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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의자의 목적

의자에 앉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근육이 필요하다. 엉덩이의 대둔근부터 시작해서 척주기립근, 허벅지를 지탱하는 햄스트링과 대퇴사두근까지. 특히 나처럼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겐 착석이야말로 고강도 근력 운동이나 마찬가지다. 어찌나 하기 싫은지. 의자에 앉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근육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 늘 이런 식이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먼저 반기를 든다. 다리를 이리저리 꼬았다가 풀기 일쑤다. 몸을 비틀고 자세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 침대 위에 누워서 앉기에 편안한 의자를 검색해 본다. 서울대 학생들이 사용한다는 의자, 인체공학적인 곡선으로 설계된 의자, 독일의 기술자가 만들었다는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싼 명품 의자…. 사실은 알고 있다. 의자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의자에 묵묵히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전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회사원들이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시간은 8시간 남짓. 이들에게 존경심이 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앉아 있음’이 아니라, 굳건히 ‘버티고 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의 감탄에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뭐 대단할 게 있나. 다들 그렇게 사는걸. 마음은 풍선보다 가볍다. 굉장한 근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마음이 붕 뜨는 것은 도무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고, 내 자리는 이게 아닌 것 같고, 오늘 하루가 괜히 억울해지고… 그런데도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느껴진다. 오래 앉아 있다는 건 근육의 힘보다는 마음의 싸움에 더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업무와 마주하고 떠나고 싶은 충동과 타협하며 더 편안한 자리로 가고 싶다는 유혹을 견디는 일.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야지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것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앉아 있음’이 언제나 책임감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를 지키는 일과 의자에만 집착하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지만, 후자는 그 자리가 곧 자기 자신인 줄 아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앉아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견제하고 눈치를 살핀다. 한 번 앉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이제 이것은 ‘버티고 있음’의 영역이 아니라 ‘붙들려 있음’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근육이 굳어버린 사람을 상상하면 예민하고 경직된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손에 땀을 쥐고 움켜쥐며, 이 의자에서 밀려나는 순간 존재가 증발할 것처럼 여기는 모습 말이다. 의자에 앉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고 그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존재의 증명이 된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자기 자신도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눈빛은 덤이다. 재미있는 것은 눈앞의 의자가 영영 자신의 것이 아니라잠시 빌려 앉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떠나면서도 거기에 무언가를 남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다음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의 흔적을 느낀다. 등받이에 남은 체온, 미세하게 기울어진 방향, 소음 절감을 위해 바퀴에 덧댄 고무 패드까지. 순식간에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의 흔적은 나의 자세를 되묻게 한다. 사실 나는 삶의 불편에도 너무나 쉽게 엉덩이를 떼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리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너무 빨리 자리를 옮겨버리지는 않았는지. 혹은 너무 쉽게 자리를 고정해 버리고 거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언가를 다 한 것처럼 착각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근육을 늘리기 위해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간단하다. 앉았다가 일어나고 다시 앉는 것. 그 반복이 곧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의자에 앉는다는 건 몸을 단련하는 일. 의자의 목적은 결국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힘들게 버틴 몸이 제자리에서 단단해졌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한껏 솟아오른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면서 다음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문장을 매만지는 일을 회피하고 싶은 필자의 변을 늘어놓았다. 의자의 목적은 오래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일어서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으니. 이제 나는 당당하게 일어나 냉장고로 향할 예정이다. 운동 후엔 단백질 보충이 필수이므로! /문은강(소설가)

2025-07-13

“오이가 열리든 말든”

어라,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오이넝쿨의 손은 하늘을 더듬더라 그때 노란 꽃이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 아직 여름길은 나지 않았는데 바다로 산책을 나간 새들은 오이 향을 데리고 저녁이 닫히기 전 마을로 돌아 오더라 오이꽃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나더라 바다에 빠진 태양빛 같은 새들의 수다 속에서 꽃은 지고 오이 멍울이 화반에서 돋아나더라 여름길이 열리고 그 노란 꽃 가녘에 흰 나비는 스르르 속옷을 열더니 쪼그리고 앉더라 먼 사랑처럼 기어이 휘어지면서 오이가 열리든 말든 ―허수경,‘오이’ 전문(‘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았다.” 허수경 시인의 시에서 시간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먼 사랑처럼 기어이 휘어지면서” 결코 잊히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 남아 무겁고 아름다운 감정을 고요히 쌓아 올리고 있다. 2018년 독일에서 지병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 그녀는“슬픔의 시간”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시인이었다. 그녀의 시에는 늘 사라져가는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멀어져가는 시간이 함께한다. 그 시간은 단지 과거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현재와 뒤섞이며 미완의 시간 감각으로 현전한다. 이를테면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라는 기표는 시인이 평생을 두고 붙들었던 변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에게 시간은 결코 질서정연하게 흐르지 않을뿐더러 계절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사랑은 예고 없이 저물며, 죽음은 삶의 맨 앞에 서기도 하는 그녀의 시간은 늘 어긋나 있다. 그러나 그 어긋남의 틈을 통해 우리는 어떤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가령 “여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 오이넝쿨의 손이 하늘을 더듬”고 “그때 노란 꽃이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는 언술이 그렇다. 그녀에게 바다는 멀리 있지만, “오이꽃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나고, “태양빛 같은 새들의 수다”가 저녁을 덮기 직전까지 계절을 흔든다. 시인의 발화법으로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먼저 깃들고, 오이꽃에서 바다향이 나듯, 삶의 어느 부분은 미래보다 앞서 살아지게도 한다고. 해서 이미 진 꽃에서 오이가 열리기도 한다고 말이다. 이때 시인의 몸을 통해 “나비는 조용히 속옷을 벗고, 쪼그려 앉는다.” 생명의 열매는 그저 피고 지고, 사랑은 “열리든 말든” 휘어진다. 태어나고 사라는 모든 과정에서 개입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며 “나는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시를 쓴다”고 했던,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허수경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1990년대 후반 독일로 건너가 말 없는 고국을 떠나 먼 나라의 언어 속에서 생을 견뎠고, 2018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아직도 여름처럼 푸르다. 그녀에게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가장 짙게 고여 있는 감각의 시간이다. ‘혼자 가는 먼 집’에서 그녀는 여름을 “사라지는 존재들을 가만히 붙들고 있는 계절”이라 했고,‘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에서는 여름을 지나간 신들의 시간과 사람의 잊힌 시간과 다름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오이는 허수경의 다른 시 수박’이나‘레몬‘자두’처럼 그녀가 애써 피워 올리던 몸시의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 결국 오이넝쿨의 얽힘, 꽃의 노란색, 멍울 맺힌 생명의 시작, 향기로 스미는 바다의 기억, 이 모든 것은 생명과 죽음, 탄생과 퇴락, 감각과 소멸과 다름이 아니다. 그녀의 시 속에서 여성은 늘 혼자서 피고 지며, 존재의 흔적을 조용히 남긴다. 시인은 여성적 존재를 섬세한 식물처럼 그려내고, 그 안에 언어 이전의 감정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숨긴다. 시인 허수경에게 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을 끝내 붙잡는 일이 아니었을까. 무언가를 자라게 하는 시간, 그리고 멀어지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그 시간까지 모두 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종종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말이 사라진 자리에 감정과 감각의 몸을 생명으로 남겨 두었다. 이것이 바로 허수경의 여름이고, 오이꽃이며, 향기로 스미는 바다일 것이다. “꽃은 지고 오이 멍울이 화반에서 돋아나더라" /이희정 시인

2025-07-13

멈춤 없는 청송의 걸음

지난 3월, 청송은 거대한 산불을 겪었다. 푸르던 산과 마을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수많은 군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불길은 단지 산을 태운 것이 아니었다. 울부짖는 사람들, 타들어간 과수원, 무너져 내린 생계의 끈들… 그 현장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군민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이었다. 그러나 청송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외면하지도 절망에 주저앉지도 않았다. 상처를 껴안은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립주택 설치와 생계비 지원 같은 긴급한 대응은 물론, 산림 복구를 포함한 장기 재건 계획까지 행정과 민간이 함께하며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걸음은 단순히 원상 복구에 그치지 않는다. 청송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시 다지고 있으며, 공동체가 다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꿈꾸고 있다. 이 산불은 청송에 닥친 재난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가 직면한 기후위기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과 폭염, 초대형 산불, 집중호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이제 더 이상 일시적 자연현상이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청송 역시 최근에는 대형 산불에 이어 예기치 못한 우박 피해까지 더해 농업 현장의 불안이 현실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박한 현실이다. 청송은 이러한 기후 위기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청송의 자부심인 ‘청송사과’가 있다. 1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선정된 청송사과는 이제 품질 경쟁을 넘어 기후 변화에 강한 지속 가능한 미래형 스마트 농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황금사과연구단지 조성이 그 출발점이다. ‘우량 사과묘 보급’과 ‘농업용 유용 미생물 생산 및 공급’을 추진하고, 실증시험포장 운영을 통해 ‘5연동 사과재배 하우스’, ‘황금사과 수형별 비교시험포’ 등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무적엽 사과, 꼭지 무절단 사과 도입 등으로 청송사과의 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냉해, 병해충, 이상기온에 대응한 첨단 재배기술도 현장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품목으로 농가의 소득원을 다변화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업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청송의 미래를 지탱할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대한 변화다. 청송은 농업뿐 아니라 사람과 공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청년과 가족이 돌아오고 싶은 고장, 어르신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들기 위한 공간 재설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체결한 농촌협약을 통해 총 346억 원 규모의 생활권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며 진보면을 비롯한 부남·현동·안덕면 등 각 지역에 복합커뮤니티 공간, 문화·복지시설, 주거 인프라가 조성되고 있다. 농촌에도 도시의 품격을 더한 삶터가 조성되면서 인구 유출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청송읍에 올해 말 준공 예정인 공공임대주택은 원룸 44세대로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이어 2027년 준공 예정인 진보면 공공임대주택(110세대)은 대규모 청년 주거단지로 청년층의 유입과 정착을 견인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청송군 K-U시티 역노화 사업’을 통해 지역특산물 기반의 상품 개발, 공동연구와 창업지원, 역노화 산업 연계 인재양성 등 청년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산불 피해가 없었던 산남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 개장한 산남 파크골프장은 최신 시설을 갖추어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쾌적한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선 지중화 사업도 지역 경관 개선과 안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반시설과 생활환경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청송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청송은 산불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시련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회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쌓여가는 노력 하나하나가 바로 청송의 미래를 지탱하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농업을 넘어 삶터 전반에 걸친 변화, 위기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혁신이야말로 청송의 다음 100년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산불이 청송의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청송은 오늘도 꿋꿋하게 걷고 있다. 아픔을 딛고, 변화를 품고, 미래를 그리며. 그 걸음은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5-07-13

