써진 내 등기우편을 열어보고는 감탄하며 자기 이름으로 바꿔 낼까봐 우체국도 못 믿고 직접 갖다 주느라 그랬다. 그때부터 한 열흘 기대와 희망, 불안과 초조함을 마구 널뛰며 지냈다. 당선소감을 써보기도 하고, 신문에 실릴 사진을 고르기도 하고, 학교에 현수막이 내걸리는 상상도 하고, ‘20대 얼짱 시인’으로 유명해져 방송에 출연하는 망상에도 빠지곤 했다.12월 20일쯤부터 당선통보 전화가 가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전에는 모든 당선자가 확정된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던져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1월 1일, 당선작들을 읽기 전 심사평부터 찾아 봤다. ‘예심은 통과했겠지’, ‘내 작품이 거론됐을 거야’… 눈 씻고 봐도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심정은 참으로 처참했다. 한 며칠 술만 마시며 지냈다. 내가 쓴 시들이 다 쓰레기 같았다. 삼성 계열사인 중앙일보에 본명으로 응모한 게 탈락 사유일 거라고 ‘음모론’을 써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심사평과 본심진출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걸 10년 동안 했다.10년 동안 1월 1일에는 남들 박수나 쳐줬다. 2004년 동아일보 김성규 시인, 문화일보 김지훈 시인은 가까이서 보던 선배들, 그저 경외감만 들었다. 2005년 한국일보 신기섭의 ‘나무도마’는 넋 놓고 감탄했던 시, 행간에 스민 죽음의 냄새가 시인에게도 비극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시인은 신춘문예에 당선한 그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를 동시 석권한 이윤설 시인은 정말 대단했다.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불가리아 여인’은 지금 읽어도 세련됐다. 이윤설 시인도 지난해 가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2007년에는 경향신문 신미나 시인, 조선일보 김윤이 시인, 2008년에는 경향신문 이제니 시인, 동아일보 이은규 시인이 돌아가며 내 마음을 폭행했다. 퍽, 퍽, 퍽, 절망과 감탄, 질투가 피멍처럼! 2009년엔 김은주, 민구, 정영효, 이우성 등 훗날 주목받게 되는 시인들이 나란히 나왔다. 2010년에는 동아일보 유병록 시인, 2011년에는 조선일보 신철규 시인, 2012년에는 동아일보 안미옥 시인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2013년에는 동아일보 이병국 시인과 그간 수십 번 최종심에서 떨어진 ‘불운의 아이콘’ 이해존 시인의 경향신문 당선이 기억난다.그리고 2014년, 박세미, 최현우, 이소연 시인이 화려하게 데뷔하는 걸 지켜보며 나는 신춘문예를 내려놓았다. 연말에 ‘시인수첩’ 신인상에 투고했고, 떨어지면 이제 시 안 쓸 거라고 마음먹었는데 운 좋게 당선이 됐다. 그 후 열심히 작품 발표도 하고 시집도 냈다. 이제는 12월과 1월의 우울, 증오, 오기, 좌절, 망상, 마음 졸임, 초조함, 술병, 억지웃음, 거짓축하, 겨우 뱉어내는 괜찮다는 말, 눈물 같은 것들과 모두 작별했지만 내가 이루지 못한 꿈 ‘신춘문예’는 여전히 아름답다.몇 해 전부터 문학계에서 등단 제도의 불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때마다 가장 화려하고 강력한 등단 제도라는 상징성을 지닌 신춘문예의 폐지가 논의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중앙일보는 정말로 신춘문예를 폐지했다. 앞으로 등단 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지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피와 땀과 눈물어린 꿈이라면 신춘문예는 계속 유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꿈을 이룬 2021년 당선자들 축하합니다. 정말 부러워요!

