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정치는 규범보다는 힘, 명분보다는 국익이 지배하고 있다. 트럼프의 ‘돈로(Donroe=Donald+Monroe)주의’ 외교는 미국의 힘으로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그는 이상주의자들이 중시하는 유엔과 국제법을 무시하고 어떤 나라든 “까불면 죽는다(FAFO)”라고 협박하면서 약육강식의 정글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 변화가 세계에 주는 충격이 크다. 트럼프는 국익을 위해 군사력 사용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통해 분명히 보여주었다. 침략의 명분은 미국에 대한 ‘마약테러’였지만, 실상은 석유통제권을 확보하고 중·러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미국에 비우호적인 쿠바와 콜롬비아에도 경고를 보내는 한편, 국가안보를 위해서 그린란드 합병이 필요하다면서 노골적으로 영토야욕까지 드러내고 있다.
물론 힘의 외교는 오늘의 미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로마제국, 나폴레옹제국, 대영제국은 모두 강력한 힘으로 제국을 건설했고, 지금도 러시아는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전쟁 중이며, 중국은 남중국해 도서들을 강제점령하고 대만에 대한 군사위협을 증대시키고 있다. 강대국들이 제국주의 정책으로 국익을 획득·유지·확대해나간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국제정치의 본질적 속성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국제환경과 국익의 비중에 따라 무력행사의 노골성과 그 강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익을 위한 실용외교’이다. 힘으로 국제정치를 주도할 수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외교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이념외교’가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실용외교’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이재명 정부가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과 전략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실용외교가 원칙 없는 임기응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하면 된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으로서는 복잡한 실용외교를 추진할 수 없다. 게다가 외교정책에 정권의 이념이 개입되면 다각적 대안 모색이 어려워진다. ‘영원한 우방이 없는 국제정치’에서는 동맹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체약국의 국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NATO 동맹국인 미국과 유럽이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듯이, 최근 발표된 미국의 ‘2026 국방전략(NDS)’은 한미동맹 역시 중대한 변곡점에 직면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냉혹한 국제정치에 대처하려면 내적 결속력 강화가 시급하다. 분열과 갈등은 외세개입을 불러온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여야협치와 국민통합을 추진해야 국력을 결집시킬 수 있고, 결집된 힘이 있어야 강대국의 압력에 대처할 수 있다. 실용외교의 성패(成敗)는 국론통합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전략에 달려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