‘다른’ 사람과 연결하기

지난 8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 소속 장애인 부모들이 국회의사당 본관 계단 앞에서 환한 얼굴로 ‘오체투지 보고대회’를 열었다. 4일 이재명 정부 첫 추경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 249억원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잡은 2025년도 예산이 4천3십억 원이었으니 6%가량 증액한 셈이다. 이 추경 예산이 장애인 부모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무더운 날씨에 지난달 16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매일 100배 제자리 오체투지를 하면서 발달장애인 추경 예산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부모연대의 시위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거의 매년 발달장애인 복지를 위해 시위했고, 3년 전에는 부모들이 삭발 시위까지 했다. 이런 꾸준한 노력으로 얻은 결과인 셈이다. 내가 발달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청소년과 자주 만난다는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다. 그 청소년은 지능지수가 경계선 지능 중에서도 낮은 편에 속하는 데도 부모의 각별한 관심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스무 살이 넘으니 독립에 대한 욕구가 많은데 사회적 지원 체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추경 예산 확정 소식을 본 것은 일간지가 아니라 어느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 소식 sns다. 검색해보니 실제로 주요 일간지에서는 다루지 않았고 장애인 관련 인터넷 신문에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만큼 발달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뜻이리라. 심지어 발달장애인 권익 요구 관련 뉴스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댓글이 달린다. ‘지원해줄수록 더 달라고 한다’부터 심하게는 ‘발달장애인이 사람이냐’까지 부정 의견의 스펙트럼은 넓다. 그러나 정상이라는 범주를 설정해놓고 그 범주를 벗어난 존재를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장애인을 가스실로 보냈던 나치와 다를 바 없다. 지금 당장 내게, 내 가족에게 장애가 없다고 해서 장애가 영원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치매에 걸릴 수도 있고, 사고로 다칠 수도 있다. 며칠 전, 박산호의 ‘다르게 걷기’를 읽다가 장애인 인권활동가 변재원의 인터뷰를 만났다. 어려서 큰 병을 앓고 의료사고까지 당해서 척수마비에 걸려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 상황을 못 받아들인 엄마의 폭력까지 견뎌야 했다고 한다. 그가 발달장애와는 다른 후천적 신체장애이고 지적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엄마가 불안이 컸던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머리로는 어렵다.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그들도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급선무다. 서울 혜화동에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도서관 ‘라이브러리 피치’가 있다. 이곳에 가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경험이 일상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면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사라질 것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7-13

악성 댓글은 그만

김연아가 남편과 찍은 사진을 SNS에 공개한 후 심한 ‘악플’이 달리자 이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껏 충분히 참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복적으로 달리는, 저희 둘 중 누구를 위한 말도 아닌 댓글은 삼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악의적 댓글이 또 이어졌다. 김연아는 “3년 동안 들어온 선 넘는 주접, 드립 댓글들 이제는 그만 보고 싶어요”라고 다시 글을 올렸다. 선수 시절에도 심각한 편파 판정에도 불평이나 부정적인 말을 안 하는 김연아다. 악의적 댓글은 그렇게 착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마저 인내심을 잃게 만든다. 본인이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데 사람들은 왜 그리 난리를 칠까.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는 건지. 두 사람이 조용히 살아갈 수 있도록 그냥 놓아둘 수는 없을까. 우리는 sns와 언론 매체를 통하여 악의적 댓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기사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럼에도 악의적 댓글은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제주 항공 참사에 있어서도 악의적 댓글은 멈추지 않는다. 유가족 대표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악의적인 명예훼손을 거듭한 30대에 법원은 3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가족의 죽음으로 슬픔에 싸인 유가족에 대한 악의적 댓글은 그만두어야 한다. 익명으로 악의적 댓글을 올린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분명히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댓글을 다는 데는 자유도 주어지지만 책임도 따른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허위 사실을 올리며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내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익명으로 악의적인 글을 올리고 잠자리에 들 때 하루를 돌아보면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다. 익명이라는 이유로 악의적인 인신공격과 모욕적 언어가 난무하고 남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익명의 다수에 의한 집단 공격은 한 개인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내몬다. 집단 공격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확산하며 통제하기 어렵다. 심지어 이것이 SNS를 넘어 언론에 드러날 때 피해 당사자는 심각한 고통을 당한다. 피해 당사자는 정신적 고통에 힘들어하지만, 아무런 죄책감 없이 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할 말을 잃는다. 온라인상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익명으로 글을 쓰면 자기표현을 솔직하게 할 수 있고 자기를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다. 익명으로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인 생각을 활발하게 밝히는 것도 가능하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교내 폭력, 가정 폭력, 정신 건강 문제 등 민감한 문제도 익명이기에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누구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관계없이 평등한 대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건강한 온라인 문화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있는 것만을 말하고 남의 말을 좋게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유명인이라고 하여 무분별하게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을 침해하는 글을 올리는 건 그만두어야 한다. 내 삶을 살아가기도 바쁘지 않은가. 시간이 있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는 건 어떨까. /김규인 수필가

2025-07-13

삼복(三伏) 더위

7월 중순과 8월 중순 사이에 들어있는 초복, 중복, 말복을 삼복이라 부른다. 하지를 기준으로 10일 뒤가 초복, 초복에서 10일 뒤는 중복이다. 말복은 입추를 기준으로 하는데, 연도에 따라 10일 혹은 20일 뒤가 될 수 있다. 삼복이 있는 초복과 말복 사이는 대략 47일이다. 이 기간은 예로부터 일년 중 가장 무더운 날로 여겼다. 날씨가 아무라 더워도 농사일은 손을 놓을 수 없기에 우리 조상들은 이 시기에 보신용 음식을 먹으며 체력을 관리했다. 대표적 음식이 개고기로 만든 보신탕이다. “복날 개 패듯 한다”는 말도 이런 시중의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삼계탕은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대용 음식으로 이용됐다. 개고기 기피 현상이 확산되면서 지금은 삼계탕이 여름철 보양식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에도 우리와 비슷한 토용축일이 있다. 더운 여름철에 지치기 쉬운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들은 이 시기에 장어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올해 초복은 이달 20일, 중복은 30일, 말복은 8월 9일이다. 푹푹 찌는 폭염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잠못 드는 밤 체력이 소모돼 더위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온열질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때 이른 무더위에 전국이 비상이다.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더위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정부가 온열질환 사고 예방을 위해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어서면 근로자가 2시간 작업 후에는 20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규정까지 만들었다. 올해는 유난히 긴 더위와의 전쟁을 해야 할 듯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13

한강과 의성 교육청 도서관

대중 강연을 한다는 것은 유쾌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2007년 하반기부터 전국 곳곳의 대중을 상대로 강연해 왔으니, 어언 18년 세월이 흘렀다. 오산 시청에서 ‘공자와 논어’를 강연한 기억도 새롭고, 부산진 경찰서의 ‘혜원에게 조선의 풍속을 묻다’ 강연도 떠오른다. 한 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강연은 어쩌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도 불러주는 곳이 있음은 고맙고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명예교수’보다 ‘초빙교수’라 불리는 게 좋다. 명예교수는 연구와 교육에서 멀어진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생과 작별하는 최후의 시각까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대중과 함께하는 작업을 해나가려고 한다. 평생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한 것이다. 각설하고, 지난 7월 9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세계와 우리의 삶’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소서(小暑) 지난 사흘째 무더위 속에도 적잖은 군민들이 모였다. 강연 시작 전에 도서관장과 인사 나누고 내 생각을 전달한다. 그것은 강연자가 자기검열을 해서는 온전한 강연이 성립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대구·경북에서는 다소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아를 억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청주나 전주, 포항이나 부산, 광주에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묘한 곳이 이른바 ‘티케이’ 지역이다. 이 점에서 포항은 예외적인 곳이다. 강연 첫머리에 나는 문학을 말하는 자리에서 자기검열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청중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강연 중에 듣기 거북하거나 괴로운 청중은 조용히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40-50명 청중 가운데 두 사람이 나간다. 절대다수 청중은 진지한 태도와 눈빛으로 강연을 경청한다. ‘검은 사슴’ (1998), ‘채식주의자’(2007), ‘소년이 온다’(2014), ‘작별하지 않는다’(2021) 같은 소설을 중심에 두고 한강의 창작과 거기서 우리가 생각할 골자를 말한다. 첫 번째 장편소설 ‘검은 사슴’부터 한강은 생명에 관한 묵직한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한강은 탄광에서 빈발하는 매몰사고와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산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려낸다. 그런 정황을 한강은 성수대교 붕괴 (1994), 대구(大邱) 상인동 가스 폭발과 삼풍 백화점 붕괴(1995)처럼 차마 있을 법하지 않은 대형참사와 자연스레 연결한다. 한강은 생명 존중 사유를 제주 4·3 항쟁과 5·18 광주항쟁으로 넓혀 나간다.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수많은 생명을 기리면서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토록 자명하고 지고지순한 생각을 전달하는 강연에서 자기검열이 들어설 자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18년의 티케이 강연은 자발적인 검열을 요구해 왔으니 참 애석한 노릇이다.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강연은 유쾌하게 끝났고, 도서관장과 담당자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어 흐뭇한 심사였다. 학살자를 학살자라 부르고, 독재자를 독재자라 규정하는 것이 당연한 민주 평등 사회가 속히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13