2021-01-25

경계에 선 사람들

무대에 선 한 가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호등이 바뀔 때 빨간색과 초록색 불빛 사이의 노란 불빛이 3초간 빛나는 모습을 보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빛내는 모습이 자신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학력이나 소속사 대신 ‘63호 가수’라고 소개했다.JTBC에서 방송되는 ‘싱어게인’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 가수들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무명가수를 대상으로 출연자의 정보나 배경을 배제한 채, 익명성을 부여하여 출연자의 무대만을 조명한다.30호 가수는 자신을 ‘배 아픈 가수’라며 소개한다.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재능이며 자신을 전형적인 실력 없는 사람임을 덧붙인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기에 경계를 서성이고 있는 사람이라 칭하며 언뜻 불안감을 내비치지만, 조명이 꺼지고 노래가 시작되면 그간 숨겨 왔던 내밀한 경계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는 지나치게 감정이 고조되어 어색하고 불안정하지만 반면 그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이고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연이은 실패와 소외 속에서 꿈을 부르는 간절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이해의 시도와 용기와 강인함을 준다. 다시 한 번 무대를 갖게 된 그들의 노래는 열렬했고 자유로워 보였다. 실패와 흠으로 꾸준히 엮었을 경계는 예리하면서도 단단한 테두리가 되어 보였고, 완전함보다는 온전함에 가까웠다.윤여진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실험적이고 독보적인 물결을 일으킨 존재는 자신의 불안정함을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아 새롭게 탄생한다. 63호와 30호 가수는 심사위원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놀라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63호 가수는 투박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음색과 연주로 방송 첫 화 최고의 1분 시청률을 기록했다.30호 가수는 이효리의 댄스곡인 ‘치티치티뱅뱅’을 새로운 록 장르로 재해석하여 ‘장르가 30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곡을 그의 색깔을 입혀 재해석해 30년 전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는 심사위원의 극찬이 이어지기도 했다.그들이 노래라는 경계를 서성이고 확장하는 것처럼 나 또한 다양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무수한 경계도 있고, 때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의 경계, 무지에서 비롯되는 부끄러움의 경계, 읽기와 쓰기와 사랑으로부터 빚어지는 경계도 있다.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면 하루 중 불쾌한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늘 사람으로 가득 찬 퇴근길 지하철에선 어쩌다 부딪친 사람에게,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정류장 앞 오밀조밀 만들어둔 눈사람을 보았을 때나 일몰을 구경하던 이와 눈이 마주칠 때에 서로의 연한 경계가 드러나듯, 잠시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경계는 사물이나 기준을 나누는 한계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을 구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경계하여 지키는 것이 있고, 반대로 확장하여 새로운 세계와 자아를 발견하는 경계도 있다. 불교에서는 경계를 인과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받는 과보라 칭한다. 다시 주어진 무대를 묵묵히 그리며, 살아가며, 꿈과 현실로 행하는 이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약간의 운과 불운을 생각한다. 무엇을 경계 안에 두느냐에 따라 경계는 단단한 테두리가 되기도, 철조망이 되기도, 화단이 되기도, 무성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게 주어진 운에 가까워지며 조금 더 명징해질 것이다.

2021-01-25

UAM(도심항공 모빌리티)

UAM은 Urban Air Mobility의 줄임말로 도심항공 모빌리티란 뜻이다. 즉, 드론, 로봇택시, 플라잉카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으며, 하늘을 떠다니는 운송수단들을 가리킨다.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궁극의 교통수단이지만 머지않아 현실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당초 취미용 드론으로 발전되기 시작한 도심항공 모빌리티 기술은 점차 적재하중을 높여 택배용과 화물용 배달서비스로 진화했고, 안전성과 효율성이 검증되면 일부 노선에 한정된 고가의 이동수단으로 승객용 도심항공 모빌리티로 시작, 점차 택시요금 수준까지 요금이 내려가면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사람과 건물, 자동차가 뒤섞인 복잡한 2차원 공간에서 더이상 효율을 높이기 어려워 3차원 공간을 이용하는 UAM은 메가시티 교통문제를 해결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수직이착륙 형태의 UAM은 활주로가 필요없고, 최소한의 이·착륙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비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현재 주로 취미와 영상용 소형 드론은 가성비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국이 앞서 있으며, 최첨단 기능 장착 및 적재하중 높은 고가 군용드론은 미국, 유럽, 이스라엘이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엔진, 모터의 회전력, 프로펠러 비틀림각에 의한 양력, 앞으로 빠르게 나가는 추진력에 기반하는 산업의 특성상 세계 각국의 전통 항공제작사부터 전기차 기술을 축적한 자동차 업체까지 UAM사업에 뛰어들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그룹의 미래 방향성으로 자동차 50%, 도심항공모빌리티(UAM) 30%, 로보틱스 20%를 제시해 관심을 끌고있다. 미래의 대중교통수단이 될 UAM, 인류에게 또 하나의 산업혁명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1-25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전략과 한미동맹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바이든(J. Biden)은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부활이다. 동맹과 협력하여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북한의 비핵화 전략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우리의 외교가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트럼프(D. Trump)와 바이든의 외교안보전략은 그 기조(基調)가 다르다. 트럼프의 외교가 동맹을 고려하지 않는 ‘미국우선주의와 거래주의’였다면, 바이든은 동맹을 중시하면서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주의’를 역설한다. 국제협상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탑다운(top-down)’방식이었지만, 바이든은 실무협상을 토대로 한 정상외교, 즉 ‘바텀업(bottom-up)’방식을 선호한다.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전략은 한미동맹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우선 미·중 패권경쟁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반중(反中)전선 참여를 더욱 압박할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 승리 후 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 안보와 경제의 핵심축(linchpin)”이라고 했다. 이는 ‘쿼드(Quad)’와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한국의 참여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게다가 바이든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문재인정부가 추구해 온 미·중 균형외교, 즉 ‘전략적 모호성’의 유지와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한편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도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은 “김정은이 핵능력 축소에 동의할 경우에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협상과 압박이 병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좋은 친구’라고 했지만, 바이든은 그를 ‘폭력배(thug)’라고 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정상회담 쇼’가 완전히 실패했으며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 폐기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북한이 신형 ICBM과 SLBM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함으로써 바이든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보다는 ‘제재와 압박’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때문에 싱가포르선언을 토대로 또 다시 북미대화를 주선하려는 정부의 중재외교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이처럼 바이든 시대의 한미동맹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맹은 ‘가치와 위협’에 대해 인식을 같이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외교적 수사로서의 동맹’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동맹’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현실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김정은이 제8차 당 대회에서 지시한 ‘전술핵’ 개발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비핵국가인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미동맹이다. 미·중 균형외교와 북·미 중재외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적 동맹외교를 시급히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2021-01-25