새 정부의 참신한 교육정책을 기대한다

참으로 어수선한 교육 정책이 벌어졌었다. 제대로 점검이나 하고 시행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교육정책과 방향이 주목받는다. 이미 선거 전에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8대 공약을 발표했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교원의 정치활동 보장, 교사 면책 강화, 디지털교과서 삭제, AI 교육특구 지정 등 전 정부에서 하지 못한 교육 정책을 발표한 터라 과연 공약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중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정말 가능한 일인지 계속 눈여겨보게 된다. 충북대, 충남대 등 지역의 거점국립대학(지거국) 9곳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으로 상향하고 지거국을 중심으로 한 대학 통합과 구조조정 등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또 서울대를 한국대로 명칭을 바꾸고 새로 생기는 서울대를 한국대 2, 한국대 3 등으로 개명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 서울대가 10개쯤 있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마치 의사 수 2000명 늘이겠다는 정책처럼 말이다. 의사 수가 적다는 사실은 공감을 했지만 2000명이나 되는 숫자를 한꺼번에 늘려 잡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릿수였다. 그래서 서울대 10개도 현실성이 과연 있을까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교원의 교육활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고의 중대 과실이 아닌 경우 교육활동을 행한 교원에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다고 한다. 교사지위법도 개정해 교원의 직무 수행 중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교육감이 손해배상의 책임을 먼저 지도록 하며 교원의 위법 또는 고의 중과실의 경우 교직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교원의 교육 활동에 대한 아동학대 신고 시 무조건 검찰에 송치되는 것이 아니고 경찰 수사 후 정당한 교육 활동으로 판단되면 검찰에 송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교원의 정치활동도 전면 허용될 전망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교단에서 교사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이상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리박스쿨‘도 결국 그런 행태가 아닌가 말이다. 방과 후라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가장 문제화되어 논란이 되었던 AI(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도 학교 현장에서 사라질 판이다. 89억원을 투자해서 채택률 98%로 전국 최고라 자랑하는 대구가 실제 활용률을 보면 초등기준으로 11%란다. 돈을 거의 갖다버린 수준이다. 예산 낭비도 이런 무자비한 예산 낭비가 없다. 현장 교사들이 아직은 아니라고 소리 내어 외쳤건만 ‘웃대가리’는 왜 이를 외면하고 밀어붙였을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정책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이거늘 아직도 정치권에선 이익 단체의 고성에 휘둘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에 진보, 보수가 없다. 정치성을 띤 교육자가 이 나라 정신을 말아 먹은 예는 여러 군데에서 우린 보아왔다. 백년대계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을 기대해 본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10

민주적 배제와 협력적 살해

‘숨바꼭질’과 ‘줄넘기’, ‘달고나’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열광하는 전 세계인들의 모습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한창이다. 마지막 시즌이 공개된 지 단 3일 만에 글로벌 TOP10 시리즈 비영어 부문 1위는 물론, 공개 첫 주에 93개국 차트를 석권했다. 이는 넷플릭스 사상 최초의 TOP10을 집계하는 모든 국가에서의 ‘올킬’이라고 한다. ‘오징어게임’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초상을 담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코인 투자에 실패한 유튜버, 딸의 치료비를 구하는 화가, 성전환 수술 비용이 없는 트랜스젠더, 100억 빚의 기업가와 도박꾼 등은 각자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아도 이들 대다수는 주어진 현실에 목숨을 건 요행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즉 그들은 사회의 단순한 ‘루저’가 아니라 일한 만큼 벌어서는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흔한’ 좌절을 안고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이 한국적인(?) 오락거리를 기묘하게 펼쳐놓았으면서도 전 세계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도 여기 있어 보인다. 노동이 계층 상승에 대한 보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없을 때, 혹은 복지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개인이 기댈 곳이라고는 도박과도 같은 요행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굴복시켜야만 하는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동질감이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 이유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 시즌에는 목숨을 건 생존 게임에 합리와 공정, 토의와 민주적 절차라는 외양을 갖춘 집단적 폭력을 다루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존자가 줄어들수록 탈락자를 고르는 기준을 둘러싼 협의가 시작된다. 그들 나름대로는 민주적인 절차에 입각하여 죽여도 되는 사람을 신중하게 선별해 가는 것이다. 이때 그 선별 기준은 복잡하지 않다. 그저 남들보다 나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동정심’이나 ‘인간애’따위는 타인에게 만만해 보일 수 있어 저어될 뿐이다. 그야말로 ‘민주적 배제’와 ‘협력적 살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현실사회의 적확한 유비이다.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배제하자는 천박한 구호에 별의별 구실이 동원된다. 사회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성적·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는 희생되어도 무방하며, 출근길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부정되기도 한다. ‘갈라치기’ 정치가 혐오스러운 건, 인간의 나약한 이기주의에 편승하는 행위에 불과하면서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척하는 그 위선에서 비롯된다. 늙고 병들어서, 장애가 있어서, 국적과 민족이 달라서, 가난해서, ‘퀴어’라서 사회 제 영역에서의 경쟁에 조차 참여할 수 없는 소외된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은 그저 남의 사정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특정한 국면에서는 언제든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존 법칙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오산이 ‘오징어게임’의 비참을 추동한다. 이 시리즈의 성공에는 열패 의식의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7-10

양육비 선지급제

양육비란 미성년 자녀를 보호·양육하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주로 이혼한 부모 중 비양육 부모가 양육 부모 일방에게 지급한다. 양육비는 아이가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 생활을 누리며 자라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간혹 양육비를 아이를 키우는 전처나 전 남편에게 주는 돈으로 생각하며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애 엄마가 다 쓸 텐데 양육비를 보내는 건 애 엄마 배만 불리는 짓이라고 말하는 의뢰인이 있으면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를 위한 돈입니다. 무조건 줘야 하는 걸로 생각하세요” 아이를 직접 키워보면 월 소득의 20% 선에서 정해지는 양육비가 사실 대단히 큰돈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성과 고뇌와 육체적·정서적 노동에 더해 꽤 많은 돈까지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양육비 지급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법과 제도를 마련해왔다. 지금 양육비 지급 채무는 다른 금전채무와는 완전히 다르게 취급된다. 불이행 시 비양육자의 근무 회사에 바로 청구할 수 있고, 교도소에 감치나 과태료 부과, 형사처벌, 운전면허 정지와 출국금지, 신상정보공개까지 다양한 제재수단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양육비 지급 이행률은 낮은 수준이다. 최근 양육비 지급을 위한 새로운 강제수단이 하나 더 생겼다. 양육비 선지급제도가 이번 달 1일부터 시행된 것이다. 양육비 선지급제란 양육비를 못 받고 있는 한 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국가가 자녀 1인당 월 20만원을 먼저 지급해주고 추후에 비양육자에게 회수하는 것이다. 양육비 선지급을 받기 위한 요건은 첫째, 양육비 채무자가 선지급 청구를 하기 직전 3개월 혹은 과거 3회 연속해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어야 하고, 둘째, 양육비 채권자가 속한 가구의 소득 인정액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중위소득의 150% 이하여야 한다. 2인 가구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150%는 약 589만 원이다. 셋째, 그동안 양육비 채권자가 못 받은 양육비를 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는데,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양육비 이행확보에 필요한 법률지원을 신청했거나 가사소송법 등에 따른 양육비 이행확보 절차를 진행한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양육비를 받지 못하던 양육자는 국가로부터 미성년 자녀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자녀 1인당 월 20만 원 한도의 양육비를 선지급 받게 된다. 양육비를 못 받고 한 부모 가정의 입장에서 국가의 양육비의 선지급은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겠지만 허점도 존재한다. 양육비채무자가 1회 아주 소액이라도 양육비를 지급하면 연속 3회 양육비 미지급 요건이 충족되지 않고, 나중에 양육비가 지급되면 국가의 선지급은 중단되기 때문에 또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런데 사실 실제 양육비를 못 받는 사람들은 소송비용이 없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기존에 있던 양육비 제재 수단을 하나도 취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청 비용을 지원하거나 양육비 채무자의 재산조회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방안, 또 실제 집행에서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한 감치의 실효성 확보가 필요하다. 좋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원래 있던 좋은 제도들을 잘 활용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10

인구 10만 돌파하는 대구 중구

대구광역시 중구는 대구의 모체(母體)다. 서울로 치면 한양 4대문 안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중구가 구청으로 승격된 것이 1963년이니 대구 9개 구군 가운데 맏형인 셈이다. 서울 강남 학군 다음으로 잘 나간다는 수성구는 17년이나 늦은 1980년 구청이 설치됐다. 그래서 대구 중구에는 대구역사와 관련한 문화재가 많다. 특히 근대역사와 관련한 자료가 많아 대구 중구를 중심으로 근대역사문화 여행길이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경상감영, 대구성곽, 대구향교, 계산성당, 달성공원, 이상화 생가, 약령시, 서문시장 등 수없이 많다. 그러나 중구는 대구 9개 구군 가운데 2년 전 대구로 편입된 군위군을 제외하고는 가장 인구와 면적이 작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남구와 함께 1명만 뽑는다. 한군데 구에서 2명 내지 3명을 뽑는 다른 구와는 비교 불가다. 달서구 인구의 5분의 1수준이다. 도시가 팽창되면서 대구 외곽으로 아파트가 건립되고 사람들이 빠져 나가 중구의 인구가 매년 줄어 한때 21만여 명이던 것이 7만여 명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대구의 모체답게 비즈니스 빌딩과 상업시설 등이 집중돼 낮시간대는 많은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대표적 구역인 동성로는 서울의 명동과 같이 전국적 번화가로 소문 나 있다. 주말에는 수십만 명이 오간다. 대구의 모든 교통은 중구로 통한다. 최근 중구청이 신이 났다는 소문이다. 마냥 줄어들지 알았던 중구 인구가 재개발 등에 힘입어 다시 1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27년만이다. 10만 번째 전입자에게 줄 명패를 준비하는 등 청 내가 축하 분위기라 한다. 대구 모체로서 축하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10

재떨이 무덤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엄마는 갓난쟁이인 막내를 업고, 아버지와 함께 밤마실을 갔다. 다섯 살, 네 살인 두 동생을 잘 데리고 있으라고 내게 신신당부했지만, 잠이 눈꺼풀을 끌어내렸다. 눈이 말똥한 그들은 같이 놀자고 칭얼댔다. 달랠 재미난 일을 찾다보니 평소에는 손도 대 보지 못했던 성냥이 보였다. 깨끗이 씻어둔 재떨이를 방 한가운데에 놓고, 조심스레 성냥을 그어댔다. 길게 줄만 생길 뿐, 불이 붙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힘주어 탁 치자, 불꽃이 일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쳤다. 어둠 속 불꽃에 여섯 개의 눈동자가 넋을 잃었다.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은 잠깐이었다. 방안을 채우던 불빛이 서서히 사그라지자, 주변은 어둠 속에 갇히기 시작했다. 다시 성냥개비 하나를 던지다시피 올렸다. 까무러지던 불이 빨간 성냥개비 머리에 화르르 옮겨 붙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던 동생들이 손뼉을 치며 소리 질렀다. 나는 팔각 성냥 통이 반쯤 비워질 때까지 불을 붙이고 또 붙였다. “퍽!” 유리 재떨이가 두 동강이 났다. 순간, 우리는 얼어붙고 말았다. 두껍고 단단해 바닥에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았던 그것이 성냥개비 불에 쩍 벌어졌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확 다가왔다. 불장난보다 깨진 재떨이 때문에 더 혼날 것 같았다. 어린 동생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도 이미 깨진 그것을 다시 붙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감추기로 했다. 타다만 성냥 꽁지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았다. 자욱한 화약 냄새를 내 보내려 문이란 문은 다 열었다. 찬바람이 몰아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엄마 아버지가 들어설 것 같았다. 삽을 찾아 뒤곁을 뒤졌다. 호미가 먼저 손에 잡혔다. 내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호미를 든 내 뒤로 재떨이 반쪽씩 든 동생들이 따라왔다. 매장지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평소 잘 다니지 않은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눈 쌓인 비탈에 달빛이 비쳐 주변이 환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꽁꽁 언 땅에 호미가 튕겨져 나왔다. 보다 못했던지 동생이 재떨이를 땅에 놓더니 눈을 끌어다 덮기 시작했다. 나는 흙을 긁어모아 눈 위에 덮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재떨이 무덤을 돌아보았다. 동생들이 내 양손을 힘주어 잡았다. 후다닥 뛰어 들어간 방에 신발도 따라 들어왔다. 신발을 내던지고 방문을 닫자, 그제야 맨발들이 보였다. 코도 귀도 발갛게 얼어있었다. 언 손을 이불 밑에 넣으며 동생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오늘 일은 죽을 때까지 비밀이라고 손가락을 걸었다. 벌건 얼굴들이 주억거렸다. 그 이후, 아버지가 재떨이를 찾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기억도 없는데, 그 밤은 꿈이었을까. 얼마 전, 막냇동생까지 모인 자리에서였다. 에어컨 바람 밑에서 수박을 먹으며 지난 흑백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빛이 고즈넉이 분위기까지 깔아주어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던 여동생이 그날도 달빛이 참 밝았다고 했다. “이제 엄마 아버지도 안 계시니 얘기해도 되지?” 그녀가 재떨이 무덤을 열었다. 그때 네 살이었던 동생이 자기도 공범이었다고 했다. 어려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놀라웠다. 풀어 놓는 얘기가 내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우린 지금까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을까. 엄마 등에 업혔던 남동생도 이야기에 빠져든다. 셋이서 완벽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남동생의 말에 여동생이 고개를 흔들었다. 셋이 아니라 넷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도 공범이지 않느냐며 손이 창밖 하늘을 가리킨다. 반백년 넘게 입을 다물고 있었던 달이 구름 사이로 숨는다. 막냇동생이 공범자는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나도 기억하는 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제야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되뇌었다. 전 국민이 마음 졸였던 크나 큰 산불 기억이 퍼떡 떠올라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시커먼 무덤 같은 산을 보지 않으려 애써 눈을 감는다. /윤명희 수필가

2025-07-09

분옥정(噴玉停)

마을에 다다르며 천천히 읽었다 봉좌(鳳座) 용계(龍溪) 분옥(噴玉) 개념으로 정명(正名)된 관념은 현실을 상징한다 봉황과 용을 대체 누가 보았는가 튀어오르는 맑은 물이 옥과 같다는 것은 물성(物性)과 세속에의 입신양명에 대한 스스로 자처한 지속적인 소외라 나는 해석했다 선비는 목숨을 저당잡힌 위태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의지는 굳건하나 현실은 냉소적이었을 것이다 얼어죽어도 글을 읽겠다는 마음이 마루에 가득하다 녹음과 낙엽이 공존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것을 햇살은 거두어두지 못한다 뒤로 열린 하늘을 두고 물과 산을 바라본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마음이 깊으면 글은 저절로 담길 것이다 현실과 본질, 사직(社稷)과 사림(士林)은 대체적으로 대척점이다 한양에서 멀어져 이 좋은 곳에 머물 결심이었다면 나는 잊고 후학에 머물러야 하리라 우리가 쉽게 생각한 존재들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러나 무시당할 존재는 없다 다만 마음의 아름다움과 의지의 표상으로 날마다 서툴더라도 잡풀이라도 뽑을까 한다 그래도 불알 떨어질 일은 없으니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 싶다 땅을 짚고 솟아오르는 맑은 물이 되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하여 나는 분옥정에서 소신(所信)을 소신(小信)으로 개혁했다. … 이 시는 분옥정 혹은 용계정사의 역사적 평가와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과 달리 시인의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분옥정은 너무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하늘을 뒤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심(洗心)하고 풍경에 젖습니다. 비라도 내리면 거기서 죽어도 좋을 듯 합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09

감정성 통증의 이해와 한방 접근

사람은 단지 근육과 뼈, 신경만으로 이뤄진 기계가 아니다. 몸에 느껴지는 통증은 물리적인 자극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종종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숨어 있다. 특히 분노, 억울함, 외로움 같은 감정은 몸의 기운을 울체시키고 혈류를 막아 결국 통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70%는 신체증상을 겸하고 있으며 신체증상과 감정의 문제는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 임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들이, 통증의 발단이 특정 사건이나 스트레스, 억눌린 감정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의학에서 분노와 화는 간과 심장의 기운을 상하게 한다. 한의학에서 간은 소통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기운을 매끄럽게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화를 참거나, 표현하지 못한 분노가 누적되면 이 간기의 흐름이 막히고, 기운의 흐름이 막히면 이로 인해 통증이 생긴다. 이때 아픈 통증의 대표적인 예가 옆구리의 당기거나 찌르는 듯한 통증, 늑간신경통, 편두통이다.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가 나면 꼭 어딘가가 아파요.” 이럴 때는 단순한 근골격 치료 뿐만 아니라 감정의 근원이 되는 간이나 심장의 화를 식히는 약을 같이 복용 시키면 더 빨리 그리고 확실히 치료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억울함이나 서운함 같은 감정은 더 깊은 체내 울체를 만들어낸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담과 어혈의 형태로 체내에 머무를 수 있다. 특히 목과 어깨의 긴장, 명치의 뻐근함, 그리고 생리통과 같은 하복부 통증도 이런 억눌린 감정과의 연결성을 의심할 수 있다. 실제로 억울한 상황을 겪은 후 찾아오는 만성 통증 환자들은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나눠보면 속에 쌓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밥먹다가 안좋은 말을 듣고 체해서 오는 경우도 이런 경우다. 감정의 무게가 몸의 통증으로 옮겨간 것이다. 외로움과 상실감은 부교감신경을 약화시키고, 교감신경을 만성적으로 항진시킨다. 이런 상태에서는 근육이 풀리지 않고, 수면의 질이 나빠지며, 통증 민감도가 올라간다. 똑같은 자극에도 더 아프고, 더 예민해진다. 이런 환자들은 혈액순환과 기혈 순환이 모두 약화되기 쉬우며, 맥이 약하고 설태가 끼는 경우도 흔하다. 신경을 쓰면 더 아프고, 혼자 있으면 통증이 더 부각된다. 몸의 통증은 결국, 감정과 환경의 반영이 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감정의 문제에서 한약과 침술을 사용해서 같이 치료한다. 대부분은 화를 풀어 주는 시호나 황련 그리고 억울 된 감정을 풀어주는 치자 같은 약재들을 적절하게 섞어서 처방한다. 감정과 신체를 분리하지 않는다. 침술로는 자율신경을 조절할 수 있는 혈 자리에 약침을 놓는 것으로 화가 난 감정이나 억눌린 감정을 치료한다. 실제로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을 조절 할 수 있는 곳에 약침을 꾸준히 맞으면 수면 가슴 두근거림 소화 불량 등의 감정으로 인한 증상들이 개선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의 본질이다. 통증은 단순한 말초 신경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가 보내는 신호다. 이를 그냥 보내지 말고 몸의 치료와 함께 마음의 치료를 같이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7-09

‘드래곤 길들이기’, 그리고 OSMU

더워도 너무 덥다. 에어컨은 며칠째 24시간 풀가동 중이고 바깥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무더운 날 범보다 무서운 손님이 온단다. 모 방송국에서 남편을 인터뷰한다고 연락이 왔길래 집으로 오라고 했단다. 허걱 기가 막혔지만 대처해야 했다. 궁리 끝에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난 집에서 나가 있기로 마음먹었으며 남편에게도 단단히 일렀다. 몇 시간을 촬영할 것인진 모르겠으나 그동안에는 소음 때문에 에어컨은 반드시 꺼야 할 것이고, 난 방안에 숨죽이고 있거나, 옷을 대강이라도 차려입고 그들을 접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신 청소를 그어느 때보다 꼼꼼히 해두고, 촬영할 방도 채비해 두었다. 몇 가지 과일을 정갈하게 썰어 래핑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음료도 두어 가지 준비해 두었다. 식탁에 컵과 포크를 몇 개 가지런히 내어두고는 집을 나섰다. 남편이 어디 갈 거냐고 묻길래 가까운 영화관에 가서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고 했다. 차에 시동을 건 채 현재 개봉영화 검색을 했다. 내 취향의 영화는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나마 지금 가서 바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딱 하나 있어 다행이었다. ‘드래곤 길들이기’, 장르는 판타지, 액션, 모험. 평소 같았으면 절대 보지 않을 것이었으나 선택지가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끊고, 팝콘과 제로콜라 사들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래 난 지금 시원한 곳에서 다만 시간 죽이러 온 것일 뿐이야. 재미없으면 자면 되지. 나 빼고 두 명의 관객이 더 있었으니 영화관은 적막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고대의 전사들과 기괴한 드래곤들과 싸우느라 시끄러웠다. 고대의 시간과 장소, 험준한 버크섬에는 바이킹들이 산다. 그들은 그저 북유럽인만이 아니다. 전세계 여러 곳에서 온 종족들이 같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아프리카와 극동에서 온 사람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들 바이킹은 그들을 괴롭히는 드래곤들과 철천지원수였다. 수시로 출몰하는 드래곤들과 싸워 죽고 죽이거나, 드래곤의 둥지를 퇴치하려 배 타고 원정을 가기도 한다. 싸워 이기는 자만이 살 수 있고, 이겨서 영웅이 되는 것만이 존중받는, 전쟁이 곧 삶이자 생활이었고 아이들도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원수인 드래곤을 길들이고 친구로 삼는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아닌 함께 사는 방법을 찾게 된다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울림은 컸다. 맞다. 싸움보다는 당연히 평화지. 멋지고 훌륭한 CG 화면도 몰입도를 높였다. 어라 괜찮은데 하는 생각에 깬 채로 두 시간 동안 영화를 즐겼다. 이 영화 뭐지 하는 생각에 검색해 보았다. 과연 ‘드래곤 길들이기’는 유명한 OSMU 콘텐츠였다. 영국의 여성 소설가인 크레시다 코웰의 판타지 아동문학 소설 ‘드래곤 길들이기’가 원작이다.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도 영국인인데···.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총 12권의 소설로 나왔고 2010년부터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3편까지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으며 TV 시리즈, 그래픽 노블, 테마파크 어트랙션 등 다양한 미디어로도 확장되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인 셈이다. 한 작가의 상상력이 수십 년에 걸쳐 수천만의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우리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려나 생각이 깊어진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7-09