해양기후변화와 울릉도(독도)의 대응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겨울 울릉도는 고립의 섬으로 변한다. 겨울철에는 잦은 해양기상악화로 육지로 오고 가는 뱃길의 통제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10년 동안(2011~2020년) 겨울철(12~2월) 한 달 평균 결항 일은 15.4일이었다.한 달에 절반 넘게 결항한 것이다. 울릉도를 오고 가는 400~600t급 미만의 소형 여객선만으로 겨울 파도를 이기기에는 너무 벅차다. 설령 여객선이 운항하더라도 뱃멀미로 승객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울릉도 항로상에 발령된 기상청 풍랑특보는 지난 20년(2001~2020년) 동안 연평균 84.3일이 발령됐다. 이런 기상악화에 따라 울릉도 항로는 연간 100일 내외의 통제일을 보인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 10년(2011~2020년) 들어 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는 연간 89.7일로 이전 10년에 79.0일에 비해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증가 추세는 최근의 겨울철 기상악화 증가와 관련된다.연구자들은 동해의 겨울철 기상과 관련된 시베리아 고기압 세기에 영향을 미치는 북극진동의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기후변화와 관련된 간접적 영향인 셈이다.기후변화와 관련된 영향은 울릉도(독도)의 바다 표층 수온 변화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울릉도(독도)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지난 100년간 1.3℃ 증가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 수역 중 가장 높은 표층 수온 증가율이었다.바다의 여름이랄 수 있는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로 보면 더욱 분명히 수온 증가가 체감된다. 울릉도 연안에서 지난 1966년부터 관측된 표층 수온 자료에 따르면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는 1960년대 약 70여 일에서 최근 120여 일로 약 50일가량 증가했다.바다의 여름이 두 달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25℃ 이상의 연간 고수온일 수는 2010년대 들어 20일 이상으로 고수온 일수가 이전에 비해 매우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표층 수온 10℃ 미만일 수는 과거에 비해 감소 추세에 있다. 바다의 더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이러한 바다의 아열대화 증가에 따라 울릉도(독도) 연안의 아열대종 출현 비율이 증가하거나 출현 시기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지난 12월 울릉도 연안 조사에서 열대어종인 파랑돔의 서식을 확인한 바도 있다.해양기후변화는 울릉도(독도) 주변해역의 오징어 어획량 및 어획시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상 동해에서 오징어 주 어장은 동해 남쪽에서 북상하는 따뜻한 해류와 동해 북쪽에서 남하하는 차가운 해류가 만나는 수온 전선역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두 해류가 만나는 수온 전선역에서 수렴류에 의한 오징어의 먹이 생물인 플랑크톤이 축적된 이유로 고려되고 있다. 최근 울릉도 어획량은 199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1/10 수준으로 매우 감소하고 있다.예전에는 수온 전선역이 울릉도 주변에 형성돼 울릉도 주변이 오징어의 좋은 어장이었다면, 해양기후변화에 따라 동해 남쪽에서 따뜻한 해류가 강하게 확장하면서 수온 전선역이 동해 북한 수역으로 점차 이동, 상대적으로 울릉도 주변은 예년과 비교하면 오징어 어장 형성의 환경적 조건이 약화하고 있는 것이다.늦가을 혹은 초겨울이 되면서 동해 남쪽에서의 따뜻한 해류는 약화하고 동해 북쪽에서의 차가운 해류는 강화되면서 다시 울릉도 주변에 오징어 어장이 형성되지만,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해상기상 악화로 출어 일수가 감소, 자연스럽게 어획량 또한 감소하고 있다.2004년부터 북중어업협정에 따라 중국어선의 동해 북한수역 오징어 어선 진출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수온 전선역이 예년에 비해 동해 북한 수역으로 북상한 이유와도 절대 무관치 않다.해양기후변화로 겨울철을 중심으로 한 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 일수 증가, 표층수온의 아열대화, 오징어 어장의 변화와 어획시기의 변화 등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이에 따라 능동적 대처가 필요하다.울릉도 항로상 풍랑특보 일수 증가에 대비하려면 울릉도 항로상 대형 여객선의 취항이 필수적이다. 섬 주민에게 육지와의 교통 환경 개선은 최고의 복지이다. 최근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서 8천t급 이상의 대형 여객선 취항을 위한 여객선 공모가 진행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안정적 운항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여름철 바다와 관련 관광이 증가 추세에 있고 이와 관련해 해양레저관광의 다변화를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단순히 보는 울릉도에서 체험하는 울릉도로 적극적 모색해야 한다. 오징어 어장의 변화와 관련해 남북해양수산협력의 적극적 모색과 중국어선의 북한 수역입어에 따른 우리 어민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해양기후변화의 시대, 울릉도(독도)의 다양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독도를 부속 섬으로 둔 울릉도와 대한민국 섬이 보다 가고 싶은 섬, 살고 싶은 섬, 지속가능한 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2021-01-24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는 무엇인가?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1981년 대구시와 경상북도로 행정이 분리된 이후 인구는 정체, 지방소멸 위험이 심각하게 진행 중이다. 2018년 기준으로 대구·경북 인구는 전국 10% 밑으로 하락했고 경제적으로는 대구·경북 지역 내 총 생산이 전국 비중 1985년 이래 1/4로 하락했으며,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3년 이래 최하위, 경북은 1993년 5위, 2019년 6위를 했으나 2014년 이후 빠르게 하락 중이다.