현수막이 정치인가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여당의 실정을 지적하고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권을 다시 맡겠다는 정당이라면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 야당은 그같은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 아니면, 여당과 정부가 실수라도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정권을 빼앗긴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정권교체를 바랐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까닭은 외부의 음모나 여당의 술수 탓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내세운 대통령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으며 개혁은 지지부진하였고 소통은 닫혀 있었다. 자살골처럼 펼쳐진 비상계엄의 결과로 파면된 대통령을 만들었던 정당이 아니었던가. 야당은 실패를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는 착각에 머물고 있다. 지역정치가 답답하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이라 여겼던 경북에서도 민심의 변화는 뚜렷하다. 한때 지역 곳곳을 뒤덮었던 야당의 깃발이 점차 빛을 잃고 있다. 그런 중에 지역 출신 국회의원 두 명이 각각 야당의 정책위의장과 홍보위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명색이 당의 정책을 총괄하고 전국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정작 내어놓은 정책은 무엇이고 어떤 전략으로 국민과 소통할 것인지 청사진은 들리지 않는다. 정책위의장은 나라 살림의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다. 경제, 복지, 노동, 기후, 외교, 산업구조 등 당면한 수많은 현안에 대해 어떤 철학과 로드맵을 가졌는지 지역민들은 궁금하다. 홍보위의장 역시, 현수막 축하나 SNS 게시물로 떠들썩할 일이 아니다. 야당의 메시지가 국민의 삶에 닿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감동과 공감을 끌어낼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 눈에 뜨이는 건 정책도 철학도 아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는 현수막이 펄럭거릴 뿐이다. 감투는 무엇인가. 가문의 명예인가, 공천의 보증서인가, 아니면 정치경력의 한 줄을 채우기 위한 이력 소재인가. 받은 직책은 자랑이 아니라 책임이다. 중앙당 지도부에 이름을 올렸으니 나라와 지역의 미래에 대해 더 적극적 책임을 져야 하고, 지지층의 회의와 비판에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현실은 너무나 조용하다. 지역 언론에도 이들의 입장은 소개되지 않았고 받은 책임에 대한 시민들과의 소통도 들리지 않는다. 무거운 직책을 안고 돌아왔지만, 정작 지역민들은 그들이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야당은 여당의 실수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의 본령은 견제보다 대안이다. ‘그래도 저들이 낫지 않겠나’는 최소한의 기대마저 무너진다면, 정권 재창출은 커녕 지역에서 존립 기반조차 잃고 말 것이다. ‘언더친윤’의 가림막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정책과 소통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 시민은 지역의 정치인이 성공하길 바란다. 나라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며 국민이 일상을 회복하는 길에 두 정치인이 능동적으로 기여하길 바란다. 자리에 걸맞는 책임과 실천은 어디에 있는가. 현수막은 정치가 아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09

국회의원 박수영의 필화(筆禍)

박수영은 부산 남구가 지역구인 국회의원이다. 그가 얼마 전 SNS에 올린 글과 잇따른 반응이 며칠째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기왕 이전하기로 한 해수부는 연말까지 남구로 보내주시고 당선축하금 25만원 대신 산업은행도 남구로 빨리 보내주세요. 우리 부산시민은 25만원 필요 없어요’라는 게 박 의원이 쓴 글. 주민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해양수산부와 산업은행을 부산 남구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을까.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부탁이고 주장이다. 그런데, ‘부산시민은 25만원 필요 없어요’란 마지막 문장은 쓰지 말았어야 할 실언이 아닐지. 적지 않은 네티즌이 “당신은 필요 없지만, 나는 필요하다” “산업은행 이전과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무슨 관계가 있냐”는 의견을 달며 박 의원을 질타했고, 심지어 “그럼 25만원 네가 줄 거야?”라고 거칠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호재(?)를 민주당이 놓칠 리 없다. 이나영 부대변인으로부터는 “무슨 자격으로 부산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려 드나. 여당 의원으로 재적하던 3년간 국민을 외면해 놓고, 이제 와서 큰소리 치는 꼴이 파렴치 그 자체”라는 힐난까지 받은 것. 여러 보도에 따르면 박 의원이 올해 신고한 재산은 36억원. 25만원이 작은 돈으로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남구에도 소비쿠폰으로 오랜만에 자식들과 돼지갈비로 저녁 한 번 먹는 계획을 세웠을 주민이 없지 않다는 걸 잊지 말았어야 했다.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SNS에 올리는 글도 마찬가지. 21세기 필화는 주로 SNS에서 발원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09

오무라 마스오라는 아름다운 다리

2025년 6월 15일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이 날은 2023년 1월 15일 별세한 오무라 마스오 선생(1933-2023)이 살았던 집과 유택(幽宅)을 방문하는 날이었는데요. 저는 한국에서 온 S대학의 K교수, H대학의 Y교수 부부와 함께 선생의 댁이 있는 치바로 향했습니다. 이치가와오노에키(市川大野駅) 역에서 내려 15분 정도를 걸어가자, 생전의 선생처럼 단아하고 품위 있는 2층 단독집이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오무라 아키코 여사의 안내를 받아, 먼저 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불단을 둘러본 우리는 이후 선생이 4년간이나 투병하셨던 방에서 오무라 아키코 여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사는 재일한인 2세로서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무라 선생과 결혼하여 평생 동안 문학적 동지로 살아온 분입니다. 재일한인과 일본인의 결혼이 쉽지 않았던 당시에, 두 분의 결혼에는 오무라 선생의 스승이자 루쉰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다케우치 요시미(1910-1977)까지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오무라 선생이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시인 윤동주의 묘소를 발굴한 일이었는데요. 그 역사적 현장에도 아키코 여사는 오무라 선생과 함께 했었습니다. 오무라 선생이 말년에 제주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이유도, 아키코 여사가 제주 출신 재일동포 2세라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여사는 본인이 유명한 화가이기도 해서, 작업실에는 직접 그린 유화 작품들이 여러 편 남아 있었습니다. 오무라 마스오 선생처럼 많은 존경을 받는 ‘조선’문학 연구자도 드물 겁니다. 이러한 존경의 이유는 우선 평생에 걸쳐 이룩한 연구업적에서 비롯되는데요. 선생은 한국문학과 북한문학은 물론이고 제주문학과 연변문학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학문적 성과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적 지평에 서서, 분단과 국경을 넘어 한민족이 남긴 모든 근대문학을 포괄적으로 연구했던 건데요. 더군다나 이러한 ‘조선’문학 연구가 일본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습니다. 선생은 여러 자리에서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학문적으로 조선문학은 일본 사회 안에서 시민권이 거의 없었”으며, 그렇기에 ‘조선’문학 연구는 일본 사회에서 “뒷길 중의 뒷길”이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뒷길 중의 뒷길’이라 일컬어지는 소수파로서, 선생은 평생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조선’문학 연구에만 매진해 온 것입니다. 특히 일본인이 식민지 시절 ‘조선’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더욱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일본인이 한민족의 대표적 저항 시인인 윤동주의 무덤을 찾고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기에 오히려 수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에는 식민지 지배를 했던 나라의 연구자가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의 문학을 연구하면서 겪어야 하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불행한 역사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는 겁니다. 또한 오무라 선생은 오래 전부터 한국문학연구자들과 따뜻한 학문적·인간적 교류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선생의 집을 방문한 이 날도 여사는 선생이 김우종, 김윤식, 임헌영 등의 한국 문인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편지들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무라 선생은 실증적 연구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오직 자료와 현장에만 입각하여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조선’문학의 실체를 성실하고 따뜻하게 규명해 온 것인데요. ‘실증적 연구’ 태도는 선생의 체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선생이 놓여 있던 역사적 상황도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선생은 일본인이면서 과거 식민지였던 ‘조선’의 문학을 연구하는 독특한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연구 대상으로 삼는 ‘조선’은 이념에 따라 남북으로 분단된 처지였으며, 선생이 한창 연구를 진행하던 시기에는 일본에서도 이념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는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장은 최소화하여 내면화하면서 자료나 증거 등은 전면에 내세우는 ‘실증적 태도’는, 연구를 지속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김윤식 평론가는 오무라 선생을 ‘농부’라는 애칭으로 부르고는 했다는데요. 오무라 선생이 늘 김을 매고는 했다는 집 뒤편의 텃밭이 훤히 보이는 방에서, 아키코 여사는 오무라 선생에 대한 사실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자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4년간 남편을 간병했던 이야기, 버려진 길고양이 에미짱을 수십년째 길러온 이야기, 자신이 평생 해온 그림 이야기 등을 해주었는데요. 특히 문정희 시인의 ‘물을 만드는 여자’를 낭독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여성의 숭고한 생명력을 강조한 그 시 속에는 오무라라는 지적 거인과 평생을 함께 걸어온 여사의 삶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키코 여사는 오무라 선생 사후에 소장자료 2만여 점을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하여 세상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는데요. 이 날 선생의 자택 서고에는 여전히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 쪽 자료가 많아서, 전문적인 정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여사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나온 우리 일행은 선생의 유택이 마련된 근처의 사찰(木將寺)에 갔는데요. 하루 종일 흐렸던 날씨가, 그 곳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활짝 개어 있었습니다. 오무라 선생의 묘에 꽃을 바치고 돌아서면서 선생이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심어 놓은 ‘조선’문학 연구의 씨앗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7-08

배움에는 쉼표가 없다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음악을 전공했지만 어느덧 손을 놓은 지 스무 해가 다 되어 간다. 악보를 보는 감각도, 박자를 가르는 손끝의 감성도 점점 퇴색되어 빛이 바랬다. 그런 나에게 찬양 지휘를 부탁한 사람은 교회 목사님이었다. 단 한 번의 부탁이었지만 그 말 한 마디가 마음속에 오래도록 염려를 안겼다. 마치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야 하는 손길처럼, 묻어두었던 나의 음악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남의 일처럼 낯설었다. 뜻밖의 제안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양했을텐데, 망설임의 긴 여운이 사양할 시간을 앗아갔다. 찬양곡 하나를 맡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5일이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또박또박 박자를 세기 시작했다. 내 방식대로 정성껏 음원을 찾아듣고, 악보를 인쇄하고, 필요한 조표는 빨간 펜으로 그려 넣었다. 눈에 잘 띄게 박자를 나누고 헷갈릴 만한 쉼표는 두꺼운 선으로 표시했다. 삐뚤한 음표 하나에도 마음이 쓰여 또 다시 지우개로 지우며 화음을 그려 넣었다. 조심스레 골라낸 찬양 악보 위에 손으로 개사한 가사를 덧붙여 적었다. 서툴지만 정성껏 만든 내 악보를 옆에 있던 젊은 선생님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능숙하게 태블릿을 열어 단 몇 분 만에 깔끔한 디지털 악보로 바꾸어 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악보처럼 완벽하고 세련되었다. 화면 위에 정렬된 음표들과 가사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름 세상의 흐름을 따라왔다고 생각했지만 기술 앞에서 나의 시간은 오래전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내 방식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나는 여전히 연필로 음표를 그리고, 지우개로 화음을 수정하며 시간을 들였다. 그 속에 나름의 애정과 고집이 있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디지털 작업은 그 모든 과정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기술은 사람의 수고를 덜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수고의 의미마저 잊게 만든다. 내가 쏟은 시간과 정성은 과연 오래된 것들일까. 아니면 사라져 가는 것들일까.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 앞에서 나의 느린 손끝은 질문을 품는다. 나는 뒤처진 걸까. 아니면 그만큼 오래도록 남을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는 걸까. 나는 아직도 손글씨에 의존하고 프린터보다 펜을 먼저 찾는다. 모니터보다는 종이의 질감을 더 신뢰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 속도를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조금만 멈춰 서 있어도 세상은 너무 멀리 가 있다. 쉼표가 없는 악보처럼. 나는 생각했다. 익숙한 방법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것만 고집해서는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음악처럼 삶에도 새 음이 필요하고 때로는 전조가 필요하며 박자를 바꾸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걸. 기술을 배우는 일은 단지 도구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는 또 하나의 언어를 익히는 일임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배움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학교를 졸업하면 배움도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배움은 교실 밖에서 시작된다. 뒤처진다는 건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멈춘 상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른이 된 뒤부터 자꾸만 체면을 차리고 묻는 걸 두려워한다. “그 나이에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 한마디에 말문을 닫는다. 그러나 그 말은 틀렸다. 진짜 모른는 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 쪽이다. 배우지 못해 뒤처지는 게 아니라 물을 용기를 잃어 점점 자신을 접어 두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은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다. 나는 젊은 선생님 앞에서 낡은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았고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당위도 느꼈다. 배움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여전히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손으로 그린 악보를 다시 펼쳐본다. 삐뚤한 음표 사이사이에 내가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젊은 선생님의 손끝에서 척척 나오는 기술을 보며 감탄한 뒤 나도 배워보겠다고 다짐했다. 배움에는 정해진 리듬이 없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느리게, 각자의 템포로 배운다. 중요한 건 끝내 쉼표를 찍지 않는 일이다. 배우는 사람은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젊은 사람이다. 나도 그 끝없는 악보 위를 다시 걸어가 보기로 한다. 쉼표 없이 흘러가는 이 악보 같은 세상에서 오늘 나는 새로운 박자를 하나 익혔다. 조금 더 느리지만, 나도 연주할 수 있다. 세상과 함께. /김경아 작가

2025-07-08

뉴노멀 시대와 파괴적 혁신

신생 기업과 대기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10살 꼬마와 명문대 출신 엘리트가 경쟁하면 누가 앞설까, 직장 생활 20년의 부장과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이 마케팅을 맡으면 누가 더 잘할까, 답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한다면 꽤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고, 지금이 뉴노멀 시대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전 같으면 무조건 대기업이, 명문대 나온 엘리트가, 20년 넘은 부장이 이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젠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어도 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했다. 뉴노멀(New Normal)은 한 때는 비정상적이거나 예외적이었던 현상이나 상태가 이제는 새로운 표준이 되는 상황을 뜻한다. 경제위기, 신기술 혁명, 전쟁, 관세 폭탄 등 큰 변화 이후 기존 질서나 방식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새로운 규범이나 기준이 자리 잡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충격에 빠지고, 고성장, 고수익에서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의 ‘뉴노멀’이 자리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근무, 원격 수업, 디지털로 전환되고,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는 일상화 되었다. 쿠팡 등 배달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젊은 세대는 집에서 음식이나 물건을 구입하는 등은 일상 생활이 되어 버렸다. 2016년 초 파리에서 택시 기사들이 파업을 했다. 우버(Uber)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으니 파리에서 우버를 몰아내 달라는 것이다. 우버는 승객과 운전기사를 앱을 통해 연결해주는 기술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버는 택시 차량도 운전기사도 없다. 오르지 연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대신 모든 결재는 우버 앱을 통해 이루어지고 수수료를 챙긴다. 파업 당일 우버 측은 오히려 웃었다. 파업으로 시내에서 택시를 잡기 어려워 지는 순간 우버 요금이 오른다. 우버의 강점은 택시 이용하기 편리함에 있다. 택시 파업으로 평소에 이용하지 않던 사람들도 우버 서비스를 경험하게 되어 오히려 크게 홍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도 카카오택시가 편리하여 늘 이용한다. 이것은 기존 택시, 렌터카, 배달 업계를 파괴한다. 이는 소비자 심리를 담은 스타트업들에 의해 기존 산업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파괴적 혁신인 것이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산업의 경쟁 질서를 파괴하여 새로운 경쟁 우위와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기존 제품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버린다. 파괴적 혁신을 위해서는 높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유도하고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매장이지만 휴식공간, 일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창출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ESG 경영, AI 시대와 디지털혁명으로 생산성 혁신의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08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의 돋보이는 기획력

바다가 곁에 있고 사람과 차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창가에 이색적인 작품들이 드리워졌다. 마치 커튼처럼 길게 늘어뜨린 현수막 천에 서예와 문인화 또는 캘리그라피 시화작품들이 담기고, 나즈막한 이젤 위에는 한국화 작품들이 올려져 다양한 작품 코너로 채워지면서 넓직한 공간이 금세 갤러리로 변했다. 탁 트인 창 너머 가까이 동빈내항과 송도솔밭이 보이는 ‘동빈문화창고1969’ 2층에서 최근 펼쳐진 풍경들이다. 그곳에는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글과 그림으로 등장하고, 동해에 깃든 전설이나 유래, 시, 민담이 파도소리로 들리는 듯한 작품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다소 어울리기 힘들 것 같은 테마의 작품들이 다양성의 조화처럼 한국화와 서예·문인화·캘리그라피·시화 등의 저마다 특색 있는 모습으로 전시회 테마의 요건을 갖추는 듯했다. 6월 26~7월 6일까지 10일간 진행된 이번 전시회는 2025 경북문화재단의 예술거점지원사업 시각+문학 3권역(포항·영덕·울진·울릉)으로 포항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에서 기획한 ‘명불허_어전’ 1회차 테마전시다. 이 같은 기획전시는 흔하지는 않지만,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에 착안한 ‘명불허_어전’ 전시회 타이틀에 걸맞게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다. 즉 “전설은 시간 속에 잠들지 않고,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 닿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전설과 설화를 글과 붓으로 재현한 것은 과거의 시선을 담으면서도 현재의 이 땅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다”며 기획자의 의도를 밝히기도 했었다. ‘거북바위에 오른 태양, 비단에 내려 앉은 달빛’을 부제로 동빈문화창고에서 열린 ‘명불허_어전’이 차분하게 서막을 올렸다면 이번에는 울릉도에까지 가서 테마전시의 ‘진수’를 보일 전망이다. 새로 만든 배를 처음으로 물에 띄워 바다로 내보내기 전 음식과 치성으로 깃발을 달고 술을 뿌리며 풍어와 안녕을 비는 진수식(進水式)을 떠올리며 예술가와 주민, 관광객들이 깃발과 작품에 어우러지는 참여형 퍼포먼스를 펼치게 된다. 이를테면 울릉의 바닷가에서 주민들의 바다를 향한 염원과 경외심, 용기를 깃발이나 사진, 글귀에 담아 바람 결에 세우며 진수식을 재현하고, 생활예술이 마을과 사람과 바다를 다시 잇는 순간을 진지하게 연출해낼 것으로 보인다. 어부들의 염원과 주민들의 희망이 담긴 글귀와 깃발이 마음으로 이어지고, 그 깃발이 모여 바람에 나부끼고 펄럭이며 만선과 풍요를 꿈꾸는 또 하나의 색다른 진수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 작가들의 공익법인인 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의 참신한 기획력과 꾸준한 추진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작년의 ‘포구다방’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의 ‘명불허_어전’ 추진은, 경북 동해안 지역이 처한 현실과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문화예술적인 접근으로 일깨우고 활로를 모색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지역성을 살린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다각적이고 이색적인 테마를 지역민과 함께 발굴해 문화예술인들이 소통·교류하고, 새로운 기획과 네트워킹으로 체계화·담론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08

혁신 거부하는 국힘, 다음 선거는 포기했나

국민의힘 혁신위가 출범 닷새 만에 좌초됐다. 지난 2일 혁신위원장을 수락한 안철수 의원이 7일 전격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당내 인적 청산과 혁신위원 인선 문제에 대해 송언석 비대위와 충돌한 것이 이유다. 안 의원은 “최소한 두 분에 대한 인적 쇄신안을 제안했지만 비대위가 거부했다”고 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에 내정된 후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중심의 혁신위 구성과 12·3 계엄부터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책임있는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주장해왔다. 안 의원은 인적 청산 대상과 관련해선, “지난 주말 송언석 비대위원장을 만나 2명의 인적 쇄신안을 비대위에서 받을 수 있겠는지 여러 번 의견을 나눴지만 결국 ‘받지 않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가 인적 청산 대상으로 지목한 2명의 실명(實名)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일종의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자리에 계셨던 분들”이라고 했다. 당시 당 지도부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를 지칭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 의원이 요구한 인적 청산은 출당 또는 탈당 조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 과정에서도 갈등을 빚었다. 안 의원은 이재영 서울 강동을 당협위원장, 박은식 전 비상대책위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혁신위 합류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 소속이고, 호남 출신의 박 전 위원은 마찬가지로 당의 개혁 필요성을 주장해 온 원외 인사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지난 7일 발표한 혁신위원 명단에는 2명이 쏙 빠졌다. 사실 국민의힘이 지난주 ‘안철수 혁신위’를 띄웠지만, 민심을 돌릴만한 혁신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지 않았다. 당내에서도 “기득권 세력이 당 내외 비판 여론을 분산하고 자기희생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안철수 혁신위를 만들었다”는 뒷말이 나왔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아마 안 의원이 큰 운동장에 30평짜리 운동장을 따로 긋고 그 안에서만 혁신하라는 주문을 계속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영남 자민련’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적 쇄신과 인재 영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당3역’인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이 모두 친윤계인 TK와 PK 중진들이 장악하고 있어 자체적인 인적 쇄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서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도 5대 개혁안을 내걸었지만 친윤계의 반발로 끝내 의결이 무산됐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7일 발표한 정당별 지지도 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53.8%, 국민의힘이 28.8%를 기록했다. 양당 간 격차가 25.0%p까지 벌어졌다. TK지역에서는 민주당 42.4%, 국민의힘 45.7%로 오차범위 내 접전 상태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재 거론되는 ‘홍준표 신당’이나 이준석 개혁신당이 영남권에 유력한 후보를 낼 경우, 국민의힘은 TK지역의 기반마저 붕괴할 수 있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08