대구경북행정통합에 대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대구경북행정통합이나 공론화에 대한 정보가 없어 궁금해 하고 있다. 행정통합은 수도권집중, 지방소멸, 경제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해결 방안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를 하나로 합쳐 더 큰 자치권과 자원을 가지는 대구경북특별자치정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대구경북행정통합 추진과 공론화는 다른 개념이다. 현재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는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위원회가 아니고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 의견수렴을 통한 공론조사를 하고 이 내용을 시·도지사에게 전달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일각에서 위원회가 추진위원회로 오해도 하고 있지만, 이는 공론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보이며 앞으로 공론화가 진행되면서 시·도민 의견수렴을 활발히 하게 되면 오해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공론조사는 행정통합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는 이해관계자, 전문가, 시·도민 등의 다양한 의견을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수렴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으로, 여론조사보다는 다양한 정보와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여론 수렴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1988년 미국의 제임스 피시킨 미국스탠퍼드대 교수가 제안한 방법론으로 1994년 영국을 시초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실시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8.31 부동산 정책 공론조사, 2013년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위원회, 2017년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론화위원회, 2018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를 들 수 있다. 대구·경북에서도 대구시신청사건립공론화위원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전 숙의형 시민의견 조사위원회를 통해 공론조사에 대한 경험을 한바 있다.대구경북행정통합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될 계획이라고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시·도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론과정을 수행하는 시·도민 공론형성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행정통합에 대한 시도민의 최종의견을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통합된 대구·경북의 지위, 특례 등이 포함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결국 대구경북행정통합은 특정인들의 결정이 아닌 시·도민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시·도민 의견수렴에 한계가 있지만,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비대면 온라인 시·도민 열린 토론회가 진행됐고 이 외에도 숙의공론화조사, 여론조사, 빅데이터 조사, 홈페이지,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의견수렴을 진행할 계획임으로 성과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가 행정이 통합되면 대구경북광역특별시, 대구경북광역자치도 등 행정단위간의 상하문제로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는 특별지방정부라는 명칭을 쓰고 있지만, 국내에 이런 명칭을 쓰는 광역지자체는 없다. 광역단위의 지자체가 통합한 예는 국내에는 없고 해외에도 드문 사례여서 어려운 문제이지만 대구·경북이 하나가 되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형태나 명칭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경제적 파급효과나 행정효율성, 지역균형발전, 청사 위치 등 다양한 쟁점들이 논의 중이지만 결국은 시·도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설정이 중요하다. 행정통합 이후에도 일자리가 없고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행정통합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통합된 대구·경북은 인구 510만과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국제공항과 항만을 가진 지자체가 된다. 이와 함께 구미, 포항 등의 산업과 경주, 안동 등 문화·관광 콘텐츠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만 가지고는 시·도민들에게 통합된 대구·경북 경쟁력을 이야기하기엔 많이 부족함이 많다.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비전과 정책목표가 설정되고, 시·도민들의 의견수렴이 충분히 반영되는 행정통합 공론조사가 되어야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공론조사에 대한 대표성, 평등성, 공정성 등의 비판적 견해가 있지만, 시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주민투표과정이 있기 때문에 공론조사의 한계도 극복되며 대구·경북 전체 시도민의 결정이 된다.앞으로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의 경험은 우리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다른 광역지자체에서도 행정통합의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고 대구경북행정통합의 과정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행정통합에 대한 대구·경북 시·도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의견 제시를 통한 참여가 필요하다.

2021-01-24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

윤영대수필가좋은 의도로 내놓은 의견이나 정책이 예상 밖의 나쁜 결과를 초래할 때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고 비난을 받는다. 즉 바로 눈앞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에 예상되는 결과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검토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그 정책의 수혜자라고 생각되는 국민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것, 즉 이익을 둘러싼 숨겨진 계산법을 잘 모른 탓이다. 또 자연에 관한 일이라면 그 환경을 끌고 가는 자연의 법칙을 간과한 결과이다. 이러한 근시안적 정책은 결국은 본말이 전도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이러한 예로는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는 것이 있다. 인도의 델리에서 숲의 코브라가 많아 주민들의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코브라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처음에는 줄어들다가 이상하게도 자꾸 보상금을 받아가는 일이 있어 조사해 보니 사육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즉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키운 것이다. 이에 보상금 제도를 폐지했더니 주민들이 야산에 버려서 다시 코브라가 증식했다는 사실이다.또 베트남 하노이의 ‘들쥐꼬리 현상금’도 같다. 하수구 들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꼬리를 가져오면 현상금을 주었는데 하수구의 들쥐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꼬리만 자르고 그냥 방사했다는 것인데 다시 새끼를 낳아 번식해야만 또 꼬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이러한 측면으로 ‘풍선효과’도 들 수 있겠다. 바람 넣은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방향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풍선을 잘 못 눌러 창피를 당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있다.중국 마오쩌뚱의 참새 박멸 지시다. 스촨성 방문 때, 참새가 먹는 곡식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듣고 없애라고 지시하자 국민들이 열심히 잡아 죽였는데 참새가 줄어들자 오히려 그 먹이였던 메뚜기가 창궐하여 들판을 황폐시켜 국민 절반이 굶어 죽었다는 사건이 있다. 또 프랑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후 국민들이 우유를 많이 먹을 수 있도록 우유값을 반값으로 내렸더니 낙농업자들이 생산을 포기하고 소를 도살하여 고기로 팔았다. 사료값도 안된다는 말을 듣고 사료값을 또 내리니 이번에는 풀들을 모두 태워버려 소를 못 키우고 오히려 우유값이 폭등했다는 역사가 있다.이러한 즉흥적인 정책은 자연과 인간과의 고리와 시장경제를 인식하지 못한 강제적 졸속 행정이다. 숲을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숲이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 삶과 자연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은 좋은 발상이었으나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들의 윤리와 가치관이 해이해지고 사회갈등이 심화된 경우를 많이 보고 듣는다.우리도 풍선을 잘못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그럴싸한 말을 바탕으로 택한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는 오히려 소상공인들의 몰락으로 저임금, 알바 등의 일자리가 줄었고 서민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 풍선도 스무 번도 더 눌렀지만 오히려 집값을 폭등시켰다.단순한 인위적인 정책으로 사회의 근본적인 힘을 제재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무를 가꾸려면 나무는 물론 그 숲을 유지하고 있는 흙과 물과 바람도 깊이 살펴야 한다.

202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