보행자 보호용 가드레일 설치, 어떤 사업보다 우선해야

3일 오후 서울 도봉구에서 발생한 택시 인도 돌진 사고는 또 다시 우리 사회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차량과 충돌한 택시가 인도로 돌진하며 50대 보행자가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는 지난 1일 마포구 상암동에서 발생한 전기차 인도 돌진 사고, 2일 강릉 휴게소 식당가 돌진 사고와 함께 연이어 발생한 참사이다. 특히 마포구 사고는 시청역 참사 1주기에 발생해 더욱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연쇄적인 사고들은 우리 사회의 보행자 안전 대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청역 참사 당시 현장에는 국토교통부 지침에 따라 설계된 철제 가드레일이 있었지만, 차량 충격에 의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는 현재의 보행자 보호 시설이 실제 사고 상황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형식적인 안전 시설 설치로는 시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도심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가 새고 곰팡이가 핀 집을 벽지만 계속 덧붙여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사회 곳곳에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에도 임시방편적인 대책만 세우고 있다면 계속해서 같은 사고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다. 서울시는 시청역 참사 이후 강력한 보행자용 방호울타리 설치를 약속했지만, 연이은 사고들은 이러한 약속이 아직 현실로 구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발표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운전자의 부주의나 실수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이다. 최근 사고들을 보면 음주나 약물 운전이 아닌 페달 오조작이나 운전 미숙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는 고령화 사회의 진행과 함께 더욱 빈번해질 수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운전자의 주의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물리적 방어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가드레일을 차량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강화된 구조물로 교체하고, 보행자 밀집 지역에는 더욱 견고한 보호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보행자 보호용 가드레일 설치는 시민 안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만큼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화려한 개발 사업이나 홍보성 사업에 앞서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기본적인 안전 인프라 구축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미루거나 축소할 수 없는 필수 사업인 것이다. 더 이상 같은 사고가 반복되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지금 당장 실효성 있는 보행자 보호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시민들의 안전한 보행권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2025-07-07

‘살인 폭염’에 휴가도 무섭다

프랑스는 1300여개 학교가 문을 닫아걸었다. 남부 유럽인 포르투갈은 낮 기온이 섭씨 46도까지 올라갔다. 평년보다 무려 15도 높은 수치다. 미국인 가운데 1억7000만명 이상이 ‘폭염 영향권’ 아래서 생활하고 있다. 재론의 여지없이 역대 최고 숫자다. 유럽과 북아메리카만이 아니다. 아시아도 양은 냄비 속 라면처럼 펄펄 끓고 있다. 북부·중부 할 것 없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중국 정부는 폭염 경보와 농작물 피해 경보를 알리기에 하루가 짧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미 6월부터 45도 넘는 기온에 국민 절대다수가 숨을 몰아쉬는 지경. 두 나라는 에어컨 보급률이 아주 낮다. 어느 대륙, 어느 나라 특정할 것도 없다. 많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더위를 견디지 못해 사람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타는 듯 강렬한 햇살과 체온보다 높은 고온에 오래 노출되면 인간만이 아니라 짐승도 죽는다. 야생동물이나 반려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조금 부풀려 말하면 지난해인 2024년과 올해 더위는 14세기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흑사병 수준으로 인류를 위협한다. 여든 살 노인부터 10대 학생들까지 모두가 “더워도 너무 덥다”를 입에 달고 겨우겨우 불볕더위를 견딘다. 이제 겨우 7월 초순인데. 오는 8월의 폭염은 또 얼마나 끔찍할까? 이런 상황이니 휴가를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시아와 유럽, 북미 어디를 가도 더운 건 한국과 마찬가지니까. 물론, 남극이나 북극으로 떠난다면 오뉴월 염천에도 덜덜 떨며 며칠을 지낼 수 있겠지. 그러나, 남극 여행비용 5000~6000만원을 휴가비로 선뜻 투자할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07

TK가 변해야 보수가 산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TK(대구·경북)를 흔히 ‘보수의 심장’이라고 한다. 보수의 입장에서는 선거 때마다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으니 TK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보수의 심장이 건강하지 못하면 보수정치도 건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TK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라. 대통령이 오판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당 지도부가 오판하여 대선후보 교체 쿠데타를 벌여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가 자기 살길 찾기에 바빴다. 대선에 참패했음에도 반성과 혁신은 없고, 오직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TK 송언석(김천)을 밀어서 원내대표에 당선시켰다. 대의(大義)보다 소아(小我)에 집착하는 정치꾼들이 어떻게 보수정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보수의 덕목인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모르는 TK정치인들이 보수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누가 TK정치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TK유권자들이다. ‘정치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TK유권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한 결과’이니 누구를 탓하랴.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TK유권자들의 업보(業報)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맹목적 지지는 민주시민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며, 보수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TK의 일편단심이 결과적으로 오만하고 무능한 ‘국민의힘’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TK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야 보수가 회생할 수 있을까? 시대착오적인 편협한 지역주의, 전통적 연고주의, 배타적 파벌주의에 얽매인 정치적 편견을 버리고 민주화시대에 걸맞은 합리적 사고를 해야 한다. TK정치인들이 “우리가 남이가”라고 감정적 선동을 해도 TK유권자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TK가 ‘보수의 인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인들은 TK를 더 이상 만만하게 보지 않고 바른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TK유권자들은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충신’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 된다. 박근혜의 뜻을 거역한 유승민이나 윤석열의 잘못을 비판한 한동훈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는 것은 왕조시대의 사고방식이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대통령에게 맞서면 무조건 배신자인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배신했다는 말인가?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은 머슴’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을 두둔하는 것은 주권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제 보수의 심장, TK가 깨어나야 한다. TK유권자들이 각성해야 TK정치가 변하고, TK정치가 변해야 보수가 산다. 특히 TK유권자들은 ‘지지할 때’와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를 엄격히 구분해야하며, 지금은 TK정치인들이 뼈저린 반성과 혁신을 통해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7-07

생각에 대한 생각

‘메타인지’란 말이 유행한다. 어떤 개념의 상위 수준이나 다른 관점을 나타내는 ‘메타((Meta)’와 대상을 분별·판단하여 안다는 뜻의 ‘인지(認知)’를 합성한 이 말은,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고도 일컬어진다. 간략하게 말해서, 학습이나 문제해결 과정에서 자신의 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조절하는 능력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1970년대에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이 창안한 용어다. 그는 아동의 인지(認知) 발달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인지능력뿐 아니라 자신의 사고 과정을 통제하고 점검하는 능력이 학습과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 교육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메타인지는 핵심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학습 능력 향상, 비판적 사고, 자기 조절 능력을 길러주는 중요한 기능으로 연구되고 있다. 메타인지의 주요 기능으로는 우선 비판적 사고와 자기반성을 들 수 있다. 자신의 신념이나 판단을 의심하고 점검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독단이나 편견에 빠지지 않게 한다. 다음으로는 분노,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을 객관화하여 다스릴 수 있는 힘을 키운다. 또한 다수의 견해라고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집단적 의사결정에서의 오류를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메타인지를 향상시키는 방법으로는 평소에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하는 습관,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 생각의 흐름을 말로 표현하기,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피드백(feedback)을 받기, 독서와 글쓰기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메타인지 능력이 떨지는 게 아닌가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은 정보 과잉의 시대다. 수많은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SNS 환경에서는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특히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점점 더 확증 편향적 오류에 빠져들게 된다. 메타인지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이유이다. 수시로 ‘내가 접한 정보는 과연 믿을 만한가?’, ‘내가 속한 진영의 논리는 과연 정당한가?’, ‘나의 사유체계는 과연 타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자기성찰은 바로 메타인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메타인지는 단순한 심리학의 용어가 아니라, 현대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시민의식이자 삶의 태도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태도는 오늘날처럼 정보와 주장이 넘쳐나는 시대, 불확실성과 분열이 심화되는 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이다. 그것은 양비론이나 양시론이 최선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비겁한 현실도피나 냉소적 방관자의 태도도 물론 메타인지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여 국가와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데 메타인지의 진정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현상들은 다 메타인지의 결핍에서 오는 것일 터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7-07

악마의 맷돌과 노예의 길

칼 폴라니는 ‘거대한 변환’에서, ‘시장’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기계’라고 진단한다. 자율적 시장경제는 위험하며, 사회적 자유가 진정한 자유이며, 이러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가 시장을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폴라니에겐 시장이란, 자연이 선물한 토지, 인간의 신성한 노동 그리고 사회적 신뢰인 화폐를 상품화하여 모조리 갈아버리는 ‘악마의 맷돌’이다. 이 거대한 제분기는 노동을 분리하여 시장의 법칙에 종속시키고, 유기적인 삶의 모든 형태를 말살하고 원자화하여, 개인주의를 파괴하여 결국은 인간과 자연을 말살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는 ‘노예의 길’에서, ‘시장’이 ‘인간 사회의 질서를 형성하는 가장 정교한 자생적 체계‘라고 진단한다, 자율적 시장경제는 진정한 인간 자유의 기반이며, 시장에 대한 개입과 간섭은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 주장한다. 하이예크에게 시장이란, 인간의 이성이 설계하지 않은 자생적 질서이며, 시장가격은 흩어진 지식의 조화이다. 시장에 대한 인위적 개입은 파멸로 가는 길이며, 평등이나 정의를 이유로 시장에 개입하면 자유는 무너지고 노예의 길로 향할 것이라 하였다. ’시장을 통제한다는 것‘에 대하여, 폴라니는 자유의 길, 하이예크는 노예의 길이라 판단했다. 하이예크가 두려워한 ’국가의 팽창‘은 독재 권력을 낳기도 하였지만, 폴라니가 경고한 ’시장의 전면화‘는 더 넓은 영역에서 실현되기도 하였다. 지금쯤 눈치를 챘겠지만, 폴라니는 진보의, 하이예크는 보수의 경제 정책이다. 여기서 나는 두 거장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 대해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악마의 맷돌에서 갈려져 나오는 위대한(?) 생산물이자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인도하는 거룩한(?) 인도자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생산물이자 인도자는 ’돈‘ 이다. 우리는 갈려서 돈이 되고, 우리는 돈에 의하여 인도된다. 절대 신 ’돈‘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다. ’돈‘ 교다. 근사한 말로 포장하면 ’자본주의‘ 교다. 자본주의는 모든 종교에 탁란한 뻐꾸기다. 신앙인들이 믿고 있는 신은, 어쩌면 돈이라는 신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주식 시장은 매일 요동치며, 우리의 노동은 시간 단위로 팔리고 있다. 어떤 신을 믿어야 하나. 이정표 없는 거리다. 아니, 이정표는 오직 돈일지도 모른다. 악마의 맷돌은 자연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갈아서 돈이라는 신을 창조한다. 그 신은 생각보다 전지전능하며, 은혜롭다. 신에게 바칠 재물이 신이 되었다. 우리가 창조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신이 되었다. 구원도, 속죄도 없다. 가짜가 진짜가 되었다. 우리의 모든 아우라는 돈의 빛 속에서 흐려졌다. 이야기도 신화도 모두 사라졌다. 오늘도 우리는 돈이 활개 치는 시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폴라니도 하이예크도 시장 속에서, 돈 속에서 죽었다. 나 자신의 가격을 묻는 시대, 모든 것이 가격으로 환원되는 시대. 딴따라는 춤춘다. 돈 신을 어떻게 모셔야 할까? 인류 전부가 개종할 날을 기대하여 본다. /공봉학 변호사

2025-07-07

코스트코 유치… ‘왜 지금, 왜 포항인가’에 답해야

글로벌 창고형 유통업체 코스트코(Costco)의 포항 입점이 가시화되고 있다. 포항시는 남구 구룡포읍 일대를 중심으로 후보지를 검토 중이며, 연내 협약 체결을 목표로 코스트코 코리아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시는 소비자 혜택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변수는 코스트코의 입점 조건이다. 일반적으로 생활권 인구 100만 명, 약 3만3000㎡(1만 평) 이상의 부지, 산업 성장 가능성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항(50만), 경주(24만), 영덕(3만)을 모두 포함해도 생활권 인구는 80만 명 수준에 그친다. 울산을 내세우는 의견도 있지만, 울산에는 이미 매장이 운영 중이라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단순 인구 수만으로 시장 잠재력을 판단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포항의 연간 관광객은 750만 명, 경주는 4000만 명, 울릉도도 40만 명에 달한다. 이러한 유동 인구를 고려하면 소비 기반은 작지 않다. 더불어 포항은 철강 중심에서 벗어나 이차전지, 수소, 바이오 등 신산업지로 빠르게 재편 중이다. 익산처럼 생활권 인구가 기준에 미달해도 경제성과 확장성, 지자체의 적극성에 따라 입점이 성사된 사례도 있다. 구룡포는 해안 관광지로서 특색이 뚜렷하고, 호미곶을 중심으로 국가해양공원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유통업계 일각에선 몇 가지 우려도 제기된다. 코스트코는 대규모 유통 구조를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영세 상권이 밀집한 구룡포에 입점하면 기존 상점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지역경제 균형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지리적 측면에서도 과제가 있다. 포항 북구에 거주 인구가 더 많고, 구룡포 진입도로는 주말과 휴가철에 교통 혼잡이 심각하다. 이는 이용자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코스트코 내부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북구 흥해읍은 입지 타당성 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인구가 집중된 북구에 있고, 고속도로 및 KTX 접근성이 뛰어나 동해안 북부까지 상권 확장이 가능하다. 영일만항, 울릉도행 여객선 등과 연계한 복합 상권 형성도 기대된다. 인근에 신산업 거점이 있어 프리미엄 소비층 유입 가능성도 높다. 입지 논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과거 포항시는 전통시장 보호를 이유로 롯데마트 입점을 불허했지만, 이번엔 시가 주도적으로 코스트코 유치에 나서며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반된 정책 적용에는 투명하고 일관된 논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필요한 건 “왜 지금, 왜 포항인가”에 대한 시민 대상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입점 효과는 특정 지역만이 아닌 포항지역경제 전체를 시야에 두고 설계돼야 하며, 장단점 공유와 함께 입지 선정 과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KTX역사 위치 선정이나 롯데마트 인허가 갈등처럼 미리 정해진 대답에 특정 계층, 특정 지역에 매몰된다면 코스트코 유치도 실패로 끝날 수 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7-06

공공기관장 임기 재정리할 때다

공직자 물갈이가 쟁점이 된 건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4·19나 5·16으로 정권이 뒤집히면 집권 세력 자체가 바뀌었다. 신군부가 등장한 12·12도 비슷했다. 전두환 정부에서 노태우 정부로 넘어간 때나, 다시 김영삼 정부로 바뀐 때도 고위 공직자가 대거 물갈이됐다. 그렇지만 개인의 영락으로 받아들였다. 김대중 정부는 달랐다. 1961년 5·16 이후 한 번도 여야 정권 교체가 없었다. 36년 만의 정권 교체다. 공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정권에게 새로운 선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이었던 한 인사는 이렇게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에게 “공공기관장들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은 어떻게 해왔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일괄 사표를 받는 게 관례”라고 보고하자, 김 전 대통령은 “임기가 1년 미만으로 남은 사람은 임기를 마치게 하고, 그 이상 남은 사람은 사표를 받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전 공공기관장들에게 “임기를 보장하겠다”라며 안심시켰다. 정권 안정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공공기관장 45.8%가 교체됐다. 한국방송공사(KBS) 등 24개 주요 공공기관장 가운데 11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같은 정부인 노무현 정부에서도 26명 중 6명(21.3%)이 물러났다. 다시 정권을 탈환한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이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각계에 남아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추종 세력’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정부 기관장과 공기업 사장은 사의를 표하고 재신임을 받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부 권력이 언론계와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독재로 가겠다는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는 정권 교체나 다름없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운 후유증이 컸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출범 초 공공기관장은 일괄사표를 냈다. 재신임과 교체 절차를 밟았다. ‘노무현 정부 사람은 써도 이명박 정부 사람은 안 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히 물갈이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 사람들을 국정농단 세력으로 몰아 쫓아냈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했다. 언론·문화계는 물론 심지어 법조계도 손을 댔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 혐의로 구속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파격 발탁했다. 사법부가 특정 연구단체 중심으로 재편됐다.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이때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정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임기제 산하단체장들에게 사퇴 압력을 넣은 것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그 이후 공공기관장들이 임기를 내세우며, 버티는 일이 반복됐다. 그뿐만 아니다. 퇴임을 며칠 앞둔 대통령이 임기 3년의 공공기관장을 ‘알박기’했다. 연봉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했다. 비행기에 역추진 로켓을 붙여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6개월을 앞두고 임명한 공공기관장이 59명이라고 국민의힘은 주장했다. 특히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방송통신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문제 됐다. 국정 방향에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다. 그런 윤석열 정부도 임기 말 알박기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에도 공공기관장 54명을 ‘알박기’했다고 민주당은 파악했다. 공직의 정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를 정했다. 검찰총장의 임기도 수사의 중립성,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심우정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정작 새 대통령의 공약을 추진해야 할 공공기관장이 전임 정부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도 있다. ‘알박기’와 어깃장 놓기와 불법 물갈이를 주고받고 있다. 이참에 공공기관장 임기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국정 방향은 존중되어 마땅하다. 그 방향으로 공직자도 개편돼야 한다. 당장은 민주당이 국회도 장악하고 있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럴수록 여야가 제도화에 합의할 기회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06

축제, 그 열기 속에서

장미축제에 갔다. 장미원 가까이에 가니 차량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비교적 먼 주차장인데도 이미 차가 꽉 차 있다. 한참을 돌다 어찌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서 장미원으로 갔다. 임시매표소를 여러 군데 만들어 놓아서 표 끊기가 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부스에서 여러 체험을 하고 있다. 저녁 무렵의 장미원은 낮의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장미향이 코에 훅 들어온다. 265종의 장미 삼백만 송이가 피어 있다고 한다. 이 향을 좋아하는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 맡기에 바빴다. 어스름 지는 해를 바탕으로 경호원인 듯 나무들을 주변에 세워두고 한껏 자신을 과시하며 눈길을 끌어당긴다. 가족, 친지, 친구, 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봄밤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꽃만큼이나 화사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중앙의 분수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꾸며 놓은 것도 특징이지만 장미원 근처를 둘러 싼 나무들, 연못이 더한 정취를 덧붙인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음악회가 있다 해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전 요원들이 배치되어 자칫 일어날 사고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도 인상이 깊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는 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붐비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 문득 작년의 일이 떠올랐다. 강변을 산책하고 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군악대의 연주 소리에 트로트 노래 소리가 섞여 들린다. 조금 걷다보니 작은 무대에 젊은 학생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관객의 수는 20여 명 남짓. 소박한 작은 축제이다. 옆에서 트로트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악기 소리가 파묻힐 정도이다. 몇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이름을 내건 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악기 소리와 가수의 쨍한 소리가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얼른 발길을 돌렸다. 섞인 두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소음에 불과했다. 산책을 급하게 마무리하면서 왜 같은 날 저리 가까운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축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축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와 함께 해 왔다. 초기에는 겨울의 어둠과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봄을 기다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공동체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강화시키고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후 축제는 각 나라에서 그 나라의 문화와 자연환경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국가 위주의 축제는 각 지자체로 넘어갔다. 지자체는 그 지방을 알리는 문화산업으로 인식하고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놀이문화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행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보령의 머드 축제, 화천의 산천어 얼음낚시 축제, 해운대 모래 축제 등은 성공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리면 대부분 시간이 가면서 성공적인 모습을 갖춘다. 그것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면서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일 년에 무려 16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축제 풍년이다. 비슷한 형태와 주제로 열리는 작은 행사들도 있는 것 같다. 축제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고 함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좋은 경험의 장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비슷비슷해서 특징도 없고 전문성도 없다면 성공적인 모습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잠깐 시행되다가 스러지는 것이 아닌 전문성을 갖고 지방의 특색을 살린 많은 축제가 나왔으면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무대 위에는 지역의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하고 있다. 중앙의 유명한 음악가가 아닌 지역의 음악가가 나와 더 좋은 듯하다. 아는 부분에서는 따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너와 내가 함께 해서 봄밤을 즐기는 모습이 따사롭다. 끝까지 앉아 있지 못하고 늦은 시간을 핑계로 일어서는 일행들의 얼굴에 진한 여운이 남아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보낸 것에 대한 행복을 가득 안고 집으로 향한다. 전국에서 가장 큰 장미축제라는 말이 실감난 밤